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달락말락한‘니시아라이바시(西新井橋[서신정교]), 난간에 기대 서서 나는 버스가 퍼치고 간 먼지를 피하여 후 참았던 숨을 한숨 비슷이 강 위에 내뿜으며 안심한 듯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똘똘 말아 왼손에 쥐었던 봉투를 무슨 보배나 같이── 보배에는 틀림없었으나 땀밴 손으로 조심조심 펴본다.

그러나 약간 상기된 얼굴에 강바람이 시원할 때 나는 급하게 두 소매로 이마에 비친 땀을 씻고 천한 웃음을 가만히 억제하며 다시 한번 시선을 100간통이 넘는 다리 위로 굴려 나를 감시하는 듯한 파출소와 순사를 곁눈질한 후,

──흥, 훔친 건 아니다.

스스로 비웃어보나 이유없이 그들이 두렵고, 불안하고 ── 그러나 다리 건너 순사의 얼굴은 이미 나와 100간통의 거리를 가졌고, 폭양(暴陽) 아래를 걷는 행인이란 젖먹이를 들쳐업은 아낙네 둘, 셋──버스가 날리고 간 자욱했던 먼지는 여지없이 바람에 흩어지며, 흐르며,

──거지짓 헌 건 아니니까…… 주니까 받았을 뿐이지

꼬기꼬기 구겨진 봉투의 주름살을 찢으려다 말고 하나하나 펴보며,

──이까진 돈쯤…….

그러나 천한 웃음이 뒤를 이어 치받치고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 나는 봉투를 펴든 채 잠깐 망설이며 달랑하는 금속의 음향을 엿듣고, 감각하고, 거의 울음지도록 몸서리치고 만다.

50전짜리 은화 네 개 ── 땀밴 손바닥에 차디찬 감촉이 알지 못하게 섭섭한 쾌감을 던져줄 때 나는 문득,

“겨우 2원 !”

입 밖에 내어 뇌이고, 그러나 고개를 흔들며,

── 허긴 벌써 세 번째니까…….

주는 것만 고맙지, 그에게 돈을 달랠 권리는 나에게 없다 ──나는 봉투를 조각조각으로 찢고 또 찢어 힘없이 한 장 두 장 흐름 위로 날리며── 그러나 다음 순간 두 손이 비었을 때 나는 급속하게 아무것도 생각 않고 걷기를 시작한다.

길거리로 즐비하게 늘어선‘야타에미세(노점)의 야키다이후쿠(구운 복어), 토모에야키(구운 오리), 후카시이모(찐 감자), 야키토리(참새구이)── 다리를 건너기 전 그렇게도 먹고 싶다 생각하던 이런 것들을 나는 흥 ── 코웃음치며 바라보고,

── 아사쿠사에 가서 우나기(장어구이 덮밥)를 두 그릇만 먹으리라

이렇게 결심하면서도 ──

그러나 무의식중에 어느덧 나는‘이모야(芋屋[우옥])’ 앞에 서서 목쉰 소리로,

"5전어치만 주우."

이렇게 말하고 만다.

배가 고팠을까 아니, 다만 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품속에 숨겨 가진 고구마를 씹는 맛 ── 그 맛을 잊지 못함에 틀림없었다. 하숙을 쫓겨난 후 한 달 ── 잘 데와 먹을 것을 못 가진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거리를 거닐며 고구마를 씹어서 요기를 하였던고. 하루 종일 까맣게 굶고 2전 혹은 3전으로 살 수 있는 최대량의 양식── 질은 문제가 아니다. 언제든 양, 양만이 모든 영양 가치를 결정하여 줄 수 있는 고구마 ── 동경 시중에 그렇게도 군데군데 산재되어있는 작은 공원을 찾아갈 사이조차 참지 못하고 나는 길을 걸으며 입안에서 고구마를 껍질까지 오물오물 씹었다. 그것이 지금에는 한 개의 습관이다. 광주리 속에 담겨 있는 김나는 고구마 ── 금방 식당에서 배불리 먹고 나온 나이건만 나는 언제든 불 일 듯하는 식욕을 감당치 못했었다. 먹음직스럽다 ── 나는 맹렬한 기세로 광주리 앞에 돌진하여“고구마 5전 !”…… 커다란 법열(法悅)을 되씹으며 이렇게 외쳤 었다.“고구마 5전 !”── 그만하면 족하다. 수중에 가진 돈이 5전이든, 10전이든, 1원이든, 판에 박은 듯이“고구마 5전 !”── 그만하면 굶주린 배라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지닌 제일 큰 화폐의 하나를 그들 앞에 내밀었다. 그들에게 나의 소지금을 자랑하려는 가여운 심사 ── 일찍이 6전어치의 고구마를 산 기억을 갖지 못한 나였다.

나는 문득 이런 것을 생각하고, 여윈 핏기 없는 손을 내려다보고, 그리고 가만히 자신을 모멸하며 먼지 앉은 무성한 잔디 ── 강 둔덕 위를 향하여 단숨에 뛰어오른다.

오늘, 내일, 적어도 이틀 동안은 굶지 않고 살 수 있다. 아니, 사람다웁게 살 수 있다 ── 그뿐 아니라 이것을 토대로 다시 한번 내 생활을 바로 세워야 할…… 힘있게 해야 하고…… 물 속에 비친 초가을의 하늘 ── 나는 고구마를 씹어서 순간 엄습하려는 조그마한 애수를 잊으려 노력하며 물끄러미 다리 아래로 흐르는 배와 구름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만다.

오늘, 내일, 적어도 이틀 동안은…… 그것만을 생각하면 족하고, 그것만을 생각할 수 있었고 ── 그날 그날만이 나의 전생애인지도 이미 오랬다. 나는 번개같이 지난날의 한 달 남짓한 말라빠진 생활을 상기해보고 스스로 그 무기력한 과거에 몸서리치며,

── 거지보다 무엇이 나을꼬.

그러나 과거는 오히려 비탄, 자조에서 끝막을 수 있어도 내일의 생활, 앞날의 생활을 꿈꾸어보는 것은 공포조차 뒤섞여 쇠약한 심신을 절망에까지 쫓고 만다. 일자리 ── 직업 ── 그런 것은‘하느님’보다도 허무한 존재요, 종교보다도 기괴한 사상이다.

── 오히려 그것이 생활이라면…….

그러나 나에게는 자존과 교양과 허영이 남아 있다. 나는 고개를 높이 들고, 배를 내밀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몇 사람의 동무를 차례로 찾아서 속였고, 이용했고, 순간순간의 내 생활을 지탱해오며 기적을 기다렸다. 동경 최하층의 주민 바타야(넝마주이)를 위하여 일생을 바쳐온 카오루 부인도 그들의 한 사람이다. 모든 동무에게 일신으론 감당 못 할 죄를 짓고 만 나는 드디어 죽은 동무의 어머니, 늙은 크리스챤 카오루 부인까지 세 번씩이나 이용하고 말았다. 이틀 전 역시 오늘같이 새파랗게 개인 날, 나는 염치를 무릅쓰고 세 번째 카오루 부인을 찾았다. 부인은 땀과 먼지에 쩐 내 주제를 놀라서 바라보며, 그러나 전과 같이 반가이 맞아주고,

“입때 계실 자리 못 구허섰군요.”

“네 ── 어디 ── 마땅헌 데가 ──”

“어서 올러오세요.”

나는 부인의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휩싸여 어머니 같은 애정 가운데서 급속하게 울음지려 하고 얼굴을 돌이키며,

“발을 좀 씻어야 ── 웬 먼지가 그리 심헌지…….”

얼굴을 돌이키며 너털웃음을 쳤다. 청명한 초가을의 하늘 ── 그러나 햇볕은 여름같이 뜨거웠다. 오쓰카’에서 니시아라이까지 30리나 되는 길을 아침도 안 먹고 걸어온 나는 두 손을 차디찬 우물물 속에 담글 때, 문득 가벼운 뇌빈혈을 깨닫고,

── 공연히 왔다. 굶더라도, 길거리에서 죽더라도…….

그러나 순간이나마 휴식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할 때 나는 얼굴을 대야 속에 파묻고 아무 생각 없이 커다랗게 두 눈을 부릅떠본다.

세수를 마친 나에게 부인은 쓸쓸하게 웃고 유카다(욕의)를 꺼내주며,

“이발허구, 목욕허구, 천천히 저녁 잡수시지.”

“괜찮어요 그버덤 좀 잤으면 …….”

나는 말을 못 맺고 얼굴을 붉히며 가늘게 몸을 뺀다. 적이 내 자신이 부끄러웁고, 하늘이 두렵고 ── 그러나, 아아, 나는 그대로 옆방에서 쓰러져 잤다.

“부인이 손수 지은 저녁을 마친 후 나는 부인 앞에 공손히 꿇어앉아 낮은 목소리로,

“내일 아침엔 일찍 가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가시다니…….”

“………”

“가실 데가 있에요.”

“네 ── 신문 배달을 헐까 허는데……그것두……그저…… 그래서 오늘은 하직 겸…….”

── 수건으로 얼굴을 동이고 파타야나 될까 즈케(찬밥)도 먹고, 오캉(노숙)도 해보고 도리어 그것이 생활일지도 모른다.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그러나 나는 이리나와 그 주위를 둘러싼 가지가지의 풍경 ── 목욕탕도, 담배 가게도, 고가선(高架線)도, 개울도, 모두 나를 낳은 고향에 못지않게 눈에 익고 마음에 익었다.

“오뎅 주세요.”

“오 ── ”

사내같이 탁한 할멈의 목소리가 들리어온다. 가만히 울려던 나는 황겁하여 그 자리를 떠나며

── 진작 니시아라이로나 갈걸, 큰일났다 어디서 자나.

텅 비인 까라쥬 벽에가 기대서서 나는 눈앞을 지나는 전차를 바라보고 7전짜리 니힐을 쓰디쓰게 씹어삼킨다.

── 밤새도록 걸어가봐 ?

그러나 나는 중도에서 쓰러졌단…… 그럴 리는 없었지만…… 그래두 혹시…… 지금 같애선…… 이런 것을 생각하고, ── 기적이란 이런 때 있는 법인데.

왜 이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노. 나는 혼자서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문득 시선을 발 아래로 옮긴다.

담배가 떨어져 있다. GOLDEN BAT 그 아홉 자를 다 읽을 수 있도록 길었다. 나는 머리에 피가 오르는 것을 깨닫고,

── 담배를 못 먹은 지도 벌써 하루가 넘는다.

모든 생각이 그 한 개의 담배로 집중되었다. 갖고 싶다. 주울까. 그러나 길에 떨어진 담배를 줍는 것에 나는 일종의 파계나 하는 듯한 두려움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면 망설이고 만다.

바람이 일었다. 한치 두치, 탄지(덜 타고 남은 담배)는 굴렀다. 나는 그것을 노려보고 에이 그만둬라, 담배 못 먹기로 죽겠나…… 이렇게 결심하려 할 때, 급한 바람 그리고 탄지는 단숨에 세 치를 굴렀다.

다음 순간 전광같이 허리를 굽힌 나는 눈을 감고 탄지를 집어들며

── 후 ──

가슴이 울렁거리고 전신에 소름이 쪽쪽 끼친다. 나는 탄지를 움켜 쥐고 바르르 떨며, 룸펜(부랑자) 룸펜 입안에서 뇌어본다 ── 룸펜이라기로 무엇이 두려우랴. 후 ── 나는 결심하여 성냥을 꺼내들고 커다랗게 숨을 내쉬 인 후 탄지를 붙여 물고 힘있게 두 발을 내디딘다.

룸펜 ── 나는 그 순간 한 개의 쓰레기통을 생각해 내고 만다. 목욕탕과 할멈집 사이에 뚫린 좁다란 골목 ── 컴컴한 골목 속엔 두 집에서 공용하는 커다란 쓰레기통이 한 군데 놓여 있다. 그 쓰레기통 ── 거기까지는 불빛이 안 왔다. 그리고 넉넉히 한 사람쯤은 쉴 수 있었다.

── 오늘 밤은 그 위에서 새리라.

나는 발길을 돌이켜 몇 걸음 걷는다. 그러나 목욕탕 앞에 밝음 속에서 문득 나는 그곳을 피하려는 맹렬한 충동을 느끼고 열병 걸린 사람같이 전신을 떨고 만다.

── 아아, 이러구서두 살면…….

그러나 나는 두 주먹을 부르쥐고,

── 나는 룸펜이다.

자조와 격려를 뒤섞어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깔깔 웃고 급한 걸음으로 골목 앞을 지난다. 쓰레기통은 확실히 놓여 있다. 나는 만족과 안심을 느끼고 다시 한번 걸음을 빨리 하여본다.

골목 속은 퍽이나 아늑했다. 순사, 야경, 또는 취객들의 눈만은 능히 피하고도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쓰레기통 위는 다리를 꺾고도 눕지 못하도록 좁았고 더구나, 평탄치 않은 널판은 결코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밤새도록 머리 위 지붕과 지붕사이를 고양이가 날뛰고, 습기와, 이취(異臭)와, 찬바람이 한군데 모여 움직일 줄을 몰랐다. 나는 게다를 벗어서 깔고, 무릎을 안은 채 차디찬 판장에 머리를 기댄다.

── 좀 자야 할 텐데…….

몸은 극도로 피곤하였으나 좀체로 잠은 오지 않았다. 시각을 따라 두 눈이 붓고, 충혈되고, 들키겠다 ── 하는 이 한개의 공포만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왕래한다.

나는 너무나 큰 어둠과 고요함 속에서 불같이 타는 두 눈을 크게뜨고, 어서 날이 밝아라. 그것만을 기다렸다. 현재의 비참을 울 수 있기는커녕, 장차로 내 앞길에 무엇이 다가올지, 또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그런 것 모두를 완전히 생각 않는 나였다. 나는 한개의 조상(彫像)이나 화석같이 옹그리고 앉은 채 새벽만을 기다린다. 새벽이 오면 ── 새벽이 오면, 햇볕만이라도 있다.

그러나 새벽보다 먼저 나를 그곳에서 쫓아내인 사람은 신문 배달부였다. 주위는 아직도 밤중같이 캄캄했다. 나는 무거운 발자취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본다. 골목 어귀를 젊은 학생이 신문을 안고 지났다. 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맨발로 뛰어내려 구석에서 숨어본다. 그러나 신문 배달부는 빠른 걸음으로 자기 갈길만을 걸었다.

후 ── 크게 그러나 조심조심 나는 숨을 돌리고 한 발을 떼어본다. 목이 돌지를 않았다. 마디마디가 차디차게 딱, 딱, 들어맞는다. 발소리를 죽이고 골목을 나서서 다시 한번 후 ── 그리고 걸음을 빨리하여 일 가진 사람같이 정거장을 향해서 걸었다.

오는 듯 마는 듯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허정허정 스가모, 경찰서 뒷문을 나서다가 아찔하는 머리를 콘크리트 담에 기대고 추위를 재촉하는 하늘을 쳐다보며 ── 내가 하숙을 쫓겨날 때도 이렇게 비가 왔다 ── 그것이 공교로운 우연으로만은 생각되지 않고, 나는 1주일만의 자유를 가슴에 안은 채 빠른 속도로 울음지려 한다.

보따리를 안고 하숙을 나올 때, 그때는 나는 정거장 사람 틈 속에서 남모 르게 울었다.

그러나 그때는 오히려 수중에 8원이란 돈이 있었고, 찾을 동무가 있었고, 앞날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비를 맞으며 ── 비를 맞으며, 지금은 ? 등지고 나온 유치장이 생활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숙이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

나는 돌려준 가지가지의 자유를 마음속에서 가만히 장난감 삼으며 다만 하나 절망, 그것만을 부둥켜안고 힘없는 다리로 겅중겅중 거리를 뛰어가본다.

실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얼굴이 젖고 머리가 젖고 엷은 셔츠를 통하여 가슴에까지 비는 뱄다. 나는 돌연히 엄습한 추위에 몸서리치고, ── 대체 어디를 가노.

문득 나는 내 발이 어두컴컴한 골목 속에 들어선 것을 깨닫고 전신의 혈관이 얼어붙도록 놀란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그 골목 ── 바른쪽으로 다섯 집 왼쪽으로 네집, 쓰로져가는 빈집이 늘어서 있는 그 골목 ── 1주일 전, 나는 그 바른쪽 셋째집에서 순사에게 목덜미를 잡히어 사정없이 거리로 붙잡혀 나왔었다. 그 골목 ── 그 빈 집을 향하여 나는 어느덧 발을 옮기어왔다.

── 여기를 또 오면 어떻게 헐 작정야.

── 여기 아니면 어디 갈 데가 있어.

── 니시아라이라두……

── 너두 사람이냐 ?

── 헐 수 없는 일이지

나는 고양이 새끼 모양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몸을 날리어 무성한 풀을 헤치고 ‘캇테(朕手[짐수])’로 뛰어들었다.

‘아마도’를 닫은 방안은 밤중같이 어두웠다. 문 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밝음 속에서 흙 묻은 발자취와 신문지 나부랭이와 무너진 마룻장들이 가냘프게 하늘하늘 움직이는 것 같다. 찬바람 어린 방안에는 알지 못할 이취와 곰팡내가 코를 찌르고, 구석구석에 고인 어둠 속에선 수없는 악마들이 뒤끓어 나왔다. 대낮에 보는 빈 집은 어둠 속에서보다 몇 배나 더 침울했고, 공허했고, 몸서리쳐졌다. 그러나 나는 서슴지 않고 맨발로 마룻방 위에 올라선다.

방 한가운데 침대같이 쌓아올린 여섯 장의‘다다미’ ── 쓰레기통 위에서 하룻밤을 새고 지금부터 1주일 전 순사에게 끌리어 나올 때까지 나는 사흘 밤을 이 ‘다다미’ 침대에서 잤다. 야시로 공원으로 거리로 밤늦도록 힘없이 헤매이고 날마다 자정이 넘기를 기다려 이 집을 찾아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꺼린 것은 물론이려니와 또 한 가지 이유는 스스로 내 마음을 절망에까지 쫓아, 밤이 이렇게 늦었으니 또 그리로 갈 수 밖에 없군, 이렇게 결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쓰레기통보다 ‘다다미’ 침대는 훨씬 편했다. 공포도 슬픔도 자조도 있고 나는 죽은 듯이 첫날밤을 잤다. 그리고 이튿날 밤도 사흘날 밤도 ──

새벽엔 반드시 날이 밝기 전에 눈을 떴다. 잠이 깨면 사지가 찌뿌드드하고 머리가 무겁고 ──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또 동경 거리를 헤맨다, 그것은 확실히 백치의 생활이었다. 아니, 동물의 생활이었다. 백치는, 동물은, 자기 자신이 인간 이외의 물건이란 것조차 언제든 깨닫지 못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고(思考)를 갖지 않았다.

스가모 경찰서 사법주임은 안경 너머로 나를 흘겨보며‘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하여 주었다. 그러나 고향에선 무엇이 나를 기다리나. 아니, 내가 돌아갈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 어 ── 춥다.

나는 문득 돌아누우려다 서울에 남기고 온 다만 하나의 누이를 생각하고 얼마 전에 온 애달픈 그의 편지를 마음속에서 되풀이해 읽어본다.

── 오빠. 나두 오빠 있는 데 갈 테야.‘오마니’소리 듣기가 인제는 정말 싫여 죽겠에요. 주인 마누라가 앓는다고 오십이 넘은 주인놈이 틈만 있으면 귀찮게 굴어서 서울에 있기 싫여 오빠. 오라구만 그러면 내월엔 떠나겠습니다. 겨우 1원 주인놈한테 꾸어서 보냅니다. 나 혼자 이렇게…….

그 편지에 대하여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아니 그 어리석은( ! ) 하소연조차 들어주려고 마음먹지 않았다.

── 불행한 사람이 너 하나뿐이 아니다.

나는 알지 못할 분함을 느끼고, 혼자서 이렇게 외치며 그 1원을 술과 바꾸었었다.

── 어 ── 춥다.

나는 망상을 떼치려 또 한번 맹렬히 돌아누우며

── 동경으로 오랄까.

잠깐 그것을 생각하고나서는‘죽어라 ! 죽어 !’──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온몸을 힘껏 쥐어 뜯는다.

얼굴이 확확 달고, 팔, 다리, 가슴에 피가 배어 올랐다. 나는 허심히 그것을 바라보고, 급한 피로를 한꺼번에 느끼며 다시 축 늘어져 쓰러지고 만다.

── 담배가 먹고 싶다.

배알이 터진 담배 꽁초들이 딴 때보다 수없이 길가에 흩어져서 빗물에 젖는 양을 나는 뚜렷이 눈앞에 그려보고

── 아, 담배가 먹고 싶다.

그렇다, 배도 고팠다.‘고류아케(拘留明[구유명])’라고 오늘은 경찰서에서 아침도 안 먹었다.

── 오정은 지났을걸. 어 ── 춥다.

바람이 일은 것 같다. 빗방울이 구슬프게 차디차게 ‘아마도’를 때리고, 마당에 무성한 풀들이 흔들리고 ── 그러나 그뿐이다. 빈 집을 에워싼 거리의 일곽(一廓)은 도회의 소란 밖에 외따로 놓여 있다. 그뿐이다. 때때로 북풍같이 찬바람이 마루 틈으로 벽 틈으로 여지없이 스며들어 헐벗은 살을 에인다.

── 어 ── 춥다.

전신에 소름이 빈틈 없이 끼친다. 나는 도리질을 하고, 몸서리치고

── 신문지 조각이 있었지.

나는 신문지 조각을 긁어 모은 후 조심조심 마룻장을 벗겨 가늘게 쨌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그것은 딱 하고 큰소리를 내어 부러질 때마다, 나는 등어리에 진땀을 흘렸다.

나는 신문지 조각과 한 아름의 장작을 안고 다시 오시이레 속으로 기어든다. 그러나 비에 젖은 성냥은 세 개비밖에 남지를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불이 켜질 것같이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대로 단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결심하고 조마조마 첫 개비를 떨리는 손으로 그어본다.

희미하게 찍 하고 첫 개비는 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더한층 정성을 들여 둘째 개비 ── 첫번에 황이 반쯤 부스러졌다. 그것을 뒤집어 두 번째 ── 그러나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다. 나는 다시 한번 추움과 조바심에 몸서리치고,

── 인제는 틀렸군. 불두 못 필 신세인가.

가늘게 떠는 손으로 마지막 한 개비의 성냥을 들고

── 안 피는 게 날는지도 모르지. 불이나 냈단……. 불은 안나더라두 연기가 퍼졌단 큰일이다.

그리고 거의 허심히 나는 그 마지막 한 개를 긋는다. 찍 또 한번 찍 ──

아니 두 번째는 의외에도 확하고 불이 켜졌다.

── 응 ?

나는 황망이 불을 신문지로 옮기며,

“이것 봐라 !”

부지중 중얼거리고 장작을 올려 쌓으며 얼굴을 스치는 불길을 울음지며 노려본다.

── 불이 피어졌다.

좁다란 오시이레 안으로 연기가 어리고 돌고 장작에 타오른 불길은 천장에까지 닿았다. 얼었던 피가 무서운 속력으로 체내를 달음질 치고, 눈, 사지, 머리로 순식간에 독이 오르는 것을 나는 깨닫고 만다.

── 잘 탄다. 타거라, 타 !

나는 거의 미친 듯이 있는 대로 장작을 쌓는다.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며 두 손을 높이 들어 의미 없는 춤을 추고, 커다랗게 벽에 비친 기괴한 그 그림자를 웃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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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