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체
편집1
편집피꺽피꺽 살아 날 것 같은 이쁜이의 모양을 들여 다 보자 선장 황 일봉은 일단 포기하였던 불길이 다시 불타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선원이 재촉하는 바람에 이쁜이를 그대로 태운 채 출범할 생각으로
「출범 준비!」
를 명령해 놓기는 하였으나 다행이도 이쁜이 구조에 협력을 한 다른 배의 선원들이 봉황호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이쁜이를 실은채 그대로 내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척 초조한 얼굴로 또 한번 물었다.
「정말 살아 날것 같애?」
「살아 나구 말굽쇼. 피꺽피꺽 숨을 돌이키지 않습니다!」
인공 호흡을 시키던 선원이 그렇게 자신있게 대답을 하였을 때였다.
「이거 그 여자의 보따리가 아닙니까?」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아, 당신은 춘심이의 남편……」
선원 하나가 익살스런 대답을 하였다.
「보따리가 축대 위에 굴러 댕기기에……아마 그 여자의 물건 같에서 ……」
그러면서 사람들 틈으로 얼굴을 내밀다가
「앗 ──」
하고 신 성호는 외쳤다.
「아, 운옥씨?……」
성호는 와락 달려 들었다.
「누구?……우녹이?……」
황 일봉의 눈이 번쩍 빛나며
「금순이가 아니구요?」
하였다. 그 순간, 성호의 머리를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박 준길을 죽이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말을 춘심이 한테서 들은 석달 전의 기억이었다.
그렇다면 운옥은 필히 변성명을 사용하였을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금순입니다……」
「그래 이 금순이가 당신이 찾고 있는 춘심이라는 사람이요?」
물에서 같이 운옥을 끌고 나온 사나이 하나가 물었다.
「그……그렇습니다! 춘심입니다! 아내입니다!」
「거 이름이 많기두 하네!」
익살스런 선원의 말이다.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요?」
「석달 전에 쌈을 하구 집을 뛰쳐 나왔지요. 아, 춘심이!」
그러면서 성호는 운옥을 들여다 보며
「살까요?」
「염려 마시우!」
「고맙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이쁜이의 본 남편이 나타난 때문에 선장 황 일봉은 하는 수 없이 스름스름 꽁무니를 빼면서
「자아, 시간이 없다! 빨리 떠나자!」
하고 선원들에게 출항을 재촉하면서 성호에게
「배가 떠날테니 부인을 업고 빨리 내리시요.」
「미안합니다. 여러분!」
성호는 운옥을 업고 선원의 부축을 받아 가면서 발판을 건너 축대로 올라왔다.
「못 난 자식! 그처럼 예쁜 색시를 다리고 살을려면 돈을 벌어야 해, 돈을……」
그런 소리가 등 뒤 안개 속에서 들려 왔다.
이윽고 봉황호는 짙은 안개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고 성호는 다른 뱃사람 하나의 안내를 받아 운옥을 평양 객주집 구숭숭한 골방에다 옮겨 눕혔다.
2
편집이쁜이의 이 뜻하지 않은 투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 차례 뒤끓던 객주집 사람들도 이제 모두 잠이 들어버린 오전 네 시 ── 운옥은 비로소 기나긴 한숨과 함께 눈을 후딱 떴다. 그러나 후딱 떴던 눈은 힘 없이 감기어 버리고 다시금 깊은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주인 마누라의 말을 들고 성호는 어렴풋이는 알 수 있었으나 오늘 밤 안개 짙은 축항에서 황가 와의 사이에 벌어진 일은 물론 알 바가 없었다. 마누라는 이쁜이의 남편이라는 이 사나이에게 모든 책임과 시중을 맡겨놓고 들어가 버렸다.
오전 다섯 시 ── 운옥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듯, 눈을 뜨고 자기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신 성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 신…… 신 성생님?……」
운옥은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힘 없이 누워 버렸다.
「운옥씨! 정신을 좀 차렸읍니까?」
「신 선생님, 웬……웬 일이셔요?」
운옥의 몽롱한 눈동자가 성호의 얼굴을 쏘는듯이 쳐다본다.
「운옥씨, 좀더 주무셔야겠읍니다.」
「어떻게 여길 오셨나요?」
그러다가 운옥은 비로소 상실되었던 기억을 새롭히며 공포에 찬 얼굴로
「아, 황가! 그 무서운 황가는 어디……어디 있어오?」
「황가라니요?」
「선장…… 봉황호의 선장……」
거기서 성호가 뱃 사람들과 함께 운옥을 바다에서 건져 낸 이야기를 쭉 하였을 때, 가만히 듣고 있던 운옥이가 갑자기 얼굴을 베개 위에 파묻으며
「으흐흐……」
하고 무섭게 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운옥은 살기를 원한 사람이 아니었다.
「선생님, 왜… …왜 저를 구해 주셨나요?…… 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질 않고 저를…… 건저 주셨나요?……」
죽는 길이 운옥으로서는 사는 길이었다. 산다는 것이 운옥에게는 죽음 보다 무서웠다. 그 무서운 길을 운옥은 또 걸어야 하는 것일까? ── 언제까지?…… 그리고 또 어디까지?……한이 없는 슬픔, 끝이 없는 눈물 속에서 운옥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느껴 울고 있었다.
「운옥씨, 삽시다!」
성호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고달프나마 운옥씨, 삽시다!」
「저는…… 저는 살 수 없는 몸이야요. 저는 사람을……사람을 죽인 살인범이야오!」
「압니다. 다 알고 있읍니다.」
「아시면서 왜 저를……」
「백군과의 관계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시면서 왜 저를 건져 주셨나요?」
「운옥씨!」
「흐흣, 흐흣……」
「산다는 것이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뚜우뚜우 ── 기적 소리가 들려 온다. 바다 위에서 먼 동이 트기 시작한다.
「운옥씨, 캄캄한 밤은 가고 새벽이 찾아 옵니다. 그 암야(暗夜)의 도정(道程)에서 운옥씨의 목숨은 일단 죽었읍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앞에는 아름다운 새벽이 찾아 옵니다. 훤하게 먼 동이 터 오고 있읍니다. 현재 운 옥이에게 의존하고 있는 그 생명은 어젯밤에 그것이 아닙니다. 어젯밤의 운옥씨의 캄캄한 생명은 죽었읍니다. 그러나 현재 운옥씨가 지니고 있는 생명은 아름다운 새벽의 생명, 훤하니 먼 동이 터 오고 있는 새로운 생명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면서 성호는 한층 더 정열적인 어조로
「운옥씨! 갱생(更生)의 제 일보를 힘차게 내 짚읍시다! 오늘 아침에 있어서의 운옥씨의 생명력은 어젯밤의 그것의 연속이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력!
새로운 운옥씨가 이 세상에 탄생한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명력의 의존체인 은옥씨에게는 (依存體) 이미 과거가 있을 수 없읍니다. 그 과거는 어젯밤에 죽어버린 낡은 운옥씨의 과거일뿐, 새로운 생명체인 운옥씨에게 희망과 장래가 있으면 있었지, 단 한 시간의 과거도 있을 수 없읍니다! 은옥씨, 삽시다! 인생의 쓰레기 박 준길을 잊어 버립시다! 백 초시의 외아들, 운옥의 끄나불인 백 영민을 잊어 버립시다! 그러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운옥씨의 생명이 힘차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호는 일단 거기서 말을 끊었다가
「자아, 이 날이 밝기 전에 이 곳을 떠납시다. 잘못해서 날이 밝으면 자살 미수자인 이쁜이의 과거가 문제가 되어 당국에서 신분 조사를 올지도 모르니까요. 서울로 올라 갑시다. 불행히도 경제적인 여유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운옥씨 한 몸을 당분간 피신시킬 수 있는 그러한 성산이 있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