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
나는 지팡이를 끌고 절 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날마다 돌던 코스로 걸으려다가 뒷고개턱에 이르러서, 안 걸어 본 길로 가 보리라는 생각이 나서, 왼편 소로로 접어들었다. 간밤 추위에 뚝 끊였던 벌레 소리가 찌듯한 볕에 기운을 얻어서 한가로이 울고 있다.
안 걸어 본 길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길 가에 무슨 위험은 없나 하여서 버스럭 소리만 나도 쭈뼛하여 마음이 씐다. 내 수양이 부족한 탓인가. 이 몸뚱이에 붙은 본능인가. 이 불안을 이기고 모르는 길을 끝끝내 걷는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보면 길 없던 곳에 첫 걸음을 들여놓은 우리 조상님네는 큰 용기를 가졌거나 큰 필요에 몰렸었을 것이라고 고개가 숙어진다. 성인이나 영웅은 다 첫길을 밟은 용기 있는 어른들이셨다. 세상에 어느 길 치고 첫걸음 안 밟힌 길이 있던가.
내가 걷고 있는 작은 길은 늙은 솔밭으로 산줄기 마루터기를 타고 서남쪽으로 올라간다. 보기 좋은 소나무들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서로 얽히어서 사람의 손 아니 닿은 솔밭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였다. 솔수풀에는 언제나 바람 소리가 있는 모양이어서 우수수 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산새들의 연연 한 노래도 들렸다. 대단히 고요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경치였다.
이름을 지으려면 무슨 「대」라고 할 만한 봉우리에 올라섰다. 노송들이 드문드문 둘러 서고 머리에는 평평한 데가 있었다. 내 몸은 마치 인간에서 멀 리 떠난 곳에 와있는 것 같았다. 기실은 평지에서 얼마 아니되는 데언마는 나무에 가리운 까닭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나무, 천리 만리를 가도 인간은 없을 것 같았다. 가엾은 우리 육안의 착각이다.
한 굽이 또 한 굽이, 한 봉우리 또 한 봉우리 돌고 오르는 동안에 어느덧 처음 가는 길의 불안도 없어지고 좋기만 하였다. 가슴 속은 후련하고 머리 속은 시원하여서 오래 떠났던 내 집에 돌아온 것도 같고 반가운 벗의 집에 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문득 같이 걷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나는 평생에 그리워하던 그림자들이 차례차례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같이 상상하면서 허전한 생각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내 마음 구석 구석에서 평생에 억제되었던 사랑들이 반항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치고 일어 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이 높이 산으로 올랐다. 고운 버섯들도 보고 이름 모를 이끼들도 보았다. 모두 생명이었다.
점점 길은 분명치 아니하고 나무는 뵈다. 거미줄이 많이 앞을 가리웠으나 거미는 날이 추워서 벌써 들어가 숨은 모양이었다. 인제는 거미줄에 걸릴 벌레도 없다. 그 거미줄들은 인제는 고물이요 역사적 유적에 불과하다. 나는 지팡이로 아낌없이 거미줄을 후려갈겨서 길을 내면서 젊은 솔이 자욱한 속으로 헤어 올랐다. 내 키보다 위는 가지와 잎으로 삑삑 하고 아랫도리는 줄기만이 얼레빗살 같다. 붉은 빛, 누른 빛 섞인, 비둘기보다는 크고 꿩보다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땅으로 기다가 나를 힐끗 보고는 용하게도 빗살 같은 나무 틈을 헤어서 날아난다.
나는 이 산 줄기에서는 제일 높은 봉인 듯한 곳에 올라섰다. 소리봉의 엄전한 양자가 바로 내 이마에 앞에 나선다. 나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나무와 산뿐이었다. 다만 내 마음이 세상에서 멀어졌다 하는 것만이 분명하였다.
문득 내 눈에는 회색 빛 나는 무엇이 보였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그것이 있는 곳으로 몇 걸음 가까이 갔다. 그것은 땅에 떨어 져 있는 죽은 새 한 마리였다. 솔새보다는 크고 비둘기보다는 작고 몸의 생김생김이 비둘기보다 경첩하고 주둥이가 몸에 비겨서 긴 것을 보니 아마 딱따구리 족속인 모양이었다. 아무려나 무척 어여쁘게 생긴 새였다. 사람의 눈에도 저렇게 어.쁘니 사랑하는 저희끼리의 눈에야 오죽이나 잘 생겨 보였을까.
어찌해 죽었을까. 무엇에 먹힌 것이면 몸이 온전할 리가 없고, 어디를 보아도 치명상이 될 만한 상처도 없다. 왼편 다리가 하나 뻗었으나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마치 땅에 펄썩 주저앉은 모양으로 한편으로 약간 몸을 기울이고 죽어 있었다. 커다란 검정 개미 한 마리가 시체 위로 돌아다니고 있었 으나 아직 몸이 썩지 아니하여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함인지 분주히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 작은 새가 몇 해 동안인지 모르거니와,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몸이 이 모양으로 던져진 것이 슬펐다. 그 털 한 대도 그에게는 귀 하던 것이다.
어느 때에 어떤 모양으로 죽었는지 모르지마는 그가 죽을 때에는 몹시 아프고 괴로왔을 것이다. 아프다 못해서 괴롭다 못해서 죽은 것이다. 그 고통이 옆에서 보는 자에게는 잠시 잠깐이었겠지마는 당자에게는 마치 끝이 없이 오래고 오랜 것이었을 것이다. 영원! 그렇다! 그 괴로움은 그에게는 무한하고 또 영원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혼자 괴로워하였을 것이다. 그의 부모와 형제와 자녀와 또는 사랑하던 여러 짝들이 그가운명하는 곁에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그는 아픈 것을 참다. 못하여 괴로운 소리로 울었을 것이지마는 그 소리를 들은 자가 누군가. 그래도 그는 그러할 기운이 있는 때까지는 몇 마디고 슬픈 소리를 지르며 무엇을 피하려는 듯, 무엇에 기대려는 듯 날개를 퍼덕 거리고 다리를 버둥거리고 고개를 내어 두르고 눈으로 허공에서 무엇을 찾 았을 것이다. 그렇지마는 그 소리를 들은 자는 누구? 그 애타는 광경을 본 자는 누구? 허공아 대답하라! 우주야 대답하라! 그것은 누구?
그는 혼자 애쓰다가 혼자 누구를 부르다가 죽었다. 아아 암만 불러도 쓸데 없구나 하는 듯이 그의 콩알만한 심장은 움직이기를 그쳤다. 그리고 아마 전신에 일순간의 경련이 있고는 그의 시체가 고요하듯이 우주는 고요하였다. 그의 그 물끓듯하고 불타듯하고 질풍과 같고 신뢰와 같고 천지가 온통 뒤집히고 오그라지고, 찌그러지고, 찢어지고 부서지는 듯하던 것은 모두 한바탕 꿈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랬는데, 그것이 어디 갔나? 그 괴로워하던 괴롭다고 보던 그는 어디로 갔나?
나는 지팡이 끝으로 두어 치 깊이, 서너 치 길이 되는 구덩이를 파고 이 이름 모를 새의 시체를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돌아섰다. 내 마음에는 그 새의 생각이 가득 찼다. 나는 오던 길을 걸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왔다.
내가 어찌하여서 오늘 여기 올 생각이 났을까. 내가 묻어 준 그 새와 나와 무슨 인연이 있었나. 그 새가 죽던 순간에 나를 간절히 생각하여서 그래 내가 오늘 여기를 왔나?
<내 시체라도 보아 주고 나를 묻어나 주오.>
이렇게 그가 생각한 것이 내 마음에 통한 것인가. 숙명통이 없는 나는 그와 나와의 전생의 인연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혹은 부자나 부부나 친구나 무슨 심상치 아니한 인연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제 몸은 새요 나는 사람이어서 크고 작기와 걷고 날기는 다르다 하더라도 그와 나와 마음은 하나요 인과응보의 줄은 하나다. 내게 기쁨과 슬픔이 있으면 그에게도 있었고 내가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 그도 그러하였다. 그의 몸에 돌던 피는 곧 내 몸의 피였던 것이다.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때때로 생각하고 는 그리워도 하고 설어도 하던 모양으로 그도 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에서 잠을 못 일고 그 어미가 품어 주던 것과 먹여 주던 정을 생각하였을 것이요, 내가 집에 두고 온 처자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도 이제는 어디 가 있는지 모르는 처자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도 그의 부모의 애욕으로 몸을 얻었고 또 그와 다른 어떤 새와의 애욕으로 여러 생명을 끌어들인 것이 나와 다름이 없다. 일언이폐지하면 그와 나와 같은 생명과 운명의 고리들이었다.
그는 무엇하러 새의 몸을 받아 가지고 나왔었나? 일생에 몇 천 마리 벌레를 잡아 먹고 배고픈 일 추운 일 다 겪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싸우다가 죽고, 다만 이것이 그의 목적이었을까.
나는? 나는 왜 사람이라는 이 몸을 타고 났나? 내 목적은? 내 사명은? 지난 일을 돌아보면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끌려서 웃고 울고 해맨 것만 같다. 내 뜻대로 된 일이 없는 것만 같다. 앞으로 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거니와 그 날이 어떤 모양으로 지나갈 것인고?
나는 쉬임없이 발을 옮겨 놓는다. 해가 늦음인지 솔바람은 아까보다 크게 울고 새의 소리도 더 많은 것 같다. 모두 그 죽은 새를 조상하는 것 같다.
우툴두툴한 소나무 껍데기에 숭숭 뚫린 벌레의 구멍, 소나무가 몸이 가려워서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간밤 된서리에 축축 늘어진 나뭇잎을 보면 추위를 피하여 땅 속으로 나무껍질 틈으로 황망하게 피난하는 수없는 생명들이 눈에 암암하다. 금년 추위는 피한다손 치더라고 조만간 그 새 모양으로 아프다 아프다 못하여 죽어버릴 몸이언마는 그래도 그것이 아깝고 소중하여 서 하루라도 한 시각이라도 더 길게 살아 보겠다고 중생들은 갖은 꾀를 다 부리고 있는 애를 다 쓰고 있다. 보약, 기도, 피난, 등등.
퍽 많이 내려왔다. 어디서 텅텅 나무 찍는 소리가 울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겨울 준비를 하노라고 나무를 훔치는 것이다. 산림간수한테 들키면 찍던 나무를 내버리고 지게와 도끼를 가지고 달아나 숨어야 한다. 그에게 아내와 아들과 딸들이 있을 것이다. 저도 살아야 그들도 살려야 한다. 그런데 그는 박복하여서 훔치고 훔치니 또 박복하다. 그도 필경은 죽으려니와 그가 사랑하는 처자들도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들킬까 보아서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저렇게 나무를 도벌하고 있다.
무엇하러났나? 왜 사나? 왜 죽나?
절에 돌아오니 손님 셋이 나를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나이 팔십이 가까운 애국자 조 여사. 하나는 공연한 장가를 들어서 어린것을 셋이나 낳아가지고 쩔쩔 매노라는 천축 중. 또 하나는 가난에 시달리면서 공부 도 계속하고 양반의 체통도 보전하려는 성생원이었다. 천축중은 김 여사의 심부름이었다. 김 여사는 욕심은 그대로 두고 향락도 그대로 하면서 극락 왕생을 위하여서는 염불을 모시고 천당을 위하여서는 십자 성호를 그리는 이었다. 조여사는 나를 민족 운동의 동지라고 허위단심으로 이 산골짜기에를 찾아오셨고, 김 여사는 나를 불교의 선지식이라고 중을 전인하여서 내게 법을 물은 것이요, 성생원은 나를 선배 학자라고 찾아왔다. 나를 알기는 다 달리 알았으나, 잘못 알기는 셋이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늘 묻어 준 새 이야기로 세 사람에 대한 공통한 대답을 삼았다.
(병술 시월 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