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대통령
편집1
편집아현동 오 창윤의 저택 정문을 나서면서
「그래두 제가 날 쏘지야 못 하겠지.」
하는 일루의 희망적인 생각을 품고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그것을 되풀이 하던 순간, 장 일수의 몽뚱이는 한 방의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상처는 가히 가벼웠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나 자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다리를 끌고 컴컴한 아현동 고개를 내려오면서 그는 임기응변책으로 간단한 변장 도구를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문득 오늘 아침 양복을 갈아 입을 때 그만 깜빡 잊어먹고 나온 사실을 생각하고 실망하였다.
그와같은 변장술은 무대에서는 배우나 또는 탐정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만이 사용한다는 생각은 벌써 낡은 관념이다. 칼날과 총부리 밑을 수 없이 피해 다니지 않으면 아니되는 혁명투사들 사이에 있어서는 이러한 간단한 변장술로서 예기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때가 많다는 사실을 장 일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갖고 다녔던 것이다.
이리하여 하는 수 없이 장 일수가 단장을 짚고 절룸절룸 언덕 길을 내려오다가 체칵체칵 패검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는 두 사람의 정복 경관과 중도에서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순간, 장 일수는 최후의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경관이 자기 다리의 총상을 발견한다면 물론 주머니에는 권총도 있었지마는 그 보다도 좀더 손 쉬운 무기인 굵다란 단장을 목도로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단장으로 말하면 단순한 단장이 아니고 손잡이를 뽑으면 예리하고도 깊다란 창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장 일수는 올라오는 경관을 맞이하였다.
「당신, 어데 가는 사람이요?」
하고, 묻는 경관의 말에
「네 집의 어린 것이 갑자기 배를 꼬며 울어대길래 약방으로 청심환을 사러 가는 길입니다.」
「당신 집이 어디요?」
「네, 바로 이 집입니다.」
하고, 길가 집 하나를 가리켰더니 경관은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하나의 위험은 또 지나갔다.
그러나 전차길로 나와 자동차를 멈추려 할때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인제 방금 속아 넘어갔던 경관 두사람과 최 달근이가 골목에서 뛰쳐 나오지 않는가.
장 일수는 차에 오르자마자 배를 움켜쥐며 급성 맹장염같으니 대속력으로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내릴 작정은 물론 아니었다. 만약에 최 달근이의 패가 자동차로 추격을 해오면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서 또 다른 방도를 강구할 심산에서였다.
과연 최 달근은 자동차로 따라 왔다.
「이러다가는 밤새도록 서울 시내를 뺑뺑 쫓겨 돌아다닐 형편이 아닌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 일수는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차를 멈추려는 운전수에게 다시금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남대문을 지나고 조선은행 앞을 지날 무렵에 장 일수는 한층 더 허리를 꼬며
「여보 운전수, 밸이 끊어지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으니 약방에 들려서 청심환을 한 봉지 사다 주시요.」
하고, 七[칠]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면서
「남는 돈은 당신에게 드릴테니 빨리 청심환을…」
「네, 고맙읍니다. 바로 명치동 입구에 약방이 하나 있읍지요.」
그러면서 운전수는 명치동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약방으로 뛰어 들어 갔던 것이다.
2
편집「됐다!」
운전수가 약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본 장 일수는 휙 객석에서 운전대로 옮아 앉으며 핸들을 잡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땅개 미안하이 자네들은 「 , . 어서 약방으로 들어가서 운전수나 체포하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일로 종로 네거리로 줄달음을쳤다.
종로에서 장 일수는 곧장 안국동으로 차를 몰아 컴컴한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다가 신 성호의 하숙집 앞에서 마침내 차를 멈추었다.
장 일수는 황급히 대문을 두드리며
「콘사이스 있나?」
하고, 고함을 쳤다.
四[사]년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콘사이스란 말에 신성호는 눈을 번적 뜨면서 뛰쳐 나왔다.
「여어, 콘사이스, 자네 아직두 살아 있나?」
장 일수는 신 성호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아, 자네 대통령이 아닌가?」
신 성호는 깜짝 놀랐다.
「아, 틀림없는 대통령일세 ─ 으와, 핫, 핫,」
하고, 웃어대는 장 일수였다.
「그런데 자네, 중국서 언제 왔나?」
「한 달포경 되지.」
「자아, 어서 방으로 들어 가세.」
「아니, 자네가 좀 나오게. 자가용 자동차를 몰고 왔는데, 어디 오래간만에 자네하고 유쾌한 드라이브나 한 번 해 보세.」
「자가용?……허어, 이건, 글자 그대로 호화판인 걸!」
「암, 호화판이지.」
「자네, 중국서 아편 장사를 했나?」
「아편 장사만으로야 자가용을 사겠나? 갈보 장사도 했다네.」
「아, 자네, 어디 다리를 다쳤나? 왜 쩔룩쩔룩……?」
「쉬이! 암 말 말구 빨리 차를 타게!」
장 일수는 명령하듯이 재촉을 하며 신 성호와 같이 차를 탔다.
차는 다시 안국동 골목을 빠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자네, 내 주소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런 밤중에 어떻게 그리 쉽사리 집을 찾았나?」
「아, 그것 말인가? 요 전날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리로 지나가다가 자네 처소를 알아두었지.」
「그래 그때는 왜 찾지를 않고 과문불입이야?」
「아, 긴급한 일일 있어서…… 그리고 자네 처소를 함부로 찾는 것이 자네에게 후환이 좀 미칠것 같아서……」
「아, 그럼 역시 자네는 무슨 용건을 띠고 왔네 그려?」
「음, 그저 그쯤 알아 두게나.」
「아, 이건 피가 아닌가?」
객석에 앉았던 신 성호는 그때 담배를 붙일 셈으로 성냥 불을 켰다. 그러다가 자기 발부리에 첨벙하니 괴인 피를 발견하고 외쳤다.
「너무 큰 소리 내지 말게. 내 다리에서 흘린 피야.」
「아, 역시 다리를 다쳤는가?」
「음, 넙적다리에 지금 총알이 한 개 박혀 있거든.」
「뭐, 총알?……」
신 성호는 깜짝 놀랐다.
「총알은 대체 누구한테?……」
「땅개에게 한 알 선물로 받았네.」
「땅개?……」
「음 ── 四[사]년 전 부벽루 앞 마당에서 때려준 복수야.」
「땅개가 여기 있는가?」
「응 ── 고등계 쯤으로 알았더니 헌병이야.」
「헌병?…… 그래 장소는……어디서?」
「아현동 오 창윤 집에서……」
「오 창윤?」
「그런데 자네 어디 잘 아는 욋과의사는 없는가? 신용할만 한……」
「있지.」
「절대로 신용할 사람인가?」
「암, 절대로 보증하지!」
「그럼 됐네. 그리로 가세. 어디야?」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김 준혁 외과』 ──」
「광화문 네거리?……음, 약간 위험은 하지만…」
안국동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총독부 앞을 지나서 일로 광화문으로 달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