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아리 맞은 이야기

30여년 전 글방에서 글을 읽던 때의 일입니다.

우리 글방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은 모두 20여 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는 중국 애가 한 명 섞여 있었읍니다.

이 아이 아버지는 중국 사람이요, 어머니는 조선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글 방 아이 중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글 읽다 말고서 선생님 몰래 조그마 한 종이 조각에다 중국 사람의 그림을 연필로 그렸읍니다. 기다랗게 머리를 따 늘이고 손톱은 한 치 길이나 되게 그린 후에 그 옆에다는 ‘장꼬로’라 고 썼읍니다. 그래가지고는 이것을 그 중국 애 앞에다 던졌던 것입니다.

이런 장난은 이 날이 결코 처음은 아니었읍니다. 허구한 날 이러 짓을 하 여 놀리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선생님한테 들키어 종아리 를 맞곤 하였읍니다.

이 날도 중국애는 그 그림 쪽을 선생님께 가져다 바쳤읍니다. 선생님도 이 것이 누구의 짓인 줄은 물론 잘 아셨읍니다.

우리들은 눈치만 바라보며 속으로 익히, 또 종아리로구나 하고 본숭만숭 시치미를 떼고 흥얼흥얼 글 읽는 체하고 있었읍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벽장 속에서 종아리채를 듬뿍 꺼내셨읍니다. 아마 30여 개나 되었을런지요. 우리들은 하도 종아리를 맞아서 종아리채만 보아 도 지긋지긋 했읍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을 그린 아이는 누구냐?, 빨리 나오너라.”하고 호령 호령 하였읍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만큼 할 수 없이 그림 그린 애가 나가 서게 되었읍니다. 종아리를 맞는데 아이구아이구 하고 금방 죽은듯이 야단 을 폈읍니다. 아마 한 열개는 맞았겠지요. 선생님은 이번엔 중국 아이를 일 으켜 세웠읍니다. 이것은 정말 천만 뜻밖의 일이었읍니다. 너 이놈 너희들 끼리 장난하노라고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했기로서니 번번히 내게다 고해 바 치면 어찌 한단 말이냐. 그런 장난을 하는 놈도 나쁜 놈이지마는 고해 바치 는 놈도 나쁜 놈이야 하시며 선생님은 그 애도 먼저 애와 꼭같이 종아리를 열 개나 때리셨읍니다.

그 애가 매맞은 것이 어찌 우습고 고소하든지 우리들은 글 읽는체 흥얼흥 얼해 가면서 이 구석 저 국석에서 킥킥하고 웃었읍니다.

큰 탈은 여기서 났읍니다 . 선생님은 큰 기침을 한번 하시더니만 책들은 덮 으라고 하신 후 아랫목에 앉았던 애부터 차례로 일으켜 세워놓고는 모두 종 아리 열 개씩을 때리셨읍니다. 이것을 그때 말로 ‘일북일살륙통(一不一殺 六通)’이라고 해서 한 놈이 잘못한 죄를 일 놈 백 놈이 모두 뒤집어 쓰는 것입니다.

제가 잘못하고서 매맞은 것도 아프고 억울한데 남의 죄에 애꿎은 매를 맞 고 보니 정말 그때처럼 분할 데는 없었읍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30여년 전 종아리 맞던 시절이 퍽으나 그립구먼요.

라이선스 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
 
 

이 저작물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에 의거하여 저작권이 만료된 문서로서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운영하는 공유마당에 등록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