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이 ――C와 나――명월관 지점에 왔을 때는 오후 일곱 점이 조급 지났을 적이었다. 봄은 벌써 반이 가까웠건만 찬바람이 오히려 사람의 살점을 에는 작년 이월 어느 날이다. 우리가 거기 간 것은 우리 사(社)에 처음 들어온 K군의 초대를 받은 까닭이었다.

이런 요리점에 오기가 그날이 처음은 아니다. 처음이 아니라면 많이 다닌 것 같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이번까지 어울려야 겨우 세 번밖에는 더 안된다. 나는 이런 연회석(宴會席)에 참례할 적마다 매우 즐거웠다. 길다란 요리상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술도 마시고 요리도 먹는 것이 좋았음이라. 아니 그것보다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기생을 볼 수 있음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나는 잠깐 나의 경우를 설명해 두고 싶다.

나는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폐학 안할 수 없게 된 사람이다. 그것은 어느덧 이 년 전의 일이다.

나도 공부할 적에는 모범적 학생, 유망한 청년이란 칭찬을 들었다. 기실 그것이 허예(虛譽)가 아니었다. 남은 히비야 운동장에서 뛰고 아사쿠사쿠 놀이터에서 정신을 잃은 때에도 나는 한 자라도 알려 하며 두 자라도 배우려고 하였다. 나는 공일도 모르고 휴일에도 쉬지 않았었다. 나의 유일의 벗은 서책 뿐이었다. 나에게 위안을 주고 오락을 주는 것은 오직 지식뿐이었다. 창틈으로 새어오는 찬바람으로 인하여 잠이 깨어지고 선선한 달빛이 찬물처럼 외로운 베개를 적시는 새벽, 사향(思鄕)의 눈물을 뿌리다가도 갑자기 머리맡에 두었던 책을 집어들었다. 이대도록 나는 공부에 열광적이었다. 공부만 하고 보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내가 숭배하는 영웅 호걸도 따를 수 있다, 그보다 지나간들 무엇이 어려우랴! 나는 까마득하나마 광채찬란(光彩燦爛)한 장래를 꿈꾸었다. 나의 환영(幻影)은 희망의 붉은 꽃이 필 대로 핀 꽃밭 사이로 떠돌았었다. 물론 나는 이 꿈을 믿었다. 이 환영을 참으로 여기었다. 그러나! 심술궂은 운명은 그것을 흥뎅이치고 말았다. 불의에 오촌 당숙(五寸堂叔)이 별세하시니 나는 그의 입후(入後)가 아니될 수 없었다. 팔십이 넘은 종조모(從祖母)님의 홑손자가 되고, 삼십이 남짓한 당숙모(堂叔母)님의 외아들이 되고 말았다. 인제는 집을 떠날 수 없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기는커녕 며칠 시골만 다녀와도 할머님과 어머님이 우시며 부시며 집안이 호젓한 것을 하소연하신다.

꿈은 깨어졌다. 환영은 사라졌다. 광명이 기다리던 앞길에 잿빛 안개가 가리었다. 희망의 불꽃은 거물거물 사라져 간다. 날이 감을 따라 달이 감을 따라 가슴을 캄캄하게 하는 실망의 구름장만 두터워 갈 뿐이었다. 나의 혼은 얼마나 이 크나큰 손실에 오열(嗚咽)하였는지, 신음하였는지! 마침내 돛대 꺾어진 배 모양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게 되고 말았다.

'되는 대로 되어라! 위인이 다 무엇이랴!'

밤새도록 잠 한숨 아니 자고 머릿속에서 온갖 신기루(蜃氣樓)를 쌓아올리다가 그것이 싸늘한 현실에 무참히 깨어질 때 이런 자포자기하는 생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공부할 동안 끊었던 담배도 어느 결엔지 잇게 되었다. 때때로 '화난다! 화난다!'하고는 술을 찾기도 하였다. 술은 본래 못 먹음은 아니니, 어릴 적부터 맛도 모르면서 부친의 잡수실 술을 도둑해서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시었다. 그래서 중간에 그것을 절금(切禁)하였으니 정말 공부에 심신을 바친 나는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담배와 술을 먹게 된 때는 집에 나온 지 한 일 년이나 되었으리라.

술을 먹는대도 요리점에서 버금적하게 먹을 처지가 아니라(그런 처지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그까지는 아직 타락되지 않았었다.) 십 전어치나 이십 전어치나 받아다가 집에서 자작(自酌)할 뿐이었다. 거배소수수편수(擧杯消愁愁便愁)란 격으로 주기(酒氣)는 도리어 홧증을 돕는다. 화 풀 곳은 없다. 어찌 되든 집을 휙 나오는 수밖에 없다.

나오기는 나왔지만 발 돌릴 곳이 없다. 서울서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또 교제를 싫어하는 나이라 어느 친구 하나 없다. 있대도 나의 화풀이 받을 벗은 아니다. 지향 없이 종로 네거리를 헤맬 따름이다. 남산공원이나 올라가서 저도 모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한껏 흥분하여 혼자 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후 내가 ○○사에 들어가자, 오늘처럼 사우(社友)의 초대를 받아 요리점에 간 일이 있다. 거기서 나는 기생이란 물건을 보았다. 여염집 여자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어여쁜 표정, 옷이 몸에 들어붙은 듯이 아름다운 맵시, 교묘한 언사(言辭), 유혹적인 웃음이 과연 그럴 듯하였다. 묵묵히 보고만 있는 나에게도 위안을 주고 쾌락을 주는 것 같았다. 답답하던 가슴이 한결 풀리는 듯싶었다. 싸늘하던 심장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듯싶었다.

'이럴 때에 기생이나 아는 것이 있었으면……'

쓸쓸히 덮쳐오는 환멸의 비애에 가슴을 물어뜯기다가 흔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자(前者)에는 기생이라면 남의 피를 빨고 뼈를 긁어내는 요물(妖物)이고, 사갈(蛇蝎)이라 하였었다. 그런데 드나드는 사람조차 사람으로 알지 않았다. 부랑자, 타락자…… 말못할 인간이라 하였었다.

'유위유망(有爲有望)한 꽃다운 청춘에 무슨 노릇을 못해서 화류계에게 세월을 보낸단 말입니까. 그들은 제 일평생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그 해독을 제 자손에게까지 끼치어 제 가족을 멸망시키고 제 민족을 멸망시키는 사회의 죄인이고 인류의 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연설회에서 얼굴을 붉혀가며 이렇게까지 절규도 한 일이 있다.

그때의 나, 지금의 나, 변한들 어찌 이다지도 변하랴! 인제 길거리에 혹 기생들과 서로 지나치면 문득 가슴이 꿈틀함을 느끼었다. 나는 그 치마 뒷자락을 홀린 듯이 돌아보기도 하고, 슬쩍 코에 앉히는 그 매력있는 향기를 주린 듯이 들이마시기도 하였다.

어느 날 나는 마침내 소위 토벌(討伐)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우(社友) C가 심심파적이란 구실 밑에 놀러를 가자 함이었다.

이 C란 이는 몸집이 작고 짧으며 머리가 곱실곱실한 사람인데, 그 홍갈색으로 반질반질하는 얼굴은 묽은 것, 단단한 것에 다 닳아 보았다, 하는 듯하였다. 나는 그 재사영롱(才思玲瓏)한 농담을 좋아하며 또 나보다 근 이십 년 맏이언만 조금도 연장자로 자처치 않는 데 감복하였었다. 그리고 또 그의 여관이 우리집 가까이 있는 때문에 우리는 자주로이 상종하게 되었다. 그도 몇해 전 주머니가 넉넉할 때에는 화류계에 많이 놀았다 한다. 그의 말을 빌리건대, 그는 화류항리(花柳巷裡)에 백전노장(百戰老將)이었다.

우리는 어둠침침한 행랑(行廊) 뒷골로 돌았다. 나는 어디가 어디인지 잘 알지도 못하였다. 다만 C의 뒤만 따른다. C의 번지(番地) 보는 성냥불이 몇 번 번쩍하였다. 그럴 적마다 나의 가슴에도 희망과 기대가 번쩍이었다. 그래도 '나는 같이 왔소'라고 변명하는 듯이 늘 몇 걸음 물러서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번지는 자꾸 틀리었다. 어느 때는 속깊이 들어갔던 골목을 도로 나오기도 하였다. 헛되이 성냥개비만 허비하였다. 인제 희망은커녕 '웬걸 거길라구' 미리 실망조차 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C가 속히 그 집이 그 집 아닌 줄 알고 딴 데로 갔으면 하였다. 다리가 아프다.

찾던 집을 찾기는 찾았다. C는 대문을 살그머니 열더니 그 안으로 사라졌다.

"이리 오너라."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웬일인지 나의 가슴은 닥쳐올 중대한 일이 기다리는 사람 모양으로 뛰놀았다. 펄떡하고 행랑방 문 여는 소리가 난다.

"기생 있소?"

"기생집 아니야요."

하는 퉁명스러운 말이 끝나자마자 탁 하고 성낸 듯이 문을 닫는 것 같다.

"대단히 잘못했구려. 고런 것, 나하고 오늘 저녁에 만나자 해놓고 고만 이사를 간담."

C는 비위좋게 거짓말을 뿌리고 웃으며 나왔다. 그날 밤 원정은 실패이었다.

"공연히 남을 끌고만 다니지."

도로 그 골목을 걸어나오며 나는 C를 원망하였다.

"똑 보아야 멋인가. 이렇게 다니는 것이 운동도 되고 좋지. 우리가 어디 다니고 싶어 다니나, 하도 갑갑스러워서 그러지."

"그것은 그래."

나는 동의를 하면서도 어째 무엇을 잃은 듯이 섭섭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일곱 점 반이나 되었건만 손들은 오히려 모여들지 않았다. 넓다는 명월관 지점 1호실은 쓸쓸하게 비어있다. 손이라고는 C와 나 외에 우리를 초대한 K와 절친한 친구로 이 연회의 설계자이고 준비원인 D가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들 뿐은 아니다. 우리가 들어올 때 밥을 먹다가 일어선 기생 둘도 있다. 그의 하나는 한번 본 일이 있는 계선(桂仙)이란 것이었다. 그는 이미 기생으로 노(老)자를 붙일 만한 낫세이다. 삼십 가까웠으리라. 그도 한창 당년(當年)에는 어여쁜 자태와 능란한 가무로 많은 장부의 간장을 녹이었다 한다. 어느 이름난 대관을 감투 끝까지 빠지게도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 보는 나의 눈에는 그런 일이 거짓말인 듯싶을 만큼 그의 얼굴은 사람을 끄는 무슨 힘도 없었다. 두 뺨은 부은 듯이 불룩하고 이마는 민 듯이 훌렁하였다. 더구나 그 시들한 살빛에는 벌써 늙은 그림자가 깃들인 것 같다. 하건만 여성으로는 차마 못 들을 음담외설(淫談猥褻)이 날 적마다 그 검은 눈을 스르르 감아붙이며 '흥흥……'하는 콧 소리와 함께 그 뜨거운 입술을 비죽비죽하는 것은 음탕 그것이었다. 거기 옛날 솜씨의 남은 자취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는지!

그렇다고 그에게 나와 고향을 같이 한 명예 있음조차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그가 나를 처음 볼 때, "저이가 아무 지배인의 아우가 아닌가요?"라고 C에게 물었을이 만큼 그는 지금 어느 시골 ○○회사 지배인으로 있는 우리 형님을 잘 알았다. 어린 나를 몇 번 보기조차 하였다 한다. 따라서 그는 기생 중 나를 아는 오직 한 사람이었다.

또 하나는 처음 보는 기생이었다. 나의 주의는 처음부터 그에게로 끌리었다. 공평하게 말하면 그 또한 미인 축에 끼지는 못할는지 모르리라. 이마는 조금 좁고 코 끝은 약간 옥은 듯하였다. 하나 그 어여쁜 뺨볼이와 귀여운 입 언저리가 그런 결점을 감추고도 남았었다. 그것보다 그 어린 우유 모양으로 하늘하늘 앳된 살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적어도 그날 밤에는 그렇게 보이었다.

"너 요사이 나지미 많이 정했니? 그래, 나는 네 나지미 될 자격이 없단 말이냐? 나도 좀 되어 보자꾸나, 응."

몇 만금 부모의 재산을 오입의 구덩이에 쓸어넣고 그대신 몇 곡조 노래와 몇 마디 농담을 얻은 D는 그 퉁퉁하게 살찐 손을 늘여 그 기생의 손목을 잡고 빙글빙글 웃어가며 이런 말을 하였다. 그들은 밥을 다 먹고 상도 친 때이었다.

"네, 좋습니다."

하고, 그 기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정말이냐?"

"네, 좋습니다."

하고, 대어드는 D를 밀치며 문득 소리를 쳐 웃는다. 입술이 귀염성있게 방싯 열리며, 하얀 쌀낟 같은 찬찬한 이빨 사이에 드문드문 섞인 금니가 유혹적으로 번쩍인다. 나의 입술에도 어느 결에 웃음이 흘렀다.

"흥흥, 놀을 팔란 말이지. 에이고, 요런 것……."

하고 D는 손으로 그의 뺨을 치고, 쳤다느니 보다 스치고 물러앉는다.

"이리 좀 오게."

기생을 보면 감질이 나서 못 견디는 C는 애교의 웃음을 흘리며 그 기생을 부른다. 그때 나는 D와 한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슴이 출렁하였다.

"우리가 어째 여태껏 서로 만나지 못했담."

채 앉지도 않은 그의 손을 잡아 당기며 C는 말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무엇?"

"춘심(春心)이야요."

"고향이 어디야?"

"○○이야요."

나는 먼저 그가 나와 한 고을 사람임을 기뻐하였다.

"서울 온지 얼마나 되었나?"

"한 삼 년 되지요."

"이건 참 내가 너무 고루하군."

C는 인제, 내 판이라 하는 듯이 일변 몸을 그리로 다그며 일변 그 독특한 농담을 늘어놓기 비롯하였다.

C의 하는 양은 마치 열 번, 스무 번 보아 친히 아는 듯하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들의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나의 눈에는 요술쟁이가 입으로 오색 종이를 뽑아냄을 구경하는 촌뜨기의 그것 모양으로, 의아(疑訝)와 경탄(驚歎)의 빛이 있었으리라. 보기 사나웁기도 하였다. 부럽기도 하였다. 어찌 하면 저렇게도 말을 잘 붙일 수 있는가. 가느다란 손을 함부로 쥘 수 있는가. 한시 바삐 C의 대신에 내가 그와 말을 하였으면, 손을 쥐었으면 하였다. 선망(羨望)에 타고 있는 나의 눈은 맛난 음식을 먹는 어른의 입만 바라보는 어린애의 그것 같았으리라.

어느덧 C의 팔은 비스듬히 춘심을 안고 있다. 사랑을 속살거리는 애인들처럼 C의 입술은 춘심의 귀에 닿을 듯 말 듯하다.

"에그, 점잖은 이가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하고 춘심은 몸을 빼친다.

"점잖길래 그런 말을 하지. 어린애가 그런 소리를 하던."

하고, C는 제 말솜씨에 만족한 것같이 빙그레 웃었다.

춘심은 나에게 곁눈질하며 빈정대는 듯이 방긋 웃는다. 마침 그 순간인즉, 나도 춘심을 보고 웃을 때이었다. 그것은 C의 재담 때문이 아니다. 아까부터 생각하고 생각하던 춘심에게 건넬 묘한 말을 얻고 나오는 줄 모르게 띠운 웃음이라. 그런데 의외에 두 웃음은 마주쳤다. 어째 내 마음을 춘심에게 꿰뚫려 보인 듯싶어 나는 하염없이 얼굴을 붉히었다. 그래도 나의 가슴에는 기쁜 물결이 술렁하고 퍼지는 듯하였다.

'나를 좋아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나의 피를 끓게 하였다.

우연히 오고간 이 웃음이 둘 사이에 거멀못을 친 듯이 그와 나를 달라붙게 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만 무조건으로 그가 정다웠다. 뜻도 모를 무슨 말이 불쑥 올라온다. 그 찰나이었다. 밀장이 고이 열리며 보얀 얼굴과 푸른 치마가 어른한다. 그 다음 순간에 나는 누구를 향하는지 모르게 한 팔을 짚고 인사하는 기생을 보았다.

그 기생도 계선이보다 나이 많았으면 많았지 어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얼굴이야! 분으로 메우고 메운 보람도 없이 드문드문한 손티, 까뭇까뭇한 주근깨, 깎은 듯한 뺨, 그야말로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었다.

'저까짓 것을 왜 불렀을까.'

나는 속으로 의아히 여길 지경이었다.

"형님! 인제 오세요?"

춘심은 반갑게 부르짖으며 불현듯 몸을 일으킨다. 몹시 시달리는 C로부터 벗어날 핑계 얻음을 못내 기뻐하는 듯이.

C는 아무 일도 없었던 모양으로 시침을 뚝 떼고 그 곱슬곱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제야 손들이 모이지 않음을 깨달은 것같이,

"왜들 오지들 않아."

라고 하였다.

그와 나의 거리는 멀어지고 말았다. 그에게 말을 건넬 절호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장차 수십 명이나 올터이니 그는 어느 틈에 끼일는지! 누구하고 꿈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는지! 나는 하릴없이 뒷전만 보고 있을 뿐이다.

'에이, 못생긴 것?'

나는 마음속으로 애닯게 부르짖었다.

저희들끼리 모인 그들은 이야기 꽃을 필 때로 피게 한다. 연잎에 실비 뿌리듯 속살속살하기도 하며, 때대로 옥반(玉盤)을 깨뜨리듯 때그르르 하고 웃기도 하였다. 나는 어린 듯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선이가 눈으로 나를 가리키며 춘심이더러 무어무어라 하는 듯하였다. 그는 고개를 까딱까딱하기도 하고 슬쩍슬쩍 나에게 시선을 던지기도 하였다.

'내 말 하는가 보다.'하고 나는 눈을 내리감았다. 얼굴에 춘심의 시선을 느끼면서.

사람들은 여덟 점이나 되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서로 맞춰 둔 것같이 한 사람 뒤를 한 사람이 잇고, 그 사람이 채 자리도 잡기 전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었다. 어느 결에 갈고리란 갈고리는 모자와 외투가 빈틈 없이 걸리었다.

"인제 기생 소리나 한 마디 들읍시다."

한동안 늘 하는 인사와 무미한 대화가 끝나고 잠깐 무료한 침묵이 있은 후, 누군가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소리가 찬성을 한다.

"그래 볼까요."

그런 일이면 내가 도맡았지요, 하는 듯한 얼굴로 D는 말을 하였다. 그의 쉰듯한 소리는 보이를 불렀다. 퉁명스럽게 꾸짖는 듯이 보이에게 분부하기 시작하였다. 가야금이 들어왔다. 장구가 들어왔다. 갈강갈강한 보이는 가야금을 잊기도 하고, 장구가 소리가 잘 아니나기도 하여 D에게 톡톡히 꾸중을 모시었다. 하건만 그 보이는 '그런 야단이야 밤마다 만납니다.'하는 듯이 그 하이칼라한 머리를 긁적긁적 하고 허리를 굽실하며 연해 연방 "네, 네."하고 시키는 대로 하였다.

먼저 춘심이가 가야금을 뜯기로 하였다 그는 나에게 등을 향하고 줄을 검사하기 비롯하였다.

"저 계집애가 왜 돌아앉어!"

나는 홧증을 내었다. 그대도록 나는 그의 얼굴을 보기나마 언제든지 계속하고 싶었다.

줄도 골랐고, 저희들끼리 문의도 끝난 듯, 우는 듯한 구슬픈 가야금 가락에 맞추어 느리고 순한 춘심의 소리가 섞여 들리었다.

"가자 가자 어서 가, 위수 건너 백로가……."

말소리는 뚝 끊기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리로 몰리었다. 그리고 제각기 고대 음율에 지식이 있어 그 잘잘못을 가릴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지식의 발표로 어느 구절에,

"좋다."

"……기경선자(騎鯨仙子) 간 연후 공추월지단단 자라등 저 반달 실어라 우리 고향을 함께 가……."

노랫가락은 멋있게 슬쩍 넘어간다.

"흥 흥."하는 콧소리가 여기저기 일어난다.

나도 부지불식간에 "흥."하고 말았다. 그 노래는 마치 봄바람 모양으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서슬에 얼어붙은 무엇이 스르르 풀리는 듯싶었다. 그 무엇이 활개를 벌리고 우쭐우쭐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깨가 우쭐우쭐할 리가 있으랴. 이럴수록 그 노래의 임자가 보고 싶었다. 그 표정이 어떨까? 그 입술이…….

'저 맞은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는 척하고 슬그머니 그의 정면에 가 앉을까?'

절묘한 낙상(落想)이다! 그러나 나의 몸은 무엇으로 동여맨 것같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굽힐 적마다 반질하고 빛나는 그의 머리, 연분홍 숙고사 저고리 밑에서 곰실곰실 움직이는 어깨의 윤곽, 들었다 굽혔다 하는 팔, 그리하여야 옳은지 정신을 모으고 있는 듯싶었다.

꾸깃꾸깃한 치마 주름…… 이 모든 것보다도 가야금줄 위에서 남실남실 춤추는 보얀 손가락이 나의 넋을 사르르 말았다. 보면 볼수록 그 모든 것에 미(美)가 더하고 매력이 더하였다. 때때로 정신이 아찔해지며 모든 것이 한데 뒤범벅도 되었다. 그 고사(庫紗) 무늬가 서로 뭉켜지기도 하고 치마주름이 한데로 몰려지기도 하였다. 어슴푸레한 어둠 가운데서 보얀 손가락만 파뜩파뜩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모든 것이 아물아물해지며, 눈 앞에 불꽃이 주렁주렁 흩어진다.

요리상은 들어왔다. 우리는 그것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기생들은 술병을 들고 서 있다.

이윽고 비교적 나이 좀 많은 편의 두 노기(老妓)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춘심은! 그는 잠깐 나의 안계에서 사라졌다. 나는 얼른 좌석을 둘러보았다. 없다! 웬일인가!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아무의 곁에도 아니 앉고 오히려 나의 등 뒤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그때의 기쁨은 여간 몇 천원 잃었던 돈은 찾은 것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찾기는 찾았지만 내 곁에 앉을지 말지는 그래도 무지수이다. 감이 그저 떨어지기를 기다리랴. 못 올라 따겠거든 나무를 흔들기라도 하여야 한다. 그것조차 못할 지경이면 고 밑에 입이라도 벌리고 누워야 한다. 앉히려는 뜻만이라도 보여야 한다. 나는 뭉그적뭉그적 몸을 한편으로 밀어 그의 앉을 자리를 비워 놓았다. 그리고, 이리로 앉아요!란 말을 풍긴 눈치로 몇 번 그를 슬쩍슬쩍 쳐다보았다. 남의 눈치는 빌어먹게도 못 알아준다. 하다하다 못하여 나는 내 곁에 앉은 P에게 눈꿈쩍이를 하였다. 이것은 정말 나의 피땀을 흘린 마음의 노력이었다. P는 춘심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리 앉지!"

대수롭지 않게 한 마디를 던지었다.

그 당장에 그냥 뻣뻣이 서 있었다. 이 짧은 찰나가 나에게는 얼마나 길었으랴! 이윽고 소루룩 코에 앉히는 향기 실린 실바람을 느낄 제, 그는 벌써 사뿐하고 나의 왼편, P의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펄떡펄떡 고동하는 나의 가슴의 장단맞춤으로 나의 한옆을 스치는 그의 옷이 사르르 하고 그윽한 소리를 내었다.

그와 나는 서로 댈 듯 말 듯이 앉게 되었다. 이것은 우연인 듯싶어도 우연은 아니다. 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나의 곁을 취하랴. 여기 무슨 깊은 의미가 있어야 되리라. 암만해도 나에게 마음이 있는가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등 뒤에 서 있을 리도 없을 것이다. 그도 나 모양으로 나를 알고 친하기를 마음 그윽이 갈망하고 있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한 나는 말 할 수 없는 환희(歡喜)를 느끼었다. 자석에 끌리는 쇠끝 모양으로 우리 둘의 사이는 점점 다가들어갔다. 그의 팔과 가장 스치기 쉬웁도록 나의 팔을 슬며시 내려놓이었다. 나의 손은 그 부드러운 살에 대기전에 먼저 그 보들보들한 옷자락에 더할 수 없는 쾌미(快味)를 맛보았다.

나는 술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아니 비우고 견딜건가. 그 힘을 받아야만 나에게로 날아오는 행복을 꼭 잡을 수 있다. 아니라, 그의 뽀얀 손이 재불동하며 방울방울이 잇달아 떨어진 이 술이야말로 행복 그것이 아니랴. 적어도 행복의 구름을 걸러내린 감로수(甘露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말만 하면 속에 잡아넣은 행복이 날아갈까 두려워하는 것같이 그는 묵묵히 부어주고 나는 묵묵히 마시었다. 나의 마음은 실실이 풀어졌다. 그러면서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평일과 달라 술은 좀처럼 취해오리지 않는다. 정신은 잔을 거듭할수록 더욱 말똥말똥해 갈 뿐이었다. 그의 손을 쥐자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자면서도, 그와 말을 하자면서도 나는 헛되이 시선을 딴 데로 돌리어 너절한 남의 말 참례르르 하고 있었다.

술은 열 잔이 넘어갔다. 그제야 조금 얼근한 듯하였다. 나는 담배 하나를 집어들었다.

"성냥 없소?"

라고 나는 그에게 첫말을 건네었다. 그것도 그의 담배붙이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그는 성냥 한 개비를 그었다. 나는 으레 붙여 줄 줄 알고 담배 문 입을 내밀었다. 하나 그는 불을 붙여 주려고도 하지 않고 그것을 나에게 준다. 나는 실망도 하고 섭섭도 하였다. 하지만 붙여 달랄 용기는 없었다. 하릴없이 그것을 받았다 .실망한 빛이 나의 안색에 드러났으리라. 그 다음 순간에 그 앵두빛 같은 입술이 방실열리며 나에게 무어라고 소곤거렸는가! 그는 마치 변명하는 듯이 방긋이 웃으며,

"불을 붙여 주면 아니 된대요."

이것은 더 의외였다.

"어째 그래?"

"저……."

매우 말하기 어려운 듯이 망설이다가 또 한번 방글하고는 말을 이어 어려운 듯,

"저…… 정이 갈린대요. 왜 저. 첫날밤에 신부가 신랑의 담뱃불을 붙여 주면 소박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아요?"

꿈 깥은 말이다! 아무리 부끄럼 많은 도련님이라 한들 이에 미쳐서야 말문이 아니 터지랴!

"그러면 나에게 소박 만날까 걱정이란 말이지!

나는 뚫을 듯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그쳐 물었다.

그는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피하며 의미있게 웃기만 한다. 그 아름다운 입술이란! 모든 것을 잊고 열렬한 키스를 하고 싶었다. 그것은 못하나마 나의 손은 어느 결에 상 밑에서 그의 녹신녹신한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이 말 끝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무슨 말을 하여야 될 것 같다. 하나 아까 생각해 놓은 절묘한 언사는 다 어디로 갔는지! 씻은 듯이 잊고 말았었다.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앵무새 모양으로 남의 늘 하는 말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무엇?"

"춘심이야요."

"고향이 어디?"

"○○이야요."

"나도 ○○사람이야."

"참말씀이야요?"

"그러면 거짓말 할까."

"네……."

하고 고개를 까닥까닥하였다. 그의 손가락이 살금살금 나와 손안을 누르고 있다.

나는 또 술을 한 잔 마시었다.

"자꾸 술만 잡수셔서 어찌 합니까? 진지를 좀 드리지요."

담긴 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밥보시기를 가리키며 그는 자랑스럽게 권하였다.

"나는 괜찮아. 참 밥 좀 먹지."

"싫어요."

그는 고개를 흔든다.

나는 밥보시기를 그의 앞에 갖다 놓으며,

"시장할 것을 그래, 좀 먹어요."

"아니, 먹기 싫어요."

"그러면 무엇 딴 것이라도 먹어야지."

"아까 잔뜩 먹었어요."

우리는 벌써 사랑이 흠씬 든 애인끼리 하는 모양으로 서로 갱각하며 서로 아끼고 있다.

문득 여러 사람들의 웃는 소리가 우레같이 나의 이막(耳膜)을 울린다.

나는 깜짝 하며 고개를 들었다.

모든 시선은 우리에게로 몰리었다. 모든 웃는 얼굴은 이리로 향하여 있다.

"미남자는 다른걸."

"○○야 오죽이 이뻐야지."

"아암, ○○보고 아니 반하면 눈 없는 기생이지."

"둘이 얼굴이 한 판에 박아 놓은 듯이 같은걸."

"저런 부부가 있었으면 좀 어울릴까."

"별 소리를 다하네. 오늘 밤에라도 되면 그뿐이지."

모든 사람은 웃음 섞어 이렇게 떠들었다. 나의 얼굴은 모닥불을 담아 붓는 듯이 화끈 화끈하였다. 그것은 부끄럼의 불 때문뿐이 아니다. 빨간 행복의 불꽃도 방글방글 피고 있었음이라. 그러나 나의 얼굴과 그의 얼굴이 같다 함에는 불복이었다. 살갗이 흰 것은 서로 어금버금할는지 모르리라. 마는 나의 오목한 코 끝과 알맞은 이마 넓이는 그의 그것들이 발 벗고 따를 바 아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의 얼굴은 남에게 그리 뒤질이 만큼 못생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의 눈은 C의 말을 들으면 가을물같이 맑은 데 은은한 정파(情波)가 도는 듯한 것이었다.

"자네에게는 계집이 많이 따르리니."

한 것은 어느 친구가 나를 비평한 말이다. 나도 어째 그럴 듯싶었다. 우선 오늘밤으로 말하면 나는 벌써 춘심이가 나에게 홀린 줄 알았다. 저는 기생으로 예사로이 하는 짓이라도 나에게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그에게 마음이 기울어졌으리라. 하되 그것은 여성으로 그의 아름다움에 끌림이요, 그가 나보다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 여러 사람의 칭찬이 기쁘기는 하였다. 그 기림이 춘심으로 하여금 나의 잘난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점에 있어 더욱 기뻤다. 나는 빙그레 득의양양(得意揚揚)한 웃음을 웃었다.

"둘이 한데만 붙어 앉아 쓰나, 춘심이! 이리로 좀 오게그려."

나의 맞은편에 앉은 M이 그 험상궂은 상에 어울리지 않는 간악한 웃음을 띠며 그를 부른다. 나는 어이없이 M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은 감때 사나운 형이 제 장난감을 보자고 할 때 쳐다보는 어린 아우의 그것 모양으로 그것을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과 또 그것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애원이 섞여 있었으리라.

그는 그리로 갔다. 하건만 나는 의연히 기뻤다. 그가 가도 그저 아니 간 까닭이다. 몸을 일으키는 그 찰나에 그 아름다운 얼굴을 나에게로 돌리며 눈웃음을 쳤다.

"잠시라고 나리 곁을 떠나기는 참 싫어요. 그래도 기생몸 되어 손님이 부르는데 아니 갈 수 없습니다. 눈 한번 깜짝할 동안만 참아 주셔요. 내가 곧 돌아올 터이니……."

그의 추파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될 수 있는 대로 얼른 오게. 벌써 오나!'

나도 눈으로 이렇게 일렀다.

M은 음흉한 웃음을 껄걸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이끌 사이도 없이 안반 같은 제 무릎 위에 올려 앉힌다.

저런! 남에게 저렇게 쉬운 일이 나에게는 왜 그리 어려웁던가?

"이것을 좀 보아. 어떤가?"

M은 춘심의 어깨에 머리를 누이며 나를 보였다.

"어떻기는 무엇이 어때."

나는 태연히 말을 하였다. 마는 나의 귀에도 그 소리가 억지로 지은 것 같이 울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장이를 짊어지고도 분하지 않어?"

"아이고, 참 죽겠는걸."

이번에는 한 불 넘어 보았다. 그래도 자리잡힌 소리는 아니었다. 몹시 가슴이 울렁거린다. 암만 시치미를 떼도 그가 남에게 안긴 것은 보기 싫었다. 스스러운 생각이 무의식한 가운데에도, 또 스스로 부정하면서도 마음 어디서인지 움직이고 있었음이다.

나는 툇마루로 나왔다. M의 노닥거리는 꼴도 보고 있기 무엇하였고 또 먹은 술이 온 몸에 불을 일으켜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싶었음이라.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끔 흘러 듣기지만, 거기는 딴 세상같이 고요하였다.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한참 서서 저도 모르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무심히 고개를 돌린 나는 무엇에 놀란 듯이 가슴이 꿈틀하였다. 나의 앞에 춘심이가 서 있다!

"어디를 가?"

나는 몇 해 못 만나던 절친한 친구와 길거리에서 뜻밖에 마주칠 때 모양으로 반갑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마자 그의 갸날픈 허리는 벌써 나의 가슴에 착 안겨 있었다. 그 날씬날씬한 허리란! 자릿자릿 눌리는 가슴이란! 나는 잠깐 황홀하였다.

"집이 어디야?"

나는 슬며시 감았던 팔을 풀며 생각난 듯이 물어 보았다.

"그것은 왜 물으셔요?"

그의 대답은 의외이었다. 번연히 알겠거늘 왜 잼쳐 물을까. 나는 잠깐 할말이 없었다. 그는 제 일신에 관한 무슨 중대한 해결을 기다리는 것처럼 얼굴빛을 바래고 있다.

"그것을 왜 물어!"

나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리었다.

"왜 물으셔요?"

그는 대질러 묻는다.

"나, 놀러 갈 터이야."

나는 간신히 이 말을 하였다.

"놀러는 왜 오셔요?"

그는 또 다그쳐 묻는다.

"자네 보고 싶어서."

하고 나는 다시금 그를 잡아당겼다.

"고만두셔요."

하고 그는 몸을 빼며 냉연(冷然)하였다.

"그것은 또 웬말이야?"

나는 정말 웬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대 나를 보고 싶으실까요?"

"그러면?"

"무얼, 지금 뿐이지. 내일이면 씻은 듯이 잊으실 걸, 뭐."

하고 원(怨)하는 듯 한(恨)하는 듯 눈을 깔아 메친다. 나는 꿈을 처음으로 깨인 듯하였다.

"무슨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부드럽게 그를 위로하였다. 이 말은 결코 겉을 바르는 말이 아니었다. 충정(衷情)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흥, 그럴 리가 있나? 나도 많이 속아보았습니다."

그는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서더니 나를 떠나 한 걸음 두 걸음 생각 깊은 발길을 옮기었다.

나는 무엇을 잃은 듯이 망연(茫然)하였다.

별안간 그는 발길을 휙 돌이킨다. 방긋 쏟아지는 듯한 웃음을 흘리고 선뜩 나의 앞에 들어서자, 그 다음 순간에는 그의 향기롭고 보들보들한 두 팔이 나의 목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입술이 나의 귀를 스칠 듯 말 듯하며,

"참말 나를 아니 잊으실 터이야요?"

라고 소곤거렸다. 나는 정신이 얼떨떨하다. 한동안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나를 아니 잊으실 터이야요?"

"잊을 리 없지."

"정말?"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꼭 그리하셔요."

란 말과 함께 나에게 달콤한 키스를 주었다.

"다옥정(茶屋町) ○○번지. 우선 이 번지를 잊지 마셔요."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 연회가 끝나거든 우리 같이 가요, 꼭."

하고 가볍게 나의 등을 두드린 후, 저 갈 데로 가 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그대로 있었다. 미끈하고 그의 팔이 감기었던 목 언저리에는 무슨 기름이 발라 있는 듯싶었다. 그리고 나의 입술은 무슨 벌리게 기어다니는 것같이 근실근실하였다.

나는 웃음을 띠고 방에 돌아왔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듯싶었다. 방바닥이고 천장이고 전등불이고 모두 나에게 웃음을 건네는 듯하였다.

말끔 좋은 사람들 뿐이라 하였다. 이런 좋은 사람들에게 술 한잔 아니 권할 수 없다 하였다. 나는 차례로 술을 권하였다. 나도 그 돌려주는 술잔을 사양치 않았다.

나는 잔뜩 술이 취하였다. 그 뒤에 들어온 춘심은 인제 나의 것이 되고 말았다. 세상 없는 사람이 불러도 나는 그를 놓지 않았다. 그가 기어이 가야 될 사정이면 둘이 같이 갔었다.

나는 주정을 막 하였다. 간에 헛바람 든 사람 모양으로 연해 연방 웃었다. 술을 더 가져오라고 보이를 야단도 쳤다. 할 줄도 모르는 노래를 고함치기도 하였다. 그 넓은 방을 좁다고 휘돌며 춤도 추었다. 내 마음대로 놀았다. 남이야 싫어하든, 미워하든, 비웃든, 욕하든 나는 조금도 관계치 않았다. 사(社)의 윗사람이 몇 있었지만 그것들! 다 초개(草芥)같이 보였다.

내가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 잠을 깬 때는 눈을 부시게 하는 햇살이 문살을 쏘고 있었다.

어찌 된 셈인가? 지금껏 나의 가슴에는 춘심의 온유한 몸이 녹신거리고 있었는데……여기는 암만해도 그의 방은 아니다. 확실히 우리 집이다. 보라! 윗목을 빽빽하게 차지한 옷걸이 삼층장, 반닫이, 그 위에 이불 싼 모란꽃을 수놓은 물 날은 야단보(褓), 문갑 위와 밑과 가운데, 뒤숭숭하게 채이고 꼽히고 누인 책자들, 틀림없이 우리집 건넌방이다.

흐릿한 기억 가운데 문득 어젯밤 헤어지던 광경이 떠올랐다.

몇 아니 남은 손들도 외투를 입으며 모자를 찾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춘심을 놓지 않았다. 언제든지 언제든지 그의 곁을 떠나기가 싫었음이라. 하거만 딴 기생들이 제 망토도 있고 셈도 따질 요리점 사무실로 사라질 제 춘심도 아니 일어설 수 없었다.

"어디를 가?"

"사무실에 가야지요."

"나하고 같이 가!"

나는 어린애 모양으로 울 듯이 부르짖었다. 그에게 매달렸다. 마치 한번 놓치면 다시 못 잡을 행복을 붙드는 것처럼. 그런 때 어찌 구두 생각이 났던지 그것을 불현 듯 집어들어 그의 뒤를 따르려 하였다.

"창피합니다. 남이 흉을 봅니다. 대문에서 기다릴 것이니……."

그는 이렇게 타이르자 나를 내버리고 그림자를 감추었다.

그때 시커먼 실망이 납덩어리같이 나의 가슴을 내리지르던 것을 지금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하여 집으로 돌와았는지는 까맣게 모를 일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으나 자리끼는 벌써 거기 없었다.

"물! 물 주어!"

라고 나는 성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황망한 발소리가 마루를 울릴 겨를도 없이 아내가 물그릇을 들고 들어온다. 김이 무럭무럭 남은 미리 덥혀 두었음이라.

"무슨 술을 그렇게 잡수신단 말입니까? 왼 골목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치고 대문을 부서지라고 짓두드리고…… 야단야단해도 그런 야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살 듯이 물을 들입다 켜고 있는 동안, 아내는 빨간 물 묻은 손을 요 밑에 넣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내 원 참."

아내는 말을 이어,

"마루에 그냥 털썩 드러누우시더니 세상 일어나시나요, 죽을 애를 써서 근근히 방에 모셔다 놓으니 외투를 입으신 채 쓰러지시지요."

나는 묵묵히 물만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론 또 무척 성가셨구나 하였다.

나는 가끔 이런 괴로움을 그에게 끼치었다. 일뿐 아니라 가슴이 답답할 때, 비위가 틀릴 때 홧증풀이도 그에게 하였다. 섧은 사정도 그에게 하였다 사회에서 받는 나의 불평, 가정에서 얻은 나의 울분, 또는 운명에 대한 저주를 말끔 그에게 퍼부었다. 그가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인 듯 나는 그를 들볶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싫다 아니 하였다. 쓰리다 아니 하였다. 달게 받아 주었다. 까닭없이 재우치는 애닯은 슬픔으로 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뿌릴 때,

"왜 이리 하셔요, 왜 이리 하셔요?"

하는 그의 눈물 젖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슬픔을 거두어 주었다. 또는 공연히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심사를 어찌 할 수 없어 억메를 덮어 죄없는 그를 야단을 치다가도 그 뚜렷뚜렷한 눈치를 보면 어느 곁엔지 마음이 가라앉음을 깨달았다. 여기, 나는 불충분하나마, 불만족하나마 위자(慰藉)도 얻고 행복도 스러웠다. 만일 그가 없었던들 나는 벌써 타락의 심연에 온 몸, 온 마음을 다 빠뜨리고 지금쯤은 헤어날 수도 없게 되었으리라.

"에그, 물 그만 잡수셔요 진지가 벌써 다 되었는데."

하고 그는 물그릇을 앗는다. 그리고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그의 눈과 입술에 문득 의미있는 웃음이 흐른다.

"어젯밤에 날더러 무어라고 한줄 아셔요?"

"무어라 하기는!"

"그래 모르셔요?"

"난 몰라."

"그런데 어젯밤에 어디 가셨습니까?

"명월관 지점에 갔었지."

"기생이 왔지요?"

"그럼. 왜그래."

"그렇지요?"

하고 아내는 복받쳐 나오는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이 진저리를 치며 웃는다. 사르르 감기는 눈초리에 가는금이 잡히고 연한 뺨살이 광대뼈 위로 토실토실하게 밀리자, 장미꽃 봉오리가 피어나듯, 입술이 둥글고 오목하게 열리는 것이 그의 웃음의 특징인 동시에 또 그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이었다.

"왜 말을 아니하고 웃기만 웃어?"

아내는 웃음에 막히어 말을 이루지 못하면서,

"저어……하하하하……아이고, 참 우스워 죽겠네…… 저어……."

"저어……하지 말고 말을 해요."

"저어……하하하하, 한참을 주……주무시고 부시시 일어나시길래 외투와 두루마기를 벗겨 드리려니까, 하하하하."

하고 그는 이불 위에 무너지며 어깨를 들썩거리고 한참 웃음에 잦아진다.

나도 멋모르고 빙그레 하며,

"말을 해요, 말을 해요."

하였다.

이윽고 아내는 웃음의 파문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당홍(唐紅)빛 같은 얼굴을 들어니,

"저어…… 눈을 감으신 채…… 하하하하. 나, 나를 한 팔로 스르르 잡아당기시며, 하하하하, 춘심이, 춘심이 하시겠지요. 하하하하…… 그 춘심이란 게 누구이야요."

나는 가슴이 뜨끔하였지만 무안 삭임으로 빙그레 웃으며,

"춘심이가 춘심이지."

하고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나 별안간 춘심의 아름다운 모양이 선명한 활동사진 같이 선뜩 머리에 비쳤다. 환영에 달뜬 나의 시각이 아내의 옥양목 저고리에 붉은 광선이 사르르 덮임을 느끼자, 어느 결엔지 연분홍 고사(庫紗)저고리 입은 춘심이가 연기같이 나의 앞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이렇게 생각하셔요?"

하는 아내의 말을 들은 때에도 나의 눈은 꿈꾸는 사람 모양으로 멀뚱멀뚱하였다.

그 다음날 밤에야 나는 C와 함께 춘심이의 집에 갔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한시가 바빴지만 다방(茶坊)골에 서투른 나는 C의 힘을 아니 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집 번지는 내가 알았다. 취중에 오직 한 번 들은 그 숫자가 야릇하게도 나의 기억에 새긴 듯이 남아 있었다. 다만 그 집 찾기가 곤란도 하고 또 이런 명예롭지 못한 방문을 혼자 하기 싫어서 C를 힘 입으려는 것이다.

어젯밤에도 두 번이나 C를 만나려 하였지만 출입이 잦은 C는 여관에 붙어 있지 않았다.

오늘도 저녁 일찍이 서둘렀으되 긴치 않은 C의 방문객으로 말미암아 나는 지리한 시간을 꿀꺽꿀꺽하고 아니 참을 수 없었다. 기쁜 기대와 달디단 희망에 눈을 번쩍이면서, 가슴을 뛰면서 길에 나선 지는 아홉 점이 훨씬 지난 때였다.

그의 집은 광쳔교(鑛泉橋)에서 남쪽 개천을 끼고 한참 올라가다가 조그마한 다리 놓인 데서 가운데 다방골로 빠지면 오른편 셋째 골목 막다른 집이었다. 이 근처에 발이 넓은 듯한 C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발견하였다.

대문 안으로 쑥 들어선 우리는 흘러나오는 가야금 가락에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그날 밤 춘심의 가야금 뜯던 채화 일폭(彩畵一幅)이 다시금 어른하고 나의 안계를 스처간다. 그 남실남실하는 보얀 손가락이……그 반질반질하는 까만 머리가…….

거침없이 중문을 열어 젖힌 C는 점잖게,

"이리 오너라.."

고 불렀다. 그 소리가 떨어짐에 따라 묵은 악기도 울림을 멈추었다.

"누구십니까?"

안에서 고운 목소리가 묻는다. C는 성큼성큼 마당으로 사라졌다. 나는 오히려 하회를 기다리며 어둠침침한 중문칸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윽고,

"들어와요."

란 C의 부름을 듣자, 환희의 전율이 찬물처럼 온 몸에 쭉 끼치었다. 춘심이가 있구나 하였다. 나는 야릇한 불안을 느끼며 허청허청 발길을 옮기었다. 열린 미닫이 사이로 밝게 흐르는 광선을 막을 듯이 서 있던 처녀 하나이 이상한 눈치로 나를 살피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올라오셔요"

하였다. 얼른 방안을 엿보았다. C는 벌써 방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춘심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안방에서나 옆방에서나 또는 나 못 본 어슴푸레한 구석에서나 춘심의 튀어나옴을 마음 그윽히 바라면서 나는 구두를 끌렀다.

"형이 어디 갔어?"

C의 이 말에 나의 어리석은 바람은 속절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나의 마음은 밤같이 어두웠다.

"유일관(唯一館)에 갔습니다."

하고 그 동기(童妓)는 놀랐다는 듯한 눈으로 묻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끝 모를 검은 빛에 맑은 광채가 도는 그의 눈매는 더할 수 없이 예뻤다. 열 대엿이 될락말락하리라. 봉울봉울 피려는 모란꽃처럼 그의 얼굴은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나는 묵묵히 숨소리만 씨근거렸다. 웬일인지 낯이 화끈화끈 타는 듯하였다. 하염없이 시선만 이리저리 던지었다. 세간은 그리 화려하다고 못하리라. 옷걸이와 이불 얹히인 커다란 궤와 일본제 경대뿐이었다. 그러나 기생방에만 있는 고혹적(蠱惑的) 색채는 모본단 보료에도, 비스듬히 세운 가야금에도 농후하게 흘러 있었다. 한편 벽 알맞은 자리에 그림틀에 넣은 양화(洋畵)한 장이 걸렸다. 그것은 푸른 연기가 어린 듯한 산 윗머리를 흰 구름이 휘휘 둘렀는데, 수풀 우거진 곳에 푸른 리본 같은 강이 흐르며 그 위로 몽롱한 달빛 안은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남녀 단둘을 싣고 소리없이 떠나간다. 그것으로 나는 그만 주인의 취미가 고상하고 풍아(風雅)한 줄 짐작하였다.

"애써 오니 어째 없담!"

이윽고 나는 자탄 비슷하게 이런 말을 하였다. 농담같이 하려던 것이 어째 절망의 가락을 띠고 있었다. 벌린 입도 웃음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어, 형님한테 기별할까요?"

나를 살피기를 마지 않던 금심(琴心)――이것이 그 동기의 이름이다――은 인제 알았다 하는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무얼 그럴 것은 없지."

C는 거절하였다.

"아니, 저어……형님이 가실 때 손님이 오시거든 알게 하라 하였어요."

"어떤 손님이?"

나는 가슴을 뛰며 물었다. 그는 조금 망설거리다가,

"저어 오늘 오실 손님이 계시니 그 손님이 오시거든……."

'나를 가리킴이 아니로군.'

나는 번개같이 생각하였다.

"우리는 오늘 온다고 한 손님이 아니야. 온다고 하기는 그저께 밤이야."

나는 비웃었다.

"네, 그렇습니까?"

하고 금심은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이다가 무엇이 생각난 것같이,

"참, 저어 그저께 밤에 손님 두 분이 오신다고 식도원(食道園)에서 인력거꾼이 왔습니다."

나는 더욱 실망 안할 수 없었다. 명월관에서 놀았거늘 식도원이 또 웬말인가!

"식도원에서!"

나는 부지 불식간에 부르짖었다.

"우리는 명월관에서 놀았는데…… 그러면 딴 손님이 든 게지."

금심은 놀라 나를 바라본다. 그 큼직하게 뜬 눈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듯하였다.

"어째 그럴까, 우리 형님이 기다린 손님은 분명히 이분인데…… 그러면 내가 잘못 들었던가. 식도원이 아니라 명월이던가."

"그래 손님이 왔던?"

나의 말은 급하였다.

"아니야요. 형님 혼자만 왔어요. 와서 손님 두 분이 아니 왔더냐고 묻습디다."

모를 일이다! C의 말을 들으니 나보다 먼저 나온 그는 문가에서 춘심을 만났는데 춘심의 말이, 준비가 다 있으니 나와 같이 오라고 신신 부탁하였다 한다. (이 준비란 것은 곧 다른 기생을 C에게 붙여 주겠다는 뜻이다. ) 두분 손님이라 함은 곧 나와 C를 지칭함이리라. 그러하지만 식도원 운운(云云)은 풀 수 없는 의문이다.

"그날 밤에 매우 우리를 기다린 모양이지?"

돌아오면서 나는 C에게 물어 보았다.

"기다리긴 무엇을 기다려."

C는 이 천치야, 하는 어조로,

"무엇 보고 기다리겠소. 오! 얼굴이 어여쁘니까. 얼굴을 뜯어먹고 사나, 논 팔고 밭 파는 놈이라야지. 서울 온 지 삼 년이나 되는 년이 나지미가 자네 하나 뿐일까."

비 맞은 옷 모양으로 풀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기막힌 일이나 본 듯이 모자와 두루마기를 되는 대로 휙 집어던지고는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잠깐 눈썹을 찡그리고 웃옷과 모자를 걸었다.

"진지 좀 아니 잡수시렵니까?"

이윽고 아내는 나에게 물었다.

"아까, 나 저녁 먹었는데……."

"어디 한 술이나 떴습니까…… 요사이는 도무지 진지를 못 잡수시니 무슨 까닭이야요. 살이 내리시고…… 신색이 그릇되시고…… 왜 기운 하나 없어 보입니까? 춘심인지 무엇인지 그로 하여 그럽니까?"

이런 말을 하며 아내는 근심스러운 가운데도 비웃는 빛을 보이었다.

참말 술이 양에 넘친 탓인지 뜬사랑에 멍든 탓인지 그 후부터 무슨 가시나 난 것같이 혀가 깔끔깔끔하여 밥이 달지 않았다.

꿈자리조차 뒤숭뒤숭하였다. 잠이 깨면 흔히 온 요, 온 이불이 축축하게 땀에 젖어 있었다.

물에 빠진 듯한 몸을 오한에 떨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도 하였다.

"내 말이 옳지요? 춘심이 때문이지요."

하고 아내는 어서 그렇다 하라는 듯이 나를 들여다보다가 웃음이 가는 물결이 그 까만 눈썹 언저리를 흔들더니, 고만 자지러져 웃으며,

"그만 일에 진지를 못 잡술 게 무어야요? 탈기할 게 무어야요? 정 그러시거든 한번 가셔서 정을 풀면 그 뿐이지."

나도 웃으며,

"무슨 그것 때문에 그럴라구……."

"안 그런게 다 무어야요?"

"그렇다면 어찌 할 터이요?"

"그러기에 가시란 밖에."

"얻어도 샘을 아니 하겠소?"

나는 아내가 엣날 요조숙녀(窈窕淑女)의 본을 받아 군자(君子)의 애물(愛物)을 시키지 않으리란 평일의 주장을 생각하며 한번 다져 보았다.

"그것은 당신께 달렸지. 양편을 다 좋게 하면 왜 샘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샘을 아니 하겠다는 말이로군."

나는 또 한번 다지었다.

"샘이니 우물이니는 둘째치고 제발 원을 풀고 진지를 많이 잡숫게 해요. 낙심천만한 모양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하고 실인(室人)은 다시금 실소하였다.

"가래면 못 갈까. 지금 당장 갈터야."

그러나 지금 당장은 커녕 그 이튿날도 그의 그림자는 다방골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생집에 이틀 밤을 연거푸 감이 무엇도 하거니와 그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 까닭이다. 그날 밤 둘이 놀던 일을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나에게 쏠리었다. 그러나 춘심은 홀린 체도 하고 홀리기도 함을 위업(爲業)하는 기생이다. 명월관 손님도 오라하고 식도원 손님도 가자 하여야 되나니, 마치 그물을 여기도 치고 저기도 쳐서 고기가 걸리기만 기다리는 어부 모양으로 사나이를 낚는 것이 그의 장사이다.

그러면 나에게 준 뜻 많은 추파와 꽃다운 언약도 말끔 그의 맛난 미끼일는지 모르리라. 몇 칸 집을 깝살리게 하고 몇 뙈기 논을 날릴 수단일는지 모르리라. 하나님, 마옵소서!

그러나! 그러나!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못 견딜이 만큼 보고 싶다. 소루룩 코 안으로 기어들던 향긋한 실바람은 오히려 후각(嗅覺)어디인지 남아있었다. 박하를 뿌린 듯한 나의 목은 문득문득 비단결 같은 팔을 느끼었다.

이와(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

시문 독본(時文讀本)에서 읽은 이 시조를 이따금이따금 목을 빼서 청청스럽게 읊조렸다. 또 붓을 들면 이 글을 적기도 하였다. 그리고 춘심이란 두 글자를 뚫을 듯이 들여다보니 정신을 잃었다. 그 두 글자가 굼실굼실 움직여 엄청나게 굵고 크게 되어 시커멓게 눈을 가리기도 하였다. 봄춘 자의 '삐침'과 '파임'이 그의 갸냘픈 팔이 되어 나의 허리에 감기기도 하였다.

그 이튿날이다. 아침을 마치고 궐련 한 개를 피워문 나는 이리저리 마당을 거닐 때이었다.

"편지 받으오."

하는 소리를 듣자, 누른 복장(服裝)이 어른하며 하얀 네모난 종이가 중문 앞에 떨어진다.

그것은 엽서형 서양 봉투이었다.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나는 겉봉을 앞뒤로 뒤치며 한참 보고 있었다. 그러다 사방을 둘러보기가 무섭게 얼른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또 꺼내었다. 또 넣으려다 말고 손에 움켜 쥔 채 어찌 할 줄 모르는 것처럼 왔다갔다 하였다. 문득 미친 듯이 건넌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것은 춘심의 편지였다! 앞장엔 한 자, 한 획이 틀림없이 우리집 번지와 나의 이름을 적었고, 그 뒷장엔 '춘심'라고 쓰이었다.

나는 번개같이 봉투 윗머리를 찢었다. 안에서 그림 엽서 한 장이 나온다. 굽이치는 물결 모양으로 검누른 머리를 좌우로 구불구불 늘어뜨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얇다란 한 오리 벼 자취가 아른아른하게 감긴 풍염(豊艶)한 두 팔과 앞가슴을 눈같이 드러내었는데, 장미꽃 한송이를 시름없이 든 손으로 턱을 괴고 눈물이 도는 듯한 추파에 임 생각이 어린 금발 미인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예쁘게 언문반초(諺文半草)를 날린 그 사연은 아주 간단하였다.

행용이면 수신자의 주소 씨명을 쓸 자리 한복판에 두 줄로 '아무리 기다려도 아니 오시기로 두어 자 적사오니 속 보시지 마시압'이라 하였고, 그 밑칸 글월은 이러하였다.

보고 싶어, 흥응.

왜 오시지 않습니까? 기다리는 제 마음 행여나 아실는지.

지정 일변 아시겠소.

어찌 하면 좋을까요?

이때의 기쁨이야 무어라 할는지! 가슴에 무슨 경기구(輕氣球)같은 것이 있어 나를 위로위로 추슬러 올리는 듯하였다. 길길이 뛰고 싶었다. 날고 싶었다. 모든 사람에게 이 기쁨을 말하고 싶었다. 종로 네거리에 뛰어나가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춘심이가 나에게 편지한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밀장을 화닥닥 열었다.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안방에 있는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이것을 보아요, 이것을!"

아내가 방에 들어서기 전에 무슨 경급(警急)한 일을 말하는 사람모양으로 소리는 헐떡거렸다.

"춘심이가 나에게 편지를 했구려, 편지를!"

하고 온 얼굴이 웃음에 무너졌다.

그날 해지기가 바쁘게 나는 정서(情書)준 이를 찾아 나섰다. 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거의 달음박질하듯 걸음을 재게 하였다. 발이 공중으로 날며 땅에 닿지도 않았다. 그 집 골목에 확 들어서자, 갑자기 걸음이 누구러지며 가슴이 방망이질하였다. '예까지 와 가지고'하고 하마터면 뒤로 돌 발자국을 앞으로 콱 대디디었다. 중문턱을 넘으매 머리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듯이 휭하였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마침 마당에 있던 금심은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하였다.

"너의 형 있니?"

"잠깐 어디 나갔습니다."

하다가, 나의 꼴이 애처로웠던지,

"지금 곧 올 것입니다. 올라가세요."

라고 말을 뒤붙였다. 그의 말마따나 얼마 아니 되어 춘심이가 돌아는 왔다 하건만 그 태도는 의외이었다. 방문을 열고는 아랫목 보료 위에 엉성하게 앉은 나를 보고 시덥지 않게 다만,

"오셨어요?"

란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대면도 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경대 앞에 착 돌아앉는다. 한 번도 못본 사람에게 하듯 서름서름하다. 그날 밤 일은 고사하고 편지 한 것조차 씻은 듯이 잊은 것 같다.

"오늘밤에 해동관(海東館)으로 부르지 않았어요?"

분지(紛紙)로써 얼굴을 요모조모 골고루 닦으며 나를 돌아도 아니 보고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아니."

"그러면 누구일까…… 새로 한 시에 수유를 받았는데…… 나는 나리라고."

"나는 그런 일이 없는걸."

요리점에서 호기 있게 부러 보지 못하고 제 집으로 온 것이 구구한 듯도 싶었다. 창피도 하였다. 바늘 방석에나 앉은 듯이 무릎을 누일락 세울락 하며 팔을 짚어도 보고 떼어도 보았다. 왜 왔던고 후회까지 하였다. 그만 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이 답답한 상태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경대를 살짝 떠난 그는 나의 코 밑에 바싹 다가앉았다. 나는 또 그 말할 수 없는 매력있는 향기를 느끼었다.

"왜 오시지 않았어요? 흥."

하고 한숨을 휘, 쉬더니 나의 눈 속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며,

"편지 보셨어요?"

"응."

"그날 밤새도록 기다리니 어디 와야지."

춘심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두드러진 정이 있어 이 못난이를 찾을라고. 기다리는 년이 미친 년이지…… 잠 못잔 것이 어떻게 앵한지를 몰랐어요."

하고, 이 매정한 놈아, 하는 것처럼 눈을 깔아 메치인다.

"워낙 술이 취해서 여기 온다는 것이 친우들에게 끌리어 집으로 간 모양이야. 아침에 잠이 깨고야 알았어."

라고 나는 변명하였다.

"그저께 밤에 유일관에 갔다가 집에 오니 오셨다겠지요. 놀음에 왜 갔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오시려니 하고 어제는 아무 데도 아니 갔지요. 거짓말? 이 금심이한테 물어 보셔요. 거짓말인가…… 그래 생각다 못해 편지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리집에 갈 적마다 나를 만날 줄 알고 남 모르게 기뻐하던 것과, 진답지 않은 딴 사람만 있고 그리운 내 얼굴을 못 볼 제 얼마나 상심하였으며 얼마나 흥미삭연(興味索然)하던 것을 하소연하였다.

"속없는 사나이도 다 많지."

춘심은 또다시 말을 이었다.

"수(誰)야 모(某)야 다 앉은 자리 정 가는 곳은 한 곳 뿐이라, 이런 소리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희들끼리 네니 내니 하겠지요. 무슨 아리알심이나 있는 듯이 눈을 끔벅끔벅하며 남의 옆구리를 꾹국 찌르겠지요, 하하하하…… 정가는 곳은 이곳 뿐인데."

하고 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춘심 아씨 모시러 왔습니다."

꺽세인 차부(車夫)의 목소리가 우리의 정담(情談)을 깨뜨렸다.

"어디서 왔는가?"

"해동관에서 왔어요!"

춘심의 눈썹은 보일 듯 말 듯 찌푸려졌다. 무엇을 한참 생각하더니 큰 소리로,

"거기 있게, 지금 갈 터이니."

라고 일렀다.

"술잔 값이나 주어 보내지."

나는 대담스럽게 이런 말을 하였다. 그만큼 춘심이를 보내기 싫었다.

"그럴 수 있어요? 미리 수유받은 것이 되어서 그럴 수도 없고……."

하면서 나의 손을 꼭 쥔다.

"어쩌면 좋아!"

라고 안타깝게 속살거리고는 몸을 나에게 쓰러붙였다.

"……무슨 말을 하고, 나, 곧 올터이니 기다리겠습니까?"

"그리 쉽게 올 수 있을라구."

"집안에 우환(憂患)이 있다고 하고서 인사나 하고 선 걸음에 돌아올 터야. 기다리고 계셔요."

"글쎄."

"글쎄가 아니라 꼭 기다리셔요."

"기다리지."

"기다리셔요, 꼭. 아홉 점 안으로는 기어이 올 터이니……."

"그래, 아홉 점까지만 기다리지."

"가시면 일후(日後) 봐도 말도 안할 테야."

"아홉 점만 지나면 간다."

한번 간 춘심은 돌아올 줄 몰랐다. 바람이 문을 찌걱거리게 할 적마다 몇번을 오는가 오는가 하였는지 모르리라. 나는 누울락 앉을락하였다. 일어서 거닐기도 하였다. 마디고 마딘 시간이 만 아홉 점이 지났다. 열 점이 지났다…….

온갖 의혹이 고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과 속이 같을진대 여태껏 아니 올 리 없으리라. 그 정 맺힌 눈치도, 그 안타까운 몸짓도 모두 허위이런가, 가식(假飾)이런가. 나의 생각이란 염두에도 없고 어느 유야랑(游冶郞)과 안기고 안으며 뺨도 비비고 입도 맞추면서 덧없이 깊어가는 밤을 한하는지 누가 알리요! 그런 줄 모르고 눈이 멀뚱멀뚱하게 오기를 고대하는 나야말로 숙맥(菽麥)일다! 천치일다!

내가 여기서 그의 돌아옴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그는 거기서 나의 감을 기다리고 아니 있는지 누가 증명하랴! 암만 해도 오늘 낮 새로 한 점에 놀음 수유를 받으면서 잘 수유조차 아울러 받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볼 때 왜 냉정하였으랴! 냉연함은 충동이었고, 나중의 꿀을 담아 붓는 듯 한 언사와 표정은 지은 솜씨일다!

"해동관에서 나를 부르지 않았어요?"

한 것은 노골적으로 나를 욕보이는 수작이었다. 격퇴하는 칼날이었다.

"괘씸한 것 같으니."

나는 속으로 부르짖고, 있지도 않은 위약자(違約者)를 노려나 보는 듯이 미닫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곧 올 것인데…… 지금 열 점 아닙니까. 반 시만 더 기다려요."

곁에 있던 금심은 따라 일어나 나의 앞을 막으며 간청하였다. 그와 나는 벌써 꽤 친숙하게 되었다.

"고만 갈 테야. 아홉 점까지 기다리란 것을 열 점까지 기다렸으면 무던하지."

하고 나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 옆으로 밀치었다.

"안되어요. 안되어요. 가시다니. 꼭 못 가시게 하라는데……."

하고 금심은 응석하는 듯이 뒤에 매달리며 모자를 벗기려고 애를 쓴다.

"밤새도록 아니 올 걸 뭐."

나는 모자를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웃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안 오기는 왜 안 와요? 두고 보시오. 곧 아니 오는가. 가시면 제가 야단을 맞아요."

하고 애원하는 듯이 쳐다보며,

"잠깐만 더 기다려요. 십 분만, 오 분만……네? 네?"

나는 돌아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그래 너의 형이 나를 꼭 잡으라 하던?"

라고 물어 보았다.

"꼭 못 가시게 하라고……."

"정말?"

"정말이고 말고요."

"가볼 일이 있는데……."

입으론 이런 말을 하였지만 이미 갈 뜻은 없었다. 춘심이가 진정으로 나의 기다림을 바랐거니, 어찌 그의 뜻을 저버리랴!

"볼일이 무슨 볼일입니까?"

금심은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이 중얼거리자 민속하게 모자를 벗겨 들었다. 그가 개가(凱歌)를 부르며 웃고 쓰러지자 나도 빙그레 웃으며 주저앉았다.

춘심은 새로 두 점이 넘어 돌아왔다. 그때까지 나는 견딜성 있게도 거기 있었나니 그렁저렁 열 두 점이 넘고 새로 한 점이 넘으매 기다린 것이 아까워도 갈 수 없었음이다. 치맛자락의 사르르 소리를 듣자, 나는 짐짓 한잠이나 든 것같이 눈을 감았다.

밀장은 소리없이 열리었다. 사람의 넋을 사르는 듯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듯한 향내가 떠돌았다. 저도 모를 사이에 나는 깊이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강렬한 광선에 쏘일 때처럼 감은 눈이 환하며 눈꺼풀이 부신 듯이 떨리었다.

"아이고, 아니 갔구먼!"

하는 속살거림이 들리었다. 그 음향 가운데는 무한한 감사와 무한한 환희가 품겨 있었다. 감은 눈으로도 가만가만히 다가드는 그의 외씨같은 발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금심을 고이 깨워 일으키자 가는 소리로 물었다.

"주무시나?"

"주무시긴 누가 주무셔요. 왜 인제야 와요."

금심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대답을 하였다.

나는 눈을 떴다. 춘심은 벌써 내 곁에 앉아 있었다.

"미안한 말을 어찌 다 할는지."

그는 말을 꺼냈다.

"암만 오려니 어디 사람을 놓아야지요. 손님도 안면 있는 이 같으면 사정도 보건만 아는 이란 단지 하나 뿐이고 모두 모르는 분이겠지요. 집에 일이 있다니 사람을 놓습니까, 몸이 아프다니 사람을 놓습니까? 하다하다 못해 배가 아프다고 엉구덕을 치니까 영신환이랑 인단이랑 들여오라겠지요. 속이 상해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오죽 지리하셨겠습니까?"

하다가 문득 금심을 향하며,

"왜 자리를 아니 깔아 드렸니, 좀 편안히 주무시게나 하지."

하고는,

"나는 가신 줄 알았어요. 이 못난이를 웬걸 기다리실라고 하였어요. 이런 줄은 모르고 오죽 괘씸히 생각하셨겠나 하였어요. 밤을 새워 편지로 사과나 할까 하였어요. 그런데 와 보니……."

하고 기쁨을 못 이기는 듯이 말 끝으로 웃음으로 마치었다.

나는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선잠은 깬 사람같이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그 열렸다 닫혔다 하는 입술과 그럴 적마다 화판(花瓣)이 벌어지며 진주 같은 화심(花心)이 나타나는 모양으로 반짝반짝 드러나는 하얀 이빨이 찡겼다 피었다 하는 그린 듯한 눈썹과 그 밑에서 흐리다가 빛나다가 하는 까만 눈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금침은 펼쳐졌다. 하건만 나는 화석이나 된 것같이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있었다. 어째 무시무시한 증(症)이 들었다. 이불속이 곧 지옥인 듯이 들어갈 정이 없었다. 그만 집으로 갔으면 하였다.

"그만 자십시다. 매우 곤하실 터인데……."

저편도 아주 감개무량한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있다가, 슬픈 음성으로 침묵을 깨뜨렸다.

"응."

"어린애 모양으로 응……."

하고 춘심을 소리쳐 웃으며 별안간 나를 부둥켜 안는다. 나는 마녀에게나 덮친 듯이 머리 끝이 쭈뼛하였다.

둘의 그림자는 이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들우들 떨면서 두 번 아니 오리라 생각하였다.

따라준 독삼탕(獨蔘湯)을 마시고 문간에서 발발 떠는 그와 작별한 나는 인적 없는 쓸쓸한 거리로 나왔다. 식적꼭두는 추웠다. 추움 그것이었다. 쓰라리는 발은 자국자국이 얼어붙는 듯하였다. 귀가 떨어지는 것 같다. 발갛게 단 쇠가 얼굴에 척척 달라붙는 것 같다. 앞으로 휙, 하고 닥치는 매운 바람은 나의 몸을 썩은 나뭇가지나 무엇처럼 지끈지끈 부수며 세포 속속들이 불어 들어가는 듯싶었다.

'다시는 이런 짓을 아니 하리라.'

나는 다시금 생각하였다.

어머님은 고종사촌 혼인 구경 겸 소풍 겸 동래(東萊)에 내려가시고 집에 계시지 않았다. 할머님만 속이면 그 뿐이다. 어젯밤은 여러 친구에게 끌리어 청량사(淸凉寺)에 나갔다가 술이 취해서 못 왔다는 것을 돌차간( 嗟間)에 생각해 내었다.

아랫목에 쪼그리시고 앉아 계시던 할머님은 샐쭉한 입을, 두 가장자리를 둥굴게 호로형(壺蘆形)으로 여시며,

"못된 데만 이니 갔으면. 못된 데만 아니 갔으면."

라고 소곤거렸다.

"늦게 놀고 보니 전차가 끊쳤겠지요. 어디 올 수 있습니까? 하는 수 없이 자고 왔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꾸며 댄 후, 나는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나는 빙으게 웃었다. 머리를 빗고 있던 아내도 빙그레 웃으며,

"인제 속이 시원하지요."

하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은 피로 물들인 것 같았다.

나는 그만 나무둥치같이 곤한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오정(午正) 가까이 되어 간신히 아내에게 깨이어 일어난 나는 냉수로 세수를 하면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社)에 들어가기는 갔으되 모리가 뿌연 안개에 갈린 듯이 몽롱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자고만 싶었다.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또다시 죽은 듯이 잠이 들고 말았다.

그 이튿날 잠을 깨자, 제일먼저 해결해야 될 것은 그것을 어찌 치를까 하는 문제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주머니에서 잘각거리는 몇푼 동전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많지 않은 월급이라도 또박또박 타기나 하였으면, 그믐을 하루밖에 아니 지낸 때이니 그것 수세할 것이야 남았으련만 곤란이 도극(到極)한 ××사는 사원 월급 지급은커녕 신문박을 종이도 못 사서 쩔쩔 매는 판이다. 집으로 말하여도 아들의 방탕에 이바지할 재정(財政)은 없었다. 그러나 몇 십원 장만할 거리는 나에게 있었나니 그것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국제 십팔금 시계이었다. 오랜 것이라 모양이 예쁘지 않은 대신 투박하고 튼튼하며, 다알리아꽃도 앞 뒤 뚜껑에 아로새겼고 기계에 보석조차 박힌 값진 물건이었다.

'이것만 잡히면 사, 오십원이야 얻겠지.'

춘심의 집에 가던 날이나 이제나 힘 미덥게 생각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전당포를 찾아다녔다. 조심 많은 흰 옷 읍은 취리(取利)꾼들은 이 속 모를 물건을 퇴각(退却)하기에 서슴지 않았다. 어느 일본 질옥(質屋 ; 전당포)에서 삼십 오 원에 잡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문제는 전달할 수단이었다.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내고 아주 끈을 떼어 버리려 하였다. 양심의 반성도 맹렬하였거니와 한번 겪어 보니 그리 탐탐스럽지도 않았음이라. 그러나 야릇한 염려가 나로 하여금 주저하게 하였다. 봉투에 넣어 보내는 것은 많은 금액에만 쓰는 격식인 것 같았다. 더구나 그리함은 그와 나의 사이를 이도(利刀)로 싹 베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실망하리라. 실망한 그만치 나를 욕하리라. 영구히 그를 대할 sc이 없으리라, 함에 어찌 차마 못할 일인 듯싶었다. 끊는 데도 톱으로 슬근슬근 나무 쓸 듯 누그러운 방법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꾸며대는 소리이다! 정말 끊으려면 저야 실망을 하든, 욕을 하든, 대할 낯이 없든 꺼릴 것이 무엇이냐.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끊으려면서 아니 끊으려는 것이다!'

나는 마음 어디인지 이런 가책을 느끼었다.

'끊고 아니 끊는 문제보다도 네가 탐닉(耽溺)이 될까 아니 될까가 더 중대한 문제이다. 빠지지만 않으면 그 뿐이 아니냐. 슬근슬근 정을 붙여 둔들 너에게 해로울 것이야 무엇 있나. 울적하고 무료할 제 일시의 위안거리는 꽤 될 것이다.'

다른 소리가 또 이렇게 변명하는 듯하였다. 마침내 이런 결론을 얻었다.

'이왕이면 한번 보기나 하자. 그 역시 사람이니 너무 매몰스럽게 함은 내 도리가 아니다.'

맹숭맹숭한 정신으로야 직접으로 돈을 건넬 수 없었다. 어느 요리집에 데리고 가서 재미있게 놀다가 그도 취하고 나도 취한 후, 그의 품 속에 슬그머니 넣어주리라 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아내는 극렬히 반대하였다. 아내의 태도는 하룻밤 사이에 돌변하였다. 그의 주장을 의지하면 그런 짓은 성공도 하고 재산도 넉넉한 뒤에 할 일이었다. 하룻밤이면 무던하지 이틀 밤부터는 과한 짓이었다. 참말 끈을 떼려 할진댄 춘심을 아니 보는 것이 상책인 동시에 돈을 봉투에 넣어 보냄이 지당한 일이었다. 그리고 돈도 다 줄 것이 아니니 이십 원이면 넉넉하였다. 십 원은 내가 쓰고 오원은 자기가 써야 되겠노라고 하였다.

"무슨 짝에 삼십 오 원 템이나 주어요. 만날 용돈이 없어 허덕지덕 하면서. 나도 한 오 원 있어야 되겠어요. 먹고 싶은 것 좀 사서 먹을 터이야요."

아내는 이렇게 말을 마치었다 태기(胎氣) 있는 지 삼, 사 개월 되는 그날 불가항(不可抗)의 힘으로 도미국이 먹고 싶었다. 물 많은 배가 먹고 싶었다. 나는 이 요구를 아니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돈만 치르고 열 점이 아니 넘어 돌아갈 것을 재삼 타이른 후, 나는 춘심의 집으로 왔다.

"오늘은 오실 줄 알고 아무 데도 아니 갔지."

춘심은 웃는 낯으로 나를 맞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그는 못 알아볼 이만큼 예뻤다. 끊이리 말리 한 것이 죄송할 지경이었다.

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도원으로 나는 춘심을 끌고 왔다.

우리는 한동안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다.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였다. 홀연 춘심은 내 손을 잡아당기어 제 바지를 만져 보이며,

"퍽도 뻣뻣하지요. 따뜻하라고 서양목(西洋木)으로 바지를 해 입었더니만……."

"툭툭한 게 좋구면."

나는 무심한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춘심의 그 말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사치만 일삼는 시체 기생과 다른 저의 질소(質素)를 자랑함일까? 또는 명주 바지를 해 달란 말인가? 마침 그때에 그는 게으르게 기지개를 켠다. 누구에게 절이나 할 것처럼 깍지 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반지 하나 없는 그의 손가락을 보았다. 명월관 지점에서 처음 만나던 때에 나는 그이 손가락에 적어도 두어 개 반지가 끼인 것을 보았거늘! 나는 아까 의심조차 한꺼번에 푼 듯싶었다.

'흥 내가 반지를 해줄까 하고.'

나는 속으로 '요년'싶었다. 그러면서 해주고 싶었다. 이 묵연(默然)의 욕망을 못 채워주는 것이 남아(?)로 치욕인 듯하였다.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의사 표시를 보기 전에 한시바삐 주려던 돈을 주었으면 하였다. 그러나 요리값이 얼마인지 알 수 없어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고만 가요."

그는 후끈후끈 달은 뺨을 나의 어깨에 쓰러뜨리며 나의 마음을 안 듯이 소곤거렸다. 요리값은 8원 얼마이었다.

나는 남은 돈 이십 원을 쥔 주먹을 내어밀며,

"저어…… 이것 담배용에나 보태쓰라."

라고, 나는 목에 걸린 소리로 머뭇머뭇하였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싫어요, 싫어요."

라고 부르짖었다.

"얼마 아니 된다마는 정으로 받으렴. 돈이 아니고 정이다."

"기생은 돈 주어야 정 붙는 줄 언제부터 알았소? 흥, 돈! 돈! 기생년은 정을 정으로 못 찾고 돈으로 찾는담!"

하고 춘심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어찌 할 줄 몰랐다.

"흥, 돈이 정, 정이 돈! 기생년의 팔자란!"

춘심은 또 한번 괴로운 한숨을 토하였다. 애달픈 슬픔에 싸인 그 뜨거운 입김이 마치 나의 심장을 스치는 듯하였다. 그도 사람이다. 여성이다. 시들고 곯아졌을지언정 그의 가슴에도 사랑의 움은 있으리라. 지금 그 말은 인몰(湮沒)해 가는 사랑의 애끓는 신음이리라. 나는 마치 그 사랑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그를 휩싸 안았다. 나는 그의 가슴에 온미(溫味)와 고동을 느끼었다. 마치 그의 사랑이 나에게 이렇게 속살거리는 듯하였다.

'나는 다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봄날과 같이 따뜻합니다. 나의 숨은 아주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맥이 뜁니다. 오오! 나를 덥혀 주셔요! 붇돋워 주셔요!'

그 말에 응하는 것처럼 나의 목소리도 소곤거렸다.

'덥혀 주고말고. 붇돋워 주고 말고. 아아, 불쌍한 사랑의 넋이여!'

우리는 십 분 동안 서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진 뒤에도 우리는 어깨를 겨루고 같이 걸었다. 돌아온 데는 물론 그의 집이다! 그러나 나는 그이 망토 포켓 안에 지폐 두 장을 넣고 말았다.

내일 단성사 ××권번(券番 )――춘심의 다니는 조합――온습회(溫習會)에서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나는 아침 늦게야 그의 집을 떠났다. 그만큼 대담스럽게도 되었다. 그만큼 애련(愛戀)도 깊었다.

오 분전에 잠깐 어디 나갔다 오는 사람같이 신추럽게 돌아왔다. 비난과 책망을 미연에 막기 위하여 엄연히 긴장한 얼굴로 건넌방에 들어왔다. 아내는 없었다. 그 대신 나의 책상 위에 무슨 글발이 있었다. 그것은 아내의 필적이었다――

전일에는 이 몸을 사랑하시옵더니, 이제는 이 몸을 버리시니 슬프고 애달픈 심사 둘 데 없사와 이 세상을 떠나려 하나이다. 이 몸이야 죽사온들 아까울 것 없지마는 다만 뱃속에 든 어린 것이 불쌍코 가련하옵니다.

두루마기는 다리어 장 안에 넣어 두었으니 이 몸 보는 듯이 입으시기 바라나이다. 길이 못 뵈올 것을 생각하온 즉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사외다. 다행히 모진 목숨이 끊어지지 않사오면 다시 뵈옵고 첩첩이 쌓이 섧은 사정을 하소연할까 하옵니다.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정말 유언장을 본 것같이 가슴이 찌르르 하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물론 거짓이고 희롱인 줄이야 모름이 아니로되, 거짓이면서도 거짓이 아닌 듯싶었다. 희롱이면서도 희롱이 아닌 듯싶었다. 혹 사실이나 아닐는지!

"할멈! 아씨 어디로 가셨나?"

나는 마루로 뛰어나가며 허전허전하는 소리를 떨었다.

"몰라요! 왜, 방에 안 계셔요?"

밥을 먹는 듯한 할멈은 제 방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실이나 아닐까?

나는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주방으로, 뒷간으로 허둥거리며 찾아다녔다…… 아내의 그림자는 볼 수 없었다!

"아씨 어디 가셨어? 어서 아르켜 달라니까 그래."

나는 광 속에 들어갔다 나오며 다시금 부르짖었다. 대답은 없고 히히, 웃는 소리가 들리었다. 나는 곧 행랑방 문을 열어 보았다.

"아씨가 여기 계실라구요."

할멈은 온 얼굴에 주름을 밀며 태평건곤(泰平乾坤)으로 빙그레하였다.

마침내 나는 다락 속에 숨은 아내를 발견하였다.

"여기 있구면!"

나는 죽은 이가 살아온 것처럼 반갑게 부르짖었다. 콜룸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때도 이만치 기쁘지 않았으리라. 아내는 웃으며 내려왔다.

"다락이 저승이야?"

우리가 건넌방으로 단둘이 들어왔을 때, 나는 웃으며 그를 조롱하였다. 은닉자(隱匿者)도 방글방글 웃고만 있었다.

"그것은 무슨 짓이람. 유언을 써놓았으면 죽을 것이지 왜 다락에 들어 앉았담."

"왜 모진 목숨이 끊기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 하지 않았어요?"

하고 아내는 해죽 웃었다.

"이번은 그랬지만 한 번만 더 가 보아요. 정말 아니 죽나."

아내의 얼굴빛은 갑자기 바꾸어졌다. 슬픔의 그림자에 그의 얼굴은 그늘지고 말았다.

"참 그렇게 날 속일 줄은 몰랐습니다. 돈만 주고 열점 안으로 오신다 해놓고 아니 오시는데가 어디 있습니까……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암만 기다리니 어디 오셔야지요. 새로 한 점을 치고, 두 점을 치고, 석 점을 치겠지요. 그제야 아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자려도 잠은 아니오고 그년을 쓰러안고 있는 꼴만 보이겠지요…… 참말 애닯고 슬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고만 죽고 몰랐으면 하였습니다. 그래 요 앞 우물에 빠질까도 하였습니다. 내가 한 것에 왜 남의 손을 대이랴 하고 밤중에 일어나 당신의 두루마기를 다렸습니다. 내 손에 옷 얻어 입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하니……."

말을 마치지 못하여 그의 코가 연분홍색을 띄워 실룩실룩 경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마자 두 줄기 눈물이 흰선을 그리며 뺨으로 흘렀다.

뒤미처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또 흐른다. 이것을 보고야 아무리 춘심의 지주망(蜘蛛網)에 감긴 나인들 어찌 그의 고통을 살피지 못하랴. 실행은 안했지만 사(死)를 생각한 것은 해보다도 명백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 것 만큼 그의 속은 쓰렸으리라. 아팠으리라.

"울기는 왜, 울기는 왜."

라고 나는 위로하였다. 그러나 나의 눈도 젖기 비롯하였다. 속눈썹에 뜨거운 눈물이 몰림을 느꼈다.

"또 가시렵니까, 또 가시렵니까?"

이윽고 아내는 울음에 껄떡이며 다그쳤다.

"또 갈 리 있나, 또 갈 리 있나."

말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맹세하였다.

그러나 춘심과 만나자고 기약한 때는 왔다! 그 이튿날 저녁이다. 단성사에 갈까 말까…… 이것은 해결키 어려운 문제이었다. 암만해도 가고 싶다. 가도 무방할 핑계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 단성사는 춘심의 집이 아니다. 공공의 구경터이다. 춘심을 보러 가는게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또 이번 흥행은 ××양악대에 기부하기 위하여 우리 사(社)에서 주최한 것이니 가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누구나 나를 보더라도 춘심을 만나려고 오지 못할 데를 왔단 말은 아니 할 것이다. 아니, 가는 것이 도리어 남으로 하여금 이상하게 여기게 할 것이다. 또 춘심을 만날 기회는 이후라도 많을지니 보아도 수류운공(水流雲空)할 시련이 필요하다.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가 보아야 되리라.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혼자 가기가 무엇하던 차 마침 C가 구령을 가자고 왔다. 나는 즐거이 따라 나섰다.

여덟 점 가까이 되었을 때라 윗층, 아래층 할 것 없이 관람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휘황한 불빛도 담배 연기와 사람의 입김에 흐리멍텅하였다. 나는 압박과 질식을 느끼었다.

나의 눈은 부인석에서 춘심을 찾고 있었다. 눈 코는 분간할 수 없고, 분면(粉面)의 윤곽만 총총히 인형같이 꽂혀 있었다. 모두 춘심이 같으면서 모두 아니었다.

"저 무대 뒤로 들어갑시다. 거기는 난로는 있고 다(茶)도 있으니, 그리고 구경하기도 좋을 터이지."

하고 C는 나를 그리고 끌었다. 거기에는 푸른 것, 붉은 것, 누른 것, 가지가지 의상이 눈을 현란케 하며 모두 비슷비슷한 기생이 우물우물하였다. 특별히 못생긴 것도 없고 특별히 잘난 것도 없었다. 향기는 고만두고 썩어가는 몸과 마음의 송장 냄새가 그곳 일면에 자욱하였다. 나는 일종의 공포의 구역을 느꼈다. 그야말로 계집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 가운데에도 춘심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춘심을 만나믄 어찌 할꼬?'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만나면 또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지나 않을까. 아니, 끌린다 하자. 그러면 보아서 무엇할 것인가. 멀리서 그도 나를 보고 나도 그를 본다. 보고 흩어진다. 쑥스러운 일이로다! 쑥스럽게 아니 하려면 돌아가는 길에 술잔이나 나누어야 되리라. 적어도 인력거에는 태워 보내야 된다. 그러하거늘 나의 주머니에는 벌써 쇠전 한 닢도 없다. 만나면 큰일이다.

"고만 가요."

나는 C한테 턱없는 요구를 하였다.

"왔다가 구경도 아니 하고 가잔 말이야."

춘심이와 탁 마주칠까 하는 공겁심(恐怯心)이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견딜 수가 없다. 몇 번 C를 졸랐건만 그는 내 말에 귀도 기울이려 아니 하였다.

"가고 싶거든 혼자 가구려."

C는 마침내 성가신 듯이 말을 던지고 어느 기생과 이야기하기에 골몰하였다. 나는 하릴없이 또 머뭇머뭇하였다. 그럴 사이에 어재 건너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회색 망토에 까만 하부다이 수건을 두른 춘심이가 어느 결엔지 거기 와 있다! 다행히 나는 저를 보았건만 저는 나를 못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불시에 돌아섰다. 무대로 드나드는 왼편 문이 잠겨 있다. 나가려면 춘심이 곁을 지나야 되겠다! 이야말로 진퇴 유곡이다! 그래도 되든 말든 두판집고 한번 나가나 보자. 나는 그리로 향하고 급히 걸었다. 일평생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을 단행할 때처럼 나는 더할 수 없이 흥분하였다. 그는 나를 보았다! 둘의 거리는 한 자도 아니된다. 마침 지나치는 사람은 많고 그곳은 좁았다. 나는 춘심에게 외면을 하고 사람 틈바구니에 휩쓸리어 쏜살같이 이 난관을 넘으려 하였다. 나 좀 보아요, 하는 듯이 그는 살금살금 나의 외투자락을 잡아당겼다. 그 찰나에 나의 발길이 머뭇하려다 뒷 사람에게 밀리어 휙 빠져 나왔다. 문간을 나섰다.

안심의 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후회가 뒤미쳤다. 범치 못할 죄악을 범한 듯하였다. 얼른 본 춘심의 얼굴은 전보다 십 배, 백 배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그 가야금 병창을 못 견딜이 만큼 듣고 싶었다. 도로 들어갈까? 문지기 보기가 부끄러워 그럴 수 없었다. 발이 뒤로 당길 듯 당길 듯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옮겨졌다. 가슴은 미친 바람에 뒤집히는 바다 모양으로 울렁거리었다. 머리는 벼락에 맞은 듯하였다. 어느 때 시작된지 모르는 빗줄이 얼굴을 때렸건만 찬 줄도 몰랐다. 분화산(噴火山) 모양으로 온 몸이 뭉글뭉글 타는 듯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심리학자는 설명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며칠 동안 발을 끊었다. 알 수 없는 무슨 힘이 나를 끼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 힘은 어디 얼마나 달아나나 보자고 그가 나를 매놓은 실과도 같았다. 달아나면 달아나는 대로 그 실은 풀리었다. 하되 잠깐만 걸음을 멈추면 그 실은 차츰차츰 감기어 뒤로뒤로 이끌었다. 어느 때는 머리올 같이 가늘고 가늘게 되어 이것이 터진다. 고만 이리 와요, 이리 와요, 살근살근 달리며 R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쇠사슬 모양으로 굵고 튼튼하게 되어 이리 안 올 테야, 이리 안 올 테야 위협하는 듯이 쭉쭉 잡아채기도 하였다. 이편에서 버티는 힘이 부족하면 휙 따라가는 수도 있다. 하루는 그 집 골목까지 따라간 일이 있다. 그 집 대문을 보자 '에, 뜨거라.' 하고 나의 넋은 달음박질하였다. 바른 길로 일없이 진고개를 올라갔다. 늘 하는 모양으로 책사(冊肆)에서 책사로 돌아다니다가 저물게야 수표교(手標橋)로 빠져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관원(大觀園)에서 어떤 젊은 신사가 기생 하나를 데리고 나온 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다시금 동요하였나니 그 기생의 걸음걸이며 뒷모양이 하릴없는 춘심이었음이라. 나는 걸음을 재게 하였다, 느리게 하였다 하며 요모조모 살피기를 마지 않았다. 그 나붓이 늘어진 귀 밑머리 조차 천연 춘심이었다. 그럴 즈음에 그 기생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마치 내가 뒤따라옴을 아는 것처럼. 얼굴이 같을 뿐만 아니라 사죄하는 듯한 웃음조차 건네는 듯도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사라지는가 의심하였다. 그러나 내가 쏜살같이 그의 곁을 스치며 모든 것을 꿰뚫어보려는 일별(一瞥)로 그가 춘심이 아님을 간파(看破)하였다. 완전히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일을 금방(金房), 은방(銀房) 앞에서, 전차 정류장에서 한두 번 겪지 않았다. 마치 나의 눈에 춘심이란 색안경이 끼어 도처에 춘심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홀로 시각(視覺)뿐만 아니라 나의 관능이란 관능은 모두 그러하였다. 그 고소한 머릿기름 냄새를 아내의 머리에서 맡기도 하였다. 그의 소리, 살냄새는 벌써 그의 전유물이 아니고 낱낱이 나의 속 깊이 잠겨있는 듯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환원작용으로 본 임자와 어우러지라고 발버둥을 하고 있거늘, 그래도 끈을 떼었거니 하고 있었다. 정말 떼어졌을까? 보라! 어느 연회에서 다시금 만난 우리는 어찌 되었는가! 처음은 서로 눈인사만 교환하였다. 그리고 피차 모르는 사람 모양으로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하건만 연회가 끝나고 요리점 문 밖을 나왔을 제 그의 손은 나의 손을 힘있게 쥐었다.

"어쩌면 그렇게 매정하십니까?"

그는 말을 꺼내었다. 얼마든지 비난을 하라는 것처럼 나는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돌아서신 줄은 나도 알았지만, 그렇게 아니 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 이튿날 망토 속에 돈 이십 원 든 것을 보고 남자란 다 마찬가지다, 이걸로 정을 끊는 구나, 하였지요……."

"아니 무엇 그런 것은 아니야. 저어……."

"남의 말을 좀 들어요…… 이것이 들어 남의 좋은 사이를 갈랐구나 하고 그 지전 두 장을 쪽쪽 찢어버리고 싶었어요. 이다지도 남의 마음 쓰는 것을 모른가 하니 야속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내 마음을 알아줄까…… 편지로나 세세사정(細細私情) 그려 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에라 치워라, 매몰스러운 사나이에게 내 속을 왜 빼앗기리 하고 한 발이나 되게 쓰던 편지를 갈가리 찢어 버렸지요."하고는 그때의 괴로운 한숨을 모아두었다가 인제 쉰다는 듯이 길이길이 숨을 내쉬었다.

"요사이 조금 바빠서……."

라고 일종의 프라이드를 느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그런 말 말아요."

춘심은 성난 듯이 잡았던 손을 뿌리치며,

"마음에 있으면 꿈에라도 보인다고, 아무리 바쁘기로니 잠깐 다녀 갈 틈이야 없단 말입니까? 내가, 내가 미친 년이야. 나 같은 것이 정이니 무엇이니 하는게 개밥에 도토리지……."

"가고야 싶지만 어디 가겠든. 영업에 방해만 될 뿐이니……"

"내가 장사를 합니까? 영업은 무슨 영업이란 말씀이오. 그런 이면치례를 하는 것부터 마음에 없어서 그러는 것이지요. 짜장 보고 싶어 보시오. 그런 생각이 나기나 하는가. 참 사나이라 다릅니다그려. 나는 암만 잊으려 해도 어디 잊혀집디따. 왜 만났던고, 하루도 몇 번을 후회를 하였는지 몰랐어요. 정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인력으로 못할 것이 정입니다."

그의 손은 다시금 나의 손을 쥐었다. 문득 깨달으니 나는 벌써 그의 집 마당에 서 있었다.

마음의 방축(防築)은 고만 터지고 말았다. 유혹의 흐름은 거리낌없이 밀렸다. 이 물결 가운데는 싸늘한 이지와 뜨거운 감정이 서로 부딪고 서로 마주쳤건만 이지는 흔히 쩔쩔 끓는 열수(熱水)에 넣은 얼음조각 모양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을 잊고 나는 종종 춘심을 방문하였다. 그 역시 언제든지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왜 그처럼 아니 오셔요?"

그는 중문간에서 마당으로 삐죽이 나타나는 나를 보자,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부르짖는 것이 항례(恒例)이었다.

"아까 왜 만나지 않았어."

어느 때는 내가 이렇게 대답할 경우도 있었다.

"참 그랬지요. 나는 또 깜빡 잊었지. 금방 보고도 금방 아니 본 것 같애요."

하고 둘이 웃는 수도 있었다. 그리고는 밖이야 햇발이 따뜻하든 달빛이 밝든 밀장은 합문(合門)이 되었다. 사랑은 낙원을 지을 수 있다. 진세(塵世)의 아무런 풍치와 아무런 풍정도 이에 미칠 것이 무엇이랴! 거울같이 마주만 앉으면 그분이다! 말은 말 끝을 쫓고 웃음은 웃음 두를 이었다. 피차의 처지를 설명하자 오뇌(懊惱)도 하고 번민도 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하여 오는 오뇌요 번민이라, 딴 일로 말미암은 그것보다 달랐다. 그것은 하고 싶어 하는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다 하면 무엇합니까? 한시라도 재미있게 놀면 그 뿐이지."

찰나주의자(刹那主義者)인 그는 이렇게 끝을 맺고 가야금을 뜯기도 하였다. 이러다 돌아오는 날은 만족과 행복을 느끼었다. 물린 것이 아니지만 며칠 아니 보아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 갔다가 못 만나면 하루도 두세 번을 가고 싶었다. 저나 내나 무슨 고장이 생겨서 곧 아니 헤어질 수 없게 된 때도 그러하였다.

어머님이 밤 열 점 반 차로 동래(東來)에서 돌아오시던 날이었다. 정거장 나가는 길에 나는춘심의 집에 들렀다. 금심이가 있기 때문에 키스 한번, 포옹 한번 못하고 나는 몸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왜 벌써 가셔요?"

금심은 나에게 매달리며 모자 집으려는 팔을 막았다.

"아니 집에 가 보아야 될 일이 있다."

라고 대답하였다. 웬일인지 말소리가 내 귀에도 허전허전하는 것 같았다. 어째 춘심에게는 가야만 될 사정을 말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얘, 고만두어라. 어긴 어려워도 가긴 잘 가지. 만날 천 날 간다, 간다."

라고 춘심은 새무룩하게 긁어 잡아당겼다. 모자는 썼건만 그 음향이 전기같이 나에게 끼치어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깐 답답한 침묵에 온 방안 공기가 응결되는 듯싶었다. 금심은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다. 춘심은 차마 가는 뒷꼴을 못 보겠다고 하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잇다. 시끼시마의 궐련을 빼어 입으로 그 담배를 불어 빼고 흰 종이로 볼록볼록하게 만들고 있다. 차라리 가지 말라고 나의 소매를 잡아 당겼던들 이렇게 가기 어렵지 않으련만!

"아이고, 좀 붙잡으셔요."

민망하였던지 금심이가 마침내 침묵을 깨뜨렸다.

"고만두어라. 양류(楊柳)가 천만홍인들 가는 님 어리 하이."

라고 춘심은 노래를 부르는 어조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건만 나를 쳐다본 애끓는 정이 서린 추파는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다만 한 시간이라도 더, 반 시간이라도 놀았으면 하였다. 그러나 기차 대일 정각은 임박하였다. 마루까지 나오는 수밖에 없었건만 그와 작별치 않고는 차마 내려설 수가 없다. 나는 닫혔던 미닫이를 다시금 열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직 한 번이라도 나를 보아나 주었으면!

"그냥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는걸."

나는 진정을 농담으로 엄벙하였다. 그는 얼굴을 들었다. 하염없이 웃으며,

"아무리 무정한 님인들 작별이야 안할 수 없지."

하고 일어서 나온다. 사람 눈 없는 어슴푸레한 마루에서 둘의 그림자는 하나이 되었다.

"밤에 볼일이 무슨 볼이이오?"

그는 물었다. 그 소리는 성난 듯도 하고 우는 듯도 하였다.

"어머님이 오늘밤에 오신대. 시방 정차장에 나가는 길이야."

"진작 그런 말씀을 하실 게지. 그러면 어서 나가셔야 되겠구려."

하면서도 나를 놓지는 않았다. 더욱더욱 그의 몸이 달라붙음을 느끼었다. 나의 다리가 마루 끝을 내려서렬 적마다 무릎으로 막았다. 입으로 가지 말라는 것보다 그 몸짓의 말이 더욱 웅변이었다.

이윽고 나는 구두를 신었다. 그도 나를 따랐다. 중문과 대문 어간에서 우리의 그림자는 또 한번 합하였다.

"어서 가셔요."

"응."

"나는 어찌할꼬."

"일찍이 좀 자려무나."

나는 그가 녹주홍등(綠酒紅燈)에 시달리며 밤마다 밤마다 잘 잠을 못 자는 것을 생각하고 이런 말을 하였다.

"어디 잠이나 오나요. 어슴푸레하게 달은 비치고……."

그날은 봄의 기운이 벌써 뚜렷한 밤이었다. 담회색 구름은 연기같이 흐르고 있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봄향기에 채운 이 공기, 이 정적, 이 박명(薄明), 더구나 베일에 잠긴 처녀의 나체(裸體)같은 어스름 달, 이 모든 것들에게는 비밀히 정열의 발효를 느낄 수 있었다.

봄마음[春心]으로는 잠이 나니 올 밤이다. 나도 한참 황홀하였다.

"참 가셔야지, 차 시간 늦을라."

하고 그는 양인(洋人)이 하듯 내 팔을 얼싸 끼고 께름한 발자국을 옮겼다. 그러면서,

"이러고 멀리멀리 갔으면."

이라고 꿈꾸는 듯이 말을 하였다.

문득 전등 밑에서 우리는 떨어졌다.

"어서 들어가."

나는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섰다. 두어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는 그대로 서 있다. 두 눈이 이상하게 빛나는 것 같다. 내 마음 탓인지 모르되 분명히 눈물이 도는 듯하였다. 몇 걸음 가다가 또 돌아보았다. 반만 대문안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의 초연( 然)히 돌아선 꼴이 눈에 띄었다. 그것이 아주 사라지자, 청승궂게 부르는 노래 한 가락이 나의 뒤를 따라왔다.

'욕망이난망(欲忘而難忘)이요,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로다. 갈거(去)자 설워마라. 보낼 송(送) 나도 있다.'

이런 뒤로는 정이 더욱 깊어진 듯하였다.

어디서 술이 좀 취한 나는 열 점 가까이 되어 웬걸 있을라고 하면서도 에멜무지로 그의 잠긴 중문을 두드리며 불러 본 일이 있었다.

"놀음 가고 없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굵다란 남자의 소리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릴없이 발을 돌리려 할 때였다.

"네에!"

이번에는 새된 여자의 목청이 들리었다. 금심의 소리리라. 짤짤 끄는 신 소리를 들을 겨를 도 없이 중문은 열리었다.

시난고난이 드러누워 있는 춘심을 보았다. 핏기 하나 없는 샛노란 얼굴에도 나를 반기는 웃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신음하는 소리를 떨었다.

"아이고 오셔요, 오셔요…… 나는 어제부터 이렇게 아파요…… 이럴 때 오셨으면 하던 차이에요."

나는 가엾어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짚으며,

"어디가 그렇게 아프담…… 나는 없단 말을 듣고 곧 가려고 하였지."

라고 하였다.

"아버지께서 모르시고 그런 것이야요. 목소리가 당신 같길래 금심이더러 나가 보아라, 아마○○○씬가 보다 하였어요."

제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딴 것이 매우 마음에 키이는 것같이 변명하였다.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어디가 그렇게 아퍼?"

"무얼, 몸살이 좀 났는가 보아요. 그것이야 어쨌든 요사이 왜 그리 안왔습니까? 어디가 아프면 당신 생각이 열 곱, 스무 곱 더 나서 짜장 견딜 수 없습니다…… 암만 한들 제 마음을 아시겠어요……."

그의 말마따나 나는 며칠 동안 그를 멀리하였나니, 그것은 빈손으로 오기가 뻔뻔스럽고 추근추근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만 오면 딴이의 부르는 것을 따는 것이 민망도 하였음이다. 더구나 홀대가 나를 기다리니 고통을 아니 느끼고 올 수 없었음이라. 그러나 어째 와서 보면 나의 예상은 노상 틀리었다. 그의 일거일동과 일빈일소(一嚬一笑) 어느 것에 나를 비난하는 무엇을 찾기 어려웠다. 오늘 역시 그러하였다.

"고맙군, 고마워. 그렇게 나를 생각해 주니……."

나는 참말 감사 안할 수 없었다.

"늘 저러것다…… 참말이다? 고마울게 무엇이야요. 어디 나리가 생각하래서 생각합니까? 절로 생각해지니, 생각하는 게지."

"이랬든 저랬든 고마우이. 이것은 참말이다."

"그래 참말이야요? 나리가 참말이라니 나도 참말을 좀 하리까. 나는 화류장(花柳場)에 노는 계집이올시다. 노는 계집이라 이 손님하고도 놀고 저 손님하도고 놉니다. 요리집에서 요리집으로 불리워 다닙니다. 번화하게 웃고 지냅니다. 그래도 때때로 외로운 생각이 들어요. 곧 울고 싶어요. 시쳇말로 나지미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 쓸쓸해서 견딜 수 없어요. 요새 문자로 꼭 한 사람에게 연애를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하루도 열 두 번이나 나겠지요."

그는 폐부에서 짜낸다는 어조로 이렇게 늘어놓았다. 온통 허위는 아닌 고백이리라. 참된 사랑을 할 수 없음은 위에 없는 심적 비극일 것이다. 환락의 맨 밑에는 비애가 가로누워 있음도 혹 사실일 것이다. 술에 물커지고 육(肉)에 해어진 백공천창(百孔天瘡) 뚫린 넋의 신음을 나는 듯 듣는 듯싶었다. 춘심은 말을 이었다.

"나리를 알게 되자, 어째 전일(全日)에 생각하던 대로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웬일인지 더욱 애닯고 슬퍼서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전 슬픔은 여기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리를 보면 웃음이 들어요. 나리를 아삭아삭 물어뜯고 싶겠지요. 그러나 물어뜯기는 건 제 가슴이지요. 독한 벌레에게 쏘인 것처럼 쓰리고 아팠어요. 이것이 무슨 까닭인지……."

이 피를 뽑는 듯한 언언구구(言言句句)가 단 쇠끝 모양으로 나의 가슴에 들어박혔다. 따끔따끔한 고통을 느끼면서 신랄(辛辣)한 쾌감을 맛보았다. 나도 그를 지근지근 물어주고 싶었다. 물지는 못할망정 나의 입술은 그의 입술을 열렬하게 빨고 있엇다. 그 위에 핀 키스의 꽃을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것처럼……. 이윽고 뜨뜻한 무엇이 나의 얼굴에 축축하게 젖음을 느끼었다. 나는 낯을 떼었다. 그는 울고 있다. 다이아몬드 알맹이 같은 눈물 방울이 번쩍이는 그의 속눈썹에 송송 솟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시금 그를 움켜 안았다.

"놓아 주셔요, 놓아 주셔요."

하고, 얼굴을 돌리며 눈물을 씻는다.

"헤프게도…… 웃지나 말아 주셔요. 속없는 년이라고 웃지나 말아 주셔요…… 일없는 사나이의 우는 꼴을 볼 때 미쳤나 울기는 왜 울어, 하고 속으로 웃는 일이 있습니다. 그 품앗이로 오늘은 내가 울고 나리가 웃겠지요!"

하고 울음을 멈추려고 한동안 애를 쓰다가 암만해도 못 참겠다하는 듯이 흑흑 느끼며,

"나같이 못난 것 생각 마시고 부모 봉양이나 잘 하셔요. 처자나 잘 기르셔요. 아까운 청춘을 이런 데 다니시지 마시고 만 사람이 우러러보게 잘 되십시오. 나는 진정으로 나리께 바라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나도 이를 악물고 나리를 잊겠습니다…… 아아, 우리가 왜 알게 되었던가…… 다시 오시지 말아주셔요. 내 눈에 보이지 말아주셔요. 나에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딸 자식 하나만 바라는 불쌍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의 노경(老境)을 편안히 지낼 만한 거리를 아니 장만하고는 내 몸이라도 내 몸이 아닙니다. 어제도 딴 년처럼 사나이 삿갓 못 씌운다고 야단을 만났습니다…… 내 한 몸 같으면……."

말 끝은 오열(嗚咽)에 멈춰지고 말았다. 마침 그때이었다.

중문 흔드는 소리가 요란히 들리었다. 춘심을 데리러 또 인력거가 왔다. 옆방에 있던 금심은 또 나갔다 들어왔다. 춘심은 눈물을 숨기었다.

"저어……."

금심은 나를 보고 매우 말하기 어려운 듯이,

"저어…… 김 승지 영감이 식도원에서……."

"아파서 못 간다 하려무나."

금심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위협하는 듯한 차부의 소리가 가로질렀다.

"그러지 말고 가셔요. 김 승지 영감이 부르셔요, 또 얼걸입시오."

"아픈데 어찌 간단 말인가?"

"꼭 모시고 오래요. 괜히 남 걸음시키지 마시고."

"웬만하면 가 보게그려."

나는 곁에서 말 참례를 하였다.

이 김 승지란 자는 나의 가장 위험한 경쟁자이었다. 춘심의 말에 의하자면, 궐자(厥者)는 일 년 전부터 자기에게 마음을 두어 가용(家用)도 대주고 세간도 장만해 주었으되, 상관(相關)(?)은 없었다. 궐(厥)은 서울에서 굴지하는 부호의 장자이니 재산은 유여하지만 그 인물에 이르러서는 영(零)이었다. 그 검고 얽은 얼굴이란 보기만 하여도 지긋지긋하되 돈 하나로 말미암아 괄시할 수 없는 손님이었다. 빚 육천 원 갚아주고 오춴 원짜리 집 사준다는 조건 밑에 궐은 춘심을 떼어 들이려는 중이었다. 금력으로 싸울 수 없다. 인격이나 사랑으로 대항하려는 나는 궐이 부른 줄 알면 피해 주는 것이 항례이었고, 가기 싫다는 것을 가 보라고 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궐자로 말미암아 우연의 길운(吉運)과 초자연의 기행(奇行)을 믿게 되어 습득횡령(襲得橫領)을 꿈꾼 것만 여기 자백해 두자. 춘심은 버티고 가지 않았다.

얼마 아니 되어 궐자가 친히 왔다. 금심이가 미닫이를 열자, 춘심은 일어앉으며 인사하였다.

"어기다 그리 아프담."

"어째 몸이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에키, 몸살이 난 게로군. 그런 줄 모르고 나는 식도원에서 요리를 시켜 놓고 불렀지. 시킨 요리를 퇴할 수도 없고 또 혼자야 먹을 수 있나. 그래 이리 가져오라 하였지."

"아이고, 그렇습니까? 퍽도 미안합니다. 좀 올라오시지요."

"손님이 계신데…… 나 곧 갈 터이야."

나의 피는 혈관에서 불을 피우며 미쳐 날뛰었다. 어떻게 생긴 놈인지 상판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춘심이 앞에서 보기 좋게 모욕해 주고 싶은 잔혹한 생각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의 관대와 아량을 보이는 듯이,

"아니 관계없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라고 하였다.

"네, 고맙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간다면서도 가지 않았다. 궐과 나는 한참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럴 사이에 요리상 온다는 것이 나의 용기를 꺾었다. 그것 오기 전에 나는 이 자리를 아니 떠날 수 없었다.

"더 노시다 가시지요."

춘심은 미안해 못 견디는 듯이 말을 하였다.

"신진대사(新陳代謝)라니 먼저 온 사람은 가야지."

하고 점잖은 말을 하고 나왔다. 마루에 걸터앉은 이 경쟁자를 해치고 싶어 나는 전신을 떨었다.

"똑 내가 가야 들어가시겠습니까?"

하고, 나는 눈살로 궐자를 쏘며 웃음 속에 도전의 칼날을 빛내었다.

"이것 안되었습니다. 매우 미안합니다."

하고 궐자도 홍소(哄笑)하며 눈윗 볼을 흘리었다. 궐자의 얼굴은 마치 이글이글 타는 숯불 위에 놓여 있는 불고깃덩이 같았다. 모르면 모르되 나의 얼굴빛도 그러하였으리라. 어찌 하였든 나는 밀리어 나왔다. 패배하고 말았다. 분해서 견딜 수 없다. 다시 들어가, 아까는 내가 나갔으니 인제는 노형이 나가시오, 하고도 싶었다. 그것보다도 딴 사람을 들여보내 들부시는 것이 나으리라 하고 나는 미친 듯이 달음박질하였다. C의 여관 문을 두드렸다. C는 없었다. 나는 밤이 깊어 가는 줄을 모르고 다방골 근처를 빙빙 돌며 헛되이 보복 수단을 강구(講究)하고 있었다.

그런 창피를 당했으면 다시는 그의 집에 아니 갈 것이련만 나는 마치 흉한(兇漢)에게 빼앗겼던 애인의 안부를 살피려는 것처럼 그 이튿날로 춘심을 방문하였다. 이만큼 나는 춘심에게 정신을 잃게 되었다.

나는 임질에 걸리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그 몹쓸 병은 옮았을 그때로 나타나지 않고, 며칠 후에야 증세가 드러났다. 거의 행보를 못할이 만큼 남몰래 아팠다. 춘심으로 하여 이런 고통을 겪건만 조금도 그가 괘씸치 않았다. 나의 머리는 아주 이지적이었다. 그야 무슨 죄이랴. 짐승같은 남자 하나이 그의 정조를 유린하고 그의 육체를 다독(茶毒)하였다. 저도 모를 사이에 그 독균은 또 다른 남자에게로 옮겨갔다. 저주할 것은 이 사회이고, 한 할 것은 내 자신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에 가기는 싫었다. 한 일주일 후이리라. 내가 사에서 돌아오니 마당에 이불이 널리고 농짝이 들내어 있었다. 그날은 춘기 대청결(春期大淸潔)이었다.

어머님이 나를 보고 웃으시면서,

"건넌방에 가 보아라. 춘심의 부고(訃告)가 와 있다."

라고 하셨다. 어머님도 물론 그 일을 아셨다. 처음은 야단도 치셨지만 엎지른 물이라 담을 수 없고, 어머님 오기 전 아내가 거짓 유언을 쓴 뒤로부터 춘심의 집에 간대도 온밤을 새운 일은 없으므로 그들은 모두 나에게 알면서도 속고 있었다.

나는 가슴이 조금 뜨끔하면서도 웃으며,

"공연히 거짓말 마셔요. 부고가 무슨 부고야요."

"아니 가 보아. 내가 거짓말인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말씀대로 하였다. 이것이 웬일인가? 전일(全日)에 얻어 온 춘심의 사진이 갈기갈기 찢기어 있다! 그의 참혹히 죽은 시체나 본 것처럼 간담이 서늘하였다. 칼로 에이어 내는 듯한 슬픔을 느끼었다. 그러자, 뒤미처 불덩이 같은 의분(?)이 치받쳐 올랐다. 묻지 않아도 아내의 소위인 줄 알 겨를도 없이 알았다. 지난날의 모든 현숙(賢淑)으로 할지라도 이 악행을 기울 수 없었다. 아니다, 착하다고 믿었던 때문에 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이 잔인한 범죄자는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마루에서 무엇을 치우고 있었다.

"그것이 무슨 짓이야. 무슨 고약한 짓이야. 천하 못 된 것 같으니……."

그는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같이 성을 내며, "무엇이요? 그까짓 년의 사진 좀 뜯으면 어때요? 야단칠 일도 퍽도 없는가 보다."

그가 이렇게 들이대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분노는 비등하였다. 나는 성을 어찌 할 줄 몰라 침을 부글부글 흘리며 더듬거렸다.

"무엇이 어째고 어째? 뜯으면 어떠냐?"

"어때요? 그런 개 같은 년……."

저편도 씨근거렸다. 푸르죽죽해진 입술이 바르르 떨고 있다.

허파가 벌컥 뒤집히는 듯하였다. 숨이 칵 막힘을 느끼자, 문득 때 아닌 눈물이 핑그르 눈초리에 넘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까닭이다. 이날 이때까지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이런 계집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까닭이다.

아아, 나는 어찌 할까?

"몰랐다, 몰랐다. 그런 계집인 줄은 참말 몰랐다. 왜 춘심이가 개 같은 년이야! 너보다 몇 곱절 나을지 모르지. 그의 사진을 왜 뜯어? 둘도 없는 나의 애인이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는 오직 그 하나뿐이다! 참 착한 여자다! 어진 여자다! 말이 기생이지 참말 지상 선녀이다. 왜 내가 그에게 아니 갔던고? 왜 아니 갔던고? 나는 가련다. 나는 가련다. 그에게로 나는 가련다."

나는 흥분에 겨워 시나 읊조리는 어조로 소리를 떨었다.

"가지, 누가 못 가게 하나. 아주 끌려 덮어졌구먼!"

아내는 어디까지나 냉랭하였다.

나는 집을 뛰어나왔다. 미친 듯이 춘심에게로 달렸다. 문간에서 금심을 만났다. 그는 조금도 반기는 빛이 없었다.

"형 있니?"

"어제 살림 들어갔어요."

하고 금심은 입을 삐죽하고 고만 안으로 사라졌다.

남겨 놓은 그 한 마디 말은 비수같이 나의 심장을 찔렀다. 이때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였다.

한동안 화석(化石)과 같이 우두머니 서 있었다. 하늘도 무너지고 땅도 꺼지는 듯하였다. 눈 앞이 캄캄하였다. 하건만,

"흥, 살림을 들어갔다."

라고 소곤거리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집 잃은 어린애나 같이 속으로 울며불며 거리로 거리로 방황하였다. 그러다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왔건만 집에서는 또 얼마나 무서운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내는 요강에 걸터앉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차마 볼 수 없이 새빨갛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 눈에서는 고뇌를 못 이기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병독(病毒)은 벌써 그의 순결한 몸을 범한 것이다. 오늘 청결하느라고 힘에 넘치는 격렬(激烈)한 일을 한 까닭에 그 증세가 돌발한 것이다! 춘심의 사진을 처음 볼 때에 웃고만 있던 그로서 그것을 찢게 된 신산(辛酸)한 심리야 어떠하였으랴! 그의 태중에는 지금 새로운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이 결과가 어찌 될까?

싸늘한 전율에 나는 전신을 떨었다. 찡그린 두 얼굴은 서로 뚫을 듯이 마주보고 있었다. 육체를 점점이 씹어들어가는 모진 독균의 거취를 살피려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독한 벌레에게 뜯어먹히면서 몸부림을 치는 어린 생명의 약한 비명을 분명히 들은 듯싶었다.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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