玄菟四郡 |
현도(玄菟) 4군으로 하였다. |
馬韓 |
마한 |
魏志云魏滿擊朝鮮 朝鮮王凖率宫人左右越海而南至韓地開國號馬韓 甄萱上太祖書云昔馬韓先起赫世勃興於是百濟開國於金馬山 崔致逺云馬韓麗也辰韓羅也 㨿本紀則羅先起甲子麗後起甲申而此云者以王凖言之耳 以此知東明之起已并馬韓而因之矣 故稱麗爲馬韓 今人或認金馬山以馬韓爲百濟者盖誤濫也 麗地自有邑山故名馬韓也 |
(《삼국지(三國志)》의) 〈위지(魏志)〉에 이르기를, 위만(衛[1]滿)이 조선을 공격하자 준왕(準王)은 궁인과 좌우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한(韓)나라 땅으로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견훤(甄萱)이 태조(太[2]祖)에게 올린 글에 이르기를, 옛날에 마한이 앞서고 혁거세(赫世勃)가 발흥하자 이 때에 백제(百濟)가 금마산(金馬山)[3]에서 나라를 세웠다 한다. 최치원(崔致逺)은 마한이 고구려이며, 진한(辰韓)이 신라라 한다. (《삼국사기》의) 〈본기〉에 의한 즉, 신라가 먼저 갑자(甲子)년[4]에 일어나고, 고구려가 후에 갑신(甲申)년[5]에 일어났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조선)왕 준(凖)을 두고 말하고 들은 것이다. 이로써, 동명(東明)이 일어난 것은 이미 마한을 아울렀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6] 그러므로 고구려를 일컬어 마한이라 한다. 지금 세인들이 어떤 경우에는 금마산을 두고 마한이 백제가 된 것이라고 알고 있으나, 이는 대략적으로 잘못이며 뜬소문이다. 고구려 땅에 마읍산(馬邑山)[7][8]이 있으므로, 이름하여 마한이라 하였다. |
四夷 九夷 九韓 穢貊 周禮職方氏掌四夷九貊者東夷之種即九夷也 三國史云溟州古穢國野人耕田得穢王印献之 又春州古牛首州古貊國又或云今 |
- ↑ 원문 魏.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에는 衛로 되어 있다. 문맥상, ‘魏’는 ‘衛’의 오자(誤字)임이 명백하다.
- ↑ 서울대규장각본에는 大로 되어 있다.
- ↑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산이다.
- ↑ 기원전 57년(혁거세 1년)을 말한다.
- ↑ 기원전 37년(동명성왕 원년)을 말한다.
- ↑ 마한이 곧 고구려라는 주장은 동명이 마한을 아울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박인호, 〈전통시대의 고구려ㆍ발해인식〉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3집》 (2004.12) 359쪽.
- ↑ 평양 부근에 있는 산 이름이다.
- ↑ 원문 邑山.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馬邑山으로 되어 있다.
- ↑ 《삼국사기》 〈권제일〉 “南解次次雄...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獻之 (남해차차웅...16년(서기 19년) 봄 2월에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인장을 얻어 [나라에]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