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제8장
상평통보 서 푼과……
편집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이 자기가 자청해서 자기 입으로 개라고 하니, 차라리 그렇거들랑 어디 컹컹 한바탕 짖어 보라고 놀리기나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버릇없는 농담을 할 법이야 있습니까. 속은 어디로 갔든 좋은 말로다 자손이 번창하고 가운이 융성하게 되면, 집안 어른 된 이로는 그런 근심 저런 걱정 노상 아니 할 수도 없는 것인즉, 그걸 가지고 과히 상심할 게 없느니라고 위로를 해줍니다.
"아, 여보소?"
윤직원 영감은 남이 애써 위로해 주는 소리는 귀로 듣는지 코로 맡는지 종시 우두커니 한눈을 팔고 앉았다가, 갑자기 긴한 낯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자네, 사람 죽었을 때 염(殮)허넝 것 더러 부았넝가?"
하고 묻습니다. 자기 딴에는 따로이 속내평이 있어서 하는 소리겠지만, 이건 느닷없이 송장 일곱 매 묶는 이야기가 불쑥 나오는 데는, 등이 서늘하고 그다지 긴치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더러 부았으리…… 그런데 말이네……."
윤직원 영감은 올챙이가 이렇다저렇다 얼른 대답을 못 하고 우물우물하는 것을 상관 않고 자기가 그 뒤를 잇습니다.
"……아, 우리 마니래(마누라)가 작년 정월이 죽잖있넝가?"
"네에! 아 참, 벌써 그게 작년 정월입니다그려! 세월이 빠르긴 허군!"
"게, 그때, 수험을 헌다구 날더러두 들오라구 허기에, 시쳇방으를 들어가잖있덩가. 들어가서 가만히 보구 섰으닝개, 수의를 죄다 갈어 입히구 나서넌 일곱 매를 묶기 전에, 어따 그놈의 것을 무어라구 허데마는…… 쌀 한 숟가락을 떠서 맹인 입으다가 놓는 체허면서 천 석이요오 허구, 두 숟가락 떠느먼서 이천 석이요오 허구, 세 숟가락 떠느먼서 삼천 석이요오 허구, 아 이런담 말이네……! 그러구 또, 시방은 쓰지두 않넌 옛날 돈 생평통보(常平通寶) 한 푼을 느주먼서 천 냥이요오, 두 푼 느주먼서 이천 냥이요오, 스 푼 느주먼서 삼천 냥이요오, 이러데그려!"
"그렇지요! 그게 다아……."
올챙이는 비로소 윤직원 영감의 말하고자 하는 속을 알아차렸대서 고개를 까댁까댁 맞장구를 칩니다.
"……그게 맹인이 저승길 가면서 노수두 쓰구, 또 저승에 가서두 부자루 잘 지내라구 그러잖습니까?"
"응 그리여. 글씨 그런 줄 나두 알기넌 알어.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때두 다아 보구 그래서, 츰으루 보덩 건 아니지. 그러닝개 츰 귀경히였다넝 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구…… 아니 글씨 여보소, 우리 마니래만 히여두 명색이 만석꾼이 집 여편네가 아닝가? 만석꾼이…… 그런디 필경 두 다리 쭈욱 뻗구 죽으닝개넌 저승으루 갈라면서, 쌀 게우 세 숟가락허구, 돈 엽전 스 푼허구, 게우 고걸 각구 간담 말이네그려, 응? 만석꾼이가 죽어 저승으로 가먼서넌 쌀 세 숟가락에 엽전 스 푼을 달랑 얻어 각구 간담 말이여!"
올챙이는 자못 엄숙해하는 낯으로 고즈넉이 앉아 듣고 있고, 윤직원 영감은 뻐금뻐금 한참이나 담배를 빨더니 후우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끝을 다시 잇댑니다.
"게, 그걸 보구서 고옴곰 생각을 허닝개루, 나두 한번 눈을 감구 죽어지먼 벨수읎이 저렇기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스 픈허구, 달랑 고걸 읃어 각구 저승으루 가겄거니……! 그럴 것 아닝가? 머, 나라구 무덤을 죄선만허게 파구서, 그 속으다가 나락을 수천 석 쟁여 주며, 돈을 수만 냥 딜이띠려 주겄넝가? 또오, 그런대두 아무 소용 읎넌 짓이구…… 그렇잖엉가?"
"허허, 다아 그런 게지요!"
"그렇지? 그러니 말이네. 아, 내 손으루 만석을 받구, 수만 원을 주물르던 나두, 죽어만지먼 별수읎이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달랑 스 픈 얻어 각구 저승으루 갈 테먼서 말이네…… 글씨 그럴라먼서 왜 내가 시방 이 재산을 지키니라구 이대두룩 악을 쓰구, 남안티 실인심허구, 자식 손자놈덜안티 미움받구, 나 쓰구 싶은 대루, 나 지내구 싶은 대루 못 지내구 이러넝고! 응? 그 말뜻 알어들어?"
"네―네…… 허허, 참 거……."
"그러나마, 그러나마 말이네…… 내가 앞으루 백 년을 더 살 것잉가? 오십 년을 더 살 것잉가? 잘 히여야 한 십 년 더 살다가 두 다리 뻗을 티먼서. 그러니, 나 한번 급살맞어 죽어 뻬리먼 아무것두 모르구 다아 잊어버릴 년의 세상…… 그런디 글씨, 어쩌자구 내가 이렇기 아그려쥐구 앉아서, 돈 한푼에 버얼벌 떨구, 뭇 놈년덜 눈치 코치 다아 먹구, 늙발에 호의호식, 평안히 못 지내구…… 그것뿐잉가? 게다가 한푼이라두 더 못 뫼야서 아등아등허구…… 허니, 원 내가 이게 무슨 놈의 청승이며, 무슨 놈의 지랄 짓잉고오? 이런 생객이 가끔, 그 뒤버틈은 들더람 말이네그려!"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 그런 마음을 먹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다께, 올챙이의 소견이 아니라도, 이건 정말 죽으려고 마음이 변했나 봅니다.
주객이 잠시 말이 없고 잠잠합니다. 올챙이는 무어라고 위로를 해야겠어서 말긋말긋 윤직원 영감의 눈치를 살핍니다.
아무래도 노망이 아니면 환장한 소린 것 같은데, 혹시 그게 정말이어서, 이놈의 영감태기가, 자아 여보소, 나는 인제는 재산이고 무엇이고 죄다 소용없네…… 없으니, 자아 이걸 가지고 자네나 족히 평생을 하소…… 이렇게 선뜻 몇만 원 집어주지 말랄 법도 노상 없진 않으려니 싶어(싶다기보다도) 그렇게 횡재를 했으면 좋겠다고 다뿍 허욕이 받쳐서, 올챙이는 시방 궁상으로 부른 헛배가 가뜩이나 더 부르려고 하는 판입니다. 눈에 답신 고이도록 보비위를 해줄 필요가 그래서 더욱 간절했던 것입니다.
"영감님?"
"어―이?"
부르는 소리도 은근했거니와 대답 소리도 다정합니다.
"지가 꼬옥 영감님께 한 가지 권면해 드릴 게 있습니다!"
"권면?"
"네에, 다름이 아니라……."
"아―니, 자네가 시방 또, 은제치름 날더러 저 무엇이냐, 핵교 허넌 디다가 돈 기부허라구, 그런 권면 헐라구 그러잖넝가? 그런 소리거덜랑, 이 사람아, 애여 말두 내지두 말소!"
이렇게 황망히 방색을 하는 것이, 윤직원 영감은 어느덧 꿈이 깨고 생시의 옳은 정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미상불 여태까지 그 가라앉은 침통한 목소리나 암담한 안색은 씻은 듯이 어디로 가고 없고, 활기 있는 여느 때의 그의 얼굴을 도로 지니고 앉았습니다.
"아니올시다! 원……."
올챙이는 그만 속으로 떡심이 풀리고 입이 헤먹으나, 그럴수록이 더욱 잘 건사를 물어야 할 판이어서 흔감스럽게 말을 받아넘깁니다.
"천만에 말씀이지, 그때 한번 영감이 안 되겠다구 하신 걸 또 말을 낼 리가 있습니까? 그게 무슨 그대지 유익하신 일이라구…… 실상 그때 그 말씀을 한 것두 달리 그런 게 아니랍니다. 다아 학교라두 하나 만드시면 신문에두 추앙이 자자할 것이구, 또오 동상두 서구 할 테니깐, 영감님 송덕이 후세에 남을 게 아니겠다구요? 그래서 저두 머, 지낼말루다가 한번 말씀을 비쳐 본 거지요…… 사실 또 생각하면, 괜히 돈 낭비나 되지, 그게 그리 신통한 소일두 아니구말구요!"
"신통이구 지랄이구 이 사람아, 왜 글씨 제 돈 디려 가먼서 학교를 설시허네 무얼 허네, 모두 남 존 일을 헌담 말잉가? 천하 시러베 개아덜 놈덜이지…… 인제 보소마넌, 그런 놈덜은 손복을 히여서, 오래잔히여 박적을 차구 빌어먹으러 댕길 티닝개루, 두구 보소!"
과연 윤직원 영감은 환장한 것도 아니요, 노망이 난 것도 아니요, 정신이 초랑초랑합니다. 아마 아까 하던 소리는 잠꼬댈시 분명합니다. 따라서 올챙이에게는 미안하나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의 비위를 맞추자던 것이 되레 건드려 논 셈이 되었고 본즉, 땀이 빠지도록 언변을 부려 가면서 공공사업에 돈을 내는 게 불가한 소치를 한바탕 늘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처음 초를 잡다가 만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던 것입니다.
"참 지가 하루 이틀 영감님을 뫼시구 지내는 배가 아니구, 그래 참 저렇게 상심이나 하시구, 그런 끝에 노인이 궐식이나 하시구, 그러시는 걸 뵙기가 여간만 민망스런 게 아니에요. 저두 늙은 부모가 있는 놈인데, 남의 댁 어룬이라구 그런 근경 못 살피겠습니까……? 그래 제 깐에는 두루 유념을 하구 지내지요. 이건 참 입에 붙은 말씀이 아니올시다!"
"그렁개루 설렁탕 사준다구 허넝가?"
"온! 영감두……! 이거 보세요, 영감님?"
"왜 그러넝가?"
"지가 꼬옥 맘을 두구서 권면하는 말씀이니, 저어 마나님 한 분 얻으시는 게 어떠세요?"
윤직원 영감은 대답 대신 히물쭉 웃으면서 눈을 흘깁니다. 네 이놈 괘씸은 하다마는 그럴듯하기는 그럴듯하구나…… 이 뜻이지요.
올챙이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없는 모가지를 늘여 가지고 조촘 한 무릎 다가앉습니다.
"거, 아직 기운두 좋시구 허니, 불편허신 때 조석 마련이며, 몸 시중이며, 살뜰히 들어 주실 여인네루, 나이나 좀 진득헌 이를 하나 구허셔서, 이 근처 가까운 데다가 치가나 시키시구 허시면, 아 조옴 좋아요? 허기야 따님까지 와서 기시구 허니깐 머어 범연하겠습니까마는, 그래두 잘 하나 못 하나 마나님이라구 이름 지어 두구 지내시면, 시중 드는 것두 훨씬 맘에 드실 것이구, 또오 아직 저엉정하시겠다 밤저녁으루 적적하시면 내려가서 위로두 더러 받으시구, 헤헤!"
"네라끼 사람!"
올챙이의 말조가 매우 근경속이 있고, 더욱이 그 끝에 한 대문은 썩 실감적이고 보매, 윤직원 영감은 눈을 흘기고 히물쭉 웃는 것만으로는 못 견디겠던지 담뱃대를 뽑는 입에서 지르르 침이 흘러내립니다.
"헤헤…… 거, 좋잖습니까……? 그러니 여러 말씀 마시구, 마나님 구허실 도리를 하십시오, 네?"
"허기사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까놓고 흉중을 설파합니다.
"……자네가 다아 참, 내 근경을 알어채구서 기왕 말을 냈으니 말이지, 낸들 왜 그 데숙이에 서캐 실은 예편네라두 하나 있으먼 졸 생각이 읎겄넝가……? 아, 그렇지만, 그렇다구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즘잔찮게 여편네 읃어 달라구 말을 낼 수야 없잖넝가? 그렇잖엉가?"
"아, 그야 그러시다뿐이겠습니까! 그러신 줄 저두 아니깐……."
"글씨, 그러니 말이네…… 그런 것두 다아 내가 인복이 읎어서 그럴 티지만, 거 창식이허며 또 종수허며 그놈덜이 천하에 불효 막심헌 놈덜이니! 마구 잡어 뽑을 놈덜이여. 웨 그렁고 허먼, 아 글씨, 즈덜은 네―기, 첩년을 모두 둘씩 셋씩 읃어서 데리구 살먼서, 나넌 그냥 그저 모르쇠이네그려……! 아, 그놈덜이 작히나 사람 된 놈덜이머넌 허다못히서 눈 찌그러진 예편네라두…… 흔헌 게 예편네 아닝가? 허니 눈 찌그러지구 코 삐틀어진 예편네라두 하나 줏어다가 날 주었으먼, 자네 말대루 내가 몸 시중두 들게 허구, 심심파적두 허구 그럴 게 아닝가? 그런디 그놈덜이, 내가 뫼야 준 돈은 각구서 즈덜만 밤낮 그 지랄을 허지, 나넌 통히 모른 체를 허네그려! 그러니 그놈덜이 잡어 뽑을 놈덜 아니구 무엇이람 말잉가?"
속이 본시 의뭉하고, 또 전접스런 소리를 하느라고 그러지, 실상 알고 보면 혼자 지내는 게 작년 가을 이짝 일년지간이고, 그전까지야 첩이 끊일 새가 없었더랍니다.
시골서 살 때에 첩을 둘씩 얻어 치가를 시키고, 동네 술에미가 은근하게 있으면 붙박이로 상관을 하고 지내고, 또 촌에서 계집애가 북실북실한 놈이 눈에 뜨이면 다리 치인다는 핑계로 데려다가 두고서 재미를 보고, 두루 이러던 것은 그만두고라도, 서울로 올라와서 지난 십 년 동안 첩을 갈아센 것만 해도 무려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기생첩이야, 가짜 여학생첩이야, 명색 숫처녀첩이야, 가지각색이었지요. 모두 일년 아니면 두서너 달씩 살다가 갈아 세우고 하던 것들입니다.
그래 오던 끝에, 재작년인가는 좀 그럴듯한 과부 하나를 얻어 바로 집 옆집을 사가지고 치가를 시키면서 쑬쑬이 탈없이 일년 넘겨 이태 가까이 재미를 본 일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서른댓이나 되었고, 인물도 그리 추물은 아니고, 신식 계집들처럼 되바라지지도 않고, 그리고 근경속 있고 솜씨 얌전하고 해서, 참 마침감이었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그대로 병통 없이 말치 없이 자기 종신토록 자알 살아만 주면 마지막 임종에 가서, 그 집하고 또 땅이나 벼 백 석거리하고 떼어 주어 뒷고생 않게시리 해주려니, 이쯤 속치부를 잘 해두었었습니다.
아 그랬는데 글쎄, 그 여편네만은 결코 그러지 않으려니 했던 게, 웬걸,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남의 첩데기짓을 하느라고 끝내는 요게 샛밥을 날름날름 집어 먹다가, 필경은 이웃집에 기식하고 있는 젊은 보험회사 외교원 양반과 찰떡같이 배가 맞아 가지고는 어느 날 밤엔가 패물이야 옷 나부랑이를 말끔 쓸어 가지고 야간도주를 해버렸었습니다.
늙은 영감한테 매달려, 얼마 아니 남은 인생을 멋없이 흐지부지 늙혀야 하느냐, 혹은 내일은 삼수갑산을 갈 값에 셰퍼드 같은 젊은 놈과 붙어서 지내야 하느냐 하는 그 우열과 이해의 타산은 제각기 제나름이겠지만, 윤직원 영감은 그걸 보고서, 그년이 제 복을 제가 털어 버렸다고, 그년이 인제 논두덕 죽음 하지야고, 두고두고 욕을 했습니다.
그 여편네의 신세를 가긍히 여겨 그랬다느니보다, 보물은 아니라도 썩 마음에 들던 손그릇이나 하나 잃어버린 것같이 신변이 허전하고, 그래 오기가 나서 욕으로 화풀이를 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한번 그렇게, 알뜰한 첩에 맛을 들인 뒤로는 여느 기생첩이나 가짜 여학생첩이나 그런 것은 다시 얻을 생각이 없고, 꼭 그런 놈만 마침 골라서 전대로 재미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잖았으면야 그게 작년 가을인데 버얼써 그 동안 둘은 들고 나고 했지, 그대로 지냈을 리가 있나요.
첩을 얻어 들이는 소임으로, 몇 해 단골 된 곰보딱지 방물장수가, 그 운덤에 허파에서 바람이 날 지경이지요. 일껏 골라다가는 선을 뵐라치면 트집을 잡아 가지굴랑 탁탁 퇴짜를 놓고, 그러면서 속히 서둘지 않는다고 성화를 대곤 해서요.
윤직원 영감으로야 일년짝이나 혼자 지내고 보니, 급한 성미에 중매가 더디다고 야단을 치는 게 무리도 아니요, 그러니 자연 늙은이다운 농엄이나 심술로다가, 첩 아니 얻어 주는 맏아들 창식이 윤주사나 큰손주 종수가 밉고, 미우니까 전접스런 소리며 욕이 나올밖에요.
저희들은 마음대로 골라잡아 마음대로 데리고 살면서, 그러니까 마음만 있게 되면 썩 좋은 놈을 뽑아다가 부친(또는 조부의) 봉친거리로 바칠 수가 있을 테련만, 잡아 뽑을 놈들이라 범연하여 그래 주지를 않는대서요.
윤직원 영감은 혹시 무슨 다른 일로라도, 아들 윤주사나 큰손주 종수를 잡아다가 앉혀 놓고 욕을 하던 끝이면 으레,
"야, 이 수언 불효막심헌 놈덜아! 그래, 느놈덜은 이놈덜, 밤낮 지집 둘셋 읃어 놓구…… 그러먼서 이 늙은 나넌 이렇기…… 죽으라구 내빼려 두어야 옳담 말이냐. 이 수언 잡아 뽑을 놈덜아!"
이렇게, 충분히 노골적으로 공박을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시방 올챙이를 데리고 앉아서 그쯤 꼬집어뜯는 것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올챙이는 보비위삼아 생색을 내자던 노릇이라, 구하다 못하면 썩은 나무토막이라도 짊어져다 들이 안길 값에, 기왕 낸 말이니 입맛 당기게시리 뒷갈무리를 해두어야만 할 판입니다.
"지가 불일성지루, 썩 그럴듯한 놈, 아니 참 저 마나님 하나를 방구어 보지요…… 실상은 말씀이야 오늘 저녁에 첨으루 냈지만, 그새두 늘 그런 유념을 하구설랑 눈여겨보기두 허구, 그럴 만한 자리에 연통두 해보구 그래 왔더랍니다!"
"뜻이나마 고맙네만, 구만두소, 원……."
말은 그렇게 나왔어도, 실눈으로 갠소름하니 웃는 눈웃음하며, 헤벌어지는 입하며, 다뿍 느긋해하는 게 갈데없습니다. 너 같으면 발이 넓어 먹는 골도 여러 갈래고, 또 게다가 주변도 있고 하니까, 쉽사리 성사를 하리라, 이렇게 미더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괜히 그리십니다! 저 하는 대루 가만 두고 보십시오, 인제……."
"더군다나 거 지상(기생)이니 여학생이니, 그런 것이나 어디 가서 줏어 올라구? 돈이나 뜯어 낼라구 허구, 검방지기나 허구, 밤낮 샛밥이나 처먹구…… 그것덜은 쓰겄덩가, 어디……."
"못쓰구말구요! 전 그런 것들은 애여 천거두 않습니다. 인제 보십시오마는, 나이 어쨌든 진드윽허니 한 오십 먹은 과부루다가……."
"네라끼 사람! 쉰살 먹은 늙은이를 데리다가 무엇이다 쓴다덩가!"
"허허허허…… 네네, 그건 지가 영감님 속을 떠보느라구 짐짓 그랬답니다, 허허허허……."
"허! 그 사람 참……."
"허허허허…… 헌데, 그러면 한 서른댓 살이나, 그렇잖으면 사십이 갓 넘었던지……."
"허기사 너머 젊어두 못쓰겄데마는……."
"네에, 알겠습니다. 다아 제게 맽겨 두구 보십시오. 나이두 듬지익허구, 생김새두 숫두루움허구, 다아 얌전스럽구 까리적구 살림 잘허구 근경속 있구…… 어쨌든지……."
마침 골목 밖에서 신문 배달부의 요란스런 방울 소리가 울려 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막고 문득 긴장을 시켜 놓습니다. 호외가 돌던 것입니다.
사변 중일전쟁(中日戰爭)은 국지 해결이 와해가 되고 북지사변으로부터 전단이 차차 중남지로 퍼지면서 지나사변에로 확대가 되어 가고, 그에 따라 신문의 호외도 잦은 판입니다.
물론 호외 그것의 방울 소리가 아무리 잦더라도, 여느 수재나 그런 것이라면 흥미가 오히려 무디어지는 수가 있지만, 이건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변인지라, 호외가 잦으면 잦을수록 사건의 확대와 진전을 의미하는 게 되어서, 사람의 신경은 더욱더욱 날이 서던 것입니다.
호외 방울 소리에 말은 끊기고 주객은 다 잠잠합니다. 제가끔 사변 현실에 대한 제네의 인식능력을 토대삼아, 그 발전을 호외 방울 소리에 의해서 제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어디 또 한군디 함락시킸넝개비네, 잉?"
이윽고 방울 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윤직원 영감이 비로소 침묵을 깨뜨리던 것입니다.
"글쎄요…… 아마 그랬는 게지요."
"거 머, 청국이 여지읎넝개비데? 워너니 즈까짓 놈덜이 어디라구, 세계서두 첫찌 간다넌 일본허구 쌈을 헐라구 들 것잉가?"
"그렇구말구요……! 지나병정이라껀 허잘것없습니다. 앞에서 총소리가 나면 총칼 내던지구서 도망뺄 궁리버텀 하구요…… 그래서 지나는 병정이 두 가지가 있답니다. 앞에서 전쟁하는 병정이 있구, 또 그놈들이 못 도망 가게 하느라구 뒤에서 총을 대구 지키는 병정이 있구…… 도망을 가는 놈이 있으면 그대루 대구 쏘아 죽인다니깐요!"
"원, 저런 놈덜이……! 아―니 그 지랄을 히여 가먼서 무슨 짓이라구 쌈은 헌다넝가? 응? 들이닝개루, 이번으두 즈가 먼점 찝적거리서 쌈이 되얐다네그려?"
"그렇죠. 그놈들이 다아 어리석어서 그래요!"
"아―니 글씨, 좋게 호떡장수나 히여 먹구 인죄견장수나 히여 먹을 일이지, 어디라구 글씨 덤비냔 말이여!"
"즈이는 별조 없어두, 따루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다나 바요?"
"믿다니?"
"아라사를 찜믿구서 그랬다구요!"
"아라사를?"
"네에…… 그것두 달리 그랬으꼬마는, 아라사가 쏘삭쏘삭해서 지나의 장개석일 충동일 시켰대요. 이애 너 일본하구 싸움 않니? 아니 해? 어 병신 바보녀석아, 그래 그렇게 꿈쩍 못 해……? 싸움해라, 싸움해. 하기만 하면 내가 뒤에서 한몫 거달아 줄 테니, 응? 아무 걱정 말구서 덤벼들어라. 덤벼서 싸움만 하란 말이다. 하면 다아 좋은 수가 있으니…… 이렇게 충동일 놀았대요!"
"오옳지, 아라사가 그랬다……! 그런디 아라사가 왜……? 저 거시기 그때 일아전쟁(日俄戰爭)에 진 그 원혐으루? 그 분풀이루……."
"아니지요. 거런 게 아니구, 아라사가 지나를 집어삼킬 뱃심으루 그랬지요!"
"청국을 집어먹을 뱃심이라……? 아니, 그거야 집어먹자구 들라면, 차라리 청국허구 맞붙어서 헌다넝 건 몰라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라사루 말허면 아따 저 무엇이냐, 사회주의를 하는 종족이거든요!"
"거 참 아라사놈덜은 그렇다데그려…… 그놈의 나라으서넌 부자 사람의 것을 말끔 뺏어다가 멋이냐 농군놈덜허구 노동꾼놈덜허구 나눠 주었다지?"
"그렇지요!"
"허! 세상 참……."
"그런데, 아라사는 즈이만 그걸 할 뿐 아니라, 지나두 즈이허구 한판속을 만들려구 들거든요!"
"청국을……? 청국두 그놈의 사회주의라냐, 그 부랑당 속을 맨들어……? 그게 무어니무어니 하여두 이 사람아, 알구 보냉개루 바루 부랑당 속이지 별것이 아니데그려……? 자네는 모르리마넌 옛날 죄선두 활빈당(活貧黨)이라넝 게 있었너니. 그런디 그게 시체 그놈의 것 무엇이냐 사회주의허구 한속이더니……."
"저두 더러 이야긴 들었습니다."
"거 보소 그런디 활빈당이라께 별것 아니구, 그냥 부랑당이더니, 부랑당…… 그러닝개루 그놈의 것두 부랑당 속이지 무어여? 그렇잖엉가?"
"그렇죠! 가난헌 놈들이, 있는 사람의 것을 뜯어먹자는 속으루 들어선 일반이니까요!"
"그렇구말구. 그게 모다 환장 속이여. 그런 놈덜이, 즈가 못사닝개루 환장 속으루 오기가 나서 그런거던…… 그런디 무엇이냐, 그 아라사놈덜이 청국두 즈치름 그런 부랑당 속을 뀌미러 들었담 말이지?"
"그렇죠…… 허기야 지나뿐이 아니라, 온 세계를 그리자구 든다니까요!"
"뭐이? 그러먼, 우리 죄선두……? 아―니, 죄선서야 그놈덜이 사회주의허다가 말끔 잽히가서 전중이 살구서, 시방은 다아 너끔허잖덩가?"
"그렇지만, 만약 지나가 그 속이 되구 보면 재미가 없죠. 머, 죄선뿐이 아니라 동양천지가 모두 재미없습니다!"
"참 그렇기두 허겄네! 청국지어죄선이라, 바루 가까우닝개루…… 거 참 그렇겄네! 그렇다먼 못쓰지! 못쓰구말구…… 아, 이 사람아, 다런 사람두 다런 사람이지만, 나버텀두 어떻게 헌담 말잉가? 큰일나지, 큰일나…… 재전에 그놈의 부랑당패를 디리읎이 치루던 일을 생각허먼 시방두 몸서리가 치이구, 머어 치가 떨리구 허넌디, 아―니 그 경난을 날더러 또 저끄람 말이여……? 안 될 말이지! 천하읎어두 안 될 말이지……! 어―디를! 이놈덜…… 죽일놈덜!"
눈앞에 실지로 원수를 대하는 듯 윤직원 영감은 마구 흥분하여 냅다 호통을 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깐……."
"아 글씨, 누가 즈더러 부자루 못 살래서 그리여? 누가 즈 것을 뺏었길래 그리여? 어찌서 그놈덜이 그 지랄이여……? 아, 사람 사람이 다아 제가끔 지가 타구난 복대루, 부자루두 살구, 가난허게두 살구, 그러기루 다아 하눌이 마련헌 노릇이구, 타구난 팔잔디…… 그래, 남은 잘살구 즈덜은 못산다구, 생판 남의 것을 뺏어다가 즈덜 창사구(창자)를 채러 들어? 응……? 그게 될 말이여……? 그런 놈덜은 말끔 잡어다가 목을 숭덩숭덩 쓸어 죽여야지……! 아 이 사람아, 만약에 세상이 도루 그 지경이 되구 보먼 그 노릇을 어쩐담 말잉가? 응?"
"허허, 그런 걱정은 아니 허셔두 좋습니다!"
"안 히여두 좋다?"
"그럼요!"
"그렇다면 다행이네마넌……."
"시방 지나를 치는 것두 다아 그것 때문이랍니다. 장개석이가, 즈이 망할 장본인 줄은 모르구서, 사회주의하는 아라사의 꼬임수에 넘어가지굴랑…… 꼭 망할 장본이지요…… 영감님 말씀대루 온통 부랑당 속이 될 테니깐두루……."
"그렇지! 망허다뿐잉가……? 허릴읎이 옛날으 부랑당패 한참 드세던 죄선 뽄새가 되구 말 티닝개루……."
"그러니깐 말하자면, 시방 지나가 아라사의 꼬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채리구는 함부루 납뛰는 셈이죠. 그래서 그걸 가만 둬둬선, 청국 즈이두 망하려니와 동양이 통으루 불안하겠으니깐, 이건 이래서 안 되겠다구 말씀이지요, 안 되겠다구, 일본이 따들구 나서 가지굴랑 지나를 정신을 채리게 하느라구, 이를테면 따구깨나 붙여 가면서 훈계를 하는 게 이번 전쟁이랍니다!"
"하하하! 오옳지, 옳여! 인제 보닝개루 사맥이 그렇게 된 사맥이네그려! 거참 그럴듯허구만! 거, 잘 허넌 노릇이여! 아무렴, 그리야 허구말구…… 여부가 있을 것잉가……! 그렇거들랑 그 녀석들을 머, 약간 뺌사대기만 때릴 게 아니라, 반죽음을 시켜서, 다실랑 그런 못 된 본을 못 보게시리 늑신 두들겨 주어야지, 늑신…… 다리뻑다구를 하나 부질어 주어두 한무내하지, 머…… 어, 거 참 장헌 노릇이다…… 그러닝개루 이번 일은 여늬, 치구 뺏구 허넌 그런 전쟁허구두 내평이 달르네그려?"
"그야 다르죠!"
"참 장헌 노릇이여……! 아 이 사람아 글씨, 시방 세상으 누가 무엇이 그리 답답히여서 그 노릇을 허구 있겄넝가……? 자아 보소. 관리허며 순사를 우리 죄선으루 많이 내보내서, 그 숭악헌 부랑당놈들을 말끔 소탕시켜 주구, 그래서 양민덜이 그 덕에 편히 살지를 않넝가? 그러구 또, 이번에 그런 전쟁을 히여서 그 못된 놈의 사회주의를 막어내 주니, 원 그렇게 고맙구 그렇게 장헐 디가 어디 있담 말잉가…… 어 참, 끔찍이두 고맙구 장헌 노릇이네……! 게 여보소, 이번 쌈에 일본은 갈디읎이 이기기넌 이기렷대잉?"
"그야 여부 없죠! 일본이 이기구말구요!"
"그럴 것이네. 워너니 일본이 부국갱병허기루 천하제일이라넌디…… 어―참, 속이 다 후련허다."
이야기에 세마리가 팔렸던 올챙이가 정신이 들어 시계를 꺼내 보더니, 볼일이 더디었다고 총총히 물러갔습니다. 그는 물러가면서, 잘 유념을 하여 쉬이 그 마나님감을 골라다가 현신시키겠다고, 자청 다짐을 두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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