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人類愛의 實踐者

이튼날 아침 송준호와 신영철의 두 청년은 백진주 선생을 방문하여 어젯밤의 감사를 다시 한번 정중하게 표시하였을 때, 백진주 선생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너무 과대하게 평가하시지 마십시요. 도리어 그처럼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서 한가스럽게 잠을 자고 계시던 송군의 그 담력을 칭송해야만 될것 같습니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실은 오늘 아침 이처럼 선생을 찾아 뵌것은 혹시 선생을 위하여 우리들의 힘으로 할수있는 일이라면 단 한가지라도 하여 드리고저.......』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한가지 여쭈어볼까하고 생각하던 일이 없지도 않습니다만.......』

『네, 어서 말씀하여 주십시요.』

『나는 아직껏 서울에 가본 적이 한번도 없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사람도 아는 분이 없지요. 언젠가 내가 당신의 나라 서울에 여행을 하게되면 원컨대 좋은 안내인이 되어주실 수가없을까 하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백진주 선생이 서울에 오신다면 저는 제가 제일 사랑하는 친구와 저의 온 가족이 만강의 환영으로 선생을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벌서부터 서울에 한번 간다간다 하면서도 송군과 같은 좋은 인도자를 갖지 못하여 입때까지 실행을 못하고 있답니다.』

『정말 꼭 한번 저이 집을 찾아 주십시요. 제 어머니가 얼마나 선생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까! 실은 오늘아침 집에서 전보가 왔는데, 저는 곧 서울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저의 결혼문제 때문에요.』

『아, 그럼 아직 결혼 전이신가요?』

『네, 아직...... 그런데 선생, 서울에는 정말 꼭 오시겠습니까? 그리고 오신다면 언제쯤 오시게 되실는지요?』

『네. 실은 입때껏 서울 갈 좋은 기회가 없어서 못가던 판이었었지요.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래도 서울에는 꼭 한번 가고 싶습니다. 아니, 가지 않으면 안되지요!』

『그럼 언제쯤 오시게 될런지요? 약속을 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글세 올시다. 약 석달 후에는 틀림없이 서울에 가겠습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송군,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석달후 오늘, 이 시각에 송군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합시다.』

『좋습니다. 선생이 오시기만 한다면...... 아아, 석달후 오늘, 이 시각에!』

『그러니까 명년 三월 二十五일 오전 열시 반에 귀군을 방문하지요. 그런데 사시는 주소는?』

『아, 가회동 二十七번지 올시다.』

백진주 선생은 수첩을 끄내 「가회동 二十七번지, 三월二十五일 오 전 열시반」이라고 분명히 적어 넣었다.

『그러면 신군도 같이 서울로 돌아가시는가요?』

하고 신영철을 바라다보았다.

『아니올시다. 저는 한 반년동안 중국 벽지로 싸돌아 다니면서 사냥을 좀 하고 돌아 가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나는 오늘 열두시 차로 씽거폴에 좀 볼 일이 있어서 여행을 떠나야겠습니다. 그러니까 두분과는 오늘 이자리에서 작별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습니다.

하면서 백진주 선생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선생, 명년 三월 二十五일 오전 열시반을 잊으시면 아니 됩니다.』

『송군이 먼저 잊어버리지나 않을까고, 나는 은근히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지요. 하하하.......』

신영철은 오늘 처음으로 백진주 선생의 손을 잡아보았다. 그리고 무척 놀래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 그러냐 하면 백진주 선생의 손은 마치 죽은 사람의 그것과 같이 얼음짱처럼 싸늘하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백진주 선생과 헤여저 자기 방으로 돌아온 두 청년이었다.

『음, 백진주 선생이란 사람은 아모리 생각하여도 이상한 인물이다. 보통 인물이 아닌것 같다.』

하고 신영철은 그때야 비로소 저 진주섬 아방궁같은 동굴속에서 만났던 현대의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백진주 선생 그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세세히 이야기하고 나서

『무엇 보다도 백진주 선생이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문제다. 표면에 나타난 국적은 중국으로 되여 있지만...... 그리고 그 막대한 재산은 대체 어디서 났는가?...... 아니, 그보다도 그 백납처럼 창백한 얼굴을 가진 백진주 선생의 지나간 반생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던가?...... 그런것이 모두 의문의 초점이다.』

『그러나 신군. 그런것들을 이리저리 생각할 필요는 없는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는 한사람의 신분으로서 금만가인 동시에 모험가, 자선가인 동시에 여행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으니까. 문제는 그가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고 나의 생명을 구하여 주었다는데 있는것이 아닌가?』

『그렇기두 하지만 하여튼 백진주 선생이란 인물은 수상한 사람이다!』

이리하여 그 이튼날 오후, 송준호는 대련경유의 인천행 기선으로 상해를 떠났고 신영철은 역시 한자루의 엽총을 둘러메고 북부지나를 향하여 상해를 떠났던것이다.

석달! 그렇다. 상해서 백진주 선생과 약속을 한 석달은 진부하나마 유수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약속의 날 三월 二十五일은 다가 왔다.

이날 가회동 二十七번지, 중추원 참의 송춘식의 호화로운 저택에 서는 외아들 준호의 은인인 백진주 선생을 맞이하고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약속의 시간인 정각 열시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준호는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응접실 시계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열시 十五분 전! 인제 四十五분만 있으면 나의 생명의 은인인 귀중한 손님이 오실것이다.』

그때 하인 한사람이 들어오면서

『식사는 몇시쯤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열시반에는 꼭 할 예정이네. 원체 시간을 엄격히 지키시는 분이니까.......』

『네.』

『그러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님께 이렇게 여쭙게. 어머니께는 식사가 다 끝난 후에 손님을 소개하여 드리겠다고, 알겠나?』

『네, 잘 알아 모셨습니다.』

하인이 물러간 후, 송준호는 약간 초조한 얼굴을 지으며 응접실 안을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그때 8신문사 사회부장 임성묵(林聖黙)과 총독부 리재과(理財課)에 근무하는 전도 유망한 청년 조봉구(曹鳳九)가 들어오며

『아니, 송군, 열시반에 식사를 하러 오래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필경 이게 조반도 아닐께고 점심도 아닐께고.......』

하고 적지않게 나무래는 말을 하며 쏘파에 몸을 던졌다.

『아, 그것만은 용서해 주게. 열시반이라는 시각만은 이 세상이 뒤집히는 한이 있을지라도 변경할수 없는 시각일세. 그러나 그대신 훌륭한 인간— 아니 가장 신비롭고 가장 침착하고 가장 인자하고 가장 돈이 많고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귀중한 인물을 한사람 자네들에게 소개할테야. 그러면 되지 않겠나?』

『하아, 이건 그럼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 같은 사람을 소개할 셈이 아닌가, 응?』

『음, 자네 말 마따나 꼭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 같은 사람일런지도 모르지.』

『그래 그가 대체 누구라는 말인가?』

조봉구와 임성묵은 적지않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렇게 물었다.

『그건 두고보면 알 일이구...... 하여튼 상해 제일류급의 금만가요 제일류급의 사교가요 그리고 동시에 신기루(蜃氣樓)처럼 신비로운 인물인 줄로만 알아 두게나. 그러한 귀중한 인물을맞이함에 있어서 말하자면 배석관(陪席官)으로서 자네 두 사람과 저 홍일태(洪日泰)군을 청했는데.......』

하고 송준호는 아주 호탕한 기분으로 바루 열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쳐다보았을 때 문이 열리며

『홍선생이 오시었습니다.』

하며 하인이 홍일태 청년을 안내하였다. 홍일태로 말하면 역시 서울 상류계급에 속하는 청년으로서 조봉구, 임성묵과함께 송준호에게는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그때 송준호는 홍일태의 등뒤에 낯서른 청년 한사람을 발견하고 의아스러운 시선을 홍에게 던졌을 때

『아, 송군. 나의 은인 모인규(毛仁奎) 박사를 군에게 소개하고저 모시고 왔는데.......』

하고 二十七, 八세쯤 되여 보이는 점잖은 청년신사 모인규를 송준호에게 소개하였다.

독자제군은 혹시 젊은 의학박사 모인규의 이름을 잊어버렸을런지도 모를것이다. 지금으로부터 七년전 진남포 항구 모상회의 주인 모영택씨가 기우러져가는 가운을 지탕치 못하여 유서깊은 모상회의 명예와 신용을 죽엄으로서 회복하고자 할 때, 조금도 떠들지 않고 눈물로서 아버지의 죽엄을 격려하던 그의 아들― 당시 평양 의학생이던 외아들 모인규 그 사람이였다.

『아, 작년 여름 한강에서 자네를 구해준 영웅이 바루 이분이시란 말인가?』

『음, 그러네. 바루 이 모인규 형이네.』

작년 九월 초순, 홍일태는 뽀—트를 타고 한강 한복판에 나갔다가 잘못하여 뽀—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물속으로 들어갔다. 헤염을 칠줄 모르는 홍일태였다.

그때 바루 한강 인도교를 건느고 있던 모인규가 이 모양을 보자 옷을 벗어버리고 인도교 위에서 보기좋은 「따이빙」을 하여 九사一생격으로 홍일태를 구해준 하나의 영웅적인 행동을 당시의 신문은 상세히 보도하였던 것이다.

『네, 나는 학생시대에 평양 대동강 인도교에서 곧잘 「따이빙」을 연습하였지요, 아니, 그것보다도 나는 그날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사람의 생명을 하나 구해주겠다는 심원(心願)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루 九월 五일― 나의 아버지께서 기적적(奇蹟的)으로 구원을 받으신 날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九월五일에는 무엇이든지 한가지 세상 사람을 위하여 하여드리고저 결심을 하였지요.』

사람들의 물음에 대하여 모인규 청년은 얼골을 붉히면서 그런 대답을 하였다.

『실로 모형이야말로 인류애(人類愛)의 실천자입니다!』

하고 송준호는 모인규의 손을 굳세게 잡아 흔들며

『모형, 잘 오셨습니다. 실은 오늘 모형과 똑같은 인류애의 실천자가 또한분 여기에 참석하기로 되였습니다. 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

거기서 송준호는 상해에서 경험한 이야기와 신영철에게 들은 진주섬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말하였을 때

『가만 계세요.』

하고 모인규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실은 진주섬이라는 말은 나의 아버지의 배에서 일을 하던 선원들의 입에서 여러번 들은 섬입니다. 그래 그 진주섬의 주인의 이름이 무엇이랬지요?』

『백진주 선생입니다.』

『백진주 선생?...... 실은 광삼(光三)이라는 늙은 선원의 입으로부터 진주섬에 있는 훌륭한 동굴 이야기를 몇번 저도 들은 적이 있지요.』

『하하하...... 이건 정말 옛말에 나오는 무슨 허황한 이야기 같군요.』

하고 일동은 좀처럼 송준호의 말을 고지 듣지를 않으며 문득 시계를 처다보았다.

『자아, 지금이 꼭 열시반일세. 정각 열시반에는 꼭 온다던 백진주 선생이 아직도 안오는것을 보면 송군 자네는 아름다운 동화(童話)를 믿는 철부지 어린애밖에는 아모것도 아니란 말이야. 하하하.......』

하고 일동이 웃음을 퍼붓듯이 웃고있을 때, 문이 열리며 하인이 들어왔다.

『백진주 선생이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