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어류/권15 대학2 大學二
朱子語類卷第十五
- 大學二
대학(2)
- 經下
경(하)
- 15:1 器遠問: “致知者, 推致事物之理. 還當就甚麽樣事推致其理?”
기원의 질문: 앎을 지극히 함(致知)이란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극치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응당 어떤 사건의 이치를 지극히 해야 합니까?
曰: “眼前凡所應接底都是物. 事事都有箇極至之理, 便要知得到. 若知不到, 便都沒分明; 若知得到, 便著定[1]恁地做, 更無第二著·第三著. 止緣人見道理不破, 便恁地苟簡, 且恁地做也得, 都不做得第一義.”
대답: 눈 앞에서 응접하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 사사건건에 모두 지극한 이치가 하나씩 있으니 (그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죄다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제대로 알면 반드시(決定著) 그렇게 실천하게 되니 차선책(第二著)이니 플랜C(第三著)니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다만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렇게 어설픈 것이다. 당장은 저런 식으로 해도 되겠지만 어떻게해도 최선의 것(第一義)은 해낼 수 없다.
曹問: “如何是第一義?”
조(기원)의 질문: 무엇이 최선의 것(第一義)입니까?
曰: “如‘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之類, 決定著恁地, 不恁地便不得. 又如在朝, 須著進君子, 退小人, 這是第一義. 有功決定著賞, 有罪決定著誅, 更無小人可用之理, 更無包含小人之理. 惟見得不破, 便道小人不可去, 也有可用之理. 這都是第二義·第三義, 如何會好! 若事事窮得盡道理, 事事占得第一義, 做甚麽剛方正大! 且如爲學, 決定是要做聖賢, 這是第一義, 便漸漸有進步處. 若便道自家做不得, 且隨分依稀做些子, 這是見不破. 所以說道: ‘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謂吾身不能者, 自賊者也.” 賀孫(62이후).
대답: '임금은 인(仁)에 머물고 신하는 경(敬)에 머물고 자식은 효(孝)에 머문다'같은 것들은 반드시(決定著) 이와 같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예를 들어 조정에서 봉직할 때에는 반드시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내쳐야 하니 이것이 최선의 것(第一義)이다. 공이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시상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決定著) 주살해야 하니, 소인을 쓸 수 있다는 이치나 소인도 포용한다는 이치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인을 완전히 내칠 수 없다는둥 소인을 써도 되는 이치가 있다는둥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차선책이니 플랜C니 하는 것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사사건건에서 도리를 완전히 밝혀내면 사사건건마다 최선의 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 무엇을 하든 강건하고 방정하고 올바르고 당당하다(剛方正大). 학문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최선의 것(第一義)이니 (이렇게 하면) 점점 진보가 있게 된다. 만약 자기는 그렇게는 못하니까 일단 자기 분수에 맞게 조금만(依稀) 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2]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은 못한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자라는 뜻이다.
섭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卓錄云:
<황탁의 기록>
曹兄問: "格物窮理, 須是事事物物上理會?”
<조형의 질문: 격물궁리(格物窮理)는 사사물물 각각의 상황상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曰: “也須是如此, 但窮理上須是見得十分徹底, 窮到極處, 須是見得第一著, 方是, 不可只到第三第四著便休了. 若窮不得, 只道我未窮得到底, 只得如此, 這是自恕之言, 亦非善窮理也. 且如事君, 便須是‘進思盡忠, 退思補過’, '道合則從, 不合則去'. 也有義不可得而去者, 不可不知.”
<대답: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궁리할 적에 반드시 십분 철저하게 하여 궁리가 지극한 데까지 이르러 최선의 것(第一著)을 알아야만 한다. 제 3책이나 제 4책 정도에 도달하고 그만두어버리면 안 된다. (제대로) 궁리하지 못할 경우, 그저 나는 아직 끝까지 궁리하지 못했다느니 이럴 수밖에 없었다느니 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변명이지 궁리를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임금을 섬김에 있어서는 반드시 '나아가면 충(忠)을 다할 생각을 하고 물러나면 잘못을 개선할 생각을'하고[3], '도가 맞으면 따르고 맞지 않으면 떠'나야[4] 하지만 의리상 떠날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몰라서는 안 된다.>
又云: “如‘不以舜之所以事堯事君, 賊其君者也; 不以堯之所以治民治民, 賊其民者也’, 這皆是極處.”
<다시 대답: '순임금이 요임금을 섬긴 방식으로 자기 임금을 섬기지 않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요,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 자는 백성을 해치는 자이다'같은 것들은 모두 지극한 지점(極處)이다.>
以下致知.>
<이 아래로는 치지(致知)에 관한 조목들>
- 15:2 致知所以求爲眞知. 眞知, 是要徹骨都見得透. 道夫(60이후).
치지는 참으로 알게(眞知)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다(眞知)는 것은 뼛속까지 꿰뚫어 투철히 이해하려는 것이다.
- 15:3 問: “致知莫只是致察否?”
질문: 치지는 그저 살피기를 지극히 한다(致察)는 것 아닙니까?
曰: “如讀書而求其義, 處事而求其當, 接物存心察其是非·邪正, 皆是也.” 㝢(61이후).
대답: 예컨대 책을 읽을 적에 그 의리를 구하고, 일을 처리할 적에 마땅하게 하기를 구하고, 사물을 접하거나 마음을 갈무리(存心)할 적에[5]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살피는 행위가 모두 이것(치지)이다.
- 15:4 因鄭仲履之問而言曰: “致知乃本心之知. 如一面鏡子, 本全體通明, 只被昏翳了, 而今逐旋磨去, 使四邊皆照見, 其明無所不到.” 蓋卿(65때).
정중리의 질문에 대한 답: 치지는 본심의 앎(本心之知)이다.[6] 예를 들어 거울은 본래 온전히 밝지만 흐린 것이 끼었을 뿐이다. 이제 점점 갈고닦아 사방을 모두 비추도록하면 그 밝음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 15:5 致知有甚了期! 方(41때).
치지에 무슨 끝날 기약이 있겠나?
- 15:6 致知工夫, 亦只是且據所已知者, 玩索推廣將去. 具於心者, 本無不足也.
치지공부는 역시 이미 아는 것에 의지하여 (그것을) 완미하고 확장해나가는 것 뿐이다. 마음에 갖춘 것은 본래 부족함이 없다.
- 15:7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若是窮得三兩分, 便未是格物. 須是窮盡得到十分, 方是格物. 賀孫(62이후).
격물(格物)에서 격(格)은 남김없이 다한다(盡)는 뜻이다.[7]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남김없이 다 파고들어야[8] 한다. 만약 2할이나 3할쯤 파고들었다면 격물이 아니다. 남김없이 100퍼센트 탐구해야 격물이다.
하손의 기록.
- <以下格物, 兼論窮理.>
<이 아래로 격물에 관한 조목들. 궁리에 관한 논의도 겸한다.>
- 15:8 居甫問: “格物工夫, 覺見不周給.”
거보(서우)의 질문: 격물공부가 두루 미치지 않는 듯합니다.
曰: “須是四方八面去格.” 可學(62때).
대답: 사방팔방에 나아가 탐구해야(格) 한다.
정가학
- 15:9 格物. 格, 猶至也, 如‘舜格于文祖’之‘格’, 是至于文祖處. 芝(63때).
격물의 격은 이르다(至)와 같다.[9] 예컨대 '순임금이 문조의 묘에 격하여(舜格于文祖)'[10]에서의 '격'은 문조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15:10 問: “格物, 還是事未至時格, 事旣至然後格?”
질문: 격물은 사태가 아직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태가 이른 뒤에 '격'하는 것입니까?[11]
曰: “格, 是到那般所在. 也有事至時格底, 也有事未至時格底.” 芝(63때).
대답: '격'은 (내가) 저것이 있는 곳으로 이르는 것이다. 사태가 이르렀을 때 '격'하는 경우도 있고 사태가 이르기 전에 '격'하는 경우도 있다.
지(芝)의 기록. (63세)
- 15:11 格物者, 如言性, 則當推其如何謂之性; 如言心, 則當推其如何謂之心, 只此便是格物. 砥(61때).
격물이란, 예를 들어 성(性)이다 하면 무엇을 성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하고 심(心)이다 하면 무엇을 심이라고 하는지 따져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격물이다.
지(砥)의 기록. (61세)
- 15:12 窮理格物, 如讀經看史, 應接事物, 理會箇是處, 皆是格物. 只是常敎此心存, 莫敎他閑沒勾當處. 公且道如今不去學問時, 此心頓放那處? 賀孫(62이후).
궁리와 격물은, 예컨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고 사태와 사물에 접하고 대응하면서 각각의 경우에 옳은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모두 격물이다. 그저 늘 이 마음을 간직하고 한가로이 일 없는 자리에 머물게 하지 말라. 그대가 한 번 말해보라. 요즘 학문하지 않을 때에는 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13 格物, 須是從切己處理會去. 待自家者已定疊, 然後漸漸推去, 這便是能格物. 道夫(60이후).
격물은 자신에게 절실한 지점에서부터 이해해나가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안정된 다음에 천천히 밀고 나가야 격물이 가능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14 “格物”二字最好. 物, 謂事物也. 須窮極事物之理到盡處, 便有一箇是, 一箇非, 是底便行, 非底便不行. 凡自家身心上, 皆須體驗得一箇是非. 若講論文字, 應接事物, 各各體驗, 漸漸推廣, 地步自然寬闊. 如曾子三省, 只管如此體驗去. 德明(44이후).
격물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좋다. 물은 사건과 사물이다. 사건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남김 없이 파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는데 옳은 것이면 행하고 그른 것이면 행하지 않는다. 대개 옳고 그름을 자신의 심신상에서 모두 체험(體驗)해야 한다. 문자를 강론하고 사건과 사물에 대응할 적에 각각의 경우(의 옳고 그름)를 체험하며 점점 미루어 넓혀간다면 (자신의) 지평이 자연히 드넓어질 것이다. 증자(曾子)가 매일 세 차례 반성한 것처럼 그저 이렇게 체험해가야 한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15 文振問: “物者, 理之所在, 人所必有而不能無者, 何者爲切?”
문진(文振)의 질문: 물(物)은 이치가 있는 곳이요 (이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하며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절실한 것인가요?
曰: “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 皆人所不能無者. 但學者須要窮格得盡. 事父母, 則當盡其孝; 處兄弟, 則當盡其友. 如此之類, 須是要見得盡. 若有一毫不盡, 便是窮格不至也.” 人傑(51이후).
대답: 군신, 부자, 형제, 부부, 붕우 관계는 모든 사람에게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배우는 이라면 더더욱 반드시 남김 없이 파고들어야 한다. 부모를 모실 때는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간에 지낼 때는 우애를 다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남김 없이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완전하지 못하면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16 格物, 莫先於五品. 方子(59이후).
격물(格物)의 대상은 오륜(五品)[12]이 최우선이다.
방자(方子)의 기록. (59세 이후)
- 15:17 格物, 是窮得這事當如此, 那事當如彼. 如爲人君, 便當止於仁; 爲人臣, 便當止於敬. 又更上一著, 便要窮究得爲人君, 如何要止於仁; 爲人臣, 如何要止於敬, 乃是. 銖(67이후).
격물(格物)은 이 사안은 이래야 하고 저 사안은 저래야 한다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임금은 어찌하여[13] 인에 멈추어야 하는지, 신하는 어찌하여 경에 멈추어야 하는지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수(銖)의 기록. (67세 이후)
- 15:18 格物者, 格其孝, 當考論語中許多論孝; 格其忠, 必‘將順其美, 匡救其惡’, 不幸而仗節死義. 古人愛物, 而伐木亦有時, 無一些子不到處, 無一物不被其澤. 蓋緣是格物得盡, 所以如此. 節(64이후).
'격물(格物)'이란, 효(孝)를 격(格)하려면 '논어'에서 효를 논한 많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하고 충(忠)을 격(格)하려면 반드시 '임금이 잘하는 것은 받들어 따르고(將順其美), 임금이 잘못하는 것은 바로잡아 제지해야(匡救其惡)'[14]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개를 지키고 의로움을 위해 죽어야 하는 것이다(仗節死義).[15] 옛사람들은 만물을 사랑하여 나무를 베는 것에도 때가 있었다. 이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곳이 조금도 없었으며, 이 은택을 입지 못한 사물이 하나도 없었다. 대개 격물을 완전하게 해냈기 때문에 이와 같았던 것이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19 格物, 須眞見得決定是如此. 爲子豈不知是要孝?爲臣豈不知是要忠?人皆知得是如此. 然須當眞見得子決定是合當孝, 臣決定是合當忠, 決定如此做, 始得. 㝢(61이후).
격물(格物)할 적에는 결단코 반드시 이러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식이 되어서 어찌 효도해야 함을 모르겠나? 신하가 되어서 어찌 충성해야 함을 모르겠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해야 함을 안다. 그러나 자식은 결단코 반드시 효도해야 하고, 신하는 결단코 반드시 충성해야 하며 결단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0 如今說格物, 只晨起開目時, 便有四件在這裏, 不用外尋, 仁義禮智是也. 如才方開門時, 便有四人在門裏. 僩(69이후).
지금 말한 격물의 경우, 다만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이미 네 가지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밖에 나가 찾을 필요가 없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바로 이 네 가지이다. 마치 (조금 전) 문을 열자마자 (여러분) 네 사람이 문 안에 있었던 것과 같다.[16]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1 子淵說: “格物, 先從身上格去. 如仁義禮智, 發而爲惻隱·羞惡·辭遜·是非, 須從身上體察, 常常守得在這裏, 始得.”
자연(子淵)이 말함: '격물'은 우선 자기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발현되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되는 것을 자기자신에게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늘 속에 간직해야 됩니다.
曰: “人之所以爲人, 只是這四件, 須自認取意思是如何. 所謂惻隱者, 是甚麽意思? 且如赤子入井, 一井如彼深峻, 入者必死, 而赤子將入焉! 自家見之, 此心還是如何? 有一事不善, 在自家身上做出, 這裏定是可羞; 在別人做出, 這裏定是惡他. 利之所不當得, 或雖當得, 而吾心有所未安, 便要謙遜辭避, 不敢當之. 以至等閑禮數, 人之施於己者, 或過其分, 便要辭將去, 遜與別人, 定是如此. 事事物物上各有箇是, 有箇非, 是底自家心裏定道是, 非底自家心裏定道非. 就事物上看, 是底定是是, 非底定是非. 到得所以是之, 所以非之, 卻只在自家. 此四者, 人人有之, 同得於天者, 不待問別人假借. 堯舜之所以爲堯舜, 也只是這四箇, 桀紂本來亦有這四箇. 如今若認得這四箇分曉, 方可以理會別道理. 只是孝有多少樣, 有如此爲孝, 如此而爲不孝; 忠固是忠, 有如此爲忠, 又有如此而不喚做忠, 一一都著斟酌理會過.” 賀孫(62이후).
대답: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바로 이 네 가지 뿐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반드시 스스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측은지심이란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한다는 이야기를 보자.[17] 이 우물이 이토록 깊고 험하여 빠지면 반드시 죽게 되는데 어떤 아이가 빠지려 한다! 자신이 그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어떤 좋지 못한 일을 자기 자신이 했다고 한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부끄러울(羞)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속으로(這裏) 반드시 그를 미워할(惡) 것이다. 얻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이익이 있거나, 혹여 비록 적절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다면 겸손하게 사양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18] 심지어 사소한 예절에서도(等閑禮數) 남이 나에게 베풀 때 분수를 넘어버리면 그것을 사양하여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 반드시 이렇게 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에는 각각 옳고 그름이 있다. 옳은 것은 자기 마음 속에서 반드시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반드시 그르다고 말한다. (마음이 아니라) 사건과 사물쪽에 가서 보면 옳은 것은 반드시 옳고 그른 것은 반드시 그르다. 그러나 옳게 여기고 그르게 여기는 판단의 근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이 네 가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하늘로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요순이 요순이 된 이유 역시 단지 이 네 가지 뿐이다. 걸왕과 주왕도 원래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네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면 비로소 다른 도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효(孝)에도 그 양상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해서 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똑같이 했는데 불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충(忠)은 충인데, 이렇게 해서 충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 똑같이 이렇게 했는데 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하나 모두 신중히 살펴보고 이해해야 한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22 問: “格物最難. 日用間應事處, 平直者卻易見. 如交錯疑似處, 要如此則彼礙, 要如彼則此礙, 不審何以窮之?”
질문: '격물'이 가장 어렵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에 대응하는 지점 가운데 평이직절한 것은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고 애매한 경우는 이렇게 하려 하면 저것이 장애가 되고, 저렇게 하려 하면 이것이 방해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탐구하는 것입니까?
曰: “如何一頓便要格得恁地! 且要見得大綱, 且看箇大胚模是恁地, 方就裏面旋旋做細. 如樹, 初間且先斫倒在這裏, 逐旋去皮, 方始出細. 若難曉易曉底, 一齊都要理會得, 也不解恁地. 但不失了大綱, 理會一重了, 裏面又見一重; 一重了, 又見一重. 以事之詳略言, 理會一件又一件; 以理之淺深言, 理會一重又一重. 只管理會, 須有極盡時.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成四節次第, 恁地方是.” 㝢(61이후).
대답: 어떻게 첫 술에(一頓)[19] 그렇게 (완벽하게) 격물하려 하는가? 우선은 큰 줄기(大綱)를 보아야 한다. 우선 전체적인 틀(mould)이[20]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보고 난 후에 그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旋旋)[21] 세밀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 나무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우선 나무를 베어 여기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에 순서대로(逐旋)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야 비로소 안쪽의 섬세한 부분이 드러난다. 만약 이해하기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모두 한번에 헤아리려고 한다면... 그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없다.[22] 그러나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있으면, 한 겹을 헤아리고 나면 그 안에 또 한 겹을 보게 되고, 그 한 겹을 이해하고 나면 또 다시 그 아래 한 겹을 보게 된다. 일의 자세함과 간략함으로 말하자면, (간략한 것) 한 건을 헤아리고 다시 (자세한 것) 한 건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치의 얕음과 깊음으로 말하자면, (얕은 것) 한 겹을 헤아리고 다시 (깊은 것) 한 겹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헤아리다 보면 반드시 완전히 남김없이 헤아리게 되는 때가(極盡時) 올 것이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는'[23] 것이 네 단계의 절차를 이룬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 15:23 或問: “格物是學者始入道處, 當如何著力?”
누군가의 질문: '격물'은 배우는 이가 처음으로 도(道)에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힘써야 합니까?
曰: “遇事接物之間, 各須一一去理會始得. 不成是精底去理會, 粗底又放過了; 大底去理會, 小底又不問了. 如此, 終是有欠闕. 但隨事遇物, 皆一一去窮極, 自然分明.”
대답: 상황을 만나고 사물을 접하는 사이에 각각 하나하나 헤아려야 한다. 설마하니 정밀한 것은 헤아리고 거친 것은 방치하며 큰 것은 헤아리고 작은 것은 탐문하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하면 결국 무언가 빠뜨리게 된다. 다만 사물과 상황에 따라 모두 하나하나 끝까지 파고들면 자연히 분명해진다.
又問: “世間有一種小有才底人, 於事物上亦能考究得仔細, 如何卻無益於己?”
재질문: 세상에는 약간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상황과 사물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유익하게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曰: “他理會底, 聖人亦理會, 但他理會底意思不是. 彼所爲者, 他欲人說, ‘他人理會不得者, 我理會得; 他人不能者, 我能之’, 卻不切己也.”
대답: 그들이 헤아린 대상은 성인도 헤아리지만, 그들의 (상황과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려는 의도(意思)는 (성인의 의도와) 다르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나는 헤아린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타인이 칭찬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절실하지 못하다.
又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聖人何事不理會, 但是與人自不同.” 祖道(68때).
다시 대답: '문왕과 무왕의 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남아있습니다. 현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불현자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합니다. 문무의 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24]라고 하였다. 성인이 어떤 일이든 헤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남들이 알아주기나 바라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히 다를 뿐이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24 傅問: “而今格物, 不知可以就吾心之發見理會得否?”
부(傅)의 질문: 이제 '격물'을 할 때,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마음에서 발현하는 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는 것 아닙니까?
曰: “公依舊是要安排, 而今只且就事物上格去. 如讀書, 便就文字上格; 聽人說話, 便就說話上格; 接物, 便就接物上格. 精粗大小, 都要格它. 久後會通, 粗底便是精, 小底便是大, 這便是理之一本處. 而今只管要從發見處理會. 且如見赤子入井, 便有怵惕·惻隱之心, 這箇便是發了, 更如何理會. 若須待它自然發了, 方理會它, 一年都能理會得多少! 聖賢不是敎人去黑淬淬裏守著. 而今且大著心胸, 大開著門, 端身正坐以觀事物之來, 便格它.” 蘷孫(68이후).
대답: 그대는 여전히 머리를 굴려 안배하려고 한다. 지금은 우선 사태와 사물에 나아가 격물해야 한다. 독서의 경우는 읽고 있는 글에서 격물하고, 남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에서 격물하고, 사물을 접할 때는 그렇게 접한 사물에서 격물하라. 정밀하든 거칠든, 크든 작든 모두 격물해야 한다. 오래도록 이렇게 하다가 회통(會通)[25]하면 거친 것이 곧 정밀한 것이요,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다. 여기가 바로 모든 이치의 단일한 뿌리가 되는 지점이다.[26] 이제 (그대는) 그저 발현된 지점에서만 헤아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두렵고 측은한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발현된 지점인데, 여기서 더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만약 자연히 발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일년 내내 몇 개쯤 헤아릴 수 있겠나? 성현은 사람들더러 저 암흑 속에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제 가슴을 크게 열고, 문을 넓게 열고, 몸을 단정히 하고 바르게 앉아 다가오는 사태와 사물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격물하라.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25 世間之物, 無不有理, 皆須格過. 古人自幼便識其具. 且如事君事親之禮, 鐘鼓鏗鏘之節, 進退揖遜之儀, 皆目熟其事, 躬親其禮. 及其長也, 不過只是窮此理, 因而漸及於天地鬼神日月陰陽草木鳥獸之理, 所以用工也易. 今人皆無此等禮數可以講習, 只靠先聖遺經自去推究, 所以要人格物主敬, 便將此心去體會古人道理, 循而行之. 如事親孝, 自家旣知所以孝, 便將此孝心依古禮而行之; 事君敬, 便將此敬心依聖經所說之禮而行之. 一一須要窮過, 自然浹洽貫通. 如論語一書, 當時門人弟子記聖人言行, 動容周旋, 揖遜進退, 至爲纖悉. 如鄕黨一篇, 可見當時此等禮數皆在. 至孟子時, 則漸已放棄. 如孟子一書, 其說已寬, 亦有但論其大理而已. 僩(69이후).
세상 사물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모두 낱낱이 격물해야 한다. 고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사물이 이치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했다. 예를 들어, 군주를 섬기고 부모를 섬기는 예법, (중요한 의식에서) 종치고 북치는 절차, (의식에서 사람들이)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몸동작을 모두 눈으로 익히고 몸소 실천했다. 더 자라서는 그저 이 이치를[27] 깊이 연구하고, 나아가 점차 천지, 귀신, 일월, 음양, 초목, 조수의 이치까지 이르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부가 쉬웠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예절(禮數)[28](의 전통이 모두 사라져서) 그것을 전혀 강습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성인이 남긴 경전에 의존하여 저 홀로 유추하고 연구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격물(格物)과 주경(主敬)[29]을 가지고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마음에서 고대인의 도리를 체득하게 하여 그 도리를 좇아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먼저 스스로 효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효심을 가지고 고대의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군주를 공경히 섬기는 것의 경우도 (먼저 그 이유를 알고 난 다음) 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인의 경전에서 설명하는 예법에 의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모두 깊이 연구하면 자연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구석구석) 스며들어 꿰뚫게 된다. '논어' 한 권을 예로 들자면, 당시 문인제자들이 성인의 말과 행동, (중요한 의식에서의) 몸가짐과 동작, 나아가고 물러나며 읍하는 것을 기록한 것이 지극히 상세하다. '향당(鄕黨)' 편을 보면 당시 이러한 예절(禮數)이 모두 (여전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서히 버려졌다. '맹자' 한 권을 보면, 그 논의가 이미 완화되어,[30] 역시 중대한 이치만[31] 논하고 있을 뿐이다.
한(僩)의 기록. (69세 이후)
- 15:26 問竇從周: “曾看‘格物’一段否?”
선생이 두종주(竇從周)에게 질문: '격물' 한 단락은 읽어보았는가?
因言: 聖人只說“格物”二字,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且自一念之微, 以至事事物物, 若靜若動, 凡居處飮食言語, 無不是事, 無不各有箇天理人欲. 須是逐一驗過, 雖在靜處坐, 亦須驗箇敬·肆. 敬便是天理, 肆便是人欲. 如居處, 便須驗得恭與不恭; 執事, 便須驗得敬與不敬. 有一般人專要就寂然不動上理會, 及其應事, 卻七顚八倒, 到了, 又牽動他寂然底. 又有人專要理會事, 卻於根本上全無工夫. 須是徹上徹下, 表裏洞徹. 如居仁, 便自能由義; 由義, 便是居仁. “敬以直內”, 便能“義以方外”; 能“義以方外”, 便是“敬以直內.” 德明(44이후).
(선생이) 이어서 말함: 성인은 단지 '격물'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이니, 이는 구체적인 사태와 사물에서 이치를 헤아리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나의 미미한 생각에서부터 온갖 사사물물에 이르기까지, 고요하든 움직이든, 거처, 음식, 언어 등 사태(事) 아닌 것이 없으며, 각각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함유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각각의 사태와 사물을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야 한다. 비록 고요한 곳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경건함(敬)과 방종함(肆)을 점검해야 한다. 경건함은 천리이고, 방종함은 인욕이다. 집에 있는 경우는 공손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하고, 일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건한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32]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寂然不動)지점에 나아가 헤아리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사태에 대응할 적에 오히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자빠져서(七顚八倒) 결국 자신의 그 고요한 것까지 뒤흔들어버리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사태에서 헤아리려 하고 뿌리가 되는 지점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위쪽으로도 아래쪽으로도[33] 끝까지 꿰뚫고, 바깥쪽으로도 안쪽으로도[34] 완전히 꿰뚫어야 한다. 인(仁)에 기거하면 저절로 의(義)로운 길을 걸을 수 있고, 의로운 길을 걸으면 곧 인에 기거하는 것이다.[35]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敬以直內)' 하면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義以方外)' 할 수 있으며, '의로 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으면 곧 '경으로 내면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36]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27 才仲問: “格物, 是小學已有開明處了, 便從大學做將去, 推致其極.”
재중(才仲)의 질문: '격물'은 소학의 단계에서 이미 개명(開明)된 것이 있고, 대학의 단계에서 (그 개명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나가서 (앎이) 그 극한에 이르도록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曰: “人也不解無箇發明處. 才有些發見處, 便從此挨將去, 漸漸開明. 只如一箇事, 我才發心, 道‘我要做此事’, 只此便是發見開明處了, 便從此做將去. 五代時, 有一將官, 年大而不識字. 旣貴, 遂令人於每件物事上書一名字帖之, 渠子細看, 久之, 漸漸認得幾箇字. 從此推將去, 遂識字.” 璘(62때).
대답: 사람은 발명(發明)된 부분이 없을 수 없다[37]. 조금이라도 발현된 부분이 있으면 거기에서부터 밀고 나가 점점 개명(開明)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에 대하여 발심(發心)하여, '내가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여기가 바로 발현된 부분이요 개명된 부분이니 거기에서 시작하여 해나가야 한다. 오대(五代) 때의 어떤 장수는 나이는 많은데 글자를 알지 못했다. 신분이 귀해진 그는 사람을 시켜 주변의 물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하였다. 그는 그것들을 꾸준히 세심히 보았고, 점차 글자 몇 개를 인식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밀고 나가서 마침내 글자를 알아보게 되었다.[38]
린(璘)의 기록. (62세)
- 15:28 問: “格物則恐有外馳之病?”
누군가의 질문: '격물'을 하면 바깥쪽으로 정신이 팔리는(外馳) 병폐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曰: “若合做, 則雖治國平天下之事, 亦是己事. ‘周公思兼三王, 以施四事. 其有不合者, 仰而思之, 夜以繼日, 幸而得之, 坐以待旦.’ 不成也說道外馳!”
대답: 만약 응당 해야 하는 것이라면 치국평천하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자기 (내면의) 일이다. '주공(周公)은 세 왕[39]의 치적을 포괄하여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셨다. 혹여 (세 왕이 했던 것 가운데) 오늘날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하여, 다행히 무언가 터득하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앉아서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40] 설마하니 주공의 마음도 바깥쪽으로 팔렸다고 하진 않겠지?
又問: “若如此, 則恐有身在此而心不在此,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有此等患.”
재질문: 그렇게하면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 있지 않아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는'[41]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曰: “合用他處, 也著用.”
대답: 그렇게 해야하는 경우에는 역시 그렇게 해야 한다.[42]
又問: “如此, 則不當論內外, 但當論合爲與不合爲.”
재질문: 그렇다면 내면이냐 외면이냐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만 응당 해야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뿐입니다.
先生頷之. 節(64이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29 若格物, 則雖不能盡知, 而事至物來, 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 雖不中, 不遠矣. 節(64이후).
'격물'의 경우, 비록 모두 완전히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일이 닥치고 사물이 왔을 때 큰 것은 조금 더해서 처리하고 작은 것은 조금 덜어내서 처리하면(大者增些子, 小者減些子)[43] 비록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雖不中, 不遠矣).[44]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0 問: “格物工夫未到得貫通, 亦未害否?”
질문: '격물' 공부는 꿰뚫는(貫通) 경지에 이르지 못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曰: “這是甚說話! 而今學者所以學, 便須是到聖賢地位, 不到不肯休, 方是. 但用工做向前去, 但見前路茫茫地白, 莫問程途, 少間自能到. 如何先立一箇不解做得便休底規模放這裏了, 如何做事! 且下手要做十分, 到了只做得五六分; 下手做五六分, 到了只做得三四分; 下手做三四分, 便無了. 且諸公自家裏來到建陽, 直到建陽方休. 未到建陽, 半路歸去, 便是不到建陽. 聖賢所爲, 必不如此. 如所謂: ‘君子鄕道而行, 半途而廢. 忘身之老也, 不知年數之不足也, 俛焉日有孶孶, 斃而後已! ’又曰: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憂之如何? 如舜而已矣.’” 卓(미상).
대답: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금 배우는 이가 학문을 하는 까닭은 반드시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도달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이 없어야 옳다. 다만 힘껏 앞을 향해 해나갈 뿐이다. 앞길이 희뿌옇고 막막하더라도(茫茫地白) 어디까지 왔는지 묻지 말라(莫問程途). (계속 앞을 향해 나가면) 잠시 후에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45] 어째서 해보기도 전에 '안 되면 그만둔다(不解做得便休)'는 한계(規模)[46]를 여기다 정해두려 하는가?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해내겠나? 처음부터 100%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50-60%정도만 하게 되고 처음부터 50-60%를 하려고 하면 결국 30-40%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처음부터 30-40%를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또, 그대들이 그대들 집에서 건양(建陽)까지 오려면 건양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건양에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가면 건양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성현이 하는 일은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예컨대 '군자는 도를 향해 가다가 중도에[47] 그만두면 자신이 늙었음을 잊고 앞으로 살 날이 부족한 것도 모르고 날마다 부지런히(孶孶) 몰두하다(俛焉)[48] 죽고 나서야 멈춘다.'[49] 고 하였고, 또 '순(舜)은 천하의 모범이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데 나는 여전히 평범한 촌사람을 면치 못하니 이는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여 어떻게 하는가? 순처럼 할 뿐이다.'[50]라고 하였다.
탁(卓)의 기록.
- 15:31 人多把這道理作一箇懸空底物. 大學不說窮理, 只說箇格物, 便是要人就事物上理會, 如此方見得實體. 所謂實體, 非就事物上見不得. 且如作舟以行水, 作車以行陸. 今試以衆人之力共推一舟於陸, 必不能行, 方見得舟果不能以行陸也, 此之謂實體. 德明(44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이 도리를 공중에 붕 뜬 물건으로 여긴다.[51] '대학'에서 이치를 파고들라(窮理)고 말하지 않고 그저 사물에 나아가라(格物)고만 말한 것은 곧 사람들더러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여 (도리를) 헤아리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이렇게 해야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접촉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배를 만들어 물 위를 가고, 수레를 만들어 육지를 간다.'[52]같은 경우 이제 시험삼아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배를 육지 위로 밀어보면 결코 운행할 수 없을 것이니, 그제서야 비로소 배는 과연 육지를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實體)'이다.[53]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2 問: “道之不明, 蓋是後人舍事跡以求道.”
질문: '도(道)가 밝지 못하게'[54] 된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 구체적인 상황(事跡)을 도외시하기 때문입니까?
曰: “所以古人只道格物. 有物便有理, 若無事親事君底事, 何處得忠孝!” 節(64이후).
대답: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저 '격물(格物)'이라고만 하였다.[55] 사물과 상황이 있으면 (그곳에) 이치가 있다. 만약 부모를 섬기고 군주를 섬긴다는 상황(事)이 없다면 충(忠)과 효(孝)(라는 이치를)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33 “窮理”二字不若格物之爲切, 便就事物上窮格. 如漢人多推秦之所以失, 漢之所以得, 故得失易見. 然彼亦無那格底意思. 若格之而極其至, 則秦猶有餘失, 漢亦當有餘得也.”
'궁리(窮理)'라는 두 글자는 '격물(格物)'이 친근하고 절실한(切)[56] 것에 미치지 못한다. 곧, 실제 사건과 사물의 현장에서 탐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사람들이 진(秦)나라가 실패한(失) 이유와 한나라가 성공한(得) 이유를 많이 분석해준 덕에 (우리는) 그 득실(得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격(格)하는 정신은 없다.[57] 만약 격(格)하여 그 극한까지 이르면 진나라에는 기존에 들춰내지 못했던 실패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한나라에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성공 지점이 있을 것이다.
又云: “格, 謂至也, 所謂實行到那地頭. 如南劍人往建寧, 須到得郡廳上, 方是至, 若只到建陽境上, 卽不謂之至也.” 德明(44이후).
다시 말함: '격(格)'은 '도달하다(至)'라는 뜻이다. 이른바 '실제로 가서 그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검(南劍)[58] 사람이 건녕(建寧)[59]에 가는 경우 반드시 군청(郡廳)에 도착해야만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만약 건양(建陽)[60]의 경계에만 도달했을 뿐이라면 도달했다고 하지 않는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34 格物, 不說窮理, 卻言格物. 蓋言理, 則無可捉摸, 物有時而離; 言物, 則理自在, 自是離不得. 釋氏只說見性, 下梢尋得一箇空洞無稽底性, 亦由他說, 於事上更動不得. 賀孫(62이후).
'격물' 같은 경우, '궁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격물'이라고 말하였다. 생각건대 그 까닭은 이치(理)라고 말하면 붙잡을 것이 없어서 사물이 때로 (이치를 논의할 때) 분리되어 버리지만, 사물(物)이라고 말하면 이치는 자연히 그 안에 있어서 본래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61] 석씨(釋氏)는 그저 '본성을 본다(見性)'고만 하는데, 결국 공허하고 근거 없는(空洞無稽)[62]본성을 찾는 것이다. 설령 그들의 말대로 한다 해도(亦由他說)[63] 실제 일에서는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35 所謂窮理者, 事事物物, 各自有箇事物底道理, 窮之須要周盡. 若見得一邊, 不見一邊, 便不該通. 窮之未得, 更須款曲推明. 蓋天理在人, 終有明處. “大學之道, 在明明德”, 謂人合下便有此明德. 雖爲物欲掩蔽, 然這些明底道理未嘗泯絶. 須從明處漸漸推將去, 窮到是處, 吾心亦自有準則. 窮理之初, 如攻堅物, 必尋其罅隙可入之處, 乃從而擊之, 則用力爲不難矣. 孟子論四端, 便各自有箇柄靶, 仁義禮智皆有頭緖可尋. 卽其所發之端, 而求其可見之體, 莫非可窮之理也. 謨(50이후).
이른바 궁리(窮理)란, 세상 모든 사태와 사물 각각에 본래 그 사태와 사물 고유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을 반드시 남김없이 완전히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만 보고 다른 쪽을 보지 않으면 두루 통달했다(該通)고 할 수 없다. 아직 다 탐구하지 못했다면 더욱 상세하게 미루어 밝혀야 한다. 생각건대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있으니 (우리 안에) 끝내 밝은 지점이 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이 밝은 덕이 있다는 뜻이다. 비록 물욕에 엄폐(掩蔽)되었다 하더라도 이 밝은 도리는 결코 민멸된(泯絶) 적이 없다. 밝은 곳에서부터 점점 밀고 나가서 궁극적으로 올바른 지점(是處)에 도달하면 내 마음에도 저절로 준칙(準則)이 있게 된다. 궁리(窮理)의 초반부는 마치 단단한 물체를 가공하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두들기면 힘쓰기가 어렵지 않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논하여 각각 손잡이(柄靶)가 생겼다.[64] 인의예지(仁義禮智)에는 모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頭緖)가 있다. 발현되어 나온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우리의 인식 시야에 들어온 본체(可見之體)를 찾아나가면 탐구(窮)할 수 없는 이치가 없다.
모(謨)의 기록. (50세 이후)
- 15:36 格物窮理, 有一物便有一理. 窮得到後, 遇事觸物皆撞著這道理: 事君便遇忠, 事親便遇孝, 居處便恭, 執事便敬, 與人便忠, 以至參前倚衡, 無往而不見這箇道理. 若窮不至, 則所見不眞, 外面雖爲善, 而內實爲惡, 是兩箇人做事了! 外面爲善是一箇人, 裏面又有一箇人說道: “我不好.” 如今須勝得那一箇不好底人去方是. 豈有學聖人之書, 爲市井之行, 這箇窮得箇甚道理! 而今說格物窮理, 須是見得箇道理親切了, 未解便能脫然去其舊習. 其始且見得箇道理如此, 那事不是, 亦不敢爲; 其次, 見得分曉, 則不肯爲; 又其次, 見得親切, 則不爲之, 而舊習都忘之矣. 子蒙(미상).
'격물'과 '궁리'로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으면 이치도 하나 있다. 가장 깊은 지점까지 탐구하고 나면 사태를 만나고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항상 이 도리와 조우하게 된다. 군주를 섬김에 있어서는 충(忠)이라는 도리와 조우하고,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효(孝)라는 도리와 조우하며, 거처할 때는 공손함을,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함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충실함(忠)을 (만나고),[65] 나아가 (도리가) 내 눈 앞에서 (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수레에 타고 있을 때는 도리가) 멍에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 이르면[66] 어딜 가든 이 도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게 된 것이다. 만약 가장 깊은 곳까지 탐구하지 못하면 보는 것이 참되지 않아서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악하게 되니, 이는 마치 두 사람이 따로 일하는 셈이다. 겉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속으로 '나는 나쁜놈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이제 그 좋지 않은 사람을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성인의 책을 배우면서 행실은 시정잡배일 수 있나! 이는 대체 무슨 도리를 탐구한 것인가! 이제 격물과 궁리를 말할 때, 반드시 이 도리를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해야 한다. 구습을 곧바로 깨끗하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우선 이 도리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어떤 옳지 않은 일이 있으면 감히 하려고 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 이해가 분명해지면 (그런 옳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하지 않게 된다. 그 다음으로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해지면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아서 구습을 모두 잊게 된다.
자몽(子蒙)의 기록.
- 15:37 不是要格那物來長我聰明見識了, 方去理會, 自是不得不理會.
'저 사물을 격물해서 나의 총명과 견식을 키워야겠다'하고나서 격물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덤벼드는 것이다.
- 15:38 大學說一“格物”在裏, 卻不言其所格者如何. 學者欲見下工夫處, 但看孟子便得. 如說仁義禮智, 便窮到惻隱·羞惡·辭遜·是非之心; 說好貨好色好勇, 便窮到太王公劉文武; 說古今之樂, 便窮到與民同樂處; 說性, 便格到纖毫未動處. 這便見得他孟子胸中無一毫私意蔽窒得也, 故其知識包宇宙, 大無不該, 細無不燭! 道夫(60이후).
'대학'에서 '격물'을 언급하지만 무엇을 격(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이가 노력을 기울일 곳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맹자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맹자는) 인의예지를 말하면 곧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깊이 탐구한다.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고 용맹을 좋아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면 곧 태왕, 공유, 문왕, 무왕의 사례를 깊이 탐구한다. 고금의 음악을 말하면 곧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同樂) 측면을 깊이 탐구한다. 본성(性)을 말할 때는 털끝만큼도 움직임이 없는 지점(纖毫未動)[67]을 깊이 탐구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그 어떤 사의(私意)도 맹자의 가슴 속을 가리거나 막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지식(知識)은 우주(宇宙)를 포괄한다. 큰 것도 모조리 포괄하고, 작은 것도 모조리 비춘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39 居甫問: “格物窮理, 但理自有可以彼此者.”
거보(居甫)의 질문: '격물'과 '궁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치는 다만 원래 이쪽저쪽 상황을 보고 가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曰: “不必如此看. 理有正, 有權. 今學者且須理會正. 如娶妻必告父母, 學者所當守. 至於不告而娶, 自是不是, 到此處別理會. 如事君匡救其惡, 是正理. 伊川說‘納約自牖’, 又是一等. 今於此一段未分明, 卻先爲彼引走. 如孔子說‘危行言孫’, 當春秋時亦自如此. 今不理會正當處, 纔見聖人書中有此語, 便要守定不移, 駸駸必至於行孫矣. 此等風俗, 浙江甚盛, 殊可慮!” 可學(62때).
대답: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치에는 정(正)[68]이 있고, 권(權)[69]이 있다. 오늘날 배우는 이는 우선 정(正)을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아내를 맞이할 때 반드시 부모에게 고한다'는 것은[70] 배우는 이가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다.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은 당연히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에 관해서는 따로 헤아려야 한다. 군주를 섬길 때는 임금이 잘못하는 것을 바로잡아 제지하는(匡救其惡)것이 정리(正理)이다.[71] 하지만 이천(伊川)이 '약속을 창문으로 들인다'[72]에 대해 해설한 내용은 또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다. 지금 이쪽 부분을[73] 아직 분명히 알지 못했는데 저쪽 부분으로 먼저 끌려가서는 안 된다. 공자가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74]고 했는데, 춘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역시 당연히 이와 같다.[75] 지금 정당(正當)한 곳은 헤아리지도 않고 성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자마자 그것을 꽉 붙잡고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에는 점차 행실마저 타협하여 낮춰서 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풍속이 절강(浙江)에서 매우 성행하니 큰 걱정이다.
가학(可學)의 기록. (62세)
- 15:40 問: “格物之義, 固要就一事一物上窮格. 然如呂氏楊氏所發明大本處, 學者亦須兼考.”
질문: '격물'의 뜻은 물론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깊이 파고드는(窮格) 것입니다. 하지만 여씨(呂氏)[76]와 양씨(楊氏)[77]가 밝힌 큰 근본(大本)이 되는 지점[78]도 배우는 이라면 역시 아울러 탐구해야 합니다.
曰: “識得, 卽事事物物上便有大本. 不知大本, 是不曾窮得也. 若只說大本, 便是釋老之學.” 德明(44이후).
대답: 알고 보면(識得)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 큰 근본(大本)이 있다. (낱낱의 사태와 사물에서) 큰 근본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오직 큰 근본만 말할 뿐이라면 그것은 석씨와 노자의 학문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41 致知·格物, 只是一箇. 道夫(60이후).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은 하나이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以下致知·格物.>
<이 아래로 치지와 격물에 관한 조목>
- 15:42 “致知·格物, 一胯底事.”
치지와 격물은 하나(一胯)[79]이다.
先生擧左右指來比並. 泳(66때).
선생이 양 손 손가락을 들어 병렬시켰다.
영(泳)의 기록. (66세)
- 15:43 格物, 是逐物格將去; 致知, 則是推得漸廣. 賜(66이후).
격물은 각각의 물건을 하나씩 탐구(格)해나가는 것이고, 치지는 점차 넓게 미루어 확장하는 것이다.
사(賜)의 기록. (66세 이후)
- 15:44 剡伯問格物·致知.
섬백(剡伯)[80]이 격물과 치지에 관하여 질문.
曰: “格物, 是物物上窮其至理; 致知, 是吾心無所不知. 格物, 是零細說; 致知, 是全體說.” 時擧(64이후).
대답: 격물은 각각의 사물에서 그 지극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내 마음에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격물은 구체적인 설명이고, 치지는 전체적인 설명이다.
- 15:45 張仁叟問致知·格物.
장인수(張仁叟)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物莫不有理, 人莫不有知. 如孩提之童, 知愛其親; 及其長也, 知敬其兄; 以至於飢則知求食, 渴則知求飮, 是莫不有知也. 但所知者止於大略, 而不能推致其知以至於極耳. 致之爲義, 如以手推送去之義. 凡經傳中云致者, 其義皆如此.” 時擧(64이후).
대답: 이치가 없는 사물도 없고 앎이 없는 사람도 없다.[81] 예컨대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82]에서부터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을줄 알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을줄 아는'[83]데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앎'이다. 단지 아는 것이 대략적인 데 그쳐서 그 앎을 지극한 경지에 이르도록 밀고 나갈(推致) 수 없을 뿐이다. '치(致)'는 손으로 밀어낸다(推送)는 뜻이다. 경전에서 '치'라고 한 곳들은 그 의미가 모두 이와 같다.
시거(時擧)의 기록. (64세 이후)
- 15:46 問: “知如何致? 物如何格?” 曰: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及其長也, 莫不知敬其兄.’ 人皆有是知, 而不能極盡其知者, 人欲害之也. 故學者必須先克人欲以致其知, 則無不明矣. ‘致’字, 如推開去. 譬如暗室中見些子明處, 便尋從此明處去. 忽然出到外面, 見得大小大明. 人之致知, 亦如此也. 格物是‘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之類. 事事物物, 各有箇至極之處. 所謂‘止’者, 卽至極之處也. 然須是極盡其理, 方是可止之地. 若得八分, 猶有二分未盡, 也不是. 須是極盡, 方得.”
질문: 지(知)는 어떻게 지극히(致) 하며, 물(物)은 어떻게 탐구(格)합니까?
대답: '어른 손을 잡고 다닐 무렵의 아이들(孩提之童) 중에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없고, 더 자라서는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이 없다.'[84]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앎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극한까지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욕(人欲)이 그 앎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반드시 먼저 인욕을 극복하여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하니, 그렇게하면 밝지 않은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젖히는(推開) 것을 의미한다. 마치 암실에서 미약한 빛을 발견하여 그 빛을 따라 나가다 보면 홀연히 암실 밖으로 나와서 이토록(大小) 큰 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앎을 지극히하는 것도 이와 같다. 격물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어야 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敬)에 멈추어야 한다' 같은 것이다.[85] 사태와 사물마다 각각 지극한 지점이 있다. 이른바 '멈춘다(止)'는 것은 바로 그 지극한 지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이치를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 비로소 멈춰도 되는 곳이 된다. 만약 80%는 되었는데 20%가 미진하다면, 그건 (멈출 지점이) 아니다. 반드시 남김없이 지극히 다하여야(極盡)만 한다.
又曰: “知在我, 理在物.” 祖道(68때).
다시 대답: 앎은 나에게 있고, 이치는 사물에 있다.
조도(祖道)의 기록. (68세)
- 15:47 黃去私問致知·格物.
황거사(黃去私)[86]가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致’字有推出之意, 前輩用‘致’字多如此. 人誰無知? 爲子知孝, 爲父知慈. 只是知不盡, 須是要知得透底. 且如一穴之光, 也喚做光, 然逐旋開剗得大, 則其光愈大. 物皆有理, 人亦知其理, 如當慈孝之類, 只是格不盡. 但物格於彼, 則知盡於此矣.”
대답: '치(致)'라는 글자는 밀어낸다(推出)는 뜻이 있다. 선배 학자들은 '치'자를 많이들 이런 의미로 썼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앎이 없겠나?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할 줄 알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할 줄 안다. 단지 이 앎이 미진할 뿐이니 반드시 투철하게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빛도 빛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벼파서(開剗)[87] 점점 크게 만들면 그 빛은 더욱 커질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고 사람들도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마땅히 자애하고 효도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단지 탐구(格)가 미진할 뿐이다. 그저 저쪽에서 사물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앎은 이쪽에서 남김없이 완전해지게 된다.
又云: “知得此理盡, 則此箇意便實. 若有知未透處, 這裏面便黑了.” 人傑(51이후).
다시 대답: 이 이치를 완전히 다 알게 되면 이 의지(意)가 진실하게 된다. 만약 앎에 아직 철저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이 안쪽이[88] 캄캄해져버린다.
인걸(人傑)의 기록. (51세 이후)
- 15:48 劉圻父說格物·致知.
유기부(劉圻父)[89]가 격물과 치지를 설명했다.
曰: “他所以下‘格’字·‘致’字者, 皆是爲自家元有是物, 但爲他物所蔽耳. 而今便要從那知處推開去, 是因其所已知而推之, 以至於無所不知也.” 義剛(64이후).
대답: 대학에서 '격(格)'과 '치(致)'라는 글자를 쓴 이유는, 모든 것이 본래 자신의 소유이지만 외물에 의해 가려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아는 곳에서부터 밀고 나가야 하는데, 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밀고 나가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49 郭叔雲問: “爲學之初, 在乎格物. 物物有理, 第恐氣稟昏愚, 不能格至其理.”
곽숙운(郭叔雲)의 질문: 배움의 시작은 격물에 있습니다. 사물마다 이치를 가지고 있지만 (저의) 기질(氣稟)이 어리석고 어두워 그 이치를 다 탐구해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曰: “人箇箇有知, 不成都無知, 但不能推而致之耳. 格物理至徹底處.”
대답: 사람은 누구나 앎을 가지고 있다. 설마하니 다들 아무것도 모르겠는가? 단지 밀고 나가서 앎을 지극히하지 못할 뿐이다. 격물은[90] 이치를 철저한 지점까지 탐구하는 것이다.
又云: “致知·格物, 只是一事, 非是今日格物, 明日又致知. 格物, 以理言也; 致知, 以心言也.” 恪(64때).
또 말함: 치지와 격물은 하나일 뿐이니 오늘 격물하고 내일 다시 치지하는 것이 아니다. 격물은 (파악의 대상인) 이치 쪽에서 말한 것이고, 치지는 (파악의 주체인) 마음 쪽에서 말한 것이다.
각(恪)의 기록. (64세)
- 15:50 問: “致知, 是欲於事理無所不知; 格物, 是格其所以然之故. 此意通否?”
질문: (일설에 의하면)[91] 치지는 사태의 이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고, 격물은 (해당 사태와 사물이) 지금과 같이 된 이유(所以然之故)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통합니까?
曰: “不須如此說. 只是推極我所知, 須要就那事物上理會. 致知, 是自我而言; 格物, 是就物而言. 若不格物, 何緣得知. 而今人也有推極其知者, 卻只泛泛然竭其心思, 都不就事物上窮究. 如此, 則終無所止.”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그저 내가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려면 반드시 실제 사태와 사물에 임하여 (이치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치지는 내쪽에서 말한 것이고 격물은 사물쪽에서 말한 것이다. 격물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앎을 얻겠나? 지금 사람들 중에서도 앎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저 막연히 자기 심사(心思)를 고갈시킬 뿐, 전혀 실제 사태와 사물에 임하여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끝내 멈출 곳(所止)[92]이 없다.
義剛曰: “只是說所以致知, 必在格物.”
나(義剛)의 말: 그래서 '앎을 지극히하는(致知) 것은 반드시 사물을 탐구하는(格物) 데에 달려있다'[93]고 말했습니다.
曰: “正是如此. 若是極其所知去推究那事物, 則我方能有所知.” 義剛(64이후).
대답: 바로 그렇다. (이미) 아는 것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서 저 사태와 사물들을 탐구할 때 자신에게 비로소 앎이 생긴다.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1 致知·格物, 固是合下工夫, 到後亦離這意思不得. 學者要緊在求其放心. 若收拾得此心存在, 已自看得七八分了. 如此, 則本領處是非善惡, 已自分曉. 惟是到那變處方難處, 到那裏便用子細硏究. 若那分曉底道理卻不難見, 只是學者見不親切, 故信不及, 如漆雕開所謂“吾斯之未能信”. 若見得親切, 自然信得及. 看得大學了, 閒時把史傳來看, 見得古人所以處事變處, 儘有短長. 賀孫(62이후).
치지와 격물은 물론 (배움의) 처음부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나중에가서도 이 (격물치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우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要緊)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求其放心)[94]. 만약 이 마음을 잘 수습하여 보존할 수 있다면 이미 70-80%는 (도리를) 이해한 것이다. 이와 같다면, 근본적인 지점(本領處)에서의 시비와 선악은 이미 분명히 이해한 것이다. 오직 변칙적인 상황의 경우 대처하기 어려울 뿐이니, 그런 케이스들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명확한 도리 같으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단지 (그 도리에 대하여) 배우는 이의 이해가 친근하고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칠조개(漆雕開)가 '나는 이것을 아직 믿지 못한다'[95]고 한 것과 같다. 친근하고 절실하게 이해하면 자연히 믿어진다. '대학'을 다 보고 나서 여유가 있을 때 역사서의 인물전기를 읽어보면 옛사람들이 변칙적인 사태에 대처한 것에 잘하고 못하고가 현저함을 볼 수 있다.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52 人之一心, 本自光明. 常提撕他起, 莫爲物欲所蔽, 便將這箇做本領, 然後去格物·致知. 如大學中條目, 便是材料. 聖人敎人, 將許多材料來修治平此心, 令常常光明耳. <按:“修治”字疑.> 伊川云: “我使他思時便, 如此方好". 倘臨事不醒, 只爭一晌時, 便爲他引去. 且如我兩眼光𪰻𪰻, 又白日裏在大路上行, 如何會被別人引去草中! 只是我自昏睡, 或暗地裏行, 便被別人胡亂引去耳. 但只要自家常醒得他做主宰, 出乎萬物之上, 物來便應. 易理會底, 便理會得; 難理會底, 思量久之也理會得. 若難理會底便理會不得, 是此心尙昏未明, 便用提醒他. 驤(60·65때).
사람의 마음은 본래 광명하다. 항상 그것을 일깨워(提撕) 물욕에 가리지 않도록 하여 이것을 본령(本領)으로 삼은 후에 격물과 치지를 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의 조목들은 재료이다. 성인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이 마음을 평정(平定)하여 항상 빛나게 하라고 가르쳤을 뿐이다<여정덕의 안(按):“수치(修治)”두 글자는 의심스럽다>.[96] 이천(伊川)이 말하길, '내가 내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였을 때 (내 마음이) 생각을 하는 것, 이렇게 되어야 좋다'[97] 사태에 임하여 일을 처리할 적에 깨어있지 않으면 순식간에(只爭一晌時)[98] 저쪽에게 이끌려가버린다.[99] 예컨대 내가 두 눈을 부릅떠 안광이 번쩍번쩍하고 더군다나 백주대낮에 큰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나를 풀숲으로 데려갈 수 있겠나? 나 자신도 혼침하고 또 어두운 곳을 가고 있으면 남들이 아무렇게나 끌고 가버릴 뿐이다. 그저 스스로 늘 자기 마음을 깨워서 주재하도록 할 뿐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만물의 바깥에 서서 사물이 오면 그에 대응한다. 다루기 쉬운 것은 바로 다룰 수 있고 다루기 어려운 것도 심사숙고하면 다룰 수 있다. 다루기 어려운 것을 다룰 수 없다면 이는 이 마음이 아직 어두워서 밝지 못한 것이니 일깨워야 한다.
양(驤)의 기록. (60세 혹은 65세)
- 15:53 問“致知在格物”.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에 관한 질문.
曰: “知者, 吾自有此知. 此心虛明廣大, 無所不知, 要當極其至耳. 今學者豈無一斑半點, 只是爲利欲所昏, 不曾致其知. 孟子所謂四端, 此四者在人心, 發見於外. 吾友還曾平日的見其有此心, 須是見得分明, 則知可致. 今有此心而不能致, 臨事則昏惑, 有事則膠擾, 百種病根皆自此生.”
대답: 지(知)란, 우리에게 본래 이 앎[100]이 있다. 우리 마음은 허명(虛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요컨대 그 앎을 지극히해야 할 뿐이다. 오늘날 배우는 이에게 어찌 한 조각의(一斑半點) 앎도 없겠나? 단지 이익과 욕심에 가려져서 그 앎을 지극히하지 못했을 뿐이다. 맹자가 이른바 사단(四端)은 이 네 가지가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서 밖으로 발현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吾友)[101] 평소에 (자신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본(的見) 적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분명히 보아야 앎을 지극히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마음이 있는데도 (앎을) 지극히하지 못하면 일을 처리할 때는 흐리멍텅하고 큰 사건이 있을 때는 혼란에 빠진다. 온갖 병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
又問: “凡日用之間作事接人, 皆是格物窮理?”
재질문: 일상 속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두 격물궁리입니까?
曰: “亦須知得要本. 若不知得, 只是作事, 只是接人, 何處爲窮理!”
대답: 역시 핵심(要本)을 알아야 한다. 핵심을 알지 못하면 그냥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 것일 뿐이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궁리를 하겠나?
- 15:54 致知分數多. 如博學·審問·愼思·明辨, 四者皆致知, 只力行一件是行. 言致, 言格, 是要見得到盡處. 若理有未格處, 是於知之之體尙有未盡. 格物不獨是仁孝慈敬信五者, 此只是大約說耳. 且如說父子, 須更有母在, 更有夫婦在. 凡萬物萬事之理皆要窮. 但窮到底, 無復餘蘊, 方是格物. 大雅(49이후).
'치지'는 비중(分數)이 크다. 예를 들어,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이 네 가지 모두 치지이며, 역행(力行) 하나만 행(行)에 관한 것이다.[102] '지극히하다(致)'니 '파고들다(格)'이니 하는 것은 남김없이 지극한 지점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이치에 파고들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본질(知之之體)에 있어 미진함이 있는 것이다. 격물은 인(仁), 효(孝), 자(慈), 경(敬), 신(信) 다섯 가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103] 이것들은 큰 얼개를 말한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부자(父子)'라고 말하면 그 안에는 필시 어머니도 포함되고 부부도 포함된다.[104] 무릇 모든 사태와 사물의 이치는 모조리 탐구해야 한다. 다만 바닥까지 탐구하여 남은 것이 없어야만 '격물(格物)'이다.
대아(大雅)의 기록. (49세 이후)
- 15:55 致知·格物, 便是“志於道”. “據於德”, 卻是討得箇匡格子. 義剛(64이후).
치지와 격물은 바로 '도에 뜻을 두었다'이다. '덕을 굳게 지켰다'[105]는 테두리(匡格子)[106]를 마련한(討得)[107] 것이다.[108]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6 格物·致知, 是極粗底事; “天命之謂性”, 是極精底事. 但致知·格物, 便是那“天命之謂性”底事. 下等事, 便是上等工夫. 義剛(64이후).
격물과 치지는 매우 거친 일이고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것은 매우 정밀한 일이다.[109] 그러나 치지와 격물이 곧 '천명을 성이라고 한다'는 일이다. 하등의 일이 곧 상등의 공부(工夫)이다.[110]
의강(義剛)의 기록. (64세 이후)
- 15:57 曹又問致知·格物.
조(曹)가 다시 치지와 격물에 관하여 질문.
曰: “此心愛物, 是我之仁; 此心要愛物, 是我之義; 若能分別此事之是, 此事之非, 是我之智; 若能別尊卑上下之分, 是我之禮. 以至於萬物萬事, 皆不出此四箇道理. 其實只是一箇心, 一箇根柢出來抽枝長葉.” 卓(미상).
대답: 이 마음이 대상(物)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인(仁)이고, 이 마음이 대상을 사랑해야만 한다 것은 나의 의(義)이다. 만약 이 일은 옳고 이 일은 그르다고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지(智)이다. 만약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구분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예(禮)이다. 모든 사태와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네 가지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은 단지 이 한 마음일 뿐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가지가 뻗고 잎이 자라는 것이다.
탁(卓)의 기록.
- 15:58 蔣端夫問: “‘致知在格物.’ 胸中有見, 然後於理無不見.”
장단부(蔣端夫)[111]의 질문: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의 경우, (먼저) 가슴 속에 본 것이 있은 후에야 보지 못하는 이치가 없게 됩니다.
曰: “胸中如何便有所見? 譬如嬰兒學行, 今日學步, 明日又步, 積習旣久, 方能行. 天地萬物莫不有理. 手有手之理, 足有足之理, 手足若不擧行, 安能盡其理! 格物者, 欲究極其物之理, 使無不盡, 然後我之知無所不至. 物理卽道理, 天下初無二理.” 震(65때).
대답: 가슴 속에 어떻게 바로 본 것이 있게 되는가? 아기가 걷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오늘 걸음을 배우고 내일 또 걸어서 습관이 오래 쌓인 후에야 비로소 잘 걸을 수 있게 된다. 천지 만물에는 이치 없는 것이 없다. 손에는 손의 이치가 있고, 발에는 발의 이치가 있다. 손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이치를 다할 수 있겠나! 격물이란 그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남김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의 앎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사물의 이치(物理)가 바로 도리(道理)이니, 천하에 애초에 두 가지 이치가 없다.[112]
진(震)의 기록. (65세)
- 15:59 問: “知至·意誠, 求知之道, 必須存神索至, 不思則不得誠. 是否?”
질문: '지지(知至)'와 '의성(意誠)'[113]의 경우, 앎을 구하는 방법으로는 반드시 정신을 보존하여 지극한 지점을 찾아야 하고(存神索至)[114], 사려하지(思) 않으면 진실해질 수 없습니다. 맞습니까?
曰: “致知·格物, 亦何消如此說. 所謂格物, 只是眼前處置事物, 酌其輕重, 究極其當處, 便是, 亦安用存神索至! 只如吾胸中所見, 一物有十分道理, 若只見三二分, 便是見不盡. 須是推來推去, 要見盡十分, 方是格物. 旣見盡十分, 便是知止.” 震(65때).
대답: 치지와 격물을 어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이른바 격물이란 단지 눈앞에서 사태와 사물을 처리하면서 각각의 경중을 따져 각각의 마땅한 지점이 무엇인지 깊이 탐구하는 것일 뿐이다. '존신색지(存神索至)'를 또 어디다 쓰겠는가? 예를 들어 자기 가슴 속에서 본 것으로 말하자면, 한 사물에 100%의 이치가 있는데 그 중 20~30%를 보았을 뿐이라면 다 보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꾸준히 밀고 나가서 100%를 모두 보아야 비로소 격물이다. 100%를 모두 보고나면 '멈추어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안(知止)' 것[115]이다.
진(震)의 기록. (65세)
- 15:60 或問: “致知須要誠. 旣是誠了, 如何又說誠意?" [116]
누군가의 질문: '치지(致知)'를 하려면 진실해야(誠)합니다. 그런데, 이미 (치지의 과정에서) 진실해졌는데 왜 다시 '성의(誠意)'를 말합니까?
"致知上本無‘誠’字, 如何强安排‘誠’字在上面說? 爲學之始, 須在致知. 不致其知, 如何知得! 欲致其知, 須是格物. 格物云者, 要窮到九分九釐以上, 方是格.” 謙(65때).
(대답): (대학에서) '치지' 앞에는 본래 '성(誠)'자가 없는데 어째서 억지로 '성'자를 앞에다 배치하고 말하는가? 배움의 시작은 반드시 치지에 달려있다. 그 앎을 지극히하지(致其知) 못하면 어떻게 (도리를) 알 수 있겠나(知得)? 앎을 지극히하려면 반드시 격물해야 한다. 격물이란, (도리를) 99%이상 탐구해내야만 비로소 '격'이다.
겸(謙)의 기록. (65세)
- 15:61 若不格物·致知, 那箇誠意·正心, 方是捺在這裏, 不是自然. 若是格物·致知, 便自然不用强捺.
격물치지하지 않으면 저 성의와 정심은 여기다 억지로 눌러두는(捺) 것이니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격물치지하면, 자연히 억지로 누를 필요가 없다.
- 15:62 元昭問: “致知·格物, 只作窮理說?”
원소(元昭)의 질문: 치지와 격물을 그저 궁리로 설명하시는 것입니까?
曰: “不是只作窮理說. 格物, 所以窮理.”
대답: 그저 궁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격물은 궁리의 방법(所以)이다.[117]
又問: “格物是格物與人. 知物與人之異, 然後可作工夫.”
재질문: 격물이란 사물과 사람을 '격'하는 것입니다. 사물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나서야 (궁리에)[118] 힘써 노력(工夫)할 수 있습니다.[119]
曰: “若作致知在格物論, 只是胡說! 旣知人與物異後, 待作甚合殺? 格物, 是格盡此物. 如有一物, 凡十瓣, 已知五瓣, 尙有五瓣未知, 是爲不盡. 如一鏡焉, 一半明, 一半暗, 是一半不盡. 格盡物理, 則知盡. 如元昭所云, 物格·知至當如何說?”
대답: 만약 (그런 말로)'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는 구절을 해설한다면 이는 헛소리일 뿐이다. 사람과 사물이 다르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장차(待) 어떻게(作甚) 마무리하려(合殺) 하는가?[120] 격물은 이 사물을 남김없이 '격'하는 것이다.[121]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 모두 열 조각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다섯 조각은 알았지만 나머지 다섯 조각은 아직 알지 못한다면 이는 남김없이 다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거울이 있는데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면 이는 절반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완전히 '격'하면 앎은 남김 없이 완전해진다. 자네(元昭)의 말과 같다면 '사물을 격 한 뒤에 앎이 지극해진다(物格知至)'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122]
子上問: “向見先生答江德功書如此說.”
자상(子上)의 질문: 전에 선생님께서 강덕공(江德功)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123]
曰: “渠如何說, 已忘卻.”
대답: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잊어버렸다.
子上云: “渠作接物.”
자상: 그는 (격물을) '접물(接物)'로 풀었습니다.[124]
曰: “又更錯.”
대답: 더더욱 틀렸구나.
- 15:63 陳問: “大學次序, 在聖人言之, 合下便都能如此, 還亦須從致知格物做起? 但他義理昭明, 做得來恐易.”
진(陳)의 질문: '대학'의 (팔조목) 순서는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역시 치지와 격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그래도 성인은 의리(義理)에 매우 밝으니 (격물치지)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曰: “也如此學. 只是聖人合下體段已具, 義理都曉得, 略略恁地勘驗一過. 其實大本處都盡了, 不用學, 只是學那沒緊要底. 如中庸言: ‘及其至也, 雖聖人有所不知不能焉.’ 人多以至爲道之精妙處. 若是道之精妙處有所不知不能, 便與庸人無異, 何足以爲聖人! 這至, 只是道之盡處, 所不知不能, 是沒緊要底事. 他大本大根元無欠闕, 只是古今事變, 禮樂制度, 便也須學.” 寅.
대답: (성인) 역시 그렇게 배운다. 다만 성인은 애초에 골격(體段)[125]이 이미 갖춰져 있고 의리(義理)에도 모두 밝으니 대략적으로 그렇게 한 번 점검해보는 것이다. 사실, 큰 근본이 이미 다 되었으므로 더 배울 필요가 없다. 그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는 것 뿐이다. '중용'에서 말하길, '지극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성인도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126]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극한 부분'을 도(道)의 정묘(精妙)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도의 정묘한 지점에 관하여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지극한 부분'은 단지 도를 남김없이 다 한 지점이요,[127]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긴요하지 않은 것들일 뿐이다. 성인은 큰 근본과 뿌리에서는 부족함이 없으나, 고금(古今)의 사변(事變), 예악제도(禮樂制度)는 역시 배워야 한다.
인(寅)의 기록.
- 15:64 子善問物格.
자선(子善)[128]이 '물격(物格)'[129]에 관하여 질문함.
曰: “物格是要得外面無不盡, 裏面亦淸徹無不盡, 方是不走作.” 恪(64때). <以下物格.>
대답: 사물이 '격'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바깥쪽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안쪽으로도 역시 맑고 투명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여야 비로소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된다.
각(恪)의 기록. (64세)
<以下物格.>
<이 아래로 물격(物格)에 관한 조목들>
- 15:65 上而無極·太極, 下而至於一草·一木·一昆蟲之微, 亦各有理. 一書不讀, 則闕了一書道理; 一事不窮, 則闕了一事道理; 一物不格, 則闕了一物道理. 須著逐一件與他理會過. 道夫(60이후).
위로는 무극(無極)인 태극(太極)[130]에서부터 아래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미미한 곤충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각 이치가 있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 책 한 권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고, 사태 하나를 탐구하지 않으면 사태 하나어치의 이치를 결여하게 되며, 사물 하나를 '격'하지 않으면 사물 하나어치의 도리를 결여하게 된다. 반드시 그것들을 하나하나 모두 헤아려야 한다.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 15:66 叔文問: “格物莫須用合內外否?”
숙문(叔文)의 질문: 격물 공부는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131]
曰: “不須恁地說. 物格後, 他內外自然合. 蓋天下之事, 皆謂之物, 而物之所在, 莫不有理. 且如草木禽獸, 雖是至微至賤, 亦皆有理. 如所謂‘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自家知得這箇道理, 處之而各得其當便是. 且如鳥獸之情, 莫不好生而惡殺, 自家知得是恁地, 便須‘見其生不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方是. 要之, 今且自近以及遠, 由粗以至精.” 道夫(60이후).
대답: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사물이 '격'되고 나면 안쪽과 바깥쪽은 자연히 합치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사태를 통틀어 '사물(物)'이라고 부르는데, 사물이 있는 곳에 이치가 없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초목과 금수는 비록 지극히 미미하고 천하지만 (그들에게도) 역시 모두 이치가 있다. 예를 들어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132]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133]을 벤다'[134]는 말 처럼, 자신이 이러저러한 도리를 알고서 각각의 사물을 처리하기를 각자에게 적합하고 알맞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情) 모두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자신이 (동물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해야'[135] 한다. 요컨대, 이제 가까운 데에서부터 멀리로, 거친 것에서부터 정밀한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136]
도부(道夫)의 기록. (60세 이후)
<寓錄別出.>
<같은 내용에 대한 우(寓)의 기록은 따로 배치했다.>
- 15:67 問: “格物須合內外始得?”
질문: 격물은 반드시 안쪽과 바깥쪽을 통합해야만 합니까?[137]
曰: “他內外未嘗不合. 自家知得物之理如此, 則因其理之自然而應之, 便見合內外之理. 目前事事物物, 皆有至理. 如一草一木, 一禽一獸, 皆有理. 草木春生秋殺, 好生惡死. ‘仲夏斬陽木, 仲冬斬陰木’, 皆是順陰陽道理. <砥錄作“皆是自然底道理”.> 自家知得萬物均氣同體, ‘見生不忍見死, 聞聲不忍食肉’, 非其時不伐一木, 不殺一獸, ‘不殺胎, 不殀夭, 不覆巢’, 此便是合內外之理.” 㝢(61이후).
대답: 안쪽과 바깥쪽은 애초에 합치하지 않은 적이 없다. 자기 스스로 이 사물의 이치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알면 그 이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해당 사물에) 대응하게 되니, (이렇게 되었을 때 여기서 우리는)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를 보게 된다. 눈앞의 사태와 사물에는 모두 지극한 이치가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에 모두 이치가 있다. 초목은 봄에 나고 가을에 죽으며, (금수는)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한여름(仲夏)에는 양목(陽木)을 베고, 한겨울(仲冬)에는 음목(陰木)을 베는'[138] 것은 모두 음양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지(砥)의 기록에서는 "모두 자연스러운 도리이다."> 자기 스스로 만물이 기운을 골고루 나누어 받아 한 몸임을(均氣同體),[139] 알면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차마 그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것들이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140]'하고, 적절한 시기가 아니면 나무 한 그루도 베지 않고, 짐승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며, '새끼를 밴 것을 죽이지 않으며, 어린 개체를 죽이지 않으며, 둥지를 뒤엎지 않는다'.[141] 이것이 바로 안쪽과 바깥쪽이 합치하는 도리이다.
우(㝢)의 기록. (61세 이후).
<砥錄略.>
<지(砥)의 기록은 생략한다.>
- 15:68 “知至, 謂天下事物之理知無不到之謂. 若知一而不知二, 知大而不知細, 知高遠而不知幽深, 皆非知之至也. 要須四至八到, 無所不知, 乃謂至耳.”
지지(知至)란 천하의 사태와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나의 앎이 이르지(到) 않은 경우가 없음을 말한다. 만약 하나는 알지만 둘은 모르고, 큰 것은 알지만 작은 것은 모르고, 고원(高遠)한 것은 알지만 심오한(幽深) 것은 모른다면, 이는 모두 '앎이 이른(知之至)'[142]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방팔방에 두루 이르러 알지 못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르렀다(=지극해졌다)'고 할 수 있다.
因指燈曰: “亦如燈燭在此, 而光照一室之內, 未嘗有一些不到也.” 履孫(65때).
이어서 등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또 이 등불이 여기 있으면서 그 빛이 실내 전체를 밝혀서 그 빛이 이르지(到) 않는 곳이 조금도 없는 것과 같다.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以下知至.>
<이 아래로 지지(知至)에 관한 조목들>
- 15:69 知至, 謂如親其所親, 長其所長, 而不能推之天下, 則是不能盡之於外; 欲親其所親, 欲長其所長, 而自家裏面有所不到, 則是不能盡之於內. 須是其外無不周, 內無不具, 方是知至. 履孫(65때).
지지(知至)로 말하자면, 어버이를 친애하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되[143] 그것을 미루어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이는 바깥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어버이를 친애하고 싶고 가까운 연장자를 공경하고 싶은데 자기 안에서 (지극한 데까지)도달하지 못한 바가 있으면 이는 안쪽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바깥쪽으로 두루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안쪽으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야만 지지(知至)이다.[144]
리손(履孫)의 기록. (65세)
- 15:70 子升問: “知止便是知至否?”
자승의 질문: '멈출 곳을 안다(知止)'가 곧 '앎이 지극해졌다(知至)' 아닙니까?
曰: “知止就事上說, 知至就心上說. 知止, 知事之所當止; 知至, 則心之知識無不盡.” 木之(68때).
대답: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지지(知止)는 각각의 사태에 있어서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아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에 미진한 데가 없는 것이다.
목지(木之)의 기록. (68세)
- 15:71 知止, 就事上說; 知至, 就心上說, 擧其重而言. 閎祖(59이후).
지지(知止)는 사태 쪽에서 말한 것이고 지지(知至)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각자 더 중점을 둔 부분을 들어서 말한 것이다.[145]
굉조(閎祖)의 기록. (59세 이후)
- 15:72 問: “‘致知’之‘致’, ‘知至’之‘至’, 有何分別?”
질문: '치지(致知)'의 '치'와 '지지(知至)'의 '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146]
曰: “上一‘致’字, 是推致, 方爲也. 下一‘至’字, 是已至.” <先著“至”字, 旁著“人”字, 爲“致”. 是人從旁推至.> 節(64이후).
대답: 위의 '치(致)'자는 밀고 나가는(推致) 것이니 곧 (어떤) 행위(爲)이다. 아래의 '지(至)'자는 이미 도달한(至) 것이다. <먼저 '지(至)'자를 쓰고 옆에 '인(人)'자를 쓰면 '치(致)'자가 된다. 옆에서 사람이 미는 것이다.>[147]
절(節)의 기록. (64세 이후)
- 15:73 格物, 只是就事上理會; 知至, 便是此心透徹. 廣(65이후).
격물(格物)은 실제 사태에서 헤아리는 것이고 지지(知至)는 이 마음이 완전히 투명한 것이다.
광(廣)의 기록. (65세 이후)
- 15:74 格物, 便是下手處; 知至, 是知得也. 德明(44이후).
격물은 (공부에) 착수하는 곳이고, 지지(知至)는 (공부의 결과) 앎을 이룬 것이다.
덕명(德明)의 기록. (44세 이후)
- 15:75 致知未至, 譬如一箇鐵片, 亦割得物事, 只是不如磨得芒刃十分利了, 一鍤便破. 若知得切了, 事事物物至面前, 莫不迎刃而解. 賀孫(62이후).
치지(致知) 공부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未至) 것은, 비유하자면, 쇠조각 하나를 가지고도 물건을 자를 수야 있겠지만 100% 예리하게 갈아낸 날카로운 칼날(芒刃)이 단번에 (물건을) 파괴하는 것만은 못하다. 앎이 절실해지고나면 온갖 사태와 사물이 면전에 도달하자마자 모조리 포정(庖丁)의 칼에 닿은 소고기처럼 해체되어버린다(迎刃而解).[148]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6 未知得至時, 一似捕龍蛇, 捉虎豹相似. 到知得至了, 卻恁地平平做將去, 然節次自有許多工夫. 到後來絜矩, 雖是自家所爲, 皆足以興起斯民. 又須是以天下之心審自家之心, 以自家之心審天下之心, 使之上下四面都平均齊一而後可. 賀孫(62이후).
앎이 아직 지극해지지(知至) 못했을 때는 마치 용과 뱀과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것 같다가도 앎이 지극해지고 나면 오히려 이렇게 평이하게 해 나가게 된다.[149] 하지만 그 중간 단계들에는 자연히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나중에 혈구(絜矩) 부분에 이르면[150], 비록 자기 한 사람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백성들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다.[151] 또, 천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자신의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살펴서 상하사방이 모두 고르고 균일하게(平均齊一) 되어야만 한다.[152]
하손(賀孫)의 기록. (62세 이후)
- 15:77 鄭仲履問: “某觀大學知至, 見得是乾知道理.”
정중리(鄭仲履)의 질문: 제가 '대학'의 지지(知至)를 살펴보고 건지(乾知)의 도리라고 이해했습니다.[153]
曰: “何用說乾知! 只理會自家知底無不盡, 便了.” 蓋卿(65때).
대답: 어째서 '건지(乾知)'를 가지고 설명하는가! 그저 자신의 앎에 미진함이 없다고 이해하면 된다.
개경(蓋卿)의 기록. (65세)
- 15:78 知至, 如易所謂極深; ‘惟深也, 故能通天下之志’, 這一句略相似. 能慮, 便是硏幾; 如所謂‘惟幾也, 故能成天下之務’, 這一句卻相似. 蘷孫(68이후).
지지(知至)[154]는 '역(易)'에서 이른바 극심(極深)이다.[155]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에 천하 모든 것의 의지를 완전히 이해한다(通)'는 이 구절과 대략 비슷하다. 능려(能慮)는 연기(硏幾)이다.[156]'사태의 기미를 세밀하게 살폈(幾)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구절과 비슷하다.
기손(蘷孫)의 기록. (68세 이후)
- 15:79 問: “定·靜·安·慮·得與知至·意誠·心正是兩事, 只要行之有先後. 據先生解安·定·慮·得與知至似一般, 如何?”
질문: 정(定), 정(靜), 안(安), 려(慮), 득(得)[157]과 지지(知至), 의성(意誠), 심정(心正)은 서로 별개의 일이고,[158] 단지 실천에 선후 순서가 필요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해석하신 바에 따르면, 안, 정, 려, 득과 지지(知至)가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159]
曰: “前面只是大綱且如此說, 後面卻是學者用力處.” 去僞(46때).
대답: 앞부분[160]은 단지 큰 얼개를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뒷부분[161]이 오히려 배우는 이가 힘써야 할 곳이다.
거위(去僞)의 기록. (46세)
- 15:80 致知, 不是知那人不知底道理, 只是人面前底. 且如義利兩件, 昨日雖看義當爲然, 而卻又說未做也無害; 見得利不可做, 卻又說做也無害; 這便是物未格, 知未至. 今日見得義當爲, 決爲之; 利不可做, 決定是不做, 心下自肯自信得及, 這便是物格, 便是知得至了. 此等說話, 爲無恁地言語, 冊子上寫不得. 似恁地說出, 卻較見分曉. 植(64때). <以下物格·知至.>
15:80: "치지(致知)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義)와 이(利) 두 가지가 있는데, 어제는 의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하지 않아도 해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익을 보면 해서는 안 되지만, 해도 해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물건이 격물되지 않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은 의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보고, 결단코 그렇게 하며, 이익을 보면 해서는 안 되니, 결단코 하지 않으며, 마음 속에서 스스로 받아들이고 믿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책에 적을 수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말하면 더욱 분명하게 보입니다."
- 15:81 問: “格物·窮理之初, 事事物物也要見到那裏了?” 曰: “固是要見到那裏. 然也約摸是見得, 直到物格·知至, 那時方信得及.” 㝢(61이후).
- 15:82 守約問: “物格·知至, 到曾子悟忠恕於一唯處, 方是知得至否?” 曰: “亦是如此. 只是就小處一事一物上理會得到, 亦是知至.” 賀孫(62이후).
- 15:83 或問: “‘物格而后知至’一句, 或謂物格而知便至. 如此, 則與下文‘而后’之例不同.” 曰: “看他文勢, 只合與下文一般說. 但且謂之物格, 則不害其爲一事一物在. 到知, 則雖萬物亦只是一箇知. 故必理無不窮, 然後知方可盡. 今或問中卻少了他這意思.”
- 15:84 “大學物格·知至處, 便是凡聖之關. 物未格, 知未至, 如何殺也是凡人. 須是物格·知至, 方能循循不已, 而入於聖賢之域, 縱有敏鈍遲速之不同, 頭勢也都自向那邊去了. 今物未格, 知未至, 雖是要過那邊去, 頭勢只在這邊. 如門之有限, 猶未過得在.” 問: “伊川云‘非樂不足以語君子’, 便是物未格, 知未至, 未過得關否?” 曰: “然. 某嘗謂, 物格·知至後, 雖有不善, 亦是白地上黑點; 物未格, 知未至, 縱有善, 也只是黑地上白點.” 伯羽(61때). <以下論格物·致知·誠意是學者之關.>
- 15:85 格物是夢覺關. <格得來是覺, 格不得只是夢.> 誠意是善惡關. <誠得來是善, 誠不得只是惡.> 過得此二關, 上面工夫卻一節易如一節了. 到得平天下處, 尙有些工夫. 只爲天下闊, 須著如此點檢.” 又曰: “誠意是轉關處.” 又曰: “誠意是人鬼關!” <誠得來是人, 誠不得是鬼.> 蘷孫(68이후).
15:81: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격물'과 '궁리'의 처음에, 모든 일과 사물을 어디까지 보아야 합니까?"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거기까지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보다가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면, 그때 비로소 믿을 수 있게 된다."
15:82: 수약(守約)이 물었습니다: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면, 증자가 충서(忠恕)를 하나로 깨달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까?"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단지 작은 곳, 한 가지 일과 물건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지지이다."
15:83: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물건이 격물된 후에 지식이 지지에 이른다'는 구절에서, 어떤 이는 물건이 격물되면 지식이 바로 지지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뒤의 문장과 '그리고 나서'의 예가 다릅니다."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문장의 흐름을 보면, 단지 뒤의 문장과 같게 말할 수 있다. 단지 물건이 격물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한 가지 일과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다. 지식에 이르면, 비록 만물이 있어도 단지 하나의 지식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치가 다 궁구되어야 지식이 비로소 다할 수 있다. 지금 혹문에는 그 의미가 빠져 있다."
15:84: "대학에서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는 곳이 바로 범인과 성인의 경계이다. 물건이 격물되지 않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지 않으면, 어떻게 죽어도 범인이다. 반드시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러야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성현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비록 민둔(敏鈍)과 지속(遲速)의 차이가 있더라도, 방향은 모두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 물건이 격물되지 않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지 않으면, 비록 그쪽으로 가고자 해도 방향은 이쪽에 있다. 문이 제한되어 있어 아직 그쪽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천(伊川)이 '음악이 아니면 군자와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물건이 격물되지 않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지 않아 경계를 넘지 못한 것입니까?"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 내가 늘 말하길, 물건이 격물되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면, 비록 불선(不善)이 있더라도 이는 흰 땅 위의 검은 점과 같고; 물건이 격물되지 않고 지식이 지지에 이르지 않으면, 비록 선(善)이 있어도 이는 검은 땅 위의 흰 점과 같다."
15:85: "격물은 꿈과 깨어남의 경계이다. 격물할 수 있으면 깨달음이고, 격물하지 못하면 단지 꿈이다. 성의(誠意)는 선악의 경계이다. 성의가 이루어지면 선이고, 성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단지 악이다. 이 두 경계를 넘으면 위의 공부는 한 절마다 쉬워진다. 천하를 평정하는 곳에 이르면, 여전히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단지 천하가 넓어서 이렇게 점검해야 한다." 또 말했습니다: "성의는 전환점이다." 또 말했습니다: "성의는 사람과 귀신의 경계이다! 성의가 이루어지면 사람이 되고, 성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귀신이 된다."
- 15:86 致知·誠意, 是學者兩箇關. 致知乃夢與覺之關, 誠意乃惡與善之關. 透得致知之關則覺, 不然則夢; 透得誠意之關則善, 不然則惡. 致知·誠意以上工夫較省, 逐旋開去, 至於治國·平天下地步愈闊, 卻須要照顧得到. 人傑(51이후).
- 15:87 知至·意誠, 是凡聖界分關隘. 未過此關, 雖有小善, 猶是黑中之白; 已過此關, 雖有小過, 亦是白中之黑. 過得此關, 正好著力進步也. 道夫(60이후).
- 15:88 “大學所謂‘知至·意誠’者, 必須知至, 然後能誠其意也. 今之學者只說操存, 而不知講明義理, 則此心憒憒, 何事於操存也! 某嘗謂誠意一節, 正是聖凡分別關隘去處. 若能誠意, 則是透得此關; 透此關後, 滔滔然自在去爲君子. 不然, 則崎嶇反側, 不免爲小人之歸也.” “致知所以先於誠意者如何?” 曰: “致知者, 須是知得盡, 尤要親切. 尋常只將‘知至’之‘至’作‘盡’字說, 近來看得合作‘切至’之‘至’. 知之者切, 然後貫通得誠意底意思, 如程先生所謂眞知者是也.” 謨(50이후).
- 15:89 論誠意, 曰: “過此一關, 方是人, 不是賊!” 又曰: “過此一關, 方會進.” <一本云: “過得此關, 道理方牢固.”> 方子(59이후).
- 15:90 鍾唐傑問意誠. 曰: “意誠只是要情願做工夫, 若非情願, 亦强不得. 未過此一關, 猶有七分是小人.” 蓋卿(65때).
- 15:91 意誠·心正, 過得此關, 義理方穩. 不然, 七分是小人在. 又曰: “意不誠底, 是私過; 心不正底, 是公過.” 方子(59이후).
- 15:92 深自省察以致其知, 痛加剪落以誠其意. 升卿(62때). <致知·誠意.>
- 15:93 知與意皆出於心. 知是知覺處, 意是發念處. 閎祖(59이후).
15:86: "치지와 성의는 학자가 넘어야 할 두 가지 경계이다. 치지는 꿈과 깨어남의 경계이고, 성의는 악과 선의 경계이다. 치지의 경계를 넘으면 깨어남이고, 그렇지 않으면 꿈이다. 성의의 경계를 넘으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다. 치지와 성의 이상의 공부는 비교적 덜 힘들며, 점차 나아가서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 범위가 더욱 넓어지니, 잘 돌보아야 한다."
15:87: "지지(知至)와 성의는 범인과 성인의 경계를 나누는 관문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비록 작은 선이 있더라도 여전히 검은 속의 흰색과 같고; 이 관문을 넘으면, 비록 작은 과실이 있더라도 여전히 흰 속의 검은 점과 같다. 이 관문을 넘으면, 본격적으로 힘써 나아가기에 좋다."
15:88: "'대학'에서 이른바 '지지(知至)와 성의(誠意)'는 반드시 지지한 후에야 성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학자들은 단지 마음을 지키는 것만 말하고, 의리(義理)를 밝히는 것을 알지 못하니, 이 마음이 혼란스럽다.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내가 늘 말하길, 성의의 절차는 범인과 성인을 구분하는 관문이다. 만약 성의를 이룰 수 있다면, 이 관문을 넘은 것이다. 이 관문을 넘은 후에는 자유롭게 군자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이 험하고 돌아서고, 소인의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치지가 성의에 앞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치지는 반드시 완전히 알아야 하고, 특히 친근해야 한다. 보통 '지지'의 '지(至)'를 '다함'으로 설명하나, 최근에는 '친근하고 절실함'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아는 것이 절실해야 성의의 의미를 관통할 수 있다. 정자(程子)가 말한 참된 지식이 바로 그것이다."
15:89: 성의를 논하며 말했습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사람이 되고, 도적이 아니다!" 또 말했습니다: "이 관문을 넘어서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한 책에서는 "이 관문을 넘어서야 도리가 비로소 견고해진다"라고 한다.>
15:90: 종당걸(鍾唐傑)이 성의를 물었습니다.
주자가 대답했습니다: "성의란 단지 진정으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면, 억지로 할 수 없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여전히 70%는 소인이다."
15:91: "성의와 심정은 이 관문을 넘어서야 의리(義理)가 비로소 안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70%는 소인이다." 또 말했습니다: "의가 성실하지 않으면 사적인 잘못이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공적인 잘못이다."
15:92: "깊이 반성하여 지식을 이루고, 고통스럽게 잘라내어 성의를 이룬다."
15:93: "지(知)와 의(意)는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 지는 지각하는 곳이고, 의는 생각이 일어나는 곳이다."
- 15:94 致知, 無毫釐之不盡. 守其所止, 無須臾之或離. 致知, 如一事只知得三分, 這三分知得者是眞實, 那七分不知者是虛僞. 爲善, 須十分知善之可好, 若知得九分, 而一分未盡, 只此一分未盡, 便是鶻突苟且之根. 少間說便爲惡也不妨, 便是意不誠. 所以貴致知, 窮到極處謂之‘致’. 或得於小而失於大, 或得於始而失於終, 或得於此而失於彼, 或得於己而失於人, 極有深淺. 惟致知, 則無一事之不盡, 無一物之不知. 以心驗之, 以身體之, 逐一理會過, 方堅實. 僩(69이후).
- 15:95 說爲學次第, 曰: “本末精粗, 雖有先後, 然一齊用做去. 且如致知·格物而後誠意, 不成說自家物未格, 知未至, 且未要誠意, 須待格了, 知了, 卻去誠意. 安有此理! 聖人亦只說大綱自然底次序是如此. 拈著底, 須是逐一旋旋做將去始得. 常說田子方說文侯聽樂處, 亦有病. 不成只去明官, 不去明音, 亦須略去理會始得. 不能明音, 又安能明官! 或以宮爲商, 以角爲徵, 自家緣何知得. 且如‘籩豆之事, 則有司存’, 非謂都不用理會籩豆, 但比似容貌·顔色·辭氣爲差緩耳. 又如官名, 在孔子有甚緊要處? 聖人一聽得郯子會, 便要去學. 蓋聖人之學, 本末精粗, 無一不備, 但不可輕本而重末也. 今人閒坐過了多少日子, 凡事都不肯去理會. 且如儀禮一節, 自家立朝不曉得禮, 臨事有多少利害!” 雉(미상).
- 15:96 吳仁甫問: “誠意在致知·格物後, 如何?” 曰: “源頭只在致知. 知至之後, 如從上面①放水來, 已自迅流湍決, 只是臨時又要略略撥剔, 莫令壅滯爾.” 銖(67이후).
- 15:97 問: “誠意莫只是意之所發, 制之於初否?” 曰: “若說制, 便不得. 須是先致知·格物, 方始得. 人莫不有知, 但不能致其知耳. 致其知者, 自裏面看出, 推到無窮盡處; 自外面看入來, 推到無去處; 方始得了, 意方可誠. 致知·格物是源頭上工夫. 看來知至便自心正, 不用‘誠意’兩字也得. 然無此又不得, 譬如過水相似, 無橋則過不得. 意有未誠, 也須著力. 不應道知已至, 不用力.”
- 15:98 知若至, 則意無不誠. 若知之至, 欲著此物亦留不住, 東西南北中央皆著不得. 若是不誠之人, 亦不肯盡去, 亦要留些子在. 泳(66때). <知至·意誠.>
- 15:99 問: “知至到意誠之間, 意自不聯屬. 須是別識得天理人欲分明, 盡去人欲, 全是天理, 方誠.” 曰: “固是. 這事不易言. 須是格物精熟, 方到此. 居常無事, 天理實然, 有纖毫私欲, 便能識破他, 自來點檢慣了. 譬有賊來, 便識得, 便捉得他. 不曾用工底, 與賊同眠同食也不知!” 大雅(49이후).
- 15:100 周震亨問知至·意誠, 云: “有知其如此, 而行又不如此者, 是如何?” 曰: “此只是知之未至.” 問: “必待行之皆是, 而後驗其知至歟?” 曰: “不必如此說. 而今說與公是知之未至, 公不信, 且去就格物·窮理上做工夫. 窮來窮去, 末後自家眞箇見得此理是善與是惡, 自心甘意肯不去做, 此方是意誠. 若猶有一毫疑貳底心, 便是知未至, 意未誠, 久後依舊去做. 然學者未能便得會恁地, 須且致其知, 工夫積累, 方會知至.”
- 15:101 “‘知至而后意誠’, 須是眞知了, 方能誠意. 知苟未至, 雖欲誠意, 固不得其門而入矣. 惟其胸中了然, 知得路逕如此, 知善之當好, 惡之當惡, 然後自然意不得不誠, 心不得不正.” 因指燭曰: “如點一條蠟燭在中間, 光明洞達, 無處不照, 雖欲將不好物事來, 亦沒安頓處, 自然著它不得. 若是知未至, 譬如一盞燈, 用罩子蓋住, 則光之所及者固可見, 光之所不及處則皆黑暗無所見, 雖有不好物事安頓在後面, 固不得而知也. <炎錄云: “知旣至, 則意可誠. 如燈在中間, 纔照不及處, 便有賊潛藏在彼, 不可知. 若四方八面都光明了, 他便無著身處.”> 所以貴格物, 如佛·老之學, 它非無長處, 但它只知得一路. 其知之所及者, 則路逕甚明, 無有差錯; 其知所不及處, 則皆顚倒錯亂, 無有是處, 緣無格物工夫也.” 問: “物未格時, 意亦當誠.” 曰: “固然. 豈可說物未能格, 意便不用誠! 自始至終, 意常要誠. 如人適楚, 當南其轅. 豈可謂吾未能到楚, 且北其轅! 但知未至時, 雖欲誠意, 其道無由. 如人夜行, 雖知路從此去, 但黑暗, 行不得. 所以要得致知. 知至則道理坦然明白, 安而行之. 今人知未至者, 也知道善之當好, 惡之當惡. 然臨事不如此者, 只是實未曾見得. 若實見得, 自然行處無差.” 僩(69이후).
- 15:102 欲知知之眞不眞, 意之誠不誠, 只看做不做如何. 眞箇如此做底, 便是知至·意誠. 道夫(60이후).
- 15:103 問“知至而后意誠”. 曰: “知則知其是非. 到意誠實, 則無不是, 無有非, 無一毫錯, 此已是七八分人. 然又不是今日知至, 意亂發不妨, 待明日方誠. 如言孔子‘七十而從心’, 不成未七十心皆不可從! 只是說次第如此. 白居易詩云: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詩人玩弄至此!” 可學(62때). <璘錄別出.>
- 15:104 舜功問: “致知·誠意是如何先後?” 曰: “此是當初一發同時做底工夫, 及到成時, 知至而后意誠耳. 不是方其致知, 則脫空妄語, 猖狂妄行, 及到誠意方始旋收拾也. 孔子‘三十而立’, 亦豈三十歲正月初一日乃立乎! 白樂天有詩: “吾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孟子心不動, 吾今其庶幾! ’此詩人滑稽耳!” 璘(62때).
- 15:105 學者到知至意誠, 便如高祖之關中, 光武之河內. 芝(63때).
- 15:106 問“‘知至而后意誠’, 故天下之理, 反求諸身, 實有於此. 似從外去討得來”云云. 曰: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厲聲言“弗思”二字.> 又笑曰: “某常說, 人有兩箇兒子, 一箇在家, 一箇在外去幹家事. 其父卻說道在家底是自家兒子, 在外底不是!” 節(64이후).
- 15:107 或問: “知至以後, 善惡旣判, 何由意有未誠處?” 曰: “克己之功, 乃是知至以後事. ‘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 一念纔放下, 便是失其正. 自古無放心底聖賢, 然一念之微, 所當深謹, 纔說知至後不用誠意, 便不是. ‘人心惟危, 道心惟微’, 毫釐間不可不子細理會. 纔說太快, 便失卻此項工夫也.” 錄.
- 15:108 問椿: “知極其至, 有時意又不誠, 是如何?” 椿無對. 曰: “且去這裏子細窮究.” 一日, 稟云: “是知之未極其至.” 先生曰: “是則是. 今有二人: 一人知得這是善, 這是惡; 又有一人眞知得這是善當爲, 惡不可爲. 然後一人心中, 如何見得他是眞知處?” 椿亦無以應. 先生笑曰: “且放下此一段, 緩緩尋思, 自有超然見到處.” 椿(59때).
- 15:109 誠意, 方能保護得那心之全體. 以下誠意.
- 15:110 問“實其心之所發, 欲其一於理而無所雜”. 曰: “只爲一, 便誠; 二, 便雜. ‘如惡惡臭, 如好好色’, 一故也. ‘小人閒居爲不善, 止著其善’, 二故也. 只要看這些便分曉. 二者, 爲是眞底物事, 卻著些假攙放裏, 便成詐僞. 如這一盞茶, 一味是茶, 便是眞. 才有些別底滋味, 便是有物夾雜了, 便是二.” 蘷孫(68이후).
- 15:111 意誠後, 推盪得渣滓靈利, 心盡是義理. 閎祖(59이후). <以下意誠.>
- 15:112 意誠, 如蒸餅, 外面是白麵, 透裏是白麵. 意不誠, 如蒸餅外面雖白, 裏面卻只是粗麵一般. 閎祖(59이후).
- 15:113 “心, 言其統體; 意, 是就其中發處. 正心, 如戒懼不睹不聞; 誠意, 如愼獨.” 又曰: “由小而大. 意小心大.” 閎祖(59이후). <正心·誠意.>
- 15:114 康叔臨問: “意旣誠矣, 心安有不正?” 曰: “誠只是實. 雖是意誠, 然心之所發有不中節處, 依舊未是正. 亦不必如此致疑, 大要只在致知格物上. 如物格·知至上鹵莽, 雖見得似小, 其病卻大. 自修身以往, 只是如破竹然, 逐節自分明去. 今人見得似難, 其實卻易. 人入德處, 全在致知·格物. 譬如適臨安府, 路頭一正, 著起草鞋, 便會到. 未須問所過州縣那箇在前, 那箇在後, 那箇是繁盛, 那箇是荒索. 工夫全在致知·格物上.” 謙(65때). <以下論格物·致知·誠意·正心.>
- 15:115 問: “心, 本也. 意, 特心之所發耳. 今欲正其心, 先誠其意, 似倒說了.” 曰: “心無形影, 敎人如何撑拄. 須是從心之所發處下手, 先須去了許多惡根. 如人家裏有賊, 先去了賊, 方得家中寧. 如人種田, 不先去了草, 如何下種. 須去了自欺之意, 意誠則心正. 誠意最是一段中緊要工夫, 下面一節輕一節.” 或云: “致知·格物也緊要.” 曰: “致知, 知之始; 誠意, 行之始.” 蘷孫(68이후).
- 15:116 或問: “意者心之所發, 如何先誠其意?” 曰: “小底卻會牽動了大底. 心之所以不正, 只是私意牽去. 意才實, 心便自正. 聖賢下語, 一字是一字, 不似今人作文字, 用這箇字也得, 改做那一字也得.”
- 15:117 格物者, 知之始也; 誠意者, 行之始也. 意誠則心正, 自此去, 一節易似一節. 拱壽(65때).
- 15:118 致知·誠意兩節若打得透時, 已自是箇好人. 其它事一節大如一節, 病敗一節小如一節. 自修(65때).
- 15:119 格物者, 窮事事物物之理; 致知者, 知事事物物之理. 無所不知, 知其不善之必不可爲, 故意誠; 意旣誠, 則好樂自不足以動其心, 故心正. 格.
- 15:120 格物·致知·正心·誠意, 不可著纖毫私意在其中. <椿錄云: “便不是矣.”> 致知·格物, 十事格得九事通透, 一事未通透, 不妨; 一事只格得九分, 一分不透, 最不可. 凡事不可著箇“且”字. “且”字, 其病甚多.
- 15:121 格物·致知·誠意·正心, 雖是有許多節次, 然其進之遲速, 則又隨人資質敏鈍. 履孫(65때).
- 15:122 大學於格物·誠意, 都鍛煉成了, 到得正心·修身處, 只是行將去, 都易了. 蘷孫(68이후).
- 15:123 致知·誠意·正心, 知與意皆從心出來. 知則主於別識, 意則主於營爲. 知近性, 近體; 意近情, 近用. 端蒙(50이후).
- 15:124 敬之問誠意·正心·修身. 曰: “若論淺深意思, 則誠意工夫較深, 正心工夫較淺; 若以小大看, 則誠意較緊細, 而正心·修身地位又較大, 又較施展.” 賀孫(62이후).
- 15:125 誠意·正心·修身, 意是指已發處看, 心是指體看. 意是動, 心又是該動靜. 身對心而言, 則心正是內. 能如此修身, 是內外都盡. 若不各自做一節功夫, 不成說我意已誠矣, 心將自正! 則恐懼·好樂·忿懥引將去, 又卻邪了. 不成說心正矣, 身不用管! 則外面更不顧, 而遂心跡有異矣. 須是“無所不用其極”. 端蒙(50이후).
- 15:126 或問: “意者, 乃聽命於心者也. 今曰‘欲正其心, 先誠其意’, 意乃在心之先矣.” 曰: “‘心’字卒難摸索. 心譬如水: 水之體本澄湛, 卻爲風濤不停, 故水亦搖動. 必須風濤旣息, 然後水之體得靜. 人之無狀汙穢, 皆在意之不誠. 必須去此, 然後能正其心. 及心旣正後, 所謂好惡哀矜, 與修身齊家中所說者, 皆是合有底事. 但當時時省察其固滯偏勝之私耳.” 僩(69이후). <壯祖錄疑同聞別出.>
- 15:127 問: “心者, 身之主; 意者, 心之發. 意發於心, 則意當聽命於心. 今曰‘意誠而后心正’, 則是意反爲心之管束矣, 何也?” 曰: “心之本體何嘗不正. 所以不得其正者, 蓋由邪惡之念勃勃而興, 有以動其心也. 譬之水焉, 本自瑩淨寧息, 蓋因波濤洶湧, 水遂爲其所激而動也. 更是大學次序, 誠意最要. 學者苟於此一節分別得善惡·取舍·是非分明, 則自此以後, 凡有忿懥·好樂·親愛·畏敬等類, 皆是好事. 大學之道, 始不可勝用矣.” 壯祖(미상).
- 15:128 問: “心如何正?” 曰: “只是去其害心者.” 端蒙(50이후).
- 15:129 或問正心修身. 曰: “今人多是不能去致知處著力, 此心多爲物欲所陷了. 惟聖人能提出此心, 使之光明, 外來底物欲皆不足以動我, 內中發出底又不陷了.” 祖道(68때).
- 15:130 心纔不正, 其終必至於敗國亡家. 僩(69이후).
- 15:131 “誠意正心”章, 一說能誠其意, 而心自正; 一說意誠矣, 而心不可不正. 問: “修身齊家亦然否?” 曰: “此是交會處, 不可不看.” 又曰: “誠意以敬爲先.” 泳(66때).
- 15:132 或問: “正心·修身, 莫有淺深否?” 曰: “正心是就心上說, 修身是就應事接物上說. 那事不自心做出來! 如修身, 如絜矩, 都是心做出來. 但正心, 卻是萌芽上理會. 若修身與絜矩等事, 都是各就地頭上理會.”
- 15:133 毅然問: “‘家齊, 而后國治, 天下平.’ 如堯有丹朱, 舜有瞽瞍, 周公有管蔡, 卻能平治, 何也?” 曰: “堯不以天下與丹朱而與舜, 舜能使瞽瞍不格姦, 周公能致辟于管蔡, 使不爲亂, 便是措置得好了. 然此皆聖人之變處. 想今人家不解有那瞽瞍之父, 丹朱之子, 管蔡之兄, 都不須如此思量, 且去理會那常處.” 淳(61·70때).
- 15:134 “壹是”, 一切也. 漢書平帝紀“一切”, 顔師古注: “猶如以刀切物, 取其整齊.” 泳(66때).
- 15:135 李從之問: “‘壹是皆以修身爲本’, 何故只言修身?” 曰: “修身是對天下國家說. 修身是本, 天下國家是末. 凡前面許多事, 便是理會修身. ‘其所厚者薄, 所薄者厚’, 又是以家對國說.” 㽦(59때).
- 15:136 問: “大學解: ‘所厚, 謂家.’ 若誠意正心, 亦可謂之厚否?” 曰: “不可. 此只言先後緩急. 所施則有厚薄.” 節(64이후).
- 15:137 問: “大學之書, 不過明德·新民二者而已. 其自致知·格物以至平天下, 乃推廣二者, 爲之條目以發其意, 而傳意則又以發明其條目者. 要之, 不過此心之體不可不明, 而致知·格物·誠意·正心, 乃其明之之工夫耳.” 曰: “若論了得時, 只消‘明明德’一句便了, 不用下面許多. 聖人爲學者難曉, 故推說許多節目. 今且以明德·新民互言之, 則明明德者, 所以自新也; 新民者, 所以使人各明其明德也. 然則雖有彼此之間, 其爲欲明之德, 則彼此無不同也. 譬之明德卻是材料,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 卻是下工夫以明其明德耳. 於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之際, 要得常見一箇明德隱然流行于五者之間, 方分明. 明德如明珠, 常自光明, 但要時加拂拭耳. 若爲物欲所蔽, 卽是珠爲泥涴, 然光明之性依舊自在.” 大雅(49이후). <以下總論綱領·條目.>
- 15:138 大學“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此三箇是大綱, 做工夫全在此三句內. 下面知止五句是說效驗如此. 上面是服藥, 下面是說藥之效驗. 正如說服到幾日效如此, 又服到幾日效又如此. 看來不須說效亦得, 服到日子滿時, 自然有效. 但聖人須要說到這田地, 敎人知“明明德”三句. 後面又分析開八件: 致知至修身五件, 是明明德事; 齊家至平天下三件, 是新民事. 至善只是做得恰好. 後面傳又立八件, 詳細剖析八件意思. 大抵閑時喫緊去理會, 須要把做一件事看, 橫在胸中, 不要放下. 若理會得透徹, 到臨事時, 一一有用處. 而今人多是閑時不喫緊理會, 及到臨事時, 又不肯下心推究道理, 只說且放過一次亦不妨. 只是安于淺陋, 所以不能長進, 終於無成. 大抵是不曾立得志, 枉過日子. 且如知止, 只是閑時窮究得道理分曉, 臨事時方得其所止. 若閑時不曾知得, 臨事如何了得. 事親固是用孝, 也須閑時理會如何爲孝, 見得分曉, 及到事親時, 方合得這道理. 事君亦然. 以至凡事都如此. 又問: “知止, 是萬事萬物皆知得所止, 或只指一事而言?” 曰: “此徹上徹下, 知得一事, 亦可謂之知止.” 又問: “上達天理, 便是事物當然之則至善處否?” 曰: “只是合禮處, 便是天理. 所以聖人敎人致知·格物, 亦只要人理會得此道理.” 又問: “大學表裏精粗如何?” 曰: “自是如此. 粗是大綱, 精是裏面曲折處.” 又曰: “外面事要推闡, 故齊家而后治國, 平天下; 裏面事要切己, 故修身·正心, 必先誠意. 致知愈細密.” 又問眞知. 曰: “曾被虎傷者, 便知得是可畏. 未曾被虎傷底, 須逐旋思量箇被傷底道理, 見得與被傷者一般, 方是.” 明作(63이후).
- 15:139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大學中大抵虛字多. 如所謂“欲”·“其”·“而后”, 皆虛字; “明明德·新民·止於至善”, “致知·格物·誠意·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是實字. 今當就其緊要實處著工夫. 如何是致知·格物以至于治國·平天下, 皆有節目, 須要一一窮究著實, 方是. 道夫(60이후).
- 15:140 自“欲明明德於天下”至“先致其知”, 皆是隔一節, 所以言欲如此者, 必先如此. “致知在格物”, 知與物至切近, 正相照在. 格物所以致知, 物才格, 則知已至, 故云在, 更無次第也. 閎祖(59이후).
- 15:141 大學“明明德於天下”以上, 皆有等級. 到致知格物處, 便較親切了, 故文勢不同, 不曰“致知者先格其物”, 只曰“致知在格物”也. “意誠而后心正”, 不說是意誠了便心正, 但無詐僞便是誠. 心不在焉, 便不正. 或謂但正心, 不須致知·格物, 便可以修身·齊家, 卻恐不然. 聖人敎人窮理, 只道是人在善惡中, 不能分別得, 故善或以爲惡, 惡或以爲善; 善可以不爲不妨, 惡可以爲亦不妨. 聖人便欲人就外面攔截得緊, 見得道理分明, 方可正得心, 誠得意. 不然, 則聖人告顔子, 如何不道非禮勿思, 卻只道勿視聽言動? 如何又先道“居處恭, 執事敬”, 而後“與人忠”?“敬”字要體得親切, 似得箇“畏”字. <銖記先生嘗因諸生問敬宜何訓, 曰: “是不得而訓也. 惟‘畏’庶幾近之.” 銖云: “以‘畏’訓‘敬’, 平淡中有滋味.” 曰: “然.”> 榦(미상).
- 15:142 “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 至致知在格物.” “欲”與“先”字, 謂如欲如此, 必先如此, 是言工夫節次. 若“致知在格物”, 則致知便在格物上. 看來“欲”與“先”字, 差慢得些子, “在”字又緊得些子. 履孫(65때).
- 15:143 大學言‘物格而后知至, 止天下平.’ 聖人說得寬, 不說道能此卽能彼, 亦不說道能此而後可學彼. 只是如此寬說, 後面逐段節節更說, 只待人自看得如何. 振(미상).
- 15:144 蔡元思問: “大學八者條目, 若必待行得一節了, 旋進一節, 則沒世窮年, 亦做不徹. 看來日用之間, 須是隨其所在而致力: 遇著物來面前, 便用格; 知之所至, 便用致; 意之發, 便用誠; 心之動, 便用正; 身之應接, 便用修; 家便用齊; 國便用治, 方得.” 曰: “固是. 他合下便說‘古之欲明明德於天下’, 便是就這大規模上說起. 只是細推他節目緊要處, 則須在致知·格物·誠意迤邐做將去”云云. 又曰: “有國家者, 不成說家未齊, 未能治國, 且待我去齊得家了, 卻來治國; 家未齊者, 不成說身未修, 且待我修身了, 卻來齊家! 無此理. 但細推其次序, 須著如此做. 若隨其所遇, 合當做處, 則一齊做始得.” 僩(69이후).
- 15:145 大學自致知以至平天下, 許多事雖是節次如此, 須要一齊理會. 不是說物格後方去致知, 意誠後方去正心. 若如此說, 則是當意未誠, 心未正時有家也不去齊, 如何得! 且如“在下位不獲乎上”數句, 意思亦是如此. 若未獲乎上, 更不去治民, 且一向去信朋友; 若未信朋友時, 且一向去悅親, 掉了朋友不管. 須是多端理會, 方得許多節次. 聖人亦是略分箇先後與人知, 不是做一件淨盡無餘, 方做一件. 若如此做, 何時得成! 又如喜怒上做工夫, 固是; 然亦須事事照管, 不可專於喜怒. 如易損卦“懲忿窒慾”, 益卦“見善則遷, 有過則改”, 似此說話甚多. 聖人卻去四頭八面說來, 須是逐一理會. 身上許多病痛, 都要防閑. 明作(63이후).
- 15:146 問: “知至了意便誠, 抑是方可做誠意工夫?” 曰: “也不能恁地說得. 這箇也在人. 一般人自便能如此. 一般人自當循序做. 但知至了, 意誠便易. 且如這一件事知得不當如此做, 末梢又卻如此做, 便是知得也未至. 若知得至時, 便決不如此. 如人旣知烏喙之不可食, 水火之不可蹈, 豈肯更試去食烏喙, 蹈水火! 若是知得未至時, 意決不能誠.” 問: “知未至之前, 所謂愼獨, 亦不可忽否?” 曰: “也不能恁地說得. 規模合下皆當齊做. 然這裏只是說學之次序如此, 說得來快, 無恁地勞攘, 且當循此次序. 初間‘欲明明德於天下’時, 規模便要恁地了. 旣有恁地規模, 當有次序工夫; 旣有次序工夫, 自然有次序功效: ‘物格, 而后知至; 知至, 而后意誠; 意誠, 而后心正; 心正, 而后身修; 身修, 而后家齊; 家齊, 而后國治; 國治, 而后天下平.’ 只是就這規模恁地廣開去, 如破竹相似, 逐節恁地去.” 㝢(61이후).
- 15:147 說大學次序, 曰: “致知·格物, 是窮此理; 誠意·正心·修身, 是體此理; 齊家·治國·平天下, 只是推此理. 要做三節看.” 雉(미상).
- 15:148 大學一篇卻是有兩箇大節目: 物格·知至是一箇, 誠意·修身是一箇. 才過此二關了, 則便可直行將去. 泳(66때).
- 15:149 物格·知至, 是一截事; 意誠·心正·身修, 是一截事; 家齊·國治·天下平, 又是一截事. 自知至交誠意, 又是一箇過接關子; 自修身交齊家, 又是一箇過接關子. 賀孫(62이후).
- 15:150 自格物至修身, 自淺以及深; 自齊家至平天下, 自內以及外. 敬仲(62때).
- 15:151 或問: “格物·致知, 到貫通處, 方能分別取舍. 初間亦未嘗不如此, 但較生澀勉强否?” 曰: “格物時是窮盡事物之理, 這方是區處理會. 到得知至時, 卻已自有箇主宰, 會去分別取舍. 初間或只見得表, 不見得裏; 只見得粗, 不見得精. 到知至時, 方知得到; 能知得到, 方會意誠, 可者必爲, 不可者決不肯爲. 到心正, 則胸中無些子私蔽. 洞然光明正大, 截然有主而不亂, 此身便修, 家便齊, 國便治, 而天下可平.” 賀孫(62이후).
- 15:152 格物·致知, 比治國·平天下, 其事似小. 然打不透, 則病痛卻大, 無進步處.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這裏縱有未盡處, 病痛卻小. 格物·致知, 如“知及之”; 正心·誠意, 如“仁能守之”. 到得“動之不以禮”處, 只是小小未盡善. 蓋卿(65때). <方子錄云: “格物·誠意, 其事似乎小. 然若打不透, 卻是大病痛. 治國·平天下, 規模雖大, 然若有未到處, 其病卻小, 蓋前面大本領已自正了. 學者若做到物格·知至處, 此是十分以上底人.”>
- 15:153 問: “看來大學自格物至平天下, 凡八事, 而心是在當中, 擔著兩下者. 前面格物·致知·誠意, 是理會箇心; 後面身修·家齊·國治·天下平, 是心之功用.” 曰: “據他本經, 去修身上截斷. 然身亦是心主之.” 士毅(미상).
- 15:154 自明明德至於治國·平天下, 如九層寶塔, 自下至上, 只是一箇塔心. 四面雖有許多層, 其實只是一箇心. 明德·正心·誠意·修身, 以至治國·平天下, 雖有許多節次, 其實只是一理. 須逐一從前面看來, 看後面, 又推前面去. 故曰“知至而後意誠, 意誠而后心正”也. 子蒙(미상).
- 15:155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至‘致知在格物’, 詳其文勢, 似皆是有爲而後爲者.” 曰: “皆是合當爲者. 經文旣自明德說至新民, 止於至善, 下文又卻反覆明辨, 以見正人者必先正己. 孟子曰: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 亦是此意.” 道夫(60이후).
- 15:156 問: “‘古之欲明明德於天下’, 至‘致知在格物’, 向疑其似於爲人. 今觀之, 大不然. 蓋大人, 以天下爲度者也. 天下苟有一夫不被其澤, 則於吾心爲有慊; 而吾身於是八者有一毫不盡, 則亦何以明明德於天下耶! 夫如是, 則凡其所爲, 雖若爲人, 其實則亦爲己而已.” 先生曰: “爲其職分之所當爲也.” 道夫(60이후).
- ↑ 이 부분은 주자어류휘교의 교감을 따라 便決定著로 해석하였다
- ↑ 맹자4A:2
- ↑ 춘추좌씨전 선공 12년
- ↑ 예기 내칙
- ↑ 활동할 때나 혼자 묵상할 때나
- ↑ 이 부분은 문법적으로 애매하다. 치지는 동작이다. 앎을 지극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심지지는 성질이다. 세상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마음의 성질을 말한다.지금 본문처럼 쓰면 '동작=성질'과 같이 되므로 말이 순조롭지 않다. 차라리 '치지의 지(知)라는 것은 본심지지를 말한다'정도였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 조목 전체가 불교적 메타포와 어휘가 농후하지만 '본심'은 특히나 불교적 표현이다. 주희는 이 표현을 평소에 잘 쓰지 않는다. '본심지지'의 경우 어떤 내용성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 그 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거울의 성질 가운데 밝게 비추고 투영하는 성질 정도를 지시하는 말이다.
- ↑ 주희가 격을 이렇게 풀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아래 15:9에서처럼 '이르다'로 풀이한다.
- ↑ 궁(窮)은 대개 '궁구하다'라고 풀이하지만 오늘날 한국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다. 끝까지 탐구하고 파고들어 모조리 알고자하는 행위가 '궁구'이다. 여기서는 '파고들다'나 '탐구하다' 정도로 번역하겠다.
- ↑ 현실의 여러 사태와 사물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 그것에 내재한 모종의 패턴을 파악해서 이해하는 것까지가 '격'이다. 그래서 격물의 '격'은 이르다, 탐구하다, 파악하다, 이해하다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이런 번역어들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격하다'로도 풀이하겠다.
- ↑ 상서 순전
- ↑ 육아로 비유하자면 애를 낳기 전에 육아의 도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를 낳은 후에 탐구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 ↑ 오품(五品)은 다섯 가지 인간관계, 곧 오륜을 말한다. 상서 순전을 보라.
- ↑ 방법을 묻는 것인지 이유를 묻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 ↑ 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장(將)은 소학집해에 의하면 받든다는 뜻. 광구(匡救)는 바로잡아 제지한다는 뜻이다. 일역판에서는 효경의 주석서 하나를 인용하여 장(將)을 행(行)의 뜻으로 풀이했다.
- ↑ 후한서 오한(吳漢)전. 장(仗)은 붙잡는다는 뜻.
- ↑ 마지막 문장은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당시 강론하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빗댄 것일 수도 있다. 일역판에서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구체성이 있다고 가정하고 풀이했다.
- ↑ 맹자 2A:6
- ↑ 감히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 ↑ '일둔'은 한 차례, 한 번 등의 뜻이다. 주희는 종종 음식을 한 술 먹는 것을 '일둔'이라고 형용한다. 124:13 참조.
- ↑ 大胚模에 대해서는 14:6 참조.
- ↑ 선선(旋旋)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조금씩 함을 말한다.
- ↑ 여기서 해(解)는 can과 같다.
- ↑ 중용 20장.
- ↑ 논어 19:22
- ↑ 회통은 융회관통(融會貫通)이다. 서로 달라 보였던 것이 녹아서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막혀 있던 것이 꿰뚫려 하나가 되는 지적 경험을 말한다.
- ↑ 현상적으로 우리가 보고 발견하는 인간세계와 자연세계의 패턴들은 그 양상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러한 패턴들이 공유하고 있는 패턴성 그 자체는 하나이다. 패턴의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을 주희는 자주 '리일분수(理一分殊)'라고 표현했다. '리지일본처(理之一本處)'는 패턴의 통일성, 곧 '리일'을 말한다.
- ↑ 사군사친, 종고갱장, 진퇴읍손에 내재한 의미를 말한다.
- ↑ 예수(禮數)는 숫자로 규정된 의식(ritual)의 절차를 말한다. 절을 두 번 하고 술을 세 번 따르는 등이 그것이다. 흔히 쓰는 '예절(禮節)'이란 말의 '절' 역시 이런 종류의 의식을 규정하는 절차와 단계, 참여자의 위아래를 나누는 등급 따위를 의미하므로 '예수'와 통한다. 일역판에서 예수를 예절로 번역한 것을 참조하여 따랐다.
- ↑ 주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움의 과정은 1. 먼저 어려서 몸으로 익혀서 습관화하고 2. 나중에 머리로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캐묻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큼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히는 사람들이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1의 과정을 다 큰 다음에 보충해야 한다. 이러한 보충의 과정이 일종의 명상수련에 해당하는 '경(敬)'공부이다. '격물'은 '캐묻고 이해하는' 2번 과정이다.
- ↑ 예절을 굳게 지키고 실천하는 진지함과 엄격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 ↑ 디테일은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다.
- ↑ 거처공, 집사경(居處恭, 執事敬)은 논어 19:19
- ↑ 하학과 상달을 말한다.
- ↑ 적연부동과 감이수통을 말한다.
- ↑ 맹자 7A:33
- ↑ 주역 곤괘 문언전.
- ↑ 해(解)는 can의 의미.
- ↑ 구오대사 권15 양서(梁書) 한건(韓建)
- ↑ 우, 탕, 문무를 말한다. 문왕과 무왕을 하나씩 세면 네 왕이지만 어째서인지 맹자는 셋으로 셌다.
- ↑ 맹자 4B:20. 우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훌륭한 말을 좋아했다. 탕은 중도를 잡았으며 어진이를 세우되 그 부류를 따지지 않았다. 문왕은 백성 보기를 자기 몸의 상처 보듯 하였으며 도를 소망하면서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 하였다. 무왕은 가까이 있는 이를 편애하지 않고 멀리 있는 이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맹자가 말한 '세 왕의 네 가지 일'이다.
- ↑ 대학 전7장.
- ↑ '著'는 '須著'의 뜻이다.
- ↑ 일역판의 각주에 의하면 이는 양팔저울로 무게를 재는 경우를 시각화해서 이해해야 한다. 큰 물건을 저울의 한쪽에 올려두면 다른 쪽 팔에는 좀 무거운 무게추를 더해주어야 균형이 맞다. 작은 물건을 올릴 경우엔 무게추를 덜어주어야 균형이 맞다.
- ↑ 대학 전9장.
- ↑ 10:31의 유사한 구절을 참조하라.
- ↑ 규모(規模)는 틀, 구조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미리 이러이러한 틀을 잡아서 한계선을 정해둔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이렇게 의역하였다.
- ↑ 본문은 반도(半途)이나 인용 출처인 예기 표기(表記) 쪽은 '중도(中道)'이다.
- ↑ '俛'에 관해서는 14:59 참조.
- ↑ 예기 표기(表記)
- ↑ 맹자 4B:28
- ↑ 14:44에 유사한 구문이 있으니 참조하라.
- ↑ 주례 고공기
- ↑ 실체(實體)는 문자 그대로 옮길 수 없다. 이미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ousia)'의 번역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주자어류에서의 실체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치를 말한다. 한편 요즘 세간에서 종종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에서 '실체'는 우시아보다는 주자어류에서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운 것처럼 들린다.
- ↑ 중용 제 4장.
- ↑ 직전 조목 참조.
- ↑ '절(切)'은 어떤 말이 무척 구체적이고 실감나서 우리 피부에 딱 와 닿는 느낌을 말한다.
- ↑ 주희에 의하면 격물은 각각의 사건과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한나라 사람들의 탐구는 방향이 틀렸다기 보다는 그 정도가 못미쳤다는 것이다.
- ↑ 남송의 남검주.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연평구 즈음으로 복건 한가운데에 있다.
- ↑ 남송의 건녕부. 치소가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소속인 건구시(建瓯市)에 있다.
- ↑ 남송 건녕부 건양현. 건녕부 치소의 북쪽에 있다. 오늘날 복건성 남평시 건양구. 남검주의 치소에서부터 걸어서 북상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먼저 도달하고, 여기서 더 북상하면 건양현에 도달한다. 물론 남검주의 서북쪽 끄트머리에서 출발한다면 건녕부 군청에 도달하기 전에 건양현 경내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역시 하나의 비유로서는 부자연스럽다. 건양을 '건녕'이라고 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 ↑ 오늘날의 표현으로 치환하자면, 현실을 논하면 이론은 자연히 그 논의 속에 있지만 이론을 논하다보면 현실을 때로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 ↑ 공동은 속이 빈 것이다. 이론만 있지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뜻이다. 무계는 계고(稽考)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뿔달린 토끼나 날개달린 말처럼 현실에서 찾아내어 입증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 ↑ 유(由)는 '따르다', 역(亦)은 '만일'로 풀었다.
- ↑ 착수할 지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 ↑ 논어 19:19
- ↑ 논어15:5
- ↑ 주희에 따르면 우리의 본성이란 우리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의 상태(未發)를 말한다.
- ↑ 원칙이다.
- ↑ 상황윤리이다.
- ↑ 맹자 5A:2
- ↑ 효경 사군(事君) 17. 소학(小學) 명군신(明君臣) 52에서도 인용했다. 15:18 참조.
- ↑ 주역 감괘 육사효. 약(約)은 상대방을 속박하는 말이다. 이러이러한 것은 하지 않고 저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등의 내용으로 군주를 제약하는 말이다. 문과 창문은 각각 큰길과 샛길을 뜻한다. 군주에게 윤리적 처방을 들일 때 정당하게 하는 것이 물론 좋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회를 틈타 측면으로 집어넣는 유도리를 발휘하는 게 좋다는 의미이다.
- ↑ 원칙을 말한다.
- ↑ 논어 14:4. 위(危)는 높음, 손(孫)은 낮음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도 행실도 높게 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실은 높게 해도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군자는 행실에 있어서는 타협할 수 없지만 무도한 상황에서 타협없이 말하면 위험하므로 말은 낮춰서 한다고 하였다.
- ↑ 주희는 이를 상황윤리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일역판에서는 이것을 '원칙'의 한 사례로 인용한 것처럼 풀었는데 적절하지 않다.
- ↑ 이정의 제자 여대림이다.
- ↑ 이정의 제자 양시.
- ↑ 여대림이 희노애락의 미발(未發)의 영역에서 '중(中)'을 찾아서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구중(求中)'론이라고 한다. '큰 근본이 되는 지점(大本處)'이란 이 '중(中)'을 말한다. 이정유서 18:82를 보라. 양시 역시 마음의 내면에 초월적 영역을 설정해두고 그곳을 향해 깊이 침잠한 끝에 극적으로 어떠한 경지로 도약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주희가 중용혹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 과(胯)는 개(個)와 같다. 수량사이다.
- ↑ 일역판의 주석이 자세하니 참조하라. 어류 및 여러 다른 문헌에서 공섬(龔剡), 공섬백(龔剡伯), 공염(龔郯), 공염백(龔郯伯)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 대학장구 격물보망장을 참조하라.
- ↑ 맹자 7A:15. 어류 14:92를 참조하라.
- ↑ 공자가어 왕언해
- ↑ 맹자 7A:15. 직전 조목 참조.
- ↑ 임금과 신하가 '물'이고 인과 경이 그 물에 내재한 도리이다. 사사물물에서 그것에 내재한 도리를 찾는 것이 격물이다. 14:104 참조.
- ↑ 황의강의 형 황의용(黃義勇).
- ↑ 개잔(開剗)은 작은 구멍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깎고 파내어 크게 만드는 것이다.
- ↑ 의지(意)를 말한다.
- ↑ 이름은 자환(自寰)이다.
- ↑ 일역판은 고정연원록 하권 20의 구문을 근거로 格物理至徹底處 앞에 格物是 세 글자를 더하여 번역했다.
- ↑ 조선고사본에 따르면 이 자리에 '일설(一說)' 두 글자가 있다.
- ↑ 사람이 마땅히 멈추어 머물러야 할 지극히 선한, 최선의 지점을 말한다.
- ↑ 대학 본문의 '치지는 격물에 달려있다(致知在格物)'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15:140을 참조하라.
- ↑ 맹자 6A:11. 맹자가 되찾으라고 한 마음은 어진 정서(仁)에 가까우나 주희는 이를 집중하여 각성된 의식인 것처럼 풀이했다. 따라서 주희의 경학체계 안에서 구방심 공부는 '거경(居敬)' 공부와 구분되지 않는다.
- ↑ 논어 5:5
- ↑ 이부분의 교감은 의견이 갈린다. 현행본의 편자인 여정덕은 이 두 글자를 빼고 '평(平)' 하나만 남기는 쪽을 추천한 듯하다. 홍계희가 편집한 조선정판본은 '평(平)'을 작은 글자로 썼다. 이 경우 '평'은 '치(治)'를 평성(平聲)으로 읽으라는 주석이 된다. 이의철의 고문해의는 조선정판본의 교감을 비판하였으나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주자어류휘교 쪽은 성화본을 추종하여 '평'을 주석으로 보았다. 일역판은 조선고사본을 따라 '수치평'을 '수지(修持)'로 바꿔서 해석했다. 어느쪽이 옳은지 알 수 없기에 여기서는 우선 가장 오래된 의견인 여정덕의 안어를 따라 '수치'를 빼고 해석하였다.
- ↑ 이정유서 18:85. 이정유서와 비교해보면 글자에 다소 출입이 있다. 정이는 여기서 나의 통제를 벗어나서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상태와 내 통제에 따라 마음이 활발히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안히 안정되기도 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다.
- ↑ 晌은 수량사이다.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爭은 다투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어 = 순식간에.
- ↑ 내가 사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나를 다루게 된다는 뜻이다.
- ↑ 도덕적인 앎을 말한다.
- ↑ 주희는 종종 제자들을 이렇게 불렀다.
- ↑ 중용 제 20장에 나오는 공부의 다섯 항목이다. 앞의 네 가지(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고)는 모두 이지적인 행위, 역행 하나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굳이 계산하자면 '치지'가 전체 공부의 80%를 차지하는 셈이다.
- ↑ 대학 전3장에서 열거한 다섯 덕목이다.
- ↑ 부친과 아들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는(e.g. 부자유친) 모친과 자녀, 부친과 모친 사이의 건전한 관계에 관한 이치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 ↑ 이상 논어 7:6
- ↑ 일역판에서는 광격(匡格)을 광곽(匡郭)과 같은 것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에서 광격(框格)이 네모난 프레임, 격자 등을 의미하므로 광격자는 그냥 그대로 테두리나 프레임 정도로 풀이하면 된다. '격(格)'을 '곽(郭)'으로 바꿔서 풀이하는 것은 지나치다.
- ↑ 토(討)는 물건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올 수도 있고 어디서 주워올 수도 있지만 아무튼 없던 것을 찾아서 가져왔으면 모두 '토'이다. 14:161을 참조하라.
- ↑ 덕을 굳게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택할 수 있는 행위의 선택지들 가운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한 후 해야 할 것의 영역 안에 꾸준히 머무르며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테두리'로 비유한 것이다.
- ↑ 거친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 일상의 공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정밀하다는 것은 질료적 감각이 없는 형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 ↑ 형이하의 세계를 관찰하고 파고들어 그것에 내재한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 격물치지이다. 그러므로 하등의 세계에서 상등의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 인적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 ↑ 물리와 도리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옮기자면 각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
- ↑ 팔조목 가운데 치지와 성의를 수련한 결과를 말한다. 앎을 지극히 하는 공부를 하여 앎이 지극해진 상태, 의도를 진실하게 하는 공부를 하여 의도가 진실해진 상태이다.
- ↑ 양웅의 법언(法言) 문신(問神)편의 한 구절이다. 색(索)은 수색하다, 지(至)는 지극한 지점이다.
- ↑ 조선정판본에서는 '앎이 지극해진 것이다(知至)'이다. 애초에 질문자의 질문이 지지(知至)였음을 감안하면 조선정판본의 기록도 말이 된다.
- ↑ 성화본과 조선정판본에는 이 자리에 '왈(曰)'자가 있어서 여기서부터 주희의 대답임을 표시하였다.
- ↑ 격물은 구체적인 사태나 사물에 1)접근해서 2)자세히 관찰하며 생각하고 3)그러다 이치를 발견하고 4)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발견의 수준을 고도화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궁리(=이치를 탐구함)는 2번에서 4번까지의 의미로 쓰일 뿐 1번의 의미는 거의 없다. 주희는 '격물'이라는 말을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한다. 1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4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혼내고 3번의 의미로 질문하는 제자에겐 1번의 뜻으로 답해주며 무안을 주는 식이다. 이 조목에서는 격물을 1번 뜻으로 사용했지만 15:59나 15:60에서는 4번 뜻을 강조하고 있다.
- ↑ 원소는 무엇에 힘써 노력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격물과 궁리를 구분한 주희의 대답을 원소가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렇게 번역하였다.
- ↑ 격물을 1번~2번 정도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 ↑ 고문해의의 해석을 따랐다. 원소가 격물과 궁리(=치지) 사이의 관계를 이상하게 설정한 것에 화가 난 주희가 '그런 식으로는 치지가 격물에 달려있다는 경문을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는 장차, '작심'은 어떻게, '합살'은 매조지함이다. 합살은 본래 악곡의 연주를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39:2에서 '如何合殺'이라고 말한 부분을 참조하라.
- ↑ 격물을 4번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 ↑ 직전 질문에서 원소는 '격'을 1~2번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물을 모두 '격' 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앎이 지극해지지는 않는다. 주희는 격물을 4번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대학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격물의 완료가 곧바로 앎의 지극함을 의미한다.
- ↑ 회암집 권 44의 답강덕공 제 2서를 말한다.
- ↑ 격물을 1번 뜻으로 푼 것이다.
- ↑ 디테일은 몰라도 구조적 측면에서는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가장 비근한 번역어는 아마도 '와꾸'일 것이다.
- ↑ 중용 제12장.
- ↑ 주희는 이 '지극'을 문제의 핵심부나 산의 정상처럼 가장 중요하기에 가장 나중에 나오는 물건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것들로 파악했다. 63:60을 참조하라.
- ↑ 반시거의 자(字)이다.
- ↑ 격물이 완성된 결과가 물격이다.
- ↑ 주돈이의 태극도설의 첫 구문이다. 주희는 이 부분을 '극 없는 위대한 극'으로 풀었다. 태극은 세계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이치(理)인데, 그것이 이치라는 것은 형체와 질감을 결여하는 순전히 이론적인 존재, 곧 형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태극의 이러한 형이상자적인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바로 '무극'이다.
- ↑ 이치를 알고자하는 '안쪽'의 노력(즉, 인식)과 여러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려는 '바깥쪽'의 노력(즉, 실천) 양쪽이 모두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15:28, 15:69를 참조하라. 아래 15:67도 같은 내용이다. '안쪽과 바깥쪽의 합일(合內外)'이라는 표현은 이정유서 11:18이 유명하다. '경건함으로 안쪽을 곧게하고 의로움으로 바깥쪽을 바르게 하니 안쪽과 바깥쪽을 합일하는 도리이다(敬以直內, 義以方外, 合內外之道也.)'
- ↑ 산의 남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
- ↑ 산의 북쪽측면에서 자라는 나무.
- ↑ 주례(周禮) 지관(地官) 산우(山虞)
- ↑ 맹자 1A:7
- ↑ 이치를 알고자하는 노력의 끝에 이치를 알게 되면(물격)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치에 맞게 사태에 대처하게 된다. 말하자면 '안쪽'은 독립변수, '바깥쪽'은 종속변수이다.
- ↑ 직전 조목을 참조하라. 주광호(2020, 482)도 이 부분을 번역하고 유려하게 해설한다. 참고할 가치가 있다.
- ↑ 직전 조목 참조.
- ↑ 여대림(呂大臨)이 극기명(克己銘)에서 만물일체를 주장한 부분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비록 상호 독립된 개체인 것처럼 보여도 그 구성물질은 모두 우주로부터 골고루 나누어받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실은 한 몸(同體)이다.
- ↑ 직전 조목 참조. 글자에는 출입이 있으나 대의는 같다.
- ↑ 예기 왕제
- ↑ 지지(知至)의 지(至)는 '지극하다'라고도 풀지만 '이르렀다'고도 풀이한다. 지극(至極)이라는 말부터가 극점에 이르렀다는 뜻이니 사실 '지극하다'와 '이르렀다'는 서로 통한다. 본고에서는 문맥에 따라 두 번역어를 바꿔 쓰고 있다.
- ↑ 맹자 4A:11
- ↑ 안쪽과 바깥쪽에 관해서는 앞선 15:66과 67을 참조하라.
- ↑ 직전 15:70을 참조하라.
- ↑ 대학의 본문을 보면 팔조목을 순서대로 나열한 후 그것을 도치시켜서 역순으로 나열한다. 예컨대 격물(格物)에 대해서는 물격(物格)이라고 하고 성의(誠意)에 대해서는 의성(意誠)이라고 하는 식이다. 유독 치지(致知)만 지치(知致)가 아니라 지지(知至)라고 적혀있다.
- ↑ 이 파자해는 무척 이상하다. 우선 치(致)의 우변이 인(人)이라는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주희에게 어떤 근거가 있었기에 이렇게 말한 것인지 모르겠다.
- ↑ 14:80 참조.
- ↑ 고수나 달인의 도드라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일을 숨쉬듯이 평이하게 해내는 것이다. 온갖 애를 써가며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괴인들보다 평범하게 주먹 한 번 휙 휘두르는 사이타마가 훨씬 강한 것으로 묘사되는 '원펀맨'의 장면들이나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훈련을 거치고 나온 손오공과 손오반이 초사이어인 상태를 평이하고 차분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한 '드래곤볼'을 참조하라.
- ↑ 대학 전10장. 팔조목의 마지막 단계인 평천하(平天下)를 해설할 적에 평천하의 주체인 '윗사람(上)'이 마땅히 지녀야할 자세로 거론한다. 혈구는 곱자와 직각자이다. 물건의 치수를 잴 때 사용하는 툴이다. 윗사람이 자기반성을 통해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심사를 측정하면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심사를 헤아려(혈구) 통치하면 평천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 전 10장. 윗사람이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고 그 도덕성이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한 것이라면 아랫사람들 역시 윗사람과 똑같은 심사를 가진 사람이니만큼 금방 그것을 따라하여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윗사람이 자기 집안 노인을 잘 모시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효심이 흥하고 ......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면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 사이에서 서로를 져버리지 않는 마음이 흥한다.'
- ↑ 이 부분은 혈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평균제일(平均齊一)'이라고 한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균질화라기보다는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간격이 균일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내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들면 나는 내 아랫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위에서 아래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아래' 각 마디가 모두 똑같이 '상호존중'이라는 동일한 간격으로 정렬될 것이다. 전 10장에 대한 주희의 주석을 참조하라.
- ↑ 주역 계사상전 1의 '건이 (세상의) 큰 시작을 맡고 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乾知大始, 坤作成物)'를 말한다. 주희는 이 '지(知)'를 담당하고 주관한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여기서 정중리는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한 듯하다. 74:21 참조.
- ↑ 조선정판본은 '지(至)'가 '지(止)'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번역자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이 조목은 14:163과 사실상 같으니 함께 놓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
- ↑ 주역 계사상전. 어류 14:146과 163을 참조하라. 심은 깊음이고 극은 그 깊음을 지극히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세계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 있고 깊이 있는 정신을 구축하는 노력을 말한다.
- ↑ 연은 갈고닦는다는 뜻이고 기는 기미이다. 기미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현상세계의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면밀히 살펴 파악하는 노력을 말한다. 변화의 양상을 잘 알면 변화가 시작하려는 바로 그 지점을 언제나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미'를 살핀다고 한 것이다.
- ↑ 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선의 지점을 알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안정되면 조용해지고, 조용해지면 편안해지고, 편안해지면 심사숙고할 수 있게 되고, 심사숙고하면 실제로 그 최선의 지점에 머물게 된다. 대학 경문에서 '멈출 곳을 안(知止)' 다음 일어나는 일련의 심리적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 ↑ 팔조목의 과정이다. 대학 경문에서 묘사한 인식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과정과 팔조목에서 묘사한 과정이 서로 별개의 프로세스라는 말이다. 주희는 이 두 프로세스를 나란히 놓고 이쪽의 이 단계는 저쪽의 저 단계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5:139에서는 '앎이 지극해짐(知至)'까지가 경문의 '지지(知止)'에 해당하고 그 이후의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여섯 조목은 경문의 정/정/안/려/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14:174에서는 팔조목의 치지와 성의 사이에 정/정/안/려/득을 모두 배치했다. 14:157에서도 치지 뒤에 정/정/안/려/득을 배치했지만 성의가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 ↑ 확신하기 어려우나 질문자는 정/정/안/려/득을 먼저 실천하고 성의/정심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파악한 듯하다.
- ↑ 경문의 정정안려득 부분이다.
- ↑ 팔조목 쪽이다.
- ↑ 중화서국본 314쪽의 그림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