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19장

그날 밤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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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오 창윤의 저택 정문을 나서면서

「그래두 제가 날 쏘지야 못 하겠지.」

하는 일루의 희망적인 생각을 품고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그것을 되풀이 하던 순간, 장 일수의 몽뚱이는 한 방의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상처는 가히 가벼웠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나 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다리를 끌고 컴컴한 아현동 고개를 내려오면서 그는 임기응변책으로 간단한 변장 도구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문득 오늘 아침 양복을 갈아 입을 때 그만 깜빡 잊어먹고 나온 사실을 생각하고 실망하였다.

그와같은 변장술은 무대에서는 배우나 또는 탐정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만이 사용한다는 생각은 벌써 낡은 관념이다. 칼날과 총부리 밑을 수 없이 피해 다니지 않으면 아니되는 혁명투사들 사이에 있어서는 이러한 간단한 변장술로서 예기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장 일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갖고 다녔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는 수 없이 장 일수가 단장을 짚고 절룸절룸 언덕 길을 내려오다가 체칵체칵 패검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는 두 사람의 정복 경관과 중도에서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순간, 장 일수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경관이 자기 다리의 총상을 발견한다면 물론 주머니에는 권총도 있었지마는 그 보다도 좀더 손 쉬운 무기인 굵다란 단장을 목도로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단장으로 말하면 단순한 단장이 아니고 손잡이를 뽑으면 예리하고도 깊다란 창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 일수는 올라오는 경관을 맞이하였다.

「당신, 어데 가는 사람이요?」

하고, 묻는 경관의 말에

「네 집의 어린 것이 갑자기 배를 꼬며 울어대길래 약방으로 청심환을 사러 가는 길입니다.」

「당신 집이 어디요?」

「네, 바로 이 집입니다.」

하고, 길가 집 하나를 가리켰더니 경관은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하나의 위험은 또 지나갔다.

그러나 전차길로 나와 자동차를 멈추려 할때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인제 방금 속아 넘어갔던 경관 두사람과 최 달근이가 골목에서 뛰쳐 나오지 않는가.

장 일수는 차에 오르자마자 배를 움켜쥐며 급성 맹장염같으니 대속력으로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내릴 작정은 물론 아니었다. 만약에 최 달근이의 패가 자동차로 추격을 해오면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서 또 다른 방도를 강구할 심산에서였다.

과연 최 달근은 자동차로 따라 왔다.

「이러다가는 밤새도록 서울 시내를 뺑뺑 쫓겨 돌아다닐 형편이 아닌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 일수는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차를 멈추려는 운전수에게 다시금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남대문을 지나고 조선은행 앞을 지날 무렵에 장 일수는 한층 더 허리를 꼬며

「여보 운전수, 밸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으니 약방에 들려서 청심환을 한 봉지 사다 주시요.」

하고, 七[칠]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면서

「남는 돈은 당신에게 드릴테니 빨리 청심환을…」

「네, 고맙읍니다. 바로 명치동 입구에 약방이 하나 있읍지요.」

그러면서 운전수는 명치동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약방으로 뛰어 들어 갔던 것이다.

「됐다!」

운전수가 약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본 장 일수는 휙 객석에서 운전대로 옮아 앉으며 핸들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땅개 미안하이 자네들은 「 , . 어서 약방으로 들어가서 운전수나 체포하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일로 종로 네거리로 줄달음을쳤다.

종로에서 장 일수는 곧장 안국동으로 차를 몰아 컴컴한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다가 신 성호의 하숙집 앞에서 마침내 차를 멈추었다.

장 일수는 황급히 대문을 두드리며

「콘사이스 있나?」

하고, 고함을 쳤다.

四[사]년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콘사이스란 말에 신성호는 눈을 번적 뜨면서 뛰쳐 나왔다.

「여어, 콘사이스, 자네 아직두 살아 있나?」

장 일수는 신 성호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아, 자네 대통령이 아닌가?」

신 성호는 깜짝 놀랐다.

「아, 틀림없는 대통령일세 ─ 으와, 핫, 핫,」

하고, 웃어대는 장 일수였다.

「그런데 자네, 중국서 언제 왔나?」

「한 달포경 되지.」

「자아, 어서 방으로 들어 가세.」

「아니, 자네가 좀 나오게. 자가용 자동차를 몰고 왔는데, 어디 오래간만에 자네하고 유쾌한 드라이브나 한 번 해 보세.」

「자가용?……허어, 이건, 글자 그대로 호화판인 걸!」

「암, 호화판이지.」

「자네, 중국서 아편 장사를 했나?」

「아편 장사만으로야 자가용을 사겠나? 갈보 장사도 했다네.」

「아, 자네, 어디 다리를 다쳤나? 왜 쩔룩쩔룩……?」

「쉬이! 암 말 말구 빨리 차를 타게!」

장 일수는 명령하듯이 재촉을 하며 신 성호와 같이 차를 탔다.

차는 다시 안국동 골목을 빠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자네, 내 주소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런 밤중에 어떻게 그리 쉽사리 집을 찾았나?」

「아, 그것 말인가? 요 전날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리로 지나가다가 자네 처소를 알아두었지.」

「그래 그때는 왜 찾지를 않고 과문불입이야?」

「아, 긴급한 일일 있어서…… 그리고 자네 처소를 함부로 찾는 것이 자네에게 후환이 좀 미칠것 같아서……」

「아, 그럼 역시 자네는 무슨 용건을 띠고 왔네 그려?」

「음, 그저 그쯤 알아 두게나.」

「아, 이건 피가 아닌가?」

객석에 앉았던 신 성호는 그때 담배를 붙일 셈으로 성냥 불을 켰다. 그러다가 자기 발부리에 첨벙하니 괴인 피를 발견하고 외쳤다.

「너무 큰 소리 내지 말게. 내 다리에서 흘린 피야.」

「아, 역시 다리를 다쳤는가?」

「음, 넙적다리에 지금 총알이 한 개 박혀 있거든.」

「뭐, 총알?……」

신 성호는 깜짝 놀랐다.

「총알은 대체 누구한테?……」

「땅개에게 한 알 선물로 받았네.」

「땅개?……」

「음 ── 四[사]년 전 부벽루 앞 마당에서 때려준 복수야.」

「땅개가 여기 있는가?」

「응 ── 고등계 쯤으로 알았더니 헌병이야.」

「헌병?…… 그래 장소는……어디서?」

「아현동 오 창윤 집에서……」

「오 창윤?」

「그런데 자네 어디 잘 아는 욋과의사는 없는가? 신용할만 한……」

「있지.」

「절대로 신용할 사람인가?」

「암, 절대로 보증하지!」

「그럼 됐네. 그리로 가세. 어디야?」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김 준혁 외과』 ──」

「광화문 네거리?……음, 약간 위험은 하지만…」

안국동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총독부 앞을 지나서 일로 광화문으로 달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