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 (笑劇) 〈행복의 실패〉를 쓰고 음악 비극 겸 골계가극(滑稽歌劇)이라 고 할 만한 〈알제리의 이탈리아 인〉을 쓴 로시니가 걸작 〈세빌랴의 이발 사〉란 가극을 발표한 다음부터는 그의 명성이 이탈리아 본국은 물론이요, 프랑스 전토까지도 풍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37세 되던 해에 그의 일대의 걸작 가극 〈윌리엄 텔〉을 발표한 이후로는 가극 작곡의 붓을 단연 히 끊어버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수 년을 지내고 다시 파리에 와서 정주 (定住)한 다음에도, 도무지 가극을 짓기 위하여 붓을 들 생각을 조금도 가 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침묵은 친우(親友)들의 걱정거리가 되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하여 어 떤 친우는 일부러 그를 찾아갔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자네의 신작이 발표되기만 기다리고 있네. 이번의 신작 은 언제쯤에나 발표되려나 하는 것이 우리들 대망(待望)의 초점일세. 자네 는 대체 그런 줄을 알고나 있나!”

로시니는 친우의 묻는 말을 듣고 잠깐 잠자코 있더니, 이윽고 피아노 앞으 로 뚜벅뚜벅 걸어가 앉았습니다. 친우의 얼굴에는 환희의 빛이 떠올랐습니 다. 로시니는 필시 자작의 비장(秘藏) 명곡을 들려주려는 것이겠지…… 하 고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 의외였습니다. 그가 지금 타기 시작한 곡조는 독일 작 곡가 모차르트의 가극 〈돈 조반니〉의 일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아름답고 향기 높은 음악에 친우가 도취되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것일세!”

하고 로시니는 고요히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이런 걸작이 나온 끝에 내가 신작을 발표한다는 것은, 펑펑 솟아오르는 샘에다가 우물물을 떠가지고 가서 대하려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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