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구름과 그리고 이 마음은
푸른 하늘 그 동산에 노는
하나의 뜰 토끼들이오라
보라, 오늘도 태양이 그 붉은 활개를 펴고
그 하늘 위에 떠오르나니
이 마음도 구름과 함께 그 하늘에 헤매오우리

창공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요 그림이다. 그리고 신의 장막이요 영원의 스크린인 것이다. 누가 그 하늘을 바라보고 유연장대(悠然壯大)의 느낌을 아니 가질 것이냐?

우리는 공연히 단칸방 속에 들어앉아 쓰러져가는 벽과 함께 단단하고 컴컴하고 산란한 고뇌와 우수와 명상에 빠질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을 차고 밖으로 나가자. 그리하여 그 영혼으로 하여금 오로지 하나의 파랑새가 되어 넓은 대공 위에 자유로이 헤매게 하라.

우리에게 대리석 집은 없고 좋은 피아노와 회화는 없지마는 우리에게도 그 무한대한 대공이 있고 그 광명한 태양이 있지 아니한가. 블레이크는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마음에 근심이 없고 따라서 호연한 마음과 발랄한 기운이 넘쳐흐른다”하였거니와 과연 대공의 찬가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웅혼과 평화와 유락을 느끼리라. 대공은 우리에게 평화를 말하고 영원을 말하고 웅대를 말하고 호연을 말하고 심원을 말하지 아니하는가.

시인 레니에는 “너는 앓는 고양이처럼 방안에서 이마를 찡그리지 말라. 바깥으로 나오라. 쪽빛 하늘 위에 한떨기 꽃이 피었다 스러졌다 하지 않느나. 그리고 밤하늘의 별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가.”

이러한 말을 하였다. 우리는 그렇다고 열흘 밤 열흘 낮을 하늘을 보고 거기서 내리는 이슬을 마시며 무슨 조화를 배우러던 인도의 어떤 성자처럼 미신을 배우려는 사람은 아니다. 그 창공을 바라보고 새 기운을 얻고 그 마음을 정화하고 그 혼을 시화하려는 그것이 아니면 아닐 것이다.

넓고 넓은 하늘 ― 영원의 철학자여!
우리에게 마라라, 온 누리의 신비와 진리를!
너의 남옥의 그 날개 밑에 고이 쌓이고저
어미 찾는 새같이 때없이 너를 찾노라
굶과 별과 같이 네 위에 떠오르노라.

우리의 그 무한대 · 무한장 · 무한원한 하늘 ― 영원과 심원과 무구를 말하는 하늘 ― 파란 유리같이 맑은 하늘이 동으로 서로 한없이 뻗치고 퍼져서 그 길이와 넓이가 몇만리가 되는가? 다못 그 위에 흰구름이 유유히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지 않는가.

시인 라포르그의

하늘은 신의 얼굴 그의 철학!
바다는 알 수 없는 신비의 미궁!
구름이 사라진 후 별이 뜨나니
이 배여, 검은 밤에 저 물결 보라.

그 〈대양의 하늘〉이라는 시를 생각하리라.

과연 사람은 너무 인공화 · 도회화 · 과학화하는 곳에서 우울과 번민과 병약과 퇴영이 생기는 것이다. 하늘을 보고 태양을 보고 자연을 보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때에 비로소 용기를 얻고 진리를 얻고 건강을얻고 행복을 얻고, 따라서 사람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닐까?

톨스토이는 그의 《전쟁과 평화》 중에 “내가 왜 저 하늘을 한 번 다시 보지 못하고 죽게 되는가?”하는 말을 썼고, 사닝도 그의 《란데의 사중》에 “하늘같이 아름다운 것이 또 있나?”하고 손을 내저어 하늘을 껴안으며 죽는 사람을 그렸다. 그리고 잔 모레아스는 “하늘이 장미빛으로 변할 때 내 마음의 노래를 구름에 싸서 그 하늘 위에 매어두리라”하였고, 게오르게는 그의 애인이 “당신은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매 “나는 가장 좋은 시를 써서 그 넓은 창공 위에 크게 새겨두어 지구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를 읽게 하고, 또 오고가는 몇천만년 동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를 읽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

과연 하늘은 모든 소망의 원천이요, 모든 진리와 모든 철학의 모태가 아닐까? 하늘을 노래하고 하늘을 벗삼고 유유자적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평안이 있으 것이다. 그러나 먹을것 없고 입을것 없어 생활과 씨름하는 사람이 언제 대공(大空)을 바라볼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사람도 대공을 바라보고 그 초조한 마음을 버린 후 유연한 용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돈 · 욕심 · 전단 · 독점, 그 모든 것으로 마음을 채운 사람도 창공의 유연한 빛을 바라보고 시미(詩美)와 평화와 사랑의 시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시적 법열이 아니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몇개의 시를 읽어보자.

하늘도 바다, 바다도 하늘
흰구름이 바다에 잠겼는가?
흐르는 이 배도 그 하늘에 가리.

이것은 레몬의 〈바다와 하늘〉의 소곡(小曲)이다.

흰 모래밭에 세 마리 하얀 새
그러나 바람에 놀래어 그 하늘에 나나니
하늘에는 구름이 그 새를 맞네.

이것은 페트의 〈소조곡(小鳥曲)〉의 일절이다. 구르몽의 〈하늘 소곡〉을 보면,

사람마다 그 하늘 보네
보다가 고개 숙이고 얼굴 붉히네.
그 좁은 마음을 비움음일까?
사람아, 하늘같이 네마음 맑히라!

이러한 시가 있다. 우리는 누구나 대공찬가를 부르는 사람이 되자.

페르시아의 어떤 성자는 미리탄 산에 올라가서 만리나 가는 무쇠 살〔矢〕을 가지고 하늘을 쏘았다. 그 쏘는 목적은 푸른 하늘 속에 있는 악마를 죽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필경 죽이지 못하고 다시 그 화살로 하늘에 떠 있는 붉은 해를 쏘았다. 그랬더니 그 해에서 시뻘건 피가 온 땅에 쏟아져내렸다 한다. 그는 해의 정(精)이었는데 땅에 쏟아진 피는 모두 꽃이 되어서 아름답게 빨갛게 피어 대지를 꾸미었다 한다.

지나(支那) 고서에는 하늘이 3만6천년마다 한번씩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는 구름을 탄 신이 꽃다발을 가지고 대지로 내려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3만년 동안이나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만 화석이 되어 태산의 돌이 되었는데 그후에 하늘의 문이 열리며 천신이 과연 꽃무치를 가지고 내려와서 그 화석을 불렀더니, 그 목소리에 화석은 다시 사람이 되어 천신과 함께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인도의 어떤 성자는 죽으며 자기 제자들을 향하여, 내가 죽거든 내 혼을 하늘 위에 매어두라 하였는데 과연 그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은 그의 혼을 흰 연꽃에 싸서 하라멜봉에 갖다두었다. 그랬더니 하늘에서 흰구름이 내려고 그 꽃으 휩싸가지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제자들은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고 경배를 하였다고 하였다.


이제 나는 나와 대공과의 맺어진 에피소드 몇개를 기록하고 이 글을 마치자.

첫째로 이것은 나의 어린날의 추억의 일편 ― 어려서 내가 살던 신화리(薪花里)에는 오봉산(五峯山)이란 큰 산이 있다. 그 산이 어찌 크고 높든지 그 봉우링는 구름이 거닐고 있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저 산에 올라가면 손으로 하늘을 잡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하늘이 그립고 그 산이 그리워 언제든지 오봉산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이 먹고 좀 커서 나는 동리 애들과 함께 산나무를 캐러 그 산에 가서 필경은 산봉우리에까지 올라갔었다. 그랬더니 그 하늘이 얼마나 높고 넓은 것이냐!

비로소 나는 하늘의 무한대를 알았다. 나는 단군의 후손이 마니산에 올라가 제단(祭壇)을 묻고 천제를 지냈다는 글을 생각하고 작은 석탑을 모은 후 천공에 국궁삼배(鞠躬三拜)를 하였다.

10년 전 내가 백두산에 갔을 때이다. 백두산 절정에 올라 그 웅장한 천지(天池)에 어린 하늘 그림자를 볼 때, 또는 하늘의 구름이 천지에 가로 비침을 볼 때, 나는 비로소 하늘의 웅대를 깨달았다. 그 거룩하고 장대하고 고원한 리듬, 내가 무엇을 한들 이보다 더 엄숙한 감격에 넘칠 것이냐. 천지에 비치는 하늘 그림자는 성자의 얼굴이 아니면 신의 얼굴이었다. 내가 성자의 기도를 몇백번 듣고 또는 설교를 몇천번 듣기로 이보다 더한 감격에 묻힐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천지를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창공 만세를 부른 때도 이때이다.

내가 고독의 반주자(伴奏者)로서 무장야(武藏野)에 해매일때이다. 길상(吉祥) ‘사정지두’(寺井之頭) 부근에는 10리 20리 새밭이 무성이 얽히어 있다. 나는 세상이 귀챃고 또는 모든 것이 희망이 없어서 날마다 그 새밭에 가 누워 있었다. 어느날은 주머니에 가성소다까지 가져가서 그만 영원히 꿈을 지으려고 하였다. 몇시간이나 새밭에 누웠다가 “에라 그만……”하고 일어났었다. 나는 그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유유무한대(悠悠無限大)한 창공 ― 나는 나의 작음을 생각하고 또는 “너는 왜 그리 조급한가?”하고 나의 갈청같이 엷은 마음을 조소하였다. 마침내 그 하늘 밑에 심기일전을 한 셈이다.

아! 창공 만세! 너는 나의 사랑이요, 내가 갈 영원의 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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