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달/노변애가
< 지하실의 달
밤새껏 저 바람 하늘에 높으니
뒷산에 우수수 감나뭇잎 하나도 안 남았겠다.
계절(季節)의 조락(凋落), 잎잎마다 새빨간 정열(情熱)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
시간(時間) 좇아 약속(約束)할 수 없는 오 ― 나의 파종(破鐘)아
울적(鬱寂)의 야공(夜空)을 이대로 묵수(默守)할 것가!
구름이 끝 열규(熱叫)하던 기러기의 한 줄기 울음도
멀리 사라졌다. 푸른 나라로 푸른 나라로 ―
고요한 노변(爐邊)에 홀로 눈감으니
향수(鄕愁)의 안개비 자욱히 앞을 적시네.
꿈속같이 아득한 옛날 오 ― 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追放)된 지 내 이미 오래라.
거친 비바람 먼 사막(沙漠)의 길을
숨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心臟)은 찢어졌다.
가슴에 안은 칼 녹스는 그대로
오 ― 노방(路傍)의 죽음을 어이 참을 것가!
말없는 냉회(冷灰) 위에 질서(秩序)없이 글자를 따라
모든 생각이 떴다 ― 잠겼다 ― 또 떴다.
― 앞으로 흰 눈이 펄펄 산야(山野)에 나리리라
― 앞으로 해는 또 저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