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끊다 말어라
가장(家長)님만 님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붙으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燭臺) 그늘엔
칠십년(七十年) 고락(苦樂)을
다짐둔 팔벼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루밤
빌어얻은 팔벼개.

조선(朝鮮)의 강산(江山)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三千里) 서도(西道)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山)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家門)에
시집 가서 사느냐.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부모(父母)없는
고향(故鄕)이라우.

오늘은 하루밤
단잠의 팔벼개
내일(來日)은 상사(想思)의
거문고 벼개라.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품 속에 있던 님
길차비 차릴라.

두루두로 살펴도
금강(金剛) 단발령(斷髮令)
고개길도 없는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嶺南)의 진주(晉州)는
자라난 내 고향(故鄕)
돌아갈 고향(故鄕)은
우리 님의 팔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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