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수
明姬[명희] 李明姬氏[이명희씨] 虛僞[허위] 假飾[가식]
치과의사(齒科醫) 정현수(鄭賢洙)는 테이블에 접혀진 채로 놓여 있는 그날 신문지 위에다 모잽이 글씨로 이렇게 휘갈겨 써 보았다. 그때 건너편 기공실(技工室)에서 조수(助手)로 있는 병일이가 더위를 못 이겨서인지 바쁘게 부채질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얼른 펜 끝에 잉크를 듬뿍 찍어 박박 긁어낼 듯이 이제 쓴 글자를 도로 지워 버렸다. 그리고 담배를 한 개 꺼내 물고 아침에 문을 연 후 아직까지 환자(患者)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안어 깨끗하게 정돈된 그대로 있는 치료실 안을 휘휘 돌아본 후 반질반질한 치료 의자 위에다 이파리 속에 숨어 있는 봉선화 같은 명희의 환영을 그려 안았다.
그는 두 눈에다 모든 정력을 집중시켜서 치료 의자가 놓인 편 공간을 응시하였다.
가느다란 두 눈을 옆으로 흘기듯이 굴리며 살짝 웃는 발그레한 입술 통통한 어깨 위에 아래턱을 얹고 눈을 쫑긋해 보이는 귀여운 표정, 겨울이나 여름이나 옥색 치마만 입으려는 그 명희의 환영에 현수는 혼을 잃고 앉아 있었다.
“명희씨 당신은 왜 옥색 치마를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옥색 치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에요. 옥색이란 그 빛깔이 좋아요.”
“왜 구태여 옥색입니까?”
“모르겠어요. 어쩐지 옥색을 보면 천변만화하는 이 세상에서 영원과 무궁이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나는 흰빛과 색깔은 흑색이 더 좋데요. 옥색은 곧잘 변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손으로 된 옥색이야 잘 변하지요만, 저 광대무변의 하늘색이야 어디 변합니까. 구름이 끼고 밤이 오고 하면 없어지지만 그것은 다만 우리의 육안(肉眼)이 보지 못함에 불과하지 않아요. 비록 내 치마에 들인 하늘빛이 변하여 누렇게 된다 하더라도 내 맘속에 비쳐 있는 그 맑은 옥색, 하늘색, 저 바닷물 색이야 변할 줄 있어요.”
“분홍색은 어떻습니까?”
“아주 슬퍼요. 아무리 고운 꽃이라도 그 색깔이 붉은 계통의 것이나 누런 계통의 것이라면 자주 싫습니다. 나는 작년 봄부터 푸른 꽃, 즉 옥색 꽃을 찾아보려고 높은 산으로 저 언덕 끝으로 쏘다녀 보았어요. 그래도 없더고만요.”
“옥색 꽃이야 꽃장사 집에 가보면 더러 있지요.”
“그렇습니까? 나는 암만 찾아봐도 없어서 아주 낙망을 했었어요.”
“왜요?”
“허위와 가식만으로 이 세상을 저주하는 나의 동지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애서요. 푸른 꽃은 많은 꽃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진리의 탐구자같게 생각되어요.”
“그렇습니까. 나는 새까만 꽃이 있다면 더 심각한 맛이 있게 보이겠는데요.”
현수는 명희와 몇 날 전에 이러한 대화를 하던 것이 생각나며 눈이 스르륵 감기었다.
“아아.”
그는 버럭 속이 상하듯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네. 그렇습니까. 나도 푸른 저 하늘색과 저 망망대해의 그 물빛을 사랑합니다. 이놈의 세상은 허위와 가식으로만 된 사회입니다. 모조리 초랑이를 쓴 사회이지요. 참다운 인간사회가 아닙니다.”
라고 왜 내 속마음을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든가. 그는 나와 이상을 같이 하는 유일한 동지이다. 그렇다. 명희 씨는 천박하게 입으로나 행동으로서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결코 서로의 맘속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맘 안에는 내라는 이 정현수가 꽉 차여 있다. 뻔뻔스럽게 무슨 자랑같이 마음속을 서로 고백할 수 없는 것이야, 세상 놈들은 부끄러워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지.”
현수는 팔짱을 끼고 턱 버티고 섰다.
“이 세상에서 심각한 진리를 탐구하여 마지않는 사람은 오직 명희 씨와 나뿐이다. 그는 옥색을 사랑한다. 무궁무진한 광대분변의 우주의 끝까지 비추는 그 파란색을 사랑한다. 저 망망한 바다의 색도 파랗다. 오!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참! 현해탄(玄海灘)의 바다라도 왜 왜 물빛이 검을까!”
현수는 갑자기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자 뚜벅뚜벅 걸어서 거리로 향한 창턱에 가 턱을 고이고 기대섰다.
거리에는 오후 세 시의 뜨거운 태양이 불같이 내려쪼이고 있는데 한 대의 택시가 기운 좋게 가고 있었다. 바람결이라고는 실가락만 한 것도 살랑하지 않고 택시가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뿌연 먼지는 지옥에서 타오르는 유황불 꽃같이 거리를 휩싼다. 길가의 가지각색 사람들은 모조리 외면을 하며 먼지를 피했다. 그런데 한 늙은이, 촌이라고 아주 구석진 촌에서 건너온 듯한 텁텁한 옥색 두루마기에 큰 갓을 쓴 보전교도인 듯한 그 늙은이는 유별나게도 그 더러운 먼지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아래턱을 쑥 내밀고 입을 해벌린 채 찬란스런 거리의 좌우에, 정신을 잃고 두리번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명희가 좋아하는 옥색 두루마기를 입은 탓인지 현수는 그 늙은이가 입을 벌리고 더러운 먼지를 죄다 마시는 것이 안타까웠다.
“저런 멍텅구리 자식. 제 목구멍에 먼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에, 속상해. 아, 그래도 주둥이를 닥치지 않네.”
그는 아주 성이나 꾸짖듯 중얼거리며, 쫓아가 그 늙은이의 아래턱을 한 주먹 갈겨 철커덕 부쳐주고 싶어 가슴이 서물거렸다. 그러나, 그 촌 늙은이는 한결같이 입을 벌린 채 저편 구비를 돌고 말았다.
현수는 얼른 테이블 곁에 달려가, 부채를 집어 활짝 펴 들고 슬렁슬렁 부치며 또다시 창턱 가에 턱을 고이고 기대섰다.
“그놈의 자동차, 건방진 놈의 자동차, 누구 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도 없이 웬 길거리를 제 혼자 독차지나 한 듯이 의기양양하게 맘대로 쫓아다니는구나. 행포 무례한 놈의 새끼.”
그는 갑자기 무럭무럭 분노가 타올랐다.
넓은 길바닥을 제집들같이 활계를 치고 쫓아 달아나는 자동차들이 행포 무례 막심하게 보여져서 당장 달려가 시비를 하고 싶었다.
현수는 자기 맘속을 표현하기 어려울 때나, 분이 날 때나, 기쁠 때나, 어색할 때나, 또는 너무 감격할 때는 반드시 목에다 잔뜩 힘을 주며 턱을 안으로 높게 길게 젖혀 빼 올리고 다섯 손가락을 따로따로 쫙 벌리고서 ‘카라’ 만이에다 둘째 손가락만 꼬불 당하게 넣어서 목울대 곁을 가만가만 긁는 것이 버릇이었다. 그는 지금도 쫙 벌린 오른손 둘째 손가락으로, 쭉 빼 올린 목울대 곁을 두어 번 가만가만 긁었다. 그리고
“에─ 이.”
한숨을 한바탕 한 후, 다시 창턱에 가 기대섰다. 그때, 길거리에는 고삐를 잔뜩 잡힌 말 한 마리가 헐떡거리며 짐 구루마를 끌고 지나갔다. 현수는 또다시 감개무량하여 슬렁거리던 부채를 접어 문턱을 탁 치며,
“어. 가엾어라. 저놈의 말이 왜 저 모양이야. 그만 뚝 뛰어 달아나, 한 발만 걷어차면 나동그라질 사람 놈에게 일부러 매여 달리니 저런 고생을 하는구나. 어─ 빌어먹을 놈의 말 새끼.” 하고 부르짖었다. 또다시 그의 속은 버럭 상해지며 가슴이 설레었다.
“아니다. 저 말이 멍텅구리가 아니다. 그렇다. 그는 힘없는 사람 놈들을 위하여 자기의 한 몸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악한 사람 놈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순종하면 할수록 자꾸 더 두들겨 부리겠다.”
현수는 대구리를 꿈벅이며 구루마를 끌고 가는 그 말이 흡사 명희와 자기 같게 생각이 들었다.
“이 망할 놈의 세상에게 희생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다. 아니야. 과거의 인류 역사란 고삐에 나는 단단히 묶여 있다. 나는 용감하게 묶은 줄을 끊고 일어서야 한다. 이 현실에 희생한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이 더러운 현실을 조장시킴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주먹을 쥐고 문턱을 탁 치려다가 말고 그 손을 쫙 펴 가지고 목울대를 가만가만 긁었다.
“그러나 참는 것이다.” 그는 다시 창턱에 기대섰다.
“아니 이 자식 무엇이었지. 인간이란 본래 허위, 가식으로 된 거야. 죽어 없어지기 전에는 이 세상, 면천은 못하는 거다. 아니다. 이 자식이 무슨 이런 생각을 해. 참으로 인간이란 허위 가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나는 이놈의 세상에는 살아 있지 않을 터다. 아니다.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말똥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데…….”
그는 다시 부채를 슬넝슬넝 부치기 시작하였다.
“에─ 공연히 온갖 오라질 생각을 다 하는구나. 차라리 저 말새끼 놈이 나보다 행복하다. 이따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도 할 줄 모르고. 아니다. 말새끼같이 무위무식한다면 나을 게 뭐 있나. 그러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말도 무슨 번민이 있는지 알 수 있나. 어떻게서든지 돈이나 좀 있었으면 형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는데.”
현수는 자다 깨인 사람처럼 창턱을 떠났다.
“선생님 손님 오셨습니다.”
그때 기공실에는 병일이가 바쁘게 뛰어 나오며 낭하에 선 중년 신사 한 분을 치료실 안으로 안내해 드렸다. 사흘 만에 처음 대하는 손님이다. 병일이는 부리나케 신사에게 치료 의자를 가리키고 컵에 물을 떠서 들고 섰다. 현수는 뻣뻣하게 선 채 움짝도 하지 않았다.
“더러운 이놈 정현수야. 돈을 벌기 위하여 살살 쥐새끼처럼 손님에게 아첨을 하려느냐.”
그는 창턱에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던 자기의 가슴을 쥐여 뜯고 슬플만치 구역이 났다.
현수는 치과 의원을 개업한 지가 이 년이 넘었으나 한번도 양심에 꺼리는 치료를 해준 적이 없었다. 그는 환자를 대하면서건 어느 사이엔 자기란 것은 없어지고 마는 동시에 치과 의사란 것이 자기의 직업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개업 시초에는 꽤 많았던 환자가 차차 줄기 시작하여 이 해부터는 일주일에 겨우 둘 셋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현수의 치과 의사로서의 기술이 부족함도 아니요. 성의 없는 무책임한 치료를 하는 까닭도 아니었다. 단순히 현수가 환자의 비위를 맞추어 주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것도 현수가 거만스러워 그런 것이 아니라 맘속으로는 백배 천배 친절하나 다만 입으로나 행동으로 표현하기가 가식 같아서 언제든지 묵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세상 사람이란 위선, 눈앞에 살랑거리는 감정에만 홀리는 것이라 참으로 정성껏 장래성 있는 치료를 해주는 현수는 알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으로 조수인 병일이는 마치 어진 아내처럼 충고도 하고 타이르듯 달래기도 하면,
“금새 주의한 터요.” 하고 대답은 시원스러우나 다음에 환자가 오면 컵에 물을 따라서 입에 대어 주기가 ‘이놈 돈벌이 하려고 손님에게 아첨하는구나’하고 바라보는 것 같아서 컵을 배타기(排唾器) 위에 철커덕 놓고
“양치하시오.” 하고 명령하듯 버티고 서 버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수의 성미를 잘 아는 병일이는 오늘도 손님과 무슨 충돌이 생길까 해서 미리 겁을 먹었다. 그것도 손님이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사람이면 반드시 한 번씩 충돌이 일어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설마 저도 사람이니까.”
병일이는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삼 개월째 수중에서 낙찰이 된 현수의 속판을 아는 것이 엿들은 까닭이다.
병일이는 미리 현수에게 슬금슬금 시선을 보내서
“먼저 양치부터 해보실까요.” 하고 신사에게 친절하게 서비스를 했다.
신사는 묵하니 서 있는 현수를 힐끔 바라보다가 입안을 씻은 후 뒤로 재 껴 누우며 입을 벌렸다.
“어째서 오셨습니까.”
현수는 그제서야 치료 의자 곁에 다가서며 탐침에다 탈지면을 홱홱 감어 조그만 면구를 만들며 통명스럽게 물었다. 신사는 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가 아퍼 왔시오.” 하였다.
“어─ 그런 줄이야 모르겠습니까.”
현수는 여전히 면구만 만들어 태연스럽게 응수하였다.
“…….”
신사는 성이 불쑥 났는지 잠자코 벌떡 바로 앉았다. “이캬, 또 야단나는구나.”
병일이는 입맛을 다시며 얼른 곁에 가 섰다.
“허허허. 많이 앓으셨습니까. 전에는 어디서 보였었어요.”
현수는 병일의 시선과 마주치자 이렇게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치경(齒鏡)을 들고 허리를 구부렸다. 신사도 입맛을 다시며 입을 벌렸다.
“아하 이것이로군요. 많이 앓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나빠지도록 그대로 두셨습니까? 미련하게 그대로 두면 나을 줄 아셨어요.”
현수는 그만두어도 좋을 말이었지만 신사에게 턱없이 머리를 숙이면 아첨하는 것 같게 보일까 봐 일부러 되는대로 중얼거렸다. 신사의 얼굴에는 불쾌한 빛이 역력히 떠올랐다.
“자 이러니까 아프십니까.”
현수는 치경으로 새까맣게 구멍 뚫어진 어금니 한 개를 두서너 번 뚝뚝 두들겼다.
“아야 아야!” 신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입을 다물려 했다.
“그까짓 것이 무엇이 아파요.”
현수는 신사의 붉어져 가는 얼굴에는 무관심하고 열심으로 어금니를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 심는 엔진을 들고 신사의 입안을 긁기 시작한 지도 한 시간이나 되었다. 병일이는 벌써부터 혼자
“오늘은 대강해 가지고 보낸 후 내일 또 오라면 어떤고.” 하고 속을 졸이는 판인데 다른 환자가 또 하나 들어왔다. 그러나 현수는 신사의 입안에서 엔진을 떼지 않았다.
다른 의사 같으면 십오 분 내외에 마치고 몇 날이던지 끌며 치료를 시켜 돈을 버는 것이었으나 현수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치료를 해 주고 공력을 많이 들여도 그는 자기의 직업의식을 떠나 손님 본위의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등에서는 땀이 개골물 같이 솟아 내리면서도 ‘더운데 손님이 몇 날이나 어떻게 치료받으러 다니겠나 될 수 있는 대로 단시일에 맞춰야지.’ 하는 생각에 자기의 전심전력을 다해 열심히 치료를 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내 이는 충치가 아니라 풍치인 듯한데 원 치료를 이렇게 오래 하십니까?”
신사는 현수의 맘속과는 반대로 기술이 부족하여 오래 끄는 줄만 알고 이렇게 화를 내었다.
“풍치라요? 아닙니다. 충치올시다.”
현수는 너무나 세상 놈들은 자기의 맘을 몰라주는 것이 슬슬 화가 났다. 자기가 정성껏 해주면 해줄수록 세상 사람들은 그를 원망하는 것이 슬슬 화가 났다.
“그래도 아픈 폼이 풍치라요. 그만해두시죠.”
신사는 지지 않으려는 듯이 말했다. 현수는 불쑥 성이 났다.
“아 당신이 의사입니까. 어떻게 풍치인 줄 단정하시나요. 충치라면 충치로 알 것이지 어째서 풍치란 말씀이요.”
현수는 엔진을 쥔 채 이렇게 꾸짖듯 버티고 섰다.
“에─ 여부 그만두오.”
신사는 그만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아니 여보십시오. 잠깐만 앉으시지요. 그대로 두면 또 앓습니다. 우선 약솜이라도 막아 가지고 가시오.”
현수는 예사라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신사의 팔을 잡았다.
“그만 두오. 당신만이 치과 의사가 아니오. 그대로 참고 있으려니 더 불친절한 소리만 탕탕 하는구료.”
신사는 기어이 치료 의자 아래 내려서고 말았다. 현수는 그제야 불쑥 성을 내며 신사의 팔을 꽉 잡고
“여보십시오. 아니 이 못난 자식 잠깐만 참으라면 참아보는 것이 신사이지 무슨 변덕쟁이가 이 모양이야. 잔말 말고 도로 앉아라. 그대로는 내 목이 떨어져도 못 보내겠다.”
“아하 이 자식 정신병자로구만. 이것 못 놓을 텐가?”
신사는 금방 주먹이 올라갈 것 같이 씩씩거리며 입술이 풀어졌다.
“어허 그러지 말고 도로 앉아라. 한번 내 손으로 치료하는 것을 그대로 무책임하게 너놈이야 죽든 살든 내버려 두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이다. 좌우간 우선 분은 참아두었다가 이 치료나 하거든 격투라도 하자.”
현수는 두 눈을 부릅뜨고 한결같이 우겨댔다.
“아! 이런 봉변이 어디 있나. 이런 망할 놈이.”
신사는 덜덜 떨며 분을 내었다.
“이 자식 너만 분하노. 나도 분해 죽겠다. 어서 치료를 하고 결투하자. 어─ 분해.”
현수의 기세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선생님. 참으십시오. 의사 선생님은 본래부터 성질이 있었습니다. 잘 이해하십시오. 보시면 결코 노하실 것이 아닐 것입니다.”
병일이도 속이 상해 바라보고만 있다가 마지못하여 신사의 앞에 가 빌었다. 현수는 이윽히 신사의 팔을 붙들고 있다가 한 걸음 물러서서 팔을 놓았다.
“잘못했습니다.”
현수는 신사의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의 가슴 속에서 의사로서의 자기 태도가 잘못이었음을 뉘우쳤던 까닭이었다.
신사는 이 아프던 것을 생각하고 그대로 가기가 위험하게 여기어졌는지 마지못하는 척하고 도로 걸어가 앉았다.
현수는 아주 가쁜 듯이 다시 엔진을 들고 치료를 시작했다. 먼 데 있는 사람의 흉이나 보듯 그는 궁시렁 궁시렁 신사의 욕을 해가면서도 늘 싱긋싱긋 웃었다. 신사도 처음은 욕이 나올 때마다 분을 내드니 차차 성이 풀리니 픽 웃었다.
“어─ 이제 다─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시고 싶은데 얼른 가십시오. 애인이 기다리십니까?”
현수는 신사를 치료 의자에서 내려놓은 후 소독수에 손을 씻었다.
“그만치 해놓았으니 인제는 누구에게 가서 마저 치료를 하셔도 좋습니다.”
그는 양심에 거리낌 없는 치료를 하고 난 것이 기뻤다.
“얼마요.”
신사는 지갑을 꺼내 들고 병일에게 물었다.
“돈, 일 없다. 이 자식 어서 가그라.”
현수는 돈 말이 나오자 또 성을 내며 와락 신사를 밀어 밖으로 밀어낸 후 안으로 잠그고 말았다.
현수는 얼른 창턱에 기대서서 허리를 창밖으로 꺼내었다. 밖에 멍하니 서 있는 신사는 조금 생각하더니 천천히 걸어서 저편 길 굽이로 돌아가려다가 현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현수는 얼른 코 위에다 손을 세우고, “코 섯소─.” 를 해 보이며 장난꾸러기 어린아이같이 웃었다. 신사는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휘둥그래 하드니
“그놈 미쳤군.” 하는 표정을 짓더니 픽 웃고 가버렸다.
웬일인지 현수의 가슴은 갑자기 쓸쓸하였다.
“저 자식도 점잖스런 사람 놈이구나.”
어린이 같았으면 저도 코 섯소─ 를 해보이고 웃고 갔을 것이다. 이후에 만날 때도 데면 사과도 없이 그대로 전같이 굴 것이다. 저놈도 본래는 단순하고 천진스런 어린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왜 점잖스런 가면을 써야 되는고.
그는 깊이 단식하며 창문을 떠났다.
“선생님 왜 그랬습니까. 그만 대강해서 보냈으면 될 것을 다른 환자도 왔다가 그대로 가버렸어요. 이제는 그만 이 병원도 지탱해 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고 병일이는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였다. 과연 아까 왔던 환자는 가버리고 없었다.
현수의 형 되는 찬수는 사흘 전부터 앓아누웠다. 현수는 한 지붕 아래서 오늘까지 신세를 입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형의 힘으로 학교 졸업도 했고 치과 의원도 내놓았던 것이요, 늘 결손해 오는 현수에게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돌보아주는 그 형이었다. 그러나 이 두 형제는 한자리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 한번 하지 않았다.
서로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찬수의 부인이 중간에서 이편저편의 의견을 소통시키는 전화통이 되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거로 만나도 생면부지의 남남같이 본체만 체하며 먼 여행에서 돌아와도 서로 시선만 마주쳐 보고는 그만이지 입 한번 대는 일이 없었다.
그럼으로 그 형의 힘으로 살아오는 현수임을 잘 아는 남들은 현수를 체면도 염치도 없는 미련꾸러기라고 하였다.
“형님이 앓아 누었는데 한 번쯤은 들어가 보셔요.” 현수의 형수 되는 부인은 체면 차릴 줄을 모르는 시동생이 얄밉다기보다 남편 보기 민망하여 어떻게라도 병실에 한번 들어보내려고 애를 썼다.
“…….”
“형님과 원수졌어요?”
“…….”
“형님은 늘 아우님을 찾는데!”
이 말을 듣자 현수의 얼굴은 비틀거려지며 턱을 아주 쭉 빼고 목울대를 긁고 나서
“글쎄 형님보고 아무 할 말도 없는데.” 하고는 꽁지가 빠져라고 자기 방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그는 자기 형이 앓아누운 것을 처음 보는 까닭에 왠지 불길한 것이다─ 생각하며 조금도 맘이 가라앉지 않았다. 손님도 없는 치과 의원에 나와 앉았다 섰다 조급만 내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가도 남 보는 데는 자는 척만 하고 누었다 앉았다 가슴을 졸이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혼 잃은 사람처럼 치과 의원으로 나온 현수를 보고
“병환이 어떻십디까?” 하고 병일이는 한번도 병실에 들어가지 않는 현수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캐묻는 것이었다.
“모르네. 죽을지도 알 수 없지.”
현수는 금방 울 것 같이 말소리가 떨렸다.
“무슨 그런 말씀을. 오늘도 별로 손님이 없을 것입니다. 돌아가셔서 간호나 하시지요.”
병일이는 넌지시 충고를 하였다.
“볼일도 없이 뭣 하러. 간호는 형수 씨가 하는데!”
“그래도 곁에 가서 계시면 좋지요.”
“무엇이 좋아. 간사하게 내가 곁에 있으면 나은가. 나는 부끄러워 못 가.”
“선생님 친형님 앓으시는데 가 보는 것이 부끄러워요?”
“싫어. 그런 간사스런 말은 말아주게. 자네 얼른 집에 가서 책 하나 가져오게.”
“네─.”
병일이는 마지못하여 일어서며
“공연히 병인의 염려가 되니까 집에 가보구 오라는 거지. 뭐 책은 무슨 오라질 이름도 없는 책이 있어.”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병일이는 찬수가 앓아 누은 날부터 하루에 수십 차례씩 이러한 애매한 사환을 가는 것이 있음으로 현수가 무턱대고 책 가져 오라는 그 진의가 어디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병세만 들어 가지고 얼른 돌아오면 현수는 판에 박은 듯이 벌떡 일어나며
“형님 죽겠다던가?” 하고 진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병일이는 일부러
“책은 무슨 책을 가져오랬어요. 깜박해서요.” 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면
“이 사람 정신 잃었구나. 누가 무슨 책이야. 형님이 어찌 됐어?” 하고 화를 내었다.
“선생님 가보십시오. 묻지 않고 왔습니다.” 하고 병일이는 깜찍스런 여인같이 살살 피하면 그는 당장에 뒹굴며 고함을 칠 것 같이 분을 내며 빙빙 한바탕 돌다가는 다시 책 가져오라고 야단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병일에게 형님 병세를 물어오라고 하기가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찬수가 앓아누운 후 현수는 밥 한술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고 잠 한숨 자지 않았음으로 비록 병실에 들어가지는 않아도 그 염려하는 꼴은 곁에 사람의 눈에도 겁이 날 만하였다. 그의 얼굴은 여위고 입술은 부르텄으며 두 눈 은 달아서 바로 뜨지도 못하였다.
찬수가 누운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현수는 일부러 아침밥을 먹는 척하고 신문지에다 밥을 절반이나 덜어서 둘둘 뭉쳐 놓고 상을 내보낸 후 치과 의원으로 곧 나갈 것 같이 일부러 바쁜 척하고 서두르며 안방 편만 자꾸 바라보고 있었다. 찬수의 부인은 안방에서 이 눈치를 채고 얼른 현수의 방으로 건너왔다.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애들 아버지가 이제 좀 열이 내렸습니다. 장질부사가 아니라 몸살이었던가 봐요.” 하고 보고를 하였다. 찬수의 부인은 현수를 슬쩍 보기만 하면 그의 속마음을 다 알아채는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묵하니 있어도 ‘옳다. 병세가 알고 싶구나’하고 알아차리고는 진작 보고를 해야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수는 못 들은 척하고
“좀 낫다고 자꾸 밥이나 꾸역꾸역 먹이지 마시구려.”
탁 뱄듯이 한마디 집어던지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가고 말았다. 찬수의 부인은 그래도 픽 웃으며
“별난 성질도 다 보겠다. 염려는 죽도록 하면서 왜 남에게 나타내 보이기 싫어하는지.” 하고 건너가고 말았다.
현수는 급히 치과 의원으로 나갔다. 그의 어깨는 날러갈 것 같이 가뿐하였다.
그 형의 병실에 들어가 보기는 아첨하는 것 같아 싫었으나 이미 병이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와락 그 형의 얼굴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참다못하여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뒷문으로 몸을 숨기고 엿보며 그의 형수는 안방에 누워 있고 어멈은 툇마루에서 약을 짜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려 가는 자객과 같이 날쌔게 몸을 날려 병실인 뒷방으로 달려들었다.
그 형은 감았던 눈을 스르르 뜨면서 현수를 바라보았다. 현수는 몇날 사이에 수척해진 그 형을 바라보자 가슴이 금방 깨어질 것같이 아팠다. 그는 묵하니 윗목에 가 버티고 서 있었다.
“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밥을 잘 먹어야 한다. 덥다 나가거라. 나는 곧 낫겠지.”
찬수는 돌아누우며 이렇게 또박또박 말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네─ 형님. 저.”
현수는 주먹만 한 눈물을 한 방울 뚝 떨어뜨리고 목울대를 박박 긁고 “저─ 염려 없습니다.”
현수는 더 입을 뗄 수가 없어서 얼른 병실을 나서고 말았다. 불과 이 분간의 병문안이었다.
그는 마루 한켠에서 눈물을 이리저리 주워 닦았다.
“약이 다 됐어요.”
어멈이 약대접을 들고 찬수의 부인을 깨우자 현수는 마루 한켠에 빗겨서 몸을 숨기었다.
“현수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찬수는 약을 가지고 들어간 그 부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반찬을 주의해 먹이지 않았어? 사람이 영 죽게 되었더구나.”
받쳐 들고 고함을 치며 부인을 꾸짖었다. 현수의 가슴은 뜨거운 총알을 맞은 것 같았다. 그는 달음박질로 치과 의원으로 달려가 치료 의자에 가 덜썩 주저앉으며 목을 놓고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현수를 찾아 왔던 명희는 병일이와 기공실에서 있다가 깜짝 놀라 달려 나왔다.
“엉엉엉, 엉…….”
현수는 자꾸 울기만 했다.
“왜 이러십니까.”
“무슨 일이야요.”
명희와 병일이는 질겁을 하여 어리둥절하였다.
“형님. 엉엉. 형님.”
그는 울면서 가슴으로 부르짖었다. 허위와 가식으로 된 이 세상에서 절망하고 저주하든 현수는 자기 형에게서 비로소 거짓 없는 진실한 참다운 사랑을 보았던 것이었다.
“명희 씨, 우리 형님이 좀 나으십니다.”
현수는 이윽히 울다 감격에 떨며 고개를 명희에게 들었다.
“그러세요. 왜 우셨나요.”
현수는 대답 대신 명희의 가느다란 두 눈을 바라보며
“명희 씨, 저하고 결혼하십시다.” 하고 두 팔을 내밀었다.
“아이 선생님도.”
명희는 깜짝 놀란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제야 현수도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가 놀랐다. 무의식간에 나온 말이었든 까닭이었다. 절망하였던 현실에서 새 광명을 보는 감격에 꽉 찬 현수의 이 한 말은 시인의 입에서 무의식간에 흘려 나오는 즉흥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명희 씨, 나는 우리 형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현수는 이 말로서 자기가 명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한 것으로 믿었다.
“아이 선생님, 그 무슨 말씀이여요. 전 몰라요.”
명희는 새침하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현수는 이상하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명─”.
그는 명희를 부르려다가 입을 닫고 말았다. 그의 문 아래 몇 날 전에 싸움하는 그 신사가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현수의 눈은 핑 도는 것 같았다.
모두가 말뿐이야 말이라는 것으로 공연한 이유를 붙여 제가 제일 옳다고 야단들이지 명희가 다 뭐냐 나 혼자 남달리 심각한 사상을 가졌다고 고집을 하며 세상을 욕했지만 모두 다가 잘못이었다. 이 세상이 나를 제일가는 위인이고 성인이고 부자고 미남자라고 하면 꾸리─ 하게 되지 못한 생각들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 내 못난 짜증이었지 아니 내 못난 것을 자 위하려는 비루한 수단으로 끌어다 붙인 이유이겠지.
필연히 저 신사와 쌈을 했구나. 형님 병실에 자주 가보는 것이 왜 부끄럽겠나. 남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것은 내가 미워하는 허위 가식으로 된 세상에 있다.
나는 가슴속으로 부르짖었다. 푸른색을 좋아한다는 그 명희의 남다른 말에 혼을 잃고 있는 자기가 우습게 생각되며 제법 태를 빼물고 나가버리는 명희가 아니꼽게 여겨졌다. 그는 얼른 신사의 앞으로 머리를 숙이며
“그저께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고 사죄를 하였다.
“네?”
신사는 놀란 듯이 현수를 바라본다.
“그런 첫인사는 그만둡시다. 나는 무조건 하고 당신의 성격이 맘에 듭니다. 자 이로부터는 서로 좀 친해 봅시다.”
신사는 쾌활하게 웃었다. 현수는 어리벙벙하여졌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욕했던 신사는 다시 오고 믿었던 명희는 가 버렸다. 그는 신기한 새 세상에 들어서는 것 같이 가슴이 탁 트이며 시원하였다.
“자─ 이리 앉으십시오.”
현수는 치과 의원 개업 이후 처음 보는 명랑한 얼굴로 친절하게 신사를 치료 의자에 앉혔다.
“자! 양치합시다.”
그는 ‘컵’을 ‘배타기’ 위에 턱 놓았다가 다시 벌떡 들어 신사의 입에 대려 하였다.
“저번 치료한 후 아주 이가 아프지 않아요.”
신사는 현수가 망설이고 있는 컵을 받쳐 들었다.
“네─.”
현수는 무턱대고 길게 크게 한숨 하듯 대구를 하고 똑바로 서서 턱을 쑥 빼낸 후 목울대를 가만가만 두어 번 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