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착한 아이가 죽으면 천사가 날아와서, 그 조그만 죽은 몸을 두 팔로 안고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펴면서, 아이가 좋아하던 동리의 위를 훌훌 날아 넘어가면서 한 아름이 되도록 꽃을 따서 안고 갑니다. 천사가 그 꽃을 하느님께 가지고 가면, 그 꽃은 땅 위에 있을 때보다도 훌륭하게 더 고와집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 꽃을 받아 안으시고, 그 중에 제일 좋은 꽃에 입을 맞추어 주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꽃은 소리를 치며 기껍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느 해 천사는 죽은 아이를 하늘로 데리고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꿈같이 어렴풋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듣고 하는 동안에, 천사와 아이도 어느 틈에 아이가 땅 위에서 늘 놀던 동리의 위를 넘어 지나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 어우러진 꽃밭에 벌써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천사는,
“어느 꽃을 뽑아다가 하늘에 갖다 심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는 고개를 들어 보니까, 그 꽃밭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 틈에 한 조그맣고 가느다란 장미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장난을 하였는지 반쯤 핀 봉오리 달린 가지는 모두 꺾어져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이는 퍽 측은해 하는 듯이 슬퍼하는 얼굴로,
“에그, 가엾어라! 이런 꽃도 하늘로 가져가면 잘 피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잠자코 그 장미꽃 나무를 뽑아 들더니,
“아아, 착한 아이!”
하고, 아이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이는 그대로 꿈꾸는 듯이 사랑스러운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는 다른 꽃도 어서 땁시다.”
하고, 둘이는 한 아름이나 되도록 꽃을 많이 땄는데,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금잔화(金盞花)와 할미꽃도 정성스럽게 뽑아 넣었습니다.
“그만하면 훌륭하니 그만 해 가지고 어서 가지요.”
하고 아이가 말하니까, 천사도 그 말을 듣고 곧 일어섰습니다.
어느 틈에 벌써 밤이 깊어서 더할 수 없게 사방이 고요하였으므로, 둘이는 그냥 그 길로 그 동리의 좁다란 골목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날 그 동리에는 대청소가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는 지저분한 북더기와 깨어진 헌 그릇이 여기저기 내어진 채로 굴러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 중에서 화초분 깨어진 조각과 맑은 흙덩어리 몇 낱이 한 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라고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 흙덩어리는 화초분에서 굴러나온 것인데, 화초 나무의 뿌리로 하여 엉키어 있기는 하지만 꽃나무도 마른 까닭으로 길거리에 내어 던져진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가지고 갑시다. 응? 그 까닭은 내가 지금 가면서 이야기해 드릴 것이니…….”
하고, 천사는 그것을 거두어 모아 가지고 다시 날개를 훨훨 펴가면서 날아가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 좁다란 동리의 굴 속같이 가난한 집에, 불쌍한 아이가 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세상에 나면서부터 항상 병으로 인하여 줄곧 누워 앓고만 있었으므로, 병이 적이 나을 때에도 지팡이를 짚고 방 속에 두서너 번 왔다갔다하기도 간신히 하는 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굴 속 같은 오막살이 속에서 거의 해를 못 쪼이고 지냈습니다. 여름이면 잠깐 동안은 이 굴 속 집에도 간신히 한 반 시간쯤 볕이 들어 비치는데 그럴 때에는 그 불쌍한 아이는 병석에 누운 채로, 오래 가만히 햇볕을 쪼이면서, 가늘디 가는 손을 앙상하게 얼굴 위까지 가져다가 햇볕에 비추어, 그 손의 살 속에 겨우 조금 남아 있는 피가 붉게 비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쌍한 신세였으므로 바깥 세상의 산이 어떻고, 바다가 어떠한 것도 도무지 알 길 없고 오직 한 번 이웃집 아이가 느티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다 주었으므로, 나뭇잎이나 수풀 빛이 파란 것인 줄 알 뿐이었습니다.
그 후로는, 그 이웃집 아이에게 받은 느티나무 가지를 머리맡에 꽂아 놓고, 자기가 볕도 쪼이고 새도 울고 하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난 후에 이웃집 아이가 이번에는 여러 가지 화초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 중에 다만 하나가 뿌리가 달려 있었으므로, 아이는 그것을 분에다 심어 달라 하여, 늘 드러누워 있는 자리 옆의 들창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심겨진 화초는 점점 크게 자라고, 새싹이 돋아서 해마다 꽃이 피었습니다. 그 화초가 그 불쌍한 아이에게는 넓고, 놀기 좋은 마당같이 생각되어 이 세상에 다시 없는 귀중한 것으로 알게 되어서 병든 몸에는 다만, 하나뿐인 동무인, 그 화초를 물도 뿌리고 햇볕도 쬐어 주고 하면서, 그것을 위하여 적지 않게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화초의 꿈을 꾸기도 하고, 좋은 향긋한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그 꽃을 보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제 신세를 위로해 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아이는 기어코 죽어 버렸답니다. 벌써 그 아이가 하늘 나라에 온 지 일 년이나 되는 해, 그 꽃은 그냥 그대로 그 들창 위에 놓인 채로 내버려 있더니, 이윽고 꽃과 나무가 마르니까, 그냥 내어 팽개치게 되어 땅 위로 굴러 나와서 깨어졌답니다. 그것이 아까 우리가 긁어 모아 가지고 온, 이 불쌍한 꽃뿌리랍니다. 이렇게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임금님의 정원에 놓여 있는 훌륭한 화초보다도, 훨씬 더 아이를 위로해 주고 있었답니다.”
날아가면서 천사의 이 불쌍한 이야기를 듣고, 그 품 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천사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샅샅이 자세히 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사는 곧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자세히 알기만 해요? 그 병든 불쌍한 아이는 실상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나랍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이 꽃을 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안겼던 아이는 눈을 번쩍 뜨고, 그 천사의 예쁘고도 부드러운 얼굴을 다시 말끄러미 들여다 보았습니다.
마침 그 때 두 사람은 벌써 찬란한 하늘 나라에 당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안겨 온 죽은 아이를 받아 안고, 다른 천사들과 같이 잔등 위에 희고 부드러운 큰 날개를 붙여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천사가 가져온 꽃을 받아서 가슴에 안고 꺾어진 장미꽃과 마른 꽃뿌리와 다른 모든 꽃 위에 입을 맞추어 주시니까, 꽃은 모두 일시에 기꺼운 소리를 치고 하느님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노랫소리는 어느 때까지든 유창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천사가 된 아이의 소리도 말랐던 화초의 소리도 그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안데르센 집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