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24장
비극이후
편집一
편집봉희는 그날저녁 세철의 손이 와서 저녁대접을 하고 난뒤 에 몸이 고단한데 감기 기운이 잇어서
(새언니가 별고나 없나? 여간해 맘을 못잡을텐데.....)
하고 몹시 궁금해서 삼청동으로 올라가 보려고 교복으로 가러입기 까지 하고는 고만 알에목에가쓸어젔었다. 손들과 함께 나간 남편이 들어오면 늦드래도 잠시 다녀 나려오리라 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꿈도 아니요 생시도 아닌 그야말로 비몽 사몽간이다. 눈이 부시도록 새 하얀 털옷을 기다랗게 느린 천사들이 알연히 나타나더니 곱 다랗게 눈을 나려깔고 입모습에 실낫같은 가녈핀 우슴까지 띠운 일남이를 고이고이 싸서 받들고 하늘로 올라간다. 뭉 게뭉게 피여오르는 구름장을 타고 가벼운 바람에 그 흰옷 자락을 하늘하늘 나부끼면서......
천사들이 일남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을 보자 어디선지 인 숙이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타나더니 그뒤를 쪼차 갔다.
줄이 끊어진 연을 잡으려는것처럼 고개를 들고 하늘만 처다 보면서 갈팡질팡 따러 가다가 어찌어찌하야 천사의 느러트 린 옷자락 한가닥을 간신히 휘여잡었다. 인숙은 허공중천으 로 따러 올러 간다.
인숙이가 깜아 아득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자 봉희는 어찌 나 조마조마한지 손에 땀을 쥐며
"저를 어쩌나? 아이고 저를 어쩌나!"
하고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간이 졸아드는 듯이 아슬 아슬 한판에 인숙이가 잡은 천사의 옷자락이 쭉 찌저젔다. 봉희 는 깜짝놀라 손등으로 입을 막으며
"아ㅅ-"
소리를 질렀다. 인숙은 끈허진 흰옷 자락을 락하산(落下傘) 처럼 받고 나려온다. 강인지 바다인지는 몰으나 눈알에는 천야 만야한 시프른 물결이 굼실거린다. 크고 작은 물결은 고래의 입이되고 악어의 주둥이가 되어 다투어가며 머리우 에 떨어지는 인숙을 통으로 삼키려고 널름 거린다.
인숙이가 철석-하고 떨어지는 찰나에 봉희는 벌떡 일어났 다. 지겹고 무서운 꿈에서 소소라처 깨였다.
남편은 그저 돌아오지 않고 방안에 전등불만 흐릿하게 나 려비최일뿐........ 제정신이 든 봉희의 머릿속에는
(정말 새언니가 물에나 빠지러 나가지 않었나)
하는 생각이 번개ㅅ불같이 뻔쩍하고 났다. 그와 동시에
"인젠 참정말 한강으로나 갈 수밖에 없우"
하고 고민이 절정에 이를때마다 한숨섞어하든 인숙의말을 제귀로도 몇번이나 들었든 생각이났다.
(새언니 성미에 한번 결심만 했으면야)
하니 봉희는 잠시도 더 멈칫거리고 있을수가 없었다.
삼청동으로 다름질을 해 올러간 봉희의눈에 맨먼저 띠운 것은 아니나 달을가 인숙의 눈물겨운 유언서였었다. 봉희는 뚝섬집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대답을 들ㅇ르사이도 없이 돌 처나와 자동차부를 찾었다...........
× × × .........한강다리 근처 파출소로 끌려 들어갔던 인숙과 봉희 는 거진 한시간 동안이나 순사의 꼬치꼬치 캐여묻는 잔소리 를 듣다가 무사히 나왔다.
인숙은 한번 입을 담은후 끗까지 자살을 하려던 까닭을 말 허지 않었으나 봉희가
"단 하나밖에 낳지못헐 첫아들을 잃고 고만 '히쓰테리'가 발작이 됐든거야요. 내가 잘 보호해 가지고 들어갈테니 염 려 마서요"
하고는 밖에서 기다리는 자동차에 인숙을 태웠다. 자동차 속에서 인숙은
"이번엔 자근아씨가 나헌테 퍽악을 했우"
하고 저를 살려준 것이 되려 못할일을 한것이라는 뜻으로 한마디를 한뒤에는 ' 되는대로 되려므나' 하는 자포자기의 태도로 눈을 감고 말도 아니하였다. 다시금 정신을 잃은 사 람처럼 자동차 안석에 턱 실린 몸이 '쿳숀'에 조금씩 흔들릴 뿐이다.
二
편집그후 며칠동안 봉희와 뚝섬집과 삼청동집 행낭에 든 여편 네가 번차레로 인숙의 곁을 떠나지 않고 번을 들었다.
한번 단단히 놀랜 뚝섬집이 경직에게 전보를 처서 불러 올 리겠다는 것을 인숙은 한사코 말렸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허지 않을테니 아무한테든지 내가 한 강까지 나갔다는 말은 허지말어주"
하고 부탁까지 하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은 비로소 안심을 하였다.
그러나 인숙은 여러날동안 누어 앓으면서도 일남의 생각을 하고는 새로운 눈물을 흘렸다.
더구나 한번도 싫건 빨려보지 못한 젖이 퉁퉁이 불어서 짜 내일적마다 톱으로 써는것처럼 가슴속이 씨렸다.
뚝섬집이 일남이가 조그만 손으로 쥐고 흔들든 작난감이나 장속에 넣어둔 옷가지 까지도 어머니의 눈에 띠우지 않게하 느라고 말끔 모아다가 뒷곁에서 살러버렸것만 인숙은 일남 이가 누었던 방바닥만 보아도 눈물이 덧거니 맺거니 하였 다. 집채가 반이나 헐려간듯이나 허순해서 자나깨나 일남에 게로만 달리는 생각을 것잡을 길이 없었다.
그뒤에 인숙의 시집에서는 다시금 잊어 버린 듯이 아무 소 식이 없었다. 손자가 죽은줄은 안짬재기의 말을 듣고 알었 것만
"내-개 그럴줄 알었다. 그 춘데 어린걸 업구 미친년 처럼 까질러 다녔으니 무쇠덩이면 성허겠느냐"
하고 시부모는 손자를 죽인 그 어미를 꾸짓기는 했어도 언 제 정이 든 손자라고 가엾다든지 불상한 생각이 날리는 없 었다. 다만 꿈에 얻었든 떡으로만 역일따름이다. '죽거나 살 거나 제손으로 길르겠습니다' 하고 악지를 쓰고 누가 빼았을 가 보아 바득바득 어린 것을 업고가던 인숙이가 어찌나 미 운지
"흥 그런꼴을 제눈으로 봐야 싸지"
하고 시어머니란이는 코ㅅ방귀를 뀌였다.
그 소식을 들은 봉환은 비로서 마음이 노였다. 심중으로 적지아니 기뻣다.
(고것 때문에....... 고놈의건 괜이 생겨나서 성화를 받처)
하고 처치하기 곤난한 고민의 씨가 되던차에 그 눈의ㅅ가 시가 형적도 없이 뽑히고 나니 여간 시원하지 않었다.
(인젠 제가 들고 나설것이 없겠지)
하니 잠시라도 인숙이와 육체적 접촉이 없었던 증거품까지 소멸이 된 것이 리혼을 하거나 앞으로 자유로히 련애를 하 려는 저의 평생의 사업을 위하야 얼마나 다행한지 몰랐다.
"어디 좀더 두고보자. 인제야 제가 자청을 해서래도 결말을 내자고 할테지"
하고 그 기회를 기다리리라 하였다.
그러나 강보배의 편에서는 아직도 봉환에게는 리인숙이란 본처가 또렷이 민적에 나라니 올라있고 더구나 소생까지 있 는 것을 수소문해 알고는 펄쩍 뛰였다.
"천하에 죽일놈 같으니라구 그놈이 내딸을 버려놓고는 헐 말이 없으니까 뻔뻔스레 리혼을 한다고 가짓말만 질질 흘리 고 돌아다녔지 뭐야......... 어디 너 이놈 귀족의 자식 성한가 두구보자"
하고 보배의 아버지는 천장을 받었다. 아래대에서 더러운 루명을 듣는 그는 깍지똥 같은 몸을 주체하지못하면서 모주 먹은 도야지 벼르듯 하였다.
그러나 보배의 부모는 자기네의 무남 독녀가 그동안 봉환 에게서 못된 병을 올려서 저혼자 무한히 고통을 받고 있는 줄은 알 리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우에 봉환의 씨를 밴 지가 벌서 서너달이나 되어서 학교에도 가지못하고 머리를 싸매고 누은 것은 깜아케 모르고 있다.
부모들은 봉환이와 얼른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못해서 딸 이 심화로 식음을 페하고 누은줄만 알었다.
三
편집늦추위가 극성맛던 일기가 흠씬 풀려 제법 봄날같이 따뜻 한 공일날 점심때였다. 자문밖에서도 한 십리나 더나가있는 조용하고 조그만 암자에서는 인숙의 위로회가 열렸다. 발기 인은 허의사도 세철과 봉희가 일테면 배빈처럼 참석을 하였다.
인숙이가 한강까지 나갔드라는 말을 들은 허의사는 얼마동 안 마음을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인숙을시원한 바람이나 쏘여줄겸 연겁허 한달째나 환자 치닦어리에 눈코 뜰새없이 지내던 자기 역시 하로동안 소창도 할겸 해서 인숙을 찾어 갔었다.
아직도 머리를 싸매고 누어서 다시금 자격할 기회만 엿보 고 있는듯한 인숙을 닷자 곳자 끌어내여 자동차를 태웠다.
인숙은
"일남이 무덤이나 아르켜 주서요. 다른덴 가구싶지 않어요"
하고 구지 사양하는 것을 허의사는
"글세 오늘 하루만 잊어버려요. 제발 남의 말을좀 들우. 내 좋은 구경 시켜주께"
하고 꼬여가지고 그걸로 세철에게를 들러서 그들 내외를 태워가지고 나갔든 것이다.
차창으로 씽씽 달리는 바람은 흉금을 스치는대로 여간 시 원하지 않었다. 인숙은
(팔자에 없는 자동차는 여러번째 타는구나)
하고 가벼히 탄식을 하면서도 일은봄의 교외를 달리며 오 래간만에 과천집 근처 같은 밭과 논과 산이며 벌판을 내여 다 보니 차츰 차츰 기분이 밧괴어지는 것이 느껴젔다. 사람 으로서는 더구나 심약한 여자로서는 참을수 없는 일을 참고 겪을수 없는 일을 격느라고 지글지글 끓다가도 가니 밑바닥 에 졸아 붙은 부레풀 처럼 윽죄였던 인숙의 머릿속이 잠시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창밖에 경치를 내여다본다고 금세로 씿은 듯 부신 듯 명랑해질수야 있으랴. 그러나 침울한 좁은 방속에서 낮과 밤을 이어 죽기도 임의로 못하는 신세를 한 탄만하고 있든 사람으로는 한목음의 청량제를 마신것같이 잠시 상쾌해지는것도 사실이다.
세철과 봉희는 그러지 않어도 인숙을 위로해 준다느니 보 다 그의 장래를 함께 걱정이라도 하고 서로 자기네일처럼 의론이라도 하려고 한자리에 앉어서 저녁이나 먹어가며 이 야기할 기회를 짓고자 별르든차에 마침 허의사와 동행을 하 게된것이었다.
세사람은 자동차속에서 될 수있는대로 우수운 이야기를 주 고 받었다. 그중에도 허의사는 전처럼 쾌활한 태도로 인숙 의 마음속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을 화제를 끄내가지고 떠들 며 인숙의 무릎을 처가면서 남자처럼 웃는다.
인숙이도 속으로는
(저이가 나를 일부러 웃키려고 저러는구나)
하면서도 대접성으로 조금식 따러 웃었다.
이른봄 승방의 대낮은 조용 하였다. 만수향 냄새 그윽한 법당층계로 초막으로 오르나리는 여승들의 장삼자락이 미풍 에 나부끼는 것을 바라보니 딴 세상에나 온것같이 한가로웠다.
나이 오십쯤 되어보이는 스님인듯한 여승이 회색 두루바기 소매를 모아 합장을 하며
"어서들 나오십쇼"
하고 허의사의 일행을 맞어들였다.
그의 거처하는 방인 듯 뒷채의 정갈히 치어논 방안의 검소 한 문갑우에는 힌 매화 한송이가 웃으며 손들을 반겼다.
"이런데가 좀 깨끗허구 조용허우? 시내에다 대면 별유천지 지. 우리 점심이나 시켜 먹으면서 맘 턱놓구 이야기나 헙시 다"
하고 허의사는 상체중을 불러 점심을 분부한다. 그는 별배 처럼 여자들의 뒤를 따러온 세철을 가르치며
"저런 남자허구 같이 들어오는걸 주인이 싫여허는 눈치지 만 여승들이 눈요기래두 허면 해롭지 않지 뭘"
하고 껄걸 웃더니
"우리 몇사람은 각갑헐때면 한달에 한번쯤 이집으로 나와 서 소창을 허구 들어간다우. 나같은 '올드 미-쓰'가 어째 맘 이 좀 '쎈치멘탈' 해질때가 없겠오?"
하고 연방 일행을 웃긴다.
四
편집"세상근심 잊어버리고 이런데 와서 사는 여자들은 참 좋겠 어요. 쓸쓸허긴해두 평생 제몸 하나는 깨끗헐테니깐요"
인숙의 입에서도 비로소 조금 긴 말이 나왔다.
"그야 얼른 겉으로 보기엔 그럴지 모르지만 꽃같이 젊은 여자들이 이런 산속에서 염주나 주물르면서 속절없이 청춘 을 늙히는것두 비참한 사실이지 뭐요. 아주 특별한 수양을 싸어서 도가 통해서 생사 문제까지 초월했다면야 속된 사파 (裟婆)가 부러울게 없겠지만....... 년전에 나왔을 때 아까 우리를 마저주든 늙은 스님허구 얘기를 해보니까 여승 노릇을 허게된 사정이 기막힙디다. 어찌나 세상이 그리운지 터놓구 말허면 사내 생각이 나서 더구나 봄이 되면 몇번이나 밤중 에 봇다리를 쌌었는지 모른대. 나두 여승한가지니까 여간 동정이 되지 않드구먼"
하고 허의사는 자기의 무릎을 치며 웃는다.
이번에는 세철이가 말을 받었다.
"그네들두 모두 생활 때문에 이런데 와서 억지로 부처님을 위허는체 허는게지요. 저 어린여자들이 인생에 대한 철학이 나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생겨서 소위 수도(修道)를 하고 있 는건 아닐테니까요. 근대에 와서는 종교를 믿는다는것두 요 컨대 밥버리지요. 어디 밥버리나 되나요 제 목구녕 하나를 위해서 신앙의 대상자의 이름을 파는 기생충들에 불과허지 요"
"세철씨는 유물론자(唯物論者)니까 그렇게 생각을 허는지는 모르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단순헌것도 아니겠지요. 세철씨 처럼 저런 장안의 미인허구 결혼생활을 허는 행복헌분의 눈 으로야 그렇게 보일테지만....."
허의사는 슬쩍 봉희를 흘려본다. 봉희는 숫색시처럼 얼굴 이 밝애지면서
"허선생님은 똑 그런 말슴만......."
하고는 머리를 숙인다.
"참정말 두분이야 누구버덤두 행복허지 뭐요?"
인숙이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글세, 지금 우리의 생활이 행복헐까요? 연애를 한바탕 굉 장이 헌다가 성공을 헌 셈이니까요. 그렇지만 연애에 성공 을 했다든지 원만헌 결혼생활을 헌다든지 허는 것이 보통사 람의 눈에는 부러워 보일때두 있는지 모르지만, 실상 당자 들이 생각해보면 그다지 행복스러운 것두 아니예요. 구차스 럽게 월급 몇푼 얻어먹는 것으로 생활이 안정되었다구 헐수 도 없구요....밥두 제때에 못 얻어 먹고 돌아 다니든 총각시 절 버덤야 몸은 편안해 젔겠지만 그대신 정신상 고민은 점 점 커지기만해요"
"아 무슨 고민이 그렇게 혹처럼 커지기만 헌단말요?"
허의사는 놀리듯이 묻는다.
"저이는 무에 못맛당해 그러는지 벌서 버텀 밤이면 말두 안허구 꿍꿍 앓어요. 벌떡 일어나서 우두커니 앉었기도허구 어떤땐 그야말로 실연이나 헌 사람처럼 뛰어나가서 길거리 로 쏘다니다가 새벽녘에야 들어오기가 일수야요. 선생님 그 런덴 무슨 약이 없나요?"
봉희의 말이 떠러지기가 무섭게 세철은
"듣기 싫유. 남의 속은 알지두 못허면서 쓸데없는 소릴 허 는구려"
하고 안해를 윽박 질른다.
"그럼 말두 안허구 벙어리 냉가심 앓듯 허는 사람의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봉희는 빨끈하고 쇠면서 남편의 말을 뒤받는다.
"허- 이거 전쟁이 시작되는군! 내외싸움을랑 집에가 가방 속에서들 허우. 이거 우리같은 사람들은 눈꼴이 틀려 못보 겠구료"
하면서도 허의사는 지꿋게도 두 젊은 내외의 싸움을 더 찐 덥게 부처주고 싶은 듯이 번갈러 본다.
그러자 점심상이 들어왔다. 인숙과 봉희는 일어서 밥상을 받어 들여 왔다.
밥상을 들여 밀고 뜰아래로 나려서는 상제중들의 박통같이 빤들빤들한 머리가 나려쪼이는 별에 뻔쩍뻔쩍 한다.
五
편집세철의 이야기는 중단이 되었다. 봉희는
"새언니 취나물 좋와 허지 않우. 어쩌면 튀각을 이렇게 탐 스럽게 잘 튀했어. 집에서 한번 해 먹는다다가 기름이 적어 서 새깜앟게 태웠드라우"
하면서
"아우님이 소채를 좋와허는줄 알구 일부러 이런 데로 왔으 니 그동안 못먹은 양을 다 채우"
하고 지글지글 끓는 신선로의 두부전골을 공기에 떠주는 허의사와 함께 스스러운 손님처럼 인숙을 권하였다.
인숙은 오래간만에 입맛이 나서
"그래두 산 사람은 맛있는걸 아는구료"
하고 남의 운에 딸려 이것저것 집다가
"참 복순씨는 병이나 아주 다 났는지 몰라"
하고 복순의 생각이 나서 저까락을 세운다.
"일전에 편지가 나왔는데 건강은 괜찮대요. 공소를해서 복 심법원으로 올러올테니까 서울서 면회는 헐수가 있겠지요."
하고 세철이가 최근의 소식을 전한다.
"참 복순이 때문에 우리가 다 이렇게 알게 된게아니요 사 람의 인연이란 알수 없는 거야"
허의사의 말한마디에 인숙과 세철과 봉희는 제가끔 복순이 와의 관계며 전에 지내든일을 추억하고 일제히 복순이가 몸 성이 치르고 하로바삐 나오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뭐 그 배포 유헌 사람이 피둥 피둥허게 살이 쩌가지구 나 올걸. 복순이가 나오면 내 한턱을 다시 낼테요"
하고 허의사는 바릿대에 고사리와 도라지 나물을 넣고 보 기만 하여도 침이 고이도록 맛있게 부비면서
"어서 덤벼들우"
하고 인숙을 닥어 앉친다. 인숙이로 하야금 조금이라도 처 량하거나 가슴답답한 생각은 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그는 말머리를 이리 돌르고 저리 돌르면서 괘사를 부린다.
"선생님 익살엔 초상 상제두 웃겠어요"
하고 인숙이도 웃는 낯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죽지못해서 음식을 약처럼 먹어오던 인숙은 놀랄만치나 많이 먹었따.
세철의 내외도 한그릇에 밥을 탐스럽게 부벼가지고
"이게 새언니 덕이야요"
"아-니 허선생 덕이지"
해가면서 개눈 감치듯 하고 과일 접시를 닥어놓고 부끄럼 을 탈때의 봉희의 얼굴빛같은 사과를 집어서 반에 쭉 쪼개 가지고 어적어적 논아 먹는다.
실상 이 젊은 부부도 명색 결혼이라고 허자마자 젓국같은 살림에 쪼들리며 상점일을 보랴 하나는 학교에 다니랴 이런 절간에 나와서 음식을 사먹기는커녕 동부인해서 창경원같은 데 산ㅅ보도 한번 가보지 못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테면 봉희 내외의 간친회(?)까지 겸친것쯤 되었다.
그러나 두사람은 될 수있는대로 저이들의 의초 좋은 것을 인숙의 눈앞에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데면데면 한체를 해 보이려는 것이 허의사의 눈에 띠웠다. 그러면서도 생으로 자기의 본능을 참고 청상과부처럼 직업부인으로 늙는 자기 역시 정다운 두 젊은 내외의 일동 일정이 속으로는 슬그머 니 부럽기도 하였다. 겉으로는 미소를 퍼부면서도 사람으로 완성되지못한 반편과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고 문갑우 에 향기없이 홀로 핀 매화송이를 맥놓고 드려다 보는 것을 인숙은 몇번이나 눈치를 채였다.
밥상을 물린뒤에 인숙은 실과를 벗겨 허의사에게 권하면서 방바닥을 한참이나 나려다 보더니
"세철씨는 무슨 고민을 그렇게 많이 허서요?
내생각에는 인제 첫아들이나 하나 나섰으면 느긋허실 것 같은데요"
하고 찬찬히 머리를 처들고 묵묵히 앉인 세철의 얼굴을 쳐 다본다.
봉희의 시선도 허의사의 시선도 일제히 세철의 얼굴로 모 였다.
六
편집세철은 무거히 입을 열었다.
"요령버텀 간단히 말슴하면 앞으로 어떠한 길을 밟어 나갈 가 하는 것이 큰 고민 거리야요. 내가 그 지독한 고생을 해 가면서 이 현실과 싸워온 것은 지금처럼 소시민적(小市民的) 인 생활안정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가만 히 따저 보면 내가 그동안에 한 사업이라고는 극히 개인적 인 연애에 성공한것뿐이지요. 바꾸어 말슴허면 '뿌르조아'의 딸 한사람을 빼앗은 것은 그동안 내 사업의 전체이었딴 말 슴이야요"
하고 얼굴을 조금 돌려 봉희의 눈총을 피하다가
"앞으로 무엇을 헐가? 이 시대에 처한 조선의 젊은 사람으 로 계급인의 하나로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가 하 는 목표를 확실히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처럼 더 마음 괴로운 것은 없어요. 달은 사람들은 보기에 딱하기는커녕 나자신의 생활이 넘우나 무의미허구 기분이 침체해진데 분 개허지 않을수가 없에요"
세철의 얼굴은 점점 혈조를 띠운다.
"그야 조선의 젊은 '인테리'치고는 다같이 느끼는 고민이지 유독 세철씨만 당하는 정신상 고통이 아니겠지요"
허의사 역시 여성운동에 가담해서 복순이같은 전위분자의 뒷배를 보아 오던 사람이라 세철이와 같은 시대의 고민과 조선의 지식분자로서의 번뇌를 받고 있다는 뜻을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처지와 환경이 남류달으게 자라왔고 또는 이사회의 불합리한것과 끝가지 싸워 나갈 것을 철학으로 삼 고 왔었기 때문에 목구녕을 위해서만 저의 생명인 시간전부 를 빼았기는 근자의 결혼생활에 고만 환멸을 느꼈어요. 그 렇다고 지금 형편으로는 무작정 허구서 날뛰는 것이 상책이 아니겠구요"
인숙과 봉희는 잠자코 세철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허의사 만이 대ㅅ구를 한다.
"내가 의사니까 이렇게 생각이 되는지는 몰으지만 중병이 든 환자는 무엇보다 먼저 '엑쓰'광선으로 병의 근원 버텀 빛 어볼 필요가 있을줄 알어요. 약을 먹이는것쯤으로는 듣지못 할 경우면 당연히 큰 수술을 해서 그 병근을 뽑아 버리는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하야 위선 우리네 같은 소위 '인테리' 들은 조선의 가슴 한복판에 청진기를 대볼줄 알어야겠어요"
"그 병명을 몰으는건 아니얘요. 병근을 뽑아 버리어야 할것 두 물론 알지못하는게 아니지만 다만 그 수단과 방법에 달 렸거든요. 선무당이 사람을 죽인다는 격으로 함부로 날뛰다 가는 저 한몸이 희생이 되는것쯤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결과 를 생각하지않구는....."
하는데 허의사는
"자 우리 그런 골치아픈 문제는 다음날 천천히 토론을 합 시다"
하고 손을 들어 세철의 말을 막는다. 오늘의 모임이 인숙 을 위로해주고 그의 장래를 지도해 주려는데 있는데 그동기 와는 이야기가 탈선이 되어가는것을 본 줄기로 끌어들이랴 함이다.
"왜요 퍽 유조헌 말슴들인데요"
인숙은 두사람이 계속해서 이야기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세철이 역시
"뒀다 허지요. 말로만 헐게 아니라 조만간 어떤 형식으로든 지 지금 우리 두 사람의 생활에 큰 변동을 일으킬테니까 그 때 두구 봐주세요"
하고 물러 앉는다. 세철은 인숙이가 질문을 했기 때문이였 으나 제말만 길레 늘어논 것을 뉘우치는 듯이 허의사의 입 에서 달은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편으로는 그런중대한 문제는 며칠동안 밤을 새워가며 토론을 해도 끝이 날것같지 가 않었고 근자에는 생활 안정을 제일가는 주의로 삼는듯한 허의사에게 그만한 정렬이 남었을상 싶지도 않었든 것이다.
七
편집"그래 아우님은 앞으로 어떻걸 작정이요?"
허의사는 인숙의 속을 떠본다.
"아-무 작정 없어요. 안직도 내가 죽었는지 살어있는지 나 도 몰으겠어요"
"그럴테지 어째 안그렇겠소. 허지만 아우님 내 말을 좀 들 어보. '자녀를 잘 길르기 위해서는 그 부모가 죽어도 좋다' 고 어떤 서양사람은 말했답니다만은 죽은 자식의 뒤를 따라 서 그 어머니가 자살을 헌다는건 당초에 잘못된 생각이요.
그야 앞뒤가 절벽인 아우님의 사정을 몰으는건 아니지만 그 렇길래 우리도 무한히 동정을 허는게지만 말요. 어떻한 경 우든지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다는건 어리석은 일인줄 알어요. 그건 반듯이 하느님헌테 죄가 된다거나 부모에게 불효가 된다는 관념으로가 아니라 사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남녀나 노소를 막론하고 살기가 질거워서 무슨 행복을 누리 려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줄 아우? 실상은 죽지들을 못 해서 사는게지. 그 사람들이 환경을 비관헌다든지 생활이 곤난허다든지 또는 이세상에 소망이 끊첬다고 뒤를 이어 생 목숨을 끊는다면 살어 남어있을 사람이 몇사람못된다구해두 과언이 아니리다. 참정말 아우님버덤 몇곱절 불행헌 사람이 우리 조선에는 얼마나 많은지 몰은다우"
허의사의 말이 끝나기전에 세철은 인숙의 앞으로 닥어 앉 이며
"나두 어떠헌 경우에든지 자살허는 행위는 어리석은줄 알 어요. 돈이 없어 죽는 사람은 돈헌테 지는게구, 실연을 허구 죽는 사람은 연애헌테 생명까지 빼았기구 마는게니까요. 세 상을 비관허구서 자살을 헌다는것두 실상은 소극적인 인생 관 때문에 죽엄을 당허구 마는거라구 생각해요. 사실 엄정 헌 의미로 보면 피살(被殺)은 있을지언정 자살이란 없는거얘 요"
이번에는 이제까지 잠자코 남의 말만 듣던 봉희가 남편의 말끝을 챗드렸다.
"그렇지만 새언니와 같은 가슴 쓰라린 결혼생활을 해보거 나 뜻밖에 얻은 아들 하나헌테만 소망을 붙이고 살다가 남 류달리 기막히게 참척을 본 경험을 해보지 못헌 우리로서 더퍼놓고 자살행위를 큰 죄악으로만 생각헐수는 없지 않어 요"
하고 인숙을 두둔하듯 한다.
"그야 죽엄이라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는것과 마찬가 지로 한사람이 여러사람의 온갓 경우를 다 체험해 볼수야 없겠지. 꼭 저 자신이 당해본 일이라야만 비판을 헐수가 있 는것두 아니니까....... 그렇지 않우?"
세철은 인숙이가 강물에 몸을 던지려고 하기까지에 사정을 제색시가 넘우 지나치도록 동정하는 나머지에 그런말을 하 는줄을 몰으는 것이 아니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든지 자살을 하는 행위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고집을 세웠다.
인숙은 여러 사람의 말을 한마디도 빼어놓지 않고 명심해 듣고 앉었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말 가운대에 어떤한 구절에 서 새로운 그 무엇을 얻으려는 듯이.
두 젊은 내외가 한참이나 토론을 하는 것을 듯고 있던 허 의사는 영창의 조그만 유리쪽을 새여 장판바닥에 한줄기 비 끼인 볕을 내려다 보다가
"두분의 말이 다 그럴듯허우만 아무튼 인숙씨에게는 앞으 로 살어나갈 길이 확실이 터질수 있는 것을 나버텀 자신있 게 믿을수가 있어요. 내 생각 같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과 거의 불합리했던 결혼을 이번 기회에 깨끗허게끔 청산을 해 버리기를 권고허구 싶어요. 무슨 일이든지 순서대로 처리를 하여야 허니까요"
하고 자기의 의견을 끄낸다.
八
편집"말슴해 주서요. 저 때문에 모처럼 이렇게 모혀주신 터이 니....... 난 여러분께 도모지 뵈일 낯이 없어요"
인숙은 종시 얼굴을 들지 못한다. 허의사는
"새삼스레 그런말은 왜 허우?"
하고는 천장을 치어다보며 무엇을 한참 생각해 보더니
"신문인가 잡이에선가 본듯한데 어느 사람이 이런 말을 했 습니다.....
'결혼은 하품의 문, 어리석은 여자는 행복을 찾어서 기어들 고 영리한 여자는 지리하고 가깝한 희극의 히로인(㉧여주인 공)으로서 기어든다'고.
난 이말이 어느 정도까지 옳은줄 알우. 그야 나 자신이 남 자헌테 압제를 받기 싫거나 가정생활에 맛을 못붙여서 그런 지 입때까지 독신으로 버티고 지내니까 그런 말에 공명이 되는지는 몰으지만 하여간 남녀간에 결혼이라는 것은 반듣 이 해야만 허는 것은 아닐줄 알어요. 그야 이 두분처럼 첫 번 연애에 성공을 해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자녀를 낳어길으는 재미를 보구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행복된 일인 지 몰으지만 불행히 그러한 인간의 복록을 누리지 못할 경 우에 처했다고 한 여자가 살어나가지 못하는 법은 없을줄 알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보통 경우와는 달러도 따로히 밟어 나갈 인생의 길이 있으니까요. 그길을 여자홀로 것자 면 생리적으로도 외롭고 쓸쓸하기야 하지요.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여보면 부부간에 사랑과 리해가 없고 길러주는 기게 노릇을 하면서 한평생을 방구석 부엌구석에서 보내는 보통 여자들보다 나같은 사람의 생활이 얼마나 자유스럽고 깨끗 헌지 몰라요. 병든 사람의 육체적 고통이나마 털어 주는 것 을 신성한 천직으로 녁이고 저 스스로 위안을 받을수가 있 으니까요"
"그렇지만 나같은 여자야 무얼 알어야지요. 허선생님은 전 문으로 공부를 허섰으니까 독립생활을 하실수가 있지만......"
"무얼 새언니는 그렇게 고생을 해가면서 고등과까지 마치 지 않었우? 앞으로 이삼년 동안만 더하면 훌륭헌 선생자격 을 얻을수 있을걸"
봉희가 인숙의 실력을 보증한다. 허의사도
"암 그렇구 말구. 아우님이야 원체 얌전헌데다가 신구식을 알만치 겸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손에 잡히기만하면 여간 사람이 못따러 갈줄 아우"
하는데 세철은
"얘기가 또 삐뚜루 나가는군요. 그건 장래의 일이지만 지금 인숙씨의 형편으로는 위선 과거를 청산해버릴것이 급하지 않겠에요. 그 문제버텀 좀더 구체적으로 의론해보시지요"
하고 인숙의 의견을 뭇는다. 허의사는 그말을 받어
"아우님의 장래의 일은 나두 생각헌게 있는데 그건 다음날 얘기하기로하고 먼저 리혼문제 버텀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런일은 곁에ㅅ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니까, 위선 당자되는 아우님의 의견은 어떤지?"
그러나 인숙은 여전히 머리를 떨어트린채 얼는 대답을 하 지 안는다. 봉희는 인숙의 눈치를 살피며
"난 이런 말만 나오면 오빠한테 관한일이 돼서 여간 거북 허지가 않어요. 그러치만 난 새언니가 우리 오빠허구 리혼 을 허는데 찬성을해요. 사실 인젠 더 두구 볼게 없으니까요.
나같으면 얼는 도장을 찍어 버릴테야요"
봉희는 제가 무슨 잘못된책임이나 있는듯이하고 흥분되어 얼굴을 붉힌다.
九
편집봉희나 다른 사람들이 리혼을 찬성하지 않드래도 인숙의 마음속에는 벌서 작정한바가 있었다.
"벌서 여러해를 두고 그문제로 머리를 썩혀왔고 생각도 많 이 해왔으니까 끝장까지 다본 오늘날와서 내가 고집을 세우 는건 아니야요. 그렇지만 순리로해도 경솔하게스리 동의를 할 수 없는 일을 아주 비열한 수단까지 써가면서 사못 위협 을 하니까 난들 심사가 나지 않겠어요"
인숙은 제가 리혼에 동의를 하지안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 을 한다. 허의사는 그말을 믿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아우님이 자발적으로 탁방을 지란말이 요. 그럼 아우님이 리혼을 당허는게 아니라 윤봉환이가 되 려 아우님에게 리혼을 당하는 심이 아니겠오?"
"글세요......."
"글세요라니? 그래두 용기가 나지를 안는게로구려. 안직두 '봉환'이란 사람에게 미련이 있남. 애착심이 남었남?"
그말에 인숙은 쓸쓸한 우슴을 띠우고 고개를 천천히 좌우 로 흔들며
"이 세상허구 하직을 하려든 이몸에 못잊어헐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고 과거를 추억하는 듯 눈을 나려깔며 한숨을 짓더니
"그래두 얼마전까지는 그이가 마음을 돌리고 본정신을 차 리기만을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인젠 남몰래 바라든 것 쪼차 얼마나 어리석었든가 허구 뉘우처 질뿐이야 요. 아무튼 나 한평생에는 그이가 처음겸 마지막인 단 한사 람의 남자였으니까요......"
인숙의에 얼굴에는 억지로 떠돌든 화기가 거치고 다시금 수심이 첨첨히 낀다.
"인제와서는 리혼아니라 더한 일을 한 대도 조금도 양심에 찔릴건 없어요. 내힘껏 정성껏은 다 해봤으니까요.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하고 복종만 하는 것이 얼마나 여자아 게 불행하고 억울한 일인지도 깨달어젔어요. 사랑이란 인력 으로 억지로 주고받을수가 없는 것인줄도 알어지고요"
허의사는 그말을 기다리고 있었든 듯이
"그렇게 단단히 각오를 했으면서야 나쁜꿈을 한바탕 지겹 게 꾸어버린 셈만치구서 지금버텀 새로운 생활의 길을 밟기 위해서 로력을 해야지요.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아우님하 나야 지도를 못하겠오. 아까두 말했지만 나두 생각한게 있 으니까......."
하고 말을 채 맺기전에
"무슨 생각을 하섰어요? 우리 새언니가 앞으로 무얼 했으 면 좋겠어요?"
하고 봉희가 인숙을 대신한것처럼 궁금해서 닥어 앉지며 뭇는다.
(저이가 자기 병원에다가 두고 간호부나 산파를 만들 생각이 아닐가)
하는 의심도 들었던 것이다.
세철이 역시 허의사가 리해 상관이 없이 인숙에게 저다지 호의를 보이고 신세를 입히는 것이 사람이 얌전하니까 자기 의 수하로 두고 만만히 리용을 하려는 수단이나 아닌가 하 는 의심이 없지 않어서 흘금흘금 허의사의 눈치를 본다.
허의사는
"그건 뒀다 얘기 합시다. 오늘은 다른 얘기를 많이 했으니 천천이 일어서 산보나 허구...."
하고 그는 명확한 대답을 회피한다. 이번에는 당자인 인숙 이가 정편으로 얼굴을 들며
"좋은 길이 있으면 아주 이 자리에서 말슴해주서요. 고맙구 미안헌거야 이루 형용할 수가 없지요만......"
하고 허의사의 대답을 졸르듯 한다.
허의사는 안경속으로 눈을 꿈적거리며
"그럼 아우님이 먼저 소망을 말해보우. 우리 그것버텀 압시 다"
하고 도리여 인숙의 의향을 떠보려 든다. 그러나 인숙이도 당장에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궁리 하는 것이 있기는하나 저의 후반생의 가장 중난한 일을 경 솔히 말하기를 망서린다는이 보다도 사실 인숙의 머릿속은 아직도 그런 문제를 연구하리만치 정돈이 되지못하였다.
"저두 좀더 생각해본뒤에 다음날 찾어가 뵙구서 말슴허겠 어요"
할 수밖에 없었다.
十
편집인숙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침 해두고 네사람은 다 른 이야기들을 하다가 해가 설핏할 때에 일어서 절에서 나 왔다.
노루꼬리만한 해가 기울자 그늘진 산골작이로 숨여들며 인 숙의 치마자락을 날리는 저녁바람은 오싹오삭 소름이 끼칠 만치나 쌀쌀하였다.
인숙은 다리가 새다리처럼 떨리는 것을 약약하게 걸어서 건강한 세사람의 뒤를 간신히 따러 전차ㅅ길까지 왔다.
전차속에서 봉희는
"저녁은 우리집에 가서 먹읍시다. 허선생도 모시고........ 누 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고 집엘 일즉 들어가 뭘허우"
하고 세철이와 함께 중간에서 나리자는 것을
"다릿심이 풀려서 쓸어질 것 같은데 바루 올러가 누어야겠 우"
하고 인숙은 사양을 하였따. 허의사도
"입원한 환자가있으니까 나두 오늘은 더 놀 시간이 없어요"
하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병원앞에서 나렸다. 그 래도 봉희는 인숙이가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쓸쓸하고 심난해 할 것을 동정하고 저녁이라도 같이 먹은뒤에 어디 구경이라도 데리고 가서 오늘 하로는 완전히 모든 근심을 잊어버리게 해주고 싶었다. 인숙이가 안동네거리에서 기신 없이 나려서는 서리마진 가랑닢 모양으로 후줄근하니 혼자 서 길바닥만 굽어보며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것을 두내외는 한참이나 바라다보았다. 참아 돌아설수가 없었든 것이다.
그 뒤 한 일주일 동안이나 인숙은 저의 장래를 곰곰 생각 해 보았다. 봉희 내외의 간곡한 위로와 허의사의 분수에 넘 치는 친절이며 그네들이 지성으로 권고하고 격려해준 덕택 으로 정신적으로도 죽엄의 세계에서 거듭날 용기가 차츰차 츰 생기고 새로운 희망의 서광이 제몸을 뒤늦게나마 비처오 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대로 죽었드면 이세상에 태어 났던 아-모 보람이 없었을번 하지 않었나. 남을 위해서 짓 고생만 하다가 어린 것의 뒤를 따러 생목슴을 끊었드면 넘우나 가치없는 인생이 될번하지 않었나) 하고 극단의 행동을 취하려던 것을 뉘우치게까지 되었고 (오냐 죽으려던 용기를 가지고 살어보자! 정말 이세상에 불 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살해 버린 셈만치고 나한몸을 바처 보자! 이번에는 참정말 남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적으나마 쓸모가 없으나마 이몸 하나를 희생으로 바치자!) 하고 열번 스무번 마음을 고처먹으니까 눈앞에 무서울것도 겁날것도 없을상 싶었다. 힘은 미양하고 아무것도 아는 것 은 없으나마 한사람의 남편이나 자녀를 위하기보다 더큰 행 복을 위해 알몸둥이 하나를 던지는 것이 얼마나 거룩하랴.
그얼마나 신성하랴.
그리하야 인숙은 오직 봉사(奉仕)의 정신으로 삶으로써 지 난날의 모-든 설음과 가슴쓸아린 기억을 잊어버리고저 하였다.
열병을 지독하게 앓고난 사람이 전신의 세포(細胞)가 밧괴 고 온갓 잡병이 다 떨어지는것과 같이 큰 수술을 받어 군살 을 흠씬 도려낸자리에서 발간 새살이 쑥쑥 솟아나는거와 마 찬가지로 생사의 경계선에서 헤매이던 인숙은 그의 인생관 (人生觀)이 차차 밧괴였다.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뒤였다. 인숙은 저의 새로운 결심을 보이려고 허의사를 찾어 나서는데 컴컴한 중문깐에서 깜짝 놀라
"이게 누구야?"
소리를 질르며 몇거름 물러섰다.
인력거에서 뛰어나려 황급히 들어오는 시컴언 외투를 입은 사람과 마주쳤던 것이다.
十一
편집"잠깐 들어갑시다"
봉환은 인숙을 바로 치어다보지도 못하고 저먼저 앞을서 마루로 올라가더니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인지는 모 르면서도 인숙은 그뒤를 딸어 들어가지 않을수없었다.
두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될 수있는 대로 멀치감치 떨어저 앉었다. 봉환의 얼굴도 인숙이만 못 지않게 초최하다. 같득이나 여위고 피ㅅ기가 없는 그의 얼 굴은 얼른 알어보지 못할만치나 아주 반쪽이 되었는데 무슨 일이있던지 '모-던 뽀이' 식으로 기를 쓰고 옷모양을 내고 다니든 사람이 오늘은 자리옷 우에다가 외투를 뒤집어 쓰고 인력거로 달려온 것을 보니 어지간히 긴급한 일이 생긴 눈 치다.
뜻밖에 봉환과 마주안진 인숙의 가슴속에는 일만가지 감회 가 한꺼번에 끌어 오랐다. 그러나 소위 남편이란 사람과 모 든 것을 단념하고 여무지게 결심을 한 것이 있는 그는 의외 로 침착한 태도를 지을수 있었다.
"무엇허러 왔어요 나헌테 무슨 볼일이 있어요"
하고 대문깐에서 한마디를 쏘아부치고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만 (아무튼 끝까지 나만은 사람 대우를 해주리라) 하고 입살을 깨물며 뒤설래는 감정을 참고 딸어들어와 안 기는 했어도 무어라고 말은 나오지않었다. 이편에서 먼저 찾어온 까닭을 뭇기도 싫였든 것이다.
그러나 봉환이가 무슨 말을 할듯할 듯 하면서도 참아 입밖 에 내지를 못하고 손톱여물만 썰면서 제버릇으로 발끝만 까 불고 앉었는 것이 보기에 하도 가깝해서 인숙은
"어째 오섰나요?"
하고 냉정히 한마디를 물었다. 봉환은 금세 울상이 되어서 외투 안주머니에 삐죽이 내민 것을 끄내더니
"이걸 좀 봐주"
하고 떨리는 손으로 펴놋는 것은 그날저녁에 돌린 ××일보다.
인숙의 눈은 신문의 사회면 첫머리에 굵다란 활자로 난 기 사의 사단으로 뽑은 제목우로 급히 달렸다.
<련애전선에 대이상"(戀愛戰線에大異狀!>
이라고 가로 질른 제목아래에는
<강부호의 무남독녀 윤자작의 아들을 걸어 정조유린죄로 소송제기> (위자료로 일만원을청구)
<××일 경성지방법원에>
제목만 보고도 인숙의 눈은 동그래젔다. 저와는 즉접 관계 가 없는 듯 하다. 봉환의 사진과 강보배의 사진까지 대문짝 같이 밖여난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기사의 내용을 훌 터보니
<××궁 윤자작의 셋재 아들이요 ××여학교의 도화교사인 미술가 윤방한은 본처인 리○○과 리혼을 하겠다고 동교의 음악교사인 원고를 감언리설로 유인하야 온양온천과 기타각 처에서 정조를 유린한후 화류병까지 전염시켜 더할수 없는 육체의 고통을 주고 더욱이 임신까지 시켜 오륙개월이 되었 으나 본처와 리혼하겠다는 약속은 리행치 않을뿐아니라 피 고는 원고에게 대한 태도가 날로 냉정하야 근자에는 돌아보 지도않고 책임을 회피함으로 피고는 극도의 고민 끝에 자살 까지 하려는 것을 그 가족이 감시중인바 피고가 약속한대로 리혼을하고 아니함을 불구하고 위자료로 일만원을 청구하는 것이다>
라고 자세한 사실과 봉환의 평소의 행동이며 강보배와 그 의 부모의 담화를 속기한것이며 사건을 담임한 변호사의 말 까지 계재되였다.
인숙은 하도 기가 마켜 잠자코 봉환의 얼굴을 처다 보았다.
"이 일을 어떻게하면 조우?"
봉환의 눈에서는 닭의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十二
편집턱이 뾰족하도록 여윈 두뺨에 흘러나리는 두줄기 눈물을 씻으려고도 하지않고 '이일을 어떡허면 조냐'고 애원을 하는 것을 물끄럼이 쳐다보니 인숙은 봉환이가 가엾었다. 가엾다 느니보다도 차라리 인생이 불상한 생각이 들었다. 야속하다 못하야 밉고 몹시도 미운 끝에 치가 떨리도록 분하고 절통 하든 남편이란 사람에게 대한 감정이 가련하고 칙은한 생각 으로 변할 때 인숙은 여자로서의 일종의 자존심을 느꼈다.
눈은 눈을 빼어서 갚고 니는 니를 뽑아서 갚는 그러한 극단 에 가는 복수의 수단을 쓰지않고도 적수가 되는 사람이 제 풀에 머리를 숙이고 기어들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는 것을 눈앞에 앉혀놓고 볼 때 인숙은 남성에게 대해서 어느 정도로 우월감(優越感)까지 느껴졌다.
봉환은 눈물 코ㅅ물이 뒤범벅이 되어가지고 오늘밤 안으로 잡혀나 가면 징역이라도 살것처럼 겁이 나서
"전에 헌일을 죄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저 날 살려주는 셈 만 치구서......"
하면서 말끝도 맺지를 못하고 훌쩍이는 것을 (지지리도 못났다. 수채구녁에가 빠지고 들어와서 '나옷주' 하든때와 낙제를 하고 술을 마시고 떡메여 다니고 활동사진 에 반해서 담을 넘어 다니던 시절 처럼 미거하기는 매일반 이로구나) 하였다. 개꼬리 삼년을 묻어 황모가 못된다고 그동안에 정 신적으로는 아무러한 발달과 진보가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였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계집을 호리는 재주하나는 남보다 월 등하게 타고 났을가. 제가 저질러 논 일을 제손으로 휘갑을 못하는 주제에......) 하고 인숙은 새삼스러히 모멸(侮蔑)의 가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는 흐릿한 전등빛에 죽여줍시사 하고 머리를 떨어트리고 앉어서 저의 처분만 기다리는 봉환을 한참이나 말없이 나려 다 보다가
"그럼 날더러 어떡해 달란 말슴이야요?"
하고 간단히 또는 여전히 냉정한 어조로 무렀다. 모-든 감 정이 죽어버린 인숙의 머리ㅅ속에는 오즉 차디찬 이성(理性) 만이 달밤의 서리ㅅ발같이 빛날뿐. 긴 사정은 더 무를 필요 가 없고 듣고 싶지도 않어서 결론만을 들으려 함이다.
봉환은 손등으로 눈두덩을 부비고 나서 외투안 포케트를 훔척 훔척 하더니 누런 봉투지에 든 서류를 끄내 놓며
"여기 이름을 쓰구........도장을......."
하면서도 감히 상대자는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것은 인숙 이가 상상한것과 틀림없이 협의이혼을 계출할 서류이었다.
강보배편에서 이혼을 하겠다고 속여온 것을 제일 큰 조건으 로 들고 일어나서 정조를 유린한 위자료를 만원탐이나 청구 하는 소송을 제기한것인즉 급속히 이혼수속만 하고나면 원 고편에서 소송을 취하하도록 알선을 해볼여지가 있겠다는 변호사의 권고를 듣고 쫓어온것이나 아닌가하고 인숙은 어 림치고 짐작 할수 있었다. 봉환은 친구의 집주소로 분가를 해서 내외가 살림을 하고 있는것처럼 꾸며서 부모의 도장이 필요치않고 인숙은 양친이 다 돌아간터이라 당자 두사람이 서명날인을하고 아무나 양편의 보증인으로 도장을 찍으면 고만이라 그형식은 매우 간단하였다.
인숙은 숨소리도 아니내고 머릿속으로 십여년동안 이른바 저의 결혼생활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본뒤에
"내도장 하나로 일이 무사히 필수만 있다면 찍어드리지요.
이버덤 더헌일은 못허겠어요?"
하고 나즉이 한마디를 하고 책상앞으로 닥어 앉더니 벼루 에 먹을 갈어 인찰지우에 이인숙(李仁淑) 석자를 썼다. 지나 간 옛날에 남편의 옷을 밤새가며 정성스러히 꼬매듯이 한획 두획 꼭꼭박어서 쓴뒤에 설합에서 도장을 끄내여 인주빛 선 명하게 저의 이름 밑에다 찍었다.
인숙은 머리를 들고 고마워서 어쩔줄을 모르는듯한 봉환의 표정을 물끄럼이 바라다 보더니 침착하고도 부드러운 목소 리로
"인제는 고만 정신을 차리서요. 조선 청년의 할 일이 연애 뿐이 아니니까요. 다른 사업을 못허시겠거든 맘을 잡구 그 림이래도 열심히 그리서요."
"그때엔 내가 '모델'은 못되드래도 전람회에는 가봐 들일께 요!"
하고 다시 한번 봉환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애원하는말씨로 그러나 조금도 슬픈 빛은 보히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이말 한마디만은 꼭 들어두실줄을 나는 믿구 싶어요!"
하더니 도장찍은 종이를 봉환의 앞으로 조심 스러히 밀어 놓는다.
十三
편집이튼날 아침 뜻밖에 봉환은 또다시 삼청동으로 쫓아 올라 왔다. 이번에는 택시-를 몰아가지고-.
"부청엘 갔더니 가치 와야만 헌대서!"
하는 것이 구두도 채 못벗고 무릎으로 마루로 기어올라 머 리만 들여밀며 하는 봉환의 말이었다.
이생각 저궁리로 하로밤을 고시란히 밝힌 인숙의 입에서
"가지요!"
하는 한마디는 기다란 한숨에 휩싸혀 나왔다.
봉환을 먼저 나가 기다리게 한후 인숙은 물만 찍어 발러 세수를 하는체하고 머리에 군빗질을 하고는 일어섰다. 자동 차는 '엔진' 소리를 요란히 내며 좁은 골목을 돌아 나가느라 고 상여처럼 몇번이나 뒷걸음질을 치다가 뿡뿡 거리고 떠났다.
인숙과 봉환은 함께 몸이 흔들리우며 나라니 앉어서 큰 길 로 나간다. 지나가는 사람이 언뜻 보기에는 의초좋은 두젊 은 내외가 일가집에 경사나 있어서 동부인을 하고 가는 호 강스러운 행차로 알기도 쉬우리라. 그러나 인숙과 봉환은 아직도 호적부에 부부로 나라니 붙어있는 이름까지 붉은 줄 로 에워지는 조금전인 즉 법률상으로도 갈러서서 아조 남이 되려고 나라니 자동차를 타고 큰길을 달리는 것이 결혼한지 십여년만에 처음겸 마지막으로 명색 동부인이라고 해보는 것이었다. ××궁의 후원에서 가치 거닐어 본것과 삼청동집 뒷동산으로 가치 올라가서 동경갈 노자를 주든때 밖에는 함 께 행보를 해본일이 단한번도 없지 않었든가.
부철의 호적계 창구앞에서 같은 걸상에 나라니 앉어 기다 리는동안 인숙은 들락 날락 하는 사람이 제얼굴만 들여다 보는 듯 창피해서 머리를 폭 숙으리고 있으면서도 (형식이란 다 무엇인고? 종이 한 장으로 사람의 한평생을 얽어매고 풀어 놓고 하다니) 하니 세상만사가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다.
(남녀간의 애정은 무엇으로 얽어매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령상 교통은 무엇으로 잇고 끊고 할 수가 있노?) 하니 제손으로 꾸며논 형식과 법률에 제몸이 옭히고 구속 을 받는 인간들이 봉환이와 같이 가엾기도 하였다. 그러다 가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하느라고 우리 부모가 혼인이라고 시 켜 주섰든가) 하니 하늘을 우러러 한바탕 남자처럼 껄껄걸 웃고 싶도록 모-든 것이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한참만에 까만 사무복 토수를 끼고 노랑 수염을 꼬아 올린 호적계원은 두사람을 불러 세우고
"당신이 정말 이혼에 동의를 했소? 두사람이 사실로 협의 를 했느냐 말요. 이게 당신의 친필이요?"
하고 캐여묻고 뒤를 다지고 하는대로 인숙은
"네 네"
하고 입속으로 대답만 하였다.
그전날 봉환의 일이 난 신문을 돌려보고 이야기 거리를 삼 던 호적계에서는 봉환이가 혼자 온 것을 의심하고 퇴ㅅ자를 놓았든 것이다.
이혼계가 접수된후 두사람은 부청앞에서 갈러섰다. 작별의 인사 한마디도 없이 서로 한번 돌려다보지도 않고서-.
아침 해빛에 뿌-옇게 번득이든 전차ㅅ길의 두줄기 아득한 평행선(平行線)은 푸른 하늘에 걸친 은하수(銀河水)인가. 직 녀는 서으로 견우는 동으로 헤어저 간다. 무형한 오작교가 소리없이 끊어지자 가슴을 조리던 상사의 꿈도 깨여지고 칠 월칠석이 일년에 열번 스무번 온들 두 번 다시 인연을 맺기 어려운 것이 옛날로부터 나려오는 전설이 아닌 인간 세상의 사실이요 또한 그네들의 숙명(宿命)이었거니 구지 이별의 눈 물로 녹이다 남은 간장을 마저 짜내인들 무엇이 시원하랴.
철없는 봉환이가 인숙을 '직녀성'이라 불른것도 짧은 여름 밤의 한낱 희롱에 지나지 못하였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