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私生兒

『선생님, 어느 대목에서부터 이야기를 할까요?』

『그것은 자네 마음대로 할수 밖에...... 그러나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섞으면 안돼.』

『원 별 말씀을 다.......』

배성칠은 거기서 잠깐 무서운 과거를 회상하듯이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먼 하늘을 바라다보며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루 기미년 八월 중순이었습니다. 만세운동이 일단락을 짓자 진남포서 검사대리로 있던 유동운은 검사로 승격하여 해주로 영전이 되여 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제 고향도 역시 해주입지요. 어렸을 적에 양친을 여윈 저는 하나밖에 없는 형님의 손에 길러났기 때문에 말하자면 형님은 제게 있어서는 형님인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였습니다. 더구나 형수는 제 어머니이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그지음 저이 형제는 이렇다할 정당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근해밀항(近海密航)을 일삼는 밀수입자(密輸入者)들과 몰려다니며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가 바루 어느땐가하면 해주검사국에서 K라는 인물을 체포하지 못하여 눈이 벌게서 돌아 댕길 때이었지요. K는 三一만세 때 해주에서 청년 지도자격으로 활동한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K를 비밀리에 상해로 밀항시킨것이 바루 내 형님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아모것도 모르는 저이들 밀수입자들에게도 조국을 사랑하는 한줄기 끓는 피가 없을수 있겠습니까!』

『음. 기특한 마음씨다. 그래서?』

『그런데 어떻게 일이 탄로났는지 어느날 갑자기 유동운 검사가 형님의 집에 와서 가택수사를 한후에 형님을 꽁꽁 묶어갔답니다. 그런데 가택수사를 할때에 벽장속에서 한자루의 권총이 발견되었지요. 이 권총으로 말하면 순전히 밀수입자로서의 보신용으로 갖고 있던것이고 결코 독립운동자로서의 무기는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모리 변명하여도 유동운은 좀처럼 귀를 기ㅇ리지 않었지요. 나는 그때 검사국으로 친히 유동운을 찾아가서 형님을 위하여 가진 변호와 애원을 하였습니다만, 유동운은 어름덩이 같은 냉정한 태도로, 자기는 다만 대일본제국의 법률을 시행하는 하나의 기계일 뿐이라는 차디찬 한마디 말로서 나를 물리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순간 무지몽매한 하나의 밀수입자로서의 나의 거치러운 피가 같은 조선사람의 핏줄기를 받은 유동운 검사의 그 너무나 차디찬 태도에 무섭게 항거하는 용솟음을 온몸에 느끼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오냐, 나는 너에게 복수를 하마! 이름이 좋오서 밀수입자지, 해적에 가까운 생활을 하여온 나의 난폭한 피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아아, 그뿐이겠습니까? 형님은 마침내 석달만에 원인불명의 죽엄을 옥중에서 하였습니다. 옥사한 형님의 소식을 듣고 불쌍한 형수는 사흘동안이나 나를 부여잡고 목놓아 울었답니다. 아주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요! 나는 그렇게 형수의 귀밑에 속삭이었습니다.』

『음, 복수를 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후 어떻게 된 셈인지, 유동운은 다시 서울로 전근이 되여 왔습니다. 형수를 혼자 해주에 남겨두고 유동운의 뒤를 따라 나도 서울로 올라 왔지요. 그리고 나는 매일 밤처럼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떤날 밤, 나는 실로 이상한 일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라구?』

『네, 선생님, 글세, 유동운이가 바루 이집— 그것두 아까 우리가 들어온 대문으로 들어오는것이 아니고 아 선생님, 바루 저기 보이는 저 조그만 뒷문으로 누가 볼까 싶어서 사방을 두리번 거리면서 몰래 숨어들어오질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성칠은 검은 널판자 울타리 한복판에 달린 조그만 문짝을 손까락으로 가리켰다.

『음, 그래서?......』

백진주 선생은 흥미를 느끼는듯이 맞장구를 친다.

『아까 행랑아범이 말한것 처럼 이집은 그때도 유동운의 장인되는 오붕서씨의 소유였지만, 오붕서씨는 남포서 살고있었기 때문에 이 별장은 어떤 젊은 과부에게 빌려주었지요. 그 젊은 과부 이름이 뭐 심봉채(沈鳳彩)라나요.』

『음, 심봉채!』

『네, 그런데 어떤날 밤, 저 담장밖에서 이 뒷뜰을 넘겨다 보니까, 스물이 될락말락한 어여쁜 여자가 자꾸만 저 뒷문을 바라보고 섰겠지요. 분명히 유동운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어요. 가만히 보니 산월(産月)이 가까웠는지 배가 불렀습니다. 그때 뒷문이 가만히 열리며 나타난것이 틀림없는 유동운이었습니다. 두사람은 반가운듯이 손을잡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요.』

『음, 이야기가 점점 가경으로 들어가는걸!』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지 사흘후,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늘처럼 달밝은 밤이었지요. 그날 밤은 꼭 유동운을 죽여버릴려고 독심을 먹고 따라왔습니다. 역시 유동운은 뒷문으로해서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나대로 유동운의 뒤를 따라 몰래 이 뒷뜰로 숨어들어 왔습니다. 한참동안 저편 담장밑에서 웅크리고 앉았노라니까, 어찌된 셈인지 유동운이가 바른편에는 부삽을 들고 외인편 옆구리에는 무슨 허엽스레한 상자를 끼고 대청으로해서 이 뒷뜰로 내려오질 않겠습니까. 그순간 나는 손에 칼을 뽑아쥐고 좀더 내앞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유동운은 어떻게된 셈인지 지금 선생님이 서 계시는 그 앵두나무 아래까지 와서는 상자를 옆에다 내려놓고 부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였지요. 그때 나는 후딱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냐, 네가 무슨 보물같은것이 든 상자를 땅속에 파묻으려는구나! 과연 유동운은 상자를 땅속에 파묻고 그위에 다시 흙을 덮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뛰여나가 유동운의 몸둥이에 달려든것은 바루 그 순간이었습니다.』

『음, 그래 유동운을 죽였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미친듯이 달려들어 유동운을 쓰러뜨리고 유동운의 재물이 들어있는 상자를 다시 파내가지고 도망을 하였습니다.』

『그래 상자속에는 금은보배가 들었던가?』

『천만에 말씀입죠. 아현정 고개를 한참 뛰여내려가서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상자를 칼끝으로 열어본즉, 그것은 금은보배가 아니고 비단 산의(産衣)에 째운 갓난애였습니다!』

『뭐. 바루 이 자리가 그 갓난애를 파묻었던 자리란 말인가?』

하고 백진주 선생은 발밑을 내려다 보았다.

『네네, 바루 그 자리 올시다. 나는 벌써 숨이끊어진 갓난애를 보는 순간, 어째 그런지 측은한 마음이 나서 의사가 하듯이 두손으로 한참동안 심호흡을 시켰지요. 그랬더니 삐악하고 막혔던 숨을 내쉬이면서 소리를 치지 않게습니까. 아아, 하늘은 나로 하여금 한사람의 생명을 박탈한 대신에 다른 한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하시었구나!...... 하는 기쁨의 부르짖음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래 그 갓난애는 어떻게 됐는가?』

『원수의 핏줄기래도 갓난애가 하두 가엾고 귀여워서 대문통에 고아들을 기르는 양육원(養育院)이 있는것을 생각하고, 길거리에 버린것을 줏어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그리로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후일에 이르러 혹시 무슨 필요가 있을까하고 산의를 한조각 찢어가지고 해주 형수한테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남달리 착한 형수는 도리어 원수의 자식을 불쌍히 여기여, 그애 아버지를 우리 손으로 죽였으니, 그 어버이 대신 우리가 갖다 길렀으면 좋지 않느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찢어온 산의의 한조각을 잘 건사해 두는것이었습니다.』

『그래 갓난애는 사낸가 계집앤가?』

『사내였습니다. 인정 많은 형수는 그 이듬해 사월에 나두 모르게 서울로 가서 잘 건사해두었던 산의의 한 조각을 내놓고 일곱달이 될락말락한 어린것을 더리고 오질 않었겠습니까. 형수는 실로 천사와같은 분이었지요. 어린애 이름을 착한 아이가 되라고해서 선동(善童)이라 짓고 형수는 동리로 싸돌아 댕기며 동냥젖을 얻어먹여 가면서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그러나 점점 커가면서 착한 아이가 되라고 지어준 선동이와는 정반대로 악동의 표본과도 같은 인간이 되여버리고 말았지요. 부모의 나쁜 피를 그대로 받은 선동이는 도박을 비롯하여 도적질, 술, 계집―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못하는것이 없고 그러한 선동이를 조금이라도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애를 쓰는 형수에게 툭하면 손을 대기가 일수였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유달리 명석한 편이여서 중학 일학년에서 퇴학을 맞을때까지 품행은 보잘것 없었으나 학과는 늘 우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친어머니가 아니니까 돈을 잘 안준다고, 형수의 옆구리를 발길로 차서 죽여버린채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고 말었습니다.』

『흥, 그만하면 상당한 인간이로군!』

백진주 선생은 흥미진진한 듯이 중얼거리며

『그래 자네가 해주 감옥에 붙들려 들어가게 된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네, 그것을 말씀드리자면 또 이야기가 길지요.』

『괜찮어. 아직 밤은 멀었어.』

『네, 그럼 이야기하지요. 곱게 길렀던 호랑이 새끼에게 잡혀먹힌 형수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전부터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있던 밀수입을 하는 친구를 찾아 남포로 갔지요. 아니, 남포라기 보다도 남포서 좀떨어진 진지동(眞池洞)에서 「금강여인숙」(金剛旅人宿)이라는 간판을 부치고 객주를하는 박돌(朴乭)이라는 친구를 찾아 갔습니다.』

『박돌이?』

『네, 七八년 전까지 남포서 포목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본 사나이지요.』

『음, 박돌이!』

『내가 박돌일 찾아간것은 밀수입사건이 발각이 되여 나를 잡으러 댕기는 경관을 피하기 위해서 나를 좀 숨겨 달라는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날 내가 진지동 금강여인숙에 도착한것은 저녁 무렵이었지요. 우리들 밀수입자는 결코 정문으로 드나드는 법은 절대 없답니다. 그날도 나는 뒷뜰 안 사잇문을 열고 그전 하던 대로 이층 골방으로 몰래 올라가서 방바닥에 뚫린 조그만 구멍으로 혹시 경관이나 오지 않었나 하고 아래층을 내려다 보았더니 박돌이의 안해가 혼자 걸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밖은 비바람이 쏟아져 내리는 밤이지요. 그때 외출하였던 박돌이가 한사람의 보석상(寶石商)을 다리고 들어오며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로 「여보, 이분은 남포서 보석장사를 하는 분인데, 아까 그 중이 갖다준 금강석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래, 진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음!』

하고 백진주 선생은 신음을 하였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八년전, 저 무서운 해상감옥에서 탈출한 이봉룡이가 승려의 몸으로 변장을하고 한개의 금강석으로서 굳게 다물고있는 박돌의 입으로부터 원수들의 과거를 조사하던 바로 그날 저녁의 일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