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독본 제4과
第四課 金正皥
지금으로부터 百年쯤 前 일이다. 黃海道 어느 두메 다 쓰러저 가는 草家집 뜰에 黃昏을 띄고 섯는 한 少年이 잇섯다. 煙霞에 싸인 峯巒이 서로 連하야 잇는 저편을 아득히 바라다 보며 무엇을 골돌이 생각하다가 저근듯 하야 疑問이 가득한 얼골로 혼자 중얼거리기를
「대체 저 山줄기가 어듸서 일어나서 어듸 가서 그첫는지, 그림 그린 것이라도 잇섯스면 앉어서 알 도리도 잇스렷마는 우리들 배우는 책에는 도모지 그런 것이 업스니 엇저면 조을가.」
이 少年의 姓은 金이오, 이름은 正皥다. 가난한 집에 태여 낫스나 研學하기에 돈독하야 한 번 마음에 생긴 疑問은 이것을 풀지 안코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성미가 아니엿다. 그럼으로 그날 밤에도 前과 같치 書堂에 가자, 곳 스승에게 山에 對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물어 보앗다. 그러나 스승은
「그런 것을 알아 무엇 할 것이냐.」
하며 다시는 댓구도 하야 주지 안앗다. 하는 수 업시 그 자리에서는 그대로 넘겻스나 궁금한 마음은 좀체로 사라지지 안앗다.
그 後 몇 해가 지나서 親한 벗으로부터 邑圖 한 장을 얻엇는데 펴 본즉 山도 잇고 내도 잇고 鄕里의 모양이 손금 보이듯이 소상하얏다. 그는 뛸 듯이 깃버 하야 自己가 몸소 이것을 가지고 洞內마다 돌아다니며 一一히 마추어 보앗드니 생각하든 바와는 아조 딴판으로 틀리고 빠진 것이 만코 符合 되는 것은 極히 드믈엇다. 너무도 失望한 그는 그 後 또 京城에 正確한 地圖가 잇다는 말을 듯고, 곳 上京하야 左請右囑으로 宮中 奎章閣에 잇는 朝鮮八道地圖 한 벌을 얻엇섯다. 그러나 그 地圖도 그가 다시 黃海道로 가서 實地로 調査한 結果 그 疏漏함은 역시 먼저 邑圖와 何等의 다름이 업슴을 알앗다.
「이거 원, 地圖가 잇다 하나 이같치 틀림이 만아서야 害만 되지 利로움은 업슬 것이다.」
하며 歎息한 그는 이에 自己 손으로 正確한 地圖를 만들기 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을 깨달앗다.
원체 地圖를 만드는 일이 汽車 · 汽船 할 것 업시 모든 交通機關이 完備한 오늘날에도 오히려 만은 金力과 人力을 要하는 至難한 事業이어든 다만 한 사람의 微弱한 힘으로 더구나 交通이 不便한 그 當時에 이것을 敢行하랴는 그의 決心이야말로 참으로 壯烈하다 아니할 수 업는 일이다.
그리하야 春風秋雨十餘星霜, 그의 千辛萬苦의 긴 旅行은 시작되엿든 것이다. 본시 路資의 豫備도 업는 旅行이고 보닛가 어느 때는 돌 우에서 쉬고 어느 때는 나무 밑에서 잠을 잣다. 찌는 듯한 三伏 더위에 땀이 비오듯 흐른 때도 만앗고 살을 에이는 듯한 치위에 손발이 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엿섯다. 曠漠한 벌판에서 굼주렷스나 며칠식 밥을 못 먹은 때도 잇섯고 깊은 山中에서 病 들엇스나 물 한 모금 얻어 마실 도리도 업시 呻吟한 일도 잇섯다. 그러나 어듸까지 意志가 굿센 그는 百難이 앞에 닥칠 때마다 勇氣를 더욱 더 내여 이 郡에서 저 郡으로 이 道에서 저 道로 十餘年後에 마침내 有名한 大東輿地圖의 原稿를 完成하얏섯다. 그동안 八道를 돌아다닌 것이 세 번, 白頭山에 오른 것이 여덟 차례라 한다. 이리 하야 二十二帖의 大東輿地圖의 原稿는 되엿스나 본시 이것은 自己自身을 위하야 만든 것이 아니고 널리 世上 사람에게 알리랴고 만든 것이닛가 다시 이것을 印刷치 안을 수 업슬 것이다. 印刷를 하랴면 版을 만들어야 한다. 원래 돈 업시 하는 일이고 보니 그 엇지 容易하랴마는 鐵石과 같은 그가 이런 것을 구애하랴. 즉시 京城 西大門 밖에 집을 잡고 小說을 지어 얻은 돈으로 근근히 一家의 生計를 삼아 가는 한편 하나둘식 版木을 사 모아서 틈틈이 그의 딸과 함께 地圖版을 새겻다. 그리 하야 다시 十餘年의 歲月이 걸려서 이것도 完成하얏슴으로 비로소 印刷하야 몇 벌은 親한 친구에게 나누어 주고, 한 벌은 自己가 간수하야 두엇섯다. 그런지 얼마 아니 되여 丙寅洋擾가 일어남으로 自己가 간수하얏든 것을 어느 大將에게 주엇드니 그 大將은 뛸 듯이 깃버하며, 곳 이것을 大院君께 바첫섯다. 그러나 大院君은 다 아는 바와 같치 排外心이 强한 어른이시라 이것을 보시고 크게 怒하사
「함부로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나라의 秘密이 다른 나라에 루설되면 큰일이 아니냐.」
하시고, 그 地圖版을 押收하시는 同時에 곳 正皥 父女를 잡아, 獄에 가두섯드니 父女는 그 後 얼마 아니 가서 獄中의 고생을 견듸지 못하얏는지 痛歎을 품은 채 前後하야 사라지고 말앗다.
아아 悲痛한지고, 때를 맛나지 못한 正皥.......... 그 辛苦와 功勞의 큼에 反하야, 生前의 報酬가 그같치도 慘酷할 것인가.
비록 그러타 하나 玉이 엇지 永永 진흙에 무처 버리고 말 것이랴. 明治 三十七八年 日露戰爭이 시작되자 大東輿地圖는 우리 軍士에게 至大한 貢獻이 되엿슬 뿐 아니라 그 後 總督府에서 土地調査業에 着手할 때에도 無二의 好資料로 그 詳細하고도 正確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야금 驚歎케 하얏다 한다. 아, 正皥의 艱苦는 비로소 이에 赫赫한 빛을 나타내엿다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