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망

편집

"아무도 못가봐서 얼마나 섭섭했우?"

인숙은 누구보다 먼저 나와마지며 웃으면서 봉희의 졸업장 을 받어들었다. 그러나 그우슴은 억지로 짓는 부자연한 우 슴이었다.

봉희는 잠잫고 아버지가 누은 방으로 들어갔다. 채수염에 신수가 조키로 유명하든 아버지는 딴 사람처럼 얼굴이 변하 였다. 보기 흉하게 삐뚤어진 입모습을 따러, 반백도 더된 기 다린 알엣 수염은 가을바람에 불려서 이리저리 얼크러진 시 들은 잔디풀 같다고 할가. 더구나 왼편 팔과다리에 힘쭐이 풀리고 감각을 잃어서 죽은 사람의 수족과같이 척 느러트리 고 어머니에게 상반체를 기대고 누은 아버지의 모양! 넘우 나 비참하게도 변한 아버지를 한참이나 말없이 나려다 보는 딸의 눈에는 눈물이 괴였다. 무슨 까닭으로 반신불수까지 되었는지 그 리유를 방바닥에 방울 방울 떨어지는 눈물은 어제까지 느껴보지 못하든 골육의 지정에서 울어 나는 효심 의 결정이었다.

(나 때문에 아버지가 저모양이 되섰구나) (저러다 세상을 떠나시면 내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 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이 들자 봉희는 모든 불행의 전책임이 저에게 있는 듯 비극의 주인공인 아버지의 얼굴을 바로 볼수도 없 거니와 아버지만치나 절망을 하고 등신같이 남편을 붙들고 앉인 어머니의 얼굴도 참아 마주 볼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손등으로 눈을 부비고 선 딸을 한참이나 물끄럼 이 처다보더니 무어라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듯 한다. 봉희는 그 말을 알어 들을수가 없어서 코소리를 내어

"네?"

하고 알옛목으로 귀를 기우렸다. 어머니는

"어떤 말슴은 당최 알어들을수가 없단다"

하고는

"뭐라고 허섰어요? 좀더 크게 말슴을허서요"

하고 남편의 입에다가 밧삭 귀를 댄다. 자작은 무엇을 달 라는 듯이 딸에게 바른손을 내밀며

"조 졸업장 좀 보자"

하고 간신히 얼버무리는 소리를 어머니가 다시 통역을 하 듯 한다. 봉희는 제방으로 가서 방구석에 던젔든 졸업장을 들고와서 아버지의 눈앞에 펴들었다.

"응....."

하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삐뚜러진 입모습을 끄러올려 웃는다. 그웃는 표정은 울려고 할 때에 움즉이는 근육과같이 실룩실룩 한다. 봉희는 간신히 참고 섰든 우름 이 복바처 올라서

"아버지!"

하고 폭 엎드리며 써늘한 아버지의 불인한 손을 잡었다.

그와동시에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저 때문에 이렇게....."

하고는 터저나오는 우름으로 말끝을 맺지 못한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친아버지가 아니면 다 죽게된 사람이 뉘라서 내 졸업장을 보자고 할가 내가 넘우나 지나치게 반 역을 하야서 그 때문에 동풍까지 되어 피만 식지않은 송장 이되여 누섰것만 조금도 내 탓을 허지않으시는 아버지 도리 어 졸업시험을 잘못보게 한 것을 미안히 생각하시고 그래도 낙제를 하지않은 것을 기뻐해주시는 아버지, 아아 우리 친 아버지밖에 어느사람이 나의 잘못을 이다지도 너그러히 용 서 해 주실가) 하니 봉희는 아버지에게 대해서 무한히 죄송하고 감사한 생각이 들어서 감격에 넘치는 우름으로 온몸이 떨렸다. 아 버지 역시 감회깊은 듯이 입속으로 알아듣지 못할소리를 하 여 성한손으로 딸의 머리와 들먹거리는 등을 어루만저 준다.

"아버지! 아버지의 병환만 나신다면 무슨 말슴이든지 듣겠 어요! 저헌테는 어떠헌 불행이 오든지 다시는 제고집을 세 지않겠어요"

하고 봉희는 우름을 섞어가며 아버지에게 항복을 하고말었다.

봉희가 제방으로 돌아와보니 밤새도록 짜다가 책상밑에 꾸 그려둔 '짜켙'이 반이나 더 짜젔다 봉희는 하도 신기해서

"아이 이것봐. 누가 이렇게 많이 짜놨을가"

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와 봉희는 소매없는 짜켙 으로 얼굴을 부비며 우는데 인숙이가 소리없이 들어왔다.

봉희는 인숙의 손을 붙들고

"새언니, 난 죽지두 못허구 살지두 못허겠구려"

하고 털실 뭉텡이를 세철이 대신으로 어루만지며

"이이 때문에 아버지에 뜻대로 나한몸을 희생헐수도 없구.

아버지의 병환을 조곰만 덧들렸다간 내가 아버지를 돌아가 시게 허는 셈이니 이를 어떡허면 좋단말요?"

하고 흐느낀다. 인숙이 역시 눈물을 깨물다가

"할머님께서 새달 초아흐렛날로 택일까지 해보내신건 몰으 는구려?"

한다. 그말에 봉희는

"뭐요? 새달 초아흐렛날?"

하고 부르짖더니 끝까지 저의 의사를 무시하고 여름송장처 럼 하로바삐 저를 치워버리려는 어른들의 횡포에 다시금 반 역의 피가 끓어 올랐다. 눈물에 어룽진 얼굴이 새빨애 가지고

"난 조곰 아까 아버지 병환이 나 때문에 나신것같어서 무 슨 말슴이든지 다 듣겠다구 했지만 할머니가 미워서래두 그 -예 내맘대루 허구야 말테요!"

하고 입살을 깨문다. 인숙은 잠잫고 짜켙을 들어 소매를 짯키 시작하다가 저역시 무슨 결심을 단단히 한 듯이 처음 으로 싀누의의 혼인문제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한다.

"아까 나두 창밖에서 자근아씨가 허는말을 들었다우. 그렇 지만 아버님 병환 때문에 자근아씨가 희생이된다는게 될뻔 이나 한말이요. 당장 보기가 딱허니깐 따님된 도리에 그런 말까지 나온줄은 알지만 자근아씨가 그병신 헌테 싀집을가 면 중풍이되신 어른이 금방 일어나실줄 아우. 여러해 약주 를 과허게 잡숫다가 내력으로 풍이 동허신거지 왜 하필 자 근아씨가 싀집을 안간대서 반신불수까지 되신줄 알우?"

하고 질문하듯 하더니 무릎이 마주 닫도록 싀누의의 앞으 로 닥어앉으며 매우 흥분해서

"그럼 우리들은 어른들의 병환 때문에 희생이 되는셈이구 려. 겨우 열살남짓한 내가 한번 보지도못헌 로인네의 병환 때문에 이리로 싀집을 오지않었우? 입때까지 말을 않어구 지냈지만 나는 희생을 당허지 않은줄 아우? 내가 오빠헌테 싀집을 와서, 아-니 이댁으로 붓잡혀 오든 날버텀 오늘날까 지 얼마나 속을 썩히고 살어온줄 아우? 차라리 희생을 당허 구 말어버리는게 낫지, 그래 이런 결혼생활이 세상에 어딧 단말요. 나헌테 털끗만헌 자유가 있오, 그나마 남편의 사랑 이 있오? 참정말 복순이 말맛다나 이집의 문서없는 종이지 뭐요?"

하고 싀집사리 근십년에 싸이고 쌓였든 불평을 토한다. 봉 희는 고개만 조금씩 끄덕여보이며 올케의말에 동감인뜻을 표현하면서도 무어라고 할말이 없는 눈치다.

인숙은 한마디로 결론을 짓는다.

"나처럼 나이가 어려서 아무것두 몰랐으면 몰으지만 자근 아씨는 벌서 언약까지 단단히 헌사람이 있는데 그럴리는 없 겠지만 그이가 붙잡혀간 동안에 다른데로 혼인을 헌다면 한 번 박씨헌테 받친 정신상 정조를 깨트리는 셈이 아니요? 더 군다나 전정이 만리같은 젊은 사람이 둘이나 구도덕에 희생 을 당허는게 아니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자기는커녕 남 헌테까지 못헐 노릇을 허게된다면 그런 죄악이 또 어딧단말 요"

하고 봉희가 정말 문열이에게로 싀집을 가려고 결심을 고 쳐하기나 한것처럼 간곡히 타일르듯한다.

봉희는 인숙의 말을 듣는동안 끝까지 어른들과 싸워나갈 용기를 얻는동시에 (그런줄까지는 몰랐더니 새언니가 여간이 아니로구나) 하고 속으로 혀를 내돌렸다. 저보다 나이도 많고 몯느것을 참어 오느라고 말없는중에 속도 무진 썩혔거니와 아모리 다 년 복순의 영향을 적지아니 받었고 학교에도 다니며 남편관 게나 결혼문제에 관한 서적도 저보다 많이 읽었지만 아직도 모든 범절이 구식 가정부인의 탈을 벗지못한 올케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올줄은 몰랐었다. 그의 사상이 저보다도 한 거름 앞을선것도 사실이였다. 더구나 냉정하게 앞뒤일을 바 루재일 리지력(理智力)이 부족하고 감정에만 움즉이기가 쉬 운 저보다는 인숙이가 몇곱절이나 사물에 밝고 속마음이 결 곡한지 몰랐다.

봉희는 새삼스러히 올케에게 감복하면서

"새언니, 난 참 정말 어떠허면 좋겠우?"

하고 사뭇 매어 달리면서 마지막으로 응원을 청한다. 인숙 은 짜켙 짜는 손을 여전히 놀리면서

"글세, 나두 이걸 짜면서두 쉴새없이 생각을 해봤는데 당최 좋은 생각이 나서지를 안는구려"

하고 겸사하듯 하고나서는

"난 이럭했으면 좋을가 허는데 자근아씨 생각이 어떨는지 몰라서....."

하고 뒤를 깐다.

"어서 말을 해줘요 각갑해 죽겠구려. 내 꼭 새언니하래는 대루만 하께"

하고 봉희는 조급히 달려든다.

"아무튼 의견으로만 들어두우. 첫째 박씨하구는 어떻게 든 지 약속대로 직혀야해요 그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구 나중에 가만있을줄 아우? 속으로는 자근아씨를 여간 열렬하게 사랑 하는게 아니지만 시침을 딱 떼고는 자근아씨헌테 편지를 먼 저 받었지요. 사랑한다는 고백까지 받고도 감지덕지해 허지 를 않구 떡 버티구 앉어서 밥짓는 연습까지 시키는걸 봐요.

여간내기가 아니거든. 그이가 왜 일부러 자근아씨헌테 속을 뽑히지 않구 무뚝뚝하게 구는줄 아우. 곱게 자라난자근아씨 를 고생시키게 되면 남편으로서 코큰 소리를 못하구 머리를 들지 못할테니깐 미리부터 아주 다질러 두는수단 이거든요.

어려서 버텀 고생두 많이 했겠지만 그렇게 엉뚱 허구두 튼 튼한 사내는 보기 드물걸. 그까짓 재물이야 있어서 되려 더 러울 때가 많지. 나같으면 손을 마주잡구서 버럭질을 해먹 구사는 한이 있드래도 한평생 맘만 변하지안는 남편허구 살 구싶습니다"

하고는 살짝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인숙은 다시 말을 이어

"그러니까 여차직허면 같이 벌어먹구 살 작정을 하고 연습 과에를 들어가라구 단단히 부탁을한 사람의 말을 쪼차야만 해요. 방수끄린 말이지만 먼저간 남편의 유언을 직히는 심 만 치구료"

"그렇긴 하지만 택일인가 뭣인가 해보냈다는게 한달두 못 남었으니 그동안이 걱정이 아니요"

"내말을 들어봐요. 지금 파혼을 하자구 뻣댓다가는 참정말 큰일이 날테니깐 정혼한건 박씨가 나올때까지 내버려두구 무슨 핑계를 하든지 혼인만 래년까지 슬 슬 밀어 나가면 그 동안에야 묘한 방책이 나설게 아니요. 박씨가 그때까지는 나올테구 복순이라두 먼저 나오면 여간도움이 되지 않을텐 까......"

"그럼 할머니 버텀 아버지 병환이 좀 나시거든 혼인을 하 두룩 하자구 슬금 슬금 구슬려 볼가 첨부텀 아버지가 서둘 르시든건 아니니깐...... 그러면 어떻겠우?"

"그건 자근아씨 재주껏 해보구료. 아주 안될일두 아니니.

그렇지만 어떻게든지 박씨를 한번 맞나보구 내통을 해둬야 하지 않겠우?"

"그러길래 내일 이걸 가지구 경찰서로 가볼테요. 면회를 식 혀달라구 막 떼를 써볼 작저이요"

하고 봉희는 세철을 위해서는, 결혼을 연기 시키기위해서 는 물불을 사라지 않을 결심을 보인다.

아츰 뒤에 봉희는 커다란 책보에 짜켙을 싸들고

"남의것을 전헐께있어서 동무집에 잠깐 다녀오리다"

하고 경찰서로 갔다. 인숙이가 몰래 중문깐까지 쫓아나오며

"조심 조심허구 빨리 다녀오우"

하고 두 번세번 당부를 하야서 등뒤가 매우 든든하였다.

봉희는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의 붉은 전등밑을지나 파수보 는 순사의 심상치 앉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무서운줄 을 몰랐다. 우층으로 찾어 올라가서 고등계실의 문을 거침 없이 밀치고 들어섰다. 눈찌 사나운 형사들이 사무상을 에 워싸고 쭉 벌려 앉었는데 한가운대의 둥근 의자에는 주임인 듯한 경부가 어디를 다녀들어 왔는지 정복을 입고 앉어서 담배를 태우다가 색달은 방문객의 알에우를 훌터본다. 주임 과 눈이 마주치자 봉희는 뚜벅뚜벅 그앞으로 닥어오며 학교 의 직원실로 들어가 교장에게나 인사를 하듯이 꼬박이 례를 하였다. 주임의 왼편에 앉었듯 차석인 듯한 상고머리가 범 인을 취조하느라고 밤을 새웠는지 토끼눈 처럼 새빨갛게 충 혈이된 눈으로 봉희를 쏘아보며

"누구야? 어째 왔어"

하고 커다란 책보를 부등켜 안고 선 미끈하게 생긴 여학생 을 노려본다.

"전 윤봉희라구 허는데, 저 박세철이란 학생이 여기들어와 있지요? 그학생허구 잠깐만 면회를 시켜주서요"

하고 단도직입으로 청을하였다.

"박세철?"

"네, 전기학교학생 말슴이야요. 왜 저번에 사회과학 연구회 사건으로 붓잡어오지 안흐섰어요?"

봉희의 태도가 매우 대담한데 주임이며 형사들까지 호기심 이 생겨서 일제히 머리를들고 봉희를 주목한다.

"이리와"

하고 주임이 봉희를 불러 제앞에다 세운다. 그리고 봉희의 신분이며 무엇허러 들어온 것을 자세히 캐여뭇는다. 주임은 봉희가 윤자작의 영양인데 속으로 놀라며

"나허구 약혼헌 남자야요"

하고 바른대로 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뭐? 약혼헌 남자!"

주임의 눈은 둥그래젔다.

"그게 정말인가?"

"누가 그런걸 거짓말을 허겠어요?"

봉희는 도립따 질문하듯 하였다. 주임은 봉희가 세철이와 약혼까지 한 경과를 미주알 고주알 캐여물은 뒤에 차석에게 눈짓을 해서 취조실로 데리고 들어가 무엇인지 수근거리고 나오더니

"그럼 특별이 면회를 시켜줄테니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두 좋와"

하고 일부터 놀리는듯한 우슴을 띠워보인다.

거진 십분동안이나 취조실에서 기다리는중에 봉희는 마진 편 또아를 열고 들어서는 세철의 모양을 상상하면서 머리끝 에서부터 발끝까지 경련(痙攣)을 일으킨것처럼 전신의 신경 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러면서도 (나버덤 몇곱절 더한 고초를 겪는사람을 대하는데 조금도 언쟎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리고는 (어떻게허면 매우 반가워하는 표정을 짓고 웃으면서 그이 의 얼굴을 대할가) 하고 벽에 거울이 붙었으면 그 표정을 연습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딱마주 대하면 무어라고 말을끄낼지 몰 라서 될 수있는대로 울렁거리는 가슴을 갈어 앉치고 조금이 라도 위안이 될말을 하리라 하면서 손에땀을 쥐고 섰는데 마진편 '또아'가 펄석 열렸다.

봉희는 부지중에

"세철씨......"

하고 나지막하게 부르짖으며 문앞으로 닥어섰다. 형사에게 등을 밀려서 들어온 세철은, 원체 면도도하지 않는사람이지 만 살쩍과 턱에 털이껌엏게 났는데 검붉은 얼굴에는 혈색이 없다. 그 커다란눈이 천만 뜻밖에 봉희를 발견하자 반가운 빛이 그눈동자에서 쏟아지는 듯, 다리 하나를 조금 절늠거 리며 앞으로 말없이 닥어오더니 봉희의 손을 덤썩 쥐고 혈 관이 떨리도록 굳게 굳게 악수를한다. 봉희는 잡힌 손이 으 스러지는듯하건만

"왜 다리를 절으서요?"

하고 대뜸 묻지 않을수 없었다.

봉희는 알었다는 듯이 눈을아래로 깔며

"졸업두 못허시고......."

하는 말속에는 '나혼자 졸업을 해서 여간 미안치가 않다'는 말이 포함되었다.

"언젠 졸업장 타려구 학교엘 댕겼나요"

세철은 그까짓것쯤이야 문제도 안된다는 듯 밤송이 처럼 뻣뻣하게 일어선 머리를 흔든다. 봉희는 (이때를 놓치면 안되겠다) 하고 용기를 내여 세철의 앞으로 한걸음 닥어서며

"저 집에선 어른들이 맘대로 혼인을 정허구 음력내달 초아 흐랫날로 택일까지 해놓섰는데...."

하는데 바루 문밖에섰는 차석이 들어서며

"그런말은 일이없다 시간이 다 됐어"

하고 안경테 밖으로 두남녀를 노려본다. 세철은

"알겠어요!"

하고 한마디를 남기고 등을 밀려 나가려한다.

그들은 무슨 단서나 잡을까하고 일껀 면회를 허락해주기는 했으나 그런말은 피차에 비치지도 않어서 도리어 속은세음 쯤 되었는데 봉희의 혼인문제쯤은 사실 들을필요가 없었든 것이다. 봉희는 어쩔줄을 모르고 세철의 뒤를따러 나서려 하다가.

"참 이걸......."

하고 한구석에 비켜놓았든 '짜켙'을 싼 책보를 들고 복도에 서 세철에게 수갑을채우는 형사의앞을 가루막었다.

"안돼 가지고가!"

형사는 소리를 꽥 질으며 봉희를 뒤로 떠다밀고 문을 탁 닫어버렸다.

봉희는 며칠밤씩 새워가며 정성껏 짜가지고 간 것을 당자 를 눈앞에 보고서도 전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분하였다. 그 러나 세철이가 불원간 나올수 있다고 자신있게 한 말한마디 에 적지아니 안심이 되어서 (그저 몸만 성하게 있다가 나옵시사) 하고 속으로 기도를 올리면서 몇번이나 경찰서 뒤에 있는 검정판장의 유치장편을 돌려다보고 바라다보고 하다가 전차 를 탔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도록 조바심을 하다가 인제는 마음이 턱 놓여서 동문집에를 들르고싶은 생각이 들 어 중간에서 전차를 나렸다. 커다란 책보를 다시 끼고 집으 로 돌아 가기고 싫였든 것이다.

동무집에를 가서도 전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이야기를하다 가 돌아올수가 있었다.

점심때가 겨워서 집으로 돌아와보니 집안식구들은

"아 어딜 갔다가 인제야 들어오는냐"고 봉희를 에워싸고 야단들이다.

(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봉희는 눈이 동그래젔다. 어머니는 신도 못신고 마당 으로 나려오며

"네가 나간지 얼마 안돼서 별안간 형사들이 서넛이나 달려 들더니 네가 쓰는 방으로 찾아 들어가서 한참이나 뒤지구 갔다. 온 어떻게 놀랐는지. 요행으루 아버지는 모르섰다 만..... 대체 이게왼일이냐?" 하고 아직도 몸이 떨려서 머리 를 체머리 흔들듯한다.

봉희는 (옳지 나헌테나 무에 있나허구 그새에 수색을 허구 갔구나) 하고 잠잫고 제방으로 나려갔다. 압수를 당한 비밀문서는 쓰다가 내버린 일기책 한권과 세철이가 맨처음 멋대가리없 게한 편지한장뿐. 사진도 서로 교환한 것이 없으니 장불을 잡힐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까지 헛물을 켜러 왔었군"

하고 봉희는 픽 웃고 말건만, 그동안 인숙은 봉희마저 제 발로 걸어들어가서 가치기나 하였나 보아서 어떻게 애절초 절을 하였는지 얼굴이 쪽 빠진 것 같다. 봉희에게서 대강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젠 숨을 돌리겠구려. 집에선 영문도 모르고 집행을 당할 때버덤 더 야단이 났었다우"

하면서 간신이 마음을 가러앉첬다.

그날밤 거진 자정때나 되어서 인숙은 다른일로 시누의 방 으로 몰래나려왔다. 오래간만에 다리를 뻗고 잠이든 시누를 깨기가 미안스러워서 머리맡에가 한참이나 앉었다가

"자근아씨, 자우?"

하고 봉희의 어깨를 조금 흔드는체 하였다. 봉희는 깜짝놀 라 눈을 번쩍뜨고

"그저 안잣수?"

한다.

"걱정꺼리가 또하나 생겨서 당최 잠이 안오는구료. 하두 경 황이 없이들 지내서 자근아씨헌테 물어본다면서 그저 말을 안했었는데........"

하고 인숙은 잠시 말을끊는다. 봉희는

"또 무슨 걱정꺼리가 생겼단말요"

하고 벌떡 일어앉는다.

"다른게 아니라 장발이가 두 번짼가 헌 편지 있지않우? 급 허면 그걸 옵바헌테 뵈우구서 의론을 해볼려구 의거리 맨밑 바닥에 감춰 뒀었는데 아 그게 없어젔구려. 혹시 자근아씨 가 없애지나않었수?"

하고 은근히 묻는다.

"아이 내가 언제 새언니 세간에 손이나 대는걸 봤수? 없어 젔으면 고만이지 그까짓게 무슨 걱정이 된단말요?" 하고 핀 잔 하듯하였다. 그러나 인숙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재수가 없으면 별게다 말성을 부린다우. 그래서 자근 형님 의 옷에 묻어가지나 않었나허구 말허리싫은걸 물어봤드니 "

난 모르네. 그렇게 소중헌편지면 찬찬한 자네가 아무데나 뒀겠나" 허구 새침스럽게 딱 잡어뗍니다만 암만해두 말허는 눈치가 수상해요"하고 제방으로 도라갔다.

한편으로 인숙은 봉희에게도 표시할 수 없는 고민이 있었 다. 그것은 병없는 젊은 몸으로, 더구나 원앙의 꿈을꾸어 보 든때가 아득한 옛날같것만, 그다지 그리워하든 남편과 조석 으로 대하야 공규(空閨)를 직히는 것은 아니면서 실상은 철 상과부와 달음없는 외로움이 육체적으로도 심하였다. 억제 할 수 없는 본능을 감각이 없는사람처럼 참어가기가 하로이 를 아니고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봄비소리가 정다운 사람의 발자최 같이 창밖에 들리는 저녁이나, 요염한 여자 의 눈섭가같은 잔월(殘月)이 머리맛 영창을 물들이는 새벽녘 에, 인숙은 그 몇번이나 남편을 지척에 두고도 그 품에 안 키지 못하는 설음에 한숨을 지었든가. 홀로 덮은 이불자락 을 자근자근 깨물며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든가.

지각없는 남편은 제몸에 병이 있는생각은 아니하고 몇번이 나 동침하기를 강경히 요구하였다.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모든 것을 조심을 하다가도 이일 저일에 화가 난다고 위스키-를 사다가 감추어 두고 틈틈이 병나발을 불어 흥분 이 되기만하면 주야를 불구하고 인숙의 손을, 혹은 치마자 락을 잡어 깔었다. 그럴때마다 인숙은

"노서요 그러면 못써요. 번연이 병에 해로운줄 아시면서도 그렇게 참을성이 없으시면 어떻게해요"

하고 일부러 맵살스럽게 남편의 손을 뿌리첬다. 남편은 거 절을 당할사록

"제-기, 내여편네를 내맘대루 못헌담."

하고 '사요꼬'처럼 나근나근하고 화류계 게집같이 착착 부 닐지를 않는다고 성화다.

"조선계집은 딱딱허기가 나무때기 한가지야. 감정이없어"

하고 골을 더럭내며 '너아니면 세상에 계집이없느냐' 는 듯 이 안해를 떠다밀기도 여러번 하였다. 봉희를 세철에게서 다려오든날 밤에는 집안이 발칵 뒤집히듯 경황이 없는중에 도 술이취한 봉환은 사뭇 겁탈을 하려는 듯이 인숙에게로 덤벼 들었다. 인숙은 반항을하다가 정말 성미가 발끈하고나서

"내가 기생인줄 알아요? 이경황없는중에 왜 그만걸 참지못 해요?"

하고 톡 쏘아부치기는 했으나 미친 듯이 달려드는 남자의 폭력에 눌려 자반뒤집기를하다가 발딱일어나 큰동서의 방으 로 빠저나가서 간신히 모면을 하였었다.

첫재 인숙은 사요꼬란 매춘부같은 계집에게서 옮은 그 못 된병을 백옥같이 깨끗한제몸에 옮기고 싶지가 않었다. 병중 에도 페병이나 같으면 공기로 전염이 되는줄 알면서도 사랑 하는 사람을 위하여서는 희생적으로 간호를 해주다가 전염 이 되어서 정사와 달음없는 죽엄을 한다면 도리어 본망일는 지 몰은다. 그러나 방종한 남편의 화류병이 영낙없이 옮을 줄 알면서 순종을하다가 터놓고 치료도 하지못하는 고통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뿐아니라 단 한번이라도 랄선을 하였 다가는 옹이에 마디로 임신을 할는지도 몰은다. 그러고보면 과연 어떻게 될것인가.

"아아 그 두눈이 뽀얗게 멀어가지고 바둥거리는 어린 것!"

하고 인숙은 불으짖으며 몸서리를 첬다. 그러나 남편에게 는 그 결과가 무섭고 겁이 나서 말을 들을수가 없다는 말은 참아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그럴사록 봉환은

"저건 병신이야. 불감증(不感症)에 걸렸서. 그렇지않으면 남 편을 옴쟁이나 담쟁이로 아는게지"

하고 눈을 흘리고 꾸짖고 하다가 나종에는 열이 나면

"흥 저꼴에 딴 생각을 먹는게지. 어디 네가 얼마나 쌀쌀하 게 구나 보자"

하고 무슨 복수나 하려는 듯이 니를 갈며 별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인숙은 한집에 있으면서 자리 한번 제손으로 펴고 개지를 않는 남편의 시중을 들지않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 자신의 애욕을 참는것보다도 남편의 눈쌀을맞고 심하면 폭행까지 당해가면서 그때 그때를 모면해 나가기란 여간한 고통이 아니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밤이었다. 시어머니까지 알어누어서 일은 아침부터 밤중까지 시아버지 병구안을 하느라고 잔거름을 치고 온몸이 솜같이 풀려가지고 잠간 쉬려고 제방으로 들어 왔다. 요행으로 남편이 잠이 든 것을 안심하고 옷매무새를 느추고 그곁에 쓰러젔다가 꼽박잠이 들고말었다...한반시간 쯤뒤에 인숙은

"앗!"

소리와함께 소스라처 깨여사지를 옴치라트렸다. 그러나때 는 벌서 늦었었다.

인숙은 넘우나 분해서 치를 떨었다. 비록 잠시라도 저의 부주의로 당한일은 호소할데가 없지만 그때처럼 남편이 미 워보기는 처음이었다. 남편이라느니 보다도 즘생같은 욕심 을 비열하게 도적질을 해서라도 채우고야마는 남자라는 동 물이 미웠다. 기어이 정복을 한 것이 자못유쾌한 듯 씨근벌 떡거리며 저를 나려다보는 그 사람답지 않은 얼굴에 침을 탁 배았고 싶었다.

한순간이 지난후 인숙은 발딱 일어나 남편과는 반대방향으 로 돌아앉어서 피가나도록 손까락을 깨물었다.

(내가 강간을 당한 것이 아닌가? 아무리남편이란 일홈을가 진 남자에게라도 내마음에없고 더군다나 잠이든 사이에 그 러한 야만의 행동을 한 것이, 남편이 정당한 안해에게 대한 대접일까? 돈에 살을 파는 계집에게도 그런짓까지는 참아못 할것이 아닌가?) 하니 무슨 보복이나 한 듯이, 또는 저헐일만은 다했다는 듯이 돌아 누어서 담배를 피우는 봉환에게 달려 들어서 기 다란 머리를 쥐어뜯고 그빤들빤들한 얼굴 가죽을 박박할퀴 어도 시언치 않을것같다.

(한사람의 교양있고 꺠끗한 여자가 부부라는 미명알에에 그 인격을 무시당하고 그 정조까지 화류병환자에게 짓밟혀 도 괜찮단말인가. 오오 이것이 부부제도냐? 과연 이것이 결 혼생활이냐 이러한 굴욕을 당하고도 호소쪼차 할수없는 것 이 가정이란 감옥속에 가처있는 조선의 여자란 말이냐) 인숙은 방바닥에 이마를 부비며 소리를 내여 울었다. 그러 면서도

"이 횡포헌놈 같으니라고. 어쩌자고 내게다 이따위짓까지 헌단말이냐. 누구를 업신역이고 누구헌테 그못된병을 옮겨 주려구, 이 제욕심밖에 몰으는 허울조흔 야만아!"

하고 봉환에게로 대여들며 실컨 폭백이라도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 더욱 싫었다. 실상 어려서부터 인숨에 저젔고 인 종(忍從)의 바윗돌에 짓눌려온 인숙은 아모리 분하여도 입에 더러운 욕을 담거나 양반의딸이요 귀족의 며누리인 체면과 습관을 깨트리고 행낭어멈같이 상스러운 행동은 취할 수가 없었든 것이다.

남편의 옆에는 잠시도 더 있기 싫은 생각이 들어서 인숙 은, 큰동서의 방으로피해가려다가 누구에게나 제얼굴을 보 이기도 싫여서 대청으로 돌아 뒷겻마루로 나갔다. 달도 없 는 깊은밤이었다. 별빛하나 빛최지 않는 후원은 시껌언 구 름짱같은 어둠이 아물아물 한다. 가꾸지 않은 향나무와 노 관주나무의 윤곽은 이구통이 저구통이에 커다란 즘생이 응 승그리고 앉인것같기도 하고 한참 들여다 보려면 입을 딱 버리고 사람을 삼킬 듯, 엉금엉금, 기어 오는 듯.

인숙은 그 어둠속에서 쪼그리고 앉어서 별빛조차 흐린 하 눌을 우러러보며 제가 이제까지지내온 일과, 또는 현재에 겪고있는 결혼생활과 또는 앞으로 닥처올 운명을 곰곰 생각 해 보았다. 흥분되였든 머리가 식어 올사록 앞뒤를 냉정히 따저볼사록, 눈앞에서 아물거리는 어둠과같이 제 장래가 어 두웠다. 어찌하였으면 좋을지 앞이 캄캄할뿐. 저의 일생은 잘났으나 못났으나 남편이란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처 지에 있는줄을 몰으는 것은 아니면서도, (왜 여자 혼자는 살수없나? 남자의 기생충이 되지않고는 저대로 벌어먹고 살수가 없나?) 하는 의문이 새삼스러히 생겼다.

(사랑은 있고 없고간에 남에게 모-든 굴욕을 당하면서 끽 소리도 못하고 참는 것은 오직 의식을 의뢰하기 때문이 아 닌가. 경제적으로 따로 살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책에서도 보고 복순에게서도 듣든 말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다가 (학교에나 억지를 쓰고그냥댕겼드면)하고 몇번이나 뉘우첬 다. 그러다가 (아무튼 얼마동안 따루 있어야겠어. 모레 저녁이 아버지 제 사니까 그핑계를 허구 삼청동에나 가있다 올가 친정이라구 같은 성안에서 반년이나 소식을 몰으구지내니.......) 하고 남편과는 당분간 별거를 할 궁리를 하였다.

남편의 병이 완치 될 때까지 명색뿐인 친정에라도 가있고 싶것만 인숙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가겠다는 말이 나오 지를 않었다. 시어머니 마저 앓어 누었는데 밥ㄲ지 떠넣야 먹는 시아버지의 시중을 들사람이 없는터이라 하로동안이나 마 떠날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핑계라 도 하지 않으면 남편의 곁을떠나 볼수가 없어서, 그 기회만 엿보고 있는 중인데 제삿날 아침에는 뜻밖에 시어머니의 호 출을 당하였다.

"오늘이 너의 어르신네 제사지? 친아버지의 제사를 궐헐수 있느냐. 오래 소식을 몰라 궁금도 헐테니 가려건 저물기전 에 가거라"

하는 고마운 처분이 나렸다. 인숙은 속으로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는판에 밧사돈의 제삿날은 일깨워 들일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생각을 허섰을가 별일도 다 많 다) 하고 이상히 녁였다. 그러나 속으로만 대답을 하고 섰다가

"어머님까지 저렇게 편치 않으신데요......."

하니까

"우리걱정 까지 널더러 허라늬? 이번에 가거든 네맘대로 오래있다 와두좋다. 네 남편의 병이 종시 차도가 없는게 네 탓이 아니랄수가 없어"

하고 무정지책을 하더니 며누리의 빨개진 얼굴을 똑 바루 쳐다보며

"가서 입을 옷가지는 다 싸가지구 가거라"

하고 자못 불쾌한 눈치를 보이며 역정 비슷이 분부를 한다.

인숙은 잠잫고 돌아서 시부모의 앞을 물러 나왔다.

(옷까지 가지고 가서 오래오래 가있으라구? 내탓으로 병이 낫지를 않는다니 이런 기매킬 일이 어딧서 그럼 제사를 지 내러 가라는게 아니라 우리둘을 떼어 노려고 만만헌 나를 체면좋게 내어 쫓는게로군) 하면서도 인숙은, 뒷일은 어찌되었든 위선 별거를 하게되 는것만 다행해서 제방으로 들어가 갈어입을 옷가지를 주섬 주섬쌌다. 봉환이가 병원에가고 없는 사이 었만 (요샌 바싹 틀려서 말두 안허는 사람헌테 인사는해 뭘해.

없으면 간줄알겠지) 하고 나오기는 했으나 그래도 동서들에게는 인사한마디 아 니할 수가 없어서 큰 동서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츰 자근동 서까지 와서 머리를 마조 모으고 무엇을 쑤근거리고 앉었다 가 깜짝 놀라 떨어지며

"자네 친정에 간다지? 이번엔 오래 가있게 된다네그려?"

하고 큰 동서가 먼저 말을끄낸다. 셋재댁을 친정으로 보낸 다는 말이 미리부터 통문이든 모양이다. 인숙은

"네"

하면서도 전에는 그렇지 않든 큰 동서까지 그태도가 어름 같이 찬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까닭을 물을 수도 없어서

"그럼 다녀 오겠어요"

한마디를 하고 별당으로 올라갔다. 별당노인은 낮잠이든것 도 아닌데 손부를거들떠 보지도 않고 돌아 누어버린다.

(웨들 이럴가?) 하고 인숙은 몇번이나 고개를 외로 꼬았다. 봉희나 집에있 으면 그까닭을 물어보겠는데 어디로 몰래 빠저 나갔는지 아 침부터 집에 없었다.

다시 대방으로 들어가 시부모에게 절을 하고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여도 이번에는 내외가다 벙어리가된 듯이 말이 없 다. 안석에가 모로 기대어서 며누리를 쳐다보는 자작의 눈 은 대역부도의 죄인이나 노려보는듯해서 인숙은 그 무서운 시선을 피해 나오는데 등뒤에서 시아버지의 후유-하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인숙은 행랑계집에게 옷보통이를 들려 앞을 세우고 정말 죄를 지은사람처럼 머리를 들지못하고 나오면서도

"남편이 어른들게 뭐라고 여쭈었길래 모두들 나를보고 말 까지 허기를 싫여허나"

하고 모든 연극이 저에게 크나큰 불만을 품은 봉환이가 꾸 며논것으로만 인정을 하였다. 자가용 인력거도 없어진뒤라 인숙은 큰길로 걸어나와 좌우를 돌려다보며 전찻길을 건느 는데 지나가든 전차에서 가방을든 청년이 인숙을 바라보고 훌쩍 뛰어나렸다.

등뒤에서 다름질을 해서 따러오는 남자의 구두소리는 인숙 의 가슴속까지 쿵쿵울렸다.

"여보세요"

"..........."

"날좀 보세요"

".........."

인숙은 못들은 체하고 '아스팔트'바닥만 나려다보고 걸었 다. 그러나 그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인숙씨지요? 나얘요 장발이얘요"

장발은 인숙의 앞을 막어서며 모자챙에 손만대이고 꿉벅 하더니

"웨 그렇게 못들으신체 하구 자꾸 다러만 나세요"

하고 책망하듯 한다.

"난 누구시라구요"

인숙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조금 숙여 보였다. 하필 제 가 먼저만나게 된것도 공교롭거니와 큰행길에서 붙잡고 또 무슨소리를 늘어놓을지 몰라서 (전차를 탈가) 하고 조춤조춤 하는데 장발은 자꾸만 앞으로 닥어서며

"그동안 안녕하섰세요? 봉희씨두요......."

"네"

"봉환군은 나와있지요?"

"네"

"사요꼬라는 '모델'을 다리구 왔었다지요?"

".........."

"나는 엇저녁 차에 왔는데 그러잖어두 지금 댁으로 가는길 이얘요. 이렇게 길에서 뵈기는 의외지만 마츰 잘만났세요"

하고 '넥타이'를 만졌다. 손가방을 옮겨들었다. 하면서 허둥 대는 것이 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러자 마진편 정류장에 전차가 와 닿으니까

"난 급한 일이 있어서 타구 가겠어요"

하고 인숙은 장발의 앞을 비켜서며

"얘 어디로 갓니?"

하고 앞을서서 할끔 할끔 뒤를돌려다보고 가는 행랑 계집 애를 불렀다. 장발은 사뭇 팔을 버리고 끌어안을 듯이 길을 건느려는 인숙을 가로막으며

"내말을 잠깐만 들으세요. 어떡하면 단둘이서만 만나볼수가 하구 찾어가든 차인데 저-봉희씨가 이번에 졸업을 했지요?"

"그랬나 봐요"

인숙은 외면을하고 걸으면서도 대답만은 해던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동안에 전차는 경적을 올리며 떠나버렸다.

(이 질색할 노릇을 어떡허나. 누가보든지 하면) 하고 인숙은

"봉환씨가 지금쯤 집에있을테니 그리고 가보시죠"

하고 딱 잡어떼고 전차가 와닿는 안전지대로 올라갔다. 장 발은 인숙을 놓치면 큰일이나 날 듯이 그뒤를 바짝 다부터 서며

"나두 그방면으로 갈일이있는데 그럼 가치타구 가시지요.

윤군은 만날필요가 없으니까요"

하고 다음에오는 전차에까지 따라올라가서 인숙의 곁에가 궁둥이를 부비고 앉는다. 인숙은 (아이고 이장발귀신을 어떡하면 쫓나) 하면서도 쫓어낼 권리가 없는것만 한하였다.

"그동안 봉희씨가 다른데 어대 혼인을 정했나요? 인숙씨까 지 엽서한장 안해주시니 대체 사람대접을 그렇게 하시는법 이 어대 있세요?"

장발은 곁에사람이야 듣건말건 인숙의 귀에다 입을대고 시 비바탈을 차린다.

"그런일은 당자한테 물어보시죠. 들어앉은 사람더러 무슨답 장을 안했단 말슴얘요"

하고 인숙은 여무지게 쏘아부쳤다. 추근추근히 시키는 말 댓구를 안해주면 저혼자 더 늘어놓기 때문에 그 예방책으로 무안을 준 것이다. 그러나 그만말에 무안을 탈 장발은 아니다.

"이번엔 어떻게든지 귀정을 내려구 별르고 나온줄은 아시 겠지요?"

"아무튼 내겐 상관없는 일을 웨 쫓어오며 여러말슴을 하서 요? 난 여기서 나릴테야요"

하고 인숙은 행낭계집애가 끌어안고 앉은 옷보통이를 제손 으로 들고 겨우 두 정류장을 와서는 뛰어 나리듯 하였다.

그러나 병원에 다녀오든 봉환이가 전차 정류장 마진짝 자 동차가있는 골목에서 나오다가 주사마진 팔을 옆구리에 찔 르고 서서 장발과 인숙이가 안전지대에 마주 부터서서 이야 기를 하다가 전차까지 가치타고 나라니 앉어서 가는 것을 눈한번 깜짝거리지 않고 바라다 본줄은 인숙이가 알었을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