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사스 역의 봉변

자기의 일생을 통해서 가장 놀라왔던 일이 어떤 것일는지는 내 자신으로도 갑자기 생각나지 않지마는 지비지참(至悲至慘)한 일이 아니라 지금에 생각한다면 오히려 우습기도 하면서도 그 일을 당하던 때에는 미상불 놀랍기도 하던 일이라면 한두 가지 생각나지 않는 바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싼타피 선을 잡아타고 북미 대륙을 종단하던 어떤 해 8월말 경의 일이다. 내가 탔던 기차가 캔사스 주 캔사스 시 역에 도착한 때는 정오가 조금 지났었다. 그때 나는 가지고 가는 짐이 너무 많아서 대소개(大小個)의 트렁크의 운임으로 기차 요금보다도 7,8달러를 더 지불한 터이라, 내 짐짝에 대하여 나는 무던히 신경을 쓰게 되었으며 더구나 언어 불통의 생벙어리라 행여나 도중에서 무슨 착오나 과실이 생겨서는 아니 되리라고 생각하여 용의주도하게 매사매물(每事每物)에 전 신경을 무루배선(無漏配線)하고 있었다.

2,3일간이나 기차 속에서 토스트나 샌드위치 조각에 커피, 차로 연명을 해가다가 캔사스 역에서 40분간 정차한다는 것을 알게 된 때에는 마치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찾은 듯이나 반가와 서 기차에서 뛰어내려서 역구내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40분간 정차란 차장의 말만을 그대로 신용할 수가 없어서 나는 미리 기차 발차시간표를 뒤져서 사실의 정부(正否)를 내 눈으로 확증하고 그리고도 또 미신(未信)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서투른 영어로나마 다짐을 받고 이같이 튼튼히 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하차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입에 맞는 요리를 먹어볼 양으로 음식 주문을 해놓고는 유유자적해 있었다.

소욕(所慾)의 요리가 내 눈앞에 그 거인 여자의 옥 같은 손으로 운반되어 온 지 미구(未久)에 첫번 베인 고깃점이 내 식도의 긴 터널을 채 통과하기도 전에 별안간 기적 일성(一聲)에 내가 타고 오던 열차는 그 거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나 내 눈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사실 그 순간 내 머리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었음은 확실했다) 이것은 필경 시간이 의외로 속히 지나갔음에 틀림이 없으리라고 단정하고서는 나는 음식값이 얼마인지 물을 새도 없이 돈 1달러를 식탁 위에 내던지고는 단숨에 역내로 뛰어들었다.

기차 안에는 내 짐이 몽탕 실려 있고, 의복이 걸려 있고, 그 위에 차표가지 꽂혀 있고(미국 기차에서는 차표를 각자의 좌석 뒤에 꽂아놓아 두어서 시시로 차장이 검사하도록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설혹 그렇지 않기로서니 언어 불통의 내가 중간에서 타고 오던 차를 놓쳐버렸대서야 이 무슨 창피며 봉변이랴는 생각에서 나는 다짜고짜로 차상(車上)으로 뛰어오르려했다. 그러나 그 미운 놈의 검둥이 차장이(정말이지 사람을 이만큼 밉게 생각해 본 적은 전무 후무일 것이다) 마침 계단 앞에 섰다가 나를 밀쳐 내리려고 했다. 나는 한 발만을 기차에 올려놓은 채로 질질 끌려가면서 발악했다. 지금은 발악이라고 하지마는 그때는 나도 모르게 애원성을 연발했을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미운 놈의 검둥이는 끝끝내 나의 승차를 거절했다. 차체는 점점 속력을 가해오는 만큼 나는 뛰어내릴 수도 없었으려니와 죽어도 그 차를 놓치지는 않으려고 이를 갈아붙이고 덤벼들었다. 워낙 사세가 급해진 판이라 나는 말이 되거나말거나 이런 것을 생각할 새도 없이 내 짐, 내 옷, 내 차료가 모두 이 차 속에 있고, 또 나는 이 차를 어디서 타고 어디로 가는 사람이라고 주워섬겼다.

기차는 제법 달음질을 친다. 그때에는 차를 태우느냐 아니태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일개 동양인 보이의 생명이 왔다갔다 하게 되고본즉, 그 미운 놈의 검둥이도 할 수가 없었던지 슬그머니 물러섰다. 나는 비로소 두 발을 다 차 위에 올려놓게 되자 분김 홧김에 6척이 더 되어 보이는 그 미운 놈의 뺨을 보기좋게 갈겼다. 그러나 이것은 황소 잔등을 쏘는 파리의 혀끝만한 효과나 주었을지? 그 놈은 요까짓 것을 대꾸는 해서 무엇하랴는 듯이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나는 내 자리에 가서 쓰러지듯이 않았다. 내 상의, 내 모자, 내 차표, 내 가방, 모든 것은 여전히 제 위치에 제대로 본존되어 있엇다. 아아, 큰 봉변할 뻔했군!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마는 가슴의 격렬한 동계(動悸)가 안도되기까지에는 꽤 오랜 시간을 요구했다.

에이 빌어먹을! 이게 미국이 아니고 못 볼 일이지. 내가 타고 있는 기차는 5분쯤 후에 또다시 다음 역에 정차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또다시 그러나 아까보다도 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 역이란 것은 조금 전에 정차했던 캔사스 역과 꼭 같지 않은가? 단지 왼편에 있던 식당이 바른편으로 옮겨 가 있는 외에는 무엇 하나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저런 제기, 식당 안에서 담소해 가며 입을 쩍쩍대는 식객들의 낯짝조차 조금 전까지 내 전후좌우에 앉아 있던 꼭같은 원숭이들이 아닌가? 대체 이것이 무슨 착각이었을까?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차 선로는 캔사스 시까지만 싼타피 회사의 소유요 거기서 시카고까지는, 다른 회사선이었으므로 기차가 이 역에 들어 오면 다른 회사의 기관차가 이것을 끌고서 자기 회사선의 플랫포옴에다 가져다 놓는다는 것을 신 아닌 내가 알 까닭이 무어리요. 에이 빌어먹을, 그 미운 놈의 검둥이 그 놈이 왜 나의 승차를 거절하려 했는지 이것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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