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지옥

편집

그후 며츨동안 인숙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아모 경이 없이 지냈다. 만사가 도시 귀찮어서 (학교엔 기를 쓰고 단기면 뭘해) 하면서도 전과같이 가지 않을수는 없었다. 공부를 계속할 생각보다도 학교에 가서 여러 학생이 북적 거리고 떠드는 틈에 끼여 수업시간에 칠판을 처다보고 필기를 하는 동안만 은 모든 생각과 고통을 잊을수가 있기 때문이다.

봉환에게 복순의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체 하기 위해서 편지도 하지않었다.

그러나 장발이란 위인이 술덤벙 물넘벙으로 주책이 하나토 없어 보이는 데그사람이 귀둥대둥전한말 만들고 철석같이 믿어야할 남편을 의심하는것은 넘우나 경솔한것도 같고 (정말 입원을 헌걸 가지고 그렇게 지렛짐작을 했으면 마른 날 벼락을 맞어두 싸지) 하는 사실에 더욱이 마음이 괴로웠다.

용환은 저의 승락이 없이 소절수를 내어 놓았다고 청직이 를 몰아 세었다.

『병이 무습 병이야. 딴짓을 허누라구 그러는게지. 제가 나 까지 속일녀구』

하고는 저역시 동경 유학 시대에『카페-』의 여급에게 홀 짝 반해서 그때도 겨울인데 친구와 외투까지 말끔 도적을 맞었다고 전보질을 해서 한목 삼백원이나 들여다가 그 게집 을 데리고 하꼬네(箱根) 어느 온천에서 열흘이나 묵고온 경 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우가 입원을 했다는것이 새빩안 거 짓말인줄 알어 차리고

『재가 보내라기전엔 한푼이래두 보내선 안돼』

하고 청직이에게 단단히 일렀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수천리 타양에서 입원까지 하였다는 놀 라운 소식을 며칠 뒤에야 청직이에게 듣고 문앞에서 황급히 들어온 자작 내외는

『어째서 진작 내게 알니질 않었느냐? 입원까지 헌걸 그대 루 내버러 뒀다가는 사고무친헌 객지에서 죽어두 모르겠구 나』

하고 펄쩍 뛰고는 사면으로 전화질을 해서 큰아들을 불러 다 세우고

『왼만허건 오늘밤차로 떠나서 봉환이를 데리구 나오너 라』

하고 당장에 청직이를 볼르더니 마누라가 감추어 두었든 저금통장을 내던지며

『냉큼 가서 삼백원만 찾어 오너라』

하고 호령하듯 서드는 품이 대단하다. 종가가 망해도 향로 향합은 남는다고 그다지 꿑녀 지내는 중에도 봉희 혼인때 쓰려고 돈천원이나 아무도 몰래 유념해 두었든것을 급한김 에 내놓은것이다.

봉환의 어머니는

『아이고 봉환아! 너마저 죽으면 어떡헌단 말이냐. 아이고 이를 어쩌나.

병원에선 사뭇 어름찜질을 해서 죽인다는데』

하고는 부처님에게 절을하듯이 방바닥을 뚜드리며 통곡을 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솟엥 보고 놀란 다고 작은 아 들을 잃은지 일년도 못되여서 제일 귀여하는 막내아들이 무 슨병에 걸닌지도 모르면서 꼭 죽어 나오는 줄만 알고 대판 으로 소동을 한다.

용환은 거짓말 전보같으니 편지를 기다려보고 떠나도 떠나 겠다고 하려다가 형세를 보니 돌이어 야단을 맞날것 같은데 때마츰 년말이라 명월관 본점을 위시로 각처 료리집에서 료 리값 독촉이 성화같것만 인제는 앞뒤가 절벽이라 사언들이 보는데 졸니기가 창피해서 신문사에는 얼굴을 내놓지 못하 는 판이었다. 그래서 (마츰 잘됐구나) 하고는 아버지의 분부대로 금방 시행을 할듯이

『네 네 오늘밤에라두 떠나야지요』

하다가 청직이가 돈을 찾으로 급한 거름을 나가는걸 보고

『잠간 게 있어』

하고 불러 세우고는

『알는 애를 데리고 나오려면 병원에는 일등에 입원했기가 쉬운데 그동안에 쓴것 허구 이등침대라두 태워가지고 나오 려면 래왕 노자허구 부비가 적지 않겠어요. 삼백원을 가지 고는 모자라겠는걸요. 만일에 불행헌 일이 생긴다면 그걸루 어림이나 있나요』

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처다보며

『한 이백원만 더 가지구가 보지요』

하고 덧거리질을 하였다.

용환은 그돈 오백원을 받어가지고 손가방 하나를 들고는 그날저녁 특급으로 청직이가 보는데 경성역을 떠났다. 그러 나 룡산역에서 나려서 한시간도 못되여 도착한곳은 동경이 아닌 동대문 밖첩의 집이었다.

싀부모들이 서둘르는 사품에 인숙은 정신만 더 빠젔다. 봉 환이가 객사를 해서 형이 시체를 가질러 가기나한듯 집안이 뒤숭숭하다. 인숙은 저역시 청상과부가 된것같은 방수끄리 운 생각까지 슬그머니 들어서 (기집을랑 열씩 스물씩 보드래누 제발 병이 나있다는 기별 이나 왔으면) 하고 동경서 편지가 오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그러 다가도 (일본 계집애 허구 지내는걸 큰 형님헌테 들킬테니 저를 어째) 하고 형제가 마조칠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니 제가 즉접 하 는거나 진배없시 조마조마하였다. 더구나 멀쩡한 거짓말 병 보인것이 탄로가 나서 평지에 풍파를 일으킨것은 둘재요 부 모나 장형에게 신용을 잃어서 학교에도 못다니게 되여 집으 로 꺼들여오면 아주 발러꾼이가 되여 술이나 마시고 돌아다 닐것이 미리부터 큰 걱정거리였다.

봉희는 부모들이 너무 유난스럽게 구는것을 보고 (흥 연극이 정말이 되는군) 하고는 집안일은 도모지 몰은다는듯이 학교로 가서는 어론 때까지 스켓을 하다가 돌아왔다. 자근동서는 그날 성묘를 다녀온뒤로 독감 차례가 가서 집안에서는 굿을 허는지 떡을 허는지 물으고 머리를 싸매고 누었다.

(장발이 허구 골목에서 만나 이야기 한것을 어른들헌테 엿 줬으면 어떻거나) 하고 인숙은 적지아니 겁이 나든터이라 자근동서가 정신없 시 알어 누은 것이 돌이어 다행하기도하였다.

그러나 제남편때문에 별당로인까지 밤을 새우며 야단들인 데 학교에 가겠다고 책보를 들고 나설수가 없어서 시부모가 들어 오든 이튼날은 결석을 하였다.

오정때에야 시아버지의 아침 상을 들여다 바치고 시중을 드는데 자작은 밥을 숙늉에 말어 몃슬 뜨다가

『온 입에 깔깔해서……』

하고 상을 물렸다. 곁에 앉었든 시어머니는 상을 들고 나 간 끝엣 며누리를

『얘 이리 좀 오너라』

하고 불러 들였다. 시아버지가 지난밤 내외간에 의론한 결 과를 며누리에게 전달하려는것이다.

『너 내일버텀 학교는 고만둬라. 궁가의 며누리로 더군다 나 남편이 없는 동안에 머리를 들구서 시체공부를 헌답시구 소갈데 말갈데 없이 나다니는게 원청강 마땅치가 않것만, 그애가 하두 학교엘 들어 보내라길네 네 시어머니두 보내보 는체나 허자구 허락을 허신게다』

하고 나서 담배만 퍽퍽 빨고 앉인 마누라를 돌여다본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말을 받어

『그것두 남편이 가까이 있구 집안 형편이 전같으면 모르 겠다만 너 보다시피 우리는 문밖으로 피해 나간터에 학교란 다 뭐냐. 큰형은 포병객이라 노상 골골허지, 지근형은 제남 편 따러가지 못허구 살어있는것만 다행헌데 이 헤버러진 집 안에 그래두 노인 뫼시구 살님헐 사람이 하나나 있이야 허 지 않겠니? 그만허만 바람은 시원하게 쏘였으니 인젠 들어 앉어라 그애가 나와서 조섬을 허드래두 네가 곁에 있어 약 시중이라두 해야 도리에 옳지』

하고는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무슨 선고나 받는-여죄수 처 럼 두손길을 마조잡고 버선등만 내려다 보고 선 며누리를 유심히 처다 보더니

『더군다나 꽃같이 젊은 여편네가 남편 없는 동안에 나다 니면 없는 소문두 나기가 쉬우니라. 혹시 그애의 귀에 무슨 말이라두 들어가면 큰일 날 장본이니 정신차려라』

하고 준절히 타일는다. 인숙은 얼굴이 확확 부닷듯해서 (없는 소문이 나기쉽다는? 남편의 귀에 무슨 말이 들어간 단 말슴인가) 하고 의심의 더럭나서

『누가 뭐라는 말을 들으섰습니까?』

하고 당장에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모튼 시어머니의 말속에는 바로 대로 허기에 거북한말이 들어 있어 무엇을 암시하는것만은 확실하였다.

한번 간신히 놓여 나갔든 새는 다시금 붙잡허 들어왔다.

허물어진 조롱속의 어수선스러운 보금자리에 가처서 햇빛도 쏘이지 못하든 자난날의 신셀 돌아오고 말았다.

인숙은 그것이 타고난 운명인듯이 말한마디 없시 시부모의 뜻에 순종하지 않을수 없었든것이다.

(그나마 학교에두 못댕기구 들어 앉어서 나 혼자 어떻게 난장판 같은 집의 살림을 도맡어 허나) 하니 공부를 중도에 페해서 분한것보다도 말성많은 식구들 의 뒤를 거두워줄 생각을하니 참으로 난감하였다. 처음에는 이왕 나선김에

『앞으로 일년남짓이 댕기면 명색 졸업이라구 헐텐데 동경 서 나오면 뭐라구 헐지 모르니 기다려봐서 작정을 허는게 좋겠습니다』

하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남편의 간청 이였으니 퇴학을 하는것도 남편의 의향을 물어서 결정하는 것이 옳을듯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말하는 눈치를 보 면 반듯이 둘은 말이 있고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아주버니가 정거장 식당에서 어느 학생과 몰래 만나서 이야기를 하드라는 말이 시부모의 귀에 들어가지나 않었을 까. 더군다나 작은 동서가 장발이와 골목소에서 밀회하듯 한것을 몇곱절 불어서 고해 바치지나 않었나)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수 없었다. 작은 동서는 아직 고 자질을 할 경황이 없이 알는 중이라하드래도 시아주버니가 빗대어 놓고 부모에게 주의를 시킨것만은 사실인가 싶다.

그래서 인숙은 정말 그런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나 한것처럼 시부모앞에서 고개를 처들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나를 행실이 그르다고 단단히 치부를 하고 있거 니) 하는 생각이 문득 나기만하면 기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실 상은 아모 죄도 없으면서도 얼마동안 근심을 하는 의미로라 도 문밖에는 나다니지 않는것이 무언의 변명이 되리라는 생 각도 들었든것이다.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말슴을 들으섰길래 소문이 나쁘다 고 그러십니까』

하고 채우처 물어서 흑백간에 학변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였지만 저부터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 일을 섯불리 말 을 내였다가는 도로혀 긁어 부스럼이 될것같어서 그저 벙어 리 구실을 하려고 입을 담으러 버렸다.

인숙이가 학교를 그만 두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한것은 복 순이었다. 복순은 자작의 내외가 들어와 있는줄 모르고 찾 어왔다가 그말을 듣고 사내처럼 얼굴에 빗대를 올려가며

『시부모가 고만 두란다구 퇴학을 했단 말요? 내가 밤낮 뭐랍디까? 앞으루 무슨 일이 생기든지 자립해 살준비를 허 려면 눈 딱감구 공부를 해야 된다구 그러지 않습디까? 새삼 스레 살림을 맡어 허는건 다 뭐요. 다시 한번 발목을 붙잡 히면 좀체루 이 독갑이 굴속을 벗나지못헐테니 딱해 즉겠구 려. 왜 그렇게 결단성이 없어요? 내가 먼저 학교에 소개를 했으니깐 책임상 교장이라두 끌구와서 다시 댕기게 허구야 말테야요.

조선여자가 다 인숙씨처럼 맘이 약허니까 아무것두 못해 요』

하고 분연히 일어선다.

인숙은 복순의 손에 매어달리듯 하고 붙잡어 않치면서

『그럼 어떻거우? 영영 이집을 버리고 나가기 전엔……』

하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용환이가 첩에 집에가 숨어 앉은지 나흘만에 동경서 편지 가 왔다. 그동안 병이 나어서 퇴원을 하였다는것과 장발의 편에 돈오십원과 이불을 받었다는것과 추후로 큰형이 부처 준 오십원으로 급한 불은 껐다는 간단한 사연이었다.

용환이는 그 돈 오백원을 통으로 집어 쓰기는 양심에 찔리 든지 그중에서 십분지일인 말마금으로 부처주었던것이다.

용환이가 아우를 다리고 나올줄고 알고 초조히 기다리던 자작 내외는 무사히 퇴원을 하였다 는 소식을 반기고 우선 안심은 하였으나

『아 그럼 큰애는 어떻게 된셈이냐. 저는 가지두 않구서 돈은 오십원밖에 안부첬다니 그 남어지는 떼어 먹은게로구 나 천하에 죽일놈같으니』

하고 노발대발하는것을

『천금을 주구두 사지못헐 자식이 살어 났다는데 그까짓 돈 몇백원쯤 가지구 뭘 그러슈. 년말이 되니까 저두 옹색해 서 돌려 쓴게로구려. 그버덤 더헌것두 속구 살어 왔는데 소 요스러우니 한번만 더 눈감어 두십시다』

하고 마누라가 큰아들 대신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리고는 끄텟며누리를 불러 세우고

『우린 문밖으루 나갈테니 살림살인 네가 다 맡어 보아 라』

하고 일르고는 빚쟁이 들을 피해서 밤되기를 기다려 자동 차를 타고 별장으로 나가 버렸다.

수십년 거래를 해오던 싸전 포목전 나뭇장이며 고깃고낭에 서는 몇달씩 셈이 밀려도 체면상 즉접 와서 조르는 법은 없 더니 근자에는 양력 년말이 되었다는 핑계로 아침 저녁 뒤 를 니어 와서는 한바탕씩 청직이를 조르고 갔다.

『나두 도망을 가든지 해야지 사뭇 안나오는 기름을 짜려 고 드니 사람이 백여날 수가 있어야지』

하고 청직이 역시 피했다니니까 장사치들은 악에 바처서 나종에는 지밀로 통한 안중문으로 들여대고

『이리 오너라』

『이댁 청직이까지 어디루 도망을 갔느냐구 여쭤라』

하고 소리를 지르게까지 되었다. 인숙은 그 소리를 들을때 마다 경풍이나 하는것처럼 깜짝 깜짝 놀랐다. 어떤때에는 무지막지한 장사치들이 제일히 몽둥이를 들고 우르르 달려 드는 것 같어서 가슴이 울렁울렁 하것만 누구 하나 나가서 말막음이라도 해줄 사람이 없다.

(이러군 어떻게 살어. 그만가허든 집안이 어쩌면 일년 남짓 해서 이 지경이 될가) 하고 인숙이 역시 송구해서 하로도 이집에 붙어 있고 싶지 가 않었다.

(진작 가치 가자구 헐 때 동경으로나 따러가 봤더면 그런 일두 안생겼을걸) 하고 후회도 하여 보았다.

(돈만 보며 낫는 병을 가지구 그렇게 애절초절을 했지) 하고 남편에게 속은 것이 한껏 분하기도 하것만 지금 당장 에 있어서는 남편의 일보다도 하루바삐 살림 살이를 수습해 서 창피한 빚쟁이나 달려 들지 않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급 헌 문제였다.

재산을 전부 정리를 당한후 은행에서 한달에 삼백원씩 생 활비를 타다가 쓴다는 것도 말뿐이지 월말만 되면 그돈은 벌서 어느틈에 용환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녹아 버리기 때문 에 시량까지 외상질을 하다가 그 지경을 당하는것이라 도저 히 인숙의 힘으로는 어찌 할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뿐아니라 양댓재나 살림을 보아 나려와서 반석같이 믿던 청직이는 정말로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었다. 여러 십년 을 두고 각처의 사음과 부동을 해서 냐금냐금 돈과 토지를 빼어 돌려 다른 사람의 명의로 증명을 내둔것이 적어도 삼 사백석 지기나 되고 서울안에 세를 놓아먹는 집만 해도 십 여채나 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것도 뜬 소문이 아니요 사 실이었던 것이다.

봉희는 올케가 다시 들어앉게 된 것을 복순이만 못지않게 분개하였다.

『그렇게 애를 쓰고 간신히 들어 갔는데 어떻게든지 끝을 맞춰야지 셋재 며누리가 살람이 다뭐요? 아무튼 또 어떻게 될는지 모르니 아즉 퇴학을랑 허지말구 집에서 전처럼 가치 공부를 헙시다. 옵바헌테 기다랗게 편지를 해서 학교에 다 시 들어가두록 허구는 싶지만 옵바가 새언니 생각헐 겨를이 있겠수? 연애 허는데만 정신이 빠졌는데……』

하고 집에서 공부를 계속하면 다음 학기에라도 다시 들어 갈수가 있다고 전과 같이 공부를 가치 하자고 약속을 하였 다. 그러나 봉희는 오라비 덜 연애에만 정신이 빠젔다고 한 면서도 저자신이 요사이는 공부에나 집안 일에는 마음이 없 고 다른 생각에만 정신이 흘려서 지내는것이 사실이다.

『내가 웨 이럴가? 당최 아무것두 손에 잡히지를 않으니 어떡허면 좋아』

하다가는

『오늘해두 벌서 다갔구나』

하고 가벼히 한숨을 쉬고 나서 마음을 갈어 앉치려고 새로 난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참 오늘 저녁에『배화』『이화』『정신』할것없이 죄다 나오는 현상음악대히가 있는데 거기나 갈가?) 하고 지난봄 저의학교『코-러쓰』에『쏘프라노』로 뽑혀서 공회당의 무대를 밟던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는 금방 (음악회 구경은 밤낮 그렇구 그렇지. 그러질 말구 연극구경 이나 갈가?) 하고 년말대흥행이라고 굉장하게 광고가 난 신문을 찾어 보다가 방바닥에다 훠 내던지며 (그까진 신파연극 껄렁껄렁 허드라) 하고 책상머리에 턱을 고이고 앉어서 고개를 이리저리 비 꼬아가며 혼자 묻고 혼자 대답을 한다 @@@ 공연히 들쑤 침 거려서 집에는 들어 앉어 있기가 싫은데 그렇다고 놀려 갈데도 마땅치가 않었다.

(아이 갑갑해 죽겠네. 무작정허구 아무데루나 막 쏘다닐가 보다. 본정이나 가서 한바퀴돌가?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미쓰꼬니』나『정짜옥』같은데 가 서 사구싶은걸 만저나보지. 아이 속상해) 하고 발부림을 하다가는 (그렇게 혼자 쏘댕기다가 그이를 또 만나면 어떡허게) 하고 세철이를 만날것이 겁이 나서 방속이것만 움씰해젔 다. 봉희는 세철에게 지남철 기운이 있는것처럼 저도 모르 는 겨를에 끌려 가기는 하면서도 어떤지 가까이 허기가 어 려웠다. 저혼자 아직도 의식이 부드럽게 지내는것이 세철에 게 무슨 죄나 짓는 것 같이 미안한 것을 지나처 마조대하기 가 무서웠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어디서든지 만났으면) 하면서도 일없이 찾어가 만날 용기는 나지 않었다.

(요새두 호떡만 먹구 사나? 밤중까지 귀를 기우려두 웨 딱 딱이 지나가는 소리가 나지를 않을가? 어디를 갔나? 감기가 들어서 앓어 눕지나 않었을가? 온 복순이를 보구두 물어 볼 수가 있어야지) 하고 창밖 추녀 끝에 고드름이 녹아서 뚜-ㄱ 뚜-ㄱ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두눈을 깜박깜박하고 앉었는데 멀 리 담밖에서

『두부- 사령. 두부-나 비지 사령』

하고 웨치는 소리가 어쩐지 몹시 처량하게 들려서 봉희의 눈에는 까닭모를 눈물이 고였다.

(글서 내가 웨 괘니 이렇게 쓸쓸한 생각이 들가) 하고 봉희는 한숨 섞어 입속으로 한마디를 하고는 (참 심심헌데 동무들헌테 년핫장이나 헐가) 하고 밥짓는 동자치를 불러서 엽서를 한 이십장이나 사왔 다. 그러나 맨 첫장에는

『박세철』

석자가 먼저 씨워졌다.

『새해에는 많은 복을 받으십시오. 더한층 건강하시고 소 원성취 하십시오』

일월일일 XX동-아실듯 모르실 듯

봉희는 작난삼어서 한 년하장이었만 세철에게는 봉서로 답 장이 왔다.

『나는 엽서 한장으로 봉희씨에게 사교적 인사를 받은것을 매우 유쾌하게 생각합니다. 새해가 온다고 태양이 서쪽에서 돗는것도 아니요 무슨 복이 비처럼 쏟아질것도 아니겠지요.

더구나 행복이라는 것이 저절로 걸어오기를 바라고 믿는것 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읍니다. 제손으로 행복이라는것을 올개미를 씨워서 껄어다 앉지기를 위해서 노력을해야 할줄 알어야지요. 새해가 왔다해도 일력한장이 떨어저달어 난것 밖에 온세계에 아모런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거와 마 찬가지로 환하세상을 뒤덮은 시컴언구름도 금시에 거치지는 않겠지요. 봉희씨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운 자리우에서 무지 개와같은 공상이나 하고 누어서 잠꼬대하듯이 행복을 꿈꾸 는 사람과 계급이있는 동안 당신이 나를축복해주신 년하짱 은 한낮 작난에 지나지 못할뿐아니라 인생은 영원히 캄캄한 밤을 버서나지 못할것입니다.

나는 그동안 야경 도는 구역이 갈려서 밤마다 봉희씨의 꿈 을 깨트리지 못하게 되었오이다.

밤열시부터 이튼날 새벽 세시까지 장충단 근처구역을 맡었 기 때문입니다.』

편지에는 이름을 쓰지않고 방한모자를 쓴머리를 그리고 딱 딱이를 X표 모양으로 바처노아서 언득 보기에는 해골박아지 에다가 뻑다귀 둘을 엇걸어 논것같아서 흉하고 끔직해 보였다.

봉희는 얼굴이 석양팔의 단풍닢같이 밝애지고 두번세번, 또 네번 다섯번 세철의 편지를 네려보고 끝에서부터 치올려 보고 하였다.

(년하짱을 했다가 또 양코를 뗏구나) 하고 다음에는 편지로 까지 골을 올리는것같어서 편지를 동댕이를 첫다가 뒷딱지에 그린 방한 모자속에서 세철이가 눈을 딱 부릅뜨는것 같어서 다시금 손이 편지로 달려가군 하였다. 뭉툭한 철필끝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는 획마다 살 어서 꿈틀거리는두 봉희는 세철의 글발에서도 일종의 위압 을 느끼는것 같았다.

봉희는 그날저녁 자릿속에서 남자에게서 처음받은 편지를 인숙이 몰래 끄내어보면서 달큼한맛이라고는 약에 쓰랴도 없는 편지 사연을보며 곰곰 생각을 해보았다.

(년한장이 작난이라고? 저한몸의 안낙만 꿈꾸는 사람과 계 급이있는 동안 인생은 영원히 캄캄하다고) 하면서 몇 번이나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에 어쩐지 세철의 편지를 들어 누어서 읽기가 죄송하리만치 엄숙한 기분에 놀 리는 것을 깨달았다. 「계급」이란 말은 복순이가 인숙이와 이야기를 할때면「자본주의」「무산계급」이니 하는문자와 함깨 귀에젖도록 들었다. 그러나 정말「계급」이라는 두글 자를 색여보고 골독이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세철 이가 저더러「귀족의 영양」이라고 씨까 슬르든말은 꺼집어 내려도 꺼집어 낼수없을만치 뇌에 꼭밖였든 것이다.

『귀족-양반 놀고먹는 사람들』

하고 뇌여보다가 그「귀족」이라는것이 무슨 무시무시한 물건의 일름 같어저서 제몸 어느구통이에 달려붙은것이 보 이기만 허면 잡어떼어 버리고 싶었다. 시컴인 털이 숭숭도 든 그물건을 징그러운줄도 몰르고 발굼치로 눌러 윽개여 버 리고 싶었다.

그날밤 봉희는 세철의 편지를 가슴에 품고 잤다. 그편지만 부작처럼 끼고 있으면「귀족」이라는 물건이 가제몸을 법하 지 못할듯이 밤새도록 길거리로 돌아다녀 꽁꽁 얼은 세철의 몸을 녹여나 주는듯이.

밤깊이 진종일 잔거름을치든 인숙이는 잠이 들었는데 봉희 는 쥐죽은듯이 고요할때를 기다려 살그머니 이불을 걷어차 고 일어 났다.

전깃불을 끌어 나려 인숙의자는 편은 책보로 가리어놓고 책상머리에 앉어서 홀으러진 귀밑머리를 쓰다듬어 올렸다.

화초로 은은하게 문의를 놓은, 편전지를 펴놓고 철필촉을 새것으로 갈어끼었다. 남의 편지를 처음으로 받고 답장을 안할수가 없어 펜을들기는 했어도, 또 흉을 잡히거나 우박 을 마질가보아 서두 부터 무어라고 썼으면 좋을지 몰랐다.

세철의 편지에 대해서 변명 할말과 반박하고 싶은 구절이 많고 저의 속생각을 솔직하게 표현 하고는 싶것만 글자를 죄다 닞어버린것처럼 한줄도 써지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찬 듯한 사연이 두서없이 들으면서도 어느 대문을 붓잡어 다가 조히우에 옴겨야 할지 거진 반시간 동안이나 붓방아만 찌였다.

이윽고 편전지는 잉크투성이가 되였다. 「박세철」석자를 한문자로 써보고 한글로 또는 영짜로도 수십개나 작고 크게 써보다가 나종에는 세철의 편지를 내놓고 뒷딱지에 그린 방 한모자와 딱딱이를 본을떠서 그려보다가

『아이 왜 이렇게 안써저』

하고는 짜증을 더럭내며 조히를 박박 찢어버렸다. 그러고 는 책상우에 꼬자논 책들을 죽 흝어보다가 얼마전에 동무에 게서 빌려다두고 떠들어 보지도 않은 주요한 시집을 뽑아들 고 작은 제목을 훑어보다가 「사랑」이란 자유시를 몇번이 나 되풀이를 해서 읽어 보았다. 열정에 타는듯한 시구절은 제가 세철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과 꼭 부합이되는 구절이 많음을 발견한봉희는 책상모소리를 탁치며

『이 시를 편지대신 벗겨 보내야지』

하고는 조히에 구녁이 뚤리도록 꼭꼭 박어서 쓰기를 시작 하였다.

XX


나는 사랑의 사도외다
사랑은 비뒤에 무지개처럼
사람의 리상을
무한이 끌어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목표외다
사랑은 마치
물고기를 씩식케하며
기이한 풀과바위를
감추어 두며
크고 적은 배를 띠우는
기피 모르는
바다와도 갓사외다
그처럼 넓고
그처럼 깊사외다.

X
그러나 사랑은 또
바위를 차고
모래를 깨물며
천길을 날치는 폭포외다
그나가는 길에
거침이 없아이다
사랑은 튀여올으는
화산과도 같이
잔인한 세상를 향하야
뜨거운 분노를
폭발케 하옵니다.

X
사랑은 모든것이 통일
사랑은 무한히 참으며
사랑은 가장 용감하이다
사랑은 평화를 위하야
따위에 싸흠을 퍼치며
사랑은 의를 위하야
붉은 피로 역사를
물드렸다외다
나는 사랑의 사도외다
X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싸호지 않으면
아니되겠사외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피를 뿜자않으면
아니 되겠사외다 (下略)

XX

봉희는 신앙의 대상자에게 기도를 올리는것과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시를 베껴쓰기를 맞추고 「펜」을 닥것다. 자못 흥분된 봉희의 눈앞에는 세철과 저 두사람이 한데 뭉쳐서 깃발을 앞세우고 용감이 나아가는 광경이 나타났다. 막연하 게나마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가 전개되는것 같었다.

세철에게서는 답장이 오지않았다. 하로 세번 우편이 배달 되는 시간이 되면, 오늘은 오겠지 있다가는 오겠지 하고 봉 희는 대문밖까지 나가서 세철의 편지를 기다리것만 야속하 게도 체전부는 하로 세번 문앞을 그대로 지나가고 말었다.

그럴때마다 봉희는

『나헌테 오는 편지 이리내요』

하고 쫓어 나가서 편지가 수백통이나 들어 배가 불득한 체 전부의 가방을 빼아서 가지고는 깡그리 뒤저 보고 싶었다.

(암만해두 내가 괜이 편지를 했어. 더군다나『사랑』이란 시의 제목을 그대로 적어 보내서 나를 오해헌거야) 하고 봉희는 저의 경솔하였음을 후회하지 않었다.

(그 무뚝뚝헌 사람이 내가 작란으로 그런 편지를 헌줄 알 면 어떻거나. 아무남자 헌테나 사랑이니 연애니 허는 글발 을 함부로 날리는 여자로 알지나 않을까) 하니 입맛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밤에도 잠을 못자며 며칠 동안을 여간 초조하고 안타깝게 가슴을 조리며 지낸것이 아 니었다. 더구나 인숙에게 저의 속생각을 시원하게 하소연이 라도 하고싶것만 그도 참아 할수없다.

그래서 골김에 서철에게로 쫓아가서

『여보 남의 편지를 떼여먹고 왜 답장을 안허는 거요?』

하고 대들어 멱살을 추켜잡고 한바탕 분풀이라도 하고 싶 었다.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알틋하며 지내는 동안에 겨 울 방학도 다 지나가고 말었다. 밤중에도 딱딱이 소리만 들 니면 이불을 거더차고 뛰어나각서 골목속에서라도 만나보고 싶것만 그동안 야경을 도는 구역이 갈여서 집근처로는 오지 를 않는 모양이니 그것도 마음대로 할수가 없는데 복순이 조차 인숙이가 학교를 그만둔것을 분개하고 너펄머리를 뒤 흔들고 간뒤에는 소식이끊젔다. 봉희는 학교에 갔다 오는 길거리에서도 세철이 비슷한 사람만 지나도 유심히 처다보 건만 막버리꾼같이 검붉은 얼굴과 골격이우락하게 생긴 남 자는 눈에 띠우지않았다. 그럭저럭 거진 한달동안이나 엽서 한장이 없으니까 (고만둬. 누가제까짓사내 허구 어쩌쟀나. 참나무 장적처럼 뻣뻣허기만허면 제일의 강산인가) 하고 고만반심이 생겼다.

(그이는 아무렇지두 않은걸 나혼자 몸이 달어서 편지질을 헌모양이양 됐으니 어쩌면 좋담. 내 어서든지 만나면 인사 두안헐걸. 딱딱이나 치구 호떡이나 먹구하기는 주제에 못처 럼 헌여자의 편지를 무쪽같이 잘러먹는 법이 어디있어) 하고 생으로 짜증이 나고, 세철의 말마따나 귀족의 영양으 로서의 자존심이 상해서 올케를 보고 몇번이나

『왜 복순이는 요새 한번두 안온다우? 또 잡혀가서 콩밥을 먹는거야. 밤낮 그 놈의 XX운동은 다뭐야』

하고 보든책을 동댕이를치며 간접으로 복순의 욕까지 하였 다. 인숙은 속으로 (자근아씨가 왜 저렇게 신경질을 돼갈가) 하면서도

『낸들 아우. 저한테 말두없이 학교를 고만 뒀다구 나허구 두 단단히 툴녔나보. 한번 가바야 헐텐데 당최 나갈수가 없 구료』

하고 근자에는 버릇이 된것처럼 앉지나 서나 한숨만 내쉰 다. 그러다가 하로는 봉희가 하학을하고 나온뒤에 책상우에 가 걸터앉어서 (오늘이 반공일인데……) 하고 어디로 놀러나 갈 궁리를 하고앉었노라니까 행낭어멈 이 큰일이나 난듯이 헌거름으로 들어오더니

『저 큰대문밖에 왼학생이 찾어왔는뎁쇼. 자근아씨를 뵙자 구 그러나봐요』

하고 귀속하듯 한다.

『뭐? 학생이 날 찾어?』

봉희는 눈이 희동그래저서 누가 바눌로나 찔는듯이 발딱일 어섰다.

봉희는 즉각적으로 (세철이가 아닐가) 하는 짐작이 번개같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러나 해돋이기 전에 더구나 정문으로 찾어와서 집안사람이 다 알어들을만 한 커다란 소리로

『윤봉희씨!』

하고 제일흠을 불렀으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 다. 그렇건만 외투도 안입고 너절한 학생복에 얼굴은 이글 이글 타는듯이 검붉은 사나이라는 행낭어멈의 말을듣고 본 즉 세철임에 틀님이없다.

봉희는 기개방아가 찢틋하는 가슴을 불안고

『누가 찾어 왔다우?』

하고 친마루끝에서 그의 눈치를 보는 인숙의 말에는 우물 쭈물 대답도 똑똑이 하지않고 사랑채로 뛰어 나가다싶이 하 였다. 사랑앞마당에 심어논 난관주나무에 몸을 가리고서서 상노아이더러

『너 대문밖으로 나가서 나를 찾는 학생더러 성함이 누구 시냐구 물어보고 들어오너라』

하고 살그머니 일렀다.

상노아이가 나가서 무어라고 한마디를 허자마자

『나 박세철이란 사람이다』

하는 용렁찬 목소리가 바로 사랑중문턱에서 들렸다.

봉희는 주츰할사이도 없이 중문간으로 나갔다. 그날 마츰 봉희는 학교에서 나오자 새색시처럼 연두저고리에『하부다 이』분홍치마를 곱다라케 갈어입고 않었다가 별안간 나가게 되여서 더한층 수집었다. 잘잘 끌리는 치맛자락을 휩싸쥐고 몸을 반쯤 가리고 문밖을 갸옷이 내어다보자 세철이 커다란 몸뚱이가 바로 눈앞을 딱막어 섰다. 세철은 반달같이 내여 미는 봉희의 얼굴을보자 찢어진 모자를 홀떡 벗고 머리를 꿈벅해 보이더니

『만나 뵙는데 어지간이 수속이 복잡허군요』

하고 씽긋 웃더니 고개만 조금 숙여보인채 부끄러움을 얼 굴 가득이 머금고 선 봉희의 색스러운치마 저고리를 유심이 흝터본다. 이왕 이렇게 제면으로 만난 다음에야 큰 사랑 응 접실로 불러들여서 남의 눈을 가리지 않고 탁 터놓고서 이 야기를 하고도 싶건만 봉희는 큰오라비에게나 들킬가 보아 거기까지 용기는 나지 않었다. 세철은 다시 한번 안밧채를 휘휘 돌러보더니

『그동안 복순씨가 원산으로 붙잡혀 갔는데 후림낄에 나두 걸려들어서 한달이 넘두록 변또밥을 먹다가 왔세오. 어적게 와보니가 봉희씨 편지가 왔드군요. 그래서 즉시 답장을 뭇 헌게지만……아무튼 미안허게 됐세요』

하고는 집안식구나 행낭사람들까지 이구석 저구석에서 기 웃거리며 그들을 주목하는것이 자못 불쾌한듯이 흘겨 본다.

『그러신줄은 깜아케 몰으구 퍽 궁금허게 지냈어요. 그래 얼마나 고생을 허섰어요?』

봉희의 말씨는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을듯이 별르든 때와는 딴판으로 보드랍고 싹싹하였다. 그러나 집안식구들의 시선 이 총뿌리처럼 한몸을 겨냥하고 있는것 같어서 어찌 켱기는 지 사지가 굳어올으는것 같었다.

『들어 오시지두 못허구……대문밖에서 미안헙니다』

하고 머리를 숙여 보이고 나서

『그럼 복순씨허구 같아 올라 오섰어요?』

봉희는 조금 떨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마디를 더물었다.

세철이 역시 거북한듯이 구두뿌리로 문턱의 하방밑을 허비 면서

『복순씨는 그저 원산 있에요. 이번엔 단단히 결닌모양인 데 좀체루 나오기가 어려울걸요』

하고 얼굴조차 치마빛으로 물이 든것같은 봉희의 앞으로 한거름 닥어서며

『저……편지 답장은 길게 쓸새가 없으니, 내일 저녁 일곱 시에 나헌테루 잠간 와주세요』

하고 명령하듯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또다시 머리를 꿈벅 해 보이더니, 봉희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이 발꿈 치를 돌렸다.

『그게 누구요?』

『그 학생이 뭣허러 자근아씨를 찾어왔다우?』

『꼴악선이는 만주장사 같이두 떡버티구 서서 이야기를 허 는게 뱃심은 꽤 좋든걸』

세철이가 간뒤에 여편네들은 안마당에서 봉희를 에워싸고 다투어가며 물었다. 문밖에는 얼굴도 내여놓지 않는 과부댁 까지 마루로 나오며

『아 어떤 사내가 자근아씨를 찾어 왔어?』

하고 말참례를 한다. 그네들은 무슨 큰 구경거리나 생긴듯 이 정탐이나 하는듯이 들어 마조서서 이야기하는 정경을 엿 보기까지 한 모양이다. 봉희는 성을 빨끈내며

『누가 찾어 왔든지 알지못해 애들을 쓸게 뭐야』

하고 쏘가리 하듯하고는 급히 제방으로 피해 들어갔다. 집안식구야 무어라고 숙덕거리며 뒷공론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을만치 봉희는 흥분이 되였든것이다.

인숙은 처음부터 잠자코 시누의의 눈치만 보아오다가 저녁 을 먹은뒤에 단돌이 마조 안게 되였을때 목소리를 나추어 가지고

『아까 세철이가 찾어 왔습디까?』

하고 물었다. 봉희는 그렇지 않어도 인숙에게만은 속 이야 기를 하고 싶든차에 먼저 물으니까

『복순이가 원산으로 잡혀갔는데 세철이까지 올켜갔다가 엇그적게 저만 노혀나왔대』

하고 세철이가 편지 조건때묵에 다녀갔다고 실토를 하려다가 (아직 그런말까지 헐건 없어) 하고는

『그래서 생언니헌테 소식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구 찾 어온걸 괘-니 날가지구들 그래. 아이 속상해 죽겠네』

하고 혼잣말 하듯하고는 알엣목에가 쓸어지더니 둘아누어 버린다. 인숙은 얼마전부터 시누

『들어 오세요』

세철은 퇴마루끝에서 밥을 지어먹은 사발과 밥풀이 붙은 공기를 벌려놓고 휘파람을 불어가며 설거지를 하는중이었 다. 봉희는 인사대신으로

『어떻게 밥을 다 지어 잡슬줄 아서요?』

하니까 세철은 행주를던지고 손을 씨스며

『사람허는것치군 뭐든지 다 헐쭐알어야해요. 봉희씨는 아 마 밥짓는 구경밖에 못했지요?』

하고 대뜸 한마듸를 비꼰다.

『왜 그렇게 나를 보면 히니꾸남 허서요?』

봉희는 세철을 살짝 흘겨보았다.

『두구 보세요. 히니꾸두 약이 될때가 있을테니. 자- 어서 들어가십시다』

세철은 전기불도 아니 켠 방속으로 머리를 들여민다.

봉희는 (어쩌면 불두 안켜구 살어) 하면서도 따러 들어가지 않을수가 없어서 남자의 뒤를따러 들어갔다. 석냥불이 확하고 켜지더니 방한구석에 부처논 가 느다란 양초에가 불이 켜젔다. 가뜩이나 쓸쓸해 보이는 방 안은 빈소방같이 음침하다.

『전기불을 안켜서 퍽 갑갑허지요. 그렇지만 나같은 사람 은 전등을 달 필요가 없에요. 밤새도록 길거리루 싸단기니 까 서울 장안의 수없는 전등이 다 내가 켜논 셈이거든요.』

하고 세철은 껄껄껄 웃는다. 봉희도 소매로 입을 가리고 따러 웃었다.

『참 어저께는 퍽 미안했에요. 아미 그 너절헌 학생이 뭘 허러 찾어 왔느냐구 야단들이었을 걸요?』

『아-니요』

봉희는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봉희씨가 거북헐줄을 알었지만 나는 무슨 일이든지 어둑 침침헌 뒷골목에서 사람의 눈을기여가며 허기는 싫여허는 성미예요. 모든 죄악은 어둔 구석에서 꿈여내는 게니까요.

무슨 일이든지 정면으루 부듸처야 통쾌 허지요』

봉희는 차듸찬 구들우에 쪼그리고 앉어서 세철의 말을 귀 담어 들으면서도 제가 지내오는것과는 넘우나 엄청난 세철 의 생활을 바로 그 속에들어 앉어서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다음에는 일종의 호기심으로 세철을 대하였것만 차츰차츰 세철이가 생활하는 분위기속으로 그의 몸과 생각이 쏠여들 어 가는것을 느꼈다. 제손으로 밥을 지여먹으면서도 휘파람 을 불어가며 행주질까지하 ?????

『나는 이 천지간에 단하나뿐인 외로운 사람이예요. 부모 의 자애두 형제의 우애두 아무것두모르구서 일을테면 물결 거츨은 바닷가의 이름없는 풀처럼 자라난 사람이예요. 여덜 살때 부텀 만주 목판을 메구다니다가 얼음구덩이에가 빠저 서 얼어죽을번두 했구요. 이틀 사흘씩 굶어서 까무러처 보 기를 몇번이나 했에요. 고학당에 다섯해나 다니는 동안에 매약행상, 세탁주문, 겐마이빵장수 헐것없이 못해본게 없지 요. 주린창자를 부등켜쥐구 주인없는 개처럼 길거리루 쏘다 니는 동안에 잔뼈가 굵었에요』

하더니 세철은 입살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인다. 그순간에 봉희는 의외로 세철이가 눈물을 깨물어 삼키는것을 발견하 였다. 그와 거진 동시에 봉희의 눈에도 눈물이 갈상갈상하 게 고였다.

『그래서요? 그렇게 고생을 허시면서 지금 다니시는 학교 에는 어떻게 다니섰어요?』

이번에도 부지중에 봉희가 세철의 앞으로 닥어앉었다.

『죽기 기를쓰구 댕겼지요 올봄의 졸업인데 월사금을 못내 서 정학을 당하기를 이번까지 네번째나 했으니까요. 이년급 쩍에는 동무집에 가서 자전 두권을 훔처다가 잡힌것이 탄로 가나서 붙잡혀가서 그때 벌서 퇴학을 당헐겐데 요행 학교에 선 몰랐었에요. 근대 문명은 과학이 더구나 전기가 지배하 는것이아니까 전기 공학을 전문으로 배울 작정으루 전기학 교에 들이가긴 했지만 그것두 댕기다 말다해서 이태에 한번 씩 진급이 되니까 여태가지 졸업을 못했지요』

『아이 어쩌면 책몇권 집어다 잡혔다구 그렇게 고생허는 사람을 붙잡어다가 그런 악형을 해요?』

봉희는 다른 말보다도 세철이가 경찰서에서 당하든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고는 눈쌀을 찦으리며 두번 몸서리를 첬다.

『작으나 크나 도적은 마찬가지니까요. 털끝만헌 것이래두 남의것을 훔치거나 빼았는것을 제재허기 위해서 법률이라는 게 있지 않어요?』

하더니 세철은 목소리를 높여 세상의 공평치못한 점과 여 러가지 모순된 사실을 들어 니를 갈며 저주하였다.

『죄를 입는건 좀도적뿐이지요, 큰도적은 길거리로 네활개 를 펴구 다녀두 이세상 사람은 양심이 마비돼서 조금도 이 상이 여기지를 않거든요』

하고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