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2장

암흑의 대통령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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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승리를 유일의 희망으로 삼고 一九四○[일구사공]년 三[삼]월 말일, 중앙정부를 개조(改組)하여 수도 남경(南京)으로 환도(還都)하는 형식으로서 왕 정위(王精衛)의 소위 「남경정부」가 수립 되면서부터 일본의 화북, 화중의 지배는 더욱 용이하게 되었다.

같은 용모와 같은 언어와 같은 풍습을 지닌 중국인 가운데 적어도 남경정부를 지지하는 민중의 한덩어리가 있다는 사실은 일본의 군사력을 추진시키는데 있어서 막대한 편의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편의는 무력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사상전에 있어서 한층 더 현저하게 나타났다.

중경(重慶)정부의 「구국항일」(救國抗日)과 남경정부의 「화평공작」(和이 두 가지 平工作) ─ 사상을 배경으로 한 격렬한 스파이 전이 각 방면에서 처참하게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니, 여기에 만일 황색인종(黃色人種) 하나가 중국 옷을 입고 달밤의 황포강(黃浦江) 공원이나, 혹은 불야성(不夜城)의 「캐피탈 · 땐스 · 홀」 같은데 나타났다고 가장할 때, 우리들은 그 인물을 단순한 한 사람의 중국인으로 생각해서는 아니되었다.

그것은 일본인일 수도 있을 것이요, 한국인일 수도 있을 것이요, 만주인일 수도 있을 것이요, 또 같은 중화민국일 지라도 중경 계통인지 남경 계통인지 또는 중공 계통인지를 좀처럼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주의와 국제관계를 달리하는 백색 인종들이 한데 뒤섞여 있느니 만큼 전쟁중에 있어서의 중국의 대도시는 실로 착잡한 국제관계로 말미암아 얽힐 대로 얽크러진 글자 그대로 난마와 같은 혼란상태 속에서 그의 독특한 생태(生態)를 영위(營爲)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독특한 생태가 가장 현저히 영위되고 있는데가 소위 대도시의 암흑가(暗黑街)였다. 온갖 모략과 음탕과 살인과 도박과 사기가 공공연히 연출되는 암흑의 거리야 말로 인생의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고 삼켜 버리는 거대한 괴물이다.

호서(.西) 일대에 무수히 산재해 있는 아편굴, 도박장, 빠 ─ , 땐스 ·홀, 카바레 ─ , 나이트 · 클럽 ─ 등이 남경 정부의 군자금을 거출하는 중요한 금고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북일대의 이러한 암흑면에는 그 태반이 일본 군벌 혹은 악질 재벌의 손길이 뻗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배후에는 일본 특무기관의 무서운 눈초리가 희번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수 많은 끄나풀들은 일본 점령지대 일대에 걸쳐 실로 거미줄처럼 보이지 않는 경계망을 물샐 틈없이 펴고 있었다.

「샹하이 · 도라」 ─ 그렇다. 이 보이지 않는 수 많은 특무기관의 끄나풀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흑막(黑幕)의 인물이 하나 있었던 것이니, 사람들은 그를 가르쳐 「샹하이 · 도라」(상해의 호랑이)라고 불렀다.

중앙 정부의 밀정들을 비롯하여 연합국의 정보 기관은 이 「샹하이 · 도라」의 정체를 알고자 꾸준한 활약을 계속하여 왔다. 그러나 이 상해의 호랑이는 좀처럼 꼬리를 밝히지는 않고 다년간 일반 민중 속에 숨어서 무수한 정보를 군에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합국 측에서는 그가 필시 일본인이 아니고 점령군에 매수를 당한 제 삼국인(第三國人)이라고 추측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일본군 특무기관에서도 눈이 벌개서 찾고 있는 한 사람의 정체불명의 인물이 있었던 것이니, 세칭「다 ─ 크 · 푸레지덴트」 ─ 소위 「암흑의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워지는 인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2 편집

「암흑의 대통령」을 수령으로 가진 그들의 일당은 제일선에서는 점령군의 소위 선무공작(宣撫工作)을 방해하여 구국항일의 계몽적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총후에서는 국부적(局部的) 화평 공작에서 전면적 화평의 길을 걷고 있는 왕정권의 반역적 행위를 신랄히 비판하고 남경 정부의 저비권(儲 備券) 남발로 말미암아 백성을 도탄 속에 쓸어 넣은 살인적 「인푸레」의 책임을 민중에게 계몽시켰다.

그런가 하면 한편 철도를 파괴하여 수송선을 단절하고 군대의 출정, 이송, 산포 상태를 세밀히 조사하여 연합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점령군 및 남경 정부의 특무 공작대원을 이편에서 거꾸로 이용하여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중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등, 실로 대담무쌍한 행동으로서 일본군 당국을 아연하게 하였다.

일본군 당국에서는 처음에는 그것이 남의사(藍衣社)나 「친팡」(靑.[청방]) 계통이 아니면 중국 공산당원의 소위로 생각하고 그 방면에 주력을 부어 보았다. 그러나 각 방면으로 부터 수집된 정보에 의해도 그 소속이 분명치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일본군에서도 제삼국의 조종을 받고 있는 토비의 장난이 아닌가 하였다.

왕년(一九三五[일구삼오]년 전후) 일본군 자신도 봉천 특무 기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화북 침략 ─ 화북 오성(五省)을 남경(당시는 중앙정부)으로부터 분리시켜 중앙 정부의 은국유령(銀國有令) 반대와 방공자치(防共自治) 등의 「슬로 ─ 건」으로서 비무장 지대의 무지한 농민과 토비들을 선동하여 악질적인 침략 공작을 꾀한, 소위 뜻 있는 중국인들로부터 속칭 「토비」(土匪)라고 불리우던 「토비원」(土匪原) 소장의 공적을 알고 있는지라, 이 암흑의 대통령도 역시 토비를 공교롭게 조종하고 있는 연합국의 유능한 간첩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본군 특무기관에서는 그들 암흑의 대통령의 일당이 사용하고 있는 암호문을 통 해독(解讀) 할 수 없는 것이 한층 더 두통꺼리었다.

그것은 일견 소학생의 산수 문제와도 같은 기호로 되어 있었다.

일본 특무기관에는 난다 긴다 하는 암호 연구가들이 수두룩하니 모여 있었으나 이 암호를 푸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이러한 암호가 어디선가 무선 전신으로 들어 올 때마다 몹시 당황하였다 상부에서는 그만한 . 암호도 풀지 못하는 특무기관의 무능을 엄하게 질책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이 벌개져서 밀정들의 손을 통하여 수집한 세계 각국의 암호 수첩(暗號手帖)을 모조리 꺼내서 일일이 대조하여 보았으나 이상과 같은 암호 기호에 해당하는 수첩은 하나도 없었다.

이리하여 일본군 특무기관에서는 무선으로 번칠나게 들어 오는 이러한 암호를 수 없이 「카피」해 놓기는 했으나 그것을 해독할 기능을 갖지 못하고 골치를 앓고 있었다.

어떤 자는 이것이 혹시 「에드가 ─ · 알란 · 포오」의 「골드 · 벅」

에 나오는 암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소설 책까지 꺼내어 대조하여 보았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세계의 수많은 탐정소설을 모조리 뒤적거려 거기에 사용된 암호를 깡그리 조사해 보았으나 그것 역시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이 암호 기호야 말로 세종대왕을 조상으로 모신 배달민족이 아니고선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그것이었던 것이니, 전쟁 말기에 있어서의 중국 각 중요 도시를 무대로 한 사상전은 최후의 고올을 목표로 각 방면에서 처참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 카바레 ─ 「용궁」의 밤도 사랑을 팔고 사는 연애시장(戀愛市場)인 동시에 각국의 제 五[오]열의 눈초리가 무시무시하게 빛나는 사상전의 어마어마한 무대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