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팔도총론
崑崙山一技行大漠之南東爲醫巫閭山自此大斷是爲遼東之野渡野起爲白頭山卽山海經所謂不咸山 是也精氣北走千里挾二江向南爲寧固塔背後抽一技爲朝鮮山脈之首有八道曰平安隣瀋陽曰咸鏡隣 女眞次則曰江原承咸鏡曰黃海承平安曰京畿在江原黃海之南京畿南則曰忠淸及全羅全羅之東卽慶 尙也慶尙卽古卞韓辰韓地京畿忠淸全羅卽古馬韓百濟地咸鏡平安黃海卽古朝鮮高句麗地江原別爲 濊貊地其興滅未詳唐末王太祖出而統合三韓爲高麗而我朝繼運矣東南西皆海獨北一路通女眞遼瀋 多山少野其民柔謹局促長亘三千里東西不滿千里際海而南者可値浙江吳會之間平安之北義州爲界 首邑約可當靑州國大抵在日本中國之間 |
곤륜산(崑崙山) 한 지맥이 대사막의 남쪽으로 뻗어 동쪽으로 의무려산이 되었고, 여기에서부터 크게 끊어져 이에 요동(遼東)의 들이 되었다. 들을 지나서 솟아 백두산이 되었는데, 『산해경』에서 이른바 불함산(不咸山)이라는 것이 이곳이다. 정기가 북쪽으로 천 리를 달려가며 두 강을 끼었고, 남쪽을 향하여 영고탑(寧固塔)이 되었으며, 등 뒤로 한 가지를 뻗어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되었다. 팔도가 있는데, 평안도는 심양과 이웃하였고, 함경도는 여진과 이웃하였으며, 다음으로 강원도는 함경도와 이어졌다. 황해도는 평안도와 이어졌고, 경기도는 강원도와 황해도의 남쪽에 있다. 경기도의 남쪽은 충청도 및 전라도이며, 전라도의 동쪽은 바로 경상도이다. 경상도는 바로 옛날 변한ㆍ진한 땅이었고, 경기ㆍ충청ㆍ전라도는 바로 옛 마한과 백제 땅이었다. 함경ㆍ평안ㆍ황해도는 바로 고조선ㆍ고구려 땅이었고, 강원도는 별도로 예맥 땅이었다. 그 흥하고 멸망함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당나라 말기에 태조 왕건이 나가서 삼한을 통합하여 고려를 세웠으며, 우리 왕조가 운(運)을 계승하였다. 동ㆍ남ㆍ서쪽은 모두 바다이고, 홀로 북쪽 한 길만이 여진ㆍ요동ㆍ심양과 통한다. 산이 많고 평야가 적으며, 그 백성은 유순하고 근신한다. 길이는 3천리에 걸쳐 있으나 동서는 천 리도 못된다. 바다와 닿은 남쪽은 (중국)절강성의 오현ㆍ회계현의 사이와 맞닿을 수 있다. 평안도의 북쪽 의주는 국경 수읍(首邑)이며, 대략 (중국)청주(靑州)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대저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 있다. |
古堯時有神人化生於平安道价川縣妙香山檀木下石窟中名 曰檀君遂爲九夷君長年代子孫不可記後箕子出封于朝鮮都平壤至孫箕準秦時爲燕人衛滿所逐赴海 遷都於全羅益山郡號爲馬韓箕氏地界不詳於史氏而與辰卞是爲三韓赫居世興於漢宣帝時盡有慶尙 道臣服辰卞諸地號新羅都慶州朴昔金三姓更迭而爲王衛氏亡於漢武帝時及漢移民棄地有朱蒙者自 靺鞨據平壤號稱高句麗朱豪沒其次子溫祚又分據漢水以南滅馬韓號百濟都扶餘高句麗與百濟俱滅 於唐高宗時棄地撤歸二國地盡入新羅末爲弓裔甄萱所分至高麗一之此我國建置沿革之大略也新羅 以前三國戰爭不休然文蹟少自高麗而始可述矣高麗時士大夫之名未大立多起自胥吏而爲卿相者一 爲卿相則其子與孫爲士大夫咸置家於京城京城遂爲士大夫淵藪而外邑人穻有登于朝者及雙冀制科 擧取士外方人稍稍得顯仕于朝然西北多武臣東南多文士矣及季世文風大振間有中中原制科者此通 元之效也至今以大族稱於世者多高麗卿相之後裔則士大夫之胄派來歷自高麗而始可述矣 |
옛날 요임금 때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평안도 개천현 묘향산 박달나무 아래 석굴에서 변화하여 태어났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고 마침내 구이(九夷)의 군장이 되었는데, 연대와 자손은 기록할 수 없었다. 후에 기자가 나와서 조선에 봉해져서 평양을 도읍으로 삼고 손자 기준(箕準)에까지 이르렀는데, 진나라 때 연나라 사람 위만에게 축출되었다. 바다를 건너 전라도 익산군에 도읍을 옮기고, 이름하기를 마한이라 하였다. 기씨 땅의 경계는 『사기(史記)』에 상세하지 않지만, 진한ㆍ변한과 더불어 이를 삼한이라 하였다. 혁거세는 한 나라 선제 때 일어나, 경상도를 다 점유하였다. 진한ㆍ변한 여러 지역을 신하로 복종시켜, 신라라 이름 하고 경주를 도읍으로 삼았다. 박(朴)ㆍ석(昔)ㆍ김(金) 세 개 성씨가 다시 번갈아가면서 왕이 되었다. 위씨는 한나라 무제 때 멸망했다. 한나라에서 백성만 옮겨가고 땅은 버림에 미쳐, 주몽이란 자가 말갈로부터 평양에 근거를 두어 고구려라 이름하고 칭하였다. 주몽이 죽자 그의 둘째 아들 온조가 또 한수(漢水) 이남에 나누어 근거하여, 마한을 멸망시키고 백제라 이름 하였으며 부여를 도읍으로 삼았다.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당나라 고종 때 멸망하였다. (당나라에서) 땅을 버리고 철수하여 돌아가자, 두 나라 땅은 다 신라로 들어왔다. 말기에 궁예와 견훤이 나눈 바가 되었는데, 고려에 이르러 그것을 통일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건치연혁의 대략이다. |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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