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집시-들병이 철학


안해를 구경거리로 개방할의사가, 잇는가 혹은 그만한용기가잇는가, 나는 이러케가끔뭇고십흔 충동을늣긴다. 물론 사교계에 용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해의 출세와 행복을 바라지안는자이 누구랴-

그러나 내가하는말은 자기의안해를 대중의구경거리로 던질수잇는가, 그것이다.

그야 일부러 물자를 드려가며 이혼을 소송하는 부부도 업지는안타마는 극심히 애지중지하는 자기의안해를 대중에 봉사하겟는가, 말이다.

밥!밥! 이러케부르짓고 보면 대뜸 신성치못한 아귀를 연상케된다. 밥을하는 호구가 그리 신성치 못한것과 가치-거기에는 몰자각적 복종이 필요하다.

파염치적 허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매춘부적애교 아첨도 필요할는지모른다.

그러치 안코야 어디 제가 감히 사회적지위를 농단하고 생활해 나갈도리가 잇겟는가-

그러나 이것은 그런 모든 가면 허식을 벗어나 각성적 행동이다. 안해를 내놋코 그리고 먹는것이다. 애교를 판다는것도 근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노동화아엿다. 노동햐야 생활하는 여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업슬것이다.

이것이 즉 들뼝이다.

그들도 처음에는 다 납뿌지안케 성한 오장육부가 잇섯다. 그리고 남만 못하지안케 낌끌한 희망으로 땅을 파든 농군이엇다.

농사라는 것이 얼른 생각하면 한가로운 신사노릇도 갓다. 마는 실상은 그런 고역이 다시 업슬것다. 땡볏헤 논을 맨다. 김을 맨다. 혹은 비 한방울에 갈급이나서 눈감고 꿈에까지 천기를 엿본다-그러나 어터케 해서라도 농작물만 잘 되고 추수때 소득만 여의하하면이야문재잇스랴.

가을은 농촌의 유일한 명절이다. 그와 동시에 여러 위협과 굴욕을 격고 나는 한 역경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주와 빗쟁이에게 수확물로 주고 다시 한겨울을 염려하기 위하야 한해동안 땀을흘렷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한번 분발한것이 즉 들뼝이생활이다.

들뼝이가 되면 밥은 식성대로 먹을수잇다는것과 또는 그 준비에 돈한푼 안든다는이것에 그들은 미혹된다. 안해의 얼골이수색이면더욱조타.

그러치 안트라도농촌에서 항상 유행하는 가요나 몃마듸 반반히 가르키면된다.

남편은 안해를 데리고안저서 소리를 가르킨다. 낫에는 물론 벌어야 먹으니까

그럴 여가가 업고 밤에 들어와서는 안해를 가르킨다. 재기업스면 몃달도 걱리고 총명하다면 한 달포만의 끗치 난다. 아리랑으로부터 양산도, 방아타령, 신고산타령에 배따라기-그러나 게다 이풍진 세상을 만낫스니 나의희망을 부르면 더욱 시세가 조흘것이다.

이러면 그때에는 남편이 데리고나가서 먹으면 된다. 그들이 소리를 가르킨다는 것은 예술가적 명창이 아니엇다. 개끄는 소리라도 먹을수 잇슬만치 세련되면 그만이다.

안해의 등에 자식을 업혀가지고 이러케 남편이 데리고 나간다. 산을 넘어도 조코 강을 몃식 건너도 조타. 밥 잇는 곳이면 산골이고 머덩을 불포하고 발길 닷는대로 유랑하는것이다.

이것을 다른데 예를 잡으면 애급의 집씨-(유한민)적 존재다.

한창 낙엽이 질때이면 추수는 대개 끝이난다. 그리고 궁하든 농촌에도 방방곡곡이 두둑한 멋섬이 늘려노힌다.

들뼝이는 이때부터 자연적 활동을 시작한다. 마치 그것은 볏섬을 습격하는 참새들의 행동과 동일시하야도 조타. 다만 한가지 치이라면 참새는 당장의 충복이 목적이로되 그들은 식사이외에 그담해 여름의 생활까지 지탱해나갈 연명자료가 필요하다. 왜냐면 농가의 봄, 여름이란 가장 궁할 때이요 따라 들뼝이들의 큰 공황기다.

이리하야 가을에 그들은 결사적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영업이라야 적수공권으로 유한하며 아무 술집에고 유숙하면 그뿐이지만-

촌의 술집에서는 어데고 들뼝이를 환영한다. 아무개집에 들뼝이 들엇다하면 그날 밤으로 젊은 축들은 몰녀든다. 소리조곰만 먼저 해보라는 놈, 통성명만으로 낼밤의 밀회를 약속하는놈, 혹은 데리고 철야하는놈……하여튼 음산하든 술집이 이러케 담박 활기를 띠인다.

술집 주인으로 보면 두가지의 이득을 보는것이다. 들뼝이에게 술을 팔고 밥을 팔고-들뼝이가 보통작부와 가튼 점이 여기다. 그들은 남의술을 팔고 보주를 바라는것이 아니라 주막주인에게 막걸리를됫술로 사면 팔때에는 잔술로 환산한다. 막걸리 한되의 원가가 가령 십칠전이라면 그것을 이십여전에 맛는다.

그리고 손님에게 잔으로 풀어 열잔이 낫다치고 오십전, 다시 말하면 탁주이승의 순이익이 삼십전이라 할것이다.

그러나 한잔에 반듯이 오전식만 밧겟다는 선언은 업다. 심전도 조코 이십전도 조타. 주객의 처분대로 이쪽에서는 밧기만하면 된다. 그럴 리야 업겟지만 한잔에 일원식을 설사 처준다해도 결코마다지는 안는다. 다만 그대신 객의 소청미면 무엇을 물론하고 응낙할만한 호의만 가질것이다.

들뼝이는 무엇보다도 들뼝이로써의 수완이 잇서야 된다. 술팔고 안주로 아리랑타령만하면 되는것이아니다. 아리랑쯤이면 농군들은 물린만치 들엇고 또 하기도 선수다. 그 아리랑을 드르러 삼사십전의 대금을 람비하는농군이 아니엇다. 술 몃잔 사먹으면 의례히 딴안주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또 그것이 여러번 거듭하는 동안에 아예 한개의 완전한 권리로써행사케 된다.

만약 들뼝이가 애기에 응치 안는다면 그건 큰 실례다. 안주를 덜바든데 그들은 담박 분개하야 대들지도 모른다. 혹은 지불하엿든 술갑슬 도로 내라고 협박할는지도 모른다.

이런 소박한 농군들을 상대로 생활하는 들뼝이라 그 수단도 서울의 작부들과는 색체를 달리한다. 말하자면 작부들의 애교는 임시변통으로도 족하나 그러나 들뼝이는 끈끈한 사랑 즉 사랑의 지속성을 요한다. 왜냐면 밤마다 오는놈들이 거의 동시에 몰려들기 때문에 일정한 추파를 보유치안흐면 당장에 권비백산의 수라장이 되기가 쉽다.

들뼝이가 될랴면 이런 화근을 업새ㄷ 첫째 눈치가 빨라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러타고 현금으로 청구해서는 또한 실례가 될는지도 모른다. 보통외사이므로 떠날때쯤해야 집으로 차자다니며 쌀이고 벼고 콩팟, 조, 이런 곳식을 되는대로 수합함이 올흘것이다.

그리고 두내외 질머지고 그담 마을로 차자간다.

들뼝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야 빈궁한 농민들을 잠식하는 한 독충이라 할는지도 모른다. 사실 들뼝이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춘사가 비일비재다.

풍기문란은 고사하고 유혹, 사기, 도난, 폭행- 주재소에서 보는대로 축출을 명령하는 그이유도 여기에 잇슬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면만을 관찰한 편견만에 지나지안는다. 들뼝이에게는 그해독을보가하고도 남을 큰기능이 잇슬것이다.

시골의 총각들이 취처를 한다는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다. 결환당일의 비용은말고 우선 선채금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사오십원의 현금이 아니면 매혼시장에 출마할 자격부터 업는것이다. 이에 늙은 총각은 삼사년간 머슴살이 고역에 부득이 감내한다.

그리고 한편 그들의 후일의가정을 가질만한 부착능력이 잇느냐하면 그것도 한의문이다. 현재 처자와 동락하는 자로도 졸지에 이별되는 경우가 업지 안다.

모든 사정은 이러케 그들로하야금 독신자의 생활을 강요하고 따라서 정렬의 포만상태를 초래한다. 이것을 조기적으로 조절하는 완화작용을 즉 들뼝이의 역할이라 하겟다.

들병이가 동리에 들엇다. 소문만나면 그들은 시각으로 몰려들어 인사를 청한다. 기실 인사가 목적이 아니라 우선 안면만 익혀두자는 심산이엇다.

들뼝이의 용모가 출중나다든가, 혹은 성악이 탁월하다든가 하는것은 그리 문제가 못된다. 유두분면에 비녀쪽 하나만 달리면 이런 경우에는 그대로 통과한다. 연내의 숙원을 성취시키기 위하야 그호기를 감축할뿐이다.

들뼝이가 들면 그날밤부터 동리의 청년들은 때난봉이난다. 그럿타고 무모히 산재를 한다든가 탈선은 아니한다. 아모쪼록 염가로 향락하도록강구하는것이 그들의 버릇이다. 여섯이고 멋치고 작당하고 출염을모여 술을 먹는다. 한사람이 오십전식을 낸다면 도합삼원-그 삼원을 가지고 제각기삼원어치 권세를 표방하며 거기에 부수되는 염태를 요구한다. 만약 들뼝이가 이가치를 무시한다든다, 혹은 공평치못한 애욕남비가 잇다든가, 하는 때에는 담박 분란이 일어난다. 다가치 돈은 냇는데 엇재서 나만 떼놋느냐, 하고 시비조로 덤비면 큰 두통거릴 뿐만 아니라 돈못받고 따귀만털리는 봉변도 업지안타. 하니까 들뼝이는 이 여섯친구를 동시에 부마하며 삼원어치 대접을 무사공정히 하는것이 한 비결일지도 모른다.

이러케 결산하면 내긴 오십전을 냇스되 그효용가치는 무려오십원에 달하는 심이엇다. 이런 조흔기회를 바라고 농군들은 들뼝이의 심방을 저윽이 고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들뼝이로 보면 빈농들만 상대로하고 잇는것도 아니다. 때로는 지주택 사랑에서 청할적도 잇다. 그러면 들뼝이는 항아리나 병에 술을 너혀가지고 차자간다. 들뼝이가 큰돈을 잡는것은 역시 이런 부자집 사랑이다. 그리고 들뼝이라는 명칭도 이런 영업수단에서 추상된 형용사일지도 모른다.

일반농촌부녀들이 들뼝이를 선망과시기로 바라보는 까닭도 여기에 잇다.

자기네들은 먹지도 잘못하겨니와 의복하나 면면히 어더입지 못한다.

양반택사랑에 기탄업시 출입하며 먹고입고 또는 며칠밤 유숙하다 나오면 지전장을 만저보니 얼마나 행복이랴-들뼝이가 들면 남자뿐아니라 안악네까지 수군거리며 마을에 묘한 분위기가 떠돈다.

들뼝이를 처음 만나면 우선 남편이 잇느냐고 뭇는것이 술군의 상투적인사다.

그러면 그대답은 대개 전일에는 금슬이 조왓스나 생활난으로 말미아마 이혼햇다한다.

들뼝이는 남편이 업다는이것이 유일의 자본이다. 부부생활이얼마나 무미건조하엿든가를 역역히 해몽함으로써 그들은 술군을 미혹케한다.

그러나 들뼝이에게는 엊제나 남편이 수행하고 잇는것이다. 안해가 술을 팔고 잇스면 남편은 그근처에서 배회하고잇다.

들뼝이의 남편이라면 흔히 도박자요 불량하기로 정평이낫다. 그들은 안해의 밥을무위도식하며 일종의 우월권을주장한다. 안해가 돈을벌어노흐면 각금달겨들어 압수하야간다. 그리고 그걸로 투전상을한다. 술을먹는다-이러케 명색업시 소비되고 만다.

그러나 안해는 이에 불평을품거나 남편을힐책하지안는다. 이러는것이 남편의권리요 또는 안해의직무로 안다. 하기야 노름에 일국확천금하면 남편뿐이아니라 안해도 호사로운 생활을 가질수잇다. 잡담제하고 노름미천이나 대주는것도 두량이슨일인지도 모른다. 들뼝이로 나스면 취객접대도힘들거니와 첫때 남편공양이 난사다. 반만먹일뿐안니라 옷뒤도 거더야된다. 술팔기에 밤도새우지만 낫에는빨래를하고 옷을꼬여매고 그래야 입을것이다. 게다 젖먹이나 달리면 강보도 늘빨아 대야하는것을 이저서는안된다.

그러나 그것만도조타, 엄동설한에 태중으로 나섯다가 산기가 잇슬때에는 좀 곡경이다. 술을 팔다말고 술상압헤서 해산하는수박게 멸도리업다. 물론 아모준비가 잇슬까닭이업다. 까칠한 공석우에서 덜덜떨고잇슬뿐이다.

들뼝이수업중 그중 어렵다면 이것이겟다.

이런때이면 남편은 비로소 안해에게 밥갑을보답한다. 희색이 만면해서 방에불을지피고 밥을짓고 국을끌이고 지성으로 보호한다. 남편은 이아해가 자기의 자식이라고는 밋지안는다. 다만 자기소유에 속하는 자식이라는 그점에 만족할뿐이다.

상식으로보면 이런 아해가 제대로 명을 접대할것갓지안타마는 들뼝이의 자식인만치 무병하고 죽엄과인연은 아해는다시 업슬것이다. 한칠일만 겨우지나면 눈보래에 떡처업고 방랑의길로 나슨다.

들뼝이가 아해를데리고다니는것은 기이한현상이안니다. 대개하나식은 그품에 부터 다닌다. 고생스런노동에도 불구하고 자식만은 극진히 보육하는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들을 동정하야 아해를 데리고다니기가 인난일테니 길러주마 한다면 그들은 노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고생이아니라 생활취미다.

그러다가도 춘궁때가 돌아오면 들뼝이는 전혀 한가롭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옛집에 칩거한다. 품을 팔아먹어도 조코 땅을파도 조타. 하여튼 다시 농민생활로 귀화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담 가을을 기다린다.

들뼝이는 어데로 판단하던 물론 정당한 노동자이다. 그러나 때로는 불법행위가 업는것도 아니니 그런 때에도 우리는 증오감을 갖기보다는 이종의 애교를 늣기게된다. 왜냐면 그법식이 너머 단순하고 솔직하고 무기교라 해학미가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편이 간혹 야심하야 안해의처소를 습격하는경우가 잇다.

이때에는 방에 들어가등잔의 불을 대려노코 한구석에묵묵히안젓다. 강박하거나 공갈은 안한다.

들뼝이니까 그럴 염치는 하기야, 업기도 하거니와-얼마후에야 남편은 겨우 뒤통수를 글그며

“머릴 깍가야 할텐데-“

이러케 이발료가 업슴을 장탄하리라.

그러면 이것이 들뼝이의 남편임을 비몽사몽간깨닫게된다. 실상은 죄가 못되나 순박한 농군이라 남편이라는 위력에 압도되여 대경실색하는것이 항례다. 그러나 놀랄건 업고 몃십전 희사하면 그뿐이다. 만일현금이 업슬때에는 내일아츰 집으로 오라하여도 조타. 그러면 남편은 무언으로 그자리를 사양하되 아무주저도 업스리라. 여기에 들병이 남편으로써의 독특한 예의가 잇는것이다.

절대로 현장을 교란하거나 가해하는 행동은 안한다.

들병이에게 유혹되어 절도를 범하는 일이 흔히 잇다. 기십원의 생활비만 변통하면 너와 영구히 동거하겟다는 감언이설에 대개 혹하는것이다. 그들은 들병이를 도락적대상으로써가 아니라 안해로써의 애정을 요망한다. 늙은 홀애비가 묘령들병이를 연모하야 남의송아지를 끄러냇다든가, 머슴이 주인의벼를 퍼냇다든가, 이런 범행이 빈번하다.

들병이가 내방하면 그들사이에는 암암리의 경쟁이 시작된다. 서루 들병이를 독점하기 위하야 가진 방법으로 그환심을 매수한다. 데리고가서 국수를 먹이고, 닭을 먹이고, 혹은 감자도 구어다 선사한다. 그러나 좀 현명하면 약간의 막걸리로 그남편을 수의로 이용하야도 조흘것이다.

들뼝이가 될랴면 이런 자분의 추세를 민감으로 파악하여야 할것이다.

소리는졸렬할지라도 이수단만 능숙하다면 호구는 무난일게다. 그리고 남편은 배후에서 안해를 물론 지휘조종하며 간접적으로 주객을 연락하여야 된다.

안해는 근육으로 남편은 지혜로, 이러케 공동전선을 치고 생존경쟁에 처한다.

들뼝이는 술갑으로 곡물도 밧는다고 전술하엿다. 그러나 사실은 곡물뿐만안니라 간혹 가장습물에까지 이를 경우도 업지안타. 식기, 침구, 의복류-생활상 필요품이면 구태여 흑백을 가리지안는다.

들뼝이에게 철저히 열광되면 그들 부부틈에 끼어 가치 표박하는 친구도 잇다.

이별은 아깝고, 동거는 어렵고, 그런 이유로 결국 한예찬자로써 추종하는 고행이엇다. 이런 때에는 들뼝이의 남편도 이연애지상주의자의 정성을 박대하지는 안는다. 의조케 동행하며 심복가치 잔심부름이나 시켜먹고 한다.

이러케 되면 누가 본남편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종말에 주객이 전도되는상외의 사연도업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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