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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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력(西曆) 一九三五년 二월 一三일 하오 三시에 천진남마 로(天津南馬路)에 있는 불교거사림(佛敎居士林)에서 중국 군 벌의 거두 손 전방(孫傳旁)의 암살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인 은 당년 三0세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약한 자여 너의 이 름은 여자니라」는 별명을 드드는 섬약한 여자 중의 한 사 람인 시 곡란(施谷蘭)이 듣기만 하여도 무시무시한 군벌의 거두요 백전 노장(百戰老將)인 손 전방을 암살한 원인을 자 세히 알려면 말로 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화민국 一四년이었다. 중국의 혁명은 완성되지 못하고 중벌들은 각각 자기의 세력을 붙들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다할 뿐이요, 국가와 민생은 안중에도 두지 아니하므로 중 국 四억의 민중은 거의 어육이 되는 판이었다.

당시 절강군사 선후독판(浙江軍事善後督瓣)인 손 전방이 동 방성(東方省)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봉천파(奉天派)에 대하 여 선전포고를 하였다.

민국 一三년에 손 전방은 민월변방독판(閔?邊防督瓣)이 되 었다가 강절전쟁(江浙戰爭)이 일어나매 장강상류층사령 오광 신(吳光新)의 명을 받아 절강을 칠새 마침 내응을 얻어 어렵 지 않게 항주(杭州)에 들어가고 이어서 상해까지 쳤던 것이다. 그러자 북평(北平)에 임시 행정기관으로 집정부(執政府) 가 설립되매, 손 전방은 강소독군(江蘇督軍) 제 섭원(薺燮 元)과 연하여 세력을 모으는 중에 절강독군으로서 한때 손 전방에게 패를 본 노 영상(盧永祥)이 봉천파의 원조를 얻어 장 종창(張宗昌) 등을 거느리고 다시 남하하여 선무군(宣撫 軍)이라 일컬었다.

그해 정월에 손 전방은 제 섭원과 언약하고 장 명윤(張明 允)·진 낙산(陳樂山) 등으로 더불어 강절 연합군(江浙聯合軍) 을 조직하고 스스로 제이로 총사령(第二路總司令)이 되어서 선무군을 막았으나 강소군이 잘 싸우지 못하여 마침내 패하 여 상해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집정부는 다시 손 전방으로 절강군사 선후독판을 삼았다.

그리하여 손 전방은 노 영상을 도와서 자기를 패하게 한 봉천파에 대하여 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집정부에서 봉천파에 대하여 분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집정부에서 봉천파의 중요 인물인 양 우정(楊雨霆)으로 강소독판을 삼고 강 등선(姜登選)으로 안휘독판을 삼으매 그것을 알게 된 손 전방은 분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머리에서 발끔치까지 차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주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봉천을 친다는 전보를 발하며 사방으로격서를 보내어 협력하기를 청하였다. 손 전방은 스스로 오성연군총사령(五省聯軍總司令) 되고 다 섯 길로 군사를 나가게 하였으니, 총사령 손 전방 제일로 사령 진 의(陳儀) 제이로 사령 사 홍훈(謝鴻熏) 제삼로 사령 손 전방(겸임) 제사로 사령 노 향정(盧香亭) 제오로 사령 주 봉기(周鳳岐) 그리고 각 성군의 총사령으로는.

강소군 총사령 백 보산(白寶山) 절강군 총사령 손 전방(겸임) 안휘군 총사령 마 연갑(馬聯甲) 강서군 총사령 방 본인(方本仁) 복건군 총사령 주 음인(周蔭人) 손 전방은 이러한 형세로 백만의 병마를 거느리고 북으로 북으로 행군하니 깃발이 하늘을 가리고 칼빛이 서리 같다는 말이 고대 소설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어서 동삼성의 천지를 하루 아침에 말급 밑에 진흙을 만들 듯한 기세를 보였다.

그러나 봉천파도 그만한 손 전방의 군사를 두려워하는 것 은 아니었다. 군사라는 것은 저편의 형세를 따라서 병법을 쓰는 것으로 다섯 길로 오는 적군은 다섯 길로 막는다는 군 략으로 봉천파도 또한 다섯 길로 군사를 나누게 되었다.

직로소완방어총사령(直魯蘇脘防禦總司令) 장 종창(張宗昌) 제일군장(軍長) 장 종창(겸임) 제이군장 시 종빈(施從濱) 제삼군장 손 종선(孫宗先) 제사군장 저 옥박(楮玉璞) 제오군장 필 서징(畢庶澄) 봉천파는 어러한 군세로 서갈해(徐碣海) 일대를 방어하게 되었다.

봉천파의 제이군장인 시 종빈은 손 전방을 암살한 곡라으 아버지였다. 종빈은 일찍이 손 저방의 파도 아니었지마는 또한 봉천파도 아니었다. 종빈은 본래 안휘성(安徽省) 동성 (桐省) 사람으로 중요한 군직을 많이 지내었고 당시에 산동 군무방판(山東軍務?辦)으로 있었으므로 누구든지 봉천파와 전쟁을 하게 되는 때에는 어느 편에도 붙이지 아니한 산동 은 지리적으로 양편에 대하여 적지 아니한 중요한 관계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위 소로전쟁(蘇魯戰爭)이 일어나게 되매 손 전 방이나 봉천측에서 서로 종빈을 끌려고 하는 것은 사정상 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로전쟁의 선전포고가 되자마자 손전방은 두 번이나 전보를 하고 한 번 사람을 보내어서 종 빈을 달래어 자기 편에 들도록 하였으나 종빈은 마침내 듣 지 아니할 뿐 아니라 대답조차 곰살궂게 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고 중립을 지키려고 하다가 얼마 아니 되어 장 종창 의 여러번 청함을 받아서 봉천에서 장 종창을 면회하게 되 었는데 장 종창은 잔치를 성하게 베풀어서 종빈을 대접하고 술이 반이라 취한 뒤에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두 사람이 서로 대하게 되었다. 차를 마시면서,

『손 전방이 봉천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한 것은 물론 잘 아시겠지요?』

하고 장 종창이 말을 건다.

『물론 들어서 압니다.』

『어! 전쟁이 있게 되어서 유쾌합니다.』

하고 교만한 빛으로 말하는 종창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지만 전쟁이 잦으면 백성들이.....』

하는 종빈은 장 종창의 말을 그다지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것은 어느 전쟁이든지 일어나기만 하면 유쾌 한 일이지마는, 더구나 손 전방쯤이야 백성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것이 없겠지요.』

『글쎄요. 그러면 다행이겠지요』

『하여간 손 전방은 괴악한 놈이요, 용서할 수 없는 위인 입니다. 자래로도 모든 일이 다 저의 사욕만 채우려는 일이 었지마는 이번에 전쟁을 일으키는 일만 하여도 조금도 국가 글 위하거나 백성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순전히 저의 사감 (私感)으로 하는 일입니다. 아마 그런 줄을 잘 아시겠지 요.』

『예 그런 줄이야 나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 이겠지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승패로만 전쟁의 끝을 막을 것인 아 니라 아주 손 전방을 없애 버리기로 결심하였소.』

『그렇지요. 폐단 도는 인물은 차차 없애 가야 나라일이 바로 잡히겠지요.』

『그런데 이번 전쟁이 되면 산동은 어찌 하시겠소.』

『산동이야 물론 중립하겠지요』

『별로 이해가 없으면 중립하는 것이 원칙이겠지요. 그러 나 동삼성과 산동과는 지리적으로 순치보거(唇齒輔車)의 관 계를 가직 있는 터인즉 이번 전쟁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을 것이 아니오.』

『그런 관계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번 전쟁에는 우리 산동 은 중립하기로 상의가 되었읍니다.』

하고 종빈은 장 종창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언사와 태도 만은 완곡히 하려고 힘을 썼다.

『만일 산동이 중립한다면 어는 편에서든지 그 중립을 존 중하지 아니할 것은 아니나 산동성이 어번 전쟁에 피하기 어려운 관계를 가지고 있느니만큼 부득이한 경우에 어느 편 에서든지 산동성 안에서 군사 행동을 하게 되면 그때에는 실력으로 중립을 유지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될 터인즉, 실력행사라는 것은 역시 군사 행동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리 되면 산동성이 전쟁에 참가하나 아니하나 군사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즉, 차라리 우리와 협력하여서 손 전방을 처벌한 뒤에 동삼성과 더욱 친선을 맺게 되면 일 조 산동에 일이 있을 때에 우리가 또 도와 드리면 좋은 일 이 아닐까요? 다시 생각하여 보시지요』

하고 장 종창은 손수 차를 따라 종빈에게 권하면서 웃는 낯으로,

『주저하실 것 없이 그리 하시지요.』

하였다.

『말씀은 잘 들었읍니다. 나도 개인으로 그런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일이 중대하니만큼 나 개인의 의사로 천편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면 돌아가서 상의하여야 되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마는 다 아는 속내가 아닙니까. 산 동성 일이야 방판꺼서 하시기에 달린 것이지 방판이 하신다 면 누가 감히 가타부타 하겠읍니까. 일령지하에 복종할 뿐 이겠지요. 그러지 마시고 응낙하십시오.』

장 종창은 웃으면서 자신 있는 어조로 말한다.

『그럴 리가 았나요. 그렇지도 아니하고 가령 나의 뜻대로 할 수가 있다 할지라도 전쟁에 참가하는 일은 여간 중대한 일이 아닌데 한 사람의 마음데로 응낙할 수가 있읍니까.』

하고 종빈은 즐겁지 아니한 웃음을 웃으면서 대답하기에 자못 곤란한 빛이 있는 듯하였다.

『그러면 개인으로는 나의 말씀을 승낙하실 생각이..... 있 다고 하셨지요?』

『아닙니다. 곧 승낙할 생각이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나 개인으로서는 산동이 봉군에 참가하여도 무방하게 생각한다 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내내 그 말씀이 그 말씀이 아닌가요. 그러면 산 동성이 봉천에 가담하고 않는 것은 아직 보류하여 두고 방 판께서 개인으로나 참가하여 주십시오. 손 전방쯤 대적하기 야 다른 군병을 더 요구할 것은 없읍니다. 다시 말하면 산 동성의 군마를 빌어서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산동 성이 지리적으로 전쟁에 필요하여서 그러는 것이요, 또는 방판에게 대하여 협력을 요구하는 것은 인물 본위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판께서 개인으로나 승낙하여 주십시 오.』

하고 장 종창은 구태여 산동성의 참가를 요구할 거이 아니 라 종빈이만 개인으로라도 승낙하면 만사는 다 해결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종빈의 말 가운데의 「나도 개인으로 는 그런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나」라는 약점을 잡아서 기 병(奇兵)으로 엄습한 것이었다.

『.....공인(公人)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참 말씀하기가 난처합니다.』

하는 종빈의 쾌히 승낙하지 못하는 남은 문제는 형식상의 체면 문제뿐이었다.

그러자 밖에서 노크를 하더니,

『이리 들여 주지.』

하는 장 종창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선 채로 오른손에 다 전보를 꺽어쥔 장교는,

『아마 군사에 관한 전보인 듯합니다.』

하여서 군사상의 통신을 외인이 있는 데 드리기가 어렵다 는 눈치를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 전보든지 관계 없어 이리 내.』

하는 장 종창의 말에 그 장교는 공손히 전보를 주고 두 사 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문을 닫고 나간다. 장 종창은 전보를 떼어서 테이블 밑에 대고 브더니 열굴의 힘줄을 움 직이면서 조금 놀라는 빛을 띠는 듯하였다.

『아..... 어서 승낙하시지요.』

장 종창은 조금 긴장된 어조로 종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 하더니 종빈이 조금 주저하는 것을 보고서 미처 대답하기 전에

『조금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가더니, 약 십오분이나 있다가 들어오면서 무엇을 쓴 인찰지를 종빈의 앞에 펴놓고는,

『자 이것 보십시오. 이것은 우리 최고 장관 회의에서 결 의한 회의록의 일절입니다. 이것을 보시게 하는 것이 실례 가 될는지 모르지마는 나의 진정을 알리기 위하여 이것을 베껴온 것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하고 손가락으로 한 구절을 가리킨다. 그것은 산동 군우방 판시 종빈이 봉군에 참가하면 승전한 후에 안휘독판을 시켜 준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본 종빈은 얼굴이 조금 붉어지면 서,

『일을 의논하면 일을 말할 뿐이지 나중의 공로 여부야 말 할 것이 있나요.』

하는 종빈은 조금 부끄러운 듯도 하였지마는 아주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그야 그뿐인가요. 이것은 우리의 내용으로 결의한 것이 요, 방판 각하에게 뵈려는 뜻은 없었으나 하도 승낙을 근지 하시니까 이것이 나의 사사로운 요구가 아니오, 적어도 우 리 최고 장관의 회의한 결과로 하는 중대한 요구인 것을 표 시하기 위하여 부득이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쯤은 양해하시 겠지요.』

『그러나 군무방판이라는 것을 떼어놓고 개인으로 행동할 수가 있을까요.』

하고 종빈은 빙긋이 웃는다.

『우리는 군이이요, 법학 박사가 아닙니다. 무슨 법이론(法 理論)을 그렇게 하실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다 국가를 위하 여 하는 일인데, 구구한 소절(小節)을 말할 것이 있나요. 쾌 히 승낙하시오.』

하고—웃음을 웃는다.

『암 그거야 다 국가 대사를 위하여 하는 일이지, 우리의 사사 일입니까. 하여간 나의 일은 총사령 각하에게 위임하 는 것이니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종빈은 조금 어색한 웃음을 웃는다.

『아! 감사합니다.』

하고 장 종창은 종빈이와 악수를 한 뒤에,

『이제 승낙을 하셨으니 말이지, 아까 온 전보가 손 전방 의 군사가 주야로 진군하여서 며칠 후면 서주(徐州)에 도달 하겠다는 전보입니다. 방어할 준비는 다 하였지마는 일이 촉급하게 되어서 곧 모든 것을 유루 없이 정돈해야 되겠은 즉 그리 아시고 준비하시오.』

하고 그 회담을 마치었다. 그리하여 시 종빈은 마침내 봉 천군의 제이군장이 되었던 것이다.

바람이 쌀쌀하면서도 갠 하늘의 저녁 빛을 배불리 받는 이 층의 유리방 안에 꽃다운 나이 스무 살의 아름다운 처녀인 곡란이가 문지방을 의지하여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고요히 섰다. 그는 누르지 아니하여도 터질 듯한 육체에 잠이 없는 꿈을 담뿍 안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취한 듯한 청춘과 거미줄의 곡선 같은 희망으 로 차 있었다. 곡란은 일전에 온 신믄 호외를 책상에서 꺼 내들었다. 그것은 시 종빈이 선봉으로 나가서 첫 싸움에 손 전방의 연합군을 크게 이겼다는 기사였다. 곡란은 그 기사 를 몇 번이나 읽었지마는 또 다시 한번 읽었다. 그리하고 빙긋이 웃었다. 자기 아버지가 승전을 하고 돌아오면 얼마 나 기쁘리라는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봉천파가 승전을 하면 자기 아버지는 반드시 중한 상을 받 을 것이요, 벼슬도 높이 올라가리라고 생각하였다. 벼슬이 올라가면 어디 독판이 되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중앙정부로 들어가든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산동에 그대로 있 지는 아니할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곳으로 승차하여 갈 것은 거의 확실한 사실인즉, 그때의 기쁨은 어떠할까. 또는 자기가 결혼을 한다면 남편 되는 사람의 지위와 형세가 자 기 집과 같아야 할 것은 물론이지마는 혹은 그보다 더 나은 집안의 얼마나 훌륭한 인물일까를 생각할 때에 밖의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소리를 내어 웃는 것을 자기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였다.

『너 혼자 무엇을 그렇게 웃니?』

하며 눈을 얼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곡란은 비밀한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몸을 오싹하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너 무엇을 그렇게 웃었어, 혼자.』

하고 재우쳐 묻는다.

『정순이냐, 너 요새 왜 그렇게 안 왔니.』

하는 곡란의 태도는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그 말은 나중에 하고 너 웃은 뜻이나 말해. 너 연애하던 일을 행각하고 웃는 게로구나.』

『미친 것, 연애가 다 뭐냐.』

『그럼 너 왜 웃었니. 미쳤니 혼자 웃게.』

『아니야, 얘 저.....』

『저..... 하고 왜 말을 못하니 꾸며대려구, 그렇게 안 되어 얘, 바른 대로 말해 초사받기 전에.』

『아니야, 얘 저번에 신문에 났는데 어떤 사람이 밤에 술 이 취해서 자기 집으로 간다는 것이 남의 집으로 들어갔대.

그래 그 생각을 하고 웃었단다.』

『그거 거짓말야, 꾸며대는 말이야. 왜 별안간에 그 생각이 나서 웃니. 누구하고 연애한 것이냐, 바른 대로 말을 해라.

나만 듯고 입밖에 내지는 않을 테니.』

『아니야, 얘 연애가 무슨 연애냐. 제가 연애를 하니까 남 도 연애를 하는 줄 아는구나.』

하고 곡란은 눈을 살낏하면서 정순을 본다.

『아니 또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무슨 연애를 한단 말이 냐.』

『제 마음 미루어 남의 마음 생각한다구, 제가 연애를 하 길래 남도 연애하는 줄 아는 거지 뭐야.』

『그런 문자는 난 모른다마는 오 그래서 하는 말이로구나.

그나저나 그 말은 그만두고 요새 참 너는 혼자라도 웃을 만 하더라.』

『왜 또 너 무슨 말 하려고 그러니?』

『아니야, 요전에 호외도 났지마는 늬 아버지가 선봉으로 승전을 하셨다니 좀 기쁘겠니』

『그는 그렇지만 전장이 좀 위태한 데냐. 그래 나는 늘 염 려 중이다.』

『그렇지만 요새 신문을 보니까 봉천군이 늘 이기더라. 무 슨 걱정이 있니?』

『신문만을 꼭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신문의 검열이 엄중 하여서 봉천군에 이 되는 일만 내고 해 되는 일은 하나도 못낸단다. 그렇고, 통신은 아주 막히다시피 하여서 도저히 진장을 알 수가 없다. 그렇고, 소식이 아주 끊어진다. 아버 지의 편지도 아니 오고, 예서 하는 편지도 아니 가는 모양 이다. 그래 사람을 일부러 보내서 소식을 좀 알아오라고 하 였는데 오늘쯤이나 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어제 급한 전보가 와서 우리 아버지도 군사를 거 니리시고 곧 떠나셨다. 그게 알 수 없는 일이야. 늬 아버지 가 가실 때에 둘이 다 갈 것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는 기다 리고 있다가 만일 여의치 못하면 저보를 할 터이니 곧 오라 고 그러셨다는데 만일 신문에서 보는 것과 같이 봉천측이 승리만 하면 우리 아버지까지 오시라고 할 리가 없는데 웬 일인지 모르겠어. 그렇고 전도를 하면 늬 아버지 이름으로 할 터엔데 장 종창이 이름으로 하였는데 그것도 의심나는 일이 아니냐.』

하고 종순은 적이 걱정스런 빛을 띤다.

『그랬어, 늬 아버지도 가셨어. 그럼, 그게 웬일일까. 전보 야 장 종창이 총사령이니까 총사령의 이름으로 하는지 모르 지.』

하고 곡란이도 놀란다.

『그렇지만 아무리 총사령이라도 우리 아버지와 직접 관계 는 없거든. 우리 아버지는 방판의 막하(幕下)이니까 집접으 로는 늬 아버지의 지휘를 받을 것이니까 설사 총사령이 우 리 아버지를 부를 뜻이 았다 할지라도 총사령은 늬 아버지 게엑 명령하고 늬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에게 명령하고 그리 하여야 옳은 것이 아니냐.』

『그것 참 그렇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전장에 나가셔서 아니 계시니깐 경유할 여가가 없어서 총사령의 이름이로 직 접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또 우리 아버지가 참가하신 바 에는 산동에 대한 일은 총사령의 명령으로 직접 지휘할 수 도 있겠지, 그렇잖아?』

『그도 그렇다. 그러나 전보야 누구의 명의로 하였든지 오 시라고 한 것이 의심나지 않니?』

『참, 그래. 그렇지만 동삼성의 군사가 그렇게 많은데다가 산동까지 합력하고 장 작림(張作霖)의 세력이 말할 수 없는 데 봉천군이 설마 패하기야 할라구.』

곡란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적잖이 염려가 되 었다. 시계는 네시를 친다. 시계 소리가 그치기까지 두 사람 은 잠잠하였다.

『벌써 네시로구나. 얼마 아니하여 어둡겠구나. 요새는 해 가 짧아서 다섯시만 지나면 곧 어둡더라.』

하고 시계를 쳐다보는 정순은 다시,

『아, 또 가 봐야겠다.』

하고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 한다.

『어느새 가서 무얼 하니. 요새 며칠 네가 안 오니까 무엇 을 잃어버린 것처럼 외로운 생각이 나더라. 더 앉아서 얘기 나 하다 가거라. 또 갈 것은 무엇 있니.에서 나하고 같이 저 녁먹고 밤에 놀다 가지.』

하며 곡란은 정순의 손을 잡아서 도로 앉힌다.

『나도 늘 놀러오고 싶지만 일전에는 날이 차서 그런지 감 기로 며칠 누웠었고, 어제는 아버지 떠나시는 걸 보느라고 못오고..... 도 오늘은 어서 가 보아야겠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로 어머니는 늘 걱정만 하시고 계시단다. 그런데 나조차 없으면 되겠니, 어서 가야지.』

『그도 그렇겠다. 너나 할것없이 전쟁 때문에 걱저이로구나. 전쟁이 없이는 살아보지 못할까.』

『그렇기에 말이야. 그놈의 전쟁이 좀 없었으면 여북이나 좋을까.』

『전쟁이나 또 신신한 전쟁인가. 밤낮 제자루 찧는 전쟁이 지.』

『그렇고말고. 제법 옳게 남의 나라하고는 전쟁을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밤낮 제 민족끼리만 쌈을 하니 이겨도 우리 나라의 손해요, 져도 우리나라의 손해요, 그게 다 뭐하는 게 야.』

『그렇지, 남의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야 국가의 이익을 위햐서 그렇든지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그렇든지 전 쟁을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후의 일인까지 싸울 일이지.

하다못해 우리 여자까지라도. 그렇잖아 정순이.....』

『아 그거야 물론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못하고 밤낮 우리끼리만 싸우니 까 외국은 그 틈을 타 가지고 땅을 빼앗는다, 이권을 빼앗 는다 그러는구면. 그러니 될 수가 있어야지.』

『그나 그뿐인가. 형제 혁우장(兄弟?于墻)이나 외어기모(外 禦基侮)라는 말이 아니 있어. 설사 군벌들끼리 맞지 않는 일 이 있다 할지라도 외모(外侮)가 있는 때에는 아무쪼록 동심 협력해서 외모를 막을 생각은 아니하고 그와 반대로 자기의 세력을 부식하기 위햐서는 못할 짓이 없단 말이야.

이 사람이 영국의 세력을 의뢰하면 저 사람은 미국의 세력 을 의지하고, 갑이 러시아의 세력을 의지하면 을은 일본의 세력을 의뢰하고, 나라야 망하든지 흥하든지, 민족이야 죽든 지 살든지 다 불고하고, 그렇고서야 나라가 안 망할 수가 있나. 그러니까 우리도 남의 말 하듯 할 것이 아니야. 우리 부형의 하는 일이 곧 우리가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니까 부형에게 간하여서 듣지 않으면 그때에는 부 모를 배반하여도 좋은 것이다.』

하근 말을 힘있게 하는 정순은 자못 흥분된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부모를 배반하다니. 부모가 아니면 사 람이 어디서 낳니. 네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고 오더니 그런 것만 배워 가지고 왔니.』

곡란은 놀라면서 눈썹을 가늘게 찡그리고 말한다.

『너는 구학문을 많이 배웠으니까 잘 알겠지. 나는 배우지 는 못하였다마는<좌전(左傳)>에 이런말이 있다러라. 대의멸 친(大義滅親)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대의를 위해서는 부 모라는 배반할 수가 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은 법률 상으로 친권상실(親權喪失)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의에 관한 일이 아니라도 친권을 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라. 짐승이나 그리할까 사람이야 그럴 수가 있니. 그런 말을 할 테면 다시는 오지도 마라. 그 게 다 무슨 개소리냐.』

『지금 곧 그렇게 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있 다는 말이다.』

하고 정순은 껄걸 웃는다.

『그래도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않는 것이 좋다. 차라리 내몸이 없어질지언정 부모를 배반하다니.』

곡란이도 또한 웃는다.

정순이가 돌아간 뒤에 곡란은 다시 의자에 걸터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 사이에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면서 싸락눈이 빗방울에 섞여서 떨어진다. 일기는 몹시 음산하였다. 까마귀의 한 떼가 공중에서 싸우다가 창밖의 버드나무 에 앉아서 어지럽게 지저귄다. 곡란은 산란한 심사에 그것 을 보고서 그것이 무슨 좋지 못한 징조나 아닌가 하고 더욱 즐겁지 못하였다. 바람에 몰리는 눈비는 창을 치면서 곡란 의 가슴은 이상히 울렁거렸다. 곡란은 까닭없이 울렁거리는 가슴은 진정하려고 하지도 아니하면서 눈비 오는 창밖을 내 다보고 앉았다.

『아까 왔던 것이 정순이지.』

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기 어머니의 소리에 곡란은 공 연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예.』

하며 교외에서 내리는 곡란은 아무 표정이 없는 눈으로 어 머니를 본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했니?』

『공연히 이 소리 저 소리 하였지요.』

『그런데 왜 어느새 갔니. 더 놀다 안 가구?』

『제 어머니 혼자 계시다고 갔어요.』

『왜 혼자 있어?』

『참 정순 아버지도 전장에 가셨대요.』

『언제?』

『어제요.』

『왜 또 그이마저 전장에를 갔나. 대두리판이 났나 보다 아마.』

『오라는 전보가 외서 갔대요.』

『왜 또 오라고 했어. 아버지가 오라고 하셨다든?』

『아니오, 장 종창이가 전보를 했어. 아버지가 하실 텐데.

그럼 아버지 소식은 없구.』

『아버지 소식이야 없겠지요. 들을 수가 있어요.』

『어찌 되었는고, 갑갑하여 죽겠다. 이 봉천 간 사람은 어 찌 또 아니 오나.』

하고 곡란 어먼는 머리를 긁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린다.

『오늘이나 내일쯤은 오겠지요.』

하고 곡란은 얼굴빛을 평화롭게 하면서 걱정될 만한 이유 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오늘 신문에는 또 뭐라고 났니.』

『늘 승저한다는 말이지요.』

『그렇기나 하면 다행이지만 그게 다 정말일까. 신문에는 거짓말이 많다더라.』

『거짓말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참말이 많겠지요.』

하고 곡란은 어머니의 말이 너무도 순진한데서 웃었다. 곡 란의 웃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까닭도 모르고 웃으면서,

『그렇기나 하면 다행이지.』

하고 나간다. 곡란은 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양을 보다가 다 시 돌아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눈비는 조금 멎었으나 일기 는 더욱 음산하였다.

안문 밖에서 발을 툭툭 털면서,

『에 날씨두?』

하며 무엇을 중얼거리더니,

『아씨 계셔요?』

한다.

곡란은 앞으로 넘어질 듯이 와락 문을 열면서,

『한석(漢石)이냐. 잘 다녀왔니.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다.

눈비를 맞았구나.』

하고 우선 한석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기다리셨겠지요. 속히 오느라고 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고 한석은 머리를 숙이고 젖은 옷을 떤다.

『그래 소식은 자세히 알고 왔니?』

하는 곡란의 가슴은 두근 거렸다.

『소식도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하는 한석의 얼굴빛은 눈비 오는 날씨보다도 더욱 침울하 였다.

『그래 우선 대강이라도 들은 대로 말해라.』

한석의 빛을 잃은 얼굴에 눈물만 글썽거리고 말이 없다.

『너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니? 대관절 노야(老爺)께서는 어떠하시냐, 말 좀 해라.』

곡란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하였다.

한석은 더욱 훌쩍거려 울면서 말이 없다. 곡란은 한석의 거동을 보고서 만사가 그릇된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아찔 하면서 쓰러지려는 것을 손으로 문지도리를 붙들고 간신히 진정하였다.

『큰일이 난 게로구나, 말 좀 하여라.』

『붙들려 가셨대요.』

한석은 목이 멘 소리로 떨면서 말한다.

『불들려 가시다니, 누가 어디로 붙들려 가셨다는 말이 냐?』

『노야께서 적진으로 붙들려 가셨대요.』

『응! 그게 무슨 소리냐.』

하는 곡란은 내버리는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면서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래 붙들려 가시기만 하고 다른 일은 없다더냐?』

하는 곡란의 말은 거의 알아듣기가 어려울 만큼 떨렸다.

『붙들려 가셨다는 말만 들었어요. 아마 다른 일은 없나 봐요.』

한석의 말은 말소리만 분명치 못할 뿐 아니라 의미도 확실 치 못하였다.

『무슨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은 없니?』

하고 곡란은 한석의 말이 미덥지 못하여서 혹은 누구의 편 지가 없나 하고 물어 보았으나,

『없어요. 편지가 다 무엇이에요. 말들도 잘 해 주지 않던 데요.』

하는 한석의 대답은 더욱 곡란을 갑갑하게 하였다.

『그래 그 말뿐이지. 다른 말이라든지 다른 기별은 하나도 없니?』

하고 곡란은 여전히 분명치 못한 한석의 말에 갑갑도 하고 불쾌도 하였으나 또한 한석이가 잘못 들은 말이나 아닌가 하여서 도리어 한 줄기의 위안이 되는 듯도 하였다.

『웬일이냐, 무슨 일이 났니?』

하고 곡란 어머니는 당황한 걸음으로 두서없이 말을 하면 서 나오더니 곡란과 한석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아니에요.』

하고 잠깐 말이 막힌 곡란은 자기의 얼굴빛을 고쳐서 어머 니의 놀라는 가슴을 잠시라도 위로하려고 하였지마는, 창황 한 기색은 수습되지 아니하고 말은 어색하게 되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아직 알 수 없어요. 자세한 기별은 듣지 못했대요.』

하면서도 오히려 기색이로나 말로나 뒤를 마무르지 못하였다. 『아니 내가 언뜻 들으니 붙들려 가셨다는 말이 무슨 소리 냐?』

하고 곡란 어머니는 다시 한석을 본다. 곡란의 눈치를 챈 한석이도,

『아닙니다.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였어요. 그런 말이 있 기는 있어도요.』

하고 돌아서면서 눈물의 흔적을 씻는다.

『아니다, 나도 방에서 다 들었다. 왜 나를 기려고 하느냐 바른대로 말을 아니하고. 』

곡란 어머니는 악쓰듯이 말을 하고 곡란의 옆에 주저앉는다. 『어머니, 들어가셔요. 그러지 마시고 제가 자세히 말씀할 테니요.』

하는 곡란은 어머니를 붙들어 이르켜서 방으로 들어갔다.

곡란은 여러 가지로 어머니를 위로하였으나 곡란이가 위로 할수록 어머니의 의심은 더하고 그러할수록 두 사람의 번민 은 엉클어진 삼실처럼 어지러웠다. 문 밖에는 아닉도 눈비 오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한다.

(未完)

<佛敎 新 第 一·二輯·一九三七·三~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