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집/황마차
이제 마악 돌아 나가는 곳은 時計[시계]집 모통이, 낮에는 처마 끝에 달어맨 종달새란 놈이 都會[도회]바람에 나이를 먹어 조금 연기 끼인듯한 소리로 사람 흘러나려가는 쪽으로 그저 지줄 지줄거립데다.
그 고달픈 듯이 깜박 깜박 졸고 있는 모양이 ── 가여운 잠의 한점이랄지요 ── 부칠데 없는 내맘에 떠오릅니다. 쓰다듬어 주고 싶은, 쓰다듬을 받고 싶은 마음이올시다. 가엾은 내그림자는 검은 喪服[상복]처럼 지향없이 흘러나려 갑니다. 촉촉이 젖은 리본 떨어진 浪漫風[낭만풍]의 帽子[모자]밑에는 金[금]붕어의 奔流[분류]와 같은 밤경치가 흘러 나려갑니다. 길옆에 늘어슨 어린 銀杏[은행]나무들은 異國斥候兵[이국척후병]의 걸음제로 조용조용히 흘러 나려갑니다.
슬는 銀眼鏡[은안경]이 흐릿하게
밤비는 옆으로 무지개를 그린다.
이따금 지나가는 늦인 電車[전차]가 끼이익 돌아나가는 소리에 내 조고만 魂[혼]이 놀란듯이 파다거리나이다. 가고 싶어 따듯한 화로갛를 찾어가고싶어. 좋아하는 코 ─ 란經[경]을 읽으면서 南京[남경]콩이나 까먹고 싶어, 그러나 나는 찾어 돌아갈데가 있을나구요?
네거리 모통이에 씩 씩 뽑아 올라간 붉은 벽돌집 塔[탑]에서는 거만스런 Ⅻ時[시]가 避雷針[피뢰침]에게 위엄있는 손까락을 치여 들었소. 이제야 내 목아지가 쭐 삣 떨어질듯도 하구료. 솔닢새 같은 모양새를 하고 걸어가는 나를 높다란데서 굽어 보는것은 아주 재미 있을게지요 마음 놓고 술 술 소변이라도 볼까요. 헐멭 쓴 夜警巡査[야경순사]가 일림처럼 쫓아오겠지요!
네거리 모통이 붉은 담벼락이 흠씩 젖었오. 슬픈 都會[도회]의 뺨이 젖었소. 마음은 열없이 사랑의 落書[낙서]를 하고있소. 홀로 글성 글성 눈물짓고 있는것은 가엾은 소 ─ 니야의 신세를 비추는 빩안 電燈[전등]의 눈알이외다. 우리들의 그전날 밤은 이다지도 슬픈지요. 이다지도 외로운지요. 그러면 여기서 두손을 가슴에 념이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릿가?
길이 아조 질어 터져서 뱀눈알 같은 것이 반쟉 반쟉 어리고 있오. 구두가 어찌나 크던동 거러가면서 졸님이 오십니다. 진흙에 챡 붙어 버릴듯 하오. 철없이 그리워 동그스레한 당신의 어깨가 그리워. 거기에 내머리를 대이면 언제든지 머언 따듯한 바다 울음이 들려 오더니…………
……아아, 아모리 기다려도 못 오실니를……
기다려도 못 오실 니 때문에 졸리운 마음은 幌馬車[황마차]를 부르노니, 희파람처럼 불려오는 幌馬車[황마차]를 부르노니, 銀[은]으로 만들은 슬픔을 실은 鴛鴦[원앙]새 털 깔은 幌馬車[황마차], 꼬옥 당신처럼 참한 幌馬車[황마차], 찰 찰찰 幌馬車[황마차]를 기다리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