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두 송이
편집1
편집울면서 이야기 하는 식모의 말을 들으면, 칼모친이라는 약을 먹은 이튿날 아침, 그러니까 十五〔십오〕일 아침이었다. 옥순이가 먼저 발견을 하고 의사를 청했는데, 발견한 시간이 비교적 빨라서 의사도 희망을 가졌으나 원체 약을 굉장히 많이 먹었기 때문에 서대문 병원에 입원한지 다섯 시간만에 유경은 종시 절명하였다. 그것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다는 역사적 방송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다. 자연사(自然死)가 아니고 손수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몇몇 친척 이외는 통 알리지 않았다. 탑골동에는 전보를 쳤으나 시골이 어서 배달이 빠르지 못했다 . 시국이 분분한 때라, 안성 선산으로는 차차 옮기기로 하고 우선 미아리 공동묘지에다 산소를 쓰기로 하여 三〔삼〕일장인 오늘 아침, 바로 한 시간 전에 상여가 나갔다고 하며
「빨리 가시면 아가씨를 만나 보실 꺼야요. 서방님은 무정하시지, 아가씨가 얼마나 서방님을……」
식모도 행주치마로 얼굴을 가리우며 흑흑 느낀다.
「미아리……미아리……」
영민은 잠고대처럼 미아리, 미아리를 되풀이하며 허둥지둥 현관을 나서자 아현동 고개를 무서운 기세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전차도 탈 수 없고 자동차도 붙잡을 수가 없다.
물결치는 군중 속을 영민은 그저 달렸다. 총알처럼 달렸다. 종로서 안국동으로 접어 들어 네거리까지 다달았을 무렵에 영민은 간신히 택시─ 하나를 잡아 탔다.
「미아리 ─ 대지급으로 미아리……」
쿳숀에 몸을 내던지자
「오오 ──」
하고, 영민은 두 손으로 얼굴을 탁 가리웠다. 손가락 사이로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 눈물, 눈물……
「기적은 갔다! 기작은 나를 버리고 영원히 가 버리고 말았다!」
영민은 돌연 머리를 들고 애원 하듯이 운전수를 불렀다.
「여보, 운전수 양반, 좀더 빨리 달려 주시오. 유경이가…… 내 아내가 땅 속에 묻히기 전에 좀 더 빨리……」
그 말이 너무도 처량하여 운전수는 후딱 뒤를 돌아다 보며
「네, 네……」
하고, 역시 감정이 어린 대답을 하였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서서 얼마간 달리다 보니 멀리 공동묘지에 상여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 바라보였다.
「유경이다! 유경이가 저기 있다! 저기서 유경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묘지 입구에서 영민은 차에서 내렸다. 돌뿌리에 채우고 나무 가지에 찢기우면서 무덤과 무덤 사이를 영민은 무섭게 뛰어 올라갔다.
「아, 백형이 옵니다!」
준혁이가 먼저 영민을 알아 보았다.
「오오, 백군!」
오 창윤은 벌떡 일어서며 영민의 손을 꽈악 부여 잡았다.
「선생님!」
영민은 어린애처럼 오 창윤의 가슴에다 머리를 파묻고 몸부림을 쳤다. 영민에게는 누구보다도 가장 이해가 많던 오 창윤이었기 때문에.
「늦었소. 유경은 종시 자기 길을 걸었소!」
오 창윤이도 운다. 영민도 운다.
「아이구, 가슴이야! 아이구, 유경아! 금동이 아범이 왔구나!」
영민이가 나타나자 부인의 울음 소리는 갑자기 높아졌다.
2
편집향은 좋으나 그리 넓지 못한 묘지였다. 관은 아직 묻지를 않고 있었다. 장방형으로 길게 패워진 커다란 구렁지를 인부들이 무신경(無神經)하게도 부삽으로 곱게 다듬고 있었다. 밑바닥에 석회(石灰)를 두텁게 깔고 파낸 벌건 흙에도 석회가 듬뿍듬뿍 섞여 있었다.
영민을 맞이하자 부인네들의 곡성은 커질대로 커졌다. 백포를 덮어 놓은 관 머리에 부인은 악착같이 들어 붙어서 관을 자꾸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주먹으로 땅을 쳤다. 땅을 친 주먹이 이번에는 가슴을 친다.
「유경아, 이 무정한 년아!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영민이가 왔다는데, 너는 왜 한 마디 이렇다는 말도 없이 잠자코만 있다는 말이냐?……
그러다가 부인은 와락 달려들어 관 앞에 꿇어 앉은 영민의 어깨를 긁어 잡고 무섭게 흔들어 댔다.
「그래 유경이가……내 딸 유경이가 왜 죽었는지나 알우?……유경이가……
내 딸 유경이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 지경이 됐다는 말이요?……아이구, 가슴이야 ──」
부인은 두 손으로 영민의 가슴패기를 자꾸만 두드렸다. 그러다가는 또 자기 가슴을 무섭게 긁어 대곤 하였다.
옷 매무새를 단정히 거두고 영민은 돌부처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좌악좌악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영민은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아무런 것도 생각키우는 것이 없다. 그저 한 가지
「가엾은 유경이었다!」
하는, 일념 뿐이었다.
이윽고 관을 묻게 되었을 때, 영민은 펄떡 정신을 채리며 오 창윤 내외를 향하여 당황히 고개를 들면서 말인지, 울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로 애원을 하였다.
선생님 「 , 사모님! 유……유경이의…… 얼굴을 한번만……한 번만 보여 주실 수 없을까요? …… 단 하나의 제 청을 들……들어 주실 수 있으시다면 저는……저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그러면서 영민은 다시 머리를 푹 수그리었다. 그말에 부인은 펄쩍 뛰면서
「아니, 산 사람을 소홀히 한 것만두 생각하면 가슴 아픈 노릇인데, 죽어 저승에 두 편히 못 가라구 그런 말을 해? 그처럼 내 딸이 중하담 왜 생전에 좀 더 소중히 못 했노?」
그때 오 창윤이가 부인을 막으며
「백군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요. 그러나 일단 입관(入棺)한 뒤에는 절대로 시신(屍身)을 다룰수 없오.」
영민은 다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영민은 관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관 전체가 유경의 육신인양 영민의 손바닥에는 느껴졌다. 손가락으로 관을 한번 꼭 눌러 보았다. 딱딱하다. 너무도 딱딱하다. 그러나 그 이상 더 힘을 주어 눌러 보는 것이 유경의 육체를 학대하는 것 같아서, 송구하다. 송구해서 영민은 꼭 눌러 본 자리를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마침내 관은 무덤 속에 내리워졌다. 석회를 깐 밑 바닥에 괴임 나무를 앞뒤에 괴이고 관은 천천히 내리워졌다. 곡성은 일제히 높아지고 조객들은 최후의 순간을 마음으로 애도하였다. 관 주위에 석회를 다져 넣고 관 위에도 석회를 덮었다. 흙이 덮혀진다. 한삽 한삽 흙이 관을 덮기 시작하였다.
「아아, 답답해요! 유경이가 숨이 답답해요!」
흙이 관 전체를 덮어 버렸을 때, 부인은 광란의 부르짖음을 부르짖었다.
허무감이 일동의 가슴을 무섭게 눌렀다.
3
편집── 해주 오씨 유경지묘(海州 吳氏有瓊之墓) 임시로 해 세운 백목(白木) 묘표에 모필로 씌여진 여덟 글자가 인생의 허무를 말하여 주고 있었다.
인적이 흩어진 묘지 위에 저물어가는 팔월의 태양이 아직도 이글이글 불붙고 있었다.
영민은 지금 두 시간 동안이나 홀로 묘 앞에 꿇어앉아 있는 것이다. 오 창윤과 준혁의 간곡한 만류를 무릅쓰고 유경을 생각하는 조용한 시간을 달라고 영민은 애원하였던 것이다. 부처님 모양으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유경의 영전에 머리를 좁고 있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러고 , 앉아 있다가 이윽고 영민은 몸을 일으켜 유경이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들국화 한 포기를 떠다 묘표 앞에다 심었다. 그러나 꽃이 한 송이 밖에 피어 있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영민은 그것을 뽑아버리고 두 송이 짜리를 떠다 다시 심었다. 그리고는 산 사람에게나 타일르듯이 중얼거렸다.
「유경이는 나뻐요. 같이 간다고 해 놓고 혼자 가는 법이 어디 있소?……
그러나 유경인 꼭 내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소. 참 좋은 말을 했소!」
그러면서, 영민은 비로소 묘 앞을 떠났다. 넋없는 허수아비 모양으로 털썩털썩 미아리 고개를 넘어 문안을 향하여 걸어갔다. 문안이 가까워짐을 따라 주위는 차츰차츰 소란해 졌다. 태극기를 든 사람이 많이 지나다녔고 만세 소리도 가끔 가다 들렸다.
혜화동을 지나고 원남동을 지나서 종로 四〔사〕가에 다 달았을 무렵에는 거리는 완전히 군중의 물결 속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다.
「만세! 만세!」
많은 행렬이 쉬일 새 없이 지나갔다. 어떤 자는 영민의 코 앞에다 태극기를 대고 흔들면서
「이 자식아, 정신 좀 채려라!」
하고 고함을 치면서 지나갔다.
종로 三〔삼〕가 네거리까지 왔을 때, 영민은 돈화문 쪽으로부터 긴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영민은 걸음을 멈추고 행렬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는데 서대문 쪽에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다가 행렬이 끝나자 네거리를 건너 영민이가 끼여 섰는 군중 앞으로 스름스름 움직여 왔다.
「만세!」
추럭 위에서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만세!」
군중도 호응하여 손과 기를 들었다.
영민은 그때 트럭 위에서 낯익은 얼굴 네 개를 보았다. 춘심이와 신 성호, 그리고 장 일수와 어깨동무를 하고 두 손을 번쩍 하늘 높이 쳐든 것은 운옥이었다.
「자유 조국 독립 만세!」
장 일수의 폭 넓은 목소리가 창공을 뒤흔들었다.
운옥은 군중을 향하여『동해물과 백두산』을 소리 높이 부르고 있었다.
뛰어 가면 올라 탈 수 있고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그러한 간격을 가지고 트럭은 지나가건만 영민은 부르지도 않고 뛰어 오르지도 않은채 꿈결처럼 멍하니 트럭의 뒷모양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세상은 행복해진다……모두들 행복해진다.……」
오늘 아침까지도 운옥의 출옥을 그처럼도 안타깝게 바라던 영민이었건만, 그리고 영민은 운옥의 자태를 분명히 보았건만 영민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동도, 아무런 기쁨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행복해지는데……유경은 갔다…… 금동이도 갔다……어서어서 나두 가야지…… 나두 내 길을 가야지……!」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부처님같은 얼굴로 영민은 이윽고 발굼치를 돌려 네거리를 털썩털썩 건너갔다.
축 늘어진 두 어깨 위에 앙상하게 목을 늘이고 망가진 마네킹 인형인 양네 개의 팔 다리가 조절을 잃은채 제가끔 짝짝이 놀았다.
무서운 고독과 허탈의 세계가 영민을 완전히 지배 하였다. 파동치는 군중 속에서 영민은 사막(沙漠)을 갔고 울부짖는 함성 속에서 영민은 유곡(幽谷)을 걸었다. 영민은 지금 완전히 한 사람 군중 속의「로빈손 . 쿠루 ─ 소」
가 되어 죽음의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 갔다.
「머리 빗고 분 바르고……눈썹 짓고, 연지 찍고… 아아, 유경은……왜 혼자만 먼저 갔소? ──」
4
편집이튿날 아침, 미아리 유경의 묘 앞에서 독약을 먹고 쓰러진 영민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 주머니에서 나온 유서에는
「선생님. 저의 죽음으로서 바라는 단 한 가지의 소원이 있사오니 부디부디 저를 유경씨의 옆에 묻어 주십시요.」
한 간단한 한 마디가 적혀 있었다.
〈大尾〔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