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60장

방 월령과 허 운옥 편집

1 편집

「於徐州驛[어서주역]」, 孤馬[고마]」

장 욱에게 온 편지의 뒷등에는 단지 그 여섯 글자 밖에는 더 씌여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영민의 필적이 아닌가! 자기가 그처럼 애를 태이며 알고자 하던 영민의 행방이 이처럼 쉽사리 알려질 줄은 정말로 뜻밖의 일이었다.

「그이는 서주에서 내렸구나!」

운옥은 뛰노는 가슴을 간신히 억제하면서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내용을 좀 읽어 봐두 괜찮을까요?」

「괜찮어요.」

그러면서 나미에는 운옥의 표정의 움직임을 뚫어지도록 살피는 것이다.

「아이, 무슨 편지가 이럴까요? 이건 무슨 산술문제가 아냐요?」

「흐응, 어서 읽어 보아요.」

「이걸 어떻게 읽어요?」

「정말 못 읽어요?」

「정말 못 읽어요.」

운옥은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편지를 도루 내주었다.

나미에는 잠시 운옥의 얼굴빛을 유심히 들여다 보다가

「장 선생, 꼭 만나야되겠어요?」

「네, 만날 수 있으면 좀……」

「만날램 하루 이틀 기다려야 할께야요. 이 편지 가질러 올 때까지.─」

「여기서 유하시는게 아닌가요?」

「어디가요. 조양문 안 어떤 아파 ─ 트에 있지만 요지음 좀처럼 여기에 발길을 안 한답니다.」

「아파 ─ 트로 감 못 만날까요?」

그 말에 나미에는 가망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못 만나, 못 만나!」

하였다. 그리고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피아노 앞에서 발딱 몸을 일으키며

「이리 올라 오세요. 내 방으로 가서 이야기나 하면서 기다려 봐요.」

「언제 올런지두 모르신다면서 어떻게 기다릴 수가 있어요?」

운옥은 주저하였다.

「괜찮어, 괜찮어. 집을 떠나면 고생이니까 하루 이틀 편히 쉬여서 가도 괜찮겠읍니다.」

그러면서 층층대로 성큼성큼 올라가는 나미에의 뒤를 따를 수도 없고 안 따를 수도 없는 운옥의 입장이었다. 운옥은 잠깐 동안 망서리다가 몸도 피곤하고 또 주인의 호의를 물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닌상 싶어 하루 이틀은 모르지만 몇 시간 동안이라도 다리 쉬임을 하고 가리라 생각하였다.

이윽고 나미에의 호화로운 방에서 운옥은 트렁크를 내려 놓으며

「미안합니다.」

하였다.

「괜찮소.」

두 사람은 마주 앉으며

「백 영민이란 사람 잘 아세요?」

하는, 나미에의 물음에 운옥은 약간 당황하며

「네, 네, 잘……」

말 끝을 채 잇지 못한채 입을 담으러 버린 운옥이었다.

「그이를 어떻게 그처럼 잘 아세요? 역시 동향이세요?」

「네, 동향……」

그러는데 바로 책상 위에 놓인 전화가 째르릉 째르릉 울렸다.

나미에의 순금 팔지를 낀 희고 날씬한 손이 쭉 뻗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 응?… 오오, 미스터· 쨩!」

나미에의 음성이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탄력성을 띠운다.

전화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2 편집

「흥, 난 또 누구라구?……」

「보꾸데· 와루깟다까네(내가 되어서 미안한걸)!」

「흥, 난 그런 말 몰라!…… 어쨋던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던 당신이 종시 전화를 걸었구려.」

「유에링(월령), 내 사랑하는 유에링, 그것이 무슨말이요? 하루에 세 끼 끼니는 잊을 지언정 어찌 내 사랑 유에링을 잊을까보냐! 아아, 나미에· 가와 이야, 나미에· 가와이야(나미에 귀여워라, 나미에 귀여워라)!」

「쉬이!」

「괜찮어.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인젠 비밀이라는 것이 없어 괜찮어, …

…….」

「그래 지금 어디서 전화를 거는 거요?」

「그런건 묻는 편이 쑥이야. 가르쳐 줄 장 욱이도 아니겠지만…… 그래 남의 귀중한 편지를 받았으면 돌려보내 주는 것이 숙녀의 예의일텐데……」

「흥, 나는 숙녀가 아니니까 괜찮어. 편지가 보고싶음 이리로 올 수 밖에……」

「호랑이가 그대 옆에 도사리고 있는게 아니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 간다는 말 몰라 볼까?」

「편지 안 받아 보면 그만이지 뭐야?」

「안 받아 보고도 견데 배길 편지람 무방두 하지만……」

「그런데 고마가 누구요?」

「고마가 아니라, 꼬마야. 미스터· 꼬마 ─ 오오, 그리운 벗 미스터· 백영민!」

「아, 백 영민?……」

「호호, 그것 봐요. 그래두 안 오구 견데 배길데야?」

「호랑이는?……」

「괜찮어, 외출, 외출!」

「정말? ─」

「이거 왜 그래?」

「─ 도라노· 에사니· 나루· 요리와네(호랑이의 밥이 되기 보다는)!」

「체엣!」

「흥!」

「밤 아홉 시 경에 와요.」

「오늘 밤 아홉 시!」

「응, 그때면 괜찮어. 호랑이가 밖에서 한창 외도를 할 무렵이니까.」

「요오시(좋아)! 호랑일 잡을려면……」

「호랑이의 굴로!」

「그러나 치(陷穽[함정])를 놨단 안 돼!」

「왜 이리 겁쟁이야? 그대는 사랑의 용사가 아니요?」

「와깟다(알았다)! 내 사랑 방 월령을 위하여 나는 오늘 밤 아홉 시, 틀림없이 호랑이의 소굴을 방문하리다!」

「또 한 가지!」

「또 뭐가 있소?」

「머나먼 고국으로부터 산로천리(山路千里) 수로천리(水路千里), 꿈 길에서만 만나 보던 그리운 여인이 당신을 보려 찾아 왔답니다.」

「무슨 뜻이요?」

「어여쁜 아가씨, 배꽃처럼 어여쁜 아가씨가 당신을 보러 왔답니다.」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르겠소.」

「일 년 전 겨울, 눈 내리는 고국 땅에서 움텄던 사랑의 싹 ─ 인제 금방 동판화(銅版畵)에서 쏙 빠져 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 한 분이 당신을 보러 왔답니다.」

「월령, 왜 이처럼 농담이 화려하오? 소녀화보(少女畵報)의 그림처럼 호화롭구려.」

「안 오실람 그만 두어요. 허 운옥을 영원히 당신의 시야(視野)에서 감추어 버릴테니까요.」

「옛, 누구…… 누구라구요?……」

「왜 이리 숨 가쁜 소리를 내는 거요?」

「아니, 정말 누구라구요?…… 인제 누구라구 그랬죠?─」

「그 이름도 향그로운 ─ 허, 운, 옥!」

「뭐, 허 운옥?……」

「자그만치 놀라세요. 잘못 하단 심장이 멎으리라. 호호호……」

「아니, 월령, 그게 정말이요?」

「아이, 싱겁다! 안 올람 그만 둬요, 체엣!」

채깍하고 나미에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운옥을 돌아 보며 빙그레 한 번 웃어 보인 후에

「아가씨, 축복합니다! 오늘 밤 아홉 시 정각에 장 선생이 사랑하는 아가씨를 만나러 오신답니다.」

소녀가극(少女歌劇)에 나오는 사랑의 사도처럼 나미에는 한 손을 가슴에다 갖다 대이며 아주 정중히 허리를 굽혀 보였다.

그 순간 운옥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갛게 물이 들었다. 그것은 실로 허 운 옥으로서는 계산에 넣지 않았던 뜻밖의 풍경이었다.

운옥은 그만 머리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