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33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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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요?」

축항 밖으로 헤엄쳐 나가면서 성호는 고함을 쳤다.

「여기요! 여기……」

十[십]여간 밖에서 그 누구의 대답이 들렸다. 수영에는 자신이 있다. 「대동강의 물오리」이던 콘사이즈가 아닌가. 전 속력으로 헤엄쳐가고 있을 때

「됐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됐소?……」

일종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외침이 성호의 입으로부터 튀어 나왔다.

「됐다, 됐다!」

또 다른 목 소리가 들렸다. 목 소리가 모두들 갑자기 명랑해 졌다.

「춘심일 죽여서는 아니 된다!」

춘심이를 죽이는 온갖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줄 잘 알고 있다. 성호의 눈앞에는 뱃사람들의 그 명랑한 목소리가 한 줄기 광명을 던져 주었다.

「여자다!」

첨벙거리는 물장구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이번엔 성호의 코 앞에서 들렸다.

「춘심이! 춘심이!」

성호가 다가 가서 마침내 춘심이의 무거운 몸뚱이를 잡았다.

「아는 사람이요?」

어둠 속에서 목 소리가 났다.

「네, 네…… 내 아내야요, 아내… 빨리, 빨리…」

성호까지 네 사람이 춘심의 몸뚱이를 부축하고 제일 가까운 데 있는 배를 향하여 헤엄쳐 갔다.

「밧줄을 내려 줘요! 밧줄을……」

한 사람이 소리쳤다.

「자아, 밧줄이다!」

칸테라 불빛이 우쭐거리고 있는 배에서 대답이 왔다.

「빨리 밧줄을……」

그러는데 성호의 손에 밧줄이 잡혔다. 성호는 어쩔 줄을 모르고 덤벼만 댔으나 뱃사람들은 그리 떠들지 않고 춘심의 양 옆구리로 밧줄을 돌려 동여매는 것이다.

「자아, 끌어 올려라!」

「오라잇!」

배 위에서 명랑한 소리가 났다.

「영차 ─」

「다칠라! 가만, 가만히……」

「영차 ─」

「영치기 ─」

「영차 ─」

「영치기 ─」

팥자루처럼 축 늘어진 춘심이의 몸뚱이가 사람들의 눈 앞에서 쑤욱 위로 올라가는 순간

「아, 발목을…… 발목을 비끄러 맸구나!」

하는 소리가 성호의 귀 옆에서 들렸다.

「발목을……?」

성호는 눈 앞이 아찔해지며 핑 눈물이 돌았다. 그렇게까지 춘심은 살고 싶지를 않었든가! 자기의 무력과 자기의 온갖 무성의가 무섭게 뉘우쳐지는 것이다. 사랑만을 먹고 살 수 없는 춘심이에게 사랑만을 먹고 살라고 외친 자기 자신이 춘심이의 인권(人權)을 유린한 애욕의 폭군이었던 것을 신 성호는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

최후의 영치기 소리와 함께 춘심이의 몸뚱이는 배 위로 올라 갔다. 뒤이어 밧줄이 또 내려 와서 물 위에 뜬 뱃사람을 하나씩 끌어 올려 갔다. 최후로 성호가 밧줄을 잡았을 때였다. 배 위에서 서너 개의 칸테라 불이 한 곳으로 집중이 되더니

「앗, 이건 이쁜이가 아닌가!」

하고 놀라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 평양 객주집 식모 이쁜이다!」

「이쁜이가 이게 웬 일이야?」

「빨리 엎드려서 물을 토하게 하야지 않어?」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광경이 기운없이 밧줄을 잡은 성호의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춘심이가 아니었다!」

성호가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지금까지의 온갖 망상이 운무처럼 성호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역시 기우였다!」

사시미와 정종이 기다리고 있는 안국동 한 간 방이 성호는 그리워진다. 살아 있어 준 춘심이가 한없이 고마와진다.

해산물 어매를 하는「평양객주」는 二[이]년 전 평양이 야따리 선창에서 이 인천 부두로 옮아 온 객주 집이다. 전선 각지에서 몰려드는 해산물 무역 상인과 뱃사람이 한데 뒤섞여서 팔고 사고 먹고 자고 하는 여각(旅閣)이다.

이 평양객주의 식모가 얌전하고 모습도 예뻐서 뱃사람들에겐 여간한 인기가 아니었다. 장사아치들도 그렇고 뱃사람들도 그렇고 같은 값이면 이쁜이가 있는 평양객주로 짐을 가져 갔고 하룻 밤을 묵으러 갔다. 이쁜이라는 이름도 어느덧 뱃사람들의 입으로부터 불리워진 이름으로서 인제는 그것이 상례가 되어 이쁜이라면 본인도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이쁜이가 투신을 했다. 뱃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뱃사람들은 익숙한 솜씨로 이쁜이의 몸을 꺼꾸로 업드려 놓고 배를 눌러 물을 죄다 토하게 하였다.

「피꺽, 피꺽 ─」

끊어졌던 이쁜이의 숨소리가 물과 함께 한두 번 입에서 솟구쳐 나왔다.

「살까?……」

그것은 이 배 봉황호(鳳凰號)의 선장 황 일봉(黃日峯)의 근심스런 목소리였다. 이쁜이를 제일 잘 알고 이쁜이와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내는 사나이었다.

「염려 마십쇼, 선장!」

선장과 이쁜이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선원 한 사람이 이쁜이에게 열심히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하는 위로의 말이다.

「그런데 아까 그 양반은 어디 갔나?…… 자기 아내가 빠졌다구 하면서 같이 이쁜이를 끌고 나왔는데……」

선원 한 사람이 그러면서 주위를 돌아다 보았다.

「뭐 아내라구?…… 이쁜이를 아내라고?……」

황 선장의 당황한 한 마디였다.

「네…… 뭐라고 하던가? 아, 춘심이 ─ 춘심이라구 부르면서…… 같이 끌고 나왔는데?……」

그러면서 아직도 수면에 늘어뜨린 밧줄을 댕겨 보았다.

그러나 밧줄은 스르르 그냥 끌려 올라왔다.

「자기 아내가 아닌 줄을 알고 축대로 올라간 모양이다.」

그리고는 안개 속을 향하여

「여보! 춘심이 남편!」

하고 고함을 쳤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저편 축대 위에서

「왜 그러시우?」

하는 성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또 당신까지 물귀신이 됐나, 하구 걱정을 했소. 하하하……」

그랬더니 저편에서도 성호의 명랑한 목소리가

「하하핫……」

하고 웃어 왔다.

「부인이 아니어서 미안하오!」

그런 농담을 하는 선원도 있었다.

「당신 부인이 평양객주의 이쁜인 아닐테지요?… 아무런 걱정두 말구 빨리 집으로 돌아가 보시요.」

「누가 알우? 소주나 좋은 놈 한 병에다 펄펄 뛰는 민어 회나 쳐 놓구, 그리운 낭군 기다리구 있을지 거 누가 알우?」

「으아, 하, 하, 핫……」

그 말이 성호의 입맛에 담겨 지나간 날의 대통령의 그것을 본받아 三[삼] 박자의 웃음을 지어 본다.

「얘이, 싱겁다, 자식이!」

그러는 선원도 있었다.

그런데 「 참, 이쁜이의 본명이 혹시 춘심이가 아닙니까?」

선원 하나가 그러면서 선장을 돌아다 보았다.

「아니야. 금순이야.」

「홍, 홍 금순이야.」

「금순이, ─ 성은 뭔데요?」

「그런데 선장, 출범시간이 다 됐읍니다.」

「응 ─」

선장은 자못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무엇을 마음깊이 결심한 듯이

「출범 준비!」

하고 힘찬 소리로 명령을 하였다.

이 봉황호는 오늘 낮 한 시에 인천을 출범하여 안동(安東)으로 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