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告訴狀


장두칼을 꽉 부여잡은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섰는 춘식이의 눈 앞에서 옥분은 봉룡을 만났다.

『아, 봉룡이!』

『옥분이!』

커다란 감격이 두 사람의 젊은 영혼을 자즈러들 듯이 행복케 하였다. 석달 만에 처음 보는 옥분이의 모습이었으며 봉룡이의 자태였기 때문에—.

바다와 륙지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하나는 멀리 륙지가 보일 때 마다, 하나는 거센 파도 소리가 들릴 때 마다, 서로서로의 평온과 안식을 달과 해에 빌었다.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보구 싶었소!」, 「잘 있었수?」 하는 말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옥분이, 저이가 누군가?』

하고 봉룡이는 비로서 자기들 옆에 한 사람의 사나이가 섰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 저이는 춘식이라구, 내가 오라버니 처럼 믿고 있는 이야. 봉룡일 내놓구는 내가 세상에서 젤루 믿는 이야.』

『아, 그렇습니까? 이봉룡이라고 불읍니다.』

그러나 춘식은 봉룡의 인사에는 대답도 않고 그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있을 따름이었다. 봉룡은 보았다. 춘식이라구 불으는 그 사나이의 바른편 손이 꽉 부여잡고 있는 장두칼을 보았다.

『옥분이, 나를 적(敵)으로 생각하는 그 어떤 사나이를 옥분이 옆에서 발견할줄을 몰랐어.』

『적이라구?...... 누구가 봉룡일 적으루...... 저이는...... 저이는 내가 오라버니 처럼 믿구 있는.......』

그러면서 옥분이는 차디찬 눈초리로 춘식을 쏘아 보았다. 그 명령하는것 같은 옥분이의 눈초리를 보자, 춘식은 그만 풀이 죽어서 쥐였던 장두칼을 놓면서

『나는 송춘식이요.』

하는 한마디를 남겨 놓고 쏜살처럼 행길로 뛰여 나갔다.

『아아, 저 녀석을...... 저 봉룡이를 옥분이의 옆에서 떼여 놔 줄 사람은 없는가?』

춘식은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얼마 동안을 미친듯이 달리고 있노라니까, 그때

『이거 춘식이가 아닌가? 뭘 그리 미친듯이 줄다름을 치는거야? 자아, 그만큼 다름질을 했으면 목두 웬만치 말을듯 하니 들어 와 한잔 하게.』

춘식은 발걸음을 멈추고 행길가 주막안을 드려다 보았다. 봉룡이의 집주인 박돌이와 태양환의 회계 장현도가 춘식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앉었다.

『흥, 암만 봐두 봉룡이한테 떼원 모양이로군!』

장현도는 그러면서 박돌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음, 춘식이루 말하면 억낭틀 어촌(漁村)에서두 용감한 청년이지. 그만한 청년이 제 동리 처녀를 다른 녀석한테 채우다니 원 될법한 노릇인가?』

춘식은 그때 화를 벌칵 내며

『듣기 싫어요! 옥분이가 누구를 사랑하건 그건 옥분이 맘대루 할것이지, 옥분이가 누구의 물건인가요?』

『거야 물론,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다시 두말할 것두 없지만두, 그래두 자넨 억낭틀 고기 잽이꾼 가운데서두 제누라구 머리를 저으면서 댕기던 사람이기 말이네.』

그때 장현도는 박돌이의 말을 받아

『모두가 그 봉룡이 녀석이 돌아온 탓이지. 그 녀석만 돌아오지 않었으면 춘식이두 저 꼴은 않당할께 아닌가. 자아 춘식이, 이 술 한잔 들게. 이 술 한잔 들면 맘이 수루루 풀린단 말이야. 응? 자아.......』

그러나 춘식은 성난 사자처럼 푸르럭 거리면서 술잔으로 주막 기둥을 내 갈겼다.

『하아, 이 사람, 이서방한테 뺨을 맞구 장서방한테 분푸릴 할 셈인가? 하하하...... 그런데 저게...... 저게 옥분이와 봉룡이가 아닌가?』

술상 옆에 쭈구리고 앉았던 춘식이는 후닥딱 머리를 들어 행길을 내다 보았다.

나드리 옷으로 갈아 입은 옥분이가 봉룡이 뒤로 머리를 소그듬하고 따라 온다. 둔한 송굿으로 가슴 속을 쿡쿡 찔르는것 같은 춘식이었다.

『아, 봉룡이!』

하고 박돌은 봉룡을 불렀다.

『아, 그래 원앙 같은 부부래더니, 자넬 두구 한 말일세 그려.』

『원, 별 말씀을 다.......』

『암만 봐두 옥분인 봉룡이의 색시래야만 제격인걸! 그래 예장은 언제 싸구, 또 혼례식은 언제 쯤 지낼텐가?』

『뭐, 예장이랄건 없습니다만 내일쯤 여러분들께 술이나 한잔씩 대접할려구 생각하구 있습니다.』

『그래 혼례식두 곧 지낼테지?』

『네, 혼례식은 이삼일후에 지낼까 합니다. 제가 내일 밤, 잠깐 서울 다녀올 일이 생겨서요. 서울다녀 와서 지낼까 합니다.』

그때 장현도가 긴장한 얼굴을 지으며

『서울?...... 서울은 또 무슨 일루요?......』

『저, 선장이 돌아가실 때 무슨 부탁을 한가지 받았기 때문에요, 이삼일 내로 곧 돌아 오겠습니다.』

『아 그래요?』

하고 장현도는 아모것도 모르는것 처럼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윽고 봉룡이와 옥분이가 저편 행길 모퉁이로 사라지는 뒷모양을 물끄럼이 바라보면서 혼잣 말로

『으음, 편지를 전할려는구나! 상해 부두에서 도산선생에게서 받은 편지를 서울에 전달할려는구나...... 아, 그렇다! 편지! 편지! 아아, 봉룡이여! 너는 아직 태양환의 선장이 될수는 없어!』

하고 악마의 웃음을 입까에 지었다.

좌석을 돌아다 보니 박돌은 혜가 잘 돌아 가지 않을 만큼 취해서 쓰러졌고 춘식은 정신 없는 사람인양 멍하니 앉었다.

『춘식이, 자네 옥분일 그처럼두 좋아했었나?』

『하늘 같이...... 땅 같이 좋아 했어요!』

『그래 그처럼 옥분일 좋아하면서 바보처럼 멍하니 바라만 본다는 말인가?...... 흥! 억낭틀 고기 잽이꾼두 인젠 다 죽었어!』

『아니예요. 나는 봉룡이 녀석을 죽일려구 했어요. 그러나 봉룡이가 죽으면 옥분이두 따라 죽습니다...... 그래서.......』

『흥, 따라 죽는다구?...... 그건 말 뿐이야.』

『아니예요. 그것은 아직 옥분일 모르는 말이예요. 옥분인 꼭 따라 죽을 사람이예요!』

그때 장현도는 춘식이의 옆으로 다가 앉으며

『내가 자넬 그 무서운 번민으로부터 건져 줄까?...... 응, 어때?......』

『정말입니까?』

춘식은 귀가 번쩍 띠웠다.

『정말이구 말구, 문제는 봉룡이가 옥분이와 결혼을 못하도록 하면 그만이 아닌가?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그래요. 봉룡이가 죽으면 옥분이도 죽습니다. 그래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가르켜줘요!』

『음, 가르켜 주마...... 문제는 옥분이와 봉룡이 사이에 넘을래야 넘을 수 없는 높은 돌담을 하나 쌓아 올리면 그만이니까.......』

『돌담이라구요?』

『그렇지, 봉룡일 감옥으로 정밸 보내면 그만이란 말이야!』

『않되네, 않돼. 봉룡일 감옥으로 잡아 넣으면 않되네, 않돼.』

하고 그때 골아 떠러저서 쓰러저 있던 박돌이가 까부라진 혜끝으로 말을 가로막았다.

『이자식, 골아 떨어진 줄 알았더니, 아직 정신이 있나부다? 자넨 상관 말구 어서 술이나 한잔 더 먹구 자게.』

그러면서 장현도는 박돌이의 입에다 대포를 두어잔 부어 넣었다.

『아, 글세, 봉룡이가 뭘 잘못했기에 감옥엘 넣는다는 말이야, 응?...... 사람을 죽였나, 돈을 훔쳤나?...... 봉룡이루 말하면 남포 바닥에 둘도 없는 효자구.......』

『아, 글세 좀 가만 못있겠나? 자넨 간참 말구 잠이나 자게.』

『음...... 음.......』

하고 박돌인 다시 골아졌다. 그때 장현도는 주인을 불러 벼루와 종이와 붓을 빌려 가지고,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후어 속삭이 듯이

『춘식이, 잘 들어 두게.— 봉룡이가 말이네. 독립단(獨立團)의 한 사람이라구 검사에게 고소를 하면 된다는 말이야.』

『고소라구요? 내가 하지요!...... 그런데 무슨 증거가 있어요?』

춘식은 흥분한 어조로 조급히 물었다. 장현도는 적지않게 만족한 웃음을 입까에 띠우면서

『있지! 그런데 가만 있게. 내가 고솟장(告訴狀)을 하나 견본으로 써 볼테니 잘 보아 두게. 쓰는데는 바른 손으로 쓰질 말구 왼 손으로 써야 해. 그래야 누구가 쓴지 모르게 필적을 감출수가 있으니까—』

그러면서 장현도는 왼 손으로 두루마리에다 다음과 같은 고소장을 써 보였다.

『검사각하. 대일본제국에 대하여 충성을 아끼지 않는 소생은 대련과 상해를 거쳐 오늘 아침 진남포에 귀항한 태양환의 일등운전사 이봉룡이라는 자가 상해 부두에서 안창호(安昌浩)씨에게 신서(信書)를 전달하고 다시 동씨로부터 서울로 향하는 신서를 받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아뢰입니다. 그 죄상의 증거품인 신서는 이봉룡 자신이나 또는 그 부친의 처소나 그렇지 않으면 태양환 그의 선실에서 발견될것이라 믿는바 올시다.』

춘식은 낮으막한 목소리로 고솟장을 읽어 보았다.

『어때? 그만 했으면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가?』

하고 장현도가 춘식이의 얼굴을 드려다 보고 있을 때

『못쓴다, 못써! 무고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선 못쓴다, 못써!』

하고 박돌이가 또 중얼 대기 시작하였다.

『하하하...... 박돌이, 누가 정말인 줄 알구 그러나? 농담이야 농담. 자아 이것 봐!』

하고 슬쩍 장현도는 자기가 쓴 고솟장을 손으로 부비여서 술상 밑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춘식을 향하여

『춘식이, 내가 왜 봉룡일 그와 같은 무서운 모함에 쓰러넣겠나 말이야? 봉룡인 내 친구가 아닌가? 그리구 지금 행복에 날뛰고 있는 봉룡일 왜 글세 내가...... 모다가 농담이래두 그래.』

『그러나 현도씨두 나처럼 봉룡일 미워하지 않습니까? 무슨 리윤지는 몰라두 미워하는 것만은 사실이 아닙니까?』

『내가 봉룡일 왜 미워한다는 말인가? 그처럼 친절하구, 그처럼 믿음성있는 친구를.......』

『못쓴다 못써. 아무리 선장이 되고 싶어두 그것만은...... 그것만은 못쓴대두!』

또 박돌이가 중얼거린다.

『선장? 이사람 박돌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술이 아직 좀 모자르는 모양인가?』

『음, 저 진실한 청년 봉룡이와 해당화 처럼 예쁜 옥분일 위하여 축배를 들세.』

『에이, 이 주망태! 인젠 그만 먹구 가세 가.』

장현도는 박돌을 일으켜 가지고 주막을 나섰다. 주막을 나올 때 그는 술상 밑에 꽁지여 내던진 고솟장을 무서운 눈초리로 열심히 드려다 보고 앉은 춘식을 힐끗 곁눈으로 바라보며 빙그래 웃음을 지었다.

『춘식이, 자넨 않 갈텐가? 거리로 들어 가서 한잔 더 않해 보겠나?』

『나는 그만 두겠어요. 집으로 돌아 가겠어요.』

그러면서 춘식은 술상 밑에서 꽁꽁 꽁진 고솟장을 얼른 집어서 자기 주머니 속에 쓰러넣는 것을 장현도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자아, 그물은 처 놨다! 기다리기만 하면 고기는 저절로 걸려 들것이 아닌가?」

장현도는 그렇게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과연 그 조그만 종이조각이 가져오는 비극은 너무나 크고도 무서운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