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運命의 岐路

장현도와 송춘식— 이 두 악마의 무서운 음모로 말미아마 진실로 젊은이 이봉룡의 신체가 검사국에 구속된 바루 그날 이 남포바닥에는 또 한쌍의 약혼피로연(約婚披露宴)이 있었던것이니, 그것은 지금 요정 동명관에서 열린 청년검사대리(靑年檢事代理) 유동운(劉東雲)과 그의 약혼자 오정숙(吳貞淑)이와의 그것이었다.

정숙의 부친 오붕서(吳朋書)는 서북선 일대에 걸처 다섯 군(郡)의 군수(郡守)와 평북지사(平北知事)를 력임한 정치객으로서 지금은 모든 관직에서 떠나 삼화공원(三和公園) 아래 있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사교가인 안해와 어여뿐 딸 정숙과 그리고 수많은 재산을 향락하면서 한가로이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명망높은 집 무남독녀 외딸인 오정숙과 전도가 유망한 검사대리 유동운과의 이 호화로운 장래를 촉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날 오전, 이봉룡이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비석리 오막사리 방에서 버려졌던 초라한 주석(酒席)과는 좋은 대조가 되는 호화로운 약혼피로연이었던 것이다.

『정숙아, 네 남편될 사람은 전도가 유망한 분이다. 너두 남편을 잘 보조하여서 남편으로 하여금 충분히 나라에 봉사하도록 노력하지 않어서는 않된다.』

이것은 이날, 아버지 오붕서가 딸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전, 어쩐지 검사는 무서워요. 사람에게 무서운 형벌을 주구 또 사형을 내리구...... 생각만해두 전 무서워요. 왜 의사가 되지 않었어요?』

그러면서 정숙은 아버지 옆에 앉은 검사대리 유동운을 방그레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유동운은 그러한 정숙을 마음속으로 무척 귀여워 하였다.

『그런게 아니라, 네 남편 유동운군으로 말하면 정신적으로, 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의사가 되여주는거니까, 그 점을 잘 이해하야만 되는것이야.』

그러나 정숙은 아버지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를 않었다. 정치범(政治犯), 더구나 조국 광복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뛰여다니는 혁명가들을 악착하게도 컴컴한 철창속으로 집어넣고 무서운 교수대로 끌고가는 그러한 권리를 가진 남편의 직업이 정숙에게는 너무나 무서웠던 때문이다.

이 약혼에 있어서 아버지는 사위 유동운이가 장래에는 한사람의 훌륭한 사법관으로서 상당한 지위에까지 올라갈수 있는 출중한 두뇌와 불타는 야망을 가진 재사인것을 믿었다.

그러나 정숙은 남편의 그러한 직업이라던가 출세라던가에 흥미를 느꼈다는것 보다도 남편이 열열한 애국자요 숨은 혁명가인 유민세(劉民世)씨의 아들이라는데 좀더 존경의 념을 갖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아버지와 이 아들이 서로 사상이 다르고 인생에 대한 철학이 같지 않은줄을 어린 정숙은 아직 잘 몰랐던 것이다.

『유군, 서울 계신 자네 부친으로 말하면 지금도 당국의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있는 분이니까, 그런 사실을 잘 염두에 넣어두고, 자네는 다만 자네의 직분만을 충실히 지켜나가야만 하네. 만일 자네의 행동에 조금만치라도 그 어떤 티가 있다면 자네의 출세, 자네의 장래는 그 순간부터 허무러지는 것이야. 알겠나?』

정숙의 아버지 오붕서는 그런 말을 곳잘 사위에게 하였다. 그럴때마다 출세와 야망에 불타는 젊은 검사대리는

『염려하실것 없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서로 생각이 다르고 생활의 철학이 다르ㅎ습니다.』

『음, 잘 주의하게. 그렇지 않어도 당국에서는 요시찰인의 아들이라 해서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없지도 않으니까 말이네. 자네만 실수를 않한다면, 내가 뒤에서 얼마던지 자넬 보아 줄테니까, 말하자면 자네의 전도는 저 황해바다 처럼 양양한 것이야.』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저는 저 올시다. 저는 정숙씨를 행복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고 정숙은 무척 행복하였다.

그때 한사람의 경부가 들어와서 검사대리 유동운의 귀에 입을 대고 무엇을 잠깐동안 속삭이더니 가치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후에 다시 유동운이가 들어왔다. 그순간 검사대리의 얼굴이 어딘가 약간 창백해 보였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정숙은 약간 불안한 안색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네, 좀 중대한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습니다.』

『중대한 사건이라구요?』

『그렇습니다. 독립단의 음모사건이 발각되였습니다.』

『에? 독립단의 음모?......』

정숙은 놀래여 부르짖었다.

『이것이 바루 그 고솟장입니다.』

유동운은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조그만 종이조각이 든 봉투를 끄집어 내어 낮은 음성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검사각하. 대일본제국에 대하여 충성을 아끼지 않는 소생은 대련과 상해를 거쳐 오늘 아침 진남포에 귀항한 태양환의 일등운전사 이봉룡이라는 자가 상해 부두에서 안창호(安昌鎬)씨에게 신서(信書)를 전달하고 다시 동씨로부터 서울로 향하는 신서를 받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아뢰입니다. 그죄상의 증거품인 신서는 이봉룡 자신이나 또는 그 부친의 처소나 그렇지 않으면 태양환 그의 선실에서 발견될것이라 믿는바 올시다.』

다— 읽고난 유동운은 고솟장을 다시 주머니에 쓰러넣으면서

『검사가 지금 출장을 가서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고솟장이 내게로 도라왔는데, 인제 그 경관의 말을 들으면 벌서 범인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미안합니다만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제가 잠깐 다녀와야겠습니다. 곧 다녀올테니 연회는 이대로 진행시켜 주십시요.』

『음, 그럼 다녀올수 밖에...... 우리는 이대로 기다릴테니까, 신문이 끝나는대로 곧 돌아와주게.』

『예.』

하고 유동운은 당황히 복도로 나갔다. 정숙은 그뒤를 따라나가면서

『동운씨, 오늘은 저이 두사람의 행복을 약속하는 약혼식 날인데, 저...... 저, 될수있는대루 관대하게 처분해 주세요 네.』

이와같은 정숙의 고흔 맘씨를 귀엽게 생각하면서 유동운은

『염녀마시요. 정숙씨의 그 아름다운 맘씨를 위해서라도 될수만 있다면 관대한 처분을 하겠소. 오늘은 우리 두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날!』

그러면서 정숙의 손목을 남몰래 꼭 쥐였다가 놓았다.

『고맙습니다!』

정숙은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유동운 검사대리는 마음속에 가장 행복된 천국을 그림그리며 창황히 뛰여나갔다.

금년 스물일급살인 유동운은 벌서 사법관으로서 장래를 촉망하는 견실한 지위에 있을뿐 아니라, 문벌과 명망과 재산을 아울러 지닌 오붕서의 외딸을 안해로 삼으려는 실로 행복의 천국을 거닐고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유동운에게 단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소위 불온한 사상의 소유자로서 당국의 감시를 받고있는 아버지 때문에 혹시나 자기의 출세의 길이 맥히지나 않을까 하는 염녀뿐이었다.

이윽코 밖에서 기다리던 경부와 함께 재판소를 향하여 걸어가며

『그래 지금까지 판명된 사실은 뭣인가?』

『사나이의 주머니에서 한뭉치의 서류를 압수하여 유선생 책상위에 놔뒀습니다.』

『그 서류를 보았는가?』

『유선생이 보시기 전에 누가 그 서류에 손을 대겠습니까? 잘 봉함을 하여 뒀습니다.』

『음, 그리고?......』

『그리고는 고솟장에서두 보신바와 같이 피고는 태양환의 일등운전사— 저 모상회에서 일을 보는 사나이입니다.』

『모상회라면 저 모영택씨의 상회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검사대리 유동운은 모영택씨를 그리 마음에 흡족한 사람으로는 치지 않는다. 어째 그러냐 하면 모영택씨에게는 어딘가 자기 아버지에게서 보는것과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렇지도 않었으나 내심으로는 소위 자기네 관직에 있는 사람들을 비웃는것과 같은 일종의 우월감을 갖고있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었다.

바루 그때 모영택씨가 헐레벌떡 따라오면서 검사대리를 불렀다.

『아, 유검사, 잘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집에 있는 봉룡이가 체포를 당했습니다 그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일 취조하려 가는 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유검사께서는 모르시겠습니다만 봉룡이란 청년으로 말하면 아주 정직하고 선량하고 자기의 직무에 남달리 충실한 사나입니다. 유검사께서도 그점을 잘 참고하셔서 될수있는데로 관대한 처분을 바라 마지 않습니다.』

모영택씨는 자기 아들이나 구하려 온 사람처럼 허리를 굽히고 여러번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거기 대한 유검사의 대답은 너무나 차다.

『그처럼 선량하고 정직하고 직무에 충실한 사람도 정치적으로 대범죄인(大犯罪人)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아, 거야 물론 그런수도 없지 않을테지만요. 저 봉룡이만은 정말로...... 유검사, 저 불상한 봉룡이를 한시바삐 돌려보내 주십시요! 부탁합니다!』

『글세 올시다. 죄 있는 사람을 벌하지 말아달라는 말씀이라면 그건 절더러 검사대리를 그만둬 달라는 말씀과 마찬가지 뜻이겠지요.』

그 한마디를 돌 던지듯이 배앝은 후에 유동운은 검사국 뜰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돌부처인 양 멍하니 섰는 모영택씨를 행길바닥에 남겨놓고—.

유검사는 컴컴한 복도를 천천히 걸어들어가면서 깊이 한번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는 지금 약혼피로연에서 자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정숙의 어여쁜 자태를 머리에 그려보았다.

검사국 내외에는 헌병대와 경관대가 엄중한 경계망을 치고 있었다.

『범인은 어데 있느냐?』

『취조실에 있습니다.』

유검사는 취조실밖을 지내가면서 유리문으로 방안을 드려다 보았다. 스물이 될락말락한 한사람의 청년이 손에다 수갑을 차고 경관대에 포위되여 있으면서도 자기의 죄없는것을 굳게 믿는듯이 침착한 태도로 부처님처럼 서있는것을 보았다.

봉룡이에게 대한 유동운 검사대리의 인상은 대단히 좋왔다. 총명을 말하는 넓은 이마와 솔직하고 선량함을 증명하는 부드러운 입술과— 그러나 유검사는 이와같은 첫인상에 속은 경험이 때때로 있은 사실을 다시금 도리켜 생각해보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기의 사무탁 앞에 몸을 던졌다.

『범인을 이리로 다리고 오게.』

『네.』

경부는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조용히 문이 열리며 태양환의 선장과 계옥분의 남편이 그의 행복과 함께 약속되여 있는 이봉룡이의 창백한 얼굴이, 침착한 미소를 입까에 띠우면서 검사대리 유동운앞에 천천히 나타났던것이니, 아아, 이 어이한 운명의 작난인고? 동일동시에 같은 행복과 같은 기쁨을, 비록 하나는 초라하고 하나는 호화롭기는 하였을망정, 똑같은 약혼피로연에서 느끼던 두 사람의 젊은이가, 이 컴컴한 검사국 일실에서 하나는 심판관으로서, 하나는 그 심판을 받는 죄수로서 대면하지 않으면 않되게 된, 아아 운명의 악착한 히롱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