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자
대체로 동양에 있는 仙境說話[선경설화]에는 선경과 인간과가 본질적으로 시간의 장단을 달리하여서, 어쨌든지 선경의 一[일]일이 인간에게 몇백 년 에 당하는 것으로 말함이 통례임이 비하여 서양에서는 선경과 인간의 시간 이 어긋나는 고동으로 흔히(잠자는 동안) 수면이 중간에 끼여 있읍니다. 잠 가운데 무슨 신비한 까닭이 있는 줄로 표현하였읍니다. 말하자면 동양의 것 은 순수하게 설화적으로 생겼음에 대하여, 서양의 것은 매우 상식적 짐작을 더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페어리 랜드의 이 상식적 경향이 더 욱 현저하게 드러난 것에는 아무 다른 神異[신이]한 조건 없이 다만 오랫동 안 잠을 잠으로써 어떠한 사람의 생명 급 생활이 앞선 세상으로부터 뒤의 세상으로 옮아 간다는 이야기도 있읍니다. 곧 선경이고 인간이고 시간의 길 이는 마찬가지로되, 필요한 동안 잠을 자서 시간으로부터 시간으로 건너뛰 는 투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투의 이야기는 꽤 오랜 연원이 있는 듯하여, 기독교 전설에도 선지 자를 박해하던 유태왕 시드기야의 신하로, 왕에게 간청하여 先知[선지] 에 레미야를 살려낸 아비멜렉이란 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자와 하루는 대궐 안 後苑[후원]에서 포도와 무화과를 따고 있다가 홀연 졸음이 와서 곁에 있 는 바위 위에 누워 잠이 들었더니, 이 동안에 바빌론 왕 네부카드넷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무찌르고 시드기야 왕의 눈을 빼고 상하 臣民[신민] 을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데려다가 七○[칠공]년간 俘囚時代[부수시대]가 계 속하였는데, 아비멜렉은 이러한 큰 亂離[난리]가 있은 줄 모르고 二[이], 三[삼]시간 눈을 붙인 줄만 알고 잠을 깬즉, 마침 선지자 에레미아가 인민 을 거느리고 바빌론의 俘囚[부수]로서 돌아와서 아비멜렉의 말이 眞的[진 적]함을 증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의 가장 유명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곱 잠잔이 ── 「七眠者[칠면자]」(Seven sleepers)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서방 아시아의 諸國[제국]에 조금조금씩 다른 형식으로 널리 행하여, 기독교도인 與否[여부]를 물론하고 흥미로써 옮겨 전하는 바니, 그 대의를 말씀하면 에베소의 기독교도 막시미안 이하 七[칠]인이 波斯[파사] (페르시아)의 폭군 데우시스의 박해를 입어서, 가족과 세간을 다 내어버리 고 세리온 산의 동굴로 들어가 숨었는데, 박해가 더욱 심하여 양식 얻을 길 도 끊긴 고로, 서로 붙들고 울더니, 하나님의 은총으로서 그냥 긴 잠이 들 었다가 깨어 보니 그 동안 三六○[삼육공]년이 지났더라 하는 사연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본래부터 睡眠[수면] 그것을 爲主[위주]하여 만든 것이 요, 꼭 仙境說話[선경설화]의 유에 속할 것은 아닐 듯도 하지마는, 여하간 시간의 약속을 깨뜨리는 점에서 다른 페어리 랜드 또 仙境說話[선경설화]로 더불어 일종의 연락을 가지는 것입니다.
대저 시간의 가치를 전환하든지 시간의 약속을 파괴하든지 하여, 시간의 법칙을 좀 변동해 보려는 경향이 仙境說話[선경설화] 중에 퍽 중요한 요소 를 이루어 가지고 있음이 위에 말씀한 바와 같으니, 우리 〈三說記[삼설 기]〉중 三子願從記[삼자원종기]의 산중에서 지낸 半日[반일]이 인간에서 八○[팔공]년 동안이라 함은, 이러한 통례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 의 어긋남은 반드시 선경이야기에만 있지 아니함이 七眠者[칠면자]의 이야 기에서 봄과 같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선경의 이야기라고 반드시 시간의 어 긋남이 있는 것도 아님은 加平[가평] 선비의 이야기에서 봄과 같습니다. 선 경의 三[삼]년이 그냥 인간에서도 三[삼]년 채로 있는 것처럼, 선경과 인간 과의 시간이 똑같은 줄로 표현된 例話[예화]도 어디서든지 발견하는 바입니 다. 이를테면 〈搜神記[수신기]〉에,
崇古山背(숭고산배)에 큰 구멍이 있어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백성들이 歲時[세시]로써 구경들을 갔었다. 晋初[진초]에 한 사람이 실수하여 구멍 속으로 떨어지매, 동행했던 사람들이 혹시 죽지를 아니했어도 하고 먹을 것 을 떨어뜨려 주니, 떨어진 이가 이것을 받아 먹으면서 나갈 구멍을 찾아 一 ○[일공]여 일을 행한 뒤에 홀연 한 곳을 만나니, 거기 草屋[초옥]이 있고 사람들이 마주앉아서 바둑을 두는데 그 아래 잔에 하얀 것이 담아 있었다. 떨어진 이가 飢渴[기갈]이 대단함을 고한대, 바둑 두는 이가 가로되 「그 잔에 담은 것을 먹으라」하거늘, 집어먹으니 곧 기력이 一○[일공]배나 하 였다. 바둑 두는 이가 가로되 「그대가 여기 머물러 있고 싶으냐, 가고 싶 으냐?」하거늘, 떨어진 이가 「세상으로 나가고 싶습니다」한즉, 바둑 두 는 이가 가로되 「이리로부터 西[서]쪽으로 행하면 天井[천정]이 있고 그중 에 蛟龍[교룡]이 많은데, 그냥 몸을 던져 우물로 들어가면 세상으로 나갈 것이요, 만일 배가 고프거든 井中[정중]에 있는 것을 집어먹으면 가하리 라」하거늘, 떨어진 이가 그대로 하여 반년쯤 만에 겨우 그리로서 벗어나 오니 蜀中[촉중]이요, 다시 洛下[낙하]로 돌아와서 博物君子[박물군자]로 유명한 張華[장화]에게 물은대, 華[화] 말하기를 「그이는 仙宮大夫[선궁대 부]요, 마신 것은 玉漿[옥장]이요, 먹은 것은 龍穴石髓[용혈석수]니라」하 더라.
하는 것은 반년을 지내고 나왔으되 인간에 와서 세월의 어긋남을 깨닫지 못 하였다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