이 페이지는 교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十七年 光虎帝遣使伐樂浪 取其地為郡縣 薩水已南屬漢 據上諸文 樂浪即平壞城 宜矣 或云樂浪中頭山下靺鞨之界 薩水今大同江也 未詳孰是 又百濟溫祚之言曰 東有樂浪 北有靺鞨 則殆古漢時樂浪郡之屬縣之地也 新羅人亦以稱樂浪 故今本朝亦因之而稱樂浪郡夫人 又太祖降女於金傳 亦曰樂浪公主 |
7년(서기 44년)에 광무제(光武[1]帝)가 사(使)를 보내 낙랑을 치고 [2]그 땅을 얻어 군현(郡縣)으로 삼으니, 살수(薩水) 이남이 한(漢)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상기의 여러 글들로 미루어보아 낙랑은 즉 평양성임이 마땅하다. 또는 이르기를 낙랑을 중두산(中頭山) 아래 말갈(靺鞨)의 경계라 하고 살수를 지금의 대동강(大同江)이라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상세하지 않다. 또한 백제의 온조왕(溫祚王)이 이르기를,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아마도 옛 한나라 때에 낙랑군의 속현인 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신라인들 또한 (스스로를) 칭하기를 낙랑이라 하였으므로 이제 본조(本朝. 즉, 고려)에서도 이로 인하여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이라는 명칭을 쓴다. 또 태조(太祖)가 김부(金傳)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또한 이르기를 낙랑공주(樂浪公主)라 하였다. |
北帶方 |
북대방 |
北帶方 本竹覃城 新羅弩禮王四年 帶方人與樂浪人投于羅此皆前漢所置二郡名 其後僭稱國 今來降 |
南帶方 |
남대방 |
- ↑ 원본 虎. 고려 2대 임금인 혜종(惠宗)의 이름인 武를 피휘하기 위하여 호(虎)로 썼다.
- ↑ 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4〉 대무신왕 條 27년(44년)조에는 광무제가 사람을 보낸 것〔遣使〕이 아니라 병사를 보낸 것〔遣兵〕으로 기록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 ↑ 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 유리 이사금 條에는 “十四年 高句麗王無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즉위 14년(37년)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천 명이 와서 투항하였다.)라고 하고 있어 시기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