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
제12대 대통령 취임사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국회의사당, 오전 10시 1988년 2월 25일 목요일


친애하는 6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우리 헌정발전을 뒷받침해 주신 윤보선, 최규하 전직 대통령과 평화적 정부이양의 역사적 선례를 세우신 전두환 전직 대통령,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 주신 세계 각국의 경축사절과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기 위해 성스러운 이 민의의 전당 앞에 모였습니다.

동아시아의 변방국가에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뛰어오를 민족웅비의 희망찬 새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 나라에 민주정부를 세운 지 40년,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요청하는 역사의 조류 속에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아득한 옛날 이 땅에 민족의 터전을 일구어 오신 모든 선조들에게 깊이 머리 숙입니다.

저는 먼저 반만 년 동안 숱한 외세의 침략과 시련을 이겨내며 빛나는 문화전통을 창조하여 민족의 자존을 면면히 이어온 그 불굴의 민주독립정신을 가슴에 새깁니다.

가까이로는 손 마디마디에 고생의 흔적이 역력한 형제자매 동포 여러분에게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들의 손은 가난과 전쟁에 시달려 아무것도 없는 맨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살아 보겠다는 뜨거운 가슴으로 땀흘려 일한 우리들의 맨손에서 이 나라는 세계가 높이 보는 신흥공업국가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평화적 정부이양의 전통을 이룩한 민주국가로 커졌습니다. 참으로 우리 국민은 위대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국민적 저력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격려를 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민족사의 출발점에 서서 저는 오늘이 있기까지 땀흘린 모든 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역사는 그동안 우리 민족을 여러 차례 시험해 왔습니다. 인내와 슬기, 국민의 뭉친 힘으로 모든 시험을 이겨낸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민족 전체가 한 차원 높게 뛰어오르라는 명령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자존의 새 시대]를 꽃피우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바로 그 [민족자존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국민 여러분 앞에 엄숙히 선언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야 합니다.

능동적인 자기개혁으로 새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應戰)해야 합니다.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저 창공으로 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개척자의 창조적 정열로 낡은 틀을 깨뜨리고 온 국민이 민주와 번영을 누리게 하여 자유와 자존의 통일대국으로 비약할 때입니다.

새 시대는 분명히 변화하여 발전하고 쇄신하며 도약하는, 활력에 가득찬 진보의 시대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의 지나친 다툼을 이제는 멈출 때입니다. 과거는 분명히 우리 모두의 자산이면서 반성의 거울이지만, 그것이 밝은 미래의 세계로 전진해 나가려는 우리의 발걸음에 끝없는 족쇄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난해 위대한 국민의 민주적 선택으로 40년 헌정사를 통해 쌓여 온 갈등의 찌꺼기는 모두 씻겨졌습니다.

이제는 지역감정, 당파적 이기심, 개인적 섭섭함을 이 새로운 출발의 광장에 모두 묻읍시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한 발짝씩 물러서는 호양(互讓)의 정신아래 우리가 오늘 묻어 버리는 미움의 앙금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거두어들일 민주와 복지의 풍요로운 열매를 낳는 값진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 순간부터 온누리에 자유와 행복이 가득한 ´희망의 나라´를 바라보며 넓은 바다를 힘차게 헤쳐 나갑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도와 나침반이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대통령으로 직접 뽑아 주셨을 때 다 함께 확인했고 합의했던 민주주의라는 지도이며 국민화합이라는 나침반입니다.

이제 새 공화정의 출범을 알리는 저 우렁찬 고동소리와 함께, 우리는 민주주의의 항로로 확실하게 전진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오늘의 유행어이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민주주의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정당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만이 모두가 자유롭게 살며 자유롭게 참여하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우리를 이끌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량성장과 안보를 앞세워 자율과 인권을 소홀히 여길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힘으로 억압하거나 밀실의 고문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율과 참여를 빙자하여 무책임하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시대도 끝나야 합니다.

침해되지 않는 인권과 책임이 따르는 자율이 확보될 때 경제도 발전하고 안보도 다져지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성실히 사는 국민이 아무 두려움없이 어디서나 떳떳하고 활기있게 사는 사회, 국민 각자가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 되어 국가발전에 창조적으로 참여하는 민주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담은 새 헌법의 발효와 함께 바로 이 시각에 탄생하는 새 정부는 바로 국민이 주인이 된 국민의 정부임을 선언합니다. 제가 이끄는 정부는 민주주의의 시대를 활짝 열어 모든 국민의 잠재력을 꽃피게 할 것입니다.

새 정부는 다원화된 사회 각 부분이 생동감에 넘친 자유를 누리며 스스로의 권능을 다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국민은 정직한 정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의 비원을 반드시 성취시켜 도덕성이 높으며 그 도덕성으로 말미암아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곧바로 서 있는 물체의 그림자가 밝은 대지 위에서 굽어질 리는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지도층이 스스로 정직과 진실의 수범(垂範)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저를 지지한 환성(歡聲)은 힘이 되었고 비판은 약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국민들의 마음도 깊이 헤아려 꼭 국정에 반영할 것입니다. 그분들의 비판을 결코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야당과 반대세력에 대해서도 간곡히 호소합니다.

우리 서로 나라를 위해 함께 고뇌하면서 대화하고 대화하면서 협력합시다. 민주주의 개화와 겨레의 통일번영을 위해 협력의 동반자로 일해 나갑시다.

국민여러분.

우리는 또한 국민화합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저 푸른 바다를 헤쳐 나갈 것입니다. 70년대 이후의 발전사는 경제성장이 아무리 높고 지속적이라 해도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조화와 균형있는 행복한 사회에 도달할 수 없다는 냉엄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물론 고도성장은 우리의 물질생활을 보다 넉넉하게 만들었고 1차산업 중심의 우리 사회를 다원적인 산업사회로 탈바꿈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나가는 길 도처에 암초를 만들어 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계층간·지역간의 격차는 갈등과 분열을 낳아 국민적 통합에 큰 문제점을 던져 주고 있습니 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는 민주복지국가를 향한 우리의 항해는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갈등과 분열을 녹여 줄 훈훈한 화합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이룩한 고도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미치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모든 계층의 국민이 합심할 때입니다. 출신지역이나 성별이나 정치적 입장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부당한 특혜를 누리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국가 전체의 발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유보되어 온 개개인의 몫이 더 이상 부당하게 희생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받게 해주고, 어렵고 힘없는 사람은 부축을 받도록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기업인의 창의와 자유를 더욱 북돋는 한편, 근로자와 농어민과 중소상공인의 권익을 저는 최대한 신장시킬 것입니다.

나라의 내일을 짊어질 후세들이 수준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이상과 꿈을 수용하여 항상 개혁하고 새로워지는 진취적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이 시대는 멀지 않은 미래에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넘겨져, 이들이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꿈과 열정은 진보의 값진 영양소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학술과 문화예술의 진흥을 통하여 경제적 기적을 이룩한 우리 국민이 찬란한 문예부흥의 시대를 창조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이 질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며 이웃을 이해하는 넉넉한 마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힘 쓸 것입니다.

아울러 사회정의의 실현을 가로막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어떠한 형태의 특권이나 부정부패도 단호히 배격하겠습니다. 폭력과 투기와 물가오름세를 반드시 막고자 합니다. 부의 부당한 축적이나 편재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갖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입니다. 민주개혁과 국민화합으로 이제 우리는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화합은 정부의 정책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피는 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온 국민의 화합을 정부차원의 해결과제로만 미루지 맙시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너그럽게 풀어 나가야 할 문제로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이런 뜻에서,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끌어 주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가진 사람은 덜 가진 사람에게 자제와 아량을 보여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겨레의 큰 경사인 서울올림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50억 인류의 평화대축제가 바로 이 땅에서 열리게 됩니다. 세계 속의 한국을 새롭게 드러내는 민족 재탄생의 자리에, 너와 내가 따로 드러나지 않습니 다. 우리 모두 합심 협력하여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 길이 기억될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승화시킵시다. 서울올림픽은 민족사적 의미에서, 이를 계기로 우리가 민족통일의 항로로 진입한다는 데 더 큰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물줄기를 타고, 12년 만에 처음으로 동과 서, 남과 북의 세계 모든 나라가 참가하는 이 화합의 거대한 합창은 한반도에 마침내 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렁찬 합창소리에 화답하여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모든 나라와 국제평화와 협력의 외교적 노력을 더욱더 하고자 합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과의 유대(紐帶)를 더한층 강화하는 한편 제 3 세계와의 우의를 더욱 굳게 하겠습니다. 우리와 교류가 없던 저 대륙국가에도 국제협력의 통로를 넓게 하여 북방외교를 활발히 전개할 것입니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공동의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북방에의 이 외교적 통로는 또한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분단의 조속한 해소를 열망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가 자나깨나 잊을 수 없는 민족통일의 길은 낙관할 수 있는 길도 아니요, 비관 할 길은 더욱 아닙니다. 오로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길일뿐입니다.

때마침 우리 내부에서도 민족의 자존을 높이려는 분위기가 크게 자랐습니다. 이 기운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통일과 세계적 진출을 북돋을 힘찬 원동력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자존의 바탕 위에서 민주역량을 다지고 안보태세를 강화하면서 통일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합니다.

기회는 그저 기다리는 자에게보다 착실히 준비하는 자에게 먼저 온다는 교훈을 항상 기억합시다.

저로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재결합을 위한 길이 보인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개의하지 않고 방문해 어느 누구와도 진지하게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힙니다.

북한 당국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공산국가들조차 거부하고 있는 교리적 이념을 민주의식이 체질화된 이 땅의 자유시민들이 수용하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폭력이 아니라 대화가 분단을 해소하고 민족의 재결합을 가져오는 정직한 지름길임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대화의 문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 열려 있음을 확인합니다. 민족자존의 새 시대에 부응하여, 대화하며 공존하고 공존하며 협력함으로써 휴전선에도 이해의 봄을 가져옵시다. 그리하여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함께 통일의 열매를 거둡시다.

관련 국가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 당사자들이 민주적 방식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 나갈 것 입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의 전령사가 그 어느 곳으로부터든 서울을 방문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특별대우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에게 고통과 좌절을 안겨 주는 것으로 시작했던 20세기는 그 극복의 토대를 마련해 준 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20세기의 수평선 너머에 활짝 핀 통일조국의 미래상이 우리를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미 치솟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저력과 민족적 자존을 국가적 도약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활활 태울 때 우리 조국은 분명히 아시아 태평양시대를 이끄는 세계의 젊은 거인으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손에 넣게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열과 국민이 희생을 했고 땀을 흘렸던 것입니까.

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재주보다 평범한 상식을 지닌 여러 사람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상식의 시대´입니다. 그것은 또한 나라의 발전이 곧 국민 개개인의 자유·풍요·행복으로 이어지는 ´복지의 시대´ 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이 거룩한 단상에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서 있습니다. 이 자리는 국민 여러분이 만든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는 것은 국민 여러분의 명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와 이 자리에 서 있는 저는 국민 여러분들로부터 별개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저는 오로지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과 함께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저는 국민을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끌려 다니는 대통령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꿈과 아픔을 같이 하는 국민의 동행자, 이것이 제가 진실로 추구하는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함께 걷는 민주주의´의 출발선상에 서 있습니다.

모두가 오늘 영광스러운 이 단상의 주인으로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씩씩하게 그리고 단란하게 힘찬 전진의 발걸음을 내디딥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언제나 즐겨 부르는 민족의 노래, ´희망의 나라로···´ 가 그리는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이 가득한 나라´를 향하여 함께 나아갑시다.

국민 여러분.

저와 함께 전진해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88년 2월.25일 대통령 노 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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