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분주히 뚜드리기 시작한 최서방네 벼마당질은 해가 졌건만 인제야 겨우 부추질이 끝났다.

일꾼들은 어둡기 전에 작석을 하여 치우려고 부리나케 섬몽이를 튼다. 그러나 최서방은 아침부터 찾아와 마당질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우들부들 떨며 마당가에 쭉 늘어선 차인꾼들을 볼 때에 섬몽이를 틀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실상 마당질 끝나는 것이 귀치않다느니보다 죽기만치나 겁이 난 것이다.

그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호미값(胡米價)이라 약값(藥價)이라 하고 조르는 것을 벼를 뚜드려서 준다고 오늘 내일 하고 미뤄오던 것인데 급기야 벼를 뚜드리고 보니 그들의 빚은 갚기는커녕 송지주의 농채도 다 갚기에 벼 한 알이 남아서지 않을 것 같아서 으레 싸움이 일어나리라 예상한 까닭이다.

“열 섬은 외상 없이 나지?”

사랑 툇마루 위에서 수판을 앞에 놓고 분주히 계산을 치고 앉았던 송지주는 이렇게 물었다.

“열 섬이야 아마 더 나겠지요.”

최서방은 열 섬이 못 날 줄은 으레 짐작하지만 일부러 이렇게 대답을 했다.

“글쎄…… 그러고 벼는 충실하지?”

지주는 놓았던 산알을 떨어버리고 마당으로 내려와 들여놓은 벼를 여물기 나 잘하였나 하고 시험 삼아 한 알을 골라 입안에 넣고 까보았다.

“암, 충실하고 말고요. 이거야 소문난 변데요.”

이것은 일꾼 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섬몽이 틀기는 끝이 나고 이제는 작석이 시작되었다. 차인꾼들은 제각기 적개책을 꺼내어 든다.

“십오 원이니 섬 반은 주어야겠소.”

호미값 차인꾼이 한 섬을 갓 되어 놓은 벼를 가로 깔고 앉으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글쎄, 준다는데 왜 이리들 급하게 구오.”

최서방은 또 한 섬을 묶어 놓았다.

“오 원이니 나는 반 섬이면 탕감이 되오.”

이것은 포목값(布木價) 차인꾼이 들채는 소리였다.

“섬 반이고 반 섬이고 글쎄 벼를 팔아서야 돈을 갚아도 갚지 있는 벼가 어디로 도망을 치겠기에 이리들 보채오.”

최서방은 우선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벼자 돈이고 볏값도 빤히 금이 났으니 어서들 갈라 주소. 괜히 이치운데 어둡기나 전에 가게.”

약값 차인꾼은 이렇게 말을 붙이고 또 한 섬을 깔고 앉는다.

“여보, 그것이 무슨 버릇들이오. 남의 벼를 그렇게 함부로 깔고 앉으니.”

“그러기 날래들 갈라 주어요.”

“글쎄, 팔아서야 준다는데 무얼 갈라 달라고 그래요.”

“그러면 그럼 오늘도 안 주겠다는 말이요. 말이.”

“안 주겠다는 게 아니라 벼를 팔아서 주마 하는데 되어 놓는 족족한 섬씩 덮쳐 깔고 앉으니 어디 체면이 되었단 말이요, 그럼.”

“그래 오늘 내일 하고 속여온 당신의 체면은 그래서 잘됐단 말이요, 그래.”

“오늘이야 글쎄 벼를 팔아서야지요.”

“그럼 오늘도 정말 안 줄 테요?”

“아니 못 주지요.”

“정말.”

“정말 아니고.”

“정말.”

“정말이야 글쎄.”

“정말이야 글쎄가 무어야 이 자식.”

호미값 차인꾼은 분이 치밀어 푸들푸들 떨리는 주먹을 부르쥐고 최서방의 턱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주먹을 훌끈 내밀었다.

최서방은 ‘히’ 하고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아무 반항도 안 했다.

작석은 또한 끝이 났다. 열 섬을 믿었던 벼는 여덟 섬에 그치고 말았다.

송지주는 그것 가지고는 청장이 빳빳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이번에도 회계가 채 안 되는군. 모두 오십이 원인데.”

하고 다시 계산을 틀어 본다.

“어떻게 그렇게 되오.”

최서방은 자기의 예산과는 엄청나게 틀린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반문을 했다.

“본(元金[원금])이 사십 원에 변(利子[이자])을 십이 원 더 놓으니까.”

“무어 그 돈에다 변까지 놓아요?”

“변을 안 놓으면 어쩌나. 나도 남의 돈을 빚낸 것인데.”

“그렇다기로 변은 제해 주세요.”

“그 돈으로 자네 부처가 일 년이란 열두 달을 먹고 산 것인데 변을 안 물단 게 안 돼 안 돼 건.”

그는 엉터리 없는 수작이라는 듯이 ‘안 돼’ 하는 ‘돼’ 자에 힘을 주었다. 최서방은 보통의 농채(農債)와도 다른 이물푼삯(引水稅[인수세]에 고가의 변을 지우는 데는 젖먹던 밸까지 일어났으나 송지주의 성질을 잘 아는 그는 암만 빌어야 안 될 줄 알고 아예 아무 말도 안 했다. 실상 그는 말하기도 싫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태반이 넉 섬씩이지. 한 섬에 십 원씩 치고도 모자라는 십이 원을 어쩌나? 오라 가만있자, 또 짚(藁[고])이 있것다. 짚이 마흔단이니까 스무 단씩이지. 그러면 한 단에 십 전씩 치고 이 원, 응응 겨우 우수떼논 그래 십이 원은 어쩔 테야?”

그는 최서방이 그리 해주겠다는 승낙도 얻지 않고 자기 혼자 이렇게 결산을 치고 다짜고짜로 일꾼들을 시켜 한 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자기네 곳간으로 끌어들였다.

행여나 벼로나 받을까 하고 온종일 추움에 떨면서 깔고 앉았던 볏섬을 놓아준 차인꾼들은 마치 닭 쫓아가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으로 눈들만 멀뚱멀뚱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멀거니 서서 송지주의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껏 분하면서도 우스웠다. 그래서 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나 다시,

“돈 내라, 이놈아.”

“오늘 저녁에 안 내면 죽인다.”

“저렇게 속이기만 하는 놈은 주먹맛을 좀 단단히 보아야 아마 정신이 들 걸.”

하고 제각기 이렇게 부르짖으며 달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제는 돈도 받기 글렀는데 그 사이에 품 놓고 다니던 분풀이로나 때워버리려는 듯하였다.

그들은 골이 통통히 부어서 갖은 욕설은 거들이며 덤비었다.

호미값 차인꾼은 최서방의 멱살을 붙잡았다.

“놓아. 이렇게 붙잡으면 누굴 칠 테야.”

최서방은 이제는 팔아서 준단 말도 할 수 없었다.

“못 치긴 하는데 이놈아.”

호미값 차인꾼은 최서방의 귀밑을 보기 좋게 한 개 갈겼다.

약값 차인꾼과 포목 차인꾼도 각각 한 개씩 갈겼다.

“아이.”

최서방은 뒤로 비칠비칠하며 전신을 떨었다. 그리고 당연히 맞을 것이라는 듯이 아무런 반항도 안 했다.

“돈 내라, 이놈아.”

호미값 차인꾼은 이번에는 불두덩을 발길로 제겼다. 여러 차인꾼도 또한 같이 제겼다.

“아이고.”

최서방은 기절하여 번듯이 뒤로 나가 넘어졌다. 넘어진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추움에 떨던 차인꾼들은 땀이 흠뻑이 났다.

최서방은 죽은 듯이 넘어진 그대로 여전히 누워 있었다. 한참 만에 그는 알뜰히 아픔을 강잉히 참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이빨을 뿌득뿌득 갈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불두덩을 한 손으로 움켜 쥐고 간신히 일어섰다.

그의 일어선 자리에는 코피가 군데군데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완전히 걸어 막살이를 찾아 들어갈 때에는 날은 벌써 새까맣게 어두워 있었다.

최서방에게 있어서 여름내 피땀을 흘리며 고생고생 벌어놓은 결정이라고 는 오직 죽도록 얻어맞은 매가 있을 뿐이다. 그 밖에는 아무러한 것도 없었다.

그는 밤이 깊도록 오력을 잘 못 썼다. 더구나 불두덩이 아파서 잘 일지도 못했다. 그는 이렇게 남 못 보는 고초를 맛보지만 어느 뉘더러 호소할 곳도 없었다. 있다면 오직 사랑하는 아내가 있을 뿐밖에 다만 자기 혼자서 아파할 따름이었다.

그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같이 불쌍한 처지에 있는 소작인(小作人)이 이 나라에 가득 찬 것이 그것이지만 그중에도 최서방처럼 불행한 처지에 앉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가 불행한 처지에 앉았게 된 원인은 오직 단순한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악독한 독사(毒死) 같은 지주를 가졌다는 것이요, 하나는 그가 본래부터 성질이 착하다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정의와 인도를 벗어나 남 의 눈을 감언이설로 속여가며 교활한 수단으로 목숨을 연명하여 가지만 이러한 비인도적이요 비윤리적인 행동에는 조금도 눈떠보지 않은 그에게는 밥이 생기지 않았다. 이따금 밥을 몇 끼씩 굶을 때에는 도적질이란 것도 생각 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비인도적이라는 것이 번개처럼 머리에 번쩍 떠오르곤 하여 그는 차마 그를 실행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가 이같이 착하니만치 그 반면에는 악독한 지주가 있어 이렇게 불쌍한 그의 피를 또한 빨아내는 것이었다.

예년은 말고 금년 일 년만 하더라도 이 동리 앞벌에 지독한 가뭄이 들어 모두들 볏모를 말라 죽이다시피 하였지만 송지주의 작인치고도 오직 최서방 하나만이 인력(人力)으로는 도저히 인수(引水)할 수 없는 물을 빚을 얻어가며 펌프를 세내어 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빨아올리게 하여 볏모를 꾸준히 구하여 온 것이었다. 이렇게 그는 오직 살겠다는 생존욕에서 남 아니하는 고생을 하여 가며 남 못 하는 수확을 하였지만 ‘수확’ 이라는 것을 걸금 주었던 송지주의 빚이라는 것이 고가의 이자가지 쓰고 나와 그로 하여금 도리어 가해를 지게 하여 그들이 피땀의 결정은 결국 송지주네 고방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그는 당장에 먹을 것이 없는 것이라 농사를 지어 줄 셈치고 안 쓸 수 없어 사소한 용처를 외상으로 맡아 썼던 것이 일 이 이렇게 되고 보니까 차인꾼들한테 매를 얻어맞는 경우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실상 그들의 빚은 송지주의 그것과는 다른 관계로 감사히 절하고 갚아야 될 것이건만 더구나 호미값이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지방 풍속에 으레 소작인이 먹을 것이 없으면 추수를 할 때가지 식량을 지주가 당해 주는 법이건만 유독 송지주만은 먼저 당해 준 식량에 고가의 이자를 끼워 계산을 틀어가다가 추수에 넘치는 한이 있게 되면 예사로 그때에는 잡아떼고 작인들은 굶어 죽든지 말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다시는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금년에 최서방은 사흘이라는 기나긴 여름 날을 굶다 못하여 이전부터 친분이 있던 그 고을에서 호미 장사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런 사정을 말하였다. 그도 가난을 겪어본 사람이라 지극히 불쌍히 여겨 호미를 두 포대나 맡아준 것이었다. 그래서 최서방네 내외는 주린 창자를 회복시켜 오늘까지 목숨을 이어온 그러한 호미값이었다.

그런데 그는 오늘 마지막으로 뚜드린 벼를 지주의 권력에 못 이겨 이 아 닌 추운 겨울에 쫓겨날까 두려워 호미값을 미리 끊어주지 못하고 그의 빚에 그만 탕감을 치워 버린 것이었다.

최서방은 지금 불김이 기별도 하지 않는 차디찬 냉돌에 누워서 발길에 채인 불두덩과 주먹에 맞은 귀밑이 쑤시고 저림도 잊어버리고 불덩이같이 뜨거운 햇볕이 내려쪼이는 들판에서 등을 구워 가며 김매는 생각과 오늘 하루의 지난 역사를 머릿속에 그리어 본다.

“나는 왜 여름내 피땀을 흘리며 김을 매었노. 그리고 호미값을 왜 미리 못 끊어 주었을꼬. 송지주는 왜, 그렇게 몹시도 악할꼬. 나는 왜 그리 약한 고, 나는 못난이다. 사람의 자식이 왜 이리 못났을까? 그런데 차인꾼들은 나를 왜 때렸노, 그들은 너무도 과하다. 아니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도 밥을 얻기 위하여 나와 그렇게 피를 보게 싸웠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피땀을 흘리며 여름내 농사를 짓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래야만 입에 밥이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들은 농작이 없어 농사도 짓지 못하고 막벌이로 품팔이로 저렇게 남의 돈을 거두어 주고 목숨을 붙여가는 그들이 나보다 도리어 불쌍하다. 나는 조금도 그들을 욕할 수 없다. 야속하달 수 없다. 그러나 지주네들은 왜 아무러한 노력도 없이 평안히 팔짱 끼고 뜨뜻한 자리에 앉았다가 우리네의 피땀을 온 송이째로 들어먹을까, 암만해요 고약한 일이다. 금년만 하더라도 우리 부처가 얼음이 갓 녹아 차디찬 종아리를 찢어내는 듯한 봄물에 들어서서 논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불볕이 푹푹 내려쬐는 볕에 살을 데여가며 물 푸고 김매고 가으내 단잠 못 자고 벼베기와 싯거리질이며 겨우내 추움을 무릅쓰고 굶어가며 마당질을 하였는데 우리는 한 알도 맛보지 못하고 송지주네 곳간에 모조리 들여다 쌓았것다. 괘씸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 부처가 이렇게 노력을 할때 송주사는(그는 늘 송지주를 송주사라 부른다) 긴 담뱃대 물고 뒷짐지고 할일 없어 술 먹고 장기 두고 더우면 그늘을 찾고 추우면 뜨뜻한 아랫목에서 낮잠질이나 하였었 다.”

이까지 머릿속에 그리어 생각해 온 그는 실로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에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부르르 떨었다.

“왜- 그리우?”

산후에 중통을 하고 난 그의 아내는 발치목에서 어린애 젖을 빨리고 있다 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던 남편이 그같이 아지 못할 소리를 지르고 떠는 주먹을 보고 의아하게도 이렇게 물었다.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여전히 부르쥔 주먹을 펴지 못하고 떨었다. 한참 만에 그는 입을 열였다.

“여보 마누라, 우리는 여름내 무엇을 하였소?”

이 소리는 매우 친절하고 측은하고 어성이 고왔다.

“무엇을 하다니요, 농사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지은 농사는 왜 없소?”

아내는 이 소리에 실로 기가 막혔다. 정신이 아찔하여지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때 남편이 매를 맞던 꼴과 송지주의 벼를 떼어 들어가던 현장 이 눈앞에 갑자기 환하게 나타났다.

“에이.”

그는 또다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아내는 어쩔 줄을 모르고 남편의 곁으로 다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울기는 왜 우오. 우리 의논 좀 하자는데.”

하고 그는 다시 무엇을 생각하더니 아내를 노려보며 말끝을 이었다.

“마누라, 우리는 왜 빚을 졌는지 아시오?”

“호미와 강냉이(옥수수) 사다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 호미값을 왜 못 무오?”

아내는 기가 막혀 또 말문이 막혔다. 지난 여름에 사흘씩 굶어 떨던 그때의 현상이 또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남편도 이렇게 묻고 보니 생각은 새로워 아지 못할 눈물이 눈초리에 맺혔다.

“우리가 이리로 이사온 지 몇핸지?”

“십 년째 아니오.”

“옳아, 십 년째 우리는 십 년째를 이 독사의 구덩에서.”

하고 그는 혼잣말 비슷이 이렇게 부르짖고 한숨을 괴롭게도 한 번 길게 빼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보게 마누라, 남 보기에는 우리가 송주사네의 덕택으로 먹고 입고 사는 줄 알지만 실상 우리는 우리의 두 주먹으로 우리의 몸을 살린 것일세.

우리는 송주사의 은혜하고는 반푼어치도 없고 도리어 그들한테 피를 빨리운 것일세. 내나 자네나 이렇게 핏기 없이 뽀독뽀독 마른 것이 모두 송주사한테 피를 빨리운 탓일세. 우리가 그렇게 피와 땀을 흘리며 죽을 고생을 다하 여 벌어 놓으면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그리고도 남으면 그 돈으로 또 우리의 피를 빠는 것일세. 그러면 금년의 우리가 벌은 그것으로 또 내년에 우리의 피를 줄 것이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줄을 빤히 알면서 피를 빨리는 우리가 도리어 우스운 것일세.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부터 피를 빨리우지 않게 방책을 연구하여야 되겠네. 그래서 자유롭게 살아야 되겠네. 만일 우리의 두 주먹이 없다 하면 그들은 당장에 굶어 죽을 것일세. 죽고 말고 암죽지 죽어.”

하고 그는 매우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장황히 부르짖었다. 그는 상당히 무엇을 깨달은 듯하였다. 아내는 이런 소리를 남편에게서 듣기는 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시원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글쎄, 참 그렇긴 하지만 어찌하우?”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참 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어찌해, 싸워야 되지. 싸울 수밖에 없네. 그들의 앞에는 정의도 없고 인도도 없는 것을 어찌하나, 아니 이 세상이란 또한 역시 그런 것이니까.

남의 눈을 어떻게 패측한 수단으로라도 가리우지 않고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네. 우리는 이제부터 이 모든 더러운 독사 같은 무리와 필사의 힘을 다하여 싸워야 되겠네. 싸워야 돼. 그래서 우리는…….”

하고 그는 무엇을 더 말하려다가 참기 어려운 듯이 주먹을 또다시 부르르 떨었다.

“글쎄요, 아이 참 낼 아침 밥질 게 없으니 이 일을 또 어찌하우.”

아내는 새삼스럽게 잊히지 못하던 아침거리가 머리에 또 떠올랐다.

“그러기에 싸우잔 말이야.“헤어진 창 틈으로 바람은 씽씽 들어오지만 추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그들 내외는 생활고에 쪼들려 닥쳐오는 고통을 서로 하소연하며 장차 어찌 살꼬 하는 앞잡이길에 온 정신을 잃고 깊은 명상 속에서 밤이 새도록 헤매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송지주는 최서방을 불러다 놓고 어젯저녁 벼에 탕감이 채 되지 못한 나머지 십 원을 들채기 시작했다.

어젯밤 밤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한 최서방의 눈은 쑨 죽처럼 풀어지고 눈알엔 발갛게 핏줄이 거미줄처럼 서리어 있었다.

“자네 농사는 참 금년에 장하게 되었네. 농사는 그렇게 근농으로 하지 않으면 이즘 전답 얻기도 힘드는 세상일세. 참 자네 농사엔 귀신이야. 그렇기에 그래도 근 백 원 돈을 이탁데탁 청당했지. 될 말인가.”

하고 송지주는 점잖음을 빼고 최서방을 추어 하늘로 올려보내며 다시,

“그런데 어제 오십이 원에서 사십이 원은 귀정이 된 모양이나 이제 나머지 십 원은 어쩔 셈인가? 조속히 그것도 해 물고 세나 쇠야지?”

최서방은 없는 돈을 갚겠다지도 또한 안 갚겠다지도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주저주저하다가,

“금년엔 물 수 없습니다. 그대로 지워 주십시오.”

하고 그는 낯을 들지 못했다.

“물 수 없으면 어쩐단 말이야.”

“그럼 없는 돈을 어찌합니까.”

“물지도 못할 걸 쓰기는 그럼 왜 그렇게 썼어, 응!”

“그 돈 꿨기에 주사님네 농사를 지어 바치지 않았습니까?”

“이놈 나를 거저 지어 바친 것 같구나. 나루 온 천하의 말버릇 같으니.

에이 이놈.”

그는 기다란 댓새를 최서방의 턱 앞에 훌근 내밀었다.

“아니 그럼 아시는 바 한 말도 없는 벼를 무엇으로 돈을 장만해 내랴십니까?”

“이놈, 그럼 없다고 안 물 테야 응! 이놈아, 내가 너희들은 그래도 불쌍한 것이라고 특별히 먹여 살렸건만 에이, 이 은혜 모르는 놈, 이놈 썩 나가, 전답도 모조리 다 내놓고 이 도야지 같은 놈, 아직도 밥을 굶어 보지 못하였던 거로구나.”

하고 그는 누구를 잡아삼킬 듯이 벌건 눈을 훌근거리며 댓새로 최서방의 턱을 받쳤다.

최서방은 이렇게 여지없는 욕설을 들을 때에, 아니 턱을 댓새로 받치울 때 담박 달려들어 댓새를 부러치고 대항도 하고 싶었으나 그는 약하였다.

그리고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이 진정할 수 없이 가슴을 뛰게 하였지만 또한 그는 말을 못하였다. 나오려는 말은 입안에서 돌돌 굴다 사라지고 말 뿐이었다. 최서방이 집으로 나간 뒤끝에 송지주는 곧 멈들을 불러 가지고 막살이로 쫓아 나와서 약간한 가장으로 십 원을 또한 탕감치려 하였다.

우선 그는 멈들을 시켜 김장을 하여 넣은 독과 부엌에 걸은 솥을 뽑아 내왔다.

이때에 최서방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여러 해를 두고 곪기고 곪겨 오던 분을 일시에 탁 터져 나왔다. 마치 병의 물이 꿀럭꿀럭 거꾸로 솟듯이.

“이놈!”

최서방은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송지주와 마주섰다.

“이놈이라니, 야이 이이 무지한 버릇없는 놈아…….”

송지주는 어쩔 줄을 모르고 몽둥이를 찾아 사방을 살피며 덤볐다. 실상 그는 나이 오십에 이놈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젖먹던 밸까지 일어나 섰을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에이, 이 독사 같은 사람의 피를 빠는…….”

하고 최서방은 허청 기둥에 세웠던 도끼를 들어 솥과 독을 단번에 부쉈다. ‘찌릉땡’하고 깨어져 사방으로 달아나는 소리는 마치 폭발이나 터지는 듯이 요란하였다.

“독을 깨깨개 깨치면 이 이 십 원은.”

“이놈아, 이이 내 피는.”

그들의형세는 매우 험악하였다. 최서방은 앞에 들어오는 것이든 무엇이든 지 모조리 때려부술 듯이 주먹과 다리는 경련적으로 와들와들 떨렸다.

이런 광경을 멀거니 보고 있던 그 아내는 세간의 전부인 독과 솥이 깨어 져 없어지는 아까움보다 승리가 기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송지주는 멈들의 손에 끌리어 못 이기는 체하고 끄는 대로 끌리어 들어갔다.

멈들에게 독과 솥을 지워 가지고 들어가려 가지고 나왔던 지게는 멈들의 등에서 달랑궁달랑궁 비인 대로 쫓아 들어갔다.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어느 일기 좋은 따뜻한 날 석양에 무순(撫順) 차표를 손에다 각각 한 장씩 쥔 최서방 내외의 그림자는 S정거장 삼등 대합실 한구석에 나타났다. 그들의 영양 부족을 말하는 수척한 얼굴은 몹시도 핼끔 한 것이 마치 꿈속에서 보는 요물을 연상케 하였다. 더구나 그 아내의 등에 업힌 겨우 두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애는 추움에 시달렸음인지 한 줌도 못 되리만치 배와 등이 거의 맞붙다시피 쪼그린 데다가 바지저고리도 걸치지 못하고 알몸대로 업혀서 빼악빼악하고 울며 떠는 꼴이란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송지주와 싸운 그 자리로 그 막살이를 떠나 끼니를 굶어가며 혹은 방앗간에서 그도 없으면 한길에서 밤새워 가며 정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어떤 자그마한 도회지에서 최서방은 삯짐과 품팔이로 아내는 삯바느질과 삯빨래로 간신간신히 차비를 장만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 막살이를 떠날 때의 본래의 목적은 어떻게 죽물로라도 두 내외의 배를 채울 수만 있으면 내 고국은 떠나지 않으리라 생각하였건만 그것조차 여의치 못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마침내 서간도 길을 단행한 것이었다.

그의 내외는 차 시간이 차차 가까워 와 몇 분격하지 않은 앞에 잔뼈가 굵은 이 땅, 같은 피가 넘쳐 끓는 동포가 엉킨 이 땅을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이역의 타국에 고생할 것을 생각할 때에 실로 사무쳐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기차가 도착되자 플랫폼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기엉기 걸어나가는 사 람들 틈에는 그들 내외도 섞여 있었다. 시각이 있는 차 시간이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차에 몸을 담았다. 호각 소리가 끝나자 차는 바퀴를 움직였다.

“아! 차는 그만 가누나! 우리는 왜 이같이 눈물을 뿌리며 조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노?”

하고 그는 입속말로 중얼거리며 바람이 씽씽 들이 쏘는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차마 고국은 못 잊어 하는 듯이 눈물에 서린 눈으로 사방을 힘없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좀 더 기차가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내닫기 시작한 사정 없는 기차는 흰 연기 검은 연기 번갈아 토하며 세 생명의 쓰라리게 뿌리는 피눈물을 씻고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1927.1.7. 宣川賢洞[경천현동]의 바람 부는 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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