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지·아리랑
편집1
편집두 학생은 대구서 내렸다. 재밤중의 일이다. 내릴 때 그들은 영민의 차창가로 와서 작별의 인사를 하고 쓸쓸히 개찰구를 향하여 걸어 나가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둥글둥글한 얼굴을 가진 학생이 도로 뛰어 왔다. 뛰어 와서 낮으막한 목소리로 영민의 귀에 속삭인 한 마디는 이러 하였다.
「나는 도망할 것을 결심했읍니다! 울지도 불지도 인젠 않겠읍니다. 그럼 편히 가십시요.」
「성공을 빕니다!」
영민과 학생은 작별의 악수를 힘있게 바꾸었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쥐고 쥐어진 두 젊은이의 손과 손이었다.
개찰구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가는 학생의 걸음걸이에는 확실히 불안도 회의 도 위구 (懷疑) (危懼)도 인제는 없는것 같았다. 죽음의 길을 걸으면서 죽음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헤매이던 그 무서운 번민, 그 비참한 저주, 그 허탈된 백치의 정신상태에서 인제는 완전히 빠져 나와 무한한 희망의 날개 속에서 그 의의 없는 죽엄을 단호히 거절하는 힘차고 씩씩한 갱생(更生)의 제 일 보를 내짚는 학생의 걸음걸이가 거기 있었다.
「백군, 자네 때문에 우리 무적황군(無敵皇軍)의 군력(軍力)이 또 한 사람 분 줄어지나 보네. 허, 허, 허……」
그 말에 영민은 대답은 없이 쓴 웃음을 빙그레 짓기만 했다.
「자네, 내가 우수한 친일판 줄은 알지? ─ 그래 그러한 우등생 친일파 앞에서 그게 무슨 짓이야? 오소레· 오오꾸모· 오오기미노· 세끼시쟈테!
(황송하게도 대군의 적자야!) ……허, 허, 허……」
턱 밑에 턱이 또 하나 달린 오 창윤의 턱이 아래 위로 들썩거리면서 유쾌하게 웃는다.
그러나 같이 한번 웃어 보자는 오창윤의 이 한 마디에 영민은 같이 웃어 줄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후딱 외면을 하였다.
「그런데 백군, 나는 이번에 춘심이 년을 그만 쫓아 버리고 말았네!」
「?……아니, 그것이 참말이십니까?」
영민은 놀랐다.
「그 년을 붙여 두었단 집안 망할것 같아서 차 버리고 말았지. 유경이 일만 하드라두 모다 그 년 때문이 아닌가.
영민은 대꾸를 못하고 묵묵히 상대자를 바라볼 뿐이다. 그때 오 창윤은
「핫, 핫, 핫, 핫……」
하고 한번 너털웃음을 웃고 나서
「백군, 실은 그 년이 나를 차 버린거야. 허허허……」
「?………」
영민은 또한번 놀랐다.
「거 남녀의 관계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데. 군도 경험자니까 알겠지만……」
그러면서 오 창윤은 싱긋이 한번 웃어 보이고 나서
「옛날이야 어디 그럴 법이 있었겠소? 한번 남자의 손아귀에 들어오면 여자란 그만이거든. 쓰다달다는 말을 어디다 해? ─ 그런데두 불구허구 요즘 세상은 세상이 달라서 그런지, 원 모두가 자기 중심이야. 아, 글세 유경이 만 해두 그렇구 기생 년인 춘심이 까지가 그러구 보니 원 마음 놓고 외도 한번 해 볼 수가 있어야지. ─ 뭐래더라?… 참, 뭐 떡을 많이 먹으면 체한다구, 그래서 뭐 꽃을 한번 따 보겠다던가 하는데…… 」
「떡을 많이 먹으면 체한다구요?」
「응, 그게 암만 생각해두 나를 빗대 두고 허는 말같은데, 거 꽃을 한번 따 보겠다는 게 뭐 소설 나부랑이를 쓰는 젊은 작자라는 거야.
「아, 그럼 신 성호가 아닙니까?」
「옳지! 신 무어라는 작잔데……그래 그 작자를 군이 안단 말이요?」
「알지요.저와 중학 동창이니까요.」
「그래?……허어?……」
오 창윤은 정말 의외인 모양이다.
「선생님이 또 한가지 놀라실 일을 말씀 드릴까요?」
「또 무어가 있어?」
「있읍니다. 지난 겨울 선생님을 협박하러 갔던 장욱이라는 청년, 그도 역시 저희들과 같은 중학 동창이랍니다.」
「헤에?……」
「그리고 청년의 총상을 치료해 준 것이 누군 줄 아십니까?」
「누구야? ─」
「김 준혁 박사랍니다.」
「준혁이가? ……」
오 창윤의 놀라움은 실로 컸다.
「음 ─ 모르고 있는 건 남편 혼자 만이라더니 결국 친일파 오 창윤 만이 고립상태였었군!」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영민은
「그래 신성호와 춘심인 잘 돼 나가는가요?」
「잘 돼 나가겠지. 그러나 모르긴 모르지만 내 인생철학으로는 떡을 먹어야 꽃을 따는 법이야. 그러니까 꽃집이 싫어지면 떡집으로 찾아 들어 오겠지. 어때? 그럴것 같지 않는가?」
「글쎄올시다.」
「그때를 기다리고 서둘지 않는 것이 내 생활철학이야. 허, 허, 허……」
오 창윤은 자신 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2
편집이튿날 아침, 기차가 경성역에 거의 도착하려는 즈음에 영민은 서울에 내리겠다느니 오 창윤은 그대로 곧장 내빼라느니 ─ 잠시동안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유경씨가 바루 이 서울에 있는 줄을 뻔히 알면서 그대로 지나갈 수는 없읍니다. 유경씨가 나를 저주 하면서 눈물 짓고 있는 이 서울 땅을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짚어 보고 가겠읍니다. 걸어 보고 싶습니다.」
거의 애걸 하듯이 영민은 말했다. 춘심이의 고 안타까운 환영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 수 없는 오 창윤으로서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영민의 심정이기도 하였다.
「그럼 잠깐 내렸다가 밤차로 떠나기로 하시요. 그동안 나는 또 나 대로 군이 압록강 철교를 편히 건늘 수 있도록 적당한 방도를 강구해 보겠소.」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리하여 두 사람은 마침내 경성역에서 내리는 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오 창윤의 말대로 서울에는 내리지 않고 곧장 북향을 하였던들 영민의 인생은 좀더 딴 길로 접어 들었을런지 몰랐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이 기나긴 이야기의 주인공들 ─ 백 영민이나 오 유경이나 허운옥이나의 운명이 이처럼도 복잡 미묘하게 얽히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처럼 도 절경(絶景)에 가까운 비극성과 기구함을 지나지 않은 채 비교적 간단하게, 그리고 순조롭게 막이 닫혔을런지도 몰랐던 것이다.
영민 자신은 결코 운명론자가 아니다. 아니, 그와 반대로 인생을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노력만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끝장까지 개척할 수 없다는 것을 후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았던 것이다. 九[구]분의 노력과 一 [일]분의 운이야말로 이 거창한 인생을 항해(航海)하는데 있어서의 유일한 치(舵[타])일 수 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러면 운(運)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이냐? ─ 그것은 우리들 인간이 같은 시각에 다른 두 길을 똑같이 걸을 수 없는 데서 생기는 일종의 선택 문제(選擇問題)를 말함이다. 같은 시각에 다른 두 가지 행동을 취할 수 없는 인간의 불구성(不具性)이 운이라는 것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렇다. 영민은 북으로 직행하는 인생의 길을 포기하고 서울에 내리는 길을 스스로 취했던 것이다.
「무운장구」라고 씌인 빨간 「다스끼」를 매인 학병이 역전 드넓은 마당이 구석 저구석에서 눈에 띄었다.
행여나 유경이가 그 사이에 집으로 돌아오지나 않았을까 하는 한줄기 희망을 품고 두 사람은 자동차를 타고 아현동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유경이의 소식은 여전히 깜깜이다. 기다림에 지쳐서 부인은 인젠 울지도 않고 있다가 유경이가 서울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띄었다 그리고 유경이가 . 순산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흐늑흐늑 느껴 울었다.
「혼잣 몸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애는 누구가 처 주었을꼬?……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길러낸 내 딸이 글세 제 손으로 순산을 했다는 말이냐!
가엾은 년! 불상한 년! 제 어미가 같은 서울에 있는데두 왜 어미한테 돌아와서 순산을 못한다는 말이냐?……여보, 영감, 이게 대체 무슨짓이란 말이요?」
「제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누구 보구 대신 져 달라지는 않는다고 한, 그 한마디가 문제인가 보오. 음 ─」
「학생, 학생은 정말루 내 딸이곱수?……내 딸을 내 불쌍한 딸을 끝끝내 버리지 말고 귀여워 해 주겠수?……」
「사모님!」
영민은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귀해 주고 안 주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선생님을 괴롭히고 유경씨를 괴롭힌 그전 책임을 저는 지겠읍니다. 그러나 당분간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아니 될 사정이오니, 그것 만이 저에게 남은 한이올시다.」
그날 영민은 점심겸 아침을 먹고
「선생님, 저는 서울 거리를 한번 걸어 보고 싶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 다니다가 밤차로 떠나겠읍니다.」
「음, 그러면 내가 전송을 나갈테니 대합실에서 기다리시요.」
이리하여 영민은 아현동을 떠나 종로로 나왔다.
영민은 될 수 있는 한 서울의 공기를 많이 마실 셈으로 심호흡을 하였다.
그 공기 가운데는 유경이가 호흡한 공기가 섞여 있을 것이 아닌가. 그 유경이가 호흡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많이 자기가 호흡하는 것이 자기의 정신과 육체를 북돋우어 주는것 같아서 마음에 흡족하다.
갖난애를 업은 젊은 여인만 보면 영민은 따라가서 얼굴을 살펴 보곤 하였다. 자기의 걸어온 길이 과히 옳지 못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늘이 유경으로 하여금 불쑥 자기 앞에 나타나게 하여 줄 것도 같아서 기대가 컸다.
그러나 하루종일 서울 거리를 싸돌아 다녀 봐도 그리운 사람 오 유경은 마침내 자기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술 취한 학도병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발광을 하듯이 「아리랑」 창가를 소리 높이 부르며 지나가는 가두 풍경이 영민에게는 자꾸만 구슬퍼 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十[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갓데구루조또 「 · 이사마시꾸」를 부르기 싫은 학생들은 이 「아리랑」의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야 말로 三[삼]천만의 억압된 억울한 비분의 정을 입 밖으로 표시하는 오로지 단 하나의 구슬프고도 절절한 비가(悲歌) 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