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생애미디어어록 한국의 관료, 정치인, 사상가이다. 1900년 일본으로 유학, 아오야마학원과 도쿄 부기학원을 졸업하고 일본의 관료로 근무했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4년 귀국 후 관리서 주사로 임용되고 1905년에는 러일전쟁에 참전한 뒤 귀국하여 1906년 대구군수, 경북관찰사서리, 1907년 평안남도관찰사, 전라남도관찰사, 평안북도 관찰사, 평안남도 세무감 겸 평안남도재판소 판사, 평안남도 관립 일어학교 교장, 1908년 2월 경상북도관찰사 겸 경북재판소 판사, 1910년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냈다. 한일합방 후에도 계속 공직을 역임하면서 충청남도장관, 중추원찬의, 황해도지사, 충청북도지사, 중추원칙임참의, 중추원고문 등을 거쳐 1943년 중추원 부의장, 1945년 일본 귀족원의원 등을 지냈다. 해방 후 조선 정부의 무능력함과 국민성이 한일합방을 불러왔다는 주장을 하고, 이승만, 이시영, 함태영 등을 가짜 애국자라고 조롱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