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0장
망명가의아들
편집一
편집봉환에게서도 기다란 답장이 왔다 지나치게 애통하는끝에 몸을 하리지 않도록 하라는것과 장모상사에 나가지못하니 반자(半子)의 도리가 아니라는것과 겨울방학에는 반듯이 귀 가하야 반가히 만나겠다고 간곡히 위로하는 말을 늘어 놓았 다. 인숙은 남편의 편지를 아침 저녁으로 끄내보며적지아니 위안을 받었다. 학교에 가면 상학시간에도 칠판의 백묵 글 시가 남편의 편지로 보일때까지 있었다. 그뒤에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편지 내왕이 있었고 봉환의 편지 서두에는 반듯이
『나의 사랑하는 』『직여성에게』라고 씨웠다.
(직녀처럼 정말 일년에 한번씩밖에 만나지 못하겠되면 어 쩌누) 하면서도 인숙은
『직여성? 직여성?』
하고 남편이 지어준 저의 별명을 몇번이나 입속으로 되풀 이 해보기도 하였다. 그날그날 학교공부에나 착심을해서 모 든 설음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다가도 깊이 곰겨서 음혈이 된 종기가 공기가 조금 습하기만 하여도 은근히 쑤시고 제 리드키 어머니생각이 문뜩나기만하면 책을 보다가도 얼빠진 사람처럼 한눈을 팔고 앉었기가 일수였다. 그럴때마다 인숙 은 남편을 생각하고 정이 뚝뚝 덧는듯한 편지사연을 법당노 인 념불하듯 속으로 외면은 행결 마음이 가러앉었다. 봉환 의 편지는 고통이 한참 고비에 올을때에 진통제(鎭痛劑)주사 한대를 맞는것만치니 인숙의정신상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진종일 힘에 부치는 학과에 시달리고나서 눈이 달 리고 허리가 직근 직근 아픈것을 참고 돌아오면 집에서도 마음 편할날이 없다. 봉환의 큰형이 잡혀먹은 전답이 경매 를 당할 지경인데 엎친데 덮친데로 자작이, 여러해전에 가 장 친하게 지내든 박남작의 아들이 역시난봉을 부려서 파산 을 당하게 될때에 설마 어떠랴하고 연대보증인으로 뒷도장 을 치어, 빚을 얻어서 일시욕을 면하게 하여주었었다. 그뒤 로 박남작이 뇌일혈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맏아들은 금치산 선고(禁治産宣告)까지 받어서 리자가 원금보다 몇곱이나 늘 은 엄청난 돈이 보증인인 자작 에게로 닥처왔다. 그래서 자 작은 뜻밖에 그 빚까지 무리 꾸럭을 하느라고 방 바닥을 뚜 드리며 통곡을 하고는 남어지 부동산 전부를『식산은행』에 다 들이밀고 청산은 한후 한달에 겨우 삼백원밖에안되는 생 활비를 타쓰게 되었다. 단 삼백원으로야 궁가의 체면을 유 지 할수 없을뿐아니라 그야말로 그만돈쯤은 벌겋게 달은 화 로에 눈한줌을 끼얽기나 다름이없다. 한껏 벌였든 규모를 별안간 주릴수가 없고 아무리 조리차를 한대도 씀씀이는 전 과같은 대중이다. 더구나 철딱선이 없는 안여편네들은 돈한 푼이라도 더 얻어 쓰려고 아귀다틈이라 자작은 부닥기다 못 해서
『난 모르겠다. 식구들을 먹이든 굶기든 네가 다 맡어라 인제 난 이세상허구는 하직이다』
하고는 용환에게다 상봉하솔의 책임을 떠다맡기고 문밖엣 평장으로나가서 누어버렸다.
용환은 그제야 정신을 좀차리고 용기를 내여서 식구를 정 리하였다. 연고 있는늙은 내인들과 침모며 안잠을 내여보내 고 반비다치 까지도 두었만 남기고 내여쫓다 싶아하였다.
『인제버텀은 여편네란 하나두 놀아서는 배고풀줄알어』
하고 상일까지 하라고 명령을 하였다.
그래서 조석때가 되어도 마루끝에 한번 나려서 보지못하고 저먹은 밤그릇 한번 닦어보지 못하든 귀부인들은 행주치마 를 둘르고 보엌에 나려서 비단결같은 손을 개수 물통에다 당그지 않을수없게 되었다. 그뿐아니라, 별당마누라의 말을 빌면 조상의 산소에 화산이 비최었든지 『해제댁의 치맛자 락에 토하고는 다섯햇동안이나 앓든 폣병을 청산해 버렸다.
젊은 과부의 따러 죽는다고 몸부림 하는것은 마음 어린사람 으로는 참아 볼수없는 정경이었다.
二
편집『인젠 겨울 방학이 며칠 안남었으니까 되겠구려』
『좋은지 만지 난 되려 나오지 말었으면 좋겠어. 집안형편 이 전같어야 말이지. 하루만 지내보면 정신 쓰라리다구 집 에는 안붙어 있을려구 들걸. 하두 난리판 같으니까 나두학 교랍시구 댕기기가 송구스러워서 못견디겠어』
『열흘 붉은 꽃이 없단 말이 옳거든 숫헌 사람은 피땀을 흘리구 일을 해두 굼주리는데 손끝맺구 앉어서 그만큼 대대 로 영화를 누리구 호강스럽게 지냈으니까 인젠 배고픈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좀들 당해 봐야 싸지요. 그래야 세상형편 이 어떻게 돌아가는줄두 차차알어 지리다. 그럴수록 인숙씨 는 더 정신을 바짝차려야 해요. 시집의 밥을 얻어 먹는것두 며칠 안남었으니까……』
『학교에 간다는 핑게를 허구 하루 종일 나와 지내지 않으 면 그 각다구니판에서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낼번 했는지 몰 라요. 글세 자근형님은 누구홀도 되랬는지 지금두 사람만 보면 부짭구 통곡을 허는구려』
『남편은 폐결핵으로 죽구 안해는 『히스테리』로 미처나 는구면』
반공일날 오후였다. 인숙은 복순이가한달 동안이나 시골로 순회강연대에 끼어서 돌아 다니다가 검속을 당했다는 소식 을 듣고 그동안 풀려왔나 하고 궁금해서 여러날 별르든 끝 에 찾어 갔던것이다. 겨울이 되여도 빈대피로 묵화를 친 흔 적이 그대로 남어있는 삼원짜리 삭월세 방은 불맛을 보지못 해서 뼈가 제리도록차다. 가끔 지방으로 강연을 하러다니면 노자중에서 몇원간이고남는돈으로 삭월세를 치르고 죽이되 나 밥이되나 끓여 먹는것이었다. 남녀간 동지들도 물에빠지 면 주머니버텀 뜨게된 형편이라 전처럼 잔돈푼을 뜯어 쓸수 도 없어 가끔 유치장에를 들어가야만 얼마동안씩 생활의 안 정을 얻게되는 것이다.
그전날 복순은 마츰 시골서 돌아 왔었다. 인숙을 반가히 맞은후 둘이 오들 오들 떨고 앉어서 그동안의 지낸일을 이 야기 하는판이다.
복순은 자작의 집이 소리없이 문허지기 시작한것을 고소하 게는 녁이지 않으나마 의례히 닥처올 운명에 부닥친 것으로 조금도 놀랄것이 없다는 눈치다.
『아무튼 학교에는 잘들어갔지요. 기냥 그대루 있었더면 참정말 그집구석에 틀어박혀서 계집종 노릇밖에 더허겠수?
더군다나 이앞으로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걸』
『내생각에두 그렇기는 허지만, 인전 손수 밥까지 지어 먹 게 되는데 나혼자 책보를 들구 나서기는 참 정말 미안해 죽 겠어. 지금 형편같어선 앞으로 살림을 나보기도 틀렸으니 어쩌면좋아』
『어린애는 낳기두 전에 기저귀 작만버텀 헌다더니 어느세 버텀 살림 날 궁리를 해요. 딴 생각을랑 허지두 말구서 혼 자라두 살어 나갈 도리나 차려야지요. 모르면 몰라두 봉환 씨가 학교를 졸업허구 온대야 아마 살림이나허구 들어 앉었 지는 않으리다』
복순은 아직도 인숙이가 꿈같은 공상을 하고 있는것을 비 웃듯 하였다.
인숙은 털목두리를 들르고 앉었것만 등어리가 오솔오솔추 어서
『내 내일이라두 또 오리다 방학이 며칠 안남었는데 하두 어수선 스러우니까 시험공부두 헐수가 있어야지』하고 일어 서는데
『새언니 여기 왔수?』
하고 들어서는건 새로짠고등색 짜케트를 입은 봉희였다.
『자근아씨가 웬일이요?』
인숙은 미다지를 열었다.
『봉희씨 참 오래간만이 구려』
복순도 일어나
『춘데 들어오. 방이라구 밖앝버덤 더 춥지만』
하고 곧 가보아야 겠다는봉희를 끌어 들였다. 그동안 봉희 도 인숙을 따러서 두어번 이집에를찾어왔었다. 봉희는 매우 긴장한 얼굴로
『저 장말이라는 옵바허구 가치간 친구가 있지않우? 아까 그이가 학교로 나를 찾어 왔겠지』
『응 그래서요?』
인숙은 귀가 번쩍 띠이는 듯이 봉희의 앞으로 바싹닥어 앉 었다.
三
편집『학교서 막 나오는데 등뒤에서 누가『봉희씨』허구 굵다 란 목소리루 부르겠지』
인숙은 봉희의 말끝에 무슨 줄이라도 달렸으면 얼른 끌어 올리기나 할듯이 가깝증이 나서
『아 그래 장발이 혼자 나왔답디까』
하고 무릎이 마조 닿도록 닥어 앉는다
『아이 새언니두 퍽은 조급 헌가보』
하면서 올캐의 허벅다리를 꼬집는척 하더니
『그래 깜짝 놀라서 홱 돌려다 보니까 바루 정거장에서 보 든 장발이겠지 나를 한번밖에 안봤는데 내이룸까지 어떻게 아는지몰라. 머리는 어깨까지 나려오구』
하는데
『압다, 딴소리는 늘어놓지말구 봉환씨두 가치 나왔는지 어서 시원스럽게 얘기를 허우. 궁금해서 죽을려는 사람이 있는데』
하고 곁에서 복순이가 인숙을 거들었다.
『가만 있어요. 헐말은 다해야지. 그래 나두「언제 오섰읍 니까」허구 인사를 허니까 엇저녁에 나왔다구 허면서 여러 동무들이 이상스럽게보는데 내뒤를 자꾸만 따러 오면서 잔소리를 끄내는구려 글세. 집으로 찾 어 가려두 만나기가 거북해서 학교 문앞에서 기댜렸다구 허 면서』
『그럼옵바허구 가치 오지는 않었구려』
인숙은 참다못해서 채우처 물었다.
『겨울방학에 꼭 나올려구 했는데 오고가는 동안을 빼면 며칠 되지두 않구. 방학동안에 그림 그릴것이 밀려서 옵바 는……』
하고는 올캐의 눈치를 살짝 보고나서
『못나오신대. 너무 섭섭해 허지마우』
한다. 인숙은 될수있는대로 천연한 체를 하려고 하나 몇일 아니면 꼭 올줄 알고 『사홀밤만 자면 이틀밤만자면』하고 어린애 명절 기대리듯 손꼽아 기대리던 남편이 못온다는 소 식을 들으니 낙심하는 빛을감출수 없다.
『그렇게 바쁘면 장발이는 어떻게 나왔답디까』
『아이 새언니두. 길에서 그런말까지 어떻게 물어 본단 밀 요. 그러지않어두 내뒤를 줄줄 따러오면서 학교 다니는 재 미가 어떠냐는둥 정거장에서 나를 한번 본뒤는 입때 첫인상 이 잊혀지지 않는다는둥 별소리를 다허면서 따러와서 얼굴 이 뜨거워 혼났는데. 그래 집앞까지 가서야 개학때 가기전 에 집으루 들를테니 옵바헌테 전헐게있거던 제편에 부치도 록 허라겠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새언니가 그저안왔길 래 혹시 여기나 들렀나허구 찾어 왔어요』
인숙은 무안을당한 새색시처럼 눈을 나려깔고 목도리에 달 린 털보무라지만 배비작거리다가
『그럼어째 편지두 없수?』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묻는다.
『글세 옵바가 어째 편지를 안허구 장발이 헌테만 전갈허 듯 일러 내보냈는지 내가 그속을 어떻게 안단말요』
하는데『무엇에 반해서 직녀성을 잊어 버렸남』
하고 봉환의 편지를 본적이 있는 복순이가 인숙을 까씨 올 렸다. 인숙은 그 자리에 더 앉어서이야기를 할 경황도 없어서
『고만 갑시다』
하고 일어 서려는데
『화조월석에 기다리던 낭군을 꼭 만나려니 했다가 못온다 니까 섭섭허구 여부가 없겠지만 몸성이 있어서공부만 잘 헌 다면 고만이지 저렇게 낙심을 헐게뭐요. 글세 언제든지 개 밥에 도토리 모양으루 베저서 한평생 홀로 굴러 댕기는 나 같은 사람을 좀 생각해봐요』
하고 위로를 하는지 골을 올려 주는지 모르는 소리를 하 고, 복순은 저혼자 쓸쓸한 웃음을 지어웃는데 마당에서 구 둣소리가 저벅저벅 나더니
『누님!』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방문앞에서 들렸다. 문앞에 앉었던 봉희는 깜짝 놀란듯 옷목편으로 비켜 앉었다.
四
편집『세철이냐』
복순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우린 갑시다』
봉희가 따러 일어섰다. 인숙도 잠자코 일어나 치맛자락의 구김살을 펴는데
『괜찮아요. 내 동생인데 보면 어때요. 새삼스럽게 내외를 허나 곧 갈걸』
하고 복순은 두 여자를 억지로 붓잡어 앉첬다. 방문이 하 나 돼서 나간다 하드래도 마조치기는 일반이다. 인숙은 (동생이라니 내가 모르는 동생이 또 누구야) 하고 방한구석에 비켜섰다.
『너 왼일이냐 춘데 들어 오너라』
『이번에 또 공밥 먹었읍디다 그려』
『공밥이나 먹어야지 심이되지. 그래두 물것이 없으니까 춤긴해두 겨울이났드라』
문지방을 사이로 둔 둘의이야기를 듣고 봉희는 (누구더러 동생이라나) 하고 약간 호기심이 움즉여서 미여진 미다지틈으로 밖을내 여다 보았다. 복순의 동생이라는 남자는 다 찌그러진 전기 학교(傳記學校)의 모자표를붙인 학생이었다. 그저 외투도 못 얻어 입은듯. 얇고떨어진교복 한벌을 입었어도 조금도 치운 기색이 없이 가슴을펴고 굵직한 두 다리를 딱 버티고 섰다.
언듯 보기에도 스물두어살쯤된 거므스름하게 생긴 청년이다.
『아 들어와』
복순은 세철의 손을 잡어껀다.
『손님……』
하고 새철은 툇마루에 나라니 버서논 여자의 구두 두켜레 를 보고 눈짓을 한다.
『알구보면 옛날 친구라구 내가 노 얘기허든 분들이다』
세철은 그려냐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누님 잠간 밖앝에서 맞납시다』
한다.
『들어 오라니까, 우리끼리 무슨 비밀이 있니』
복순은 부득 부득 세철을 껄어 들렸다. 두 여자는 방구석 에 가서 몰려섰다. 세철은 두여자를 흘낏 보고 머리를 조금 숙이는체하고는 복순과 비스듬이 마조 안는다. 허우대는 크 지못하나 중키는 확실한데 운동선수처럼 어깨가벌고 가슴이 내밀었다. 팔이 굵어그런가 교복소매가 켱겨서 거북해보인다.
얼굴빛은 검붉은데 큰 송충이만한 두 눈썹은 말알하는대로 꿈틀거리듯한 어지간이 감때가 사나워보인다.
『인사를 허우 서루 모르구 지낼터가 아닌데』
하더니 복순은, 세철을 가르치며
『이 학생은 나처럼 아버지는 얼굴두 몰라요. 망명을 해서 서백리아로 간뒤에 이십년이나 돼두 여태 소식이 없구. 어 머니는 내가 댕기든 학교의 선생노릇을 허다가 만세통에 감 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세상을 떠났어요. 나허구 성이 같으 니까 외로운 사람끼리 의남매를 매젔다우』
하고 장황이 늘어 놓는다. 세철은 여자들 앞에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이 눈썹을 조금 찌 푸리더니 두여자를 돌여다보며
『박세철이예요』
하고 압바닥에 두손을 집는다. 세철의 눈은, 비록 한순간이 나마 선채로 마조 머리를 숙였다가 처드는 봉희와 서로 시 선이 마주첬다. 봉희의 얼굴때문에 침침한 방웃목이 달리 비친듯 환해보였다. 봉희도 이런 자리에서는 처음 맞나는 남자를 호기심을 가지고 보며 속으로는 (아마 운동선수가 보다) 하고 두툼한 목덜리와 뒷통수를 할금 흘겨보았다.
복순은 인숙과 봉희를 눈으로 가르치며
『저분은 내가 신세를 많이 진 윤자작의 셋째 며누님인 인 숙씨구 저학생 아씨는 자작의 막내따님 봉희양인데 피차에 맞나기는 첨이지만 노 얘기를 들었으니까 소개를 안해두 잘 알테지』
하고 연방『자작』을 처든다. 세철은 그만 허면 짐작 하겠 다는 듯이 머리만 끄덕여 보이는데 평상시에는 사내 부럽지 않게 활발하든 봉희연만 그날은 이상스러히 부끄럼에 귀밑 까지 빩애젔다
五
편집『누님, 오늘저녁버텀 나허구 잡시다』
세철은 불쑥 한마디를 한다.
『왜?』
복순은 무슨 짐작을 하는듯 하면서도 짐즛 뭇는다.
『잘데가 없으니까 가치 자잔말이지 까닭을 물어 봐야만 알겠우』
『또 하숙에서 쫓겨 났구나』
『창피허게 쫓겨난긴. 날더러 나가줍시사구 비니까 주인대 접을 해서 마지못해 나왔지』
『아무튼 뱃심은 좋아 이번엔 몇달이냐』
세철은 대답대신으로 손가락 셋을 펴보이며 씽긋 웃는다.
복순도 그런 일은 례사인듯이 탄평으로 우습을 지으며
『그럼 짐은 어쨋서?』
하다가 그제야 웃목에가 안찌않고 나가지도 못하고 선 인 숙과 봉희를 보고는 더 뭇기를 주저허는데
『대문밖에 고리짝 하나 갖다 놨우. 디려오리까』
세철은 서슴지않고 뭇는다.
『와 있어두 상관은 없지만 나허구 약속 한가지는 해야해 내가 요새 몸이 괴로워서 꼼짝두 허기 싫은데 일즉 암치일 어나서 불두때구 밥두지어 줄테면 발칫잠이래두 자게 헐테 구 그러치않으면 딱지다』
『아-니 삼원짜리 삭울세두 변변히 못내면서 이궁둥이가 얼어붓는 방한간을 가지구 세를쓰기요? 크나작으나 자본가 행세는 알반이구료.
불때구 밥짓는 노력을 나헌테 착취하려구 드니…』
하고 세철은 쾌활하게 웃다가
『세상이 금방 각구로 섰우? 남자가 밥을 다짓게』
하다가말고 (참 처음보는 여자들이 었는데) 하는듯이 두여자의 얼굴을 훌낏 쳐다본다. 인숙은 봉환이 가 아니 나온다는데 담판이 떨어저서 남의 이야기에 귀를기 울릴 마음의 여유없는듯.
(그동안 동경서 편지나 오지 않었을가) 하고 좀이 쑤셔서 얼는가 보고는 싶으나 남의 이야기를 중 간을 부질르기가 어려워서 문짓거리고 섰다. 그와반대로 봉 희는 적지 않은 호기심을 가지고 세철의 일동일정을 살피고 섰다.
(아무리 남자지만 어쩌면 저렇게 숙기가 좋을가. 첨보는 여 자들앞에서 석달씩이나 밥값을 떼 어먹고 나온걸 자랑허듯 허니) 어떠고 제게 무슨 상관이나 되는듯이 (이렇게 찬 구들장우에 가서 펄것 주저 않었으니 좀 찰가) 하고 얇다란 양말 바닥이 얼어 붙는듯 제려 올르는 발꾸락 을 꼼지락 거리며 세철의 탐스러운목덜미를 나려다 보았다.
『그럼 있다가 자려오리다. 버리허러 나갈 시간이 돼서 가 야겠우』
하고 세설은 벌떡 일어선다.
『저녁은 먹어야지. 오늘 저녁 버텀 아까 말헌대루 실행을 해』
하고 허리츰에서 다떨어진 돈지갑을 끄내서
『노자 쓰구 좀 남었다. 우선 봉지 쌀이래두 팔어와야지.
나무두 한 서너단 사구』
하고 지갑을 던진다.
『싫유. 여편네가 헐일은 여편네가 헐게지. 난 오늘부터 또 호떡생활을 헐테요 만주 팔어서 호떡 사먹는 재미를 누나가 알겠우』
하고 나가더니만 이부자리와 책이 들엄직한 고리짝을 번쩍 들어다 툇마루에다 쿵하고 나려놓고나서 모자를 훌떡 벗더니
『실례 합니다』
하고 두여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뚜벅뚜벅 나간다.
인숙과 봉희도 가처나 있었든것처럼 그제야 풀녀나왔다.
『인젠 여기 꼭 있을테니 누추허지만 지나댕기는 길에 가 끔 들루』
복순은 봉희더러 과문불입을 허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다.
인숙은 부탁을 하지않어도 의레 올 사람이 엇만
『나두 궁굼허니 편지가 왔거든 래일이라두 들러요. 내 기 다리구 있을게』
하고 문앞에서 작별을 하였다.
六
편집황혼의 길거리에는 떡가루같은 첫눈이 체로 치는듯 흿날린 다. 봉희는
『아이 눈좀봐. 벌서 눈이 오네』
하면서 길바닥에, 가로수우에 삽붓 삽붓 나려앉는 하얀 눈 송이를 힌나비를 잡듯이 쫓어가서 움켜도 쥐고 손바닥에 받 어서 금붕어같은 입으로 호호불어도 본다. 오늘처음 대한 남자의 앞에서 까닭몰을흥분에 붉으스름하게 달었든 봉희의 두뺨과 콧등에 나려앉는 차근차근한 눈송이의 촉감은 여간 상쾌한것이 아니었다. 봉희는 깨끗한 눈송이를 발로 짓밟기 가 참아 애처러운듯 무도를 하듯이『아스팔트』우에 구두끝 만 가벼히 젝이며 것다가
『어서 오』
하고 뒤떨어저 오든 올캐를 들려다 본다. 인숙은 등덜미가 으스스해서 털목도리로 얼굴까지 푹싸고 발등만 굽어보며 따러 온다. 첫눈이야 오건 말건 신기할것도 없는듯 머릿속 은 봉환의생각으로 가득차서 다른것은 생각할 여우가 없는 모양이다.
눈깜짝할사이에 회색빛 길거리에 전등불이 왔작들어왔다.
포도송이처럼 둘식 셋식 달라붙은 가등(街燈)은 무르익은 꽈 리처럼 밝았다. 그수없든 과리들은 풀솜덩이를 소담하게 하 나씩 이고 외투깃을 올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머리우에 으 스름한 불빛을 던진다.
봉희는 거름을 느추며 뒤떨어진 인숙을 돌려다보고
『새언니, 우리 집에 가지말구 이길루 남산 공원에나 올라 갈가. 은세게같은 설경이 좀 좋우 난 눈오는날 저녁이 여간 좋지안어. 이대루 정처없이 가봤으면……』
하고 시름 겨운 한숨을 내쉬고는
『새언니 그런데 그 세철이란 학생말요. 밥갑두 못내구 쫓 겨 댕기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유산 태평이유. 난 그런사 내 첨 봤어』
하고 올캐의 동의를 구한다. 집이 가까워 올사록 머리를 더 떨어 트리고 것은인숙은 여전히 대담이 없다. 집앞 골목 으로 접어 들자 봉희는 인숙의 머리우와 억개에 소복이 나 려 앉인 눈송이를 털어주며
『새언니 무슨 사실을 그렇게 허우? 남의 말은 들은척두 안허구서』
하고 억개를 겻듯허고 걸어 들어간다.
『내야 무슨 생각을 하든지 상관 없지만, 아마 자근아씨가 작구만 딴 생각을허나보』
하고 공연시리 마음이 들성거려서 집에도 들어가기 싫여하 는 시누의의 눈치를 보다가 (자근 아씨두 벌서 열일곱이지) 하고 동갑인 동무를 보다도 뛰어나게 숙성한 시누이의 나 이를 속으로 꼽아 보았다. 집 뒷문까지 와서
『난 동무집에나 가서 놀다가 올테야』
하고 돌처 서랴는 봉희를
『그러다 걱정 들으리다. 벌서 저녁두 다지냈을걸』
하고 인숙은 시누의의 소매를 억지로 끌고 들어갔다.
기다리고 바랐든 봉희의 편지는 오지않았다. 『이인숙씨 천전』이라고 씨워 오든 낮익은편지겉봉은 집안의 어느 구 석에서도 인숙을 기다리고 있지 않었다. 저녁에 배달시간도 지냈으니 전보나 아니면 체전부가 올리도 없다.
(내일 아침엔 꼭 오겠지. 무슨 까닭으로 못 나온다는 소식 이나마 전하겠지) 하고 저녁도 두어술 뜨는둥 만둥하고는 별당과 사당과 산 정에(싀어머니는 자작을 딸어문밖에나가있지만) 잠간 다녀 나려와서는 전신이 오슬오슬 치워서 일즉암치 이불을 뒤집 어 쓰고 누었다 봉희는 오래간만에『맨돌린』을 끄내서 먼지를 털고 줄을 골랐다. 추운줄도 모르고 미다지를 반쯤 열고는 뜰앞향나무 와 동청나무우에 소복히 나려 쌓이는 눈을 나려다 보면서
『도리고』의 『쎄레니-데』(小夜樂)을 탄다. 아직음정(音 程)도 똑바로 지풀줄 모르는 서툴른『맨돌린』이나마, 가늘 게 떠는 애련한『멜로듸』가 끓첬다 이었다하는대로 인숙의 외로운 꿈도 돌락 날락 하는듯. 첫겨울의 눈밤은 소리없이 깊었다.
七
편집이튼날 인숙은 일어 나지를 못했다. 앞머리가 쪼개내는듯 이 아프고 팔 다리가 쑤시것만
『가다가 쓸어저두 결석은 안헐테야』
하고 두번이나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서 팔을 집고 일어나다가 쓸어젔다. 신열이 높아서 관잣 노리가 벌덕벌덕 뛰는것이 봉희의 눈에도 보였다.
『억지루 기동을 했다가 큰병이나면 어떡허우. 몸이사못 펄펄 끓는구려』
하고 봉희는 올캐를 간신히 붙들어 눕히고
『괜이 내가 늦도록 문을열어 놔서 자다가 촉상이 됐남』
하고 지난밤의『쎈니멘탈』한 저의 행동을 뉘우치고 약을 지어다 다려 먹이도록 분별을 하고 학교를 갔다.
인숙이가 알어누어서 일어나지 못하기는 싀집 온뒤에 처음 이었다.
싀증죠모의 간병을 하느라고 이틀 사흘째 밤을 새웠고. 촌 종을 치르느라고 뼛끝이 쑤시도록 피곤한것도 강단으로참고 견디어 왔었다. 생병이 나서 쓸어 질듯 쓸어질듯한 것도 결 곡한 그의 성격이 앙바티어 왔었다. 그렇든것이 이번에는 남편을 고대하다가 실망락담한끝에 밤늦도록 바로 머리마테 서 찬야기를 쏘여서 감기와 몸살이호되게 들렸든것이다. 늦 인 아침때에야 큰동서가 탕약을 다려가지고 들어와서
『이렇게 아파서 어떡허나』
하고 머리를 집허보고 나간뒤에는 저녁때가 되도록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다.
혀에 백태가 끼고 조갈이 심하것만 냉수 한목은 얻어 마실 수가 없다. 제가시집 온 이후에 이집 식수들중의 누구나 어 이가 뜨끔만 하대도 제몸이 아픈것과 다름없시 약시중을 들 어 주고 단잠을 못자고 종종거름을 치지 않었는가. 아모리 공치사를 할줄 몰으는 인숙이엇만 제몸이 몹시괴로우니까 싀집 식구들에게 야속한 생각까지 들었다.
더구나 돌아간 어머니 생각이 것잡을수없시 났다.
(단 하루를 누어 알는데 이렇게 괴롭구 외로운 생각이 드 는데 몇해씩 그 지경으로 지내시다가 아무두 몰으게 숨을 끓으섰으니……) 하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더구 말고 일년동안만 뫼시구 살었드면) 하고 저의불효하였음을 마음아프게 뉘옷치다가
『나무는 고요코저 하나 바람이 머므르지않고 자식은 봉양 코저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않는다』
『樹欲靜而風不停 子欲養而親不得』
라고 소녀시대에 아버지가 들여주시든 고시의 한구절을 및 번이나 입속으로 뇌여보았다.
봉희는 하학종이 치는대로 집으로 다름질을 하다시피 하였다.
(나때문에 새언니가 병이난셈이니 어쩌면 좋와) 하고 마음이 졸이고 겁이 더럭 났든 것이다.
집앞 골목의 녹다남은 눈을 밟으며 급히 으는데 시컵언것 이 앞을 딱 막어서서 봉희는『애고머니』하고 옴치라들며 한러음 물러 섰다.
『장발이예요』
머리 긴 사나히는 은근히 머리를 숙인다. 봉희는
『왜 사람을 그렇게 놀내서요?』
하고 특 쏘아 부치고싶은것을 참고 조금 숙여 아는체를 해 보였다.
『지금 학교서 나오시나요?』
『네』
『오빠 헌데서 편지 않왔지요?』
『안 왔나 봐요』
『오빠가 왜 이번 방학에 안 나오는줄 아서요?』
『몰라요』
봉희의 대답은 쌀쌀스럽다 장발은 놓치기나 할듯이 더 가 까이 앞을 딱 막어서서
『어디 조용히 얘기 헐데가 있으면 좋겠는데 여기서야 ……』
하고 봉희를 어디로 데리고 가고싶은 눈치를 보인다.
『이골목이 조용허지 안아요? 무슨 말슴인지 어서 허시 죠』
봉희는 추근추근 하게 구는 장발이가 더구나 귀밑까지 길 러 느러트린 머리가 처다 보기도 싫여서 외면한채로 마지못 해서 댓구를 한다.
『그림 저리로 거닐면서 얘기를 헙시다. 잠간만……댁에서 누가 보드래두 안됐으니까요』하고 장발은 무슨 비밀이나 속삭이려는듯이 봉희를 꼬여낸다.
八
편집『오빠친구허구 얘기허는데 집안사람이 보면 어때요』
봉희는 헐말이 있거든 어서 당장에 허라는듯이 장발의 얼 굴을 깔끄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장발은 가치 거닐기도 마다는 여자를 억지고 끌고 갈수도 없이 (야 이색시 녹은녹은치가 않구나) 하면서
『저-다른게 아니라 말허기는 거북허지만……봉환군의 부 인헌테는 말슴허면 안돼요』
하고 뒤를 다지더니 봉희가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이는것 을 보고
『윤군이 첨 가서 한학기동안은 나허구 같은 하숙에 있으 면서 참다케 공부를 했어요. 학교에는 한시간두 빠지지 않 구 댕겼는데 그림재주가 비상허다구 선생들헌테 칭찬을 받 었세요. 그러다가 유명헌 화가에게 소개를 받어서 틈있는대 로 그화가의 아트리에(화실)를 찾어 댕기면서 다른 제자들허 구 그림을 그리다가』
하는데 용환이가 인력거우에서 팔장을 끼고 가다가 집뒤골 목안에 마조서서 숙은 거리는 두사람을 유십스러히 흘겨보 고 지나갔다. 그는 아직도 다리가 불인한 사람처럼 등내출 입에도 꼭 인력거를 잡숫는다.
『몸집은 뚱뚱허지만 속빈강정이돼서 인젠 것붓허겠군』
하고 가개장수나 동네사람들은 모발이 허연 비름먹은 당나 귀같은 인력거꾼을 동정하며 일변 거덜이난 윤대감의 큰자 제를 빈정거렸다.
봉희는 밀회나하다가 큰오라비에게 들킨것같어서
『그래서요? 어서 말슴허서요』
하고 자못불쾌히 장발에게 명령하듯 하였다. 그래도 장발 은 이야기를 하는것 보다도 봉희의 자색을 탐하기에 여념이 없는듯, 잠시도 혈색좋은 봉희의 얼굴과 불굴한 젖가슴에서 시선을 띠지않고 다시 뜸을 들이더니
『시방 그선생의 화실에 출입허는『모델』허구……고이(연 애)를 하느라구 열쭝해서……』
하고자 장말 말하기가 거북한듯이 어름어름 하는데
『그럼 옵바가 일본여자허구 연애를 허느라구 방학이돼두 집엔 안나오신단 말슴이죠』
봉희는 서슴지 않고 요령만 따서 도립따 묻고는
『네 그만허면 알겠어요. 집에 우환이 있어서 그만실례 합 니다』
하고 장발의 잔말이 미처나오기전에 지처둔 뒷대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장발은 그야말로 닭쫓던개 집웅처다보듯 봉 희가 급히 들어가는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흥 네가 얼마나 쌀쌀헌가 두구 보자』
하고 별르며 기다란 머리가 뒤덮인 뒷통수를 긁으며 돌아 섰다.
인숙은 아침보다도 더 한전을 심하게하며 봉희가 손을 잡 고 이마를 짚어 주는것도 모르고 신음하는 소리만높다.
『해열산 먹든게 어디 있을텐데』
하며 봉히는 올캐의 이마에 김이 서리는 땀을 씻겨주고 이 불우로 다리를 주물러 주다가 눈두덩이 뜨끈하며 눈물이 쏟 아지려는것을 손등으로 눌렀다.
『옵바두 몹슬사람이지 어쩌자구 유학간지 일년두못돼서 일본계집애 허구 연애를 허다니. 허구헌날 기다리다 못해서 몸살까지난 이 새언니를 두구서』
하는 소리가 전절로 나왔다.
남편이『모델』과 연애에 빠저서 방학에두 나오지 않는줄 은 꿈에도 모르고 꽁꽁 앓고 누은 올케가 여간 가엾어 보이 지가 않었다. 더구나 어머니하고까지 영결을하고 나서도 학 교에는 하로도 빠지지 않으려고 온갓 설음을 깃옷속에 감추 고 기를 쓰고 다니던것이 동정에 겨웠던 것이다 (그러니 이를 어째. 새언니헌테는 그런말을 참아 헐수도 없 구) 하고 큰걱정이 되여서 (내일 복순이헌테나 가서 의론을 해볼가. 뭐라나 의견이나 좀 들어보게) 하다가 (참 그 세철이란 학생이 와 있을걸) 하고는 혼자서 문답을 하였다.
九
편집이튼날 아침 봉희는 인숙이가 다니는 학교로 가서 담임선 생에게 윤인숙이가 병으로 결석한다는 말을 전하고 저의학 교로갔다가 하학종이 올리자 즉시 복순에게로 달려갔다. 그 날이 소제당번이었만 동무하고 바꾸어 치고 발을 급히 옮기 면서도 (그 세철이란 사람이 있으면 거북해서 그런 말을 어떻게허 나) 하고 한걱정을하였다. 그렇것만 또한편으로는 (아무리 누이니 동생이니 허는사이지만 그렇게 커다란 사 람하구 한방에서 어떻게 잔담. 남헌테만 의남매를 했다구 그러는거나 아닐가) 하고 제게는 털끝만치도 상관없는일까지 슬몃이 걱정이되 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느니 보다도 복순에게 대한 일종의 시기비슷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복순씨』
하고 봉희는 중문간에서 나즉이 불렀다. 복순이가 쓰는방 툇마루에는 찌그러진 여자구두가 놓이지 않고 흙묻은 운동 화한켜레 뿐이다.
(어디 나갔나 보다) 하면서도 봉희는
『복순씨 있어요?』
하고 이번에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와 거진 동시에 미다지를 열고
『어디 나갔세요』
하고 내다보는 것은 세철의 검붉은 얼굴이다. 그는 무엇을 입속에다 잔뜩 물어서 치통을 앓는 사람처럼 두볼이 부어가 지고 말을 얼버무린다. 그러다가 봉희를 보고 빗긋이 웃으며
『들어 오시지요 회관에서 누가와서 가치 나갔는데 곧 들 어올걸요』
『그럼 이따가 또 오겠어요』
봉희는 금새 얼굴이 조금굵어저서 눈으로만 인사를 하고 돌아 서려는데
『잠간만 들어와 기다리세요. 두분중에 오시건 꼭 기다려 달라구 부탁을 하고 나갔는데요』
세철은 그 시꺼먼 눈섶을 꿈적인다. 봉희는 어쩔줄을 모르 다가.
『밖에서 기다리지요』
하고 발굼치를 돌리니까
『나혼자 있으니까 거북해서 안들어 오시는군요. 그럼내가 나갈테니 춘데 들어와기다리세요』
하더니 세철은 신을 꼬이고 나올려고 든다. 봉희는 정말 어쩔줄을 몰라서 이번에는 귀밑까지 밝애졌다. 기왕 왔다가 복순을 아니보고 가기도 안됐고 들어올때까지 행길에서서 성거릴수도없는데, 그렇다고 처음 인사한 남자를 더구나 방 임자를 몰아내고서 들어 앉을수도 없다. 그래서 또다시 잠 간 망사리다가 용기를 내어
『들어갈께, 나오지 마서요. 미안 합니다』
하고 니오려는 세철의 앞을 막으며 방으로 들어 갔다. 방 속은 여전히 침침한데 봉희는 문지방을 넘어서다가 무엇이 물큰하고 밟혀서
『애그머니!』
하고 껑충 뛰어 올랐다.
『아 이거 안됐군요』
하고 세철은 씩씩 웃으며 신문지를 들고 봉희의 발바닥을 닦어 줄듯이 덤벼든다.
세철이가 점심겸 저녁겸으로 사가지고 들어와서 베물어 먹 다가 봉희를 보고 방구석에 치어논 호떡 조각을 밟었던것이 다. 봉희는 무안에 취해서 얼굴이 새빡개가지고
『이리 주서요 난 괜찮지만 잡숫는걸 밟어서……』
하고 신문지를 받어들고 끈적끈적한 양말 바닥을 닦았다.
『날더러 밥을 지라는게 귀찮어서 몰래 군것질을 하다가 벌역이 내렸군요』
하고 봉희가 쩔쩔 매는것이 더욱 웃으운듯 세철은 껄껄껄 호걸 웃음을 웃는다. 봉희는 그럴사록 잠자고 앉었으면 세 철에게 더욱 미안헌 생각이 들어서
『호떡만 잠숫구서 어떻게 지내서요?』
하고 세철을 동정하였다.
『호인들은 돌덩이같은 밀떡조각에 파 마눌만 어적어적 깨 무러먹구 사는데두 좀 튼튼해요』
하고 세철은 복순은 주려고 책상우에 따로 싸두었던 호떡 을 집어 반을 쭉 쪼개더니 이거좀맛 보세요』
하고 흑설탕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봉희의 앞으로 불 쑥 내어민다.
十
편집『어서 잡수서요. 밥대신 잡숫는 다며』
봉희가 물러앉으며 사양하니까 세철은
『봉희씨같은 귀족의 영양이 호떡먹는걸 구경이나 허섰겠 어요?『허꾸라이』초콜렡이나 잡숫는 입이 놀라게요』
하고 대뜸 화저까락 웃마디 꼬듯하고 싶은것을 꿀꺾참고
『그럴테지요 귀족의 영양이 호떡을 잡숫겠어요』
하고는 호떡조각을 한입에 틀어놓고 손가락에 묻은 설탕국 물을 핥어가며 어기어기 씹는다.
봉희는 당장에 모욕을 당한듯 슬그머니 골이 났다. 아무리 전부터 복순에게 들어서 간접으로 저를 잘알고 있었기로서 니 겨오 두번째 대면을한 여자에게 대해서 숙친한 사이에도 삼가야할말을 불쑥해서 남의 비위를 거슬러 놓고도 시침을 떼고 앉어서 저먹을 것만 꾸역꾸역 먹는 세철의 태도가 너 무나 무례하지가 않은가. 처녀다웁게 수집어만하든 봉희는 속으로 (그게 누구를 비꼬는 수잦야) 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왜 내가 귀족의 영양이라구 그랬어요?우리 아버진 귀족 인지 몰라두 난 그까짓 귀족이란 말두 듣기싫여요』
하고 한마디 여무지게 반박을 하였다. 그러고는 귀족이 아 니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세철이가 먹는 호떡을 빼아서라 도 먹고 싶었다. 세철은
『어이 목미여』
하고 냉수를 떠다 마시고나서
『봉희씨 혼자 개념적으루 귀족이 아니라면 되나요. 석달 씩 식비를 못내서 하숙을 쫓겨나구한달에 몇원안되는 월사 금이 밀려서 정학을 당허구와서 꾸드러진 호떡쪼각을 물어 뜯구앉은 고학생 이 지금 바루 봉희씨의 눈앞에 앉어있지 않어요? 그런데 말슴이죠. 그와 정반대루 학비걱정은 커녕 입만버리면 외씨같은 이밥에 고기반찬이 저절로 굴러들어가 구 겹겹이 털 옷으루 몸을 감은 장래의 귀부인이 자금바루 내눈앞에 앉어있지않어요? 그래두 봉희싸가『뿌르조아』가 아니라구 부인을 헐수가 있을가요?』
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봉희의 얼굴을 뚫을듯이 쏘이본 다. 봉희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만 말문이 막혔다. 그 러면서도 속으로는 (어쩌면 저렇게 체면없이 함부로 말을 헐가. 없는게 무슨큰 자랑인줄 아나봐) 하고 입이 뽀족해서 앉었는데 복순이가
『손님 오섰군』
하고 들러 왔다. 뽀루통하고 앉어서 인사도 잘 허지않는 봉희의 기색을 살피며
『혼자서 어려운 출입이구려. 그런데 왜 쌈허군난 사람같 우?』
하고 봉희의 곁에가 앉는데 세철이가
『나허구 쌈을 헐번 했다우』
하고 씩 웃으며 벌떡 일어 나더니
『신신대사(新陳代謝)를 해야지. 자 또 만납시다』
하고 봉희에게다 머리를 꾸벅해 보이더니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 봉희는 세철을 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조금 고처 앉 기만 하였다. 복순은 둘이 허는양을 번갈러 보더니
『정말 벌서 말다툼을 했나보이. 세철이가 또 험구를 놀렀 구면. 저애는 이세상에 무서운것이 없구. 어려운 사람두 없 으니깐. 조금만 제 비위에 틀리면 첨보는 사람헌테두 막 대 들거든 당초에 이면 처면은 안보니까. 여복해야 동무들헌테 급행열차란 별명을듣나. 계다가 고집이 세서 여간사람은 휘 어 잡지를 못해』
하고 봉희하고 무슨 사단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슬그머니 세철을 두던해서 변명을 뿌옇게한다 봉희는 한참이나 봉한듯이 앉었다가
『저 의론을 좀 헐말이 있어 왔는데……』
하고 인숙이가 대단히 앉는다는것과 장발이가 허든이야기 를 전한뒤에 그러니 어쩌면 좋와요 새언니가 가엾어 못견디 겠어. 앓는사람헌테 그런말을 참아 헐수는없구. 그렇다구 속 히는것두 죄루갈것 같아요』
하고 생후 처음으로 난처한 일을 당해서 어떻게 처리했으 면 좋을지 몰라 하는것이 곁에서 보기에도 가엾을 지경이다.
十一
편집복순은 고개만 끄덕이며 듣더니
『내 그럴줄 알었어. 그러길개 첨버텀 뭐랍디까 동경처럼 번화헌데로 유학을 가는게 인숙씨를 위해선 부지럽다구 그 랬지요 개꼬리삼년을 묻어두 황모는 안된다구 연골에 그런 짓을 몇번 허든 사람은 어딜가나 제버릇을 버리지 못허는 법이거든요』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고 나서
『기왕 일이 그렇게 됐으니 인숙씨헌테 말을 안할수두 없 죠』
한다 봉희는
『그러니 오빠만 나오기를 태산같이 믿구 있는데, 참아』
『모델허구 연애를 허느라구 정신이 빠저서 새언니 헌테는 편지까지 끓구 지낸달 말을 않는사람헌테 참아 어떻게해 요』
하고 난감해 하니까, 복순은 봉희의 얼굴을 불끄럼히 보더니
『봉희씨두 인젠『연애』란 말을 서슴지않구 허는구려 아 마 편지질을 허거나 뒤를 따러 댕기는 남학생두 꽤 있을걸.
저만큼『스타일』이 훌륭하니까…날더러 미인투표를 하라면 봉희씨헌테 맨먼서 할테야』
하고 그 어여쁘지못한 입술을 비웃는듯이 삐죽 거린다. 봉 희는 (내가 이집에 놀림을 받으러 왔나) 하고 자솜불쾌해서 (다시는 않을테야. 사람을 앉처놓고 번차레로 놀리는 법이 어디있어) 하소는 양말을 잡어다려 팽팽히 신고는 일어섰다.
복순이가 미인이라고 놀리는것은 그다지 볼쾌 할것은없건 만 인사를 한지 이틀 밖에 아니되는 세철이가『귀족의영 양』이라고 헌말이나 태도가 생각할사록 불쾌해서
『난 가요』
한마디를 하고 일어섰다.
『왜 내가 들어오자 일어서요? 내말에 화가 났구면. 젊음 여자헌테 미인이란 말밖에 더 듣기 좋은 말이 어디 있수.
난『박복순이 참 미인이야』하는 말 한마디만 들었으면 평 생에 소원이 없겠읍니다』
하고는 봉희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짜켓』자락을 잡어다 린다.
(누가 절더러 저렇게 못생겨 먹으랬나) 하고 붙잡는 복순의 손을 뿌리치고는
『새언니가 더 하지나 않은지 궁금해서 가봐야 해요』
하고 나와서 구두를 신는데
『그럼 먼저가요 조금 있다 나두 문병을 갈테니 그일은 걱 정말구 내게 맡겨 두어요 눈치를 봐서 신기가 좋은때 내가 말을 할테니』
하고 복순은 중문간까지 나와서 봉희를 보냈다.
봉희가 집에돌아와보니 인숙은 일어나 체경앞에서 푸수수 하게 일어난 머리에 군 빗질을 하고 앉었다.
『일어났구려 좀나아?』
봉희는 죽었든사람이 살어나 앉은듯이 눈을 크다랗게 뜨며 올캐를 반겼다.
『열은 좀 내렸 지만 미안해서 더누어 있을수가 있어야지 참 오빠에게서 편지가왔수』
『응? 무엇이라구? 나도 봐도 괜찮우?』
봉희는 거듬반색을 하며 손을 내 밀었다 인숙은 머릿상 설 합에서 편지를 끄내주며
『작은 아씨 이름으루 온걸 궁금해서 내가 먼저 뜯어 밧 수』
한다.
『옳지. 오빠헌테서 편지가왔으니까 정신이 번쩍 나서 일 어나 머리를 다 빗는구료. 편지가 약버덤 났군』
하고느 오라비의 편지를 급히 끄내 읽었다.
『방학에는 꼭 나가려 했더니 의외로 선생들과 함께『북해 도』지방으로 사생여행을 떠나게되어 겨울방학에는 부득이 귀국하지 못하니 직녀성에게도 섭섭히 알지말라고 전해다 오』
하는것이이 편지 사연이었다.
(가짓뿌렁-『모델』하구 신혼여행을 간게지) 하고 봉희는 편지를 꾸겨서 책상우에다 던젔다.
안해를 속여 달라고 저에게까지 거짓말 편지를 한 오라비 가 눈앞에있으면 머리라도 꺼들르고 싶도록 미웠든것이다.
『왜 그렇게 별안간 성을내우? 몸성히 여행을 다니신다니 좀 좋우?』
하고 쳐다보는 인숙의 눈은 몹시도 애련해 보였다.
十二
편집『뭐좀 먹었오?』
봉희는 오라비에게 대해서 본개한 틔를 보이지 않으려고 말끝을 돌렸다.
『억지로 기운을 차려보려구 아까 한술 떳는데 깔깔해 넘 길수가 있어야지. 입맛이 아주 소태 같어요』
『국물 한그릇 끌여다 주는사람이 없으니 된밥으로 어떻게 강다짐을 허겠우. 내 팟국이라두 끌여가지구 오리다』
『고만두. 자근아씨나 시장헐테니 어서 가 저녁을 먹우』
봉희는 올캐의 말은 들은체 만체하고 부엌으로 나려가서 손수 북어를 뚜드려 팟뿌리를 많히 넣고 국을끄리고 계란 하나까지 풀어서 쟁반에 바켜가지고 들어왔다 인숙은
『미안해 이를 어쩌우』
하면서도 지루뜬밥을 말어서 구슬같은 땀을 흘려가며 국한 그릇을 거진다 마섰다. 시누의 친절이 눈물이나도록 고마워 서 무슨맛인지도 모르며 훅훅 마섰든것이다.
『인전 푹뒤집어 쓰구 눠서 땀을 푹신 내우』
하고 봉희는 빈 그릇을들고 저도 저녁을 먹으러 나가서 별 당 할머니와 겸상으로 받었다.
별당 노인의 조석상에는 아직도 어육이 떠날때가 없다 불 도를 하면서도 살생한것이 상에올르지 않으면
『이렇게 소(素)를 허구는 근력을 차릴수가 없다. 녀이가 몇해나 봉양을허겠다구 백죄 맨밥을 먹이러 드느냐』
하고 은수저를 내어 던진다.
봉희는 그날 체조시간에 『빠스켓?뽈』을 했기 때문에 허 기가 지도록 시장하야서 밥을푹푹 퍼먹다가 상에놓인 맛난 냄새가 코를 찔르는 섭산적과 지글지글 끌는 생선조치를 보 고 문뜩 세철이 생각이 났다 냉수를 마시여가며 꾸드러진 호떡을 손까락에 무든것까지 할터가며 맛있게 먹고 앉었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듯 『귀족의 령양이 이런걸 어떻게 먹겠느냐』고 씨까 스르든 말을 다시 한번 뇌까려 보았다.
(참 정말 그런 소리를 들을만두 해. 그걸 먹구 끼니를 에우 구서 이 추은날밤 늦도록 길거리로 딱딱이를 치며 돌아다니 는 사람두 있는데 이 세상에 아무짝에 소용이 업는 우리 할 머니는 온종일 염주를 세구 념불을 허시느라고 손끝허구 입 뿌리 밖에 놀리는게 없는데도 이렇게 좋은 반찬이 물려서 못 잡수니 아무튼 이 세상이 고르지는 못해) 하고 세철에게로 동정이 갔다. 저의 자존심을 건드린 실레 의 말도, 여자앞이라고 조금도 꿈히지않고 일부러 체면을 차릴줄 모른다는 세철이로서는 솔직한 고백이요. 가식이 없 는 정말이었구나 하였다. 그러다가는 (주는걸 받어서 먹는체나 할걸. 내가 되려 실례를 하고 왔 어) 하고 후회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연한 암소고기를 무진 난 도질을 해서 구어논 섬선적을 씹다가
『아이 질겨』
하고 타구에다 배아터 내며 눈쌀을 찦으리고 동자치를 불 르라고 역정을 내는 할머니의 금니투성한 입과 잔금하나 없 이 피둥피둥한 얼굴을 유심히 치어다 보았다.
그날 저녁 봉희는 세철의 말이 저의 량심을 찌르는듯해서 좋와하는 고기는 한점도 씹지 않고 젓가락을 놓았다. 세철 이가 그 슷헌 눈섭을 일으켜 세고는 밥상을 노려보고 버티 고 선것같기도 하야서 정신상으로 위협까지 느겼든것이다.
인숙의 방에는 복순이가 와서 머리를 짚어주고 있었다. 자 작이 문박 붙장으로 나간뒤 부터 복순은 거침없이 대문으로 드나들었다. 과붓댁이
『저 너털머리는 뭘 어덕먹자구 풀방구리에 쥐다나 들듯 오는거야』
하고 입을 삐죽거리것만, 과붓댁을 끄려서 행동의 구속을 받을 복순은 찾어갔섰든것과, 또는 인제야 겨우 취한을 하 고 누은 사람의 귀에다가 행여나 그런 말을 들려줄가 하고 복순의 마진짝편에가 앉이며 살그머니 눈짓을 해 보였다.
복순은 알어 들었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도
『새언니가 이렇게 알어서 어떡허우?』
하고 딴전을 부첬다.
十三
편집그날밤 복순은 늦도록 인숙의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시골 로 강연을 하러 돌아 다니며 듣고본 것과 될수있는대로 웃 읍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추려서 들려주고 갔다. 봉환이가 일본여자와 연애를 하느라고 못나온다는 말을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고 시급히 전해줄필요도 없거니와, 부질없는 소리 를 긴한체하고 해서 앓는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 주기는 참 아 어려웠든것이다.
복순이가 간후 인숙은 남편의 편지를 끄내서 봉희가 꾹여 던지 조히를 엄지 손으로 인두질하듯 펴가면서 두번 세번 되풀이를 해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편지글시가 왜 이렇게 황당할가? 반듯반 듯 하게 네모를 지어서 글자 마다 주옥같이 박어쓰더니 ……) 하고는 의아해서 몇번이나 고개를 외로 꼬았다.
(급하게 려행을 하느라고 본주해서 아무렇게나 찍찍갈겨 쓴게지. 아무튼 맘드려쓴 편지가 아닌것만은 분명해) 하다가도 (아무리 바뿌기로 왜 나헌테는 한줄도 써보내지 않고 누의 헌테만 간접으로 했을가) 하고 조금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창밖에는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장독대의 함석 뚜껑이 벗 겨젔는지 왈가닥 달가닥 하고 서로 부딋는 소리가 시끄러 워, 인숙은 이불을 두집어 썼다. 억지로 잠을 청하자니 이번 에는 문풍지가 왕통이 벌이 날러드는 소리처럼 부-ㅇ 부-ㅇ 하고 떨리는것이 부섭도록 처량스러워서 몸을일으켜 복창의 미다지 손잡이를 붓잡어매였다. 그래도 문틈으로새여 인숙 의 속옷 속으로 기여드는 밤바람은 칼끝등 차고 매웁다.
인숙은 일어선 김에 불을끄려고 전등 손잡이를 쥐며 (작은 아씬 벌서 잠이 들었겠지) 하고 옆엣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잠이 든줄알었든 봉희는 모로 들어누어서 두눈을 깜박깜박하고 무슨생각을 골독히 하고 있다.
『작은 아씨 왜 그저 안자우? 불 끄리까?』
『끄우. 괘-니 잠이 안와서……』
하고 봉희는 시름겨운듯 자리옷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돌 아눕는다. 인숙은 불을끄고 누으며
『이렇게 날이 벌안간 더 극성스럽게 추어서 어떡허우? 하 루 세번이나 석탄을 짚이는 방에서 두 감기가들은 오빠가 다다미 방 에서 어떻게 이겨울을 지낸단말요? 더군다나 북 해도는 여름에두 눈이 녹지 않는데가 있다는네……』
하고 혼잣말 하듯한다.
봉희는 금세 잠이 들었을리 없는데 아모댓구도 아니하고 숨소리조차 죽이고 누었다. 그러나 어째서 오늘 저녁만은 무슨생각을 그다지 곰곰히하고 누었는지 인숙은 그까닭을 알리없었다 연초공장의 첫뚜- 소리가 들리기도전에 인숙은 골이 앞으 로 쏟아지는것 같은것을 이마를 집고 간신히 일어났다. 금 침도 가지고 가지 못한 남편이 설한풍이 심한 밤에 써늘한 다다미방에서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어 우들 우들 떨면서 잠 을 이루지못할 생각을 하니 자최없이 다니는꿈길 조차 데걱 데걱 일어붙는듯, 저혼자더운방에 두꺼운 한이불을 덮고 누 었기는 큰 죄나 짓는것같었든것이다.
인숙은 의장 맨 밑바닥에 넣어 두었든 이불을 끄냈다 그 이불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과천집에서 누에를 첬을때에 쌍 고치와 명주무거리를 몇해를 두고 모하 손소 피어서
『이걸랑은 뒷다가 늙은뒤에나 덮어라』
하고 두둑하게 두어주신 풀솜 이불인데. 작년겨을 방안의 자리끼가 얼든날밤에 끄내서 내외가 단 한번밖에 아니 덮었 었다.
인숙은 한이불의 풀솜을 빼어서 삼팔처네의 묵은 솜과 바 꾸어 두었다. 큰 이불이라도 보내고 싶으나 넘우 부피가 크 면 장발이편에 붙이기 염의가 없을것을 생각하고 처네를 맨 들었든것이다 (이걸 누구를 시겨 보내나 내가 장발이헌테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고……) 하고 턱을 고이고 앉어서 다시한번 남편의 생각을 하는데, 전등불이 꿈벅하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