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가 퍽 사람을 그리워하여, 사람 없이는 하루 한시라도 못 견디는 고독한 인간이다. 무턱대고 사람을 그리워한다. 두 번만 만나면 나는 어깨를 치고 허허 웃고 또 심지어 그이가 뚱뚱보라면 꾹꾹 그 배를 찌르고야 만다. 그래 한번은 뚱뚱보인 고등관(高等官)을 성내우고 말았다. 실로 말이지 내가 알기는 대신급(大臣級)에서부터 토역군(土役軍)에 이르기까지이다. 더욱이 그 부인네들과는 안면이 깊다. 그건 내가 '걸레장사'라는, 바로 이 고장 말로 하면 구주야이기 때문이다. 아니 구주야는 내 생활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어엿한 화가이다. 그림공부하는 사나이다. 그러나 고등관의 욕을 얻어먹은 뒤부터는 일체 관리들과는 교제를 끊었다. 아니 거래를 끊었다는 말이다. 나는 나를 멸시하는 인간을 멸시하기 때문이다. 하기는 이 고장에는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깨를 툭툭 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롭다. 고독하기 그지없다. 이 고독감은 기주적(期週的)으로 가분작이 침노를 한다. 그러면 아편쟁이가 아편 생각이 난 때처럼 못 견디게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하나도 얼싸안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나는 다룽치를 메고서 시바우라(芝浦)로 간다.

시바우라 해안은 조선 사람의 천지이다. 각 지방에서 온 뱃짐(주로 석탄짐)을 푸는 일을 하는 오키나카시(沖仲仕)는 거진 다 조선 사람이다. 모두들 검다란 합비를 두르고 머리를 수건으로 질러 매든가 혹은 도리우치며 험한 토수래모자들을 쓰고서 밤중 두세시경과 저녁때면 그 아근을 어깨를 들먹씨며 다닌다. 그리고 어느 함바(飯場)에나 열빡(十疊) 남짓한 방에 한 사십 명씩이 들고 날친다. 감잣더미처럼, 어쩌면 또 석탄더미처럼 밤만 되면은 그들은 여덟시부터 볏짚짝 같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세상 모르게 잠이 들어 꾸르렁거린다. 새벽 세시에 일을 나가고 저녁 세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것이다. 열두 시간의 고된 노동인데 또 새벽에 나가야만 되는 일이라 밤이 이른 터이다. 이런 일을 하는 오키나카시가 이 일 구에만 해도 한 육백여 명이나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모두 내 동무들인가 하면 아예 그럴 리가 없다. 나 같은 사람은 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여기서 섣불리 지나가는 사내 등이라도 한번 툭툭 쳤다가는 대번에 '와 익해' 하고 따귀를 얻어맞기는 예상사고 자칫하다는 태평양 바다에 귀신도 모르게 둘러메치우고 말 것이다. 사실로 이 사내들은 여기 바다를 동경만(東京灣)이라지 않고 태평양이라 부르고 바람은 아메리카 바람이라 한다. 만약 함바서 자는 놈 발가락 하나라도 어쩌다 잘못해서 밟았다가는 메리켕 주먹에 목숨 날아가기가 십상이다. 그러기 이런 곳에 내가 섣불리 동무를 많이 만들어 두었을 리도 만무하다. 동무라고는 꼭 하나밖에 없는데 이름은 지기미라 하는 영감이다. 나는 무시로 이 영감이 그리워져, 그리워지면 참지를 못하고 터불터불 찾아오는 것이다.

지기미는 아편쟁이로 벌써 나이 육십인데 게다가 키는 헛말로 구 척이나 되므로 아메리카 바람이 사나울 때는 몹시 부러질 듯이 휘청거린다. 그러나 지기미는 늘 마라톤 선수처럼 두 주먹을 가슴에 얹고서 헐떡거리며 분주히 다닌다. 참말로 이 인생을 마라톤이라 하면 그는 벌써 골에 가까이 왔기도 하려니와, 아주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듯한 선수이다. 다니면서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나 지기미지기미지기미 중얼거린다. 지기미기로서니 처음부터 제 이름이 없었으랴마는 이 때문에 이름이 지기미가 되고 말았다. 지기미도 인제는 제 이름이 본시부터 지기미이던 줄로 안다. 이 지기미도 아편이나 숨이 턱에 닿도록 그리울 때를 내놓고는 나를 언제나 그리고 있다. 하기는 아편이 그리웁기에 더욱 나를 몸이 달도록 기다릴 제도 있다. 아편 살 돈 단 두냥이 없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래도 잘사는 사람들의 뒷구멍이나 설구어 주면서 외롭지만, 지기미는 이 고역을 하는 사람들 구역에 살면서까지 천애고독한 인간이다. 거기 사람들은 지기미 같은 영감은 이 세상이 한 번도 필요로 하지 않는, 외려 조선 사람에게 수치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 이리하여 지기미는 더욱 외롭다.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가느스레 감은 눈이 반짝 하고 뜨인다. 그리고 그 조그만 눈이 차츰 서리서리 불빛을 띠는 것이다. 그 다음엔 하나밖에 없는 새까만 이를 빼어 물고 희희희 웃는다. 사실로 목소리가 새어 그런지 희희희 웃는다.

그런데 지기미는 늘 이 아근을 나가 돌아다니기만 한다. 밤에는 일꾼들이 혼곤히 자고 있는 이 함바 저 함바로 개웃개웃 다녀 보며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살금살금 들어가 쪼그리고 누워 본다. 하나 대체로 발들여 놓을 틈도 없을 뿐더러 심한 데는 너무 사람이 많아 수도(水道)간까지 이불을 끌고 나가 너저분히 누워서 코를 드르렁거리는 지경이다. 뿌엿한 십 촉 전등 하나가 이 모양을 내려다보며 묵묵히 지키고 있을 뿐 오시이레(押入)는 문짝을 젖혔는데 그 윗장에는 소위 세화야키라는 방 대장이 누워 자고 그 아랫장엔 권세 좋은 자가 누워 잔다. 지기미는 이 윗장 자리에 한없이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건 이런 함바에서도 뻐젓스레 못 눕고 한편 구석에 남 보고 쪼그리고 누워야만 되는 제 미미한 존재에 대한 내심의 반역일 것이다. 그래도 지기미는 제가 아무런 의미로라도 이 시바우라 해안에 존재의의를 가졌다고 생각고자 한다. 존재에 대한 하염없는 향수였다. 그래 모두들 일에 나가고 아무도 없을 적엔 방 안에 살금살금 들어와 이 윗장 대장 자리에 다리를 펴고 반듯이 누워 적이 만족하여 골골 잠이 들기도 한다. 나도 한번은 지기미 영감 바람에 멋도 모르고 그와 같이 여기서 자다가 흉쭈루기 그날 일을 나가지 않은 방 대장에게 들키어 허리가 부러지게 어지간히 얻어맞았다. 하기는 대체로 매일 밤 지기미가 달낙집 달낙집 하는 조선 밥장삿집 부엌 안에서 옹쿠리고 잠이 든다. 그러다가 밤중 한시 반쯤이면 일어나 밑바닥에 내려와 우들우들 떨며 밥 짓는 일을 도와 준다. 물도 길어다 주고 솥아궁에 불도 때어 주고 ―--- 그리고 두시 반쯤만 되면 예의 마라톤 선수 모양으로 할딱거리며 그 근방 모든 함바로 "회―잇, 오키로(일어나) 오키로!" "지칸(時間)이다. 회―잇, 회―잇, 오키로!" 하며 깨우러 다닌다. 누가 깨워 달래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지기미는 제가 얼마나 그들의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인가를 알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니 외려 제가 그것을 굳게 확인하며 또 그 인정을 즐기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도 지기미와 같이 밥장사 부엌에서 자고 난 새벽에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닌다. 지기미는 옛날 청소년 시절엔 한국 병정이었다. 병정 삼정위였더라 한다. 그래 그런지 '회―잇, 회―잇' 하는 소리에는 목이 갈린 듯하면서도 쇳소리 쟁쟁한 서슬 푸른 데가 있다. 이러면서 다니노라면 이 구석 저 구석으로부터 오키나카시들이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서 혹은 수건으로 졸라매고 아메리카 바람이 윙윙 불어 대는 큰길가로 줄렁줄렁 나온다. 그리고는 제각각 밥장사를 찾아 여기저기로 몰려간다.

이곳 저곳에 초롱불을 달고 파는 우동 구루마가 보이며 또 다히야키(牞燒), 후지미야키(富士見燒) 구루마도 군데군데 보인다. 그 앞에도 사내들이 쭉 둘러서 있다. 사방에서는 퉁퉁거리는 뱃소리가 들린다.

이윽하여 이 골목 저 골목에 기배듯한 그들의 행렬이 늘어선다. 전마선을 타고 큰 기선에 일하러 나가는 것인데, 전마선 속에서는 먼저 들어간 사내들이 석탄불을 펄펄 피우고서 둘러앉아 있다. 이런 전마선 불들이 여기저기서 뻘겋게 타올라 컴컴한 부두에 아주 거창스런 광경을 정한다. 멀리 바다 쪽에서는 등대불이 번쩍거린다. 그리고 또 바다 한가운데서 기선은 내가 여기 있노라는 것을 알리느라 횃불을 든다. 이리하여 시바우라 부두는 새벽 세시경엔 흥성흥성해진다.

"내가 이럭하잖음 저눔들 일들두 몬 나간닥하있까."

하며 지기미는 더욱 신이 나서,

"회―잇, 오키로 오키로."

"야, 우루사이하다 이 지기마!"

하고 한 녀석이 핀잔을 할 것 같으면, 지기미는 회―잇 하며 똑바로 기착을 하고 경립을 붙이고는 또 달아난다.

"회―잇 오키로 오키로 지칸다!"

이처럼 그는 필사적이다. 그래 가지고 한 바퀴 도로 돈 뒤에는 무슨 구미 무슨 구미 하는 조합집들 새 골목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 밑에서부터 그득히 일꾼들을 태우고 펄펄 불꽃을 날리면서 퉁퉁퉁 떠나는 전마선을 전송한다. 그걸 한참 서서 보고서는 또 되돌아나와 이번은 다른 골목 새로 들어간다. 거기서도 또 딴 배가 이 모양으로 떠나는 것을 전송한다. 이 전마선이 모두 바다 가운데로 떠난 뒤에야, 그는 비로소 제 중대한 임무를 마친 것처럼 생각하고 밥장사 달낙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올 제는 벌써 한풀 풀기가 없고 어깨가 척 늘어져서 아주 구슬픈 소리로 지기미지기미지기미 할 뿐이다. 돌아와서는 다시, 가마를 부시어 주기도 하고 물도 길어서 이층으로 나르고 방도 쓸어 주고 이런다. 그 뒤 날이 활짝 밝아서야 식은 밥덩이나 부엌에서 좀 얻어먹고는 또 내려온다. 이번은 빈 함바 속을 개웃거리며 혹시 아파서 일 못 나간 사내들이나 있으면 문안을 하는 차례다. 다리를 다쳐서 누워 있는 사내, 배가 아파 엎대고 있는 사내, 온몸이 쑤시고 아파 끙끙거리는 사내. 지기미는 창문 안으로 머리만 개웃이 들이밀고 '어디 아푼교' '어디 아푼교' 한다. 누워 앓는 사내들은 눈을 거슴츠레 뜨고 쳐다본다. 지기미는 위안을 주려는 듯이 희희희 웃어 보이며 아편을 먹으면 진작 낫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모두들 벌떡 일어나며 아무것이나 집어서 치려고 한다. 지기미는 그제는 혼이 나 회―잇 하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난다. 역시 그도 저 혼자만이 아편쟁이가 되어 외꼬투리로 외로움을 앓고 있다. 그 때문에 제가 아무한테도 더욱 수모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같이 아편을 먹는 동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지기미는 날 보고도 언제나 아편을 먹으라고 자꾸 못 견디게 굴어 댄다. 그러나 내가 그 말에 까딱이나 할 것인가. 이래뵈어도 나는 걸레장수일망정, 대지(大志)를 품고 바다를 건너온 사내다. 적어도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이다.

그리고 걸레장사를 하면서라도 그때의 큰 뜻대로, 나는 그림공부를 꾸준히 유속(維續)하고 있다. 길을 가다가라도 가분작이 그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룽치를 벗어 놓고, 스케치북을 끄집어낸다. 이 어엿한 사내가 아편을 먹어 될 말인가? 다만 나도 비길 데 없이 외로운데다, 이 지기미가 내 마음에 드는 다시없는 동무이기에 가까이 지낼 따름이다. 한번은 그래 그때도 지기미가 아편을 먹으라고 못살게 굴기에 나는 크게 어성을 높이어 꾸짖은 일이 있다. 지기미는 너무 슬퍼져 한참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만 쪼루루 눈물을 흘리었다.

"니가 아편을 먹우므 더 친해질 낀디……."

나도 아주 마음이 언짢아져서 묵묵히 앉은 채 고개를 그덕그덕 하였다. 알지 못하는 새에 눈물도 흘러내렸다. 에이 빌어먹을 것, 하나도 좋은 일이 없는데 나도 아편이나 먹으며 이 지기미와 같이 지내고 말까, 하는 유혹이 가슴속에서 불현듯 일어났다. 그러나 잇따라 바다를 건너오던 당시의 큰 뜻이 걸핏 떠올랐다. 나는 놀란 듯이 더욱 눈물을 흘리며 이번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니까 지기미는 더욱더욱 눈물을 흘리며 그러지 말고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먹으러 가자고 애걸한다. 그제는 나는 여지없이 마음이 약해져 더욱더욱더욱 눈물을 흘리며 그만 고개를 그덕그덕하다가, 제 김에 펄쩍 놀라 주먹을 들어 후려갈기려 하였다. 그러자 지기미는 내 몸뚱에 바싹 달라붙어 얼싸안더니 이번은 나보다도 더욱더욱더욱더욱 눈물을 흘리며 운다. 나는 이 모양을 보고는 어쩔 줄 모르게 측은하여져 용서를 하였다. 단연히 아편만은 먹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이게 어디서인고 하니 바로 밥장사네 달낙집을 오르내리는 넓지락한 구름다리 위 한쪽 끝에 달린, 모노호시(物干)대 위에서의 일이다. 달낙집이라고 하니 꽤 웬만한 집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인즉슨 창고 속 윗공간을 이용하여 널쪽을 펴고 곽하(廓下)를 새에 두고서 방을 좌우 쪽에 오륙 칸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아래쪽은 역시 창고로 늘 양하리꼬랴 소리가 들린다. 이 청간집 곽하 끝 구름다리 위와 옆집 지붕 위를 걸친 게 바로 우리들이 지금 있는 모노호시대(臺)인 것이다. 본시부터 말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이 이상야릇한 장소를 눈앞에 여실하게 이야기하기는 지난한 일이다. 그것도 혹시 연필로라도 스케치나 하라면 모르겠다. 여기서는 창고며 조합들 지붕 위를 넘어 동쪽에 바다가 보인다. 바닷바람은 이 위를 스쳐 넘어간다. 아래쪽은 이 모노호시대 때문에 태양이 내리쪼이지 못할 만치 좁은 불과 삼사 평의 막다른 틈새기다. 구름다리 바로 아래는 변소로 늘 구린내가 역하다. 변소 앞쪽 구석에는 수도가 있는데, 그 옆에는 버죽이 항아리 솔아궁 바께쓰 장통 물통 냄비 소랭이 이런 것이 지저분히 널려 있다. 밤에는 그래도 구름다리 꼭대기에 달린 전등불 때문에 좀 환히 비치지마는 낮에는 태양빛이 못 들어와 컴컴하기 그지없다. 달낙집 밥장사네가 여기서 밥을 짓는 터이다. 지기미가 불을 때어 주고 물을 길어 주는 데도 여기다. 그리고 이 모노호시대 한끝을 지붕으로 받든 집은 역시 함바로, 여기 일꾼들이 이 수도와 변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저녁때나 새벽때는 이 모노호시대 아래가 수라장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 시바우라 생활의 축위(縮圍)가 벌어진다. 그러나 여기에도 오후 한시부터 세시 새에는 얼룩이 지는 광선이 희미하게나마 비친다. 모노호시대의 잘게 연달린 널쪽 틈으로 태양이 그 밑에다 겨우 광선을 흘리기 때문이다. 그 광선이 그림자를 떨구면 그것은 마치 철창 쇠창살처럼 얼룩이 진다. 바로 이런 시간에 나는 지기미를 여기 모노호시대 위에서 만나 그를 스케치하고 있던 것이다. 지기미는 아까처럼 다시 널쪽 위에 누웠으며 나는 다시 목탄연필을 들었다.

지기미는 최근 일 개월 넘어는 해만 나는 날이면 아무리 춥고 떨릴지라도, 오후 한시부터 세시까지는 이 위에 포대자루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이 시간에는 아편을 밀매하는 한약방 영감네 집에 가 누워 있었지만, 요 달포 동안은 이 위에서 침으로 살도 뚫고 약도 빨고 그런다. 여기에는 또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이 얼룩이 지는 광선은 바로 두시쯤 해서는 아래쪽 함바 영창에 쭉 창살 같은 그림자를 던지었다. 이것이 마치 철창 속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방 안에 주는 것이다. 그래 이걸 보고 한 젊은 대학생이 발광한 일이 달포 전에 있었다. 본시가 심한 신경쇠약인데다 무슨 빌어먹을 통계를 한다고 야단을 치는 이상한 대학생이었다. 몰골은 고학생꼴이었다. 쩍하면 한다는 소리가, 조선 사람이 일년에 태어나기는 칠십구만 몇천몇백몇 명인데 죽기는 불과 삼십팔만하고 얼마얼마이니 결국은 사십만 얼마얼마 명이 느는 것이다. 장하지 않느냐는 둥, 일년에 조선 사람이 먹어 없애는 담뱃값이 얼마얼마, 그걸 가지고는 소학교를 몇천몇백몇십몇 개를 세울 수가 있는데, 술값을 쳐보면 일년에 얼마얼마이니, 이걸 가지고는 중학교를 암만 개를 만들 수 있잖으냐? 심지어는 조선 인구 통계로 보아 남자가 여자보다 삼백 몇만하고 얼마얼마 명이나 많은데,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는 모르나 게다가 첩을 얻은 놈이 얼마얼마이니 이래 가지고야 분배의 공평을 기할 수 있겠느냐는 둥 이런 따위다. 그리고 숫자는 신성불가침이다. 너희들도 잘살려면은 이런 숫자를 충분히 이해할 줄 알아야 된다. 아― 너희들은 이걸 모르는구나. 도대체 내가 여기를 무엇 하러 온 줄 아느냐, 나는 결코 고학생이 아니다. 대학생도 이만저만한 대학생이 아니고 어엿한 ××대학 사회학부 자비유학생이다. 결코 노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가를 알고자 찾아온 것이다. 나는 여기서도 이 며칠 동안 훌륭한 통계를 잡았다. 아니 훌륭하다기보다 그것은 너무도 비참한 통계이다. 사방 일 정(町) 이 지역에만도 너희가 몇백몇십몇 명. 그 중 독신자가 얼마얼마인데 알콜 중독자가 몇 명, 도박상습자가 몇 명, 위생지식이 없기 때문에 성병을 앓는 자가 얼마얼마. 아― 비참하다, 비참하다, 이러면서 그 다음은 통곡을 하는 것이다. 그래 몇 날 동안은 모노호시대 아래쪽 이 함바 안이 전보다도 더 수통스러웠다. 처음에는 후려갈기는 사내도 있었으나 나중에는 모두 웃고 넘기었다.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도 안 나가고 부들부들 몸을 떨며 누구의 것인지 노동복을 얻어 입더니 지카다비를 신고서 일터로 따라나갔다. 아마 돈이 아주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와서는 코피를 쏟으며 신열을 내며 신음소리와 같이 헛소리를 발하였다. 암만 몸이 건장한 사내라도 이곳 일에는 처음 몇 날은 된 고통을 보는 것이다. 그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코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 내가 그 지옥 같은 뱃속엘 왜 들어갔던 줄 아느냐? 너희들을 위해서이다. 너희들을 불쌍히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너희들이 얼마나 고역을 하는가 나 자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면서 가슴을 치고 부르짖곤 하였다. 모두 이 모양을 보며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불쌍한 생각에 침통하여졌다. 드디어 바로 그 다음날 두시쯤 해서, 즉 영창에 창살이 죽 늘어서는 시간에 그는 발광하고 만 것이다. 나를 왜 가두었느냐고 같이 아파 누워 있는 사람들을 죽인다고 덤비며 날뛰었다. 문안을 왔던 지기미는 그 옆으로 앞으로 뒤로 팔팔 뛰면서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아편을 들고 야단을 쳤다. 여러 사내들은 간신히 이 대학생을 붙들어 뉘어 놓았다. 그리고 진정을 시켜려다 못해 지기미의 약을 먹여 재우고 말았다. 지기미는 그날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모른다. 그 다음날 함바 사람들은 돈을 모아 차표를 사서 이 대학생을 고향 나가는 사람 편에 딸려 보내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지기미는 또다시 미치는 사내가 생겨서는 안 되겠다고 암만 바람이 세찬 추운 날이라도 흐리지 않으면 모노호시대 위에 태양이 있는 시간엔 꼭 여기에다가 포대자루를 펴고 드러누워 있는 것이다. 그러면 태양은 이 아래에다 창살 같은 얼룩이 지는 광선을 흘리지 못하였다.

지기미는 팔을 베고 창살 같은 널쪽 위에 누워서 또다시 간들간들 졸고 있다. 나는 한쪽 기둥에 몸을 기대고 묵묵히 목탄연필을 달리고 있었다. 그다지 춥지는 않으나 태평양바다로부터 쌀쌀한 조풍(潮風)이 불어와 때때로 그림종이를 펄럭거리게 한다. 동경만 검푸른 바다는 언제와 같이 지질펀히 누웠는데, 초봄의 태양이 그 위를 거닐며 은파금파를 일으키었다. 나는 문득 붓대를 멈추고 시름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쩐 일인지 차츰 나는 파선을 타고서 대해 위를 표류하기 시작한 것 같은 애수를 느끼었다. 함바에는 그날은 앓아누워 있는 이도 없는 모양으로 신음소리 하나 들려 오지 않는다. 때때로 부두에서 크레인 소리며 윈치가 울리는 소리 우르르르 들려 올 뿐, 또 때로는 통통배들이 빽빽거리며 오고 가는 소리만 들려 올 뿐, 나는 밑도끝도없이 혼자서 깊은 감상에 빠지고 말았는데 고향의 배따라기 소리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입으로부터 새어 나왔다.

"우리는 구태여 선인 되어 타고 다니는 것은 칠성판이요, 먹고 다니는 것은 사잣밥이라, 입고 다니는 것은 매장포로다. 요 내 일신을 생각하면 불쌍코 가련치 않단 말이냐, 지와자 좋다. 이선하야 배를 타고 만경창파 대해 중에 천리만리로 불려갈 제 양쪽 돛대는 직근 부러져 삼 동강이 나고 뱃머리는 빙빙 정신은 아득하야 삼혼 칠혼이 흩어질 제 사십 명 동무를 수중에 넣고 명천 하나님은 굽어 살피사 요 내 여러 동무를 살려 내소서. 나 혼자 살아나서 배 널조각을 집어 타고 무변대해로 내려갈 제 초록 같은 물에 안개 자욱하니 갈 길이 천리인지 만리인지 지향무처로구나……."

나는 여기까지 부르고 나니 자못 마음이 더 허전하여 목탄연필을 고쳐 잡으며,

"지기미 영감두 그만하면 인제는 고향엘 돌아가야지?"

하였더니,

"그게 무슨 소린고?"

하며 눈을 반짝하니 뜬다.

"내가 고향 가버리면 여기 이 사람들 뒤는 뉘가 치능교……."

"지랄할, 지기미, 혀를 날름날름 빼물지 말어, 어디 그릴 수가 있어야지."

하면서 나는 할 수 없이 웃었다.

"하기는 지기미 영감 소리가 맞었네."

"맞다마다. 고향이란 니나 내나 생각만 해도 고향이 되지만 이 사람들 일은 멀리서 생각만 해가지꼬 안 된닥하이까."

"것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제 김에 벌씬 웃으며,

"그러나 지기미 영감이야 갈래두 고향이 있어야지."

했다.

"와 내가 고향이 없어."

그는 눈이 파래지며 자못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별한 소리 다 하능기라. 현해탄만 건너서면 고향 아닌교."

한다.

"조선두 하구 넓은데 어디가 고향이냐 말이지?"

"횟, 얏보능기라. 횟, 경상도지."

"경상도두 남도와 북도가 있는걸, 어느 도냐 말이지."

"횟, 그저 경상도면 알어볼 께지라. 내가 고향 살 적엔 그런 분간 없던 게라."

"고개를 회회 젓지 말구. 아까처럼 점잖게 하구 있으라는데…… 그럼 떠나온 진?"

"삼십 년은 될능기."

"가만 누워 있어. 몸을 가지고 비틀지두 말구. 제길 그릴 수가 있어야지. 이제 코를 그릴 텐데 너무 고개를 개웃거리면 코 모양이 바루 잽히지를 않네, 저런 지기미 네 코끝 오른쪽에 큰 허물이 있능거?"

"전쟁하다 생긴 허물이지……."

"전쟁은 또 언제?"

"옛날 한국 병정쩍 횟, 그 원세개(袁世凱)란 놈이 민비청을 궁성 지키려 병정을 거느리구 와가지고 지드럭거리길래 한 놈을 총틀로 때려 부셨지. 그때 칼로 코끝을 찔리운기라. 나는 그래 그놈 귀를 하나 잘라 버리고 달어났지. 그 뒤 숨어 다니다 건너온 게지. 건너와서는 매일 연병장에만 가서 먼 바루 구경하며 살았능기라……."

하더니만 가분작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발딱 일어서서 기착을 하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래도 이왕에 군인이었던 탓인지 이 자세에도 서슬 사나운 데가 있다.

"어쩌자고 이래, 일어서지 말어."

하면서도 나는 다소간 그 위의(威儀)에 억눌리었다. 그 다음은 지기미는 아주 내 말은 귀에도 담지 않고 병정놀이를 실제로 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갓! 좌향좌 우향웃! 그리고 또 기착! 하고서 한 삼 분 가량 까딱도 않고 빳빳 굳어진 채 바다 편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무어라고 말하여도 그는 들은 체도 안 한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멍하니 바다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가물가물 전마선들이 돌아오는 게 보인다.

그제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나도 부슬부슬 일어났다. 그때 지기미는 다시 앞으로 갓! 하더니 구름다리를 통통통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저벅저벅 내려갔다. 그는 밑바닥까지 다 내려오더니 그 다음은 또 마라톤 선수처럼 앞가슴에 두 주먹을 대었다. 또 뛰려는 게 분명하기에 나도 스케치북을 옆채기에 넣고 준비를 하였다. 그제는 지기미는 한번 나를 돌아보더니 무어라고 또 호령을 하고 지기미지기미 하면서 달아났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다시 오키나카시를 태우고 돌아오는 전마선을 맞이하러 나가는 것이다. 바닷가에 나가 보니 바로 적전(敵前)상륙을 하려 드는 배들을 박은 영화 모양으로 전마선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수십 척 앞서거니 뒤서거니 널려서 이리로 향하여 온다. 거기에는 시꺼먼 사내들이 짐짝처럼 한 뱃짐씩 실려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지기미는 한 손을 들어 보이면서 회―잇, 회―잇 무어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나는 그 본때를 따라 회―잇, 회―잇 하며 손을 들어 뵈었다. 세시 반쯤까지에는 이 전마선들은 다시 제자리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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