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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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한 삼년동안 두 젊은 내외는 원앙새 부럽지않게 지냈 다. 인숙에게도 더 바랄수 없이 행복한 세월이 흘렀다. 이 세상에서 다만 하나인 제 남편은 저의 품안에 안겨 있지 않 은가 이제 와서는 지난 일이 한바탕 꾸어버린 꿈의 자취와 같은뿐. 오즉 저 한사람에게 애정을 쏟고 있지않은가.

인숙은 하늘이 두쪽에 갈러지는 한이 있드래도 다시는 봉 환을 놓칠리가 없다는 자신이 단단히 생길만치 봉환도 인숙 이 이외의 여자에게는 한눈도 팔지 않었다.

조모의 신칙이 엄할수록 서로 이구석 저구석으로 피해 다 니며 도적잠까지 자다가 들커서 며칠씩 얼굴을 들지 못할때 도 있었다.

오즉 청춘의 기쁨을 단돌이서만 독차지 한듯이 집안 사람 들에게 너무 유난스럽게두 군다고 흉을 잡할만치 금술이 좋게 지 냈다. 원체 변덕스럽고 거염이 많은 둘째 동서는

『흥 두구 보지. 그러다간 또 내꼴이 될걸』

하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끝에 동서가 의초좋게 지내는것 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부모가 저의 내외에게만 심 하게 구는것 같어서 그 반동심으로 동서의 내외의 흉을 보 고 대사롭지 않은 일에도 입을 삐죽어리며 헐뜯는것이었다.

실상 봉환의 자근 형은 거의 폐인이 되었다. 내외가 한방 만 쓰면은 피접을 가고 약을 먹은 효험도 없이 며칠동안이 면 또 다시 동티가 낫다. 기침을 허다가 피섞인 담을 뱉는 것을 보고는 또 다시 온천이나 절간으로 가는것이었다.

의사에게는 벌서 폐결핵 제 삼기라고 사형선고와 다름 없 는 진단을 받었다.

자근 동서는 눈가장사리에 푸른 자위가 가실때 없고 얼굴 에 여드름까지 툭툭 붉어저 가지고 몇달식 독수공방을 하는 불만과 남처럼 살림도 나지 못하는 불평이 끝에 동서 내외 에게나 있는 것처럼 남몰래 방자까지 한다.

사실 시부모가 자근아들의 병이 더해가는것을 며느리탓을 하고 막내아들 내외만 자별히 귀여워하는데 질투심이 끌었 던것이다.

인숙도 그 눈치를 채고

『웨 저렇게 거염이 많담』

하면서도 맏동서와 가치 깍듯이 대우를 하고 그저

『네 네』

해서 남보매는 조금도 동서끼리 티각태각하는 눈치를 보이 지 않으려고 들었다. 그럴사록 자근 동서는

『조렇게 약어빠진 사람은 첨봤어. 살살 제 꼬리만 사리거 던』

하고 인숙이가 저보다 영리하고 눈치가 다른것이 더욱 얄 미웠다.

그럴사록 봉환의 내외는 금실이 좋게 지낼뿐아니라 봉환은 공부에도 자미를 부치게 되었다. 어느 사립학교에 다니며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한편으로 동대문밖에 새로 설립된 서 화협회에 들어가서 그림을 배웠다. 어느듯 청년기로 들어가 키도 날신하게 커지고 살빛은 여전히 여자와 같이 히여서

『윤군은 드물게 보는 미남자야. 동양의「라몬?노바로」지 장안의 계집애를 다 호리고 말걸』

하는 소리를 노상 그림을 가치 그리러 다니던 동무들에게 들었다.

그와 동시에 봉환은 그림도 늘었다. 처음에는 동양화를 배 우다가 실증이 나서 양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양반의 자식이 여복해야 환쟁이가 된단말이냐』

하고 반대를 하던 아버지도 인제는 마음을 잡고 걱정거리 를 작만하지 않는것만 신통해서 아모리나 네 맘대루 허렴으 나』

하고 서화협회에 들어가는것을 허락하고 값비싼 그림 제구 를 사달라는대로 사주었다. 더구나 자기 내외의 사진을 보 고 본을 떠서 초상화를 그려 올린것이 마음에 들어서

『우리가 죽기 전에 화상 한폭은 작만 했구려』

하고 힌수염을 쓰다듬어 나리며 마누라를 돌려다보고 매우 만족해 하였다.

봉환은 이따금 인숙과 봉희를 불러 앉히고는

『미술은 모든 예술중에도 가장 고상현것이요, 음악같은것 보다도 생명이 길뿐아니라 그림 한 폭만 잘 그리면 그 명예 가 몇백대까지라도 간다』

는것과

『미레-의 그림이 어떠했고「따빈치」는 어떠한 사람이고

「반?꼬호」란 화가는 삼십이 넘어서야 그림을 배웠다』

는 등 설명을 해주었다. 봉희도 벌서 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을 해서 그런 말을 알어 들을만 했고 인숙도 틈이 있는대로 는 봉희가 배워 오는대로는 여전히 어깨넘어로 복습을 하야 와서 학교과정에도 맹문이는 아니었다.

『고개를 좀 숙유』

『이렇게요?』

『아-니 왼쪽으루 조금만 처들우』

『금방 숙이라구 그러군요』

『너무 숙이면 턱아래가 그늘이 지지 않우』

『그럼 자-요』

『옳-지 똑 고대루만 있수』

『고개가 아퍼두요?』

『이렇게 몇시간씩 섰는사람두 있는데』

『눈두 깜짝거리지 말아요?』

『응』

『파리가 와 앉어두요?』

『잔소린 퍽두 허우』

『얘기두 한허구 심심해서 어떻게 꼭 이러구 앉었어요』

『그렇게 말을 시키면 그림이 안된다니깐』

『그럼 암말두 안헐께 어서 그리서요』

『입을 그렇게 꼭 오무리면 제비 주둥이처럼 되우』

『아이 누가 잔소릴 허는지 모르겠네』

『옳-지 어느때처럼 무심허게 다물구만 있어요, 벼룩이가 물어두 꼼짝두 말구』

『………』

신록이 욱어진 산정 툇마루 난간에는 머리를 곱다랗게 빗 은 인숙이가 실음없이 먼산을 바라다보는 표정을 하고 앉었 다. 마진짝에는 봉환이가 화가(畵架)를 앞에다 버티어 놓고 서서 왼손 엄지 손가락에 파레트를 꼬여들고는 한눈을 찌긋 하고 거리를 재어가며 사십호쯤 되는「칸빠쓰」우에다가 기 름반죽을 한채 색을 연방 찍어다 발른다. 아버지 내외는 대 궐에 무슨 잔치가 있어서 입궐하고 없는 동안에 봉환은 물 래 제색시를 모텔로 잡어 초상화를 그리는 중인데「뎃쌍」

을 하는데만 두시간이나 걸렸다. 그것은 늦은 봄에 열리는 전람회에 처음으로 출품을 하려고 재조 껏 그리는 그림이다.

『일본이나 서양서도 나체화를 그리려면 이례 젊은여자를 앞도 가리지 않고 새빨갛게 벗겨 눈앞에다「모텔」을 세워 놓고 그 아름다운 육체의 곡선을 그린다』

는 말을 들었건만 인숙은 비록옷을 겹겹이 입었으나마 제 가「모텔」이 되기는 서먹서먹 하였다. 또는 말성많은 동서 들이라도 보면은 또 빈정거릴지 몰라서

『난 싫여요. 이담에 둘이 딴살림이나 허구 살거든 대문 중문 꼭꼭 닫어 걸루서 그려요 네? 그럼 내 옷이라두 벗을 테야요』

하고 한사코 마다는것을

『첫번 출품에 평판이 나쁘면 난 그림두 안 그릴테요』

하고 봉환이가 골을 더럭 내는바람에

『그래 나를 꼭 그리서야만 해요』

하고 마지 못해 붙잡혀 앉었든것이다.

뒷곁에 화단을 배경으로 하고 연분홍 저고리에 남 순인치 마를 느리고 난간에 기대어 턱을 고이고 앉인 인숙이 포-즈 는 옛날 중국 소설과 삽화에서 보는것 같은 미인처럼 청초 하고도 애련해보인다. 우틀우틀 하게 유화를 그리느니 보다 는 동양화식으로 머리카락같이 가느다란 선을 곱게 써서 채 색을 엷게 하였으면 고상하고도 염려한 미인화 한폭이 이루 워질듯.

「모텔」과「칸빠쓰」우로 옴겨다니는 봉환의 눈에는 영채 가 돈다. 풍경화나 정물(靜物) 같은것보다는 인물화에 취미 도 가지고 장기도 있는 봉환은 무슨 영감이 떠 올른듯 화필 이 조금씩 떨리기도 한다. 노숙한 전문가가 보면은 인물의 위치라든가 색의 조화에 들어서는 미숙한 점이 많을것이나 어쨌던 봉환이 딴는 전심전력을 기우려서 처음 으로 큰 작 품을 제작하는이만치 망사모자를 쓴 이마에 땀이 다 숭숭내 배었다. 인숙이가 보기에 가엾고 안스러워서`

『고만 좀 쉬었다 그리시죠』

하여도 들은체도 아니하고 호필을 놀리는데만 정신이 쏠렸다.

그것은 화초담밑에 철죽꽃이 반쯤 흩어저가는 봄날의 오후 였다.

『난간에 기대인 여자』라고 제목을 붙인 봉환의 그림은 ○○미술전람회에 입선이 되었다. 어느 신문 학예면에는 숫법은 아직 미숙하나 표현방식에 새로운 맛이 있다. 장래 를 촉망할만한 신진 화가다』

라고 비평이 났다.

봉환은 기뻤다. 신문을 보다가 입선된 화가들중에서「윤봉 환」석자를 발견하자, 봉환은 신문을 들고 껑충껑충 뛰여서 인숙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것 모자라 보우. 이걸 좀 봐요』

하고는 인숙의 턱밑에다 신문지를 치바치듯 하며 좋와서 어쩔줄을 모른다.

『어쩌면 참 정말 뽑혔네!』

인숙도 남편의 이름이 또렷이 박혀 있는것을 보자 어린 애 처럼 손벽을 첬다. 조그만 할자로 막힌 제 남편의 이름은 눈앞에서 점점 커지다가 확마다 커다랗게 번저서 방안이 뿌 둣해지는 것 같다.

『거 좀 보서요 나를 그렸으니깐 뽑혔죠. 아이 그럼 내 얼 굴을 장안사람이 다 쳐다 보겠네』

하고 인숙은 얼굴을 살짝 붉힌다. 봉환은 생각할사록 입선 된것이 꿈속같이 신기해서 인숙의 허러를 벗석 껴 안고는

『나두 인젠 정말 화가 란말야. 어졌한 신진화가란말야』

하면서 딴스를 하듯이 매암을 돌면서 빨개진 인숙의 뺨에 이마에 키쓰의 소낙비를 퍼 붓는다.

『아이구 어지러워요. 특선이나 됐드면 아주 어질병이 나 겠어요』

하고 인숙은 남편의 어깨에다가 머리를 실린다.

봉환은 씨근벌덕거리며 다시 신문을 펴 들고 손가락으로 입선된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집허 보다가

『이거보 이사람은 벌서 한 십년째나 그림을 뱄다는데 인 제 첨 입선이 됐구려. 내가 댕기는 서화협회에선 입선된 사 람이 모두 세사람밖에 없어. 인제 말이지 선생이 많어서 난 낙선이될 줄만 알었었는데……』

하고 의외의 기쁨에 마음이 들먹거려서 안절부절을 못한다.

인숙도 진정으로 기뻤다. 이런 기쁜일은 생후에 처음 당해 보는듯 봉환이 이상으로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다지도 속을 태워 주든 남편이 마음을 잡었으니 기쁘지 않은가. 그 남편에게 모든것을 바치는 저의 얼굴을 그린 초 상화가 입선이 되었으니 기쁘지 않은가. 큰 아들은 신문사 업을 한다고 재산만 없애고 자근 아들은 간신히 목숨만 붙 어 있어 시부모의 애를 태우는데 애부랑자소리를듣든 셋재 아들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은 가장 고상하다는 미술가가 되 어 출세를 하고 신문에까지 칭찬이 났으니 그 아니 기쁜가.

자작도

『온 신통허지. 봉환이 그림이 뽑혔다는구려. 아무튼 웃으 운 세상이야 환쟁이두 행세를 헌다니』

하고 마누라를 보고 만족한 우슴을 띠우며

『허나 집안 살림을 아는 자식이 한놈이나 있어야지』

하면서도 그날 저녁은 반주를 갑절이나 마시고 봉환이가 사들인 유성기를 틀어 놓라고 까지 하였다.

첩의 집에서 잠을 자고 큰 집에는 하로 한번 드려다보거나 말거나 하는 용환이도 와서

『네 그림이 입선됐드구나. 기왕 시작헌게니 끝끝내 성고 을 해여지』

하고 오래간만에 아우를 보고 말을 다하고는 여송연 냄새 를 피우고 나갔다.

전람회가 막을 열자 봉환은 날마다 옷을 갈어입고 제 그림 앞에 서서 요령소리가 들릴때 까지떠나지를 않었다. 구경온 사람들에게

『이건 내가 그린 그림이요』

하고 제얼굴을 광고도하고 제귀로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싶 었든것이다.

그러나 집안식구는 모다 초대권을 얻어가지고 구경을 갔다 왔건만 누구보다도 남편의 그림을 즉 제얼굴이 걸려 있는것 을 보고싶은것은 인숙이었다. 그러나

『어쩌다가 제얼굴을 그리게 했을가 모르거니와 그 만인중 에 가긴 어딜간단말이냐』

하는 시아버지의 반대에 인숙의 발은 결박을 당하였다.

종로 뒷골목 어느 양식점에서는 처음 입선된 청년화가 들 끼리 모여서 축하회를 열었다. 이층의 둥근식탁을 둘러싸고 십여명이나 모여앉아서 희색이 만면하야 차를 마시며 담배 를 태우며서서로 작품의 비평을 하느라고 떠들석하다.

인숙이가 솜씨껏 지어준 세모시 다듬은 두루마기에 조선옷 을 말쑥하게 입은 봉환은 그중에 나히가 제일 적을뿐더러 백옥같이 힌 얼굴이 가장 유표하게 여러사람의 눈에 띠웠다.

머리를 어깨가 덮이도록 길르고 염소수염같은 알엣수염을 쓰다듬어나리며 앉인 사람은 삽십도 넘어 사십줄이나 바라 보는듯 그도 첫번입선이 되였으면서도

『윤군의 그림 좋습디다. 헌데 선이 강렬한 색채에 비겨서 좀 무기력허드군. 안직 기교가 앞을 서서는 안될걸』

하고 큰 선배와같은 태도로 평을한다. 봉환은

『고맙습니다. 인제 배우는 중이니 만히 지도해주십시요.

이번엔 내놓기 부끄러운걸……』

하고 여자처럼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봉환 의 옆에 앉인 장발(長勃)이가

『미상불 부끄럽기두 헐테지』

하고 봉환의 엽구리를 꾹 찌르며 놀린다. 장발은 봉환과 같이 서화협회에 다니는 제일 친한 친구로 그는 누-런 제작 복 앞자락에 일부러 그림그리는 물감칠을 해서 펭키 냄새를 풍기면서 말을 할때면 그의 자랑인 굽슬머리를 손바닥으로 비서 넘기는 습관이있다.

『참 윤봉환씨 그림에 모델이 누군가요?』

하고 마진짝에 앉인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목이 다붙은 사 람이 봉환의 얼굴을 빤히 처다보며 뭇는다. 그는 파란 우단 저고리에 골덴바지를 질질 껄리도룩 입었다. 장발이가 그사 람의 말을했드려

『그걸 입때 몰랐소? 바로 이 윤군의 부인……』

하는데 봉환이가 식탁밑에서 장발의 발동을 꼭 밟었다. 장 발은 모르는체 하고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

『참 윤군의 부인이야말로 미인이거돈. 조화의 신은 공편 치가 못허단말야. 이런 미남자를 그런 미인허구 짝을 지어 주니 허허허허』

하고 연방 놀린다. 봉환는 귀까지 빩애가지고 장발의입을 틀어막듯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말을 여러 사람이 더 똑 똑이 알어 듣도록 다시한번 해주었으면 하였다.

전기불이 들어오자 뽀이들은 요리접시를 날르고 술이 벌어 젔다. 정종잔이 날개가 도친것처럼 머리우를 날러다니것만 봉환은 제앞에 놓인 술잔을 폭 엎어놓았다.

『이거 왜 이러나 오늘은 자네의 그림이 제일 평판이 좋은 데 한잔 해야지』

하고 장발이가 작구만 권하는 바람에 봉환은 마지못해서 술잔을 입에다 대는체 하다 말았다.

집에서 나올때

『내 만난거 사들일깨 술은 잡숫구 들어오지 마서요 네』

하고 부탁도 하였거니와 아직도 술맛을 잘 모르는 봉환은 멋처럼 유쾌한 기분을 술에 마비시키고싶지 않었든것이다.

여러사람은 술들이 건화하게 취하였다. 처음부터 점잔을 빼 고 앉었든 염소수염도 얼굴이 빩애저서 손으로 식탁을 뚜드 리며 목에 힘줄을 세우며 양시조같은 소리를 하고 장발은 딴쓰를 한다고 삐로도 저고리를 입은 난쟁이 친구를 끄러안 고 핑핑 돌면서 북새를논다.

한편에서는 제 그림을 악평을 하였다고 말다툼이 일어났다.

『그래 네가 이놈 년조로 보드래두 내 작품을 그렇게 함부 로 평을 해야 옳단말이냐?』

하고 말갈기 가은 머리를 마조잡어다리며 싸움을 하는것을 술이 덜 취한 사람들이 간신히 뜯어 말렸다.

『자-고만 휴전조약을 허구 우리 이차회나 허세』

장발이가 부르짓듯하면서 주먹덩이만한 구년목이 백통시계 를 끄내들고

『난 이게 회빌세』

하고 출석어린다. 여러사람은

『천성일세 찬성이야』

하고 빈주먹들만 뽑내며 호기를 부린다.

봉환은 시비의 불똥이 제발등에 떨어질가보다 겁도 나고 또 대관원같은데로 꺼들려다가 외상을 질가보아 살그머니 빠저나왔다. 그축들에게 들킬가보아 모자를 두루마기 옆구 리에 감추어가지고 나와서 힝나케 골목밖으로 다라나는데

『여보게 어딜가나? 날좀 보게 응 날좀 봐』

하고 소리르 질르며 허급지급 달려오는 사람이 있다.

장발은 봉환의 두루마기 자락을 붓잡었다.

『이사람 벌을 쏘였나 작구 달아나기만 허니』

『술주정을 받을가봐서 먼저 나왔네』

봉환은 장발과같이 종로 큰길로 나왔다. 긁다란 사구라 단 장을 휘들르며 휘적휘적 걸어가든 장발은 봉환의 귀에다 술 냄새를 품기며

『여보게 윤군. 자네허구 긴급히 의론헐일이 있는데 잠간 어디로 좀 들어가세』

하고 봉환의 소매를 끌어다린다.

『무슨 이야긴가? 술을 먹으면 난 싫으니』

『내가 언제 술취한걸 봤나. 오늘 흥낌에 좀 마신게 벌서 다깼네』

장발은 앞장을 서서 청진동(淸進洞)골목으로 꺾여서 조그만 청요리짖으로 들어간다. 봉환은 그뒤를 따러 들어갔다. 장발은

『양식이란 뭐 먹을게 있어야지』

하고 손바닥을 딱딱 처서 짜장면 두그릇을 사기고 한참이 나 곱슬머리만 쓰다듬고 앉었더니 거무테테한 얼굴에 주름 을 잡어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면

『여보게 자네나 내나 이번에 첨으로 `입선이 되지 않었나 더군다나 자네의 첫번 작품은 그렇게 평판이 좋으니 같이 배워오는 나로서두 여간 기뿌지가 않으이』

하고 서두를 늘어 놓더니 뜨거운 차를 한목음 마시어 목을 추기고 나서

『그런데 말일세 우리가 이 조선서는 그림을 더 배울려니 배울데가 있나. 서화협회두 밤낮 그것이니 첫대 선생은 사 람이야 좋구 인격자지만 인젠 「지다이오꾸테」ㄹ세 그려.

그러니 우리 가 좀더 새로운 선생헌테 그림을 배워가지구 출세를 허자면 서화협회쯤 다녀가지구는 십년가야 그림이 늘기는 틀렸네. 그래두 큰 바닥에 가서 제전(帝展)이나 이과 회(二科會)같은 전람회두 보구 안목을 높여야재. 유명헌 선 생헌테 즉접 지도두 받어야 제법 한사람의 미술가로 행세를 허게될게 아니겠나?』

『그렇구말구 여부가 있나. 나두 인젠 그렇게 공선생헌테 배기는 실증이 났네』

하고 봉환도 맛장고를 첫다. 장발은 제 의견과 봉환의 의 견이 감쪽같이 들어 맛는것을 보자 더밧삭 닥어앉이며

『그러니 말일세. 자네버텀 언제까지나 움물안 개고리로 지내기에는 참으로 재주가 아까워이』

하고봉환의 손을 텀석 잡으며

『우물두 말말구 동경으루 가서 어떡허든지 미술학교 하나 는 마추고 나오세. 피차에 X전에 입선이 돼서 남들이 한창 떠들어주는 이판에 훌쩍 떠나서 소문없이 공부를 하다가 조 선의 화단을 깜짝놀라게 할만한 작품을 제작해서 어둔 밤에 홍두깨 내밀듯 해보자 말일세. 그까짓 번약한 조선의 화단 쯤이야 한번 흔들어 놓지 못허겠나』

하고 더운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수그릇의 파리를 쫓고나서

『여보게 윤균. 젊은 사람은 야심이 있어야 하네. 예술가에 게는 무엇보다도 정녈과 용단성이 있어야 헌단말일세』

장발은 입으로 거품을 뽑는다. 봉혼의 손을 힘것쥐고 그의 손은 감격에 떨린다. 봉환도 감동이 되여서

『가세! 나두 이번에 입선만 되면 어디로든지 가볼 생각을 했었네. 그런데 아버지가 허락을 허실는지 그게 의문이야』

『압다 아사람아 새시대의 청년이 언제 부모의 허락을 맡 어가지구 일을 했단 말인가. 난「삼대독자」데두 뭐든지 내 맘대루 허네 로자나 변통해 가지구 홀쩍 떠난 뒤에 편지 한 장이면 고만 풀리실걸. 자네 처지로야 학비가 없어 걱정이 겠나 난 고학을 헐텔세. 신문 배달을 허든지 허다못해 인력 거라두 껄겠네』

『그렇지 학비쯤이아 난 념레 없네만』

하고 봉환은 눈을 깜박어리고 앉었더니 새로운 희망에 타 는듯 얼굴이 붉어지며

『나두 결심을 했네. 오늘버텀이라두 떠날 준비를 허세』

하고 장발의 손을 힘것 쥐고 흔들었다.

봉환은 매우 흥분이되여서 돌아 왔다. 안채로 바로 들어가 려다가 오늘 저녁에 아주 엿주어버릴까) 하고 큰 사랑에 잠 깐 들어가 보니 아버지는 왼일인지 역정이 잔뜩 난 눈치다.

옷간에는 큰 형이 와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꿀어앉었다.

자작은 봉환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비인 담뱃대만 탁탁 떨 더니

『넌 어딜 늦도록 돌아디니느냐』

하더니

『들어가!』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봉환은 움찔하며

「이게 또 완일인가?」

하고 아버지의 앞을 물러나왔다. 나오다가 궁금증이 나서 수청방으로 들어가는 늙은 청직이를 보고

『아버지가 왜 저렇게 화가 나섰서?』

하고 물었다. 청직이는 입맛만 다시더니

『차차 알지요. 어쨌든 큰일 났수』

하고 말대답하기를 파하는데

『그래 너 이놈 이 아비가 숨두 넘어가기 전에 그런짓을 네맘대루 헌단말이냐. 왕가에서두 마음대루 처리를 못허는 걸 네가 그 땅을 그놈에게다 잡혀먹어? 이놈 신문사란 다 뭐말러 되진거냐. XX가 없는 죽은 목숨이 사업은 뭐구 행세 란 다 뭐냐』

하는 자작의 목소리는 사랑채가 찌렁찌렁 울닌다. 화에 들 떠서 천정이 야터라고 펄펄 뛰는 눈치다.

태호탕이란 별명을 듣는 자작이 이렇게 큰 목소리로 아들 을 꾸짖기는 처음이었다.

봉환은 눈이 둥그래저서

『큰 언니가 뭘 모두 잡혀먹었다구 저러슈?』

하고 청직이의 소매를 잡어 흔들었다. 청직이는

『글세 차차 알구려』

하고 (네가 참견을 할것이 아니라)는듯이 외면을 한다. 그 러자 또한 큰 사랑에서는

『그래 이 오쟝이 빠진 자식아 이 ○○궁을 네손으루 망해 놀 작정이냐?』

하는 소리와 함께 와지끈하고 문갑우에 벼루집같은 것을 미여다 부치는 소리가 들린다. 청직이는

『허 이거 큰일 났군』

하고 사랑으로 달려간다.

봉환은 어리둥절해 섰다가 슬그머니 겁도 나서 안으로 들 어가려는데 산정으로 통해서 다니는 협문에는 어머니가 붙 어서서 큰 사랑의 동정을 실피며 부들부들 떨고섰다.

『아 왜들 저러서요?』

하고 물어도 어머니는

『낸들 아니 아까버텀 큰 형을 불러다 앉치시구는 저렇게 조련질을 허신단다』

봉환은 지밀로 들어가 어둑침침한 중문턱에서 큰 형수와 딱 마주첬다. 큰 형수도 걱정이되여서 사랑채에서 무슨 소 리가 나나 하고 귀를 기우리고 선 모양이다.

봉환은 제방으로 들어갔다.

『퍽 늦이섰군요?』

하고 일어서 두루마기를 벗겨주는 인숙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하다.

『사랑에서 외들 야단이시라우?』

하는 남편의 말에

『나두 몰으겠어요. 아까 큰 형님이 그러시는데 아주버님 이 장단(長端)하구 포천(抱川)에 있는 전답을 아버님두 몰으 시게 도장을 새겨서 잡혀서 오만원이나 내다가 없새섰다나 요. 큰 형님은 그 돈을 말끔 그 기생년한테 데밀었다구 한 참이나 콩팔칠팔 하섰어요』

『그래 그걸 임대 몰으구 계섰단 말요?』

『아마 오늘에야 누가 와서 엿주었다나 봐요』

인숙은 두루마기를 의거래에다 걸며

『아마튼 큰일 났어요 배포두 크시지 온 오만원이 얼마야 요. 그땅만 잡히섰는지 누가 아나요. 다른데 더 큰 빗을 지 섰는지두 몰으죠』

즉접 제가 당한일이나 되는듯이 걱정을 한다.

『그 바람에 여송연만 피구 자동차를 타구설랑 밤낮 요릿 집에만 댕겼군. 기생첩을 둘씩이나 뒀다는게 정말이지 신문 사는 무슨 신문사야』

하고 봉환은 분개를 하였다. 그러나 큰 형의 일로 분개를 하였다느니 보다도 마침 그날 저녁부터 집안에 큰 걱정이 생겨서 제가 동경유학을 하겠다는 것은 입도 버리지 못하게 된것이 참을수 없이 분하였다.

그날 밤은 집안이 왼통 수심에 쌓였고 인숙의 기색도 좋지 못해서 봉환은 아모 말도 못하고 이런 생각 저런 궁리로 앉 었다 누었다 하며 잠을 일우지 못하였다.

봉환이가 저 자신의 문제나 저의 장래를 생각하고 그것때 문에 걱정이 되여서 밤을 새우다 싶이하고 번민을 하기는 생후 처음이다.

천정에 얼룩덜룩한 반자지가 동경 시가지의 지도와 같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모-던남여가 억개를 것고 다니는 은좌 (銀座)의 아스팔드우로 십팔세기때의 서양 예술가들처럼 머 리를 굽슬 곱슬하게 지저 넘기고 말쑥한 미술학교에 「스케 취?빡쓰」를 걸너메고 활발하게 걸어가는 저의 모양이 체경 속으로나 들여다 보이는듯이 어른거린다.

『오오 동경!』

하고 봉환은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어떻게 했으면 아버지의 허락을 맡어 하로바삐 떠나갈가) 하고 곰곰 생각을 해보아도 좋은 꾀가 나서지 않는다. 공 이에 마디로 큰형 때문에 풍파만 일지 않었서도 십상팔구는 가게 될 가망이 있었을것을 생각하니 큰형이 여간 원망스럽 지가 않었다.

이튼날 봉환은 온종일 장춘단으로 남산 공원으로 맥이 풀 려서 돌아다니며 혼자만 가슴을 꿍꿍 알타가 (아무튼 한번 의론이나 해 봐야지) 하고 길거리에 전등불이 들어올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도 몇수까락 떠먹는 체만 하고는 아무도 없는 자근 사 랑에가 혼자 들어누었다가 잘때가 되여서 인숙의 방으로 들 어가 누어버렸다. 봉희가 새로 사온 부인잡지를 보고 앉었 는 인숙은

『왜 그렇게 실심해 허서요?』

하고 말도 아니하는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봉환은 눈을 나려깔었다. 제댁의 얼굴을 물끄럼이 처다보았다 하더니 이 번 기회에 꼭 동경으로 유학을 가야 허겠다는것과 장발이란 좋은 동무와 동행을 할 약속까지 하였다는것을 말한후

『큰 형님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이틀째나 화를 내구계시 니 어떻허면 좋우. 장발이 헌테선나 없는새 두차례나 전화 가 왔드라는데』

하고 입맛만 쩍쩍 다신다. 봉환의 말을 듣고 앉었든 동안 인숙의 얼굴빛은 몇번이나 변하여서 붉어젔다 금새 히여젔 다 하는데 꼭 다물은 입설만 조금씩 떨닌다.

사실 인숙은 남편이 묻는 말에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 지 몰랐다. 남편이 유학차로 동경으로 간다는것은 아직 꿈 에도 생각지 않든 터이라 그런 중난한 일에 경솔이 입을 버 리기가 어려웠다. 그보다도 이제야 겨오 첫정이 들어서 원 앙의 꿈이 바야흐로 달콤한 판에 저의 짝은 제결을 떠나 멀 고 먼데로 날러가려 하지 않는가.

인숙은 남편이 동경으로 가서 성공을 하고 돌아오면 금의 로 환향을 하였다는 소식과 사진까지 각신문에 날 생각을 하니 봉환이 만치나 희망에 가슴이 설레고 새로운 용기가 솟는것같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제눈앞을 막어서는것은 (몇햇동안을 그립고 외로워서 나혼자 어떻게 지내나) 하는 것잡을수 없는 감정이었다. 지금 당자에 떠나는것도 아니요 싀부모가 허락을 할리가 만무 할줄도 짐작이되면서 도 눈앞에 앉인 그의 남편이 깜짝하고 한눈만 팔어도 그 사 이에 날개가 도처 훌쩍 날러가버릴것같기도하다.

『어떻허면 좋겠수?』

인숙의 입만 처다보고 앉었든 봉환은 한거름 닥어 앉이며 급히 묻는다.

『글세요 가시게만 되면야 좋지만……』

하고 인숙은 위선 유학가는데 찬성한다는 뜻만은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런때 복순이 허구나 의론을 좀 해보았으면)하고 다시 입 을 담으렸다.

그러나 복순은 이집을 떠난지가 오래었다. 떠난것이 아니 라 쫓겨났던것이다. 어느날 복순은 머리를 깎고 들어왔다.

동지들과 무슨 맹서를 하느라고 그랬는지 그 숫허든 머리를 몽땅 잘러 버리고 송낙을 쓴것같은 더벙머리를 너풀거리며 사랑마당으로 들어오다가 주인 대감의 눈에 띠웠다. 자작은 원체 복순이가 보기 싫여서

『집안이 구중중허게 저따위 추물을 뭘허자구 데려다 먹인 단말요?』

하고 못마땅해 하면서도 공주처럼 위해 바치는 마누라의 친정부치라 내보내라는 말까지는 못하고 본체만체로 지내는 터에 평생 처음으로 여승이외의 여자가 단발을 한것을보고 펄쩍 뛰었다.

『세상이 망허니까 계집년이 대가리를 깎은 꼴을 다 보는 구나. 온 구역이 나서 한집에 두구는 못보겠다. 어디 다시 한번 내 눈앞에 띠우기만 해 봐라』

하고 한바탕 야단을 첬었다. 그래서 조만간 내쫓을 생각을 하고 벼르고 있는 판인데 어느날은 뜻밖에 정복을 한 경부 가 형사한명을 다리고 황급히 들어와서

『매우 죄송하나 상부의 명령이라 부득이 조하해볼 일이 있어 왔읍니다 박복순이가 쓰는 방을 좀 보여줍시요』

겉으로는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이나 속으로는 슬몃이 대 감을 얼러메고는 닷자곳자 안으로 들어가더니 산정 아래채 를 깡그리 수색을 해서 복순이가 보든 책과 편지 몇장을 압 수해 가지고 나왔다.

복순은 이틀전에 온다 간다말이 없이 나간채 들어오지를 않어서 인숙은 매우 궁금히 넉이던 판에 그런일을 당해서 집안식구는 모조리 포승이나 지는듯이 말한마디 못하고 덜 덜 떨기만하였다. 경부는 주인 대감을 보고

『댁에 있던 박복순이가 종로서에 검거됐읍니다. 비밀히 취소중이니까 사건의 내용은 말슴할수 없지만 대감의 처지 로 그런 나쁜여자를 궁가에다 부처둔것은 유감천만입니다.

대감의 신변에두 혹시 누가 끼칠지 모르니 앞으로는 단단히 주의를 허십시요』

하고 경고를 하고 나서 까만 수첩을 끄내들고는 복순이가 언제부터 와 있었고 무슨 필요로 한 집에다 두고 지냈느냐 고 미주알 고주알 캐묻고 나서

『의당히 주인대감을 증인으로 호출할것이나 귀족이신 처 지를 생각해서 방문하는 형식으로 다녀가는 것입니다』

하고 환도소리를 덜거덕거리며 나갔다.

그런 봉변을 당한 자작은 겁이 더럭나서 눈이 둥그래 가지 고 청직이와 둘이서 번차례로 우물쭈물 대답을 해보내고 나 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뻐처서

『글세 내가 뭐랍디까? 마누라버텀 눈이 멀어서 그깐년을 끼꾸있다가 날꺼정 이렇게 욕을 뵈구 나니 인제 속이 시원 허우?』

하고 늙은 마누라의 눈에서 눈물이 풍풍 솟도록 몰아대었 다. 그와 동시에 수색을 한다는 서슬에 간이 콩만 해진것은 인숙이었다. 얼마전에 복순이가 여자의 이름을 한 이십명이 나 죽 적고 도장까지 찍은 손바닥만한 공책과 얇다란 미능 지에다가 활자로 박은 무슨 증서같은것을 헌겊으로 싸고 또 싸고 해서 주면서

『이걸 꼭좀 맡어두서요. 뜯어 보거나 누구헌테든지 보였 다가는 큰 일나요』

하고 신신 당부를 한것을 머릿장 멘밑바닥의 버선속에다가 감추어 둔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숙은 가슴속에서 두방망이질을 하는것을 간신히 참고 그 날 저녁에 그것을 끄내여 아궁이속에다 집어놓고 불을 살려 재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그런지 몇날 뒤에 복순이가 예심에 회부될때 남자 동지들과 함께 사진까지 신문에 난것 을 보았다.

그 뒤로 근 반년이나 지낸 뒤에 복순은 증거불충분으로 기 소유예가 되여 나오던 이튼날 밤을 타서 몰래 인숙을 찾어 왔었다.

인숙에게 맡긴것이 발각만 되었더면 복순은 적어도 사오년 동안 세상구경을 못할번 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오랫동안 정도 들어서 인숙을 가끔 찾어다녔다. 밤중 에 뒷문으로 드나들어 봉환이 남매만 못본체 하면 집안식구 에게 들킬 염려는 없었던것이다.

인숙도 어찌 되었던 복순을 선생으로 대접해 왔고 처음으 로 사괴었던 사람이라 한편으로는 또 무슨일이 생기지나 않 을가 하고 조심스럽지 않은것도 아니면서도 전보다도 더 말 슴아니로 지내는것이 동정에 겨워서 전과 다름없이 맞어주 었다. 복순은 전에 다니던 회관에도 몸을 담을수가 없게 되 어서 굶기를 있는사람 밥먹듯 하고 떠돌아다니는 것이 가엾 었다. 그래서 용돈도 얻어주고 어떤때에는 옷가지나 금부치 까지도 전당을 잡혀 쓰라고 돌려주었다.

워낙 남의 일을 제일처럼 알고 팔을 걷고 나서는 복순은 일테면 인숙의 고문격으로 일을 보아주었다. 새로난 책도 읽을만 한것을 얻어다 주고 새로운 사상에 관한 이야기도 전과같이 해주어서 감옥속에 가처 있는것같은 인숙을 동정 하여서 삼청동 친정집에도 이따금 다려다 주며 구진 심부름 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상이 서로 공명되거나 동지로써 연 락을 하는것은 아니요 아직은 다만 동성끼리의 정의로 자별 히 지내 오는것이었다.

복순도 사내처럼 거세고 말괄냥이같은 동지들보다는 돌이 어 구식의 가정부인인 인숙에게서 이해를 떠난 순진한 인정 미를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기다려도 복순은 오지 않었다. 한림의 제사가 며칠 아니남어서 제사흥정을 할돈을 틈틈이 모았다가 복순을 시 켜 보냈는데 사흘이나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어서 (또 부짭혀 가지나않었나) 하고 인숙은 적지아니 궁금하였다.

남편이 유학을 간다는 일절만 하더래도 가부간에 대답을 해야겠는데 저에게는 가장 중대한일이라 그런등사에는 저보 다 경력이 많은 복순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고 나서 대답을 하려고 봉환이가 채우처 묻는데도 확실한 대답을 아니하고 저역시 밤을 새우다싶이 하며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이튼날 저녁에 봉환이가

『장발이 헌테 잠간 다녀오리다』

하고 나간지 얼마 아니되여서 복순이가 와서 방뒷문을 똑 똑 뚜드렸다. 인숙은 평상시보다도 더 반색을 해서 맞어 들 였다.

인숙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온 복순은

『네 네』

하고 「핀도」아니찔러서 단발한 앞머리카락이 떨어지는것 이 귀찬은듯이 치켜 올리며 그 두툼한 입살을 꼭 담을고 한 참이나 생각을 해보다가

『솔직하게 말하면 음악이니 미술이니 하는 한가한 공부를 헌다구 돈만 낭비허는건 반대야요』

하고 머리를 흔들더니

『지금 조선의 형편으로는 그따위 예술가라는 종류의 인간 이 조금두 필요치 않으니까요. 그건다 놀고 먹을수 있는 계 급의 자녀들이 일종의 향락을 하려는것에 불과허다구 보아 요. 그따위 예술가들이 천명 만명 쏘다저 들어와두 조선의 실사회에는 조끔도 유익할것이 없을뿐더러 즉접 간접으로 없는 사람들의 등골을 뽑아먹는 기생충이 될뿐이지요』

하고는 또다시 너펄머리를 치켜올린다.

『그럼 어떡해요 한창 맘이 건공중에가 떠 있는데 그 성미 에 그예 가구야 말걸요』

인숙의 얼굴에는 다시금 구름이 낀다.

『나두 그런 생각을 못허는건 아니지만 미술공부야 허구 아니허구 간에 지금 두분이 떠나 있게 되는건 자미가 적을 것 같어요. 동경같은 번화헌 도회지에는 젊은 사람들을 유 혹하는게 여간 많지가 않으니까요. 실상 공부보다도 연애를 허는데만 눈이 빨간 학생이 많은것도 사실이거든요』

하는데 봉환이가 문을 펄석 열고 들어섰다.

『제-기 장발이는 벌서 노자를 변통해 놨다는데 넘우 늦게 가면 입학허기가 어렵다구 혼자라두 떠날 모양이야』

하고 봉환은 복순에게는 인사도 하는등 만둥하고 모자를 버서 방바닥에다 미여 붙인다. 복순은 몇마디 봉환의 속을 떠보다가 무슨짓을 해서든지 이 기회에 떠나고야 말 결심이 단단한것을 보고

『그럼 생각을 해서 허서요 내가 반대를 헌다구 들을리가 없으니까요』

하고는 더 욱이지 않고 일어섰다. 인숙은 따러 나가서 복 순과 한참이나 귓속을 하고 들어왔다. 봉환은 두손으로 깍 지를 끼고 비고는 보료우에가 반드시 누어서 눈을 감았다 떳다 하며 있다금 한숨만 몰아쉰다. 마음이 들떠서 벌서 조 선땅에는 몸이 무터있지 않은것같다.

『그럼 꼭 가시구야 마실테야요?』

인숙은 봉환의 머리마테가 앉이며 나즉이 물었다.

『왜 딴청을 허우? 뻔히 내생각을 알면서』

『어떠튼 아버님께나 어머님께는 한번 엿줘보서야 허지 않 겠어요』

『여줘보면 뭘허우. 그야말루 자는 호랑이 코침수기지』

『그럼 위선 노자두 없이 어떻게 가실테야요?』

『그러니까 걱정이지 뭐유. 장말이 처름 아무것두 없는 사 람두 어머니가 월수를 얻어다 줬다는데 젠장 어떤놈이 날보 구 단십원이라두 줘야지. 정 급허면 어머니 패물이라두 훔 처낼테요』

『안돼요 그러다간 집안에서 또 난리라 나게요. 아버님께 서는 울화병이 나서서 사뭇 머리를 싸매구 누섰는데 될뻔이 나 헌 일이야요』

인숙은 봉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반대를 하였다.

『그럼 어떡허란 말유?』

봉환은 벌덕 일어나며 골을 더럭낸다. 인숙은 한참이나 눈 을 나려깔고 있다가

『그렇게 조급허게 굴지를 마시구 한 나흘동안만 참으서 요. 그동안 무슨 도리가 생길는지 알아요』

『아 정말?』

봉환은 귀가 번쩍 띠어서 인숙의 손을 덥석 잡는다.

『모래저녁이 우리 아버지 제사죠? 제사참사 허러 삼청동 으로 오시겠어요?』

『해마둑 갔는데 올이라구 안갈라구』

『어머니는 노상 편지않으시지만 요샌 기거두 맘대루 못허 신대요. 그래서 난 낼저녁에 가 있을테니 모래 제사를 지낼 때쯤 해서 꼭 오셔요. 내가 생각허는건 있지만 그건 그때가 돼봐야 말슴 하겠어요』

『무슨 생각을 했우? 응 미리는 좀 말 못허우?』

봉환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듯이 조급히 뭇는다.

『글세 그럴일이 있어요 눈 끔적허구 이틀만 참으서요』

하고 인숙은 미소를 먹음으며 남편의 얼굴을 처다본다. 그 눈에는 어떠한 결심이 반득인다.

『아무튼 단단히 결심을 허신 모양이니까 내가 암만 붓잡 는대야 소용이 없을줄은 알어요. 동경가셔서 공부에만 참심 하신다면 난 단무슨 짓을 해서든지 뒤를 보아 들일녀구 맘 을 먹었어요』

그말에 봉환은 인숙의 손을 힘껏 잡어 흔들어

『고마우! 누가 그렇게 맘이라두 써주겠우!』

하고 감격해서 목소리까지 떨인다.

인숙은 눈물이 갈상갈상해 가지고

『그러치만 난 어떻게허실 생각이서요? 나혼자 이집에다 내버려두구 발길이 돌아서겠어요』

한마디를 하고는 업드려 이마로 봉혼의 무릅을 부비며 어 깨를 떨었다.

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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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의 제사날 봉환은 초저녁부터 처가로 가서 인숙의 눈 치만 보며 충실한 사위노릇을 하였다. 경직이가 자정이 지 나도록 들어오지를 않어서 축문까지 봉혼이가 쓰고 나서 달 비치 그윽한 삼청동 송림사이로 춘생문(春生門)잔디밭으로 휘파람을 불며 거닐다가 들어왔다. 제사라고 차리는것은 없 것만 경직이가 다리고 사는 계집은 어린 애를 데리고 뚝섬 저의 친정으로 갔다. 궐녀는 제사때나 무슨날이면 의례 피 해다녔다. 그런때는 싀집부치가 꼬여드는것이 싫여서 어린 것을 업고는 살그머니 나가버리는것이 행습이 되였든것이다.

인숙은 행낭어멈 하나만 데리고 진일 마른일을 하너라고 봉환이와는 이야기할 겨를도 없었다. 피차에 속으로는 무슨 생각이 가득이 찼으면서도 서로 이야기할 틈이 나기만 기다 렸다.

저녁때에는 뜻밖에 유모가 우산대 지팽이를 터덜거리며 찾 어왔다.

『아이구 우리 자근아씨 목숨이 모지니까 살어생전에 다시 한번 맞나보는구려』

하고 인숙의 손을 잡고는 질금질금 울었다. 유모는 그동안 모군을 서다 떨어진 아들이 그예 병신이 되여서 어찌나 고 생을 했든지 허리가 꼬부라지고 파파로인이 다 되였다. 인 숙도 옛날생각이 새로워서 마루로 부엌으로 오르나리며 그 동안 지낸 이야기를 주고 받기에 바뺐다. 인숙의 어머니도 유모를 붓잡고

『그래두 원수의 목숨이 끈치지 않으니까 이렇게 옛날사람 을 맞나보것만 꼭 한사람만 못맞나 네 그려 든정은 물라두 난정은 안다구 무슨때면 이것의 어미생각이 무뜩무뜩 나 서……』

하고 알엣목에 누어 자는 손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눈물 이 덧거니 한다.

『생각이 나구말굽쇼. 큰아씨야말루 불상허십죠. 어디가 어 떻게 지내시는지 당초에 소식두 모르고 지내시니……』

하고는 안방편을 흘겨보고는 손등으로 눈두덩을 부빈다.

『다 죽은 송장이 무슨 소식을 듣겠나 한 성중에 사는지두 모르지 이게 자랄수록 제 어미를 닮어가서 내맘이 더 언짠 어이 그려. 서방님이 정말 못헐노릇을 했느니』

하고 다시금 풀이 죽은한숨을 쉰다. 유모는 그제야 경직의 생각을 하고

『아 그런데 서방님은 친깃날 어디 출입을 허서서 입때 안 들어오신다우?』

하고 인숙에게 묻는다.

『누가 아우. 얼마전 까지두 허욕에 들뜨서서 금점판엘 따 러 댕기시는 모양이더니 요샌 아주 노름꾼으두 나스섰나봅 디다 허구 헌날 술타령만 허시니 언제나 정신을 차리시려는 지 몰으겠우』

하고 쓸쓸히 입맛을 다시었다.

경직은 초경이 지나고 봉환이가 축문을 얽는데 큰기침을 하며 비틀거리고 들어왔다. 대청에 배설을 한 젯상우에 흔 들니는 촛불을 개개풀닌 눈으로 멀거니 바라보더니

『내가 들어오기두 전에 누가 제사를 지낸단말이냐』

하고 반벙어리처럼 소리를 버럭 질르고나서는 뒷발질을 해 서 구두를 흘떡흘떡 버서던지고 마루우로 기어오르면서 대충

『아이구 아이구』

하고 이옷집이 요란하도록 통곡을 내놓는다. 향상 앞으로 버럭버럭 대들면서 눈물코물 뒤범벅이 되여서 함문을 한뒤 까지 목을놓고 운다.

뼈가 아프도록 설게곡을 하든 인숙이가 느껴가면서

『오빠 고만 지곡을 하서요』

하고 어깨를 흔들어도 그럴사록 무어라고 사설까지 해가며 마루바닥을 뚜드리면서 어린애 처름 엉엉 운다.

『무슨 설음이 대단해서 저렇게 유난시리 우누』

하고 허는대로 내여버려두고 보려니까 울음소리가 점점 목 구녁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조금있자 모사탕끼를 이마로 받 어 술이 업질러지는것도 모르고 드르렁코를 골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내다보다가 하도 딱해서 마루로 기어나오며

『이 몹쓸자식아 어서 들어가 잠이나 자거라 하필 친깃날 이렇게 술을먹고 들어온단말이냐』

하고 아들의 소매를 끌어나리니까 경직은 밤중까지 얼녀서 돌아다니든 술친구가 끌어다리는 줄 알었는지

『놔라 이자식아』

하고 게발같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더니

『그래두 이놈아 울아버지 제사는 지내려 가야지』

하고 등뒤로 헛손질을 한다.

인숙은 눈쌀을 잔득 찌프리고 돌아서서 봉환을 보기가 얼 굴이 뜨거웠다.

十二

편집

제사가 끝나고 어머니와 유모가 잠이든 뒤에 젊은 부부는 인가가 드문 집뒤 동산으로 올라갔다. 봉환은 인숙의 손을 이끌고 후미진 뛸안을 돌아 커다란 즘생이 쭈그리고 앉인듯 한 바위사이에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를 드르며 우중충한 소 나무사이를 거니렀다. 달은 초저녁에 기울고 창백한 별들만 두사람을 나려다보며 깜박이는데 뿌유스름하게 밝어가는 봄 밤의 공기는 북악산에서 나려 질르는 바람이 아니라도 웃깃 을 여밀만치나 선선하다. 그러나 사랑과 희망에 뛰노는 슴 속의 정열을 시기기에 알마진 밤이다.

봉환과 인숙은 활동같이 땅우로 뻐든 소나무뿌리에 나라니 걸터앉어서 말없이 하늘만 올으러 본다.

시푸른 풀닢자리를 깔어논것 같은 끝없는 벌판에 수천 수 만의 개똥버레가 날러와 앉인듯 반듸불같은 별들은 눈을 반 작이는대로 사람을 놀리는듯이 반득인다. 그중에도 섯녁하 늘의 복두칠성은 더한층 또렷하게 땅우를 나려다보며 저이 들끼리만 무슨 비밀을 속삭이는듯 봉환은 그 하늘을 향하야 무지개와 같은 한숨을 내뿜고 나서 맥업이 머리를 떨어트린다.

『고단허지 않으서요?』

하고 인숙이가 조심스러히 침묵을 깨트렸다.

『졸린게 다 뭐요? 그런데 기다리라든 일은 어떻게 됐 우?』

봉환은 이틀동안을 두고 인숙의 회답을 기다리느라고 속으 로는 여간 조바심을 하지 않었다. 그래서 장인의 제삿날 전 에없이 초저녁부터 대령을 했것만 어린애처럼 따러다니며 물어볼수도 없어서 제댁의 눈치만 보았든것이다. 인숙은 머 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말이 없이 있더니

『이걸루 위선 노자니 허서요』

하고 손수건에다가 꼭꼭싸써 땀이나도록 쥐고 앉었든것을 봉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요?』

봉환은 그것을 얼는 받어 급히 펴서 별빛에 빛우어보고는 눈이 커다래지며

『이게 웬거요? 어떻게 변통을 했우?』

하고 떨리는손으로 조힛장을 세여본다. 그것은 심원짜리와 오원짜리가 뒤섞인 지전뭉치었다.

『팔십원이나 되는구려』

봉환은 인숙의 어깨를 벗적 끌어않으며 죽을목슴을 구해준 은인이나 만난듯 눈물이 나릴만치 고마워서 어쩔줄을 모른 다. 인숙은 눈을 나려깔고

『어떻게 변통을 했든지 그건 아실필요가 없지만요 아무헌 테두 내가 노자를 들였다는 말슴을 허시면 큰일 나요』

『내가 누구더러 그런말을 헌단말요』

봉환은 인숙의 어떠한 명령이라도 들을것같다. 생후로 처 음 쥐어보는 큰 돈이었만 어서 생겼는지 그 출처는 더 물을 수 없었다.

(아-인젠 소원을 일우웠구나) 하고 하늘을 울으러 부르짖으며 인숙에게 고마운 표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옆에서 가늘게 흑흑 느끼는 소 리가 들렸다. 봉환은 인숙의 이마를 조심스러히 치밧들고 두줄기 눈물이번득이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왜 울우? 응 내가 떠날 생각을 허구 섭섭해서 그러우?』

하고 정다히 물어도 인숙은 울움을 참느라고 숨을 죽이며 대답을 못하다가

『아니야요 섭섭한 말이야 해선 뭘허겠어요. 그렇지만 안 계신동안에 난……』

하고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봉환의 가슴에 얼굴을 파뭇고 더한층 설게 느낀다.

봉환도 마음이 언잔어저서 울음을 섞어

『이러지마우 응 이러지 말어요』

하고 달래듯 하더니 그 순간의 무슨 결심을 한듯 인숙의 손을 힘껏 쥐며 목소리를 높여

『자-그럼 나허구 같이 갑시다. 내일이라두 함께 떠납시 다』

하고 인숙의 허리를 힘꼈 겨않어 일으킨다.

十三

편집

인숙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아내야요 안될 말슴이죠 내가 가긴 어딜가요. 나처럼 대 문밧도 모르고 자라난 여자가 뭘허러 동경까지 따라가겠서 요. 혼자 가시기두 이렇게 어려운데』

하고는 제 허리에 감긴 봉환의 팔을 풀고 따로앉더니

『그렇지만 떠나시기 전에 꼭 한가지 특청헐게 있는데 들 어 주시겠어요?』

하고 다시 닥어앉이며 눈물이 글성글성한 봉환의 얼굴을 처다본다.

『듣구말구 여부가 있우』

『꼭이요?』

『그럼 저 하늘에 별들을 두구 맹세할테요』

『정말요? 꼭 들어주시죠? 저-다른게 아니라 나두 공부를 허게 해주서요. 학교엔 못당기드래두 강습소에라두 당길테 야요. 이번에 가시면 적어두 사오년은 게서야 졸업을 허구 나오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동안 난 집에 있어서 부모님을 뫼시고 지내는것이 남의 며누리된 도리에 옳겠지만 살림두 안는데 집구석에만 가처 앉어서 조석문안이나 들이구 침모 처럼 다른 식구의 바누질이나 해주면서 지내기는 넘우나 억 을해요.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는일로 세월을 보내기는 참 정말 아까워요』

『그러니까 같이 가자구 그러지 않우? 동경가서 방하나를 얻어 가지구 둘이자취를 허면서 번차례로 학교엘 다니면 좀 자미가 나겠우? 그럼 아주 우리 둘이만 사는 세상일걸. 여 기서 다닌다면 첫대 아버지 어머니가 내노실상싶우?』

『같이 가자는건 공상이야요. 나두 그런 꿈을 꾸어는 봤지 만 아무튼 내가 따러갈수가 있다느래두 여자허구 한데있으 면 되려 공부허시는데만 방해가 될테니 전여기서 댕겨볼테 니 아버님 어머님께 허락이나 맡어주서요』

봉환은 이슬이 진주같이 매친 풀닢을 쥐여뜻고 있더니

『내가 지금 도망을 가려는데 어떻게 그것버텀 허락을 받 는단말요』

하고 슬그머니 뒤통수를 긁는다.

『그러니까 이럭허면 어때요? 떠나신뒤에 내외분께 큰형으 로 하야 집안에 걱정이 생긴것을보고 유학을 가겠다는 말슴 이 참아 나오지 않어서 엿줍지도 못하고 떠나 왔으니 인자 의 도리에 천만 죄송합니다. 라고 편지를 기다라케 잘 허시 면 노염을 푸시구 몸성히 있기만 바라시게 될께 아니야요?

아직두 어떡허든지 학비쯤이야 보내지 못허겠어요. 그러니 그 뒤로도 몇달동안 뜸을 들였다가 내가 두분의 눈치를 봐 서 편지를 헐깨요. 그땔랑은 지금은 옛날과 시대가 달르고 세태는 바꾸여가는데 가정부인도 신학문을 모르고 견문이 아주 없으면 앞으로 원만한 결혼생활을 할수가 없겠으니 늦 엇으나마 제 댁을 내노하 공부를 시겨줍소서. 만일 소자의 간절한 소청을 들어주시지 않으섰다가는 일후에 후회하서도 그때는 미치지 못할줄 아시옵소서』

하고 단단히 편지만 멫번 허시면 마지못해 허락을 허실게 아니야요. 뒷일은 자근아씨나 복순이가 다 보아줄테니까 요』

하고는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들여다 본다 봉환은 눈을 꿈적꿈적 하고 듣고 앉었더니

『그럼 이왕이면 지금 말현대루 편지사연까지 미리 적어 주』

한다. 그말에 인숙은 울음을 깨물었든 입살에 방싯이 우슴 을 먹음었다.

그리고는

『꼭 그렇게 해주시죠? 무신일이 있든지 내말을 잊어버리 지 않으시겠죠?』

하고 다시 한번 뒤 다진다.

『염려 말우. 저 하늘을 두구 저 별들을 두구 맹세를 현다 구 그러지 않었우』

봉환은 다시 손에 땀이 날듯한 악수와 가슴이 우그러들듯 굳세인 포옹으로 저의 결심을 보였다.

밤이야 밝거나 말거나 두사람은 시간이 가는것을 잊어버렀 다. 발밑에서 졸졸졸 흘러 나리는 샘물소리도 지금은 그들 의 귀에 들이지 않는듯 안타까운 이밤에 눈물을 먹음은 네 줄기 시선은 동녁하늘에 뿌유스름하게 걸친 은하(銀河)를 꿈 속같이 바라다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