緣分(연분) 편집

『여바라 방자야!』

하고 책상 위에 펴 놓은 책도 보는 듯 마는 듯 우두커니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던 몽룡(夢龍)은 소리를 치었다.

『여이.』

하고 익살덩어리로 생긴 방자가 어깨짓을 하고 뛰어 들어 와 책방 층계 앞에 읍하고 선다.

몽룡은 책상 위에 들어오는 볕을 막노라고 반쯤 닫히었던 영창을 성가신 듯이 와락 밀며,

『얘, 너의 남원 고을에 어디 볼 만한 것이 없느냐?』

방자는 의외에 말을 듣는 듯이 고개를 숙인 대로 눈을 치 떠서 물끄러미 몽룡을 치어다보더니,

『소인의 골엔들 어찌 볼 만한 곳이 없을 리가 있읍니까.

산으로 가오면 나물 캐는 것도 볼 만하옵고, 들로 가오면 농사짓는 것도 볼 만하옵고, 우물로 나가오면 여편네들 물 길어 놓고 밥솥에 밥 눗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수다 늘어 놓는 것도 볼 만하옵고, 또 행길로 나가오면 술주정군이 술 주정하는 것, 술취한 남편 붙들고 내외 싸움하는 것도 볼 만하옵고......』

『에라 이놈아!』

하고 몽룡은 괘씸한 듯이 책상을 딱 치며, 누가 그런 소리 너더러 줏어대라드냐. 어디 경치 볼만한 곳이 있느냐 말이다—어 그놈.

『네? 그렇거든 애시에 그렇게 말씀하실 께지 소인인들 힘 들여 번 밥 먹은 기운을 헛소리에 다 써버리고 싶을 리가 있겠읍니까...... 소인의 골에 경치 볼 만한 곳으로 말씀하오 면 북문 밖에 조종산성 좋다 하옵고 서문 밖에 관왕묘도 그 럴 듯하다 하오나 제일 이름이 높기로는 남문 밖 나서서 광 한루와 오작교온데 경개 절승하옵니다. 과시 삼남에 제일 명승지라 할 만하옵지요.』

『광한루라 광한루, 오작교 오작교.』

하고 몽룡은 혼자 입속으로 불러 보더니,

『얘, 광한루 오작교 이름이 좋다—광한루로 나가자. 나귀 안장 지어라.』

이 말에 크게 놀라는 듯이 방자가 껑충 뛰며,

『도련님, 큰일날 말씀 마시오—뉘 밥줄을 끊고 다리 마댕 이를 분지르실 양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사또게서 들으 시면 마른 하늘에 벼락이 내릴 것이요...... 또 공부하시는 도 련님이 공부나 하실 게지 좋은 경치는 찾아 무엇하시려 요.』

하고 바로 몽룡을 경계하는 어조다. 서로 상하의 구별을 잊고 그만큼 친해진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경치 구경도 못 간다드냐. 좋은 경치를 대하여야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다—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사또 분부는 내 수쇄하마. 어서 나귀 안장 짓고 공방 주모 관청빗 불러서 자리와 술과 안주 준비하라고 일러라.』

하고 몽룡은 벌써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몽룡은 생명주 겹바지에 당베 중의 받쳐 입고 옥색 항라 겹저고리 옷고름에 약랑을 차고 남갑사 수향배자에 옥단추 를 달아 입고 당모시 중추막에 생초 긴 옷을 받쳐 입고 송 금단 허리띠에 모초 단 두리낭자 주황당사 벌매듭 끈을 달 아차고 널찍한 자주갑사 띠를 느슨히 매었는데 나귀가 걸음 을 빨리 걸을 때마다 띠끝이 석웅황 박은 숙갑사 토막 댕기 와 어울려서 펄펄 날린다.

『사또 자제 사또 자제.』

하고 나귀가 지나가면 길가 사람들이 모두 부러운 듯이 우 러러본다. 오늘이 오월 단오라 울긋불긋 새옷 입은 아이들 은 떼를 모아 몽룡의 나귀를 따라온다. 「사또자제 이 도령 이 얼굴 잘생기고 재주 있다」 하는 것은 남원 부내에서 모 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희고 넓은 이마, 광채 있는 눈, 높은 코하며, 후리후리한 키하며, 아직 나이는 열 여섯 살이 라 애티는 있지마는 과연 호남자의 풍격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모두 우러러볼 때에 몽룡도 기뻤다. 「잘 났다」 「재주 있다」 하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온 몽룡은 조선 팔도에 자기가 으뜸인 것같이 생각하였고 장차 자기는 글 잘하고 벼슬 높은 사람이 되어 이름이 크게 떨칠 것을 스스로 믿었다.

몽룡은 의기 양양하여 일부러 나귀를 천천히 천천히 몰고 분홍당지 숭두선을 헌거로이 부치면서 광한루로 향하였다.

광한루는 처음에는 잘 지었던 모양이나 매우 퇴락하여서 단청도 다 벗겨지고 기왓고랑에 묵은 풀이 우거지었으며 마 루청 널조차 여기저기 떨어져 버렸다.

몽룡은 방자가 자리를 까는 동안에 마루로 이리저리 거닐 며 사방의 경치도 바라보고 들어와 벽에 붙인 글귀와 지나 간 사람들의 성명 새겨 붙인 것도 보더니 매우 볼 만한 듯 이,

『여봐라 방자야!』

하고 방자를 부른다

『여이.』

광한루라고 이름만 좋았지 어디 좋은 것 있느냐. 네가 이 것을 삼남 제일 승지라 하니 과연 상놈의 눈이다.

방자는 몽룡의 얼굴에 볼만한 빛이 있는 것을 보고 가장 수심된 듯이 두 어깨를 축 늘이고,

『그러길래 소인이 여쭈었지요—공부하시는 도련님이 가만 히 글이나 읽고 계실 것이지 승지 찾으시기 당치 않다고......

아직 도련님께서 경치 보시는 눈이 열리지를 못하셨으니까 ..』

하고 손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혀를 끌끌 찬다.

몽룡은 기감 막혀 웃으며,

『어디 경치 잘 보는 네 이야기 좀 들어 보자—네 눈에는 광한루가 그렇게 좋으냐.』

『좋다 뿐이겠소?』

하고 방자는 혹은 왼편 팔을 들어 왼쪽을 가리키고 혹은 오른편 팔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키고 혹은 고개를 번쩍 들 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혹은 손가락을 빳빳이 해가지고 땅을 가리키면서 노랫가락으로 광한루의 좋은 연유를 설명한다—

『가까운 산은 초록이요 먼 산은 퍼렁이요 훨쩍 더 먼 산 은 회색이라. 가까운 산에 아지랑이요 먼 산에 안개오니 동 남서 삼방으로 둘러 선 첩첩 산이 그 아니 좋사오며, 일망 무제 넓은 들에 물 있으면 논이 되고 물 없으면 밭이 되어 도련님네 같으신 양반님네 진지 짓는 벼며 소인네 같은 상 놈들이 먹는 밥이 되는 조와 피와 보리, 밀 파릇파릇 자라 나니 그 아니 좋은 경치오며, 꽃 피는 산을랑 등에 지고 붕 어 메에기 송사리떼 노는 개천을랑 앞에 두고 무거운 기와 도 말고 끌어 오기 어려운 돌도 말고 가볍고 아무 데나 있 는 풀과 흙으로만 지은 농가가 둘씩 셋씩 셋씩 둘씩 조는 듯이 꿈꾸는 듯이 배부른 송아지들처럼 풀 속에 누웠느니 그 아니 절묘한 경치오며, 눈을 들어 우러러보오면 연옥색 하늘에 양떼 같은 구름 점이 오락가락 널려 있고 이따금 이 렇게 서늘한 바람이 슬슬 불어와 소인의 등에 맺힌 향기로 운 땀을 씻어 가니 그 아니 상쾌한 경치요? 게다가 이름조 차 광한루에 좋은 술과 안주까지 있으니 이런 좋은 경치가 또 있겠소? 어깨춤이 절로 나네, 좋을 좋을 좋을씨고.』

하고 얼씬얼씬 춤을 춘다.

『허, 그놈!』

하고 말없이 듣던 몽룡은 방자의 어깨를 툭 치며,

『얘, 너 그런 재담을 다 어디서 배웠니?』

방자 춤추기를 그치고 시치미를 뚝 떼며,

『말씀이야 바로 소인의 고을에 무슨 그리 좋은 경치가 있 겠읍니까. 그러하오나 다 보는 눈에 있사옵지요—소인같이 천줄 곰보 만줄 곰보로 빡빡 얽어맨 주제도 소인의 계집의 눈에는 선풍 도골로 보이는 모양으로 이만한 경치도 보시는 눈을 따라 과히 안 좋지는 아니하옵지요.』

『과연 네 말이 유리하다—네 말과 같이 광한루를 천하 제 일 승경으로 치고 술이나 먹고 놀자.』

하고 몽룡이 먼저 자리에 앉아,

『여바라, 너희들도 다들 올라 앉아라. 우리 오늘은 상하의 별 다 걷어 치우고 모두 친구가 되어서 특고 놀자. 자 다들 올라 앉아라.』

이 말에 방자가 먼저 몽룡이 맞은편에 펄썩 앉으며,

『도련님이 오르라시니 오르려무나.』

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아니다!』

하고 몽룡은 손을 들어 자기에게 권하는 술잔을 막으며,

『향당에는 막여치라니 좌중에 누가 제일 나이가 많으냐— 우리 나이 차례로 순배를 하자.』

방자가 좌중을 휘둘러 보더니,

『아마, 이 후배놈이 제일 연장자일 듯하오. 보기에는 요렇 게 땅딸보라도 정녕 마흔 살은 넘었을 것이요.』

『어 그러면 내게 존장은 넉넉하구나. 첫잔은 후배에게로 돌려라.』

하고 몽룡이 손수 술잔을 들어 후배를 권한다. 본래 용렬 한 후배는 도련님의 손에서 술잔을 받는 것이 너무도 송구 하여 잔 잡는 손이 벌벌 떨린다.

『이놈아, 이것은 강신을 하느냐 술은 왜 엎질러?』

하고 방자가 자기 옷에 떨어진 술방울을 떨어 버린다.

한 순배 두 순배 쉴 새 없이 돌아서 병에 술도 거의 다 하 고 안주 그릇도 하나씩 둘씩 비었다.

안주라야 과일포, 암치, 문어 따위에 불과하건마는 그런 것 을 좀체는 얻어 먹어 보지 못하던 판이라 모두 접시굽을 핥 을 지경이었다. 몽룡의 얼굴에 홍훈이 돌고 숨결이 빨라진 다. 용렬한 후배도 술잔이나 들어가니 몽룡이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줄고 제법 고갯짓을 하며 떠든다. 제비 한 쌍이 처 마 밑으로들었다 나왔다 하는 것을 보고 후배는 흥에 못 이 겨하는 듯이,

『강남 갔던 구제비야 옛집 찾아 예 왔느냐 옛집은 예 있건만 옛 사람은 간 곳 없네 압다 너도 술이나 한 잔 먹어라.』

하고 제 잔에 먹다 남은 술을 제비를 향하여 뿌린다.

『좋다!』

하고 방자가 젓가락으로 장단을 친다.

몽룡은 슬며시 자리를 떠나 난간에 지혀앉아서 담배를 피 웠다. 네 사람은 여전히 술병을 기울이고 웃고 떠든다.

몽룡은 심신이 상쾌하여 이리저리 경치를 바라볼 적에 오 작교 저편 큰길 건너 늙은 수양버들 밑에서 녹의 홍상으로 차린 처녀 삼사인이 그네를 뛰는 양을 보았다. 치맛자락이 펄렁 댕기 끝이 너훌 앞으로 굴러 뒷가지를 차고 뒤로 굴러 앞가질르 찰 때에 흐느적 흐느적 흔들리는 수양버들 잎사귀 가 햇빛에 번뜻번뜻한다.

처녀들이 그네 뛰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언마는 오늘 따라 몽룡은 심사가 산란함을 깨달았다. 더구나 그네 뛰는 처녀들 중에 분홍 치마 노랑 저고리 입은 한 처녀가 이상하 게 몽룡의 맘을 끌었다. 동안이 뜨므로 그 얼굴까지는 볼 수가 없으나 그네 위에서 몸 가지는 태가 다른 처녀와는 유 별하게 아름답다.

〈그네를 뛰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는 것이로구나.〉 —몽룡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담배도 잊어버리고 몽룡은 그 처녀만 뚫어지게 바라보노라니 가슴은 두근거리고 눈은 아 뜩아뜩하였다.

견디다 못하여,

『여봐라!』

하고 몽룡은 방자를 불렀다.

『도련님, 담뱃불에 중추막 타오.』

하고 방자가 몽룡의 중추막 자락을 걷어 치운다.

『얘 저게 누군지 아느냐?』

하고 몽룡은 중추막 자락 타는 것은 본 체도 아니하고 부 채로 그네 맨 수양버들을 가리킨다.

눈치 빠른 방자는 얼른 몽룡의 뜻을 알아차렸다—허기는 그 럴 나이가 되었는데 하고 빙끗 웃었으나 일부러 시치미 뚝 떼고,

『그것은 보따리를 지고 가는 것을 보니 아마 먼길 가는 행인인가 보오.』

『아니! 그것 말고 저것 말이다—저기 저것 말이어!』

『네 그것은 아마 엿장산가 보오.』

『에익 그놈!』

하고 몽룡은 화를 내어 벌떡 일어나서 부채는 걷어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지금 그네에서 내리는 저 처녀 말이다.』

『어허 도련님!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남의 여자만 바라보 시고 담뱃불에 옷 타는 줄도 모르니 참 딱한 일이요.』

하고 방자가 머리를 쩔레쩔레 흔들며,

『오늘이 오월 단오날이오니 여염집 계집아이들이 그네 뛰 는 것이옵지요.』

『아니다. 네가 모른다. 닭의 떼에 학처럼 뛰어나는 저 계 집아이가 예사 계집아일 리 만무하다.』

『도련님도 취하셨소. 여기서 이렇게 보고 학인지 따옥인 지 어떻게 아신단 말이요. 당년한 계집애들은 먼발치서 보 면 다 미인같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 보면 다 그렇고 그렇 지요.』

『아니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 네 눈에는 저 네 계집아이가 다 같이 보인단 말이냐?』

하고 몽룡은 화증을 낸다.

『소인 보기에는 다 같은 걸요.』

하고 방자가 고개를 돌려대고 픽 웃는다.

몽룡은 물끄러미 그네터를 바라보며,

『어허, 눈에도 상목 반목이 있어서 상놈은 눈도 양반만 못하단 말이냐—네 한 번 더 자세히 보아라. 저기 저 분홍 치마에 노랑 저고리 입고 지금 막 그네를 뛸 양으로 줄을 갈라 쥐고 한 발을 올려 놓는 저 아가씨를 보아!』

방자도 몽룡이가 가리키는 곳을 이윽히 보는 체하더니 이 제야 알아본 듯이 손벽을 딱 치며,

『네. 저애 말씀이시오?』

『그래 네가 그 애를 아느냐?』

『네 그애 말씀이야요? 나는 누구라고...... 그애 같으면 안 다 뿐이겠소. 소인이 길러내다시피 한 계집앤 걸요...... 아이 똑똑하지요. 매우 얌전할 걸요.』

『이놈아, 길러내기는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길러내어?』

『네. 소인의 나이가 지금 갓서른이요. 남과 같이 돈냥이나 있어서 일찍 장가만 들었더면 저만한 딸을 둘은 두었겠 소.』

몽룡은 다시 난간에 지혀앉고 방자의 소매를 끌어 곁에 가 까이 앉히며 나직한 어조로,

『얘, 아무리 보아도 그 아가씨가 범상한 여자가 아니다.

네가 길러냈다 하니 너는 그를 잘 알리라—대관절 그가 누구 냐?』

하고 은근히 묻는다.

『미상불 도련님 눈도 어지간 하시오. 그 애는 본읍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라 하옵는데, 절대 가인은 마치 모르겠소 마는 우리 호남 제일 미인이라고 소문이 장히 높지요—어지 간하지요.』

『오, 그러면 기생이로구나.』

『아니요, 기생은 아니지요. 대비 바치고 속량하여 기안에 이름을 어였으니 기생은 아니요.』

기생 아니란 말에 몽룡은 잠깐 머쓱하더니,

『얘.』

『네.』

『그 어찌 좀 불러 올 수 없을까.』

『누구를요?』

『춘향이 말이다.』

『춘향이를 이리로 부르셔요?』

하고 방자는 펄쩍 뛰며,

『어림도 없소. 그 계집아이가 양반의 씨라고 도고하기가 백두산 꼭대기 같아서 앉아서 도련님을 부를 지경인데 그 계집애를 불러 와요? 어림도 없는 일은 생념도 마시오.』

몽룡은 더욱 숨결이 높으며,

『그렇게 도고하냐?』

『두 말하면 헛말되지요. 관속 건달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 와 호남에 누구누구하는 양반님네 선비님네도 수없이 얼러 본 모양입니다마는, 그 애가 거들떠 보기는커녕 대문 안에 들여를 놓아야 정하배라도 하지요—나들 대문에 붙인 입춘만 바라보고는 뒤통수 치고들 돌아갔나 봅디다.』

하고 진저리가 나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분홍 치마는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 버들가지는 흐느적 흐 느적 몽룡의 가슴은 갈수록 설렌다.

『얘, 네가 내 맘을 졸이노라고 거짓말을 하나 보다. 아무 러기로 그대도록 도고하랴.』

하고 몽룡은 눈치를 보려고 곁눈으로 방자의 얼굴을 보았다.

방자는 성난 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인이 거짓말 아니하는 줄은 도련님도 아시겠소 그려.

소인은 거짓말을 하면은 듣는 사람이 거짓말인 줄 알 리 만 치 하옵지 듣는 사람이 속을 거짓말은 일생에 한 일이 없 소. 그러니 아예 춘향이 불러 오실 일은 생념도 마시고 그 만치 노시었으면 들어가십시다—또 사또께서 걱정하시리 다.』

하고 하인들을 돌아보며,

『얘들아 도련님 들어갑신다. 나귀 내고 자리 치워라.』

하고 제 맘대로 분부를 한다.

몽룡은 짐짓 성을 내어 담뱃대로 마룻바닥을 두드리며,

『이놈아, 내가 불러오라면 불러 올 게지 웬 잔말이냐.』

하고 소리를 높인다.

방자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시무룩하여 그네터를 향하고 건너간다. 버들가지 하나를 심술궂게 뚝 꺾어서 잔가지를 우지끈 우지끈 다 다듬어서 거꾸로 집고 군노사령의 걸음 본으로 충충충 걸어간다. 오작교 큰길 건너 잠깐 집모퉁이 에 들어 안 보이더니 그네터에 썩 나서며 바로 그네에서 내 려오는 춘향의 뒤로 발자국 소리 없이 사뿐사뿐 뛰어가서 목을 쑥 빼며,

『춘향아!』

하고 소리소리 질렀다.

춘향이 깜짝 놀라 그넷줄을 탁 놓고 떨어지는 듯이 땅에 내려 서서 후유하고 한숨을 지며,

『이 주릴할 녀석이 왜 그다지 소리를 질러? 하마터면 낙 상할 뻔했군나.』

하고 방자를 흘겨 본다.

방자 능청스럽게 놀라는 모양을 보이며,

『거 안 되었구나—네가 요새 서방 만나서 거드럭거리고 잘 논단 말은 들었지마는 아직 젖내 나는 계집애가 어느 새 아 기를 밴 줄은 몰랐구나—거 가엾구나.』

하고 고개를 기웃거린다.

『예끼 망할 녀석! 누가 애기 뱄다니?』

하고 춘향은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돌아선다. 방자는 춘향 의 앞으로 따라가며, 지금 낙태할 뻔했다고 안했니? 그러면 배지 아니한 아기를 낙태부터 한단 말이냐—아무려나, 내 딸이 낙태나 아니하면 다행이다.

『듣기 싫어! 이 망할 녀석이 왜 오늘은 술이 잔뜩 취해 가지고 나를 못 견디게 굴어?』

하고 춘향은 방자를 피하여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나 방자 는 허리를 구붓하고 이리 왔다가 저리 갔다가 춘향의 가는 길을 막는다. 춘향의 불그레한 얼굴에 이슬땀이 맺히었다.

『춘향아!』

하고 방자는 갑자기 점잔을 빼고 불렀다.

『왜야?』

하고 춘향의 대답에는 여전히 독살이 있다.

『얘야 춘향아, 그것은 다 웃는 말이고...... 내가 할 말이 있다.』

하고 방자가 춘향의 곁으로 가까이 간다. 춘향은 방자가 가까이 오니만치 뒤로 물러서며,

『할 말일 있거든 저만치 서서 하려무나. 내가 귀를 먹었 단 말이냐. 왜 바싹바싹 대들어?』

『큰일났다.』

하고 방자는 과연 무슨 큰일이나 생긴 듯이 고개를 끄덕뜨 덕 한다.

『무슨 큰일?』

하고 춘향도 방자의 말에 주의를 한다.

『오늘이 오월 단오가 아니냐.』

『그래.』

『오늘이 오월 단오라고 책방 도련님이 광한루 구경을 나 오시어 지금 저기 앉아 계신데, 네가 그네 뛰는 것을 보시 고 그만 눈동자가 곤두박이를 치어서 날더러 너를 불러오라 고 야단이시니 이를 어찌하느냐. 어느 명이라고 거역할 수 는 없고 부득불 잠깐 네가 가서 보아야겠다.』

몽룡이가 자기를 부른다는 말에 춘향은 못마땅한 듯이 눈 초리를 샐쭉 끌어 올리며,

『얘, 그 말 같지 아니한 소리 말아라. 책방 도련님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오너라 말아라 한단 말이냐.』

하고 잘 믿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방자 한 손을 이마에 대어 볕을 가리우고 한 손을 넌짓 들 어 광한루를 가리키면서,

『얘 내가 언제 거짓말 하더냐. 네 저기를 바라보아라. 저 기서 남쭉 끝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부채질하는 이 가 책방 도련님이 아니시냐.』

춘향도 방자의 가리키는 편을 바라보았다. 서편으로 기울 어진 볕에 눈이 부시어 자세히는 분간할 수 없어도 방자의 말대로 어떤 소년 하나가 비스듬히 기둥에 기대어 섰는데, 그 차림 차림이 귀한 집 공자일시 분명하고 이곳에 귀공자 라면 책방 도련님일시 분명하다. 책방 도련님이 풍채 좋고 재주 있단 말은 춘향도 들었던 터이라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맘도 없지 아니하건마는 그렇게 부른다고 수월히 갈 리야 있으랴.

『글쎄 그이가 책방 도련님인지는 모르겠다마는 그이가 나 를 누군 줄 알고 부르신단 말이야. 공연히 말 많고 일 많은 네가 묻지 않는 말을 춘향이니 난향이니 하고 일러바친 게 지.』

『말이야 바로 하지. 네가 춘향이란 말은 내 입으로 나왔 다마는 네 이름도 알기 전에 네 모양만 보고 벌써 혼이 반 은 빠지어 달아나서, 날더러 네가 누군가 알아 올리라 하시 니, 내가 먹을 것이 있어서 내일부터라도 삼문안 구실을 안 다니면 몰라도 어찌 도련님을 그일 수가 있느냐. 그래서 말 이야, 바로 내 입으로 바른 대로 일러 바쳤다.』

하고 방자는 춘향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한층 말소리를 낮추어,

『얘야, 말이야 바로 책방 도련님이 과연 네 배필이 될 만 한 양반이다. 풍채 좋고 마음 착하고 그러고도 시원시원하 고, 글이야 내가 아느냐마는 글도 잘 하신다더라—밤낮 글만 읽으니 그만치 읽으면 우리 집 도야지놈도 글을 잘못하고는 못 견딜 것이다. 나도 너를 친동생같이 아니 말이지 도련님 말을 잘 들어 보아라—해롭지 아니할라.』

『응. 너 나를 호려내려 드는구나.』

하고 춘향이 방그레 웃더니 다시 정색하고 방자더러,

『가서 이렇게 도련님께 여쭈어라. 불러 주시는 뜻은 감격 하오나 규중 처자로서 모르는 남자의 전갈 듣고 따라가옵기 는 옛 성현의 훈계에 어그러지니 못 갑니다...... 또 공부하시 는 도련님이 소창을 나오시면 소창이나 하실 것이지 남의 집 처자더러 오너라 말어라 하시는 것이 점잖으신 체면에 어그러지지 않습니까 고—그렇게 가서 여쭈어라. 나는 갈 수 없다.』

하고 칼로 똑 끊는 듯이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새침 하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방자는 하도 어이없어서 춘향이가 대문으로 들어가 안보이 도록 얼빠진 듯이 섰다가,

『허, 그년 참 맵다—사뭇 호초알이로구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두 어깨를 축 처뜨리고 기운없 이 오던 길을 도로 광한루로 건너간다.

이때에 몽룡은 껄떡껄떡 침만 삼키고 춘향이가 오기만 기 다리다가 춘향은 어디로 가버리고 방자만 어슬렁 어슬렁 기 운없이 돌아옴을 보고 분함을 못 이기어 발로 광한루 마루 를 탕탕 구르며,

『글쎄, 이 못생긴 놈아! 널더러 춘향이 불러오라고 했지 들여쫓고 올라고 하더냐—저런 못생긴 놈이 어디 또 있담!』

방자는 무안한 듯이 처분만 기다리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 비하에 읍하고 서며,

『소인이 별소리를 다해도 고개 하나 까딱 아니하옵고 욕 만 톡톡히 얻어 먹었읍니다. 도련님께서 진실로 춘향이를 보시려거든 군노 사령을 내보내시어서 붙들어나 오셔야지 여간 전갈로 부르시기나 해가지고는 명년 이때까지 부르시 더라도 춘향이는커녕 난향이도 못 보시리다.—오늘 보니까 그 애의 매서운 양이 사뭇 칼이요 칼.』

하고 실심한 듯이 먼 산을 바라본다.

방자만 책망하여도 쓸데 없는 줄을 알고 몽룡은 다시 은근 한 어조로,

『얘, 이리 올라오너라...... 그래 내가 부른다고 했니?』

『네.』

『무어라든?』

『가서 이렇게 도련님께 여쭈라고요—.』

『무어라고? 그런데 왜 내게 말을 아니했어?』

『말씀도 다 안 들으시고 벼락이 나리시니 언제 말씀할 새 가 있소?』

『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래 무에라든?』

『불러 주시는 뜻은 감격하오나.』

『응, 그래.』

『규중 처자로서 모르는 남자의 전갈 듣고 따라가옵기 는......』

하고 방자는 말 구절을 잊어버린 듯이 고개를 기웃거리고 머리를 긁는다. 몽룡은 방자가 전하는 춘향의 말을 한 번 입 속으로 외어 보고,

『응, 그렇지......그리고 또.』

『옛 성현의 훈계에 어그러지니 못갑니다고.』

『흥, 옳은 말이다...... 그러면 춘향이가 글도 읽었느냐?』

『아마 도련님만치는 읽었지요.』

몽룡은 고개를 끄덕하며,

『그래, 그 밖에는 다른 말은 없더냐?』

방자가 말하기 어려운 듯이 머리를 긁적긁적 긁으며,

『고 계집애가 버릇없이 도련님 노여실 말을 하여요.』

『내가 노여할 말? 옳은 말에 노열 내가 아니다. 바로 말 해라.』

『그러면 바로 아뢰오—또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소창을 나 오시면 소창이나 하실 것이지 남의 집 처자더러 오라 말어 라 하시는 것이 점잖으신 체면에 어그러지지 않습니까라 고.』

말을 마치고 방자는 몽룡의 얼굴을 치어다보았다. 몽룡은 잠깐 머쓱해지더니 다시 얼굴에 화기가 돌고 뜻에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과연 절절히 옳은 말이다! 내가 부끄럽다.』

하고 이윽히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오늘 글짓 는다고 가지고 나왔던 황모 무심필에 부용당 먹을 흠뻑 묻 혀서 빛 좋은 태문지에 서너 줄을 휘휘 둘러 쓰더니 봉투에 넣어 꼭 봉하여 방자를 불러,

『얘, 너 춘향 아씨 집에 다시 가서 아까 전갈한 것은 잘 못되었다고 사죄하는 말하고 이 편지 드리고 답장 받아오너 라.』

방자 그 편지를 받아 들고,

『또 욕이나 얻어 먹으러 가요?』

하고 주저하는 것을,

『네 곧 다녀오너라!』

하고 몽룡이가 호령 소리를 높이므로 방자 다시 마지 못하 여 어슬렁 어슬렁 아까 돌아올 때보다도 더 느린 걸음으로 길가에 버들잎 풀잎 뜯어 피리 불어가며 춘향의 집을 향하 고 걸어간다.

방자는 춘향의 집 대문을 들어서자 기운을 내어서 중문으 로 통통통통 발을 구르고 뛰어 들어가며 목을 길게 뽑아,

『춘향아!』

하고 불렀다.

춘향은 마침 산란한 심서를 풀 양으로 거문고 줄을 고르고 앉았다가 방자의 소리에 깜짝 놀라 거문고를 무릎에서 떨어 뜨리고 영창으로 아까 그네 뛸 때에 상기했던 것이 식지 아 니하여 아직도 불그레한 대로 있는 얼굴을 내밀며,

『이 주릴할 녀석이 왜 또 와서 지랄이야. 춘향아 춘향아 하고 온 동네가 떠나가게 부르니 춘향이가 네집 종의 자식 의 이름이드냐.』

하고 눈살을 찌푸린다.

방자도 골을 내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우뚝 층계 앞에 서 면서,

『이년에 계집애, 나를 보면 언필칭 주릴할 녀석이니 내가 네집 종의 자식이란 말이냐 네 집에 밥을 얻어 먹으러 왔단 말이냐. 팔자 기박하여 삼문안 구실을 다녀 밤낮 아이 어른 한테 이놈아 저놈아 소리를 식은 죽 먹듯하고 살아는 간다 마는 너한테까지 이녀석 저녀석 소리를 들을 까닭이야 있느 냐.』

하고 마당에 가래침을 탁 뱉는다.

방자가 하도 야단을 하니 춘향이 좀 누그러지며,

『네가 행세를 잘 해도 그래?』

하고 방자를 힐끗 본다.

방자는 여전히 성이 안 풀리는 듯이 춘향을 위 아래로 훑 어보며,

『얘야, 내 행세가 잘못 간 것이 무에냐. 네가 남없이 낯바 닥이 예쁘장하게 생겨 먹고 행실이 바르지를 못하여서 남을 걸음을 걸리지 그려 낸들 좋아서 너한테 욕이나 얻어 먹으 러 다니는 줄 아느냐—어 참 아니꼬운 일 다보겠네.』

하고 또 한 번 퇴하고 침을 뱉는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단 말에 풀리려던 춘향의 두 눈초리가 다시 쫑깃하고 올라가며,

『이녀석, 내가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니 무엇이 바르지 못 하냐—네 집에 가서 무엇을 훔치어를 왔느냐 남의 집에 불을 놓았느냐—내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니 어디 바르지 못한 연 유를 일러 보아라—혓바닥을 잘라 버릴라.』

방자 창 앞으로 한 걸음 바싹 다가 서며,

『오냐, 네 행실이 바르지 못한 연유를 들어보아라! 과년된 계집애가 행실이 바를 양이면 동넷집 수코양이 눈에라도 띄 울세라, 네집 안마당으로 다니더라도 고개를 고부슴하고, 네 집 후원으로 거닐더라도 행여 재채기 소리라도 밖에 들릴세 라 조심을 할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예쁘장한 계집애가 새 옷 입고 단장하고 백주 대로변에 네 활개 활짝 뻗고 치맛자 락, 속옷자락까지 펄렁거리며 굼틀굼틀거리니 길가던 행객 까지 발이 길바닥에 딱 붙고 입이 헤벌어져서 정신을 잃어 버리게 하니, 그래 이러고도 네 행실이 바른다 할 것이냐.

네가 얌전스럽게 처녀답게 가만히 네 방안에 들어앉아서 글 이나 읽든지 바느질 수놓기나 하든지 심심하거던 징동 당동 거문고 가야금이나 울리든지. 설마 고양이가 고양이를 낳고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장구나 둘러 메고 얼씬얼씬 엉덩춤을 춘다기로 네집 방안에서만 하량이면, 아무리 책방 도련님이 잘 아는 데는 중방 밑 귀뚜라미라 하기로 네집 담벽까지 뚫 고 너라는 계집애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볼 리는 만무하지 아니하냐—그런데 제 허물을 모르고 애꿎은 날더러—주리를 할 녀석이니 서방을 삼을 녀석이니 하니 내가 그렇게 만만 하더냐.』

춘향이 방자의 말을 한참 우두커니 듣고 앉았더니 기가 막 히는 듯이 웃으며,

『어쨌든 입심은 좋다—방자 노릇하기는 아깝다.』

춘향 모 월매가 안방에서 옛 친구 이삼인을 청하여 가지고 오늘이 오월 단오라고 술 먹고 있던 차에 춘향이 방에서 떠 드는 소리 나는 것을 보고,

『이얘, 누구하고 이렇게 언쟁을 하니?』

하며 신을 찔찔 끌고 나온다. 나이는 육십이 가까왔으나 아직도 옛날 남원 명기로 들날리던 빛이 남았다.

『아가 누가 왔니?

하다가 방자가 굽실하고 절하는 것을 보고,

『오, 네드냐. 구실이나 잘 다니고 어머니도 무고하시냐.』

『네 처도 잘 있고 어린것도 잘 자라느냐?』

네. 앓지나 않지요. 아주머니는 점점 젊어 가시는구려.

하고 방자는 춘향을 돌아보며 웃는다.

젊어간다는 말에 월매는 생긋 웃으며,

『죽을 날이 가까와 오는 년이 젊어 가는게 다 무엇이냐, 호호호. 이년석 너도 인제는 어른 다 되었고나. 이년석 그새 한 번도 아니 오더니 오늘 어째 왔느냐.』

『좁쌀 여덟 섬에 모가지를 매달고 어른 심부름 아이 심부 름하기에 나올 새가 있소?』

『그래 무엇을 그렇게 떠들었니?』

하고 귀여운 듯이 춘향을 바라보며,

『나는 네가 누구하고 말다툼이나 하는 줄 알았구나.』

춘향은 새침하고 고개를 방안으로 돌리며,

『저녀석이 책방 도련님보고 춘향이니 난향이니 하고 종지 리 새 열쇠 까듯, 경신년 글강 외듯 외어 바치어서 도련님 이 나를 불러 오란다고 벌써 이 바보녀석이 두 번째나 와서 지랄이라오.』

『인제는 또 바보야? 하고 싶은 대로 다해라.』

하고 방자는 기막힌 듯이 웃고 돌아선다.

월매는 책방 도련님이 춘향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솔깃하여 빙그레 웃으면서,

『아가 그러지 말아라. 이 애가 일러바치지 않으면 도련님 이 네 이름 모르랴.』

하고 방자를 향하여,

『그래 아기가 무에라든?』

『아까 하도 도련님이 발광을 하시길래 이 애 그네 뛰는데 와서 도련님 말씀을 전하였더니 이 애가 세길 네길 뛰며, 주릴할 녀석 오랄질 녀석 하고 욕을 닷섬이나 얻어 먹고, 닭 좇아 가던 개 모양으로 뒤통수 툭툭 치고 도련님한테 돌 아가서 익애 하던 말을 여쭈었지요, 했더니 도련님 골이 댕 기 끝까지 흘러 내려가서 또 이놈 저놈 하고 어르지요. 어 쩌면 이놈의 팔자는 나이로 말하면 내아들 딸이라고도 할 만한 어린것들에게 이놈 저놈 이녀석 저녀석 소리만 듣고 살게 되니 참으로 기가 막히외다.』

『그래서 도련님이 또 가보라고 하시어서 네가 왔니?』

하고 월매는 부드러운 소리로 방자를 달랜다.

『아까는 입으로 전갈을 하여서 황송 황송합니다고 가서 아가씨께 간절히 사죄하는 말씀 사뢰고 이 편지 드리고 답 장 받아 오너라 해서 왔다오.』

월매는 춘향을 보고,

『아가, 그 편지 보았니?』

춘향은 말없이 고개만 짤래짤래 흔든다.

이번에는 방자를 보고 월매가,

『도련님 편지 어쨌니?』

『어째요, 여기 있지요.』

하고 방자는 허리춤을 가리킨다.

『왜 춘향이 안 주었니?』

『정신을 차려야 주지요. 오는 길로 벼락이 내리니 정신이 들었다 났다 하오.』

하고 방자가 견딜 수 없이 불쾌한 듯이 연해 입맛을 쩍쩍 다시고 눈을 껌벅껌벅하더니만 휘끈 발을 돌려 중문간 밖으 로 뛰어 나가며,

『에라 빌어먹을—차라리 논게 강경이를 가서 모군을 서먹 든지 그도 못하면 지리산에 들어가서 중놈의 밥을 지어주고 얻어 먹는 것이 낫지, 이놈의 구실은 아니꼬와서 못해먹을 내라.』

하고 중얼거리며 달아난다.

춘향이 깜짝 놀라 버선발로 뛰어 나오며,

『얘야 방자야, 편지나 두고 가거라.』

월매는 허겁지겁하는 춘향의 뒷모양을 보고 고개를 끄덕끄 덕하며 빙그레 웃는다.

『얘야 방자야!』

춘향은 한 번 더 높이 부른다.

방자 뛰어 들어오며,

『왜 불러? 강경이 갈 노자나 주련?』

『얘야, 그 편지가 노자 되느냐. 네게는 쓸데 없는 것이니 편지나 두고 가거라.』

하고 춘향은 수삽한 듯이 고개를 숙인다.

방자 물끄러미 춘향을 바라보다가 껄껄 웃으며 월매더러,

『요새 계집애는 다 저렇단 말이야. 아주 겉으로는 맵기가 호초알 같고 매섭기가 피장이 칼날 같으면서 속으로 딴전 치것다.』

하고 편지를 꺼내어 춘향에게 주며,

『옛다. 만지고 쓰다듬고 뺨에 대고 혀로 핥고 가슴에 품 고 한자 영낙없이 잘 보아라. 그리고 답장이나 얼른 써라.

또 거행 더디다고 알경이나 치우게 말아라.』

춘향은 편지를 떼어 본다. 월매와 방자는 편지 보는 춘향 의 얼굴만 보고 있다.

춘향이 편지를 다 보고 나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또 한 번 그 편지를 보고 또 생각하는 듯하더니 또 한 번 본다.

월매 참다 못하여 담뱃대를 놓고 툇마루로 올라가면서,

『어디 무에라고 하시었니—좀 읽어 보려무나—나도 듣게.』

방자도,

『옳다 나도 좀 듣기나 하자.』

『싫소...... 그것은 무얼.』

『어서 읽어라. 좀 듣자.』

『편지를 읽으면 네까짓 녀석이 알아 듣니?』

하고 춘향이 웃으며 방자를 본다.

『왜 몰라 야. 진서로 썼거든 좀 새겨 보렴.』

『진서는 아니다. 시조다. 글씨 참 잘 썼다.』

하고 춘향은 무슨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모양 으로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어머니 답장 써?』

하고 월매를 보고 묻는다.

월매는 담배가 다 타버리고 연기도 아니 나는 담뱃대를 집 어 빨면서,

『책방 도련님이 네 맘에 드는 게로구나.』

하고 생긋 웃는다.

『에그, 어머니도...... 그러면 어떻게 해요. 편지까지 하시 었으니 답장은 해야지.』

하고 춘향은 귀찮은 듯이 몽룡의 편지를 문갑 위에 한번 던지어 본다.

『대관절 무에라고 편지가 왔는데 너는 무에라고 답장을 할래?』

하고 월매가 문갑 위에 던진 몽룡의 편지를 집어 본다.

춘향은 그것을 빼앗으려다가 지는 체하고 월매가 읽는대로 내버려 둔다.

월매는 편지를 한참이나 보더니 한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평조로 몽룡의 노래를 읊는다.

『어지어 내 일이어 인연도 기이할사 언뜻 뵈온 님이 그 님일시 분명하이 광한루 예 보던 벗이 찾아온다 일너라.』

다 부르고 나서 월매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기울이며,

『아가, 광한루 예 보던 벗이라 하였으니 이전에도 네가 광한루에서 도련님을 본 일이 있느냐?』

하고 춘향을 본다.

춘향은 수줍은 듯이 몸을 비비 꼬다가 월매의 손에서 그 편지를 빼앗으며,

『그 광한루가 어디 이 광한루요?』

『그럼 광한루가 또 어디 있니?』

『옥경 광한루요—하늘에 있는 광한루 말이요—하늘에 선관 선녀로 있을 때에 서로 보던 벗이라고 해서 예 보던 벗이라 고 했지요.』

월매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참 그렇고나. 내야 무식해서 광한루라면 남원 남문 밖 광한루 밖에 아니?』

하고 이윽히 무엇을 생각하다가,

『아가, 네 말을 들으니까 도련님 글이 참으로 이상도하다.

내가 너를 밸 때에 꿈에 한 손에는 이화를 들고 또 한 손에 는 도화를 들고 선녀 한 분이 내려와서 도화가지를 내게 주 고 잘 가꾸어 두라. 후일에 앞날이 있으리라. 이화 가지를 전하러 갈 길이 바쁘다 하더니 이제 생각하니 너는 분명 도 화 가지고 도련님은 분명 이화 가지로고나—도련님 성씨가 이씨가 아니시냐. 광한루 예보던 벗이란 말씀이 과연 허사 가 아니로다.』

하고 참인 듯이 말한다.

『어머니도 용하게도 꾸며대시우.』

하고 춘향은 픽 웃는다.

『제길 꿈타령은 있다가 하고 어서 답장이나 써다오.』

하고 방자가 재촉한다.

『아차, 어 술이나 한잔 줄걸 그랬고나. 늙으면 잔망해서 걱정이야—아가, 답장 써라. 오늘 저녁에라도 누옥이나마 찾 아 오시라고 그러려무나. 네가 말 부족하고 글 부족해 못 쓰겠니.』

하고 담뱃대를 들고 일어나 마당에 내려서며 방자더러,

『너는 이리 들어와서 술이나 한잔 먹어라, 좋은 편지 가 지고 온 애를 맨 입으로 보내 쓰겠니?』

이때에 안으로서,

『성님! 성님! 월매 성님 무엇하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월매는 신을 찔찔 끌고 걸음을 빨리 하며,

『응 들어가우,...... 어서 이리 들어오너라.』

하고 방자를 부른다.

『술을 주시려거든 한 사발 내보내시오, 들어가서 마나님 들한테 허리 구부리기도 싫고 수다 듣기도 싫수.』

월매는 더 방자를 재촉도 아니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 슨 이야기통이 터지었는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춘향은 문갑 속에 꼭꼭 싸두었던 간지 한 축을 꺼내어 그 중에 가장 살 좋고 윤 있는 것 한 장을 골라 놓고 벼루에 먼지를 입으로 혹혹 불고 연적에 물도 알맞추 떨어뜨려서 향기 좋은 해주먹을 갈고 또 갈고 진케 간 후에 순황모 무 심필을 끝을 입으로 잠깐 씹어 풀어 가지고 궁체 한글 글씨 로 똑똑하게 정하게 노래 한 머리를 쓴다—

『이몸의 정렬함이 삼생에 뻗었으니 천상 천하에 날 안달 님 없으련만 그처로 찾으시는 님을 막을 줄이 있으랴.』

이렇게 노래를 다 써놓고는 몽룡의 편지를 다시 한 번 들 어 보고 그 끝에 이름 쓴 것을 모본하여,

〈단향일에 성 춘향.〉

이라 하고 이름을 써서 혹 말일 잘못 된 데나 없나 글자나 빠지지 아니하였나, 글씨나 잘못 된 데나 없나 하고 두서너 번을 내려보더니 맘에 맞는 듯이 방그레 웃고는 종이를 착 착 접어 봉투에 넣고 상단이 불러 밥풀 가지어오라 하여 꼭 꼭 봉하고 겉봉에 진서로,

〈이 수재 몽룡씨전〉전

이라고 쓴 후에 봉투 왼편 밑에 좀 적은 글씨로,

〈성생은 근함이라〉

하고 써서 봉투도 두세 번 살펴보고 붓을 던지며 지금 막 상단이가 갖다 준 술 한 사발을 먹고 나서 수염을 빠는 방 자더러,

『옜다, 답장 가지고 가거라.』

하며 편지를 내어 준다.

방자는 접시에 놓인 문어 조각을 한입에 틀어 넣고 우물우 물 씹어가며,

『얘, 무어라고 답장 했니? 오늘 저녁에 오시라고 했니! 또 내가 사초롱 들고 네 집 걸음을 하게 되었고나. 그때에는 술값이나 조히 주어야 된다.』

『술은 눈에 비지가 꾸역꾸역 나오면서도 그래도 아직도 술이 나쁘냐. 그저 술독에 빠지었으면 좋겠고나.』

하고 춘향이가「오냐. 네 말대로 하마.」하는 웃음을 웃어 주는 것을 보고, 방자도 좋아라고,

『얘야, 그 말 마라. 너 같은 아이에게는 도련님 같으신 서 방님이 있고 도련님 같으신 서방님께는 너 같은 어여쁜 아 가씨가 있어서 다 그렇고 그렇고한 좋은 일도 많지마는 나 같은 놈이야 술이나 먹어야지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 술이 나 취해서 엄벙덤벙하는 때가 내 세상이다.』

하고 얼씬얼씬 춤을 추며,

『얼씨고나 절씨고...... 얘 너 도련님 수청들어 귀이 되거든 이 불쌍한 오라범 술이나 잘 먹여다오...... 잘 있거라 저녁에 또 보자.』

하고 편지를 허리춤에 감추면서 중문 밖으로 뛰어 나간다.

춘향이 무엇을 잊어버린 듯이 툇마루에 뛰어나서며,

『방자야 아까는 잘못하였으니 용서합소사고.』

하고 소리를 친다.

『오냐, 염려 마라.』

하는 소리가 대문 밖으로서 들어온다.

이때에 몽룡은 취하였던 술도 다 깨어 버리고 방자가 가던 길만 먼히 바라보고 섰더니 그리로서 사람 하나만 번뜻 보 이면,

『여봐라, 저것이 방자가 아니냐?』

하고 곁에 있는 하인더러 묻는다.

『아니올씨다. 방자놈은 키가 큽니다.』

또 사람 하나가 번뜻 보이면,

『여봐라, 저것은 분명 방자다.』

『아니올씨다. 그것은 이리로 오는 사람이 아니라 저리로 가는 사람이 올씨다.』

『이놈이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정녕 길을 잃어버렸나 보다.』

하고 몽룡은 애를 부덩부덩 쓴다.

『방자놈이 술버릇이 좋지 못하오니 아마 어디서 술을 처 먹고 주정을 하고 있나 보오.』

하고 몽룡의 애를 태우는 대답만 한다.

이때에 방자의 충충거리고 오작교로 건너오는 양이 보인다.

방자가 오작교를 건너 오는 것을 보고 몽룡이 벌떡 일어나 며,

『여봐라 저것은 분명 방자냐?』

한 사령 일부러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네. 저것은 분명 방자인 듯하오.』

몽룡이 안심한 듯이 다시 난간에 지혀앉아, 휘유 길게 한 숨지며,

『허, 그놈 남의 애를 다 태는구나.』

하고 얼마 있다가,

『여봐라, 저놈의 걸음거리가 기운이 있는 모양이냐 기운 이 빠진 모양이냐?』

『하 그리 기운이 빠진 모양은 아닌가 보오.』

『기운이 빠지면 저놈의 걸음이 어떠하냐?』

『두 어깨가 축 처지고 대가리가 앞으로 숙읍니다.』

몽룡이 안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어깨는 처지었는지 들렸는지 모르겠다마는 대가리는 분 명히 뒤로 잦혀지었다.』

방자가 광한루 가까이 와서는 더욱 활개를 치고 몸을 우쭐 거리고 껑충껑충 뛰어오더니 몽룡이가 앉은 난간 밑에 와서 허리를 굽실하고 옷소매로 이마에 땀을 씻으며 씨근벌떡하 는 소리로,

『도련님! 또 욕을 한 섬이나 얻어 먹고 왔소.』

몽룡은 조급한 듯이 난간 위로 허리를 굽혀 방자의 술냄새 나는 얼굴을 내려다보며,

『욕만 먹고 왔어?』

하고 소리를 지른다.

『또 술도 한 사발 얻어 먹었는데 아주 맛이 썩 좋읍디다.

그놈을 한사발 들이켰더니 지금 하늘이 돈잎만 하오——어 더워! 훠.』

하고 옷고름을 끌러 옷자락으로 부채질을 하며 짖궂게,

『참 술맛 좋읍디다.』

『그래 술 얻어 먹고 그리고는 어쨌어?』

하고 몽룡은 심히 맘이 조급하였다.

『술 먹고는 안주 먹었지요. 문어 발 먹었지요. 그놈 질깁 디다.』

몽룡이 견디다 못하여,

『이놈아, 술 먹고 안주 먹고 그것뿐이야? 편지는 어찌했 단 말이냐?』

방자 능청스럽게 놀라는 듯이 한 번 껑충 뛰고 머리를 긁 적긁적하며,

『아차, 술맛이 하도 좋킬래 길 오면서 술 생각만 하노라 고 도련님 편지는 미처 생각도 못하였소...... 편지는 갖다 주 었지요.』

『그래서?』

하고 몽룡의 기색이 좀 풀린다.

『춘향이가 읽어요.』

『그리고는?』

『또 한번 읽어요.』

『그리고는?』

『또 읽던가 보든 걸요.』

『이놈아, 춘향 아씨가 편지를 읽고는 어떻게 하더냐 말이 야...... 허 그놈 사람의 애를 식은 재가 되도록 다 태워버리 고야 말려는구나.』

『소인의 애는 얼마나 탔는 데요?』

『그래 편지를 읽고는?』

『자세히 말씀해요?』

『그래 자세히 말해라.』

방자 잊었던 것을 생각한느 모양으로 한참이나 고개를 기 웃기웃하더니,

『춘향이가 도련님 편지를 읽고는—아마 열 일곱 번은 읽나 봅디다. 한참은 몇 번이나 읽나 보자 하고 세이다가 열 댓 까지 세이고는 구찮아서 말았소.』

『압다, 이놈아 그래 편지를 읽고는 어찌하더냐 말이야?』

하고 몽룡이 갑갑증이 나서 발로 마루를 한 번 구른다.

방자는 놀라는 듯 두려워하는 듯 또 한 번 껑충 뛰며,

『네 바로 아뢰오리다—춘향이가 그 편지를 읽더니마는—아 마 열 일곱 번이나 읽더니마는 두 빰은 발그레 두 입술은 오물오물 두 눈은 사르르 숨소리는 쌔근쌔근하더니만 제 어 미 월매를 보고 「답장 써요?」하옵디다.』

하고는 방자가 코웃음을 씩 웃는다. 몽룡이도 참을 수 없 이 빙그레 웃는다.

몽룡은 춘향이가 그 어미더러,「답장 써요?」하고 묻더란 말이 맘에 흡족하여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래 춘향 아가씨 어머니께서 무에라고 하시더냐?』

「무에라고 하시더냐?」하고 경대를 하는 것이 하도 우스 워서 방자 허허 웃으며,

『허허 도련님, 어느 새에 춘향 어미 월매를 장모 대접을 하시오? 참 지레짐작도 유분수요. 콩밭에 가서 비지 찾고 밥짓기 전에 숭늉 찾고, 장가드시기 전에 아기 낳으시겠 소.』

몽룡도 어이없어 웃으며,

『이놈아, 재담 그만하고 어서 할 말만 하여라. 잎사귀, 가 지 다 내어버리고 줄거리로만 어서 아뢰어라.』

『압다 도련님도, 무척 성급하시오. 아무리 빨리빨리 성화 같이 아뢰기로 첫말이 나오고야 다음 말이 나오지요. 이런 때에는 소인의 입이 여남은 구녕은 되었으면 쓰겠소. 한꺼 번에 여남은 마디씩 아뢸께 도련님도 정신차려서 귀떨어진 말 한 마디 빼놓지 말고 들으시오.』

하고 방자는 광대가 갖은 타령 주워대듯 입을 나불나불 무 슨 소린지 알지 못하게 지껄인다. 그 중에서 몽룡이가 알아 들은 것은, 월매가 몽룡의 시조를 한 번 불렀다는 것 뿐이다.

방자는 한참이나 제비놀이하듯 지껄이더니 숨이 찬 듯이 길게 한 번 한숨을 쉬고 나서 알아들을 수 있게,

『그리고는 이 편지를 써 주시며, 아까는 잘못했읍니다고, 용서하십시사고—.』

하고 춘향의 소리를 흉내내고는 허리춤에 넣었던 편지를 몽룡에게 준다.

몽룡은 편지를 받아 위선 필봉에 쓴 글씨를 보더니,

『여봐라, 편지는 왜 네 배때기에 넣고 오라드냐. 피봉에 땀이 묻었구나.』

하고는 피봉을 뗀다.

몽룡이 이윽고 춘향의 답장을 보더니, 탄복한느 듯이 고개 를 끄덕끄덕하고 무릎을 툭툭치며,

『과연 내 배필이다!』

하고 좋아한다.

방자 고개를 번쩍 들고 몽룡이가 보는 편지를 치어다보며,

『그게 무에라고 썼는데 그렇게 좋아하시오? 오늘 저녁에 오시라고 하였소. 어디 소인도 좀 들어봅시다 그려.』

『네까짓 놈이 들으면 알겠느냐? 그래도 한 번 들려주 랴?』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그래라. 네가 내 중매가 아니냐. 내 부를께 네 들어 보아 라.』

하고 손으로 무릎을 치어 장단을 맞추며 찌름으로 부른다—.

『이 몸이 정렬함이 삼생에 뻗었으니 천상 천하에 날 안달 님 없으련만 거처로 찾으시는 님을 막을 줄이 있으랴.』

부르기를 마치고 또 한 번 무릎을 치며, 몽룡은 방자를 보 고,

『어떠냐? 알아듣겠느냐?』

『알아듣기는 하였는데 도련님 무릎 너무 따리지 마시오.

오늘 저녁에 또 다리 아파서 춘향의 집에 못가시리다.』

몽룡은 한 번 더 춘향의 답장을 읽어 보고 소매에 넣고 춘 향이그네 뛰던 터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여바라.』

『여이.』

『나귀 내어라. 인제는 광한루에 일이 없으니 들어가리 라.』

방자 나귀를 끌어다가 몽룡이 앞에 세우며,

『여기서 볼 일은 다 보시었소?』

하고 빈정거린다.

광한루에서 돌아와서 몽룡은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 파루 소리 나기만 기다렸다.

상방에 아버지를 뵈오러 갔으나 아버지도 눈에 잘 보이지 아니하고, 내아에 어머니를 뵈오려 갔으나 어머니도 있는둥 없은둥, 밥상을 받아도 밥과 국을 분간할 수가 없고, 글을 읽으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글자 한 자가 두 자 되고 두 자 가 한 자가 되며, 대학을 읽노라 하는 것이 맹자—경양혜왕 도 쑥 나오고 맹자를 읽노라고 하는 것이「관관저구 재하지 주로다」하고 시전에 것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이게 웬 일이야?』

하고 몽룡은 마음을 진정하려 하나 풍랑 일어나는 바다 모 양으로 가슴 속은 설레고 눈에 보이는 것이 오직 그네를 늘 어 오르락 내리락하는 춘향의 모양뿐이었다.

사랑 편집

몽룡은 안절부절을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이 책 저 책 공연히 책장만 벌꺽벌꺽 넘기며 논어에서 한 대문 맹자 에서 한 대문, 주역에서 한 대문, 이 모양으로 정신없이 읽 어 그래도 상방에 들릴이만큼 글 소리를 끊이지 아니하니, 부사는 아들이 쉬지 않고 글 읽는 것이 맘에 흡족하여 웃목 에 앉았는 낭청더러,

『여보 낭청, 어린것이 기특하지 않소? 저렇게 불철주야하 고 글을 읽으니 저도 적어도 내 걸음은 하겠지?』

낭청은 오늘 부사를 따라 조종 산성에 놀이를 나갔던 까닭 에 늙고 병약한 몸이라 식곤증이 나서 졸고 앉았다가 부사 의 소리에 번쩍 깨며 그러나 부사의 말은 다 듣지 못하였으 므로,

『내가 늙었지마는 걸음이야 사또를 못 따라가겠소? 그만 것을 그리 기특하다고 할 것도 없지요.』

하고 생 딴전을 친다.

부사는 어이가 없어,

『누가 낭청더러 기특하다오? 우리 몽룡이가 기특하단 말 이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낭청은 송구하여 바로 앉으며 눈을 크게 뜨고,

『예, 자제 말씀이시오? 자제야 말씀하실 것도 없지요.』

부사는 맘에 기뻐서,

『재주가 그만하여 공부를 그만치하여 소년 등과는 염려없 을까 보오.』

낭청은 과연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였다는 듯이 몸을 뒤로 잦히고 어성을 높이며,

『소년 등과하다 뿐이요? 자제로 말하오면 이마와 코가 좋 지요. 그렇게 나고야 소년 등과하고 청백리 되고 명재상 안 되는 법이 없지요.』

하고 칭찬하는 말에 부사는 더할 수 없이 맘이 흡족하여 반쯤 몸을 일으켜 비스듬히 안석에 기대어 앉으며,

『허, 낭청 과연 지인지감이 있는걸—상도 볼 줄 아는구 려.』

『마의상서(麻衣相誓) 권이나 보았지요.』

하고 낭청은 겸양한다.

『여바라!』

하고 부사는 통인을 불러,

『술 한 상 차려 올려라.』

하고 분부를 내리더니,

『여보, 식후에 술을 먹는것이 좋지 않지요?』

하고 낭청에게 묻는다.

『모르는 사람은 식후에 먹는 술이 좋지 않다고 하지요마 는 아는 사람은 식후 술이 좋다고 하지요. 식후 술은 식독 을 친다고 하지요.』

하고 낭청은 나오려던 술이 도로 들어갈 것이 무서워서 식 후 술이 좋은 것을 말한즉 부사는 의아하는 듯이,

『여보, 식독이라 하니 밥에 무슨 독이 있단 말이요?』

『밥에 독이 있지요. 더구나 준민 공혈하여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밥에는 무서운 독이 있다고 하지요.』

부사 적이 불쾌한 빛을 봉이며,

『그렇기로 내 밥에야 독일 있을 리가 있소?』

하고 낭청을 노려본다.

낭청은 시치미 뚝 떼고 몇 개 안되는 아랫수염을 쓰다듬어 가며,

『사또께서 잡수시는 진지에도 과히 독일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이 말에 부사 화를 내며,

『여보, 그게 무슨 말이란 말이요? 그러면 내가 준민 고혈 하는 탐관 오리란 말이요. 어허, 고이한 말을 다 듣겠군.』

하고 고개를 돌린다.

『사또께서 탐관 오리까지야 되겠소마는 저번 통진에 두섬 지기와 파주 논 석섬지기 사신 것은 잘못이지요. 그 돈이 어디서 난지는 모르되 백성들이 알 양이면 좋게 생각 할 리 는 없지요.』

낭청의 말에 부사가 맘이 홱 풀려 껄껄 웃으며,

『어, 과연 낭청의 말이 옳소. 내 생일에 선물 받은 것으로 그것을 샀소마는 낭청의 말을 들으니 어심에 부끄럽소. 내 곧 그것을 팔아다가 곤고에 붙이려오.』

하고 심히 흡족하여,

『여바라, 술 올려라.』

하고 술을 재촉한다.

낭청도 하마터면 못 얻어 먹을 뻔하다가 술을 먹게 된 것 이 기쁘지마는 그 빛은 보이지 아니하고 더우기 충성을 보 이노라고,

『주마가편이란 말일 있지 아니하오니까.』

『어 그렇지요.』

『사또께서 목민지관이 되시었으니 날마다 세 번 살피시어 할 것이요, 또 자제도 더욱 몸을 삼가고 공부를 힘쓰도록 매양 훈계를 하시어야 하지요.』

『어 그렇지요. 과연 낭청의 말이 절절 탄목할 만하오.』

하고 부사는 누웠다 일어나며,

『여바라!』

하고 통인을 불러 문갑 속에서 초 두 자루를 내어 통인에 게 주며,

『너 이것 갖다가 책방 도련님께 드리고 오늘 밤 이 초 두 자루가 다 닳도록 글을 읽으시되 글 소리가 상방에 들리도 록 읽으시라고 하여라.』

『여이.』

하고 통인이 나간 뒤에 부사는 다시 베개에 누우며,

『여보, 몽룡이도 벌써 열 여섯 살이나 되었느니 이제는 장가를 들일 생각도 하여야 안하겠소?』

『그도 그러하옵지요마는 사나이가 색을 알게 되면 공부는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과연 낭청 말이 옳소. 나도 곧잘 공부를 하다가 열일곱 살에 처음 기생 오입맛을 보고는 그만 미치어서 공부도 다 덮어 놓고 선친께서 잠만 드시면 살짝 빠지어 나가선 기생 집에서 밤을 새우고 들어오니 무슨 공부할 정신이 있었겠 소? 허허허, 그래서 과거가 늦었지요. 나도 재주가 남만하고 문벌이 남만하여 그렇지만 아니하였더면 소년 등과하여 벌 써 벼슬이 삼공에는 못 미치더라도 판서깨는 하였을 것을 지금 망륙지년에 겨우 일개 부사로 있으니 가탄이지요.』

하고 부사는 후회하는 빛을 보인다.

낭청도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다 팔자지요. 사또는 기생 오입이나 하다가 과거가 늦으 시었거니와 나는 기생은 커녕 색주가한테 술 한 잔 사먹지 못하고도 칠십을 바라보아 머리가 허연 것이 사또를 따라다 니며 책방 웃목에서 종이노나 꼬고 있으니 내 신세가 더 딱 하지요.』

하고 휘유 한숨을 진다.

술상이 들어온다.

『압다 낭청 술이나 자시오. 우리네는 인제 늙었으니 아이 들 자라나는 것이나 낙으로 삼지요.』

낭청은 술을 받아 쭉 들이키고 웃수염에 묻은 것까지 쪽쪽 빨아 들인 뒤에,

『사또는 좋은 자제나 두시었으니 낙도 되시려니와, 나같 이 아들놈은 나는 대로 난봉이요, 손자놈 하나도 남만 못한 병신을 둔 사람이야 낙이 무슨 낙이오니까.』

『하기는 나도 저만 나이 적에 기생 오입도 하였지마는 몽 룡이야 설마 그렇겠소?』

하고 혼자 웃는다.

낭청은 그렇다는 뜻인지 안 그렇다는 뜻인지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허기야 자제야 설마 그러하오리까.』

하고 지금까지 점잔빼던 태도는 다 없어지고 뼈만 남은 두 어깨가 축 처진다.

몽룡은 하도 글을 읽기는 싫고 춘향의 모양만 눈에 알른거 려 읽던 책 위에다가 아까 광한루에서 받은 춘향의 글을 펴 놓고 보고 또 보고 외우고 또 외우고, 그래도 시원치 아니 하여 마침내 종이를 내어놓고 춘향의 글씨를 그리기를 시작 하여 마지막 성 춘향이라는 춘자를 그리노라고 열이 났을 때에 방자가,

『도련님! 큰일났소!』

하고 창밖에서 부른다.

『오냐, 큰일이 무슨 큰일이냐. 파루 소리가 났느냐, 상방 에 불을 물렸느냐?』

하고 몽룡이 창을 여니 방자는 초 두 자루를 내어밀면서 퉁명스럽게,

『파루가 다 무엇이요? 아직 초경도 안 되었소. 상방에 불 을 물리기는 커녕 사또께서는 이 초 두 자루가 다 닳도록 도련님 글 읽으시는 소리를 들으시고야 불을 물리시거나 말 거나 하신다오.』

몽룡은 초를 받아 방바닥에 홱 내던지며,

『이놈아 누가 널더러 이것 가지고 오라든? 늙은이가 참견 도 퍽도 하네.』

하고 화를 낸다.

『압다, 그렇게 화를 내실 것이 무엇이요?』

하고 방자가 빈정거린다.

『어찌해 화가 안 난단 말이냐. 이 초 두 자루를 다 태이 려면 노루 꼬리만한 여름 밤을 다 새지 않겠느냐.』

고 고개를 숙인다. 그것을 보고 방자는 혼잣말 모양으로,

『멀었소.』

몽룡이 고개를 번쩍 들며,

『무엇이 멀어?』

『도련님 아직 기생 오입하기 멀었단 말이요.』

『왜?』

『그렇게 서서 똥누게 꼿꼿해 가지고 시하에 계신 미장가 전 도련님이 기생 오입을 어찌한단 말이요?』

하고 방자는 돌아서면서 조롱하는 듯이 픽 웃는다.

방자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과연 그렇다. 아버지를 속이기 전에는 춘향이 집에 갈 도리가 없을 것이다.

『얘, 그러면 어찌하면 좋으냐—좀 가르치어 다오.』

하고 몽룡은 몸을 문지방에 기대고 방자를 가까이 올라고 손짓을 한다.

방자는 짐짓 못 들은 체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내일은 비가 오겠는걸.』

하고 딴전을 친다.

몽룡은 좀 소리를 높여,

『여바라!』

하고 부른즉 방자는 껑충 뛰며

『여이.』

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놈아, 왜 그리 소리를 질러? 이리 오너라—눈치 없는 놈 같으니.』

방자 가까이 가며,

『버릇이 되어서, 여바라 소리만 들으면 그렇게 큰 소리가 저절로 나가는구려.』

『얘, 어찌하면 좋으냐?』

하고 몽룡이 탁탁이 묻는다.

『그것 힘 안 드는 일이요. 도련님께서 사또 분부를 반만 치라도 들으실 생각이 있으시면 그 초 두 개를 한꺼번에 켜 놓고 글을 읽으시어도 좋고 그렇지 않고 사또 분부는 잠깐 집어치우고 어서 춘향이 집에만 가고 싶으시거든 사또께서 초저녁 잠 드시기를 기다려서 그 초 두 자루를 소매에 넣고 춘향이 집에 가시어서 춘향의 방에다 턱 켜 놓고 밤이 새도 록 노시면 안 좋소. 내일 아침에 다 닳은 초 밑둥 둘만 가 지고 들어가서 사또 보시게 하면 그만 아니요?』

방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나 자식된 도리에 어버이 를 속이는것이 죄스러워,

『얘, 부모를 속이는 것이 죄가 안 될까?』

『죄다뿐이겠소?』

『그러면 네가 날더러 불효의 죄를 지으란 말이로구나.』

『그러길래 소인이 아뢰었지요—아예 광한루에 나가시지도 말고 춘향을 보실 생각도 마시라고.』

『하지마는 춘향을 안 보고는 못 배기겠구나.』

『그러시거든 오늘 밤에는 저 초 두 자루가 다 닳도록 공 부를 하시어서 내일 하실 효도까지 오늘 밤에 다 해 놓으시 고 내일 밤에 춘향을 찾아가시구려.』

몽룡이 이윽히 생각하여 보더니,

『얘, 그럴게 아니다. 어떻게 내일까지 참는단 말이냐. 노 을 밤에는 부명을 거역하고라도 춘향을 찾아가고 내일 네 말대로 이틀 효도를 한꺼번에 해버리련다.』

방자 킥 웃으며,

『그것도 좋소. 도련님같이 글공부를 잘하시면 그런 묘책 도 나나 보오.』

몽룡은 그렇게 결심을 하여 놓고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두어 대문 읽다가,

『여바라!』

『여이.』

『상방에 불 물렸나 보아라.』

『초저녁에 불은 무슨 불을 물려요?』

몽룡은 서전을 펴놓고 또 두어 대문 읽다가,

『여바라!』

『여이.』

『얘, 너 상방에 가서 사또 주무시나 엿보고 오너라.』

방자 상방에 갔다 오더니,

『사또께서 낭청 나리하고 약주 잡수십디다.』

몽룡은 이번에는 시전을 펴놓고 또 두어 장 읽다가,

『여바라.』

『여이.』

『상방에 가서 사또 주무시나 보아라.』

『금시 이야기하시던 어른이 금시에 어떻게 주무시오?』

하고 방자 역정을 낸다.

『여바라.』

『여이.』

『어떻게 사또를 주무시게 할 수가 없느냐?』

『낭청 나리 때문에 좀체로 못 주무시겠읍디다. 사또게서 잠이 드실 만하면 이야기를 꺼내고 또 잠이 드실 만하면 이 야기를 꺼내는 모양이니 아마 파루 치기 전에는 주무실까 싶지 아니합니다.』

『여바라.』

『여이.』

『얘, 파루 치는 놈을 술을 한잔 먹이고 지금 곧 치라고 하려무나—얘 내가 마음이 졸여서 감수하겠구나.』

방자 어이없어 껄껄 웃으며,

『내 어디 사방에 가 보고 오리다. 약주를 잡수시었으니 노인들이라 금시에 곯아 떨어지었는지도 모르지요.』

하고 사뿐사뿐 동헌으로 간다.

이윽고 방자 돌아오더니,

『되었소 되었소.』

하고 소리를 지른다.

도련님 좋아라고,

『주무시더냐?』

『곯아 떨어지었읍니다. 사또께서는 코를 고시고 낭청나리 는 잠꼬대를 하시니 이 일이 안 되고 무엇이 되었소.』

하고 떠든다.

『이놈아, 떠들지 말아라. 모처럼 곤하게 드신 잠 깨실라.

늙은이들이 잠귀가 밝아서 자면서도 듣나니라.』

『어림도 없소. 묶어가도 모르겠읍디다. 자! 가시려거든 어 서어서 나서시오. 다른 사람 자는 것을 보니 내가 졸려서 못 견디겠소.』

몽룡은 남편 잠든 새에 도망하는 여편네 모양으로 소리도 안 나게, 그러고도 빠르게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나선다.

『자! 가자! 문소리 내지말고 살그머니 나가자.』

삼문 밖에 나서서 방자는 사초롱에 불 켜 들고 앞서고 몽 룡은 뒤를 따라 나가니 뒤에서 무엇이 따라와서 뒷덜미를 짚는 듯하여서 몽룡은 공연히 발이 이리 놓이고 저리 놓이 어 두어 번이나 방자의 신 뒤축을 밟는다. 방자 웃고 고개 를 돌리며,

『도련님 웬 일이요. 풍이 동하시었소! 왜 발이 제 길을 못 찾소?』

『얘, 상방에 들릴라.』

『상방은 왜, 상방에 발이 달려서 따라옵디까. 상방은 벌써 여기서 십리나 되오.』

그제야 몽룡이 마음을 놓고 걸음을 헌거로이 걸으며,

『얘, 너도 아버지 있느냐?』

『소인도 아비가 있길래 낫겠지요마는, 아비가 퍽 성미가 급했든지 소인이 뱃속에 있을 때에 벌써 소인의 아비는 땅 속으로 들어갔다 하오.』

『그러면 네가 유복자로다. 잘 되었다. 나도 유복자나 되었 더면 좋겠다.』

초생달은 벌써 넘어간지 오래고 천지는 깜깜한데 수없는 별만 졸리는 듯이 깜박깜박하고 부중 민가에서도 거의다 불 을 끄고 여기저기 한두 집 등잔불이 반짝반짝하는 것은 앓 는 사람이나 있는 집인가. 오래 그리워하던 사람이 만나서 밤 깊는 줄도 모르고 끝없는 정담이나 하는 집인가. 또는 일이 뜻같이 아니 되어 밝는 아침에는 서로 동서로 갈릴 사 람들이 아마 이별의 회포를 이기지 못하여 서로 붙들고 서 로 맥맥히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집인가. 이러한 생각을 할 때에 비감한 생각이 나서,

『얘.』

하고 방자를 불렀다.

『왜 그러시오?』

『웬 일인지 내 마음이 바감하여지는구나.』

너무 기쁘면 슬퍼도 집니다. 기쁨과 설움은 쌍동이라 하고 웃음과 눈물은 오누이라 하오.

『과연 그런가보다. 사람이란 나면 늙고, 늙으면 죽되 늙으 면 다시 젊을 수가 없고,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 날 수 가 없구나. 인생 백년이 하루살이 같지 아니하냐. 만나면 떠나 고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인생 백년에 기쁠 날이 없는 모양 이다.』

『도련님, 왜 그렇게 흉한 소리를 하시오? 동방 화촉야에 절대 가인을 만나 백년 해로하시기를 언약하니 인생이 여기 서 더 기쁜 일이 없거든 왜 그런 슬픈 생각을 하시오. 나 같으면 있다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오겠소. 슬픈 것 괴로운 것 모든 좋지 못한 것은 이 팔자 사나운 방자놈이 도매로 다 맡아 울 것이니 도련님은 기쁜 생각만 하고 거드 럭거리고 잘 노시오.』

하고 방자 얼씬얼씬 춤을 추며 노랫가락으로,

『이날이 어떤 날이냐. 도련님께서 동방 화촉야에 고운 님 만나시는 날이로구나. 인생이 몇 날이리. 초로 같은 인생일 진대 풀잎에 이슬 방울이 지기 전에 마음대로 놀것이 아니 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얘, 남 볼라.』

『보면 어떠오?』

『고맙다.』

『무엇이 고마와요?』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단 말이다.』

『고마운 것 있소? 나도 내 멋에 그렇지요.』

『거진 다 왔니?』

『이 천변 끼고 내려가서 배다리만 건너면 고대요.』

천변을 끼고 내려가서 배다리를 건너 늙은 향나무를 지나 니 어디서 개가 콩콩 짖는다.

방자 몽룡을 돌아보며,

『춘향이 집 청삽살이요.』

하고 웃는다.

『선방(仙尨)이로구나. 개도 나오는 줄을 아나 보구나.』

『개야 무얼 알겠소? 아무나 와도 짖지.』

마침내 춘향 문전에 다다라 방자가 우뚝 섰다. 안은 고요 하고 불빛조차 없다. 등불 빛에 「국태」라, 「민안」이라 하고 대문에 써 붙인 입춘이 보이고,

「계마문전류(繫馬門前柳)」

라고 대문 기둥에 써 붙인 것도 보인다. 과연 문전에는 애 버들 한 그루가 섰다.

몽룡은 마음에 가득하여,

『왜 섰느냐?』

하고 얼빠진 듯이 섰는 방자더러 묻는다.

『그러면 앉아요?』

하고 방자 퉁명을 부린다.

『어떻게 들어가게 해주어야지.』

『들어갈 줄도 모르시오? 집에 들어갈 때에는 대문으로 들 어가는 법이니 대문으로 들어가시구려.』

몽룡이 손수 대문을 밀어 보니 꼭 닫혀서 삐걱 소리도 아 니 난다.

『얘, 대문이 걸렸구나.』

『지금 한밤중에 대문 안 걸린 집이 객사 동대청 말고야 어디 있어요?』

『그러면 어찌하면 좋으냐?』

『대문을 열라시거나 그럴 뱃심도 없으시거든 저 담을 넘 어가시구려. 넘어가신다면 나도 거들어는 드리리다.』

『얘, 담이야 어떻게 넘느냐. 네가 문을 좀 열게 하려무 나.』

이렇게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에 개는 더욱 콩콩콩콩 짖는다.

『문까지 날더러 열어 달라시니 있다가는 춘향이 옷까지 날더러 벗겨 달라겠구려.』

방자의 말은 차차 버릇이 없어진다.

『얘, 춘향의 옷을랑 내가 벗길께 너는 문이나 열어다오.

애먹이지 말고.』

방자가 등을 번쩍 높이 들더니 솥뚜껑 같은 발을 들어 대 문을 쾅쾅 차며,

『문 열어라! 춘향아 문 열어라!』

하고 모가지에 시퍼런 핏줄이 솟도록 소리를 지르니 대문 은 부서질 듯이 소리를 내고 동넷집 개들까지 일시에 짖는다.

몽룡이 민망하여 눈살을 찌푸리며,

『이놈아, 그다지 야단을 할 것이야 무엇이냐. 가만가만 부 를 게지.』

『가만가만히 부르면 잠든 사람이 듣소.』

하고 또 한 번 아까보다도 더 힘있게 대문을 차며,

『춘향아, 문 열어라!』

하고 소리를 지른다.

고요하던 집안에 인적이 나고 불이 켜지더니,

『이 개!』

하고 짖는 개를 꾸짖으며 신 끄는 소리가 나고 중문 열리 는 소리가 나고 대문간으로 오더니 대문 빗장을 손으로 잡 기만 하고 열지는 아니하면서,

『거 누구야? 누가 이 아닌 밤중에 호기스럽게 문 열어라 하고 남의 집을 헐려 들어?』

분명 월매의 소린 줄은 방자는 안다.

『쉬! 어서 문 열어라.』

『쉬라는 거는 누군데 누구더러 쉬래!』

방자는 웃음을 참으면서, 또 한 번,

『쉬!』

『또 쉬야! 쉬라니! 어디 구렁이가 나왔단 말이냐. 어린 애 기 오좀을 누인단 말이냐. 누구라고 말은 아니하고 쉬가 무 슨 쉬야?』

하고 가장 분이나 난 듯이 떨걱하며 빗장을 열더니 방자가 섰는 것을 보고,

『이녀석 네드냐—못된 녀석 같으니. 내 집에 왔거든 아주 머니 문 열어 줍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문 열어라는 무엇이 며 쉬는 다 무엇이냐.』

『쉬! 나보다 높으신 양반이 오시었소.』

월매 놀라는 듯이 소리를 낮추며,

『너보다 높으신 양반이라니 누구시란 말이냐?』

『우리 도야지놈하고 애꾸 눈이 마누라 밖에야 조선 팔도 에 두 발 달린 사람 치고 나보다 안 높은 사람이 어디 있겠 소마는 정말 대단히 높으신 양반이 오시었소—책방 도련님 행차시오!』

책방 도련님이란 말에 월매 깜짝 놀라는 듯이 고개를 내밀 어 보니 아무도 없다.

『이녀석 거짓말이다. 어디 계시냐?』

방자도 뒤를 돌아보니 계셔야만 할 도련님이 간 곳이 없다.

도련님이 간 곳이 없음을 보고 방자도 놀라는 듯이 눈이 둥그레지며,

『문을 열라면 열 게지 공연히 늙은이가 물색 없이 불공한 입을 놀려서 도련님께서 노여시어 돌아가시었소.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요. 나는 모르우. 나는 모르우.』

하며 어슬렁어슬렁 돌아나간다.

월매 바짓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뛰어나오며,

『얘, 방자야,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늙은 것이 물색 없어선 그랬으니 네가 어서 따라가서 모시고 오너라. 애곡 내 일이야. 들어오는 복을 내 주둥아리로 갑슬러 버렸구 나.』

하고 쩔쩔매고 돌아갈 때에 몽룡이 담모퉁이에서 썩 나서 며,

『낼세, 아니 가고 여기 있네.』

월매 잠깐 몽룡에게 허리를 굽히고 어두운 그늘로 피하여 서며,

『에그 이를 어찌하나. 치마도 안 입었는데—도련님께서 행 차하시는 줄을 미리 분부나 계시어 알았더라면 이럴 리는 없을 것을. 애고 이를 어찌하나.』

몽룡이 대문 앞으로 가까이 오며,

『늙은이가 아무러기로 상관 있나. 내가 도리어 미안하 이.』

월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아가 상단아—아니다 아가! 자느냐. 일어나거라. 책방 도 련님이 너를 보시려고 행차 하시었다. 상단아? 상단아! 일어 나 불 피어라—아니다 불 켜고 불 피어라. 애고, 이 일을 어 찌하나. 어찌하면 도련님도 오신다는 선문도 없이 이렇게 오신담—자 도련님 어서 들어오시오.—이리로 들어오시오. 아 차 내가 아직도 치마를 아니 입고 발광을 하네.』

하고 월매는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춘향이 중문까지 나와 몽룡을 맞으며,

『이리 들어오십시오.』

하고 고개를 숙일 때에 방자 곁에 있다가 초롱을 들어 춘 향의 얼굴을 비추고 한 번은 몽룡의 얼굴을 비춘다.

몽룡은 춘향의 수그린 얼굴을 초롱불에 번뜻 보고 공연히 낯을 붉히면서,

『내가 오늘 밤에 찾아올 줄 몰랐더냐?』

하고 춘향에게 말을 붙인다.

춘향이 고개를 잠깐 들어 몽룡을 보며 수삽은 태도로,

『오실 줄은 알았사오나 밤이 깊도록 아니 오시기로 내일 이나 오시나 하였읍니다.』

하고 또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십시오.』

한다.

몽룡은 어서어서 말 한 마디라도 더 붙이고 싶고 춘향의 말소리를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서,

『네가 앞서라.』

『도련님 먼저 들어가시오.』

『매사는 간주인이라니 주인이 앞서라.』

『매사는 간주인이라니 주인하라는 대로 합시오.』

방자 옆으로 돌아서며,

『이러다가는 중문간에서 밤을 새우시겠소.』

하고 웃는다.

마침내 몽룡이 앞서고 춘향이 뒤를 다라 화계 앞을 지나 향나무 밑을 지나 「부용당(芙蓉堂)」이라고 액자를 붙인 춘 향의 방 마루에 올랐다.

몽룡이 잠깐 마루에 섰는 동안에 춘향은 먼저 방에 들어가 자리를 바르고,

『누추하오나 이리 들어옵시오.』

하고 몽룡을 청하여 들인다.

몽룡은 꿈인가 의심하여 춘향이 시키는 대로 방에 들어가 춘향이 시키는 대로 아랫목에 앉고, 춘향도 금시에 밖으로 나가려는 듯이, 마치 어른한테 걱정 들으러 들어온 어린 아 이 모양으로 문 밑에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그렇게 앉은 모양도 좋다.

몽룡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할는지 몰라 공연히 무릎만 들었 다 놓았다 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왜 거기 그렇게 앉았느냐?』

춘향이 잠깐 눈을 들어 몽룡을 바라보며,

『여기도 좋습니다.』

하고는 또 여전히 고개를 숙인다. 몽룡은 또 한참이나 무 릎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방안도 휘휘 둘러 살피다가 또 한 번 기운을 내어,

『이리 좀 가까이 와 앉으려무나!』

춘향은 또 잠깐 눈을 들어 몽룡을 보며,

『여기도 좋습니다.』

방자 문 밖에서 이 광경을 엿보다가 가깝한 듯이 혼잣말 로,

『허, 모두 타락송아지들이로구나.』

하고 어디로 가버린다.

아무리하여도 춘향과 말이 어울리지 아니하여 몽룡은 겁겁 증이 났다. 그러나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또 한 번 기운을 내어,

『나이 몇 살이냐?』

하고 물었다.

『열 여섯 살이요.』

『허, 나와 동갑이로구나. 생일은 언제냐?』

『삼월 초하룻날이요.』

『참 신통도 하다. 생일까지 같구나.』

『어느 시에 났느냐?』

『유시요.』

『네가 유시에 났으면 나보다 한나절 떨어지어 났구나, 나 는 인시다.—참 신통도 하다. 시간까지 같았더라면 너와 나와 사주 동갑될 뻔하였구나.』

그리고는 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몽룡은 사벽에 붙인 그림도 보고, 장지에 바른 글씨도 보 고, 세간도 보고, 문갑 위에 쌓인 책과 문방 제구도 보고, 웃목 구석에 세운 거문고도 보고, 장판도 보고, 깔고 앉은 보료도 만지어 보고, 벽에 걸린 춘향의 치맛자락도 만지어 보고, 그리고는 또 춘향의 소곳하고 앉았는 양을 보고, 이리 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를 하여도 말문이 열리지를 아니하 여 겁겁증이 나서 할 때에 알맞추 월매가 상단이에게 술상 을 들리고 나온다.

월매 술상을 앞에 놓고 웃어 가며,

『도련님, 이렇게 내 집에 오시기 참으로 의외요. 안주는 없으나 약주나 한 잔 잡수시고 가시오.』

하고 춘향을 보며,

『아가, 도련님이 너 글 잘한다고 소문 들으시고 널 보시 러 이렇게 찾아 오시었는데 왜 그리고 앉았느냐. 에그, 이를 어찌해. 담배도 아직 안 붙이어 드렸구나.』

하고는 다시 몽룡을 향하여,

『도련님 노여 마시오. 이 애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또 집 구석에서 열인 못하고 자라나서 이렇게 수줍어 그래요.』

하고는 다시 춘향을 향하여,

『아가, 도련님 약주나 따라 드리려무나.』

하고 술주전자를 춘향의 앞으로 밀어 놓는다.

춘향이 마지 못하여 돌아앉으며 주전자를 들어 잔에 술을 가득히 부어 두 손으로 몽룡을 주며,

『약주 잡수세요.』

하고 낯을 붉힌다.

몽룡이 춘향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 마시지 아니하고 상 위 에 놓으며,

『술을 먹기 전에 내가 한 마디 할 말이 있네, 그 말을 들 어 주면 내가 이 술을 먹겠지만 그 말을 안 들어 주면 이 술을 먹을 수가 없네.』

월매는 웬 영문을 모르고 잠깐 놀라는 듯이,

『무슨 말씀이신데 이렇게 허두가 대단하시오?』

하고는 다시 상긋 웃는다.

몽룡은 하도 가슴이 설레어 잘 두서도 차리지 못하고,

『다른 말이 아니라 춘향을 나를 주게.』

월매 깔깔 웃으며,

『에그 도련님도 우스운 말씀도 하시오. 춘향을 내가 약낭 에 넣어 두었단 말이요, 벽장에 감추어 두었단 말이요? 여 기 앉았는 춘향을 누구더러 달라시오?』

『아닐세. 그런 것이 아니라 춘향과 나와 인연을 맺어 백 년 해로하게 하여 달란 말일세. 내가 춘향을 보니 나와 천 정 배필이니, 안 보았으면 모르거니와 이렇게 보고는 놓고 갈 수 없네. 춘향을 내게 허락하소!』

월매 문득 시무룩하여지며,

『도련님은 그런 말씀을랑 마시오—그것은 할 수 없소.』

하고 몽룡의 청을 뚝 잡아뗀다.

몽룡이 언성을 높이며,

『어찌하여 못한단 말인가?』

월매 길게 한숨지며,

『말씀하지요—못할 연유를 말씀하지요. 이 애가 비록 월매 의 딸로 태어났으나 근본은 양반이요. 회동 성참판 염감이 보의로 남원에 좌정하여 나를 수청을 들이시었다가 몇 달만 에 이조 참판으로 승차하여 내직으로 들어가실 적에 날더러 가자고 하시는 것을 노모가 계신고로 못 가고, 이별한 그달 부터 잉태하여 이 애를 낳았는데 그 연유로 영감께 고목하 였더니, 젖줄 떼는 대로 이 애를 데려가마 하시더니 운수 불길하여 영감께서 그해 겨울에 별세하시니 하릴없이 이 애 를 내가 기를제 금이야 옥이야 중문 밖에도 안 내놓고 꼭 글공부만 시켰지요. 이 애도 근본이 양반의 씨라 재주로나 행실로나 어느 대갓댁 아가씨한테 밀리지 아니하지요. 이렇 게 힘써 애써 고이고이 기른 딸을 양반 집에 주자하니 내 지체가 부족하고 상사람을 주자 하니 내 딸이 아깝구려. 그 렇다고 남의 첩으로나 주기는 죽어도 싫고, 이리하여 상하 사 불급으로 혼기만 늦어가니 낸들 아니 걱정이요? 도련님 은 명문의 귀공자로 춘절 나비 꽃 본 듯이 일시는 이 애를 사랑하시나 사또께서 내직으로 승차시와 올라가시는 날이면 도련님도 따라가실 것이니 그때에 이 애를 생각이나 하시겠 소? 그리되면 옥 같은 내 딸은 생과부가 되어 송죽 같은 그 절개로 개가할 리 바이 없고 일생에 독수공방 눈물로만 지 낼 터이니 그 아니 딱하고 못할 일이요? 그러니 도련님은 그런 말씀 아예 마시고 약주나 잡수시고 놀다가는 가시 오.』

하고 칼로 베는 듯이 잡아떼인다.

월매의 말은 도리어 몽룡의 마음을 끌었다.

『알아들었네. 그러면 이리하게. 춘향도 미혼전 처녀요, 나 도 미장가전 총각이니 우리 둘이 혼인하세. 부모 허락 안 계시니 육례는 못 이루거니와 대장부 한 번 말하면 변할 리 만무하니 내 맹세함세—평생에 춘향이를 백년 해로할 아내 삼기로 맹세함세. 불충 불효하기 전에야 하늘이 무너진들 그 맹세 저바릴 내 아니로세.』

몽룡의 말에 월매 솔깃하여 춘향을 보며,

『아가, 도련님 말씀 너도 들었으니 네 뜻에는 어떠하 냐?』

하고 묻는다.

춘향은 더욱 고개를 숙일 뿐이요, 말이 없다.

월매 싱그레 웃으며,

『말 없으면 좋다는 뜻으로 본다.』

하고 몽룡을 보며,

『도련님께서 진실로 그러시면 나도 허락하지요.』

하고 잠깐 쉬어서,

『그렇지만 육례도 못 이루니 혼서예장 겸 사주단자 겸 필 적이나 한 장 써 주시오.』

하고 지필을 끌어당기어 몽룡의 앞에 놓는다.

몽룡은 서슴치 않고 붓을 들어 백릉운화간지에 글씨도 뚜 렷하게,

『천장지구(天長地久)
해고석란(瀣枯石爛)
천지신명(天地神明)
공증차맹(共證此盟)
상지 삼년 오월 오일(上之三年五月五日)』

이라고 썼다.

월매 그 종이를 들어 춘향을 주며,

『아가, 도련님 쓰신 것 보아라. 내야 진서를 아느냐.』

춘향은 몽룡이가 쓴 때에 벌써 보았다.

『에그, 어머니도.』

하고 종이를 손으로 밀친다.

월매는 그 종이를 꼭꼭 접어 허리춤에 넣고,

『자 도련님, 인제는 내 사위요, 약주나 잡수오.』

하고 춘향을 향하여,

『아가, 이 술은 식었으니 딴 잔에 부어라.』

춘향이가 다른 잔에 술을 부어 두 손으로 몽령을 권하니 몽룡이 그 잔 받아 들고 월매를 권하며,

『내가 먼저 받을 수 있소? 장모 먼저 받으오.』

월매 선뜻 그 잔을 받으며,

『새 사위가 권하는 잔을 안 받을 수가 있나. 그러면 내가 먼저 먹소.』

하고 무심코 한 모금을 마시더니 잔을 입에서 떼어 손에 들고 비창한 빛을 보이며 치맛고름으로 눈물을 씻는다.

몽룡이 놀래어,

『장모, 웬 일인가?』

월매 술을 엎지를까 보아 잔을 상 위에 놓으며,

『이런 좋은 날을 당하니 돌아가신 영감 생각이 나는구려.

영감이 생존하시어서 이날을 보시었더면 오죽 기뻐하실까.

하고 연해 눈물을 씻는다.』

월매가 우는 것을 보고 춘향도 일생에 보지도 못한 아버지 를 생각하고 고개를 돌려 눈물을 씻는다.

몽룡은 말없이 두 사람이 우는 양을 보다가,

『여보, 장모 울지 마오. 장인 영감 생각하고 슬퍼하는 것 도 당연하지마는 새 사위 나를 보아 우지마오. 가는 자는 물과 같으니 아니 가든 못할 것이요, 가고 아니 오더라도 슬퍼하기 부질없소. 자 술이나 드오.』

월매 눈물을 거두며,

『도련님, 노여 마시오. 기뻐 웃어야 할 때에 눈물을 보이 는 것이 도시 늙은이의 망녕이오.』

하고 상긋 웃으며 놓았던 잔을 들이마시고 손수 주전자를 당기어 잔 가득 부어 몽룡을 권하며,

『옜소. 늙은 장모의 술 한 잔 잡수오.』

몽룡이 잔을 받아 단숨에 쭉 들이키고 춘향더러,

『장모 술은 먹었으니 인제는 네 술 한 잔 먹자. 잔 가득 부어라.』

춘향이 주전자를 들어 잔 가득 부어 두 손으로 받들어 몽 룡을 권한다.

『잡수시오!』

몽룡이 잔을 받으려고도 아니하고,

『아니다. 내가 오늘 너를 만나 백년 가약을 맺고 네 손에 첫번 잔을 받을 때에 무미하게 그냥 마실 수가 있느냐, 권 주가나 하나 불러라.』

몽룡이 권주가를 부르라는 말에 춘향은 들었던 잔을 놓을 수도 없고 내밀었던 팔을 돌이킬 수도 없어 엉거주춤하고 얼굴만 붉히며,

『몰라요.』

한다. 몽룡이 춘향의 뜻 알아차리고,

『내가 널더러 권주가 부르라 하니 혹 너를 기생으로나 여 기고 희롱하는 줄 아나 보다마는, 내가 어찌 평생 배필을 희롱할 리가 있느냐. 영가무도라 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것 은 옛 성인도 가르치신 배라, 후일에 나는 백수 재상이 되 고 네가 정경 부인이 되더라도 노래 한 마디는 부를 것이니 나삐 알지 말고 한 마디 불러라.』

이 말에 춘향이 한 무릎 세우고 단정히 앉아 사양 아니하 고 권주가를 부른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오. 이 술 한잔 잡으시면 만수 무강하오리다. 이 술이 술이 아니라 한무제 승로반에 이슬 받은 것이오니 쓰나 다나 잡으시오. 인간 영 욕 헤아리니 묘창해지일속이라, 술이나 취코 노사이다. 꽃을 꺾어 주를 놓고 무궁무진 잡으시오. 우리 한 번 돌아가면 뉘라 한 잔 먹자 하리. 춘풍에 지는 꽃은 봄이 되면 다시 피되 우리 한 번 백발되면 다시 젊기 어려워라. 백년 신세 는 아침 이슬이요, 일대 부귀는 한바탕 꿈이로다. 아니 취코 무엇하리. 술이나 취코 노사이다.』

몽룡이 다 듣고 나서 한 손으로 무릎 치고 한손으로 잔 받 으며,

『좋다! 노래도 좋거니와 목소리 더욱 좋의. 네가 주는 술 을 쓰나 다나 안 먹을 수 있느냐.』

하고 고개를 번쩍 들고 남아답게 쭉 들이킨다.

몽룡이 손수 잔에 술을 부어 춘향을 주며,

『이것이 합한주니 나만 먹으랴. 너도 한 잔 먹어라.』

『먹을 줄 몰라요. 』

하고 춘향은 하얀 손을 들어 술잔을 막는다.

『술독 먹을 줄 알고 모르고가 있느냐. 물 먹을 줄 알면 술 먹을 줄 아는 게지.』

『그래도 먹을 줄 몰라요.』

월매 곁에서 딱하여,

『아가, 도련님이 주시는 술을 사양도 한두 번이지 어서 받으려무나.』

몽룡이 웃으며,

『아차, 내가 잘못하였다. 부부는 일체라 널더러는 권주가 를 하라고 하고 나는 아니해서 쓰겠느냐. 나도 권주가 하 마.』

하고 부른다—.

『대장부 세상에 나서 하올 일이 무엇이냐. 위로 성주를 도와 국태 민안하고 각급인 좋게 하온 후에 아래로는 덕 있 고 재주 있는 절대 가인 만나 나비와 꽃이 서로 즐기듯, 거 문고 비파 서로 화하듯, 주고 받고 받고 주고 즐겁게 사오 리라. 만일에 유자 생녀하여 효자 충신 문장 열녀 문흐를 빛낼진댄 그 더욱 좋을씨고. 나도 장부로 나서 오늘에 절대 가인 너를 만나 백년 인연 맺었으니 기쁨도 그지없네. 저 님아 이 술 한 잔 받으시라. 이 술이 여남은 술이 아니라 백년 해로 맹세주니 쓰나 다나 받으시라. 취코 놀까 하노 라.』

노래를 마치고 잔을 춘향에게 주니 춘향이 마지못하여 받 아 마신다.

『도련님이 권주가도 잘하서거니와 아가, 너도 술을 곧 잘 먹는구나.』

하고 월매는 맘에 흡족하여 웃는다.

이 모양으로 사오 순배가 돌아가니 워낙 술도 좋은 술이어 니와 몽룡이나 춘향이나 주량이 클 리가 만무하여 모두 낯 에는 홍훈이 돌고 어음에 취태가 보인다.

월매도 늙었는지라 기쁨과 술을 아울러 마시니 반장이나 넘어 취하여 딸 자랑 사위 아양 늙은 잔소리가 끝없이 나온다.

이런 때에는 월매가 눈치를 채고 안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좋으련마는 늙은이가 눈치도 무디어 좀체로 잔소리가 끝날 것 같지 아니한 것을 보고, 몽룡은 춘향더러 술상을 물리라 고 눈짓을 하니 춘향이 알아듣고 방자를 불러 술상을 내어 준다.

그제야 월매도 눈치를 채고,

『늙으면 입에만 힘이 올라서 걱정이야. 도련님 지리해하 시는 눈치도 모르고 잔소리만 하여서 잔뜩 미움만 받았 지.』

하고 일어나며,

『도련님 편히 주무셔오. 아가, 불 더 때래랴?』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가 버린다.

춘향이 월매를 따라 마루 끝까지 나가서,

『어머니 넘어지시리다.』

월매의 신 소리가 멀어질 만한 때에 몽룡은 다리 쭉 뻗고 안석에 기대어 앉으며,

『내 집 늙은이나 남의 집 늙은이나 참견하고 잔소리만 말 았으면 좋을러라.』

춘향은 월매 나가기를 기다렸던 듯이 마루에서 들어오는 길로 장문을 열고 맛좋은 진안초 한 줌을 내서 놓더니 그 중에서 한 잎사귀를 골라내어 꿀물에 훌훌 뿜어서 왜간죽 부산죽에 너흘지게 담아 들고, 청동 화로 재를 살짝 헤치고 빨간 백탄 숯불에 잠깐 데워 불그레한 입술로 한 모금 담박 빨고 치마꼬리로 물뿌리를 싹 씻어 둘러 잡아 몽룡을 주며,

『옜소. 도련님 담배 잡수.』

몽룡이 황송한 듯이 안석에 기대었던 몸을 벌떡 일으켜 두 손으로 받아 퍽퍽 빨면서,

『허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춘향이 몽룡의 곁으로 와 앉으며,

『꿈이어서야 하겠소?』

『아마도 이것이 꿈이로다. 꿈이면 깨지를 말아라!』

이때 방자 먹다 남은 술과 안주 배껏 양껏 다 먹고,

『도련님, 소인 들어갑니다. 춘향 아씨 나 들어가오.』

『오 오늘 애썼다. 안목이나 단단히 살펴 보아라.』

『도련님 대사나 평안히 지내시오.』

하고 충충거리고 나가 버린다.

월매도 가고 방자도 가니 밤은 벌써 깊어 삼경이 지났다.

춘향이 일어나 비를 들어 먼지 안 일이만큼 방을 치우고

「어쩔까나」하는 듯이 웃목에 우두커니 서서 몽룡을 바라 보더니,

『들어가세요?』

하고 묻는다.

『누가?』

『도련님이.』

『내가 어디로 들어가?』

하고 몽룡의 눈이 둥그레지는 것을 보고 춘향이 웃으며,

『그러면 여기서 주무시고 들어가세요?』

하고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몽룡이 웃으며,

『내가 아나? 마누라 처분이지.』

춘향이 보에 싸 얹었던 금침을 내어 활활 펴고, 아랫에는 큰 베개 놓고 그 곁에 조그마한 낡은 베개를 놓고 나서 몽 룡의 곁에 와 서며,

『옷 끄르세요.』

몽룡이 일어나 띠 끄르고 도포 벗으니 춘향이 받아 차곡차 곡 개어 병풍에 걸어 놓고,

『곤하신데 어서 주무세요.』

『너는 안 잘래?』

『먼저 옷 끄르고 누세요. 그러면 나도 자지요.』

몽룡이 여자 앞에서 옷 벗기가 장히 거북하여,

『너 먼저 벗고 누워라.』

『어서 도련님 먼저 벗으세요.』

몽룡이 저고리 고름에 손을 대이다가 그치고,

『아니다. 네가 주인이니 네가 먼저 벗어라.』

춘향이 웃으며,

『주인 말대로 어서 도련님 먼저 벗으세요.』

몽룡이 하릴없이 춘향이 항라는 대로 바지저고리 벗어 놓 고 중의 적삼 바람으로 우두커니 서서,

『자, 인제는 너도 벗어라.』

『내 불 끄고 눕게 어서 들어가 누세요.』

몽룡이 잠깐 어찌할 줄 모르고 두리번거다가 나는 듯이 춘 향의 뒤로 돌아가서 춘향의 겨드랑 밑으로 손을 넣어 저고 리 고름, 치마 고름 활활 끌러 벗긴 후에 듬썩 안아다가 이 불 속에 넣고 한삼 소매를 들어 놋등경에 옥등잔 불을 확 끄고는 더듬더듬 자리 속에 들어갔다.

『꼬끼요. 꼬끼요.』

하고 닭이 운다. 한 홰 울고 두 홰 울고 세 홰 울 때에 일 찍 깨인 파리 소리 나고 동창이 훤하여지며 노고지리 지저 귀는 소리 들린다.

『도련님! 도련님!』

하고 춘향은 곤하게 잠든 몽룡의 귀에 입을 대고 두어마디 부르나 대답이 없으므로 손으로 어깨를 가만가만히 흔들며,

『도련님! 도련님!』

하고 깨운다.

그제야 몽룡이 눈을 번쩍 뜨며 춘향의 손을 잡고,

『왜?』

『어서 일어나세요. 사또 걱정하시지요. 사또 기침하시시 전에 어서 들어가세요.』

하고 춘향이 몽룡의 옷을 끌어다가 몽룡의 곁에 놓는다.

몽룡이 마지못하여 일어나며,

『사또가 무엇이냐. 아버지지.』

하고 춘향의 등을 만지니 춘향은 몽룡의 아버지를 아버지 라고 못 부르는 것이 설은 듯이 한숨을 지며,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좋은가요?』

하고 눈물을 떨군다.

춘향이 비감하여 눈물을 흘림을 보고 몽룡이 한 손으로 눈 물을 씻어 주며,

『왜 울어? 내가 제일이지 아버지가 제일이야?』

하고 위로한다.

춘향이 고개 들어 몽룡을 보며,

『그렇지요. 도련님만 나를 안 버리시면 나는 복 있는 사 람이요. 육례를 못 이루면 어떠며 첩의 첩이라면 어때요. 도 련님댁 종의 종이 되더라도 한이 없지요.』

『그런 생각마라. 누가 널더러 첩이랄 리가 있느냐. 지금은 비록 육례를 못 이루더라도 우리 둘이 맘맞아 백년을 맹약 하였으니 그것이면 그만이지, 그까진 퀴퀴하고 뒤숭숭한 육 례는 다 무엇 말라 죽은 것이냐. 네 뜻만 변치마라, 내 뜻이 야 변할소냐.』

『도련님 뜻이 변하면 변하지 내 뜻이야 변하겠소?』

『네 뜻만 안 변할 양이면 나는 네 집 더부살이 놈의 더부 살이가 되어도 좋다.』

하고 소세하고 옷을 입고 일어나려 할 때에 춘향이 몽룡의 소매를 붙들며,

『잠깐 기다리세요.』

『아나 상단아! 도련님 소세하시었다.』

상단이 자개로 아로새긴 통영 칠반에 짤짤 끓는 미음 한 그릇 강능 석청을 덤뿍 치고 따뜻한 약주 두어 잔 과일 한 접시 놓아 내어온다.

『마시세요.』

하고 춘향이 숟가락 들어 권하니 몽룡이 감지덕지하여,

『너도 먹어라.』

『나는 나중에 먹어요.』

『이것 내가 다 못 먹겠다. 같이 먹자.』

『잡숫다가 남기세요.』

몽룡이 약주 한 잔 먹고 과일 두엇 집어 먹고 미음은 반그 릇쯤 마시곤 일어나며,

『나는 간다. 저녁에 또 오마.』

하고 나갈 적에 춘향이 중문까지 따라 나가며,

『안녕히 가세요—길이나 아시나.』

『길 모를까. 어서 들어가 편히 쉬어라—곤하겠다.』

『안녕히 가세요.』

『파루 치거든 오마.』

몽룡의 발자취 소리 안 들릴 때까지 마루 끝에 우두커니 동천에 해 떠오르는 붉은 구름을 바라보고 섰는 춘향의 토 양은 수심을 띈 듯 부끄러움을 머금은 듯하였다.

이로부터 몽룡은 밤이면 춘향의 집에 와서 놀고, 이야기하 고 자고 새벽이면 춘향이가 정성으로 만들어 주는 잣죽이나 깨죽이나 양즙이나 미음이나 원미나 약주 한 잔 받치어 마 시곤 들어갔다.

날이 갈수록 사랑은 더욱 깊어 가고 피차에 수줍은 생각도 더욱 줄어 드니 친구같이 내외같이 어떤 때에는 이야기 동 무, 어떤 때에는 글 동무 글씨 동무, 또 어떤 때에는 장난 동무 가댁질 동무 또 어떤 떼에는 변변치 아니한 일로 옥신 옥신 말다툼도 하다가 춘향이 울면 몽룡이가 빌고 몽룡이 간다고 일어서면 춘향이가 울고 붙들었다.

『아버지가 아마 내가 밤이면 빠지어 나오는 눈치를 채었 는지 오늘 밤 안으로 이 책 한 권을 외어서 내일 아침에는 아버지 앞에서 따로 외어 바치라는데 이것 큰일 났다.』

하고 밤일 깊도록 글을 읽으면 춘향은 몽룡이 글 외는 정 신 헛갈릴까봐 자는 듯 죽은 듯 그린 듯이 가만히 앉아 책 이나 보고 혹 일어나 나갈 일이 있으면 아기 재우고 일어나 는 어머니처럼 바싹 소리도 안 나게 일어나서 발끝으로만 사뿐사뿐 문도 사르르 가만히 열고 나가고 그러다가 어찌어 찌하여 무슨 소리를 내면 춘향은,

『이를 어찌하나.』

하는 듯이 나무로 깎은 사람 모양으로 우뚝 서서 곁눈으로 몽룡의 눈치를 보아 몽룡이가 여전히 글을 읽으면 그제야 안심한 듯이 휘 숨을 내어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는다.

몽룡이 비록 글 외우기에 잠심한다 하더라도 맘의 절반은 항상 춘향에게 있으니 춘향이가 이렇게 하는 일동 일정을 모를 리가 있으랴. 죄다 알고 있다. 그러다가 이따금 부러 귀찮은 듯이,

『이거 부스럭거려서 어디 글 읽어 먹겠나.』

하고 픽 돌아 앉으며 춘향을 흘겨보면 춘향은 정말로만 여 기고 낯을 붉히며,

『잘못했소.』

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린다.

춘향이가 밖으로 나가 벌리면 몽룡은 정신이 어디로 빠져 달아난 것 같아선 공부도 안 되고 몸이 찌뿌드드해지고 하 품만 난다. 제가 가면 어디를 가랴, 곧 돌아오리라, 돌아오 거든 한 번 놀래 주리라 하고 가만히 병풍 뒤에 들어가 쯔 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춘향도 몽룡이가 자기를 기다릴 줄을 짐작하고 발소리 안 나게 가만가만 들어온다. 와 본즉 몽룡 은 간 곳이 없다. 춘향이 놀라며,

『에그 노해서 가셨나뵈.』

하고 두리번두리번하다가 병풍에 걸린 몽룡의 옷을 보고,

『옷은 여기 있는데.』

하며 이리저리 돌아볼 때에 몽룡이,

『어흥!』

하고 병풍 뒤에서 뛰어 나와 뒤로서 춘향의 눈을 두 손으 로 꽉 가리우면 춘향이 웃으며,

『아이고 깜짝이야. 숨겠거든 옷을 감추고 숨어야지 옷을 두고 숨으면 누가 속소?』

몽룡이 춘향을 놓고 아랫목에 두 손으로 깍지 껴 베개하고 네 활개 쭉 뻗고 나가 자빠지며,

『어이구 공부하기 싫어! 공자 맹자가 내 큰 원수요, 우리 아버지가 내 적은 원수다.』

『공부가 하기 싫으면 무엇을 하고 싶소—바느질이나 하시 랴오?』

하고 춘향이가 짓다가 둔 몽룡의 세모시 적삼을 마저 지으 려고 반짇고리를 끌어당기어 동경 앞에 앉으며 물으면, 몽 룡은 누운 대로 등잔불에 비치인 춘향의 얼굴을 모으로 보 고 콧마루 예쁘다 하면서,

『응 나도 공부니 무에니 다 집어치고 종일 너하고 마주 앉아서 바느질이나 했으면 좋을 터라.』

춘향이 실 끝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똑 끊어 바늘귀를 꿰면서,

『숭해라! 누가 대장부가 바느질을 하오?』

『얘 절에서는 중들은 제 손으로 모두 옷을 짓는다더라.

그 가사라고 안 있느냐. 조각보 같은 것 말이다—그것도 다 중들이 짓는다더라.』

『그러면 도련님도 중이 되시랴오?』

『공부만 안한다면 중도 되고 싶다. 뗑 뗑 종이나 치고 새 벽 일찌기 일어나서 긴 장삼 입고 나무아미타불 에헤헤 하 는 것도 보기 좋더라.』

춘향이 실을 꿰어 적삼 겨드랑 솔기를 감치며,

『숭해라! 도련님 중 되시면 나는 어찌하고?』

『너도 승 되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딱딱.』

하고 몽룡이 벌떡 일어나 합장하는 흉내를 낸다.

춘향이 힐끗 돌아보고 한 번 웃고 여전히 감치면서,

『숭해라! 왜 하라는 공부는 아니하고 숭한 소리만 하고 앉았소? 중도 아내 있고 중도 남편 있소?』

『참 그렇구나. 중은 안 될란다. 너도 애어 승 될 생각은 말어라.』

『숭해라! 누가 승 된다오? 어서 글이나 읽으시오. 어린애 소리 그만하고.』

몽룡이 한참 글을 읽으나 글에 맘이 없다. 또 돌아앉아 구 석에 세운 거문고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이냐?』

춘향이 시끄러운 듯이 고개도 안 돌리고,

『무엇 말이요.』

『저기 저 구석에 시커먼 자루를 쓰고 섰는 저놈 말이다.

내가 네 집 처음 온 날부터 저놈이 무엇인지 몰라 항상 무 시무시하였다.』

춘향이 돌아보며,

『그거 어비요. 도련님 공부 아니하고 잔소리만 하시면 어 흥 하는 어비요.』

『천하 만물에 이름 없는 것 어디 있느냐. 어비라 하니 성 은 어가 이름은 외자 이름으로 비란 말이냐?』

『어비는 기생 모양으로 성은 없고 이름뿐이라오.』

『이름이 무엇이냐?』

『거문고.』

『거문고랑 하니 옷칠한 게냐?』

『검어서 거문고가 아니라 줄 타는 것이요.』

『줄은 타면 하루 얼마나 가느냐?』

『가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이요.』

『종일 잘 뜯으면 몇 조각이나 뜯느냐?』

『그렇게 뜯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줄을 이렇게 이렇게 희 롱하면 풍류 소리가 난다오.』

하고 춘향이 웃으니 몽룡이 춘향 곁으로 앉은걸음으로 가 까이 오며,

『정녕 그러할 양이면 한 번 들어 볼 만 하구나.』

몽룡이가 하도 거문고를 타라곤 보채니 춘향이 마지 못하 여 바느질감에 바늘 꽂아 반짇고리를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치마 떨고 일어나, 칠현금 거문고를 내리어 무릎 위에 비스 듬히 안공 술대를 빼어 스르릉 둥당 줄을 고르고 흰 손을 넌짓 들어 큰 줄을 울리니 「둥」하고 청학의 울음이다.

춘향이 손을 멈추고,

『오늘 공부는 다했소.』

『염려 마라! 내일 아침 안 외어지거든 머리가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거나 꾀병하면 그만이지, 나도 외아들이라, 아프 다고만 하면 아버지도 끔쩍 못한다. 어서 한곡조 들려라.』

춘향이 일변 타고 일변 부르니,

『님은 창송이 되고 나는 목죽이 되어, 나목한천에 우리 둘만 푸르러 있어, 천산에 잎진 초목들을 부러하게 하리라.』

몽룡도 풍류를 아는 남자라 거문고 소리를 들으니 흥이 나 서 무릎을 툭 치며,

『좋다, 너 혼자 하느냐. 내 소리도 들어 보아라. 구절마다 거문고를 높게 맞추어라.』

하고 천자 뒤풀이를 내인다.

『높음도 높을사, 넓음도 넓을시고, 대장부 기개같이 호호 탕 하늘천.

높으면 산이요, 깊으면 바다로다, 만물을 생육하니 어머니 의 덕이로구나, 자비할손 따지.

삼월이라 삼진날 춘풍세우 날릴 적에 강남 갔던 옛 제비 옛 주인을 찾아오니, 어허 너도 정 있구나 가뭇가뭇 가물현.

김제 만경 너른 벌에 추풍 건듯 불어가니, 고개 숙인 벼이 삭이 굽실굽실 물결진다, 금년 농사도 잘되었네 벼이삭이 누르황.

뫼시옵고 우리 둘이 금술좋다, 고대광설 집우.

안득광하 천만간 억조창생 집주.

한강수 푸른 물이 하늘에 닿아 넓을홍.

부귀영화 믿지 마라 황당할사 거칠황.

오늘 가고 내일 가 이팔청춘 다 늙네, 진시황의 채찍 얻어 붙들고저 날일.

강릉에도 경포대 둥두렷한 달월.

수령방백 인두영치 호반한 양전통 암행어사 삼마패 절대가 인 울금향 나 같은 서생일랑 필랑이 제격이란 주룽주룽 찰영.

잔 가득 술 부어라 넘쳐간다 기울책.

북두칠성 북극성 멍에 다문 보재기 쌍태성 삼태성 하늘 가 득 별진.

원앙베개 비취 이불 활짝 벗고 잘숙.

이틀 이레 안성장에 팔로물화 벌렬.

야만무인 사창하에 온갖 정담 베풀장.

백설이 만건곤하니 독수공방 찰한.

어허 그날 참도 찰사 어서 오너라 올래.

동지섣달 차다 마소. 유월염천 더울서.

정든 님 언제 올꼬 기약이나 두고 갈왕.

금풍이 소슬한데 잎 떨리는 가을추.

님 손수 지은 농사 내 손 대어 거둘수.

춘하추풍 다 보내고 어허 춥다. 겨울동.

밤을 새어 지은 옷을 입을 님은 안 오시네. 홍안에 두줄 눈물 장문 열고 감출장.

천시에도 군것 있다 삼년 일차 윤달윤.

님 가신데 어드메나. 천리 만리 남을여.

이 몸이 훨훨 날아가서 만나기나 이룰성.

일년 열 두달 삼백 예순 날 이리저리 다 보내고 송구영신 햇세.

본처 박대하지 마소. 대전통편 법칙률.』

소라를 다 맞추고 몽룡이,

『어떠냐?』

『그 무슨 소리요? 참 재미있소.』

『또 하나 하랴.』

『잘하신다니까 아주신이 나셨구려. 그럼 또 하나 하오—— 꼭 한마디만 더 하고는 공부해야 되어요.』

『그까진 공부는 아무 때 하면 못하랴. 뒷간에 가서 할일 없는 때나 하기로 하고 흥난 길에 소리나 하고 놀자. 거문 고 타라, 아까 것과는 좀 장단이 다르것다.』

『어서 소리나 하오. 내 걱정은 말고.』

춘향이 거문고를 다시 무릎 위에 올려 놓으며,

『이번에는 또 무슨 좋은 소리를 하시랴오?』

『이번에는 좀 점잖은 소리를 하여볼란다. 만고, 영웅, 호 걸, 충신, 절사, 일색들을 모아 보리라.』

『참 듣지 못하던 별소리요. 어서 하오 타오리다.』

『타라!』

하고 몽룡이 소리를 낸다—

『성터에는 속절없이 벽산 달만 비치이고, 고목은 모두 창 오구름에 쌓였어라 하던 이 태백으로 한짝 치고, 저소리 관 산달에 삼년을 울었으니 만국이 싸우는 바람에 초목조차 설 어 울다 하던 두 자미로 한짝 치고, 저녁 놀에 외기러기 날 고, 가을물은 하늘과 한빛일세 하던 왕 자안으로 웃짐 치고, 이슬은 강에 빗겼는데 물빛은 하늘에 닿았것다 하던 소 동 파로 말 몰려라. 둥덩둥덩덩 징지루 덩징덩, 날이 맞도록 나 무 그늘에, 맑은 냇물에 이 몸을 씻었노라 하던 한 퇴지로 한짝 치고, 세 번 악양에 오되 아는 이 없사오며 부질없이 읖조리고 동정호를 지나니라 하던 여 동빈으로 한짝 치고, 잔을 곡수에 흘릴제 봄바람이 더욱 조희 하던 왕 희지로 웃 짐 치고, 늠실늠실 금물결에 벽 그림자 잠겼세라 하던 범중 암으로 말 몰려라. 어양비고 울어 올제 예상우의 가엾구나 하던 백 낙천으로 한짝 치고, 떠날 때 자네 줄 것 일편심뿐 이로세 하던 맹호연으로 한짝 치고, 울밑에 국화를 따다가 멀거니 남산을 바라노라 하던 도 연명으로 웃짐 치고, 만고 의 영웅을 내 다 알고 제왕의 흥망을 내 보노라 하던 사마 천으로 말 몰려라.

국은을 갚기 전에 몸이 먼저 죽단 말가 하던 장순으로 한 짝 치고, 이 몸은 죽을지언정 절의야 변할 소야 하던 허원 으로 한짝 치고, 머리카락은 하늘로 뻗고 눈초리 찌어지던 번쾌로 웃짐 치고, 충의는 하늘에 뻗고 정성은 금석을 뚫어 맹세코 송 나라를 회복하리라던 악 풍기로 말 몰려라.

오호 편주 흘리 저어 범 송백을 따라가던 서 시로 한짝치 고, 한 번 상긋 웃는 웃음 온갖 아양 다 나오니 융궁에 모 든 미인 안색이 없을 터라 하던 양 옥진으로 한짝 치고, 해 하영 옥장 밑에 항왕을 부여잡고 추파에 눈물지던 우 미인 으로 웃짐 치고, 영웅의 굳은 뜻을 일조에 이간하던 초선으 로 말 몰려라.

궁 뜰에 봄 깊으니 백화 우거진데 연작은 날아와서 기쁘다 지저귀네 하던 이 소화로 한짝 치고, 님 위하는 충성된 맘 혼이라도 넋이라도 따르리라, 떠날 것가 하던 가춘운으로 한짝 치고, 북파 영중에 달 그림자 흐르놋다 옥문관 외에 봄빛이 희구나 하던 심 뇨연으로 웃짐 치고, 청수담에 수절 하니 음곡에 봄이 오다 하던 백 능파로 말 몰려라.

벽담에 추월 같고, 녹파에 부용 같고, 글 읽으라고 밤낮 잔 소리하는 춘향으로 한짝 치고, 낙양 과객 풍류호사 놀기만 좋아하는 이 도령으로 한짝 치고, 춘향의 무릎 베고 비스듬 히 누워 있어 이 도령의 소리 맞추는 거문고로 웃짐 치고, 오월오일 광한루에 월로승 되던 방자놈으로 말 몰려라.』

춘향이 거문고를 내려 놓으며,

『다요?』

『왜 더 듣고 싶으냐?』

『아니 더 듣고 싶든 않소마는 잘도 하오. 대관절 그게 어 디 본때나 있는 소리요? 도련님이 되는 대로 꾸며대는 소리 요?』

『만고 문장 이 몽룡이 남 지은 노래를 부를 리가 있느 냐?』

『어쨋든 용하시오—잘도 줏어대시오. 그런데도 다 무슨 뜻 이 있으니 신통하오.』

몽룡이 목이 마른 듯이 입을 다시더니,

『무얼 좀 먹고 싶구나.』

춘향이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상단을 부르니, 상단이 벌써 알아 차리고 준비하였던 밤 참 상을 들고 나온다.

상에 술이 없는 것을 보고 몽룡이 픽 돌아 앉으며,

『이건 누가 굶어 다니는 줄 아느냐. 밤낮 배부를 것만 주 니 내가 개걸 주머니나 차고 다니는 줄 아나 보구나.』

춘향이 새침해지며,

『그럼 이 훌랑 안 드리지요. 아따 상단아. 이 상 물려 라.』

하고 춘향도 다른 창을 향하고 돌아 앉는다.

두 사람은 등을 지고 말이 없는데 등잔불만 춤을 춘다.

춘향이가 먼저 말을 붙이었으면 하고 기다리다 못하여 몽룡이 먼저 돌아 앉으며,

『또 노였구나. 왜 그렇게 발끈하기를 잘하느냐?』

춘향은 더욱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며,

『나는 그래도 정성껏 해드리는 것을 칭찬은 못해도 그렇 게 퉁명 부릴 게야 무엇이요?』

『허 네가 모른다. 사내란 아내 보고 퉁명 부리는 맛에 사 는 것이란다.』

춘향도 웃고 돌아 앉으며,

『여편네도 남편한테 발끈하고 잔소리하는 맛에 산답니 다.』

『그도 그렇구나. 그러면 내 퉁명과 네 발끈과 쓱싹 에워 버리고 술이나 한 잔 다오.』

춘향 잠깐 눈쌀을 찡기며 뾰롱뾰롱하게,

『글쎄 공부하는 이가 오늘밤에 해야 할 공부는 두고 술만 찾으니 어찌하오?』

『그래 안 줄 테야.』

『안돼요.』

『이런 말이 있느니라—본처 두고 첩하는 놈, 첩한다고 강 짜하는 년, 아내더러 술 내라고 조르는 놈, 내라는술 안 준 다고 떼는 년 다 못쓴다더라. 한바탕 소리를 했더니 목이 갈하구나 한 잔 다오.』

춘향이 마지못하여 술을 내온다. 몽룡이 손수 병을 들고 큰 잔에 부어 거푸 두 잔을 마시곤 또 한 잔을 따르려는 것 을 춘향이 막으니,

『삼배에 통대도라고 이 태백이 말하였고, 한 잔 술에 눈 물난다는 말도 있으니 한 잔만 더 먹자.』

술을 먹고 나니 또 공부할 맘은 없어지고 놀 맘만 생긴다.

그래도 춘향의 잔소리가 무서워 억지로 책을 보자니 취한 눈에 글자가 바로 보이지를 아니한다.

몽룡이 책을 닫히고 돌아 앉으며,

『어디 배가 불러 공부가 되나, 밥이나 내릴 겸 우리 수수 께끼 하나 하자.』

『수수께끼라니 저 먼산 보고 절하는 것 그런 것 말이 요?』

『그까짓 게 무슨 수수께끼냐. 내 하나 할께 알아 보아라.

홍두깨 알 낳는 게 무에냐?』

『그게 무에요. 모르겠소.』

『총 놓는 것이니라.』

춘향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방그레 웃으며,

『참 그렇구려. 내 하나 할께 알겠소?』

『어디.』

『타러 갈 제 타고 가서 타면 못 타고 못 타면 타는 것이 무엇이요?』

『얘 그건 과연 모르겠다.』

『그것이 환상 타러 가는 소라. 환상을 타러 갈 제는 소를 타고 가지요? 환상을 타면 못 타고 오고 원님이 유고하여 환상을 못 타면 타고 오지 않소?』

『참 그렇구나. 시골 수수께끼를 내가 알 수 있느냐.』

『걸뜻하면 시골이라지—시골 덕으로 사는 줄 모르고.』

『참 그도 그렇구나. 천지를 지으시는 하느님 덕, 나화덕, 인황씨는 수덕이요. 천하 태평하니 상감님 덕이요. 몹쓸놈의 배은망덕 단단한 목덕이요. 물렁물렁한 쑥덕이오 너 낳아 주기는 장모덕이요. 이 도령 술 먹을 제 말 덕벌덕이요......

가만 있자 내 무슨 소리를 하려다가 잊었니? 옳다. 우리네 가 먹고 입기는 시골 농사군의 덕이로구나.』

『밤낮 그런 재담 생각만 하니 무슨 공부가 되겠소? 내 신 세도 꺼벅꺼벅하오.』

몽룡이 먹은 술이 점점 취하여 올라오니 솟는 흥을 걷잡을 수가 없다.

『수수께끼 따위로 부른 배와 솟는 흥을 누를 수가 없으니 춤을 좀 추어야겠다. 영가무도라 하였으니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성인의 일이라 나도 성인을 배우는 사람이니 입으로만 배워 쓰겠느냐. 몸소 행하여 보리라.』

하고 일어나 얼씬얼씬 춤을 추다가,

『혼자 추니 무미하구나. 부창부수라니 지아비 하라는 대 로 너도 일어나 추어라.』

하고 춘향을 끌어 일으킨다.

춘향도 처음에는 몽룡이가 끄는 대로 억지로 끌려 돌아갔 으나 본래 배웠던 춤이라 점점 흥이 나서 한바탕 어울어져 추었다.

『좋다 인생행락이 마땅히 이러할 것이다. 너만 나고 내가 안 났어도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고, 나만 나고 네가 안 났 어도 또한 그러하리라. 하늘이 우리 둘을 내신 것이 어찌 뜻이 없으시겠느냐. 좋다!』

몽룡이 한참 동안 춤을 추더니 흥을 견디질 못하는 듯이 어머니가 아기를 안는 모양으로 덤석 춘향을 들어 안고 아 기를 달래는 듯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아랫목에서 웃목으 로 웃목에서 아랫목으로 얼씬얼씬 춤을 추며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네가 내 사랑이로구나.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다. 아무리 보 아도 내 사랑이로구나. 어허둥둥 내 사랑.

앉거라 보자 내 사랑 서거라 보자 내 사랑이다. 들고 보아 도 내 사랑 놓고 보아도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사랑 사 랑 내 사랑, 아무리 하여도 내 사랑 이생에서도 내 사랑, 저 생에서도 내 사랑 극락엘 가거나 지옥엘 가거나 어디를 가 도 내 사랑. 너를 두고는 못 살리라 어허둥둥 내 사랑.』

춘향이 발을 버둥거리며,

『팔 아프시겠소. 그만하고 내려 놓으시오.』

『가만 있거라. 한 마디 더하자. 어허둥둥 내 사랑이로구 나. 무산 선녀도 나는 싫어, 서시 옥진도 나는 싫여. 아무도 나는 싫다. 어허둥둥 내 사랑 네가 오직 내 사랑.』

『에그 그만해요. 팔 아프시겠소.』

하고 춘향이 몽룡의 팔을 뿌리치고 방바닥에 내려선다.

『이번에 날 좀 안고 사랑의 노래를 불러다오.』

『무거워서 어떻게 안소?』

『그러면 업고—』

『숭해라!』

『안 숭하다.』

하고 몽룡이 춘향의 등에 업힌다.

춘향이 머리채를 앞으로 끌어오고 몽룡을 업고 외씨 같은 발을 안짱다리로 사뿐사뿐 옮겨 놓으며,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몽룡이 등 위에서,

『내가 네 아들이냐. 자장자장은 다 무에야. 사랑가! 사랑 가.』

『에그 퍽도 보체네. 그럼 두어 마디만 하리다.』

하고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로구나 우리 도련님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천상 선관도 나는 싫소. 삼공 육경도 나는 싫소. 어허둥둥 내 사랑 도련님이 내 사랑.

한강수 물결같이 끊임 없는 내 사랑. 동해 바다 푸른물 끝 모르는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남산 칡덩굴같이 엉키고 엉킨 내 사랑. 연평 바다에 조기 잡는 그물같이 맺히고 맺힌 내 사랑. 아무리 보아도 내 사 랑. 어허둥둥 내 사랑.』

『자요 그만 내리오.』

『좋다. 한 마디만 더해라.』

하고, 몽룡은 춘향의 어깨에 꼭 달라 붙는다.

춘향이 또 얼씬 얼씬 몽룡을 업고 거닐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높고 높은 하늘에 닿고 남는 내 사랑, 삼천대천세계에 차고 남는 내 사랑. 죽고 나고 죽고 나 삼생을 두루 돌아도 변칙 않는 내 사랑. 북망산 일분토살과 뼈가 다 썩어도 썩 지 않는 내 사랑이야. 님께 들인 내 사랑이로구나. 어허둥둥 내 사랑.』

『좋다.』

『자 인제는 내리오. 아이고 팔이야.』

몽룡이 춘향의 등에서 내려오며,

『나를 업어 보니 어린애 업고 싶은 생각 안 나느냐?』

『숭해라!』

『왜 숭해? 하나 낳아라. 네가 낳으면 반드시 좋은 아이가 나리다.』

『지금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이 아이를 낳았다고 남들이 웃지 아니하오?』

『남모르게 이 방에다 감추어 놓고 우리 둘이만 들여다 보 고 앉았지.』

『감추어 두면 모르오? 아이가 울면 우는 소리가 안 들리 오?』

『그도 그렇구나.』

『그렇게 어느 새에 아들이 보고 싶소?』

『네가 낳은 것이라면 오줌똥을 받으면서라도 안아 주고 업어도 주고 싶구나.』

춘향이 시무룩해지며,

『아기가 나도 걱정이요.』

『왜?』

『호적에도 못 오르고 나 모양으로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 어 천덕군이가 되겠으니 어떻게 갓을 쓰고 다니겠소?』

몽룡이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언짢아 마라. 내 힘써 공부하여 늦어도 삼년 안에는 대 과급제하여 너를 서울로 데려갈 터이니 행여 언짢아 말아라.』

離別(이별) 편집

기쁜 세월은 빠르고 슬픈 세월은 더디다는 옛말과 같이 몽 룡이 춘향을 만나 서로 사랑하여 온지가 벌써 추월춘풍 일 년이 지내었다. 그 동안에 옥신각신 사랑 싸움 말다툼도 있 었고 춘향이나 몽룡이나 혹은 감기로 혹은 복통으로 앓기도 하였고, 또 그리 큰 걱정 근심은 있을 것도 없지마는 그래 도 잔 걱정은 늘 있었다. 그러나 가을 일기에도 하루 종일 맑아 가지고 있는 날은 없거든 인생 생활에 고만 걱정을 걱 정이라 하랴. 꽃 같은 춘향과 몽룡은 인생의 봄을 즐길 대 로 즐기고 놀 대로 놀았다. 그러나 홍진비래는 면치 못할 일이라. 찬달은 이즈러지고 핀 꽃은 이우나니 단꿈 같은 춘 향 몽룡의 사랑 놀이에도 슬픈 이별의 날이 오게 되었다.

하루는 몽룡이 책방에서 글을 읽다가 상방에서 부른다 하 기로 들어간즉 부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풀갓끈에 뒷짐 지고 이리저리 거닐면서 낭청과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몽룡이 들어와 읍하고 섰는 것을 보며 잠시 거닐기 를 그치고,

『몽룡아. 국은이 망극하여 내가 이조 참판 내직으로 승차 하여 승일상래하라신 전교가 계시니 가문의 경상랑, 넨들 아니 기쁘겠느냐. 하루도 지체할 수없이 곧 발정 상경하여 야 할 것이로되, 나는 미진한 공사나 마치고 문서중기 마감 후에 발정할 것이니, 널랑 사당 모시고 너의 어머니 배행하 여 명일 일찍 떠나게 하여라.』

몽룡이 이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하고 금시에 눈물이 쏟 아질 것 같다.

『아버지 먼저 행차하시면 소자가 하기 닥고 가오리다.』

부사 몽룡을 흘겨보며,

『무엇이 어찌어?』

하고 한참이나 있다간,

『이 자식 너 어디를 요새에 날마다 다니느냐?』

『광한루 갔다 왔어요.』

『광한루는 무엇하러 날마다 가?』

『용한 문필도 보고 글도 짓노라고 갔다 왔어요.』

『내 들으니 밖에 괴악한 말이 주간 있으니 양반의 집 자 식이 아직 이십도 못도어서 청루주사에 다닌다는 것이 의문 이 창피하고 또 만일 그런 소리가 서울까지 들린다하면 혼 인길까지 막힐 것이요. 또 미장가전 아이놈이 하향천기 작 첩을 하였다면 사당 제사 때도 참예를 못하는 법이야. 내가 해괴한 소리를 들은지 오래되 네가 그치기만 기다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는 다시는 용서치 못할 것이니 썩 나가 거라!』

몽룡이 하릴없이 일어나 나올 제 부사가 낭청을 보고 분한 어조로,

『낭청은 어찌하여 벌써부터 알면서도 내게 말을 아니 하 였단 말이요?』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린다.

『두고 갈까 데려 갈까. 데려가도 못할 터이요. 두고 가도 못할 터이니 이 사세를 어이하나.』

몽룡이 이렇게 자탄하면서 기운 없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 니 춘향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반가이 내다르며,

『오늘은 어찌 늦었소? 손님이 왔었소?』

하고 묻다가 몽룡의 얼굴에 수심 빛과 눈물 흔적이 있는 것을 보고 한 걸음 물러서며,

『웬 일이요? 사또께 꾸중 들으시었소?』

몽룡이 기운없이 방에 들어가 고개 푹 숙으리고 앉으며,

『꾸중 아니라 곤장을 맞았기로 울 내냐.』

『그러면 웬 일이요? 본댁에서 편지 왔다더니 어느 일가 양반 돌아갔다고 부고 왔소?』

『일가 양반이 만 명이 죽으면 어때?』

『그러면 웬 일이요? 어디가 편치 않으시오?』

하고 손으로 몽룡의 손을 쥐어 보고 이마를 만지어 보더 니,

『열기는 없으신데 배가 아프시오?』

『............』

『왜 말이 없소? 도련님 슬픔이 내 슬픔이요, 도련님 걱정 이 내 걱정이니 도련님 그렇게 슬퍼하시면 내 맘이 어찌 편 하겠소? 내가 누구를 믿고 사오? 도련님 한 분만 믿고 도련 님께 대롱대롱 매달려서 사는 년을 왜 이렇게 괴롭게 하시 오. 어서 말이나 하오.』

춘향의 말을 들으니 몽룡은 더욱 비감하여진다. 눈물을 씻 으면서,

『아버지가 간단다.』

『가시다니 어디를 가시오?』

『이조 참판인가 되어 가지고 내직으로 들어 간단다.』

『에그 경사로구려. 이조 참판 승차하시었으면 그런 경사 가 어디 있소? 너무 기뻐서 우시오?』

『기쁘기는 무엇이 기뻐? 차라리 아버지가 이 골 좌수나 되어선 물러 앉았으면 좋겠다.』

『어찌해 그러시오? 내가 안 따라 갈까봐 그러시오? 서울 이 멀다기로 도련님 따라가지 않을 내 아니요. 우지 마오!

우지 마오! 오늘이나 내일이나 도련님 떠나시는 날이면 내 따라갈 것이니 울지 마오! 울지 마오!』

춘향의 이 말에 몽룡은 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춘향의 손을 잡으며,

『너를 데리고 갈 양이면 내가 왜 슬퍼하랴.』

춘향이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 앉으며,

『그럼 나를 두고 가시려오?』

하고 어성이 날카롭다.

『글쎄 내야 데리고 가고 싶지마는......』

『아니 글쎄 나를 못 다려 가신단 말씀이요?』

춘향의 얼굴은 푸르락 누르락한다.

『글쎄 나는......』

『여러 말씀 하실 것 없이 외마디로 대답하오! 나를 데리 고 가시랴오! 두고 가시랴오?』

『아버지가—늙은이가—고집꾸러기어서 양반의 자식이, 미장 가전 아이놈이 하향천기 작첩하였다면 혼인배문이 막히고— 사당 제사 참예도 못하는 법이라고......』

춘향이 몽룡의 손을 뿌리치고 저만큼 물러 앉아 눈썹이 빳 빳해지며,

『다 알았소. 그만두오. 다 알았소. 다 알았소. 도련님 속도 다 알았소. 그럭저럭하야 나를 버려두고 도련님 혼자만 올 라 가신단 말이구려. 흥 하향천기! 그런 말이 몇 마디나 있 소? 어디 있는 대로 다해 보오. 옳소. 내가 하향천기요. 도 련님은 쩡쩡 우는 연안 이씨. 이 참판의 자제시로구려. 날 버리고 올라가서 귀가문에 장가 들어 부대부대 잘 살으오— 나는 그런 줄 몰랐네. 그런 줄 몰랐네. 도련님이 바다가 마 르고 돌이 다 녹아 없어 지더라도 변치 아니하시마기에 그 럴 줄만 믿었더니 날 속였구려. 날 속였구려...... 아이고 이 를 어찌하나—내 신세를 어찌하나.』

하고 쓰러져 운다.

몽룡이 한 팔을 들어 춘향을 안아 일으키려 하나 춘향은 몽룡의 팔을 뿌리친다.

몽룡이 어찌할 줄 모르고 춘향의 곁에 쭈그리고 앉으며,

『춘향아, 울지 마라. 내가 가면 아주 가며, 아주 간들 널 잊으랴. 장부의 굳은 맹세 변할 줄이 있겠느냐. 너만 맘 변 치 말고 다시 보기 기다려라.』

춘향이 와락 달겨 들어 몽룡에게 매달리며,

『못 가리다. 못 가리다. 나를 두고는 못 가리다. 날 데려 가오! 날 데려 가오! 못 데려 가겠거든—죽이고 가오! 도련님 께 들인 몸이니 맘대로 죽이고 가오! 살려 두고는 못 가리 다.』

하고 몽룡의 허리를 안고 무릎 위에 얼굴을 비비고 느껴 운다.

이 때에 월매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춘향이 우는 소리에 깨어,

『또 저것들이 사랑 싸움을 하는군.』

하고 그대로 도로 누워 자려다가 울음 소리가 하도 수상하 므로 가만가만히 걸어 나와 춘향의 방을 이윽히 엿보더니,

『이것들이 이별을 하는구나.』

하고 도로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주워 입고 나와 크게 기 침하고 영창을 후닥닥 열며,

『허허 이게 웬 울음이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동네 사람은 자겠느냐. 이 밤중에 요망하게 대고 우니 매쳤느냐, 사가 들렸느냐. 아비가 없으니 어미 하나 있는 것을 어서 죽어지라고 이게 웬 방정이냐. 사 오세부터 사서 삼경 배운 행실이 이것이냐. 이게 무슨 행실이냐. 대관절 무슨 일이냐.

말이나 해라.』

하면서 문안에 들어 앉는다.

월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춘향은 몽룡의 무릎을 떠나 저 만치 물러가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치맛고름만 물어 뜯으 며 흐득흐득 느끼고 앉았다가 월매가 무슨 곡절이냐고 묻는 말에,

『도련님이 가신다오.』

『도련님이 어디로 가시어?』

『사또께서 이조 참판 승차하시어 내직으로 들어가신다고 도련님은 내행 모시고 명일 일찌기 서울로 가신다오.』

이 말에 월매 깔깔 웃으며,

『이애 댁에 경사났구나. 도련님이 경사시면 내 집도 영화 여든 울기는 왜 웃느냐. 너무 좋아서 웃느냐. 도련님과 같이 가되 행차 앞에 가지 말고 오리만큼 십리만큼 따름따름 가 다가 밤이 되거든 만나 보고 낮이면은 그렸다가 밤 되거든 또 만나볼 터인데 욕심 많은 도적년이 낮에 못 볼 것이 애 가 타서 남 다 자는데 애고지고 대고 우니 도련님을 꼭 맺 어서 네 옷고름에 채워 주랴? 울지 마라 울 것 없다. 날랑 은 세간 방매하고 천천히 갈 터이—나는 무슨 큰일이나 났다 고.』

『도련님이 나를 못 데려 가신다오.』

하는 춘향의 말에 월매 웃던 웃음도 다 집어치우고 우두커 니 방바닥만 들여다보고 앉았는 몽룡을 돌아보며,

『왜 못 데려가? 정녕 그렇소?』

몽룡은 외면하며,

『그렇다네.』

월매 무르팍 걸음으로 몽룡의 앞으로 바싹 다가 앉으며,

『어찌하여 못 데려 가오?』

『낸들 데려 가고 싶은 맘이야 태산 같지마는 양반의 자식 이 미장가전에 외방 작첩하면 청문이 사나울뿐더러 사당 제 사에도 참예하지 못한다고 부명이 지엄하시니 낸들 어찌하 나. 잠시 서로 떠났다가 훗기약을 기다리세.』

월매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하며 두 주먹을 발끈 쥐더니,

『너 이년 죽어라. 어느 놈이 살인률은 질 터이니 너 이년 썩 죽어라. 도련님 올라가실 뉘 간장을 녹이랴느냐. 요년아 썩 죽어라!』

하고 몽룡의 앞으로 바싹 대들며,

『여보게 나하고 말 좀 해보세. 그래 어찌해 내 딸을 못 데려 간단 말인가. 가만히 있는 아이를 감언 이설로 꾀어 내어 일년 이태나 되도록 진탕치듯 버려 주고, 이제 와서 안 데려 간다니 웬 말인가. 내 딸이 어떠한 딸로 알았던가.

늙은 년이 그것 하나를 길러낼 제 고생인들 어떠하였겠나.

말년에 그것으로나 낙을 볼 양으로 하늘같이 믿었더니 이제 자네가 안 데려 간다 하니 웬 말인가. 아 이 사람아 말 좀 하게. 양반의 자식의 행세는 그러한가. 자네집 사당 제사 참 예만 중하고 내 딸 죽는 것은 중하지 않단 말인가. 말게 말 게 못하네.』

하고 소리를 바락 지르며,

『가랴거든 데리고 가고, 못 데려 가겠거든 죽이고 가게.

살려 두고는 못 가리! 이 사람아 말해 보세. 내 딸이 행실이 그르던가. 언행이 불순턴가. 무슨 죄가 있던가. 칠거지악 없 으려든 백옥 같은 내 딸을 무슨 연유로 버리랴나. 꽃 같은 청춘에 생과부를 만들어서 독수공방에 내딸을 말라 죽게 하 랴나. 이 사람아! 내 딸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던가. 내 딸 버리고 가는 놈은 내가 그놈의 간을 내어 아작아작 씹어 먹 을랴네.』

하고 몽룡에게로 대들어 다리를 꼬집고 어깨와 팔을 물어 뜯는다.

몽룡이 황망하여,

『여보 장모. 이럴 것 없소. 내가 춘향을 데리고 가지. 두 고 간다던 것이 내 망발이로세. 데려 가리 데리고 가리.』

하고 춘향을 향하여,

『춘향아 어서 행장 수습하여라. 명일 아침에 나하고 함께 떠나자.』

이 말에 월매 물러 앉으며, 춘향을 보고,

『그래라 이년아 따라 가거라 따라 가. 이년아 네 서방 따 라 가거라. 물고 매어달려서라도 따라 가거라.』

춘향이 한숨 지며,

『어서 어머니는 건너가오. 만사는 다 내가 알아 할 테니 어머니는 건너가 주무시오.』

월매는 적이 안심한 듯이 담뱃대를 들고 일어나 나가며,

『꼭 따라 가라. 이번 놓치면은 영 놓치는 게다. 잘 적에 안 온다는 님 없고, 온다고 오는 님 없느니라. 여보 도련님 당신도 잘되랴거든 데리고 가오. 일부지원 고한 삼년이라고 안 데리고 가면 도련님도 안되리라.』

하고 마루에를 내려섰다가 다시 오며,

『만일에 못 데려 가겠거든 먹고 살 것이라도 주고 가야 하오리다.』

월매 들어간 뒤에 춘향이 눈물을 거두고,

『도련님 어머니 망녕을 노여 마오.』

몽룡이 두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으며,

『노여는 게 무에냐—장모 말이 모두 옳은 말이다. 애초에 내가 너를 두고 간다는 게 말이 아니다. 백년을 같이 하자 고 굳게 맹약한 너를 혼자 두고 간다는 게 말이 아니다. 같 이 가자 같이 가. 데려 가마 데려 가마. 사당 제사에 참예를 못하면 말고,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내쫓거든 너와 나와 둘이 서 어디가서 농사를 지어 먹든지 막벌이를 하여 먹든지 이 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 걸식을 하더라도 같이 가자 같이가. 너를 두고는 못 가리라. 내 데리고 가마, 데리고 가 마.』

춘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안될 말씀이요. 안될 말씀이요. 도련님 부모시자 내 부모 시니 도련님이 부모 명령 거역하시면 낸들 불효가 아니요?

남의 자식이 되어선 봉제사를 못하게 된다 하면 그런 불효 가 또 어디 있소? 안될 말이요. 애어 날 데려갈 생각은 하 지도 말고 도련님이나 부대 평안히 가시오. 내행 모시고 천 리원정에 조심조심히 가시오. 서울 올라 가시거든 내 생각 도 마시고 약주도 과히 잡숫지 마시고 공부나 잘하시어 대 과급제하시고 한림학사나 되신 뒤에 아버님께 여짜와서 날 데려가게 하여 주시오. 내걱정은 말으시오. 도련님 가신 뒤 면 나는 대문 중문 굳이 닫고 혼자 가만히 숨어 있어 도련 님 입신 양명하시기만 천지신명 전에 빌고 도련님이 부르시 기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내 염렬랑 애어 마시고 부대 평 안히 잘 가시오. 천리 원정 도중에서나 가신 뒤에나 천금같 이 귀중한 몸을 부대부대 보중하시오. 공부하시다가 한가하 신 때나 남원 오는 인편 있는 때에 두어 자라도 좋으니 자 주자주 편지나 하여 주시오.』

말을 다 맞추고 춘향은 새로운 설움이 복받치어 방바닥에 쓰러지어 울며,

『백년이 다 맞도록 님 떠나지 마잤더니 굳이 가신다네.

아니 가든 못하신다네. 한양 천리에 그린 님 보내옵고 이 몸이 홀로 어이 살려나 어이 살려나.

떠나면 멀어지네. 멀어지면 잊는다네. 떠나서 못 뵈옴도 애 끊도록 설우려든 저 님이 잊으실진댄 어이 살리 어이 살까나.

차라리 죽어 잊으랴 죽도 못하고 살아 기다리랴 그 더욱 어려워 그려 아이고 내 신세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춘향의 울음에 몽룡도 목이 메어 울 며 춘향의 손을 부여잡고,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 잊을 내 아니다. 네 뜻이 그러 하니 너를 두고 가거니와 두고 가는 내 맘인들 그 아니 슬 플소냐. 구곡간장이 다 끊는 듯하다마는,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는 마를지언정, 너 잊을 리 만무하니 네 말대로 내 힘 써 공부하여 대과나 한 연후에 너를 데려가마, 데려가마. 네 부대 나 간다고 설어 말고 몸조심하여 나 오기를 기다려 라.』

하고 화류집 사릉경을 남대단 두루줌치 끈 아울러 끌러서 춘향의 손에 쥐어 주며,

『대장부 세운 뜻이 명경과 같을진댄 천만년 지난간들 변 할 줄이 있을건가. 내 뜻이 거울과 같아야 변할 줄이 없으 리니 이것을 몸에 지니어 날 본 듯이 보아라.』

춘향이 일어나 그 거울을 받아 품에 품고 왼손 무명지에 꼈던 옥지환 한 쌍을 벗어 몽룡에게 주며,

『여자의 곧은 절개 옥빛과 같을진댄 천만년 진토에 묻혔 은들 변할 줄이 있으리까. 내 절개 이와 같아야 변할 줄이 업사오리니 부대 이것을 날 본 듯이 지니시오.』

몽룡이 춘향의 지환을 받아 약낭에 집어 넣고 옷을 떨고 일어서며,

『닭이 우메, 벌써 세회째나 우네. 짧은 여름밤이 얼마 아 녀 밝으리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다시 볼 때까지 네 부대 잘 있거라.』

춘향이 일어나 몽룡의 품에 안기니 몽룡이 춘향을 껴안고 느끼어운다.

이윽히 둘이 서로 안고 울다가 춘향이 몽룡께서 물러서며,

『도련님, 나는 이제부터는 살아도 도련님댁 사람이요, 죽 어도 도련님댁 사람이니 도련님 손수 내 귓머리나 풀어 주 오. 도련님 떠나시기 전 내 머리 얹은 양이나 보고 가시오!

비록 팔자에 없어 도련님과 육례는 못 갖춘다 하더라도 도 련님 손수 내 귓머리를 풀어 주시면 그것이 육례보다 낫지 아니하오!』

하고 삼단 같은 검은 머리채를 어때 위로 끌어 넘겨 몽룡 에게 준다.

몽룡은 춘향의 말에 깊이 감격한 듯이 이윽히 춘향의 눈물 흐르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없이 춘향의 머리채를 받아 들고 댕기를 풀고 땋은 것을 훌훌 풀고 왼편 귓머리를 먼저 풀고 오른편 귓머리를 마저 풀고 나시 자기의 머리채 를 춘향에게 주며,

『네 귓머리를 내가 풀었으니 내 귓머리도 네가 풀어라.』

춘향이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내가 어떻게 도련님 귓머리를 풀겠소? 그런 법도 있 소?』

하고 고개를 두른다.

『나는 총각이요, 너는 처녀라. 너는 처녀의 몸을 내게 주 어 내 지어미 되고, 나는 총각의 몸을 네게 주어 네 지아비 되니, 지아비와 지어미는 한몸이라, 내가 네 귓머리를 풀어 너로 내 지어미를 삼노라 하는 표를 보이거든 네가 내 귓머 리를 풀어 나로 네 지아비를 삼는 표를 아니 보여야 되겠느 냐. 내 손으로 한 번 푼 내 머리를 다른 여자가 풀지 못하 리라. 자, 사양 말고 풀어라.』

그래도 춘향이 감히 몽룡의 머리에 손을 대지 못하고,

『뜻은 아오마는 그런 법이 없소.』

하니 몽룡이 언성을 높이며,

『없는 법이어든 내가 새로 내이마.』

하고 뜻이 굳은 양을 보인다.

춘향이 마지못하여,

『그러실진댄 머리를 빗겨나 드리리다.』

하고 몽룡의 머리채를 활활 풀고 조심조심히 두 귓머리를 다 풀 때에 몽룡은 감격을 못 이기어 사근사근하는 춘향의 잦은 숨소리를 듣는다.

춘향은 몽룡의 귓머리를 다 풀고 나서 어이없는 듯이 룡을 바라보며,

『나는 머리를 얹지마는 도련님은 어찌하시랴오?』

하니 몽룡이 잠깐 생각하다가,

『내 생각 같아서는 아주 상투를 짜버렸으면 좋겠다마는 그럴 수야 있느냐. 귓머리만 풀고 도로 땋아라.』

『앗으시오! 내 손수 한 번 풀어 드렸으니 푼심 치고 다시 땋읍시다.』

춘향이 빗접을 내어놓고 몽룡의 머리를 얼레빗으로 고르고 참빗질도 몇번 한뒤에 동백 기름 두어 방울을 손바닥에 떨 어뜨려 서너 번 싹싹 비벼 몽룡의 머리에 바른 뒤에 또 한 번 얼레빗으로 살살 빗겨 빗살 자국이 어질러지지 않도록 가만가만히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어 대목을 한 줌 덤뿍 놓 고 처음에는 느슨느슨 차차 힘을 주어 땋은 뒤에 석웅황 박 은 갑사 댕기 끝을 입으로 물어 꼭 졸라매고 그러고도 차마 그 머리채를 놓기가 아까운 듯이 만지고 또 만지고 쓰다듬 더니,

『그래도 도련님은 가시는구려.』

하고 몽룡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운다.

몽룡이 고개를 돌리며,

『울지 마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우느냐?』

하는 말에 춘향이 깜짝 놀라 눈물을 씻고 제 머리를 빗어 되는 대로 땋아 한 손으로 머리채를 들고 일어나 반닫이를 열고 서랍 속에서 백지에 꽁꽁 싸서 목함에 넣었던 금비녀 를 내어 몽룡의 손에 쥐어 주며,

『이것을 도련님 손으로 내 머리에 꽂아 주시오. 이 비녀 는 우리 아버지가 어머님께 주신 비녀 내가 시집가거든 주 신다고 어머님이 안 쓰시고 두었던 것이라오.』

하고 머리쪽을 만들어 손으로 잡고 몽룡에게로 고개를 돌 리니 몽룡이 일어나 비녀를 꽂아 준다.

머리를 얹고 나서 두 사람이 맥맥히 마주 앉았을 제 닭이 재우쳐 운다.

『자던 닭이 우네. 먼동 트게 되었네. 이러고 있으면 끝이 있소? 가실 길은 가시어야지.』

하고 춘향이 상단을 부르니 상단도 아직 자지 않고 일어나 있다가,

『예.』

하고 나온다.

『도련님은 가신다. 멀리멀리 서울로 가신단다. 약주나 한 잔 따뜻이 데이고 포나 놓아 내오너라.』

하고 상단을 시키고 춘향은 장문을 열고 백지에 싸두었던 담배를 내어 한 잎을 골라 붙이어 몽룡을 주며,

『마지막으로 내가 붙인 담배나 한 대 잡수시오.』

하더니 남은 담배를 다시 싸서 장에 넣으며,

『도련님 가시면 이 담배는 누가 먹나. 도련님 다시 와서 이 담배를 잡술는지—부대 다시 오시어서 이 담배 잡수시 오.』

하고 다시 거문고를 내어 장도를 빼어들고 거문고 줄을 드 윽 끊으니 스르릉하고 소리가 난다.

『너도 다 쓸데 없다. 님 안 계신데 거문고는 무엇하리. 누 구를 위해 거문고는 타리.』

다시 경대를 열고 연지분과 기름 항아리 모두 내어 내던지 며,

『도련님 안 계시거든 누를 위해 단장하리. 님 뵈잔 단장 이니 님 가시면 뵐 이 있나. 면경도 쓸데 없고 연지분도 쓸 데 없네. 방안에 뵈는 것이 모두 도련님 만지시던 것이니 도련님 가신 뒤에 저것들을 보고 내 어찌 살까나.』

하고 또 쓰러지어 운다.

몽룡이 춘향이가 흩어 놓은 것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잠깐이다, 잠깐이다. 세월이 잠깐이니 만날 날도 잠깐이 다.』

상단이 술상을 들고 나와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씻으며,

『아씨! 약주 가지어 왔소.』

춘향이 일어나 잔에 술을 부어 몽룡을 주니 몽룡이 받아 마시고, 이번에는 몽룡이 손수 부어 춘향을 주니 춘향이 또 받아 마시다가, 반을 다 못 마시고 목이 메어 울며,

『이별주 이별주, 말로는 들은지 오래건만 내가 이별주 마 실 줄은 뜻하지 못하였네.』

하고 또 쓰러진다.

상단이 울며 춘향의 어깨를 흔들며,

『아씨! 아씨! 아씨가 이러시면 도련님 맘은 어떠시겠소!

먼길 떠나시는 도련님을 보아서 이러시지 마오.』

춘향이 눈물 씻고 일어나며,

『오냐, 네 말이 옳다. 그런 줄을 알건마는 북받치어 오르 는 눈물을 어찌하느냐.』

하고 몽룡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자, 인제는 가시오. 날로 하여 밤을 새었으니 얼마나 곤 하실까.』

하고 중문까지 나와,

『도련님 부대 평안히 행차하시오.』

『부대 잘 있거라.』

상단이 대문까지 나가서,

『도련님 부대 안녕히 행차하시오.』

『오냐, 부대 잘 있거라—아씨 잘 신봉하고 위로해 드려 라.』

『도련님 가신 후에 아씨께 편지나 자주 하시오.』

하는 상단의 말에,

『오냐 그리하마. 아씨 잘 위로하여라.』

몽룡이 춘향의 집 대문을 나서니 벌써 동편 하늘이 훤하 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문전으로 배회하다가 천천히 걸어 간다. 가다가는 돌아보고 가다가는 돌아보니 상단이 아직도 대문에서 바라보고, 정들인 청삽사리 어디서 자다가 깨어 꼬리를 치며 몽룡의 뒤를 따라온다. 몽룡이 걸음을 멈추고 개의 머리를 쓸어 주며,

『너도 내게 정이 들어 따라나오는데 춘향이를 두고 가는 내가 무정한 놈이다.』

하고 춘향의 집을 향하고 두어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간다.

이튿날 평명에 이른 조반 먹고 부사께 하직하고 육방관속 의 하직 받고 사당내행 모시고 몽룡은 나귀를 타고 오래 부 리던 방자 경마를 잡히고 정든 남원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서울 길을 떠났다.

이때는 오월 하순이라 사면 청산에 아침 안개는 스러지지 아니하고 푸르게 늘어진 오류정 버들가지는 흔드는 바람도 없어 오직 벗 부르던 꾀꼬리가 사람에 놀래어 푸드득 날아 가는 바람에 잎사귀 위에 잠자던 구슬 같은 이슬 방울을 뚝 뚝 떨굴 뿐이었다. 몽룡은 맘이 비감하여,

『임루사 남원(눈물로 남원을 작별하고) 함비 향경로(슬프게 서울로 향하노라). 』

하는 글귀를 읊조리다가 경마 잡은 방자를 향하여,

『벌써 오류정이로고나.』

방자 몽룡을 돌아보며,

『누가 아니라오?』

『어허, 춘향이 있는 남원은 점점 멀어 가는구나!』

『소인의 계집도 점점 멀어가오.』

몽룡이 나귀를 세우고 고개를 돌려 안개에 싸인 남원부중 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에 버드나무 그늘로서 상단이 뛰어 나오며,

『도련님!』

하고 부른다.

몽룡이 놀라 돌아보니 상단이라 깜짝 놀라 몸을 굽혀 상단 을 보며,

『웬 일이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단 말이냐?』

상단이 찬합 하나 술병 하나를 방자에게 주며,

『이것은 도련님 도중에서 잡수시라고, 우리 아씨가 보내 시는 것이요.』

몽룡이 나귀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너만 나왔느냐. 필경 아씨도 나왔을 것이니 아씨는 어디 계시냐?』

『아씨는 오시다가 저기 앉어 계시오.』

하고 상단은 손을 들어 가리키며,

『혹 사람이 보더라도 도련님 체면에 안 될까봐 소녀더러 이것 갖다가 도련님 드리고 부대 편안히 행차하시라고 전갈 하라 하시오.』

상단이 손 들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길가 늙은 소나무 밑 에 춘향이 홀로 서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고, 씻고 이곳 을 바라본다.

몽룡이 나귀에서 뛰어내려 춘향에게로 따라가서,

『예까지 나왔느냐. 날 보내려 나왔느냐?』

하고 춘향의 손을 잡으니 춘향이 울며,

『한 번 더 뵈온다고 시원할 것 없으련만, 하도 아쉬운 맘 에 먼 발치로 도련님을 한 번 뵈오랴고 여기까지 나왔소.

도련님 이제 가시오면 언제나 오시랴오? 천리 한양에 도련 님 보내옵고 내 어찌 살라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몸은 비록 한양으로 가거니와 맘 은 너 있는 남원에 두고 가니 울지 말고 몸조심하여 다시 만나기만 기다려라.』

둘이 마주 잡고 한참이나 울다가, 춘향이 눈물을 거두며,

『도련님, 어서 가시오. 길 늦겠소—대부인께서 걱정 하시오 리다. 어서 가시오.』

하고 몽룡의 손을 놓으니 몽룡은 차마 떠나지 못하여,

『내 사랑아, 잘 있거라.』

하고 한 걸음 나오다가는 또 한 걸음 들어가고 또 한번,

『부대 잘 있거라, 들어가거라.』

하고 두어 걸음 나오다가는 또 두어 걸음 들어가니 이러할 수록 피차에 떠나기 슬픈 생각은 더욱 깊어 간다.

『어서 가시오!』

『오냐.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부대 원로에 평안히 가시오.』

『내 걱정은 말고 잘 있거라. 하늘이 무너저도 널 다리러 내 다시 오마. 마음이나 변치 마라.』

춘향이 손을 들어 소나무를 가리키며,

『내 마음은 이 소나무와 같소. 도련님이나 변치 마오.』

몽룡은 손을 들어 해를 가리키며, 내 마음은 저 백일과 같다. 너 부대 잘 있거라.

『도련님, 부대 평안히 가오.』

그러나 이 모양으로 작별하는 인사만 하고 또 할 뿐이요,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떠날 줄을 모른다.

이때에 방자가 두 사람이 섰는 곳으로 뛰어오며,

『도련님 야단났소. 대부인께서 앞참에 가마를 머무시고, 도련님 왜 안오시느냐. 어서 오시라 합신다고 급창 이놈 발 광하오...... 이별을 하실 때에 도련님 부대 평안히 가오. 오 냐 춘향아, 부대 잘 있거라. 이 만할 일이지 그려 웬 이별을 이렇게 끈질기게 하시오? 그만하고 어서 가십시다.』

몽룡이 하릴없이 춘향의 손을 놓고,

『나는 간다 아니 가든 못하리니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대 장부 이별할 때 눈물 아니 뿌린단 말 낸들 어찌 모르랴만 아마도 그 사람이 이별 안해 본 사람인가 보다.』

『부대 평안히 가오.』

『오냐 부대 잘 있거라.』

몽룡은 할 걸음에 돌아보고 두 걸음에 돌아보고 손을 흔들 며 나귀를 몰아가는데 춘향은 땅에선 솟은 사람 모양으로 입만 벙긋벙긋하며 몽룡을 바라본다. 사람은 차차 작아가고 음성은 차차 멀어간다. 몽룡이 탄 나귀가 반석틔를 넘어설 때 몽룡의 옷자락이 한 번 펄렁 보이더니 요만큼 뵈다가 조 만큼 뵙다가 밥지내를 지나서야 아주 깜빡 아니 뵌다.

『상단아!』

『예. 』

『도련님 가시는 것이 보이느냐?』

『안 뵈어요.』

춘향이 정신없이 섰던 곳에 펄썩 주저앉아 잔디 잎을 박박 쥐어 뜯으며,

『그만 갔네. 참으로 갔네. 인제는 아주 가시었구나. 지금 여기 있던 양반 금시 간곳 없네그려. 어쩌면 가오? 나를 이 곳에 혼자 두고 어쩌면 도련님 혼자만 가오! 에그, 무정도 해라.』

하고 목을 놓아 운다.

상단도 눈물을 씻으며,

『아씨 우지 마오. 도련님 오시리니 우지 마오. 마님 걱정 하시리다. 들어갑시다 들어가요.』

그러나 춘향은 일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느껴 운다.

이때에 월매 춘향이 오래 안 돌아오는 것이 걱정이 되어선 따라 나오며,

『이년아, 이게 무슨 행실이란 말이냐. 새파랗게 젊은 년이 백주 대로변에 펄떠리고 앉어, 애고지고 대고 우니 님이 부 끄럽지 아니하냐. 그대도록 설겠거든 네 서방을 따라 갈 것 이지 가는 놈은 보내고서 울기는 왜 우느냐. 들어가자 들어 가, 어서 집으로 들어가.』

춘향이 월매를 보며,

『어머니도 어찌 그리 무정하오. 내가 그렇게 설어하면 달 래는 말씀 한 마디라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리도 무 정하오?』

월매 후회하는 듯이 언성을 부드럽게,

『자식에게 무정한 어미 어디 있다드냐. 네가 우는 꼴을 보니 애가 타서 그러는 것이다. 울지 말아, 울지 말아. 울지 말고 들어가자. 너를 두고 가는 놈을 생각하는 네가 어리석 다. 어젯밤에 이가놈이 너를 다리고 가마고 능청스럽게 그 러길래 귓문 넓은 늙은년이 그놈의 말을 참으로만 믿었더 니, 그놈이 마침내 너를 두고 가버렸네. 그럴 줄 알았더면 내가 그놈의 자식의 코라도 물어떼고 넓적다리 살이라도 한 점 큼직이 물어떼어 주었을 것을. 그놈의 자식이 날 속이고 갔네 그려. 이놈 이가놈아, 내 딸을 버리고 간 이가놈아. 네 놈이 십리 안짝에 배가 갈라지어 즉살을 하리라.』

춘향이 월매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어머니 이게 웬 말이요? 망녕이요? 웬 말이요? 나를 두 고 가는 도련님의 심산들 오죽하겠소?』

월매의 입을 가리우는 춘향의 손을 물리치며,

『앗어라. 네 그리 착한 체를 말어라—가장 열녀인 체도 말 어라! 네가 아직 철이 없어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런다. 이 가놈이 외양은 번듯하고 말은 그럴 듯하게 하건마는 그놈이 천하에 흉물스럽고 전 깍장이 놈이다. 어쩌면 감언 이설로 살이라도 버혀 먹일 듯이 너를 꼬여내 가면서도 돈 한 푼 필육 한 자 이러한 말없이 가니 그런 전 깍장이 놈이 어디 있나. 나는 생각하기를 이가 놈이 너는 못 다려가더라도 적 더라도 논 섬지기 돈 천냥은 주고 갈 줄 알았더니 그말 저 말 없이 가니, 요놈이 전 깍장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작년 이때부터 금년 이때까지 준 일년을 더우나 추우나 늙 은년이 밤잠도 못자고 저를 위해 밤참을 차린다 술상을 본 다 하늘라고 내시잿돈 수천 냥을 모조리 없앴거든 어쩌면 고놈의 아들놈이, 고맙소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린단 말이냐 —요 이가놈아! 요 전 깍장이 재리놈아! 요놈아, 네 행세가 전중이나 거지 밖에는 더 못되리라.』

하고 몽룡이 지난간 길을 향하여 악을 쓴다.

춘향이 월매의 팔을 붙들고,

『그리 마오. 그리 마오. 어미니 그리 마오. 시하에 달린 도련님이 돈인들 어디 있으며 설사 있어 주신다기로 어머니 는 받으며 나는 받겠소?』

『왜 안 받아? 왜 안 받아? 주는 돈을 왜 안 받아? 세상 천하에 돈 밖에 더 좋은 것 있다드냐. 주는 돈을 왜 안 받 아? 서방이 좋다 해도 사랑 절반 돈 절반이라, 사랑 없는 서방은 써도 돈 없는 서방은 못쓴단다. 사랑먹고 산다드냐, 돈 있어야 먹고 산다. 너는 아직 나이 어려 이일 저일 모르 거니와 젊었을 제 내 천냥 만들어야지 내 천 냥 못 만들곤 이렁저렁 늙어지면 밭고랑 베고 죽는단다. 압다 그놈 이가 놈 갈 놈이면 잘 갔다. 그놈이 일년만 더 있었더면 내집 팔 아 널 뻔했네.』

하고 춘향이 손을 끌며,

『아가, 들어가자. 들어가서 아침이나 먹자. 그 후레아들놈 잘 갔으니 학질 뗀 줄만 알고 들어가자. 내 돈 먹고 가서 고놈이 배지가 안 터지나 보자.』

춘향이 월매에게 끌려가며,

『아이고 어머니! 말을 왜 그렇게 하오? 도련님은 내 남편 이니 내 남편이자 어머니 사위 아니오? 사위도 반 자식이라 니 어쩌면 그대도록 악담을 하시오? 어머니 그리 마오.』

『딸 본 사위라고 너를 보아 그 깍장이놈을 귀애했지, 너 를 두고 가는 놈은 물어뜯어 죽여도 아깝지 않거든 악담 좀 하기로 어떠하리.』

『어머니 그리 마오. 도련님이 아주 가실 리가 만무하고 아주 가시더라도 날 잊으실 리 만무하니 어머니 그리 마 오.』

『누구나 첫서방한테는 정이 더 드는 법이라, 나도 처음에 는 그랬다만 갈 때에 오마 아니하는 님 없고 오마하고 오는 님 없더라. 네가 아직 경난 못하여 그놈의 소리를 믿는구 나.』

『어머니, 그럴 리 없소! 천하 사람을 다 못 믿어도 우리 도련님을 나는 믿소.』

월매 비웃으며,

『오냐. 첫서방 적에는 누구나 다 그러니라. 너와 같이 믿 나니라. 그 서방 죽으면 따라 죽을 것도 같고 일생에 다른 서방 대하지도 아니할 것 같으니라.』

춘향이 기가 막혀 길바닥에 펄썩 주저앉으며,

『어쩌면 어머니 그런 말씀을 하시오—이 자식이 이 자리에 서 목절피하는 것을 볼 양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죽소! 나는 죽소!』

하고 몸부림하고 운다.

월매는 범연하게 웃으며,

『오냐 오냐. 어서 가기나 하자. 첫서방 적에는 나도 그리 하였더니라. 그러하지마는 새서방 맛만 보면 첫서방만 못하 지 아니하니라. 너도 이삼일 사오일 지나면 이별 설움도 잊 어버리고 그럭 저럭 신관 사또 도임하면 또 책방 도련님 있 을 터이니 어디 서방 흉년 들었더냐. 염려 마라. 울지 말고 집에 가서 아침이나 먹자.』

춘향이 생각하니 아무리 말하여도 월매의 마음 못 돌리고 자기 마음 월매에게 알리지 못할 줄 알고 울음을 그치고 일 어나 따라갈 제, 한 걸음에 돌아보고 두 걸음에 돌아보고, 몽룡의 나귀 지난 길을 다시금 돌아보며 월매와 상단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온다.

춘향이 몸은 비록 집으로 끌려오나 혼은 몽룡의 나귀를 따 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한양으로 행한다. 눈앞에 알른알른 박석퇴 넘어가는 몽룡의 모양이 보이고 오류정에서 손길을 부여잡고 이별하던 양이 보이니 눈물이 앞을 가리워 길이 보이지를 아니한다. 몇 번이나 돌에 채와 넘어질 뻔하나 아 픈 줄도 모르고 춘향이 집으로 걸어 간다.

혼이 빠진 듯하고 정신이 없는 듯하여 아뜩아뜩 기가 막히 니 이러고도 살 수가 있을까? 춘향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상단이 시켜 대문 중문 굳이 닫아 걸게 하고 제방인 부용당 덧문조차 닫아 걸고 자리 펴고 아랫목에 쓰러졌다.

相思(상사) 편집

오류정에서 몽룡을 이별하고 돌아온 춘향은 종일 아무것도 아니 먹고 방에 누워 있었다. 월매는 딸을 생각하여 밥도 권해 보고 밥을 안 먹으면 죽도 권해 보고 미음도 권해 보 며,

『아가, 어서 무얼 좀 먹어라.』

하고 애를 쓰면 춘향은 늙은 어머니가 애쓰는 것이 미안하 여 일어나 숟가락을 들어 보나 눈물에 목이 메어 먹는 것이 넘어가지를 아니한다.

『어머니, 목이 메어 못 먹겠소.』

하고 숟가락을 놓으면 월매는 화를 더럭 내며,

『이년아, 너는 서방만 알고 어미는 모르느냐. 네가 안 먹 으면 낸들 먹겠느냐. 네 앞에서 내가 목절피를 하여 죽는 것을 보랴느냐?』

하고 몸부림을 한다.

『어머니, 우지 마오. 내가 먹을리다. 우지 마오. 지금은 목 이 메어 못 먹겠으니 두고 건너 가시면 이따가 먹을리다.』

이 모양으로 월매의 권에 못 이기어 먹으며 말며 춘향은 마치 병든 사람 모양으로 그날 그날을 보낸다.

『이런 줄 알았더면 보내지를 마옵거나 차라리 가는 님을 따라라도 가올 것을 보내고 애타는 나를 나도 모르겠네. 이 별이 설운지고 님 이별이 과연 설운지고. 생각던 것보다도 한없이 더 서럽구려. 이 설움 어이 품고 살거나. 나는 못 살 겠네. 사랑이 깊사오매 이별이 더 설운지고. 이리 설은 이별 이면 사랑이나 말을 것을. 사랑코 이별한 몸이 차마 살기 어려워라. 울며 잡는 소매 뿌리치고 가신 도련님아. 내 이리 설울진댄 님인들 아니 설울소냐. 이 설움 어이 참아 지내시 나. 눈물겨워 못 살겠네. 오늘은 어디나 가실꼬. 오늘 밤은 어느 여막에서 날을 혀오시나. 님도 나와 같아선 잠 못 이 루시나.』

이 모양으로 혼자 울고 생각하고 탄식하다가 여러 날 상사 의 괴로움에 지어치어 어슴푸레 잠이 들었더니 문밖에 낯익 은 발자취 들리며,

『춘향아!』

하고 몽룡이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춘향이 자리에 누워 잠 든 것을 보고,

『못 믿을건 여자론다. 여자를 못 믿을레라. 나는 너를 찾 아 천리길에 예 왔건만, 저는 나를 잊고 깊이 잠이 들었네 그려. 못 믿을손 여자의 맘이로고나.』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문을 도로 닫고 나가 버린다. 춘향 이 놀라 잠을 깨어 일어나서 버선발로 따라나가니 몽룡의 도포자락이 중문간에 펄렁하는 듯하고 불러도 대답없고 섬 밑에 이슬 맺힌 파초 잎만 달빛에 너훌너훌, 반딧 불만 소 리없이 반짝반짝 오락가락할 뿐이다.

춘향이 도로 방에 들어와,

『꿈이로구나. 한바탕 꿈이로구나. 한양에 가신 님의 꿈 아 니고 오실 리 있나? 꿈아 어린 꿈아. 오신 님도 보낼건가.

오신 님 보내느니 잠든 나를 깨우려문. 날 두고 가시기로 잊으신 줄만 여겼더니 꿈에 와 찾으시니 님도 나를 생각하 시나 보이.』

이러구러 몽룡이 떠난지 이십일이 넘어서 하루는 방자가 춘향의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춘향아, 잘 있느냐. 도련님한테서 편지 왔다.』

하고 편지를 내어 준다.

춘향은 그 편지를 받아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차마 떼 지는 못하고 방자더러,

『그래 먼길에 발덧이나 안 났소? 도련님께서 내행 모시고 무사히 득달하시었소? 그래 가시는 길에 도련님이 나를 생 각이나 하십디까?』

하고 공손하게 묻는다.

평생 이녀석 저녀석하던 춘향이가 자기를 보고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방자 일변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가엾이 도 생각해서 그렇지 아니하면 농담 마디라도 할 것이언마는 아주 의젓하게,

『다 무고히 가시고 도련님도 길에서 밤낮 네 말만 하시더 라. 내가 띠나오랴고 하직할 때에도 도련님께서 이 편지 주 시며 차마 울지는 못하고 입만 벙긋벙긋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그만 비감해서 먼저 울었다.』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는다.

춘향은 상단을 불러 방자에게 안주 잘 놓고 술 한 상 차려 대접하라 분부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몽룡의 편지를 떼었다—.

『오류정 이별이 아까 같건마는 벌써 일순이 시내었으니, 세월의 흐름이 물같이 빠르도다. 원컨댄 세월이 살같이 빠 른게 흘러 그대와 상봉할 날이 속히 돌아오기를 바라노라. 그 동안 니어 평안하며 장모도 무고하신가 궁금하며, 나는 사당 내행 모시고 일로 평안히 서울에 득달하여 혼실이 별 고 없음을 보니 행이어니와, 사랑하는 그대를 칠백리 남원 에 두고 나 홀로 한양에 돌아오니 만호장안이라 하건마는 광야에 있는 듯하도다. 그대의 용모와 음성이 주야로 내 눈 과 있으니 어찌 침식인들 평안하리오. 삼각의 암암한 바위 와 종남의 울울한 창송이 모두 그대인 듯하여 정히 맘을 진 정할 수 없노라. 그대도 나와 같을 줄을 생각하매 만날 마 음이 살보다 빠르거니와, 내 아직 그대를 찾을 수 없고 그 대 아직 나를 따를 수 없으니 진실로 단장할 일이로다. 그 러나 우리의 연분이 삼생에 이어 있고 우리의 언약이 철석 과 같으니 반드시 다시 상봉할 날이 있으리라. 부대 맘을 변치 말고 천만보중하여 그날을 기다리라. 종이를 대하니 할 말이 무궁하도다. 면면한 정회를 붓으로 다 그릴 수 없 으니 원컨댄 생각하라. 나의 마음을 그대 알고, 그대의 마음 을 내 알거니 어찌 모르미 말하리오. 돌아가는 편이 총총하 매 이만 그치노라.』

하고 연월일 밑에 이 몽룡은 서라고 쓰고 나서 다시 작은 글자로,

『상단도 잘 있으며, 청삽사리 물 잘 먹고 화계에 석류 꽃 은 어떠하며, 부용당 앞에 파초도 몇 잎이나 더 피었으며, 담 밑에 늙은 향나무 그늘이나 좋은지 모두 눈에 암암하도 다.』

하였다. 춘향은 보고 또 보고 사오 차나 보고 나서는 혹 편지 뒷등에도 무슨 말이 써 있는가, 혹 필봉 속에 한 장 더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뒤집어 보고 떨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없으므로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길게 한숨을 지며,

『왜 편지라도 좀 길게 안 쓰시었나.』

하고 탄식한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무릎에 놓인 편지를 들고 읽고 나서,

『어머니!』

하고 불렀다.

월매는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도련님헌테서 편지 왔소.』

『응. 무어라고?』

하고 월매 일어나 문지방으로 머리를 내밀어 춘향의 방을 바라보다가 방자가 마루에 앉아 술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오 너 무사히 다녀왔니? 발덧이나 안 났느냐?』

『아주머니, 편안하시오? 그까진 서울이야 열 번 다녀오면 발덧 나겠소?』

하고 방자는 맘놓고 술만 마신다.

월매는 눈을 비비며,

『그래, 무어라고 했어?』

『잘 있느냐고. 어머니도 평안하냐고. 무사히 왔으니 염녀 말라고. 상단이도 잘 있느냐고. 화계에 석류꽃은 어찌 되었 으며, 부용당 앞에 파초는 새 잎이 몇 잎이나 나왔느냐고.

늙은 향나무 청삽사리 다 잘 있느냐고.』

월매 못마땅한 듯이 침을 퉤 뱉으며,

『망할 녀석! 사내 녀석이 별 잔소리를 다하지. 퍽도 일이 없던가 보고나. 그래 그뿐이야? 다른 말은 없니?』

춘향은 월매의 말에 좀 불쾌하였으나 억지로 참고 공손히,

『다른 말은 없어요.』

하고 창 밖으로 내밀었던 고개를 들이켜 버린다.

월매는 또 한 번 침을 퉤 뱉으며,

『천하에 전 깍장이 녀석 같으니. 이번 오는 편에도 돈 한 푼 이렇단 말이 없담.』

하고 춘향이 모양으로 문지방 위로 내밀었던 목을 움츠린다.

춘향은 곧 붓을 들어 몽룡에게 답장 쓰기를 시작하였다—

『도련님 전 상살이 도련님께오서 박석퇴 넘으심을 뵈옵고 천지가 아득하와, 눈물로 집에 돌아온 후로 우금이순에 도련님 소식 몰라 궁 금하고 답답하옵던 차에, 방자편에 부치신 하서 받자와 원 로에 평안히 행차하시고, 댁내 한결같이 만안하옵심 듣자오 니, 깃사옵기 이로 측량 못하오나, 주야로 사모하옵는 도련 님께서는 산첩첩 수중중한, 천리 한양에 계시와 만나 뵈올 기약이 망연함을 생각하오니, 도로혀 눈물이 앞을 가리오나 이다. 도련님은 대장부시라 이별의 설움을 잊을 일도 많으 시려니와, 소첩은 일개 아녀자라 독수공방에 생각나니 오직 도련님 뿐이오니 하루 열 두시 어느 시에 도련님을 생각지 아니하오며 어느 시에 상사의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오 리이까. 도련님 뵈옵고 있을 때에는 과연 석화광음이라, 일 년 열 두달이 꿈결같이 지나가옵더니 도련님 이별하온 후로 는 일각이 삼추 같사와 지나간 이순의 세월이 이년보다도 더 긴 듯하오니, 이 앞에 오는 세월을 어이 굴어 보내오리 이까. 생각할사록 오직 눈물이요, 한숨뿐이로소이다. 그러하 오나 가슴에 맺힌 일편단심이야 천만년을 지난들 가실 줄이 없사오리니, 불행히 생전에 도련님을 다시 뵈옵지 못하고 소첩의 실낱 같은 목숨이 끊어진다 하오면, 도련님을 사모 하옵는 혼은 반드시 훨훨 날아 한양으로 가오려니와 몸은 망부석이 되어 마지막으로 도련님을 이별하옵던 박석퇴에 서서 천년 만년에 피눈물을 흘리며, 도련님을 기다릴까 하 나이다. 세상에 슬픈 일이 많다 하온들 사랑하는 님 이별하 기보다 더 슬픈 일이 있사오며 못할 일이 많다 하온들 천리 에 계신 님을 기다리기보다 더 못할 일이 있사오리이까. 만 나 지를 말았거나 만났거든 떠나지를 말았거나, 떠났거든 그리지를 말았거나 만났다가 떠나고 그리옵기는 차마 못할 일이로소이다. 그러하오나 소첩도 다행히 옛글을 배운지라, 어찌 한갖 정만 생각 하옵고 대의를 헤아릴 줄 모르리이까.

소첩은 비록 아녀자의 몸이 되어 규중에 있어 장부를 생각 하므로 능사를 삼으려니와, 도련님은 대장부라 반드시 뜻을 크게 하시와 위로 성상을 도와 아래로 만민을 다스릴 직책 을 가지시니, 해가에 홍규의 정을 생각하시리이까. 방자의 말을 듣사옵건댄, 도련님께서 하루라도 속히 소첩을 만나실 일을 생각하신다 하오니 그 두터우신 정은 감격하오나, 이 는 소첩의 본의 아니오니, 금방에 이름을 거시고 국가에 중 신이 되시길 전에 비록 소첩을 찾으시더라도 소첩은 차라리 자진할지언정 다시 뵈옵지 아닐까 하나이다. 원컨댄 도련님 은 일시의 정애를 잊으시고 경국제민의 큰 의를 생각하시옵 소서.

소첩의 어미 평안하시고 상단이도 잘 있사오며 화계의 석 류는 벌써 꽃잎 이울었고 부용단 앞에 파초는 도련님 가신 뒤에 두 잎이 새로 났사오며 늙은 향나무 싱싱하옵고 청삽 사리도 잘 있사오나 이로부터 소첩의 집을 찾을리 없사오니 삽사리도 짖을 일이 없을까 하나이다. 종이를 대하오매 살 을 바를 알지 못하옵고 오직 눈물이 앞을 가리오니 아녀자 의 용렬한 정을 웃어 주시옵소서.』

하고 연월일 밑에 소첩 춘향은 상서라 하고 붓을 던지고는 한참이나 말없이 망연히 앉아 입만 벙긋벙긋하더니,

『나도 어리석다. 도련님 편지는 오는 신편이 있어 왔건마 는 내 편지는 누가 갖다 주리라고 썼나?』

하고 한숨을 진다.

방자 마루에 앉았다가 춘향의 탄식하는 것을 보고,

『춘향아! 네 편지어는 내 갖다 주마.』

『에그, 뜻은 고맙소마는 구실은 어찌하고 또 서울을 간단 말이요?』

『참 그도 그렇구나. 옳다.』

하고 방자 무릎을 치며,

『불원에 신연 하인들이 올라갈 터이니 그때에 부치어 주마.』

守節(수절) 편집

구관 사또 자제 이 도령이 서울 올라간 후에 춘향이가 수절한다는 소문이 나자 남원 부원내에 있는 관속, 건달, 한량 할 것 없이 오입쯤이나 한다는 작자들은 모두 춘향에게 맘 을 두게 되었다. 그래도 사또 자제 이 도령이란 이름 때문 에 얼마 동안은 감히 건드려 볼 생각을 내이지는 못하였으 나 몽룡이가 서울로 간지가 한 달 지나 두 달 지나, 구관 사또도 무서움이 점점 스러지게 되니 이 패들도 움직이기를 시작한다.

『얘. 내 춘향이 놀려내랴?』

하고 한 작자가 장담하면,

『어림없다. 그년이 젖 먹을 적부터 맵기가 호초알이다.』

하고 한 작자가 고개를 흔들고 또 한 작자가,

『네깟놈은 어림도 없다. 춘향이 놀려낼 놈은 이 세상에 나 밖에는 생겨 나지를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장담하면 다른 한 작자는,

『사나이로 생겨 나서 춘향이 한 번 못 안아 보면, 공연히 어미 배만 아프게 한 심이니.』

하고 충동이를 한다.

이 모양으로 술집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노름판에서 이야 깃거리가 되고 공사 없는 때 삼문간과 장방에서까지 이야깃 거리가 되니 심지어 어염집 더부살이 놈까지,

『나도 한 번 춘향이를 얼러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내게 된다.

『어떤 잡놈은 팔자가 좋아서, 춘향 아씨네 안머슴 산다네 에히야.』

하는 노래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리 되니 초어스름이면 춘향의 집 담 모퉁이로 대문 앞으 로 담뱃대를 버티고 공연히 왔다갔다하면서 잔기침하는 자 가 하나 둘 생기게 되어 춘향이 집 청삽사리를 부질 없이 짖게 한다. 그러다가 혹 아는 놈끼리 서로 맞다지르면,

『허, 자네 어디 가나?』

『응, 나 저기 누구 좀 보러 가네. 자네는 어디 가나?』

『나 말인가. 나도 저기 누구 좀 만나러 가네.』

하고 서로 서먹하고 싱거워서 가장 바쁜 일이나 있는 듯이 빨리빨리 걸어간다.

이러기를 얼마를 하노라면 그중에 가장 용기 있는 자가 호 기스럽게,

『이리 오너라! 문 열어라!』

제 첩의 집이나 찾는 듯이 야단을 하고 만일 상단이나 월 매가 마지 못하여 문을 열어 주면,

『춘향 아씨 무사한가?』

하고 바로 친구의 집에나 온 조요, 그리고는 서슴치 않고 뚜벅뚜벅 춘향의 방 앞으로 가서 제 방문 열 듯이 문을 벌 꺽 열어 젖히고는 기생집에서 하는 조로,

『태평하오? 무사한가?』

하고 턱 들어 앉아서는 누워 있는 춘향을 일으켜 놓고, 담 배 먹고 이야기하고 맘대로 놀다가 가고, 그중에도 뱃심 좋 은 놈은,

『춘향아, 소리나 한 마디 하여라!』

하고 바로 호기를 부리고, 더 심한 놈은,

『너 이 도령 기다려야 쓸데 없다. 대갓집 자식이 기생첩 여남은 개 못하면 행세를 못하는 법이니, 그래 어느 천년에 너 찾을 줄 아느냐. 나하고 살자.』

하고 직설거로 내 붙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축이 하나씩 둘씩 자꾸 늘어 가니 춘향의 집 문전 에 거의 사람 끊일 새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월매는 비록 일점 흑심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는 장자들 중에 다행히 큰 고기나 하나 걸리면, 첫째로 춘향의 상사병도 낫겠고, 둘 째로 몽룡에게 헛미끼 때운 것도 보충할 생각을 하여 처음 에는 딱딱하게도 굴었으나, 점점 아양을 부리게 되었을지라 도, 춘향은 이 작자들 찾아오는 것이 분하기도 하고 시끄럽 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없으니 어디 등 을 대일 데가 있을까. 한사코 대문을 안 열어 주면 발길로 차고 지랄을 하니 남부끄럽고, 방에 들어온 뒤에 푸대접하 면 당장에 수모도 수모려니와 원혐을 품어 무슨 짓을 할는 지 모르겠고, 마치 물귀신에게 단련을 받는 사람처럼 춘향 의 얼굴에는 날로 병꽃만 노랗게 핀다.

『이년, 양반 서방했다고 건방지게...... 주릴할 년 같으니.』

춘향이가 조금만 빳빳이 굴면 다짝 고짜로 이런 욕설이 나 온다.

『이년, 양반 서방해서 양반이 되는 것 같으면 팔도 잡년 에 양반 아닌 년이 없겠고, 양반집 종년들 행랑것들 모두 다 양반 되었겠다. 아니꼬운 년 같으니.』

이러한 욕설이 나오고, 또 혹 같이 살자든가 하룻밤 같이 자자는 작자더러 춘향이가 몽룡을 위하여 수절한다는 뜻을 말하면,

『건방진 년 다 보겠네! 수절, 요절이 어떠냐. 기생년 이라 는 것이 동각이 나룻배와 같아서 양반이나 상놈이나 선가만 주면 태울 것이요, 한뱃짐 실어 건느고 와서는 또 다른 사 람 태울 것이지 기생년이 수절이 다 무엇이냐.』

하고 대드는 놈까지 있다.

또 그 중에는 제발 덕분에 날 사랑해 줍소사 하고 거의 날 마다 밤마다 석고 대죄정 하배로 빌붙는 놈도 있고, 나는 벼를 몇 천 석을 하고, 어디 좋은 정자가 있고, 요건 첩도 내보낼 때에 상상답으로 몇 백 석지기를 떼어 주었으니 내 게 오너라, 하고 중매를 보내는 중늙은이도 있고, 글씨도 곧 잘 쓰고 글도 곧잘 지어 문장과 풍류를 가지고 춘향의 맘을 움직여보려는 선비도 있고,

『네가 만일 내 말을 안 들으면 모월 모일 모시에는 내 칼 을 맞으리라.』

하고 위협하는 놈도 있고, 또 그 중에는,

『내가 너를 생각하여 병이 골수에 들어 백약이 무효하니 이 병을 고칠 자는 오직 너뿐이라. 나를 불쌍히 여겨 한 번 만 나를 만나기를 허하라.』

하고 병 핑계로 애걸복걸하는 자도 있고, 혹은 사람을 보 내어, 혹은 월매를 꾀어, 혹은 무당 사주장이 같은 것을 보 내어,

『춘향 아가씨는 인물도 잘 나고 인복도 있지마는 팔자가 세어서 꼭 두 번 팔자를 고치어야겠는 걸.』

하고, 손금보기가 춘향의 손금을 보면 월매가 곁에 있다가, 솔깃하여,

『그래 팔자를 고치면 복록이 있소?』

『아이 그럼은. 어디 자세히 봅시다.』

하고 곡조를 맞추어,

『곤명은 성씨요 오호...... 십 팔세는 가서 어허...... 팔자 장문 에헤 복록금과 자손금은 좋으나 아하...... 내외금이 라......』

하고는 다시 예사 말조로,

『암만해도 둘쨋 번에는 김씨 가문으로 들어가겠다. 본처 로 가면 또 이별수가 있으니 암만해도 부실로 가야 하겠 다.』

하고는 또 노랫조로,

『팔자는 장문에 그렇게 에헤 삼신제석 칠성님께서 점지 하신 것을 어찌하느냐. 김씨 가문에 부실로 가면은 아들 삼 형제 딸 삼형제 에헤 가즈런히 낳고 오호 복록이 무궁하리 라......』

하고 다시 예사 말조로,

『재미가 깨보송이 같겠다.』

이 모양으로까지 꾀인다.

그러나 춘향의 맘이야 움직일 리가 있으랴. 다만 날로 몸 만 축하고 맘만 상할 뿐이다.

『어려워라, 어려워라, 수절하기가 어려워라. 상년이 수절 하기 더욱 어렵다만 기생이 수절하기는 죽기보다도 어려운 지. 양반 못 되고는 수절조차 못하겠네 그려!』

하고 춘향은 혼자 한탄하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서울 몽룡에게서 방자 편 에 편지 한 장이 오고는 일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어진 것이 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까치만 깍깍 지저귀어도 개만 콩콩 짖어도 서울 편지만 기다려도 편지는 오지 아니하고 건달만 모여 들었다.

『날 잊고 가신 님을 나는 어이 못 잊고서 주주야야로 상 사루만 흘리다가 잠이 들면 꿈이 되어 님의 곁을 따르는고?

차라리 님 그리는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장장 추야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어 있어 날 잊고 깊이든 잠을 깨워 나 볼까나. 어쩌면 야속히도 한 장 안 주시나. 죽으시었나, 잊으시었나. 죽으시었으면 혼이라도 오시려든 아마도 날 잊 었네. 어찌 그리도 야속하실까. 청춘의 고운 양자 님 생각에 피골이 상접하였으니 님이 비록 대과 급제하여 날 찾아 오 신다 한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까. 내 무덤이나 보러 오시려나. 언제나 오시려나. 날 이미 잊은 님을 나만 부질없 이 생각하고 알뜰살뜰이도 애를 끓는 것이 아닌가. 나도 차 라리 잊어버릴까, 잊어버릴까. 어이 잊어버리고, 못 잊으리 라! 님이야 잊으라 하라. 나는 잊지 못하리라.』

하고 울며 탄식할 뿐이다.

이 부사가 올라간 후에 김 부사라는 이가 남원에 좌정하여 한 일년 동안 있다가 나주 목사로 이배하여 가고, 새로 난 남원 부사가 남촌 사는 변 학도라는 양반이다. 얼굴이 반반 히 난 까닭인지 소년시부터 색을 좋아하여, 종년이고 행랑 것이라도 들어오는 대로 모조리 손을 대이고, 남의 유부녀 수절 과부까지도 엿보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어서 친척과 동류간에, 좋게, 말하면 오입장이 좋 지 못하게 말하면 망나니라는 이름을 들어 왔다. 글이라고 는 편지 한 장 변변히 쓰지 못하되, 양반이란 지체가 좋와 서, 조상의 뼈 덕과 외가 처가 결린 덕으로 남행초사로 시 작하여, 이골 저골 조그마한 산읍으로 현령 군수를 돌아다 니며, 계집과 돈 때문에 민요도 몇 번 겪어 의례면 찬 마루 방 잡을 자야만 옳을 사람이언마는, 그 역시 양반 덕에 도 리어 승차하여 상전에 말망 낙점으로나마 천만 의외에 남원 부사 한 자리를 얻으니 변 학도의 의가 양양한 모양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전라도 남원이 색향이란 말과 남원에 명 기 춘향이 있단 말을 들으니, 일각이 삼추 같고 좌불 안석 하여 날로 신연 하인 오기만 기다린다.

『대체 남원이 몇 리나 되길래 사오일이 넘도록 신연 하인 기척이 없노?』

하고 자못 불편하던 차에 잔뜩 졸라 열 사흘만에 남원부신 연 관속들이 올라와 수청 불러 거래하고 현신하러 들어온 다. 신연, 유리, 이방, 후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아전이 며, 통인 급창 사령, 군노, 허다한 관속들이 차례로 겨하여 나와,

『신연 이방 현신 아뢰오.』

『신연 통인 현신 아뢰오.』

『신연 수배 현신 아뢰오.』

『신연 급창 도사령 도군노 도방자 현신 아뢰오.』

하고 현신하니 변 부사 눈도 안 거들떠 보고 앉았다가 소 리를 벼락같이 지르며,

『저놈들 모조리 몰아 내치라. 고이한 놈들. 남원이 몇리길 래 인제서야 대령한단 말이냐. 한서부터 주리로 죽을 놈들 바삐 내치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호령이 내리니 어느 영이라고 거 역하랴. 꼭뒤가 세 뼘씩이나 한 주먹건대들이, 벌떼같이 신 연 이방 이하로 꼭뒤질러 몰아 내칠세, 문 밖으로만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라 뛰는 대로 나서 영에 띄애 남산골 네거 리까지 몰아나와서 그 섬에 장악원 앞까지 활활 몰아 한숨 에 구리개 병문까지 몰아내뜨리고 돌아오니 변 부사가 골김 에 다 몰아내치기는 하였으나 다시 생각하여 본즉 모양도 아니 되고 제일 그곳 소식을 물을 곳이 없어 걱정이다. 청 지기를 불러,

『여보아라, 남원 하인 하나도 없느냐. 가 보아라.』

이때에 마침 방자 하나가 발병이 나서 낙후되어 몰아내치 는 통에도 참예를 못하고 저축저축 들어와서,

『신연 방자 현신 아뢰오.』

하고 현신을 한다. 그 형상이 아주 허술하여 얼굴은 검하 고 한 눈은 굿고 흉악히 추하게 생겼다. 부사는 방자를 보 고,

『압다 그놈 잘났다. 외모가 심히 순박한 것이 기특한 놈 이로다. 네 고을 일을 다 자세히 아느냐?』

한즉 방자는 부사의 치살리는 말에 신이 나서,

『소인이 이십여 년 그곳에 생장하였사오니 털 끝만한 일 이라도 소인이 모를 고이한 말씀이오나 없읍니다.』

부사 허허 웃으며,

『어허 시원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위선 관원의 비위를 맞 추어 대답하는 것이 기특하다. 네 구실은 일년에 얼마나 먹 고 다니느냐?』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소인의 원 구실은 일년에 황촌 넉 섬뿐이온데, 그러하온데다가 이런 때에 행차를 뫼시러 오옵 거나 관가 구실로 서울 왕래를 하옵거나, 자로자하는 법이 옵기에 길에서 주막에 외상 먹고 다니옵거나, 여북하오면 굶고 다닐 적이 많사옵고, 그러옵기에 변지변리 지리하여 주는 경주인의 빚이 무수하옵고 환상도 매양 바칠 길이 없 사와 볼기 맞기를 섣달 그믐날 흰떡 맞듯하옵니다.』

『불쌍하다. 네 고을 방임에 많이 먹는 방임이 얼마나 되 느냐?』

『예. 젓사오되 수삼천금 쓰는 방임이 서너 자리 되옵니 다.』

『그러면 너를 다 시키리라.』

『황송하오된 상덕이 하늘 같사오이다.』

부사는 말을 이어 방자더러,

『그는 그러하고 여보아라. 네 고을에 무엇이 있다 하더구 나. 압다 유명한 무엇이 있다 하더구나.』

『젓사오되 무엇이온지 모양만 하문하옵시면 알아 바치오 리다.』

부사 풀갓끈에 뒷짐지고 대청으로 거닐면서,

『압다 이런 정신이 왜 있으리. 고약한 정신이로구나. 금시 에 생각하였더니 고사이 깜빡 잊었구나. 정신이 이러하고 도임 후 수다한 공사를 어찌하리. 성화할 일이로다. 애구, 무슨 양이 옳지 무슨 양이 있느냐. 아조 논난 없이 절묘하 다더구나.』

『양이라 하옵시니 무슨 양이오니까?』

『허, 그놈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 나무래 무엇하리. 그 놈 내려가 종차 알려니와 제일 급히 내려가 놓고 볼 말이니 네 고을이 서울서 몇 리나되나니?』

『예, 젓사오되 본관 읍내가 꼭 육백리로소이다.』

『그러면 내일 일찍 떠났으면 저녁참에 들이 다히랴?』

방자 기가 막혀 부사를 한 번 힐끗 보고,

『젓사오되, 내일 숙배나 하옵시고, 각사 서경이나 하옵시 고, 모레 한겻쯤 떠나시면 자연 날 궂는 날 끼이읍고 가압 시다가 감영에 연명이나 하옵시고, 연로 각 읍에 혹 연일 유숙이나 되옵시고 혹 구경처에 놀이나 하옵시고, 천천히 내려 가옵시면 한 보름이나 하여 도임하옵시리다.』

『어허, 이놈 고이한 놈. 보름이라니. 그놈 곧 구워다힐 놈 이로구나. 이놈, 아까 시킨 서너 자리 방임을 다 제명하라.

그놈 쫓아내고 청지기 불러 신연 하인에게 내 분부로 제잡 담하고 길 바삐 차리라 하라.』

이튿날 평명에 변 부사 사은 숙배 얼른하고 장안 서경 잠 깐하고 사당에 참배하고 길을 떠나 내려간다.

전배 한쌍 앞에 서서 통량갓에 큰깃 꽂고 패영 한삼 너훌 너훌 가티창옷 펄렁펄렁 유목 곤장에 방울 달아 둘러 메고 일산 앞에 죽 갈라가서,

『예라 이놈 나지 마라.』

하고 소리치고, 그 뒤에 변 부사는 구름 같은 벌련에 덩그 렇게 올라앉아 모란새김 완자창을 좌우로 반쯤 열어 놓고 일등 마부 경마 잡고 천장옷 입고 키 큰 사령 뒤채 잡아,

『마부야, 네 말 좋다 하고 일시 마음 놓지 말고 두 팔에 힘을 올려 양엽 기울지 않게 마상을 우러러 고루 저어라.』

하면 앞선 마부는,

『굳은 돌이야.』

『지방이야.』

하고 연해 소리를 지르고, 부사의 벌련 좌우에는 육방 아 전 나졸 일산 구종, 말탈 자는 말을 타고, 걸을 자는 걸어서 따라오는데, 신연 이방의 치레를 보면 고양나이 저고리바지 반주동옷 모시직령 조촐하게 차리고 갖은 부담에 올라앉아 벌련 뒤를 따르고, 통인은 남방수수 누비바지 삼팔동옷 갑 사괘자 발향한층 학슬 안경을 알 듯 모를 듯 넌짓 차고 가 진 부담에 착전립하고 올라 앉았고, 급창은 키 크고 길 잘 걷고 영리하고, 말 잘하기로 유명한 놈이라. 외올 망건 대모 관자 진사당줄 달아 쓰고, 언월 상투 산호동굿 호박풍잠에, 이백줄 평포립을 한일자 지게 반듯이 쓰고, 백수주 누비바 지 한산모시 뱅패철익자락을 각기 접어 흑전사 수건으로 뒤 로 젖혀 잡아매고 숙수반배 고단배자에 은장도를 비슷 차 고, 청천모초 허리띠를 좌견같이 넓게 접어 무릎 아래 떨어 뜨리고, 도리불수 금낭에다 대구팔사 꿰어 차고, 협낭 쌈지 술쌍끈은 오색으로 얼른거리고, 사날 짚신 엽총따서 낙고지 로 들매어 신고, 결백한 장유지로 대님 접어 잡아매고, 청장 줄 검고 매고 활개를 활활 치며,

『대마 구종아, 너 갈데 보지 말고 말 갈데 보아라. 주먹같 이 내민 돌이 서슬이 퍼렇고나, 팔 힘을 올려 고로 걸어 라.』

하면 내마 구종은,

『예, 숨은 돌이야.』

하고 돌 있는 것을 알린다.

전후 좌우로 옹위한 신연 군노들은, 산수털 벙거지에 남일 광단 안을 받치어 날랠 용자 떡 붙이고, 궁초 전복에 시뻘 건 흥광대에 배자 토수 은장도 오색 수건이며 남북견대에, 금낭을 여럿 달아 뒤로 숙여 비스듬히 둘러매고 불량한 눈 방울을 이리 저리 궁글리며,

『예라 예라 이놈 나지마라.』

하고 소리소리 외치니 십리나 늘어선 듯한 남원 부사 행차 의 위엄이 무시무시하다.

이 모양으로 위의를 갖추고 남대문 내닫아 돌모루 동적강 얼른 건너 남태령 넘어 과천군에 숙소하고, 사천평에 중화 하고, 늑미당이 지나 수원군 월참하여 소사 술막 중화하고, 성환지나 덕평을 월참하여 원터에 중화하고, 공주 감영 숙 소하고, 경천 지나 노섬관에 중화하고, 사다리 지나 은진관 에 숙소하고, 여산부 중화하고, 능기울지나 삼례 긴둥 넘어 가서 전주 감영 연명하고, 노고바위 숙소하고, 굴바위 더위 잡아 새술막에 중화하고, 임실관 숙소하고, 운수바위 중화하 고, 남원부 오류정에 개복청 헐숙하고, 삼반 관속육방 아전 이 지경등후하니 연봉육각 소리가 울려난다. 대장청도 드라 청도 한쌍 홍문 한쌍, 곰고 한쌍, 호통 한쌍, 나발 한쌍, 바 라세악수 두 쌍, 고두쌍 저 한쌍, 순시 한쌍, 영기 두쌍, 중 사령 좌관이 우령전 집사 한쌍, 기패관 두쌍, 군노 직영 두 쌍, 주라 나발 호적 행고 대평소 천아성이 힐니나누나네 너 나니 괭 뚜처르르뚜 빠 삘릴리 허하고 천지가 진동하듯이 운다. 기치검극은 일광에 번쩍거리고 일산의 긴 노마며 권 마성이 더욱 좋다.

집사 장교 행렬 뒤에 별대마병 오십쌍, 인신통인 관노, 급 창, 다모, 방자가 늘어서고 그 뒤에는 아이 기생은 녹의 홍 상으로 어른 기생은 착전립하고, 육각으로 취타고삼현으로 전배하여 성문에 입성포요. 관문에 하마포로 동헌으로 들어 가니 위의도 장하다.

도임 후 삼일만에 좌기할세 좌수 별감 현알하고, 모든 장 교 군례 받고 육방 아전 현신하고 기생 통인 문안 받은 후 에 부사 신연 유리를 불러,

『네 고을에 대소사는 네 응당 알 것이니 바른 대로 아뢰 어라.』

하고 분부하니 신연 유리 분부 듣고 환상 민폐 진걸 복수 피수도안 대무읍사를 대강 대강 아뢰이니 부사 골을 내어,

『네 고을에 유명한 것 있다더구나. 그것부터 아뢰지 아니 하고 웬 같잖은 딴소리만 하느냐. 무슨 양이라고 있다더구 나.』

유리 무슨 뜻인지 몰라 겁결에,

『양이라 하옵시니 창고에 군량이요, 육고에 우양이요, 공 고에 잘량이요, 마구에 외양이요, 쥐잡는 고양이요, 불가서 공양이요, 수줍은 사양이요, 시냇가에 수양이요, 해다지어 석양이요, 남녀간에 음양이요, 엄동설안 휘양, 허다한 양이 무수하온데 대강 이러 하외다.』

부사 고개를 홰홰 내 저으며,

『압다 압다 다 아니로다.』

갓사오대 사람 못된 것은 서울서는 무엇이라고 하옵시는지 모르거니와 소인의 고을에서는 잘양이라 하옵니다.

『그도 아니다.』

자수 곁에서 듣다가 민망하여 꿇어 앉으며,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만의 고을에 소산으로 물 맑은 새 양이 많사외다.』

부사 증을 내어,

『유리라 하는 것은 관장의 이목이니 변동 부부지간이라.

그런고로 유리라 하거늘 다 삭은 바자틈에 노랑개 주둥이처 럼 말 짓이 고이하고.』

하고 통인 불러 좌수를 몰아내친 후에,

『여보아라, 삼반 관속들이 나를 지영하느라고 모두 가쁜 모양이니, 다른 점고는 다 제폐하고, 점고를 넘어 아니하는 것도 무미하니 그편에 있는 기생 점고로 하게 하라. 네 고 을이 대무관 색향이라 하니 기생이 모두 몇 마리나 되냐 니?』

『형방이 아뢰옵. 원기, 수비, 대비, 정속비, 모두 합하오면 한 오십수 되옵니다.』

『매우 마뜩하구나. 기생 유명한 것은 하나도 유루 말고 톡톡 떨어서 점고에 현신하게 하라.』

부사의 분부 듣고 이방이 나와 모든 기생 지휘하며 혼잣말 로,

『이 사또 알아 보겠다. 사뭇 똥항아리요. 잘양의 아들이 내려왔구나.』

형리 수노 불러 기생 도안을 들여놓고 오십여 명 남원 기 생 죽 늘어선 앞에서 높여 진양조로 호명한다.

『연면무산 십이봉에 조운모우 양 대선이.』

하고 형리가 부르는 소리에 행수 기생 양 대선이 치마를 거듬거듬 한편으로는 걷어 안고 요만하고 앉아,

『예, 등대 나오.』

『만경창파 깊은물에 늠실늠실 능파야.』

『예, 등대 나오.』

『연지분이 향기롭다 마음조차 향심이.』

『예, 등대 나오.』

『오공복판 칠현금을 타고 나니 탄금이.』

『예, 등대 나오.』

『저님아 잊지마소 길게 사랑 영애야.』

『예, 등대 나오.』

『옥사창이 밝았으니 중추팔월 월색이.』

『예, 등대 나오.』

『칼날같이 날카롭다 버석버석 죽엽이.』

『예, 등대 나오.』

『녹파에도 향기로다 아침에 핀 연화야.』

『예, 등대 나오.』

『주황당사 벌매듭에 차고 나니 금낭이.』

『예, 등대 나오.』

『여무지게도 생겼다 이름조차 똑똑이.』

『예, 등대 나오.』

『아들 낳기 바랐더니 딸이 났다 섭섭이.』

『다시는 딸 낳지마소. 인제 그만 먹석이.』

한참 이렇게 점고 하는 것을 보고 듣다가 부사 참지 못하 여,

『아서라. 점고 그만 하여라. 조기 저 대강이로 일곱쨋년 조년 나이 몇 살이니?』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기생이 황공하여 허리를 굽 히며,

『서른 한 살이 올씨다.』

『아서라. 계집이 삼십이 넘었으니 시절이 다 지났다. 너는 저만큼 밧줄로 가 서라.』

하고 다시 또 한 기생을 가리키며,

『저 얼굴 허연년 이름이 무엇이니?』

『영애 올씨다.』

『흥, 이름은 좋구나. 나이는 몇살이니?』

영애는 부사가 나어린 것을 좋아하는 낌을 알고 부썩 줄 여,

『열 여섯 살이요.』

부사 호령하되,

『조년 뺨 치라! 고이한 년 같으니. 이팔 청춘이라니까 열 여섯 살이면 좋을 줄 알느냐. 네 딸이 열 여섯 살은 되었겠 다. 고이한년 같으니.』

하고 부사 노발 대발하여,

『한서부터 주리를 할 년들. 더벙머리 댕기 치레하듯 파리 한 강아지 꽁지 치레하듯 꼴 어지러운 것들이 이름은 무엇 이 무엇이 나오 나오 하고, 거 원 무엇들이니? 하나도 쓸 것이 없고 분만 바르면 되는 줄 알고, 회벽칠하듯 하고 연 지를 찍는다는 것이 쥐잡아 먹고 입 안 씻은 고양이 주둥이 모양으로 주둥이와 볼따구니가 왼통 빨갛고, 눈썹을 짓는다 는 것이 조우에 꼭 석대 씩만 남겨 놓고...... 어허 주리할, 머리를 뽑을 년들 같으니. 이년들 다 묶어 몰아내치라. 기생 이란 이런 것들 밖에 없단 말이냐?』

하고 형리를 노려본다.

『옳다. 이때야말로 춘향이 년에게 무안 당한 분풀이를 하 리라.』

생각하고 형리 엎디어,

『전비에 춘향이 쉬오.』

부사 입이 벌어지며,

『춘향이가 먹석이 아례란 말이냐?』

『예 아직 나이 어린고로 그러하외다.』

『그러면 무엇 무엇 여럿을 부르지 말고 거꾸로 그 하나만 부르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는 왜 나오, 말은 없고 쉬오, 하 니. 웬 일인고?』

『예, 아뢰옵기 황송하오되 기생 중 대비 마치옵고 면천하 여 기안에 이름 없는 춘향이올씨다.』

부사 정신이 쇄락하여,

『내가 서울서부터 들으니 향명이 유명하시다더구나.』

『그 사이 평안하시냐?』

『예, 아직 무사하외다.』

『또 그 대부인도 계시다지? 안녕하시냐?』

『예 아직 무고한 줄로 아뢰오.』

부사 바싹 다가 앉으며,

『춘향을 일시라도 지체 말고 속히 불러 대령하라.』

곁에서 호장이 듣고 앉았다가 속으로 형리를 원망하며,

『호장이 아뢰오. 춘향이 본시 면천하와 기안에 이름이 없 사올 뿐더러 구관 사또 좌정시에 책방 도련님이 머리얹어 백년 해로 언약하옵고 지금 두문하고 수절하옵니다.』

부사 호장이 아뢰는 말을 듣고,

『허허, 세상에 번괴로다. 구상유취 아이들이 첩이라니. 또 본래 기생년이 수절이란 말이 가소롭다. 기생년이 수절을 하면 우리네 양반댁 부녀들은 기절을 한단 말이냐. 까마귀 학이 되며 각관 기생 열녀되랴. 이제로 바삐 불러 현신시켜 라.』

형리 영을 듣고 방울을 덜렁 채니 사령들이 우루루 나오 며,

『여이.』

『춘향 바삐 대령하라.』

『여이.』

하고 덜렁쇠라는 김 번수가 뛰어 나가며,

『이 번수야.』

하고 물렁쇠라는 이 번수가,

『왜야?』

『걸리었다 걸리었다.』

『그 누구가 걸리어?』

『춘향이가 걸리었다.』

『옳다. 그 난장맞고 담양 갈 년. 양반 서방하였다고 태가 락이 많더니라. 그물 코가 삼천이면 걸릴 날이 있다더니, 압 다 그년 잘 걸렸다.』

덜렁쇠 물렁쇠의 어깨를 툭 치며,

『춘향이 사정 두는 놈은 너도 네밀 붙고 나도 네밀 붙으 리라.』

하며 김 번수 이 번수 두 사령이, 산수털 벙거지에 남일 광단 안을 받치어 날랠 용자 떡 붙이고 총증지굴 돌상모에 눈 고운 공작미를 당사실로 꿰어 달고, 야청 쾌수 단목 쾌 자 남수화주 전대 띠고 환도 사슬 길이 차고, 편숙마 메투 리를 낙고지를 곱걸어 둘러메이고 대로상으로 발이 땅에 안 붙게 달아난다.

춘향의 집에 다다라,

『춘향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대문 중문 박차고 우루루 뛰어 들어 가니, 이때에 춘향은 몽룡만 생각하고 머리 싸매고 자리에 누워 울고 있다가, 사령들의 야단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 문 틈으로 엿보니 둘이 다 평소부터 춘향에게 원혐 있는 놈들 이라, 춘향은 분명 새로 도임한 신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짐작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뛰어나가 두 사령의 손을 잡고,

『에그 김 패두 오라버니, 에그 이 패두 오라버니. 오늘 무 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오시었소? 이번 신연길에 노독이 나 과히 나시었소? 형님들 다 편안하시고 어린 조카들도 다 잘 있소? 이게 얼마만이요. 자 들어 오시오.』

하고 일변 두 사령의 손목을 끌며 일변,

『상단아! 마님께 가서 향나뭇골 김 패두 오라버니 오시고, 배나뭇골 이 패두 오라버니 오시었다고 여쭈어라.』

하고 다시 두 사령을 보고,

『자 들어오시오.』

하고 누워 있던 자리를 주섬주섬 한편 구석으로 치어 놓으 니, 두 사령은 춘향이가 손목을 잡고 반기는 통에 마음들이 모두 스르르 풀어지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로 힐끗힐 끗 다른 놈의 눈치만 보다가 김 번수가 먼저 비단 보료 위 에 들어 앉으며,

『여보소 동생, 내가 무안하이. 자네가 오래 앓는단 말을 듣고 한 번 문병도 못하였으니 내가 무안하이.』

이 번수도 김 번수를 따라 들어 앉으며,

『동생 면목 없네. 그래 서울 기별이나 종종 듣나?』

춘향이 한숨 지며,

『가신 후로 기별 없어 걱정이요.』

하니 김 번수가 혀를 차며,

『아이, 저를 어찌하리.』

하고 이 번수도,

『참 가엾시그려.』

하고 혀를 찬다.

이때에 상단이가 월매더러 무슨 귓속을 하였던지 월매 신 을 거꾸로 끌고 나오며,

『이녀석들아, 내 집에 오기에 발탈이나 안 났느냐. 어쩌면 그렇게 한 번도 안 와 본단 말이냐. 그래 다들 원로에 무사 히 다녀오고 어린것들도 잘 자라며 구실이 과히 고되지나 아니하냐?』

두 사령이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차례로,

『아주머니 그사이 평안하시오?』

하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이윽고 상단이가 술상을 들고 나오니 춘향이 술을 붓고 월 매는 권하여 두 사령은 굶주렸던 판에 두어 순배를 말도 없 이 마시더니 김 번수 문어 발을 씹어 가며,

『말이야 바로 하지. 사관 사또라는 것이 사뭇 똥항아린데 오늘 첫 좌기에 다른 점고는 다 제폐하고 기생 점고만 하더 니 아마 자네를 수청을 들이려는 모양인지 바삐 대령하라고 발광을 하기에 우리 둘이 나오기는 나왔네마는, 우리 둘이 들어서면 설마 자네 하나 못 빼어 내겠나.』

춘향이 술을 부으며,

『글쎄 철 중에도 정생이라고 오빠 두 분만 믿소.』

이 번수 술을 마시고 웃수염에 묻은 술을 혀를 내밀어 빨 아 들이며,

『그 말이야 두 번 이를 말인가.』

이 모양으로 취하도록 술을 먹고 나서,

『그러면 동생 조리나 잘 하소.』

하고 두 사령이 일어나려 할 때에 춘향이 장문을 열고 돈 닷냥 꾸러미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약소하나 두 분이 돌아 가시다가 약주나 사잡수 오.』

덜렁쇠 그 돈을 물리치는 듯 손으로 움켜 쥐이며,

『말게. 그게 말이 되나?』

하고 절반을 뚝 끊어 이 번수를 주고 일어나며,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동생 조리나 잘하게.』

이 번수도,

『아주머니, 염려 마시오. 우리 둘이 나서면 일 없소. 동생 조리나 잘하게.』

하고 춘향의 집을 나선다.

『얘, 물렁쇠야! 사람의 마음이란 물로 되었단 말이 옳 다!』

하고 김 번수가 한탄을 하니 이 번수 고개를 두르며,

『야, 네 맘은 모지더라. 나는 춘향의 집 문전에 가니 벌써 맘이 다 녹아 버리고 말더라.』

두 사령이 들어가,

『춘향이 잡으러 갔던 패두 현신 아뢰오.』

이 소리에 부사 고개를 쑥 내밀어 눈을 두리번 두리번 하 더니,

『춘향 어이하고 너희놈들만 왔단 말이냐?』

김 패두 썩 나서서 고박고박하며 혀가 안 돌아가는 소리 로,

『춘향이 구관 사또 자제 이 도령 가신 후로 상사병이 나 서 그만 죽었사옵고, 예 아직 죽지는 아니하옵고 살아서 목 숨은 붙어 있사와도, 피골이 상접하와 촌보도 불능하옵기로 인정에 차마 못하와 못 대령하였사오되, 만일 다시 분부 내 리시오면 춘향은 못하와도 소인의 어미라도 잡아 대령하오 리다.』

부사 골을 내어,

『이놈들, 어찌고 어찌어? 웬 횡설수설이니? 이놈들, 술 얻 어 먹고 뇌물 받고 관장 분부 거역하니 저런 죽일 놈들이 있나.』

하고 호령이 추상 같은 것을 보고 물렁쇠 황겁하여,

『예, 춘향이가 아직 죽지는 아니하였삽고, 또 중문까지 마 중 나온 것을 보니, 촌보 불능 지경은 아니오나, 여쭙기 황 송하오나 사람의 맘이 물이 일럿사와, 술도 얻어 먹고 돈도 닷 냥을 얻어 가지고 긍측한 정상 듣사오니, 과연 잡아오기 어렵사오며, 또 피골이 상접까지는 아니하옵더라도 오래 상 사병에 기름이 빠진 것은 분명하오니, 기름 빠진 것을 억지 로 수청 들이시기보다 남원 명기로 오십명 중에서 피둥피둥 한 년 하나 고르시와 이 돈 닷냥 행하시고, 수청 들이시면 사무송하올 줄로 아뢰오.』

하고 중얼거리니 부사 대노하며,

『여보아라. 저놈들 몰아내치고 다른 놈 보내되 술 먹을 줄 모르고 인정 한푼어치 없는 놈 보내어 시각 지체 말고 춘향이 잡아 대령하라.』

형리 영을 듣고 방울을 덜렁하여 김 패두 이 패두 두 사령 을 몰아 내치라 하니 사령들이 벌떼같이 내달아 두 사령을 꼭두집어 끌어 삼문 밖에 내치니 두 사령 삼문 밖에 누워 노래를 부른다.

『백구야 껑충 뛰지 마라. 너를 잡을 내 아니다. 성상이 버 리시매 너를 따라 예 왔노라. 공명과 부귀와란 세상 사람 맡겨 두고, 이후란 술이나 대취하여 너와 나와 강호에 주인 되어 한가로이 놀아 보자.』

하다가 그 자리에 뒹굴며 코를 골고 잔다.

박 패두 최 패두 두 사람이 춘향의 집에 가서 대문을 박차 고 들이달아,

『춘향아 나오너라!』

하고 소리를 지르니 김 패두 이 패두들을 돌려 보내고 겨 우 안심하고 있던 춘향과 월매는 또 한 번 깜짝 놀라 뛰어 나와 박 패두 최 패두들을 붙들고,

『조카네 무사한가.』

『오라버니들 평안하시오?』

하고 정답게 인사를 하나 두 사령은 들은 체 아니하고,

『잔말 말고 어서 나오라.』

하고 재촉만 한다.

춘향이 면치 못할 줄을 아나 그래도 인정을 써 애걸이나 하여 보리라 하고,

『갈 때에는 가더라도 약주나 한잔 잡수시지요!』

하고 방에 들어 앉기를 권하니 박 패두 불량한 눈을 궁글 리며,

『오 이년, 술잔이나 먹이고 우리를 달래어 볼 양으로? 어 림없다. 어서 나오라!』

하되 최 패두는,

『야 박 패두야, 권하는 술 안 먹으랴. 네 싫거든 나나 먹 자.』

하고 먼저 잔을 들어 마시니 박 패두는 비위가 동하여,

『그래라 나도 한 잔 먹자.』

하고 춘향이 권하는 대로 들이마신다. 내온 술을 다 먹고 안주까지 다 먹고 입을 씻으며 박 패두가,

『자—나서라!』

하고 또 춘향을 재촉한다.

춘향이 그제는 장문을 열고 돈 두 냥을 내어 주며,

『이것이 약소하나 두 분이 약주나 한잔 사 잡수오.』

최 패두 박 패두 눈치를 보더니,

『주는 돈 안 받으랴.』

하고 돈꾸러미 절반을 뚝 꺽어 한끝 매어 박 패두를 주며,

『어따. 싫거든 내 가지마.』

하니 박 패두 얼른 받아 꽁무니에 단단히 차며,

『술 먹고 돈까지 받으니 무안하고 미안하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나와 바삐 가라.』

춘향이 하릴없이 머리도 안 빗은 대로 옷도 입었던 대로 신을 신고 나서며,

『가자면 가지요.』

하고 월매를 돌아보며,

『어미니 갔다 오리다. 내 지은 죄 없으려든 설마 누가 어 찌하오? 염려 마오.』

하고 두 사령을 따라나서니 월매 참지 못하여 두 사령의 팔에 매어달리며,

『네 이녀석들! 그여코 내 딸을 잡아가고야 마느냐. 내 딸 이 무슨 죄가 있길래 잡아간단 말이냐.』

하고 몸부림하고 우니 사령들은,

『죄가 있길래 잡아가지. 늙은것이 웬 발광이야?』

하고 월매를 뿌리치니 월매 땅바닥에 굴며,

『아이고 이게 웬 일이야. 하느님 맙소사. 아이고 이게 웬 일이야.』

하고 울다가 상단에게 끌려 들어가며,

『내 딸 잡아오라는 놈이나 내 딸 잡아가는 놈은 씨도 없 이 멸망을 하리라.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운다.

박 패두 최 패두 춘향을 꼭뒤집어 계하에 꿇여 놓고,

『춘향 대령하시였소.』

하고 복명하니 부사 문앞으로 다가앉으며,

『춘향 이리 오르라 하라.』

춘향이 두어 번 사양하다가 상방으로 불려 올라가 부사 앞 에 고개를 숙이고 앉으니 그 시름하는 듯 원망하는 듯 의지 할 곳 없는 듯 태도가 더욱 부사의 마음을 끌었다. 비록 아 무 단장도 없다 하더라도 천성의 아름다움은 감출 수가 없 었다.

부사가 춘향을 앞에 놓고 한참이나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 리저리 뜯어 보더니, 매우 볼만한 듯이 「응」하고 고개를 돌려 저편 구석에 글 읽는 사람 모양으로 공연히 몸을 흔들 흔들하고 앉았는 정 낭청을 보며,

『이사람! 춘향의 소문이 매우 고명하더니만 지금 보니 유 명무실이로세.』

정 낭청은 변 부사가 운산 현감으로 나갈 때부터, 책방으 로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매사에 부사의 비위를 거스리는 일이 없어 부사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그러한가 보 오」, 보리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그렇다고도 하지요」하 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정 낭청이 숙맥이 되어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경계는 멀끔하건마는, 자기가 애써 바른 소리를 한 다고, 다 자란 변 부사가 자기 말 들어 착한 사람 될 리도 만무한즉 공연히 변 부사의 비위만 거스려 변변치 못하나 책방 밥술 자리라도, 떨어지면 앵한 것은 자기뿐이라, 차라 리「그러한가 보오」,「그러하다고도 하지요」하고 어름어 름해 넘기는 것이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사무송이라고 생각 한 까닭이다.

그러나 정 낭청은 판은 대바른 사람이라, 이따금 곧잘 바 른 소리를 하다가는 부사에게 핀잔을 먹고,

『어—고이한 손이로군. 어서 올라가게!』

하고 올려 쫓길 뻔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에도 낭청은 마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마는 구태 비위를 거슬릴 생각도 없어 춘향이는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눈만 스르르 내려감고 여전히 몸을 흔들면서,

『글쎄요. 바히 유명무실이라 할 길도 없고 또 이제 유명 무실 아니라고 할 길도 없나보오.』

부사 또 한 번 이윽히 춘향을 모모이 뜯어 보더니 또 정 낭청을 바라보며,

『아니로세 이 사람! 전혀 유명무실은 아니로세. 모모이 뜯 어 보이 한 곳도 허수한 곳은 없네 그려.』

하고 빙그레 웃으며 연해 춘향을 바라본다.

이 기회를 타서 통인에 윤득이 나서며,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의복이 남루하고 단장을 아니하여 그러하옵지 의복 단장을 선명히 꾸미면 세상에 짝없는 일색 이오니 용서치 마옵소서.』

하고 일러바친다.

부사 윤득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춘향을 모모이 뜯어 보더 니,

『과연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이. 요사이 행창하는 것들 같이 때묻고 바라지지 아니하고 수수하고 어수룩하고 수줍 어한게 조희.』

낭청은 여전히 눈을 내려깔고 몸을 흔들면서,

『글쎄 수수하고 어수룩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고 또 그렇 다고 할 길만도 없는 듯하오.』

부사 비위가 당기는 듯이 바싹 춘향의 앞으로 다가 앉으 며, 한 번 더 자세히 보더니마는 부사 눈이 가느스름 하여 지고 입이 헤벌어지며,

『여보게 아닌게 아니라 미인이로세—국색이로세—절대 가 인이로세. 옥에도 티가 있다고 내가 팔도 미인을 본 것이 여간 백이요 일백만 아니로되, 어떤 년은 눈이 샐쭉하여 독 살스럽고, 눈 각각 코 각각 뜯어 보면 모두 한두 가지 흠은 있건마는 요것은 모모이 뜯어 보고 샅샅이 우비어 보아도 하나 흠할 곳이 없으니, 짐짓 천향국색이로세. 허—영웅이 나 면 미인이 없을 수가 있나—내가 있으니 춘향이 없으랴—하 상견지만야로세.』

하고 낭청이 무어라고 대답을 할 양으로 입을 우물거리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춘향의 곁으로 조금 더 다가앉으 며, 춘향더러,

『네 듣거라. 네가 집짓 허술한 옷을 입고 단장도 아니하 고, 네 본색을 감추려 하는 모양이다마는 형산백옥이 티끌 에 묻혔기로 아는 이야 모르며, 중추 명월이 잠깐 구름에 가리우기로 제 빛을 잃을소냐. 네 아무리 허술히 차렸기로 내가 너를 몰라 볼 리가 없으니 네 나가서 소세하고 일각 지체 말고 수청 들라!』

하고 명령을 내린다.

춘향이 눈썹이 두어 번 짱깃짱깃하더니 쇳소리 같은 목소 리로,

『무슨 말씀이시온지?』

하고 고개를 반짝 드니 그 태도와 말소리에서는 얼음 가루 가 팔팔 날리는 듯하다. 부사 소름이 쪽 끼치는 듯하였으나 껄껄 능글 웃음을 치며,

『어허 정 낭청, 요—산드러진 말이 더욱 조희!』

하고 다시 춘향을 바라보며 몸을 뒤로 젖히고 관장의 위엄 을 갖추어,

『네 본대 본부 기생으로 내 도임시에 현신도 아니하고 방 자히 집에 있어 언연히 불러야 들어온단 말이냐. 내가 이곳 목민지장으로 내려왔으니 너를 보니 쓸 만하다. 오늘부터 수청으로 작정하는 것이니 네 바삐 나가 소세하고 방수차로 대령하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춘향이 일어나며,

『못합니다!』

하고 외마디로 똑 잡아뗀다.

부사 얼굴이 푸르락 누르락하며,

『못하여? 어찐 말인고?』

하고 숨소리가 커진다.

『못합니다. 못합니다. 소녀 비록 창기 소생이오나, 이미 대비정속 면천하였사오니, 기생도 아니옵고 또 삼년전 이등 사또 좌정시에 사또 자제와 백년을 언약하와, 금석같이 서 로 맹세하옵고 몸을 허하였사오니, 소녀는 유부녀라. 죽사와 도 송죽 같은 마음을 변할 리는 없사오니 사또께서도 소녀 의 정유를 통촉하시와, 다시 그런 분부 내리시지 마옵소 서.』

하고 돌아선다.

춘향의 말에 부사 웃으며, 정 낭청을 돌아보고,

『계집이 한두 번 태하는 것은 전례판인 줄 아나 아주 태 가 없어도 무맛이니.』

『글쎄 그러하외다. 전례판이란 길도 없고 정녕 전례관이 아니랄 길도 없나 보오.』

하는 정 낭청의 말은 들은 체도 아니하고 춘향을 향하여,

『네가 기시에 아이들끼리 만나서, 살고 딸기같이 얕은 맛 에 그러하나 보다마는, 하릅 비둘기가 재를 넘느냐. 그러하 기로 저런 설움을 보는구나. 네 이 어른의 우거지국에 쇠 옹도리 뼈 넣은 듯한 궁심한 맛을 보면 무궁한 자미에 깜짝 반하리라. 또 네가 수청 들면 내일부터 관청은 네 집 찬장 이요. 운향고 묵전고는 네 곳간이요. 일읍주장이 다 네 주장 이라. 이런 깨판이 또 어디 있느냐.』

하고 정 낭청을 돌아보며,

『이 사람 정 낭청 내가 평양 서윤 갔을 적에, 금절이년 수청들여 삼천 냥 행하하고 영변 부사 갔을 적에, 관옥이년 수청들여 백미 천 석 행하하고, 기외에 전후 기생 준을 불 가수중인 줄 자네가 잘 알지 않는가. 어찌한 성품인지 기생 들을 그리 주고 싶으데.』

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정 낭청을 물끄러미 본다.

정 낭청 한참이나 말없이 몸을 흔들다가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글쎄 그러한지요. 아니 그러한지요.』

이 말에 부사 화를 내며,

『이 사람아 듣고 본 대로 바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리 뻥뻥하게 그게 무슨 대답이란 말인고?』

『듣고 본 대로 바로 말을 하라면 하지요.』

『압다. 하소!』

『내가 본 대로 하면 사또께서 대동 찰방 갔을 제 관비 한 년 데리고 자고, 그년의 비녀까지 빼앗고 돈 한 푼 안 줄었 단 말 들었고, 운산 현감 갔을 때 수급비 한 년 석 달 취색 하여 주마고 서울로 가지고 와서, 며느리께 예물 준 것은 보았소마는, 언제 평양서 윤녕 변 부사로 가시어서 기생 행 하를 그리 후히 하였소?』

하고 뽀롱뽀롱 바른소리하는 버릇을 내인다.

정 낭청의 말에 부사 기가 막히나 섣불리하다가는 바른 소 리가 더 쏟아져 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껄껄 웃고,

『이 사람 기롱 마소. 저런 아이 곧이 듣네.』

하고 춘향을 향하여,

『여보아라! 이리 돌아 서거라. 네 저 말 곧이 듣지 말렷 다. 어찌 그럴 리가 있느냐. 나를 사귀어만 보면 자연 알 것 이다. 여보아라, 알아 듣느냐. 과히 사양 말고 바삐 나가 소 세하고 수청 거행하여라.』

춘향이 돌아서서 읍하고 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언성을 약간 높이어,

『사또께옵서는 목민지관이사라, 미지부모 되시오니 백성 이 잘하는 것을 상 주시고 잘못하는 것을 벌 주시어, 삼강 을 바로잡고 오륜을 밝히시는 것이 직책이시니, 어찌 옛 성 인의 가르치심을 따라 열녀의 행실을 본받아, 지아비를 위 하여 수절하는 아녀자의 뜻을 앗으려 하나이까. 아무리 분 부 지엄하시와도 송죽같이 굳은 소녀의 절개는 변할 줄이 없사오니 돌이켜 생각하시와 밝히 처분하시옵소서.』

부사 눈방울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다시 능청하게,

『오 옛글에 그런 말도 있나니라. 그러나 수절이란 것은 사대붓집 부녀들이나 할 일이지, 너 같은 아이는 노류장화 랑 안개가절이니 수절이란 말이 천만 의외요 해괴망측한 말 이다. 기생이 수절을 하면 사대붓집 부녀는 무슨 절을 한단 말이냐. 기절을 하겠고나.』

하고 크게 우스운 일이나 보는 듯이 「허허허」하고 소리 를 내어 웃더니 다시 웃음을 거두고 위엄을 갖추어,

『여보아라 계집이 아조 태가락이 없어도 무맛이지마는 그 것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되면 관장 앞에 버릇없는 일이 어. 그러하니까 당치 아니한 요망한 소리 말고 수청 들어 라.』

부사의 말에 춘향은 오장이 뒤집히고 분기가 났다. 그러나 한 번 더 이치로써 부사의 뜻을 돌려 볼 양으로 공손하게,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 사또께옵서는 국록지신 되시오니 설사 부월이 단전하더라도 훼절하실 리 만무하옵고, 소녀는 백년 해로 언약한 지아비 있사오니, 이 몸이 죽고 죽고 일백 번 고쳐 죽사와도 일편단심에 비췬 달 은 잡아 내어도 보려니와, 소녀의 정한 뜻은 차생에 얻지 못하리이다. 가련한 일단혈심을 통촉긍애하옵소서.』

하고 애절하는 듯이 한 번 읍하고 부사의 앞에 꿇어 엎디 인다.

부사 춘향이가 꿇어 업디어 애걸하는 양을 보고 빙그레 웃 며 정 낭청더러,

『여보게 이 사람 요렇게 간드러지게 애걸하는 양이 더욱 아리따외 그려. 요사 행창하는 계집들이 오르라 하기가 무 섭게 어여쁘지도 아닌 것이 어여쁜 체하고 연지 찍고 궁둥 이를 뒤흔들고, 장마 개구리 호박 잎에 뛰어 오르듯이, 신발 신은 채로 마련없이 더벅더벅 오르건마는 이것은 제법 반반 한 경계로세.』

하니 정 낭청 심히 못마땅하여 고개를 저만치 돌리며, 혼 잣말 모양으로,

『응—되기는 되겠소. 그 무얼 수절한다는 손녀뻘이나 되는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응!』

부사 눈살을 찌푸리며,

『자네는 왜 이리 씨이질만 하노? 고이한 손이로군.』

하고 춘향을 보며,

『요년! 수청을 들라면 썩 들 것이지 거 무슨 잔말을 고다 지 자리감스러이 하느냐! 어서 썩 수청 들고지고!』

춘향이 생각하니 아무리하여도 자기를 방송하여 줄것 같지 아니하다. 그러나 제 아무리 저러한들 빙옥 같은 내 마음에 백골이 진토되기로 수청을 듬며, 금석같이 굳은 뜻이 혼백 이기로 훼절하겠느냐 하고 맘을 단단히 먹고 수 그렸던 고 개를 번쩍 들어 부사를 노려보며, 악을 써서 꾸짖는다— 춘향이 부사를 노려보며,

『영천수 맑은 물에 내 두 귀를 씻고지고—에그 더러운 말 다 들었네. 사또께서는 국록지신 되시어 출장입상 하신다가, 탈유지변 당하시면 한 목숨이 아까워서 도적에게 항복하고 두 임군을 섬기랴? 충신 불사이군이요 열녀 불경이부라 하 였거늘 위력으로 겁탈하시려 하니 사또의 충절유무는 이로 써 아나이다. 나라에 충절 모르는 사또 앞에 무슨 말을 하 오리까. 말하는 것도 부질없으니 소녀를 때리려거든 때리시 고 죽이려거든 죽이시되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씀은 마옵소 서.』

부사 관자놀이에 핏대가 불룩불룩하더니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정 낭청, 조년의 말을 보소. 날더러 역적놈이라네 그려.

이런 죽일 년이 있단 말인가.』

정 낭청이 입맛을 다시며,

『글쎄 그러하오. 사또가 역적놈이라 할 길이야 생심인들 하겠소마는, 또 제 소견딴은 금부 죄인이 되리란 말인듯하 오. 그러하나 그년이 바히 죽일 년이 아니라 할 길도 없나 보오마는 또 말이야 바로 죽일 년이라고 할 길도 없는가 싶 으니, 그년의 소원대로 하여 주시는 것도 상책이지요마는 또 사또께서 그년의 소원대로 아니하여 주신다고 부쩍부쩍 우기시면 그도 하릴없는가 보오.』

부사 더욱 골을 내어 낭청더러,

『이 사람 썩 들어가소. 꼴 보기싫어. 공연히 객없는 소리 를 기다랗게 늘어놓으니 웬 지각인고. 어허 고이한 손이로 군!』

하고 춘향을 노려보며 망근 편자가 톡 터질 듯이 관자놀이 가 들먹들먹하고 숨결이 씨근씨근하더니 춘향을 대하여서는 아무 말이 없고,

『여보아라!』

하고 호령을 내리니 통인이 뛰어 나서며,

『여이.』

『이년 바삐 잡아 나리어라!』

『여이 급창.』

하는 통인의 소리에 급창 계상에 나서며,

『여이. 』

하고 길게 소리를 뽑는다.

『춘향 잡아 나리라.』

급창이 더욱 소리를 높여,

『여이 사령!』

하는 소리에 사령들이 우루루 달려 나오며,

『여이. 』

『춘향 잡아 나리랍신다!』

『여이!』

하고 나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휘휘칭 칭 감아 쥐고 길이나 넘는 층계 아래로 동댕이쳐 끌어내려 형틀 위에 덩그렇게 울려 매고 나졸들이 뒷걸음치어 좌우로 쭉 갈라서며,

『춘향이 대령하였소.』

부사 형틀에 올려 매인 춘향의 모양이 보이리만치 문밑으 로 바싹 다가 앉으며,

『형리 부르라!』

하니 형리 나와 읍하고,

『어이 형리 대령하였소.』

부사 형리를 보고,

『저년을 따려 죽일 터이니 다짐 쓰고 갖은 매 대령하 라!』

형리,

『여이.』

하고 필연 당기어 다짐을 써 들고,

『살등 너의 신이 본시 창녀 지배로 불고사체하고 수절지 절이 시하곡절이며 우중신정지초에 관령 거역뿐더러 관정발 악에 능욕관장하니 사극해연인 죄단마사라. 즉의 타살하여 이일징백하는 다짐이니 백자 아래 수결두라.』

하고 읽고 나서 그 다짐장을 춘향의 앞에 놓으니 좌우 나 졸들이,

『어서 바삐 수결두라.』

하고 우렁차게 엄포한다.

춘향이 조금도 굴하는 빛 없이 두 눈추리가 짱긋 올라가며 형리가 주는 붓을 받아 한일자 드르륵 그은 후에 그 아래 마음심자 초서로 쓰고 붓대를 내던지고 태연히 있다.

춘향이 다짐장에 다짐 두고 붓대를 내던지니 키 큰 집장 사령 곤장, 형장, 태장, 오갈나무 주장 갖은 매를 한 아름 안았다가 좌르르 설설 버려놓고, 이놈도 골라 때려 죽일 듯 이 엄포를 하거니와, 형틀에 올려 매인 춘향을 내려다보니 연약약질 백설 같은 흰 다리에 어디 차마 매를 치랴. 자연 히 팔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거행을 아니하면 응당 구실은 태거할 것이요, 구실 퇴거하면 내일 아침부터는 입에 낮거 미줄 늘일 지경이니 어찌하랴. 차마 못할 거행이로다 하고 그중에 좀먹고 등심 없는 태장 하나를 골라 쥐고 이만하고 섰을 제 부사는 소리를 높여,

『네 이년 첫매에 두 다리 장치를 끊어 뼈골이 드러나게 각별히 매오 치되 만일 저년을 사정 두는 패 있으면 곤장 모흐로 앞 정강이를 팰 것이니 그리 알라!』

『매오 치라!』

하고 엄포한다.

집장 사령이 영을 듣고 형틀 앞에 썩 나서며,

『일호 사정 두오리까. 단개에 물고를 내오리다.』

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한 걸음 물러 섰다가 달려들며 한 개를 딱 붙이니 부러진 태장 가지 공중에 푸르르 날며

「짝」하는 소리 동헌을 울린다. 춘향이 사지를 바르르 떨 며 이를 빠드득 갈고,

『죽이랴건 죽이시오! 일편 단심 붉은 맘이 일만 번 죽사 온들 일시 반시 변하리까.』

부사 냉소하며,

『어디 이년 얼마나 안 변하나 보자. 매오 치라!』

둘을 딱 붙이니,

『이런 경상 또 있는가. 이부 불경한다 하여 이 형벌이 어 인 일고. 이 몸이 비록 죽사온들 이심 둘 리 없사오니 이글 이글 타는 불에 태워라도 죽이시오!』

셋을 딱 붙이니,

『아이고고! 삼흔 칠백이 다 흩어진들 삼생에 뻗은 정절 변할 리 만무하오.』

넷을 딱 붙이니,

『사또도 사람이시면 사정도 있으련만 죄 없는 사람을 사 정없이도 치네 그려. 사대부의 행세는 이러한 법이요?』

이 말에 부사 더욱 노기 등등하여,

『요년! 어찌고 어찌어? 고년 다시는 조동이를 못 놀리도 록 매오 치라!』

집장 사령,

『여이 죽도록 치오리다.』

하고 다섯째를 딱 붙이니,

『아이고고!』

하고 춘향이 잠깐 까무러치었다가 깨어나며,

『오형지속이 삼천이랑 하건마는 수절한다고 죄 주는 법 어디 있소? 오장에 사모친 한이 오월 남풍에 눈서리 되어 삼강도 오륜도 모르는 사또집 후원에 펄펄 날려보랴오. 이 렇게 힘들게 따릴 것 없이 드는 칼로 이 몸을 오리오리 오 리시오! 오리오리 오려내어 옹진 소금에 짜게짜게 항아리나 목함 속에 넣어 두고 계집 좋와하는 사또 밥 반찬 술 안주 나 하시다가 일생에 다 못 자시거든 두고두고 사또 대소상 기일제에까지 놓으라고 유언이라도 하시오!』

하고 이빨을 아드득아드득 간다.

부사 일어났다 앉았다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입으로 게거품 을 푹푹 토하며,

『조년을! 조년을! 밟아 죽이랴, 찢어 죽이랴? 아—네 저 집 장 사령놈 몰아내치고 다른 놈 대어라!』

하고 콩튀듯 팥튀듯 펄펄 뛴다.

집장 사령 물러나고 다른 놈 들어서니 키는 적을 망정 눈 방울하고 다부지게 독하게 생긴 놈이다. 태장을 어깨위에 번쩍 둘러 메고 두어 걸음 물러 섰다가 통통통통 달려나오 며 여섯째를 딱 붙이니 춘향의 하얀 살이 갈라지며 빨간 피 가 주루루 흘러 내린다.

춘향이 또 한 번 아뜩하여 까무러치었다가 이를 빠드득 갈 며,

『육시를 하시오! 육시를 하시오!』

일곱째를 딱 붙이니,

『아이고 이몸이 죽네 그려. 칠십 당년 노모님이 누구를 의지하리.』

여덟째를 딱 붙이니,

『아이고 내 팔자야. 전생에 무슨 죄로 기생으로 태어나서 수절조차 맘대로 못하는고. 아고 이내 팔자야!』

아홉째를 딱 붙이니,

『구곡간장 맺힌 한이 구만 장천 높이 날아 구중 궁궐 깊 은 곳에 하소연이나 하고지고. 구차한 이 목숨이 구태 살려 아니하오. 죽이시오 죽이시오! 굳고 굳은 이내 정절 굽힐 줄 은 생념도 마오!』

열째를 딱 붙이니 춘향이 고개를 번쩍 들어 부살르 노려보 며,

『죽여 주오! 죽여 주오! 어서 바삐 죽여 주오! 죽어서 혼 이라도 남편 따라가려 하오. 당신네 법에 수절도 죄라 하면 식칼 형문이라도 쳐서 죽여 주오!』

하고 그만 고개를 숙여 버리니 살점은 늘어지고 뼈가 보이 고 얼굴이 해쓱하여지고 입술이 푸르게 되니 보던 관속들도 모두 코가 시고 눈물이 흘러 고개를 돌린다.

부사도 춘향의 형상을 보니 속이 부쩍부쩍 죄기는 하나 둘 더 치는 것을 스물을 넘어 서른이 되어도 춘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도 없고 몸도 움직이지 아니하여 부사 정 낭청 을 바라보고,

『이 사람! 과연 시골 상것이라 모질기도 하이 그려. 아무 리 모질기로 그대도록 모질단 말인가. 신정지초에 살인하기 도 어떠하니 그만 칠까.』

『글쎄 그러하외다.』

『아니 이 사람, 저런 년을 삼천을 죽이기로 관계할까.』

그래도 정 낭청은 몸을 흔들며,

『글쎄 그러한가 보오.』

부사 못마땅하여 얼굴을 찡기더니,

『여보아라! 그년 독하기로 이를 진댄 독사 이상이로구나.

장래 크게 일 저지를 년이로다. 후일에 다시 칠 양으로 저 년을 큰칼 씌우고 항쇄족쇄하여 하옥하라.』

사령이 영을 듣고 춘향을 끌러 형틀에서 내려 놓으니 춘향 이 아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까지 싸늘하다. 감히 입 밖에 내어 말은 못하나, 혀도 채고 눈도 흘기고 한숨도 쉬 고 모든 관속이 다 부사를 원망하면서도 법이라, 하릴없이 큰 전목 칼을 춘향의 목에 씌우고 칼머리에 인봉하고 거멀 못으로 꼭 수쇄하고 옥사장에게 끌려 한 걸음에 엎더지고 두 걸음에 쓰러지며 옥으로 내려가니 보는 사람은 누구나 고개를 돌리고 차마 바로 보지 못한다.

월매 춘향을 관가로 붙들려 보내고 이제나 저제나 나오기 를 기다린다가, 낮이 기울어도 안 나오고 볕이 마당 한복판 까지 가도 안 나오니, 외딸 둔 어머니의 마음이라 안절부절 할 수가 없어,

『이 애가 아마 사또 말을 거역하다가 무슨 일을 당하나 보다.』

하고 상단을 데리고 관가로 들어가던 길에 삼문 밖에서 칼 쓰고 끌려 나오는 춘향의 모양을 보고 와락 달려들어 칼머 리에 매어달리며 목을 놓아 운다.

『아이고 이게 웬 일인고? 신관 사또 내려와서 치민선정 아니하고 생사람을 죽이러 왔네. 생금 같은 내 딸을 무슨 죄로 저리 치었노? 하나님 맙소사. 내 딸이 죽으니 살려 주 오! 내 딸 죽으면 나는 살아 무엇하리.』

하고 겨우 정신을 차려 눈을 빤히 뜨는 춘향의 목을 안고,

『아가 이것이 웬 일이냐. 어린것을 얼마나 따렸으면 이렇 게 될까. 남을 어찌 원망하리, 모두 다 네 탓이다! 네 탓이 야 네 탓이다! 아모리 그리한들 닭의 새끼 봉이 되며 각관 기생 열녀되랴. 사또 분부 들었더면 이런 매도 아니 맞고 작히 좋은 깨판이랴. 돈 쓸 데 돈 쓰고 쌀 쓸 데 쌀 쓰고 남원 사십 팔면이 우리 집 찬광일 것을, 이년아 무엇한다고 수절수절하다가 이꼴이 되었단 말이냐. 나도 젊었을 때 친 구 상종할 제 치치면 감사 병사 수사요, 나리치면 각읍 수 령 무수히 겪을 적에 쇠곳 많이 줄 양이면 일생 잊지 못할 러라. 너 이년아 누구는 너 만 못하다드냐. 후일 사또 다시 묻거들랑 잔말말고 수청 들어 실싸뀌나 하려무나!』

춘향이 수청 분부 거행 아니한 죄로 엄형 받고 옥으로 내 려간다는 소문 듣고 춘향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이 백차일을 치고,

『끌끌!』

『압다 맞았거든!』

『어쩌면!』

『아무려나 춘향이도 독하다!』

『어린것이 기특도 해라.』

이 모양으로 수군수군하며 혹은 고개를 돌리고 혹은 눈물 을 씻는다. 그러나 조용히 소리는 없고 오직 칼머리에 달려 가며 하늘하늘 뛰고 우는 월매의 곡성뿐이다.

이윽고 옥에 다다라 시커먼 옥문을 열고 춘향을 몰아 넣고 덜컥 닫고 잠가 버리니 월매는 땅바닥에 엎더지어 기색한다.

상단이 옥문을 두드리며,

『아이고 아씨 어이하리, 아씨 어이하리.』

하고 목을 놓아 우는 것을 보고 옥사장도 소매로 눈물을 씻으며,

『차고찬 저 옥중에 저것 죽지 살 수 있나.

하고 들어가 버린다. 옥사장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지금까 지 먼 발치 보고만 섰던 아는 마누라 모르는 마누라들이 하 나씩 둘씩 모여들어,

『그만두오 울지 마오! 효자 열녀는 하늘이 안다오! 그만 우오, 일어나오!』

하고 월매를 붙들고 위로하나 월매는 꺽꺽 숨이 막히어 울 음소리도 잘 내이지 못한다.

이때에 옥중으로 춘향의 소리가 나온다—

『어머니 울지 말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오! 죄없는 춘향이 설마한들 죽으리까. 수화검창 중이라도 아니 죽고 살 터이 니 걱정 마시고 집으로 가시오. 만일에 안 가시고 저리 울 고 계시오면 불효한 말씀이나 지금으로 죽을 테이니 나가시 오! 나가시오! 어머니 울음소리 매맞기보다 더 앞으오.』

월매 벌떡 일어나 옥문에 몸을 부딪치며,

『누가 내 딸을 이 속에 가두었느냐. 내 딸이 무슨 죄를 지었더냐. 국고 투식하였더나. 부모 불효 하였더냐. 무슨 죄 로 내 딸을 죽도록 따려 이 옥 속에 가두었느냐. 내 딸 내 놓아라! 내 딸 내놓아라. 너를 두고 나 혼자 어디를 가리.』

하고 손톱으로 옥문을 박박 긁고 뜯으나 무거운 옥문에 서 는 삐걱 소리도 아니 난다. 한참이나 말이 없더니 춘향이 우는 소리로,

『어머니 나가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이 설원하기 전에 죽 을 내가 아니오니 나가시오 나가시오!』

하고 목이 메어 잠깐 말이 끊였다가,

『상단아! 어머니 모시고 나가거라. 네가 내 대신 마님 위 로해 드려다오. 어머니 우시거든 동네 어른들 청하여 심심 치 않게 하여 드리고 때때로 어머니 좋아하시는 원미 쑤어 드리고 조석으로 다리 밟아 드리고 하여라. 아니 죽고 살아 나면 네 은혜 갚을 것이니 부대 어머니 봉양 잘 하여다오.

내 마음 네가 알고 네 마음을 내가 아니 별당부가 있겠느 냐. 울음소리 듣기 싫다! 어서 어머니 모시고 나가거라.』

그제야 월매도 하릴없이 상단에게 끌리어 여러 마누라 들 에게 부축을 받아 다시금 옥문을 돌아보며 미친 사람 모양 으로 헛소리도 하며 비씰비씰 나간다.

御史(어사) 편집

월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춘향이 홀로 옥중에 누웠으니 그 제야 비로소 몸이 아프다. 천근 만근으로 내려 누루는 것도 같고 칼 송곳으로 푹푹 쑤시는 것도 같고 이따금 이따금 하 도 매맞은 자리가 아파서 정신이 아뜩아뜩하기도 하다. 얼 음장같이 찬 방바닥 벽틈 창틈으로 들여 쏘는 살을 에는 듯 한 찬바람, 이 속에서 어떻게 생명을 부지하리. 꽃 같은 청 춘에 애매히 죽는 것도 서러우려든, 백년 해로 언약한 정든 님 못 뵈옵고 죽는 몸, 칠십 노모 혼자 두고 옥중 원혼되는 신세 생각하면 매맞은 자리보다도 생각하는 가슴이 더욱 아 프다.

『살고지고 살고지고 아무렇게라도 살아나고지고, 실 끝만 치라도 살아남아 도련님 뵈옵고지고 도련님 뵈온 뒤어든 고 대 죽다 설으리.』

춘향이 신음하고 누워 있노라니 문득 옥문에서 왁자지껄 하는 소리 들린다—

『열라면 열어!』

하는 호통이 들리더니,

『사또께서 아시면 소인은 주리경을 치게요?』

하는 옥사장의 애걸하는 소리가 들린다.

『웬 잔소리야? 기생을 옥에 가두면 외입장이 따라올줄을 모를 병신이 있더냐. 어서 열어, 바삐 열어!』

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옥문을 쾅쾅 찬다.

『사또 분부에 춘향이 방에는 사내라고는 그림자도 못비취 게 하고 지나가던 수코양이도 얼른 못하게 하라하시니 못 열겠소.』

하고 옥사장이 좀 딱딱히 잡아떼니 문득 여러 사람의 말소 리가 나며「짝」하고 따귀 붙이는 소리가 나며,

『압다 이놈아 사또 아니라 오또 육또의 분부기로 두려워 할 내님이신 줄 알았더냐.』

하는 소리가 나고 또,

『여보소 따릴 것은 아닐세. 젠들 무슨 죄 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어선 인종지말이 하여 먹다 남겨 놓은 옥사장구 실을 다닐 망정 아직도 사람의 껍데기는 안 벗어 놓았으니 그래도 인정 없겠나......』

『여보소 옥사장네 동생, 그리 말고 문을 열소. 후환 있거 든 우리네가 담당함세. 사또 아니라 사또 할애비기로 사람 을 초고초장 찍어서 아작아작 통으로 먹을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올희 인숙이 말이 올희. 춘향이가 불쌍하지 아니한가. 이 렇게 덮을 것도 가지고 왔으니 문을 열소. 활인공덕되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덮을 것도 덮을 것이지마는 나는 이렇게 약을 달여 가지 고 왔는데 이게 식으면 되겠나, 어서 열소 어서 열어!』

하는 소리가 들리고 또,

『약보다도 미음이 제일일세. 나는 조 미음을 진케 달여 꿀 덤썩 타서 가지고 왔는데 식는 것도 걱정이어니와 손이 뜨거워 견디겠다고. 어서 열게 어서 열어.』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마침내,

『그러면 잠깐만 보고 가시오.』

하고 옥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왈짜 육칠 인이 옷에 묻은 눈을 툭툭 털면서 우루루 춘향이 누운 곳으로 들어 온 다. 저마다 춘향의 곁으로 와서,

『춘향아 어떠냐?』

『죽일 놈들 같으니.』

『염려마라. 내가 맹세코 너를 살려 주마.』

『주제넘은 놈 같으니. 네깐 놈이 살리기는 누구를 살려?

내야말로 너를 살려 주마—외육촌 누님의 시아주버니의 처남 이 재동 대감의 청지기외의 동생이어!』

『주릴할 놈 같으니, 그게 그리 장하냐. 내야말로 춘향이를 살려 내련다. 내가 인제 무과급제하여 전라 병사하여 오는 길이면 영락없다, 영락없어. 자 이 미음이나 먹어라.』

『육시를 할 녀석 같으니. 네 놈이 전라 병사 하기를 기다 리느니 내 손자가 병조 판서 하기를 기다리겠다. 내야말로 춘향이를 살려 내련다. 너희같이 주동이 깐 놈들이 무엇을 안단 말이냐?』

『어디? 네까짓놈이 어떻게 저를 살린단 말이냐?』

『어허 이놈 내 님이 누구신 줄을 모르는구나. 내 이르께 들어 보아라. 다시 사또놈이 저를 끌어내어 따리지 아니하 면 잘 생각하였으니 말할 것 없고, 만일 다시 제 사또 따귀 를 눈에서 횃불이 나도록 딱 붙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하여 놓은 뒤에 춘향을 두 팔로 살짝 안고 나온단 말이어—어떠 냐.』

『이놈아 그만 일이야 낸들 못하랴.』

『어허 그놈 방정맞은 놈이로고. 내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 각을 하고 있는데 제가.』

이 모양으로 떠들며 그래도 춘향을 위로하노라고 상처도 만져 보고 약도 먹이고 미음도 먹인다.

춘향도 인정이 고마와서,

『이렇게들 와 보아 주시니 황송하오.』

하고 일일이 대답을 한다.

이렇게 밤이면은 왈짜들이 모여들어 어떤 때에는,

『각설 이때에.』

하고 한글 책을 보고 어떤 때에는,

『일성 옹주에 덩꽁지 가고 삼년 적리에 관산월이라. 장림 수풀에 범이 긴다. 세목 죽었는데 네목 재간다.』

하고 투전판이 벌어지고 어떤 날 저녁에는,

『백사 아삼오륙하고 쥐부리사 오삼륙하고 제칠삼오 제팔 관이 묘하다 열 여섯씩 들이소.』

하고 골패가 벌어지고 한편에서,

『네대 갈 수야 오구일성 어렵다. 조장이로고나. 반식하자.

석류 먹는 듯이나 그만 있소. 척척 섞어 쥐어라. 석조하공정 (夕鳥下空庭)이로고나. 일 잎은 변이요, 바닥 둘째잎을 내어 놓소. 어디 갈까 이 애 한자는 반이나 하지.』

하고 돈을 끌어들이고 또 한편에서는,

『삼십십삼천 파루(罷漏)쳤다. 먼동이를 다리고 당당홍에 정초립이건 양재로 넘나든다. 시뻘겋다 이사칠(二四七)을 들 이소.』

하고 야단이요. 어떤 날은 하인 시켜 바둑판 들리고 와서,

『이말 죽네 검은이 안말이—오공도화 십사수로 꼭 죽었지?

옳다 여기 한 구멍 있고나. 그러면 그렇지.』

하고 떵떵 바둑을 두고, 또 어떤 날은 장기를 두노라고,

『장군렵이야귀(將軍獵而夜歸)하니 속위호어중수(石爲虎於 中藪)로다. 장이야 군이야!』

『말떠궁 비취고 차을나 장이야!』

『이애 아서라 그것은 외통일다.』

하고 「물려라」「못한다」「저포!」「저포!」

하고 야단이요. 한편에서는,

『펄펄상쥐 덜걱해쥐 연대남산, 진동장군, 들통황제, 호위 군관, 과천동작이, 뚝섬 뒷뜰, 돌아나온다 났고 났고 났고나, 팔왕산초도, 오호대장의, 여산 칠십리 돌아나온다.』

하고 법석이요.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술잔이나 먹고 흥에 겨워 탁견씨름 기롱으로 옥이 떠나가도록 쿵캉거리고 심하 면 싸움이 나서 멱살을 추켜들고 따귀를 붙이고 그러면 또 싸움 말리노라고,

『이 사람아 말게.』

『어 아니꼬운 놈 같으니.』

하고 법석이 난다.

이렇듯이 분난이 나니 옥사장이 겁도 나고 화도 나나 이 패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마른 경을 칠 지경이요,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옥이 결단이라 공손히,

『여보 이리 구시다가 사또 염문에 들리면 우리들이 다 죽 겠소.』

하고 애걸하면 한 왈짜 내달으며, 여보아라, 사또 말고 오또라도 염문 말고 소곰문을 하면 누를 날로 육포를 하랴. 기생 수금하면 우리네가 줄입하는 것이 응당이지 네 걱정이 무엇이니?

하고 호기를 부리고 그러면 다른 왈짜가 나서며,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네가 제 소일 하랴다가 제게 해롭 게 하는 것이 의가 아니여.』

하면 여러 왈짜들,

『옳다 네 말이 옳아.』

하고 춘향더러 잘 자라 하고 이불 귀도 눌러 주고 흩어져 버린다.

왈짜들이 떠들다가 돌아가면 옥중은 고요한데 살 없는 앞 문과 외만 남은 뒷벽에서는 뼈를 부는 상풍은 새벽 이를 흩 날리며 살쏘듯이 들어오니 골절이 다 저려 온다. 눈을 감은 들 잠이 오리. 끝없는 듯 긴 밤을 뜨고 새고 울고 새니 도 련님 생각 어머니 생각 죄없이 형벌 받아 원통한 생각만이 들고 나고 들고날 뿐이다.

월매는 춘향을 옥에 두고 집에 돌아오니 맘을 지접할수가 없어 울며 불며 끌탕만 한다. 끌탕만 하면 무엇하나. 의원을 찾아가 약도 묻고, 무당 판수를 찾아가 무꾸리도 하고, 절에 가서 불공도 하고 아무리 하여서라도 춘향의 병이 나아지 라, 춘향이가 옥에서 나와지라, 부덩부덩 애를 쓰나 날이 가 고 달인 가도 병도 낫지 아니하고 옥에서 나올 길도 바이 없다.

이로부터 춘향은 옥중에 매인 몸이 되어 겨울 가고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 오고 봄 겨울이 다녀 가기 두 번이나 세 번이나 되었건마는 기다리는 서울 소식도 당언하고 놓일 기약도 망연하다.

변 부사는 술취한 때 생각난 때 심사난 때 궁금한 때 한 달에 세 번 좌기할 때, 춘향을 끌어 들여 얼리고 달래고 조 르고 수뇌하고, 호령하고, 때리고 하건마는, 춘향의 굳은 마 음 다질수록 더 굳으니, 털끝만치나 변할 리 있으랴마는, 갈 수록 변하고 쇠하는 것은 춘향이 몸이라 목숨이 모질어 붙 어 있기는 하건마는, 살은 다 떨어지고 피골이 상접하였으 니 옛날에 곱던 양자 다시 볼 길이 바이 없다.

겨울에는 추워 고생, 여름에는 축축하고 곰팡 나고 냄새 나는 방바닥에 벼룩 빈대는 어찌 그리도 많으며, 모기 각다 귀는 어찌 그리 극성스러운고. 물고 뜯고 쏘고 서물거리고 사르르 거리니 잠은 들며 몸은 가만히 둘 수가 있을까. 문 자국 긁은 자리가 덧나고 진무르고 어떤 것은 고름이 들고 어떤 것은 진물이 흘러 낮에나 좀 눈을 붙이려 하면 청파리 쇠파리 모두 모여들어 기어다니고 빨아 먹으니 낮잠인들 잘 수가 있나,

『가시고 안 오는 님 꿈에라도 뵈오련만 잠 못 이루오니 꿈 어이 이루리까 여름 밤 짜르다 하옴을 못내 설어노라.』

더구나 동풍은 스르르 불고 궂은비 내릴 때면 몸의 아픔 더욱 견디기 어렵고, 비오다가 개인 밤에 캄캄한 옥창으로 길 잃은 반딧불이 소리없이 들어와서, 높으락 낮으락 번쩍 번쩍 방안으로 돌다가 말없이 나간 뒤에 어디서 부엉이 부 흥부흥하는 소리나 두견이 귀촉도귀촉도 하는 애끊는 소리 를 어찌 차마 들으리.

지리한 여름도 지나가고 소슬한 추풍이 나뭇잎 펄펄 날리 고 벽틈에 귀뚜라미 밤을 새어 울고.

『님 그린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추야장 긴긴 밤에 님의 방에 들었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한 옛 노래를 생각하고 나도 귀뚜라미 넋이나 되어 한양 칠백리를 꿈을 타고, 날아가서 삼각산 슬픈 사정 하소연이 라도 하고 싶건마는, 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에 끼룩끼룩 기러기 소리 소리치는 새벽이 되도록 끄을 줄 모르니 어느 잠이 하마 들어 어느 꿈을 타고 가리.

『묻노라 저 기러기 북으로 음일진댄 삼각산 한강수를 앉어 날리 엇스려든 엇지타 님의 소식을 아니 전코 가나냐.』

그러나 기러기 무슨 뜻 있으리. 한양을 지나오기는 하였으 련마는 도련님 소식은 전할 줄 모르고 반야 삼경에 중천에 소리질러 수심 많은 사람의 겨우 든 잠만 깨운다.

달이 수상히 밝으니 아마도 추석일까. 낮에 철석철석 울려 오던 소리 떡치는 소리 는다. 붉은 대추 흰 오려송편 그것 을 생각하리라는 이날에 늙으신 어미니 얼마나 심흰들 설우 시랴.

어젯밤 이불 속이 심히 찼으니 아마도 서리 쳤을 듯, 서리 쳤으면 단풍 때요, 단풍 때 지나면 김장 때다. 실 고추는 누 라 하고 겨울 옷은 누라 짓나. 부모님 도련님 위해 김장도 하여 보고 다듬이 바느질도 하고 싶다. 재 손수 다듬어서 내 손수 지은 옷을 님에게 입혀 놓고 한 번만 보았으면 고 대 죽은들 한 있으랴. 가을이 슬프단 말 내게만 진정이요 세상 사람께는 허사로다. 부모 계시고 님만 있을진대 슬픈 가을이 어디 있으랴. 삭풍 한실이 흩날릴수록 님의 품이 더 욱 따삽고 오동시달 긴긴 밤은 길사록 좋을 것이언마는 옥 중에 홀로 매운 몸은 골수까지 얼어드니 이 겨울로 또 어이 지내리.

죽지 말자 죽지 말자—아무리 하여서라도 죽지 말고 살아나 서 그리던 님 보온 후에 이 원통한 심회를 풀고야 말자.

어느덧 겨울도 다 지나고 옥창에도 봄바람이 불어 오고 수 인의 귀에도 종달새 소리가 들려 오면,

『아—봄인가—또한 봄인가.』

하는 한탄이 나오고 금할 수 없는 눈물이 솰솰 흐른다.

세월은 가네 가네. 물 흐르듯 살닫듯 세월은 가네. 세월은 가고 가고 기다리는 님은 안 오시니 어쩔가나.

옥빈 홍안이 옥중에 다 늙기로 그것이 서러우랴마는 삼생 에 그리던 님을 다시 못 뵈옵고 죽을진댄 혼백인들 점여내 어 산호상벽 옥힘에 차곡차곡 담아다가 님의 눈에 뵈고 지 고. 보상 후에야 썩어진들 관계하랴마는 님 있을 때 이 썩 는 이 간장을 님도 모르게 다 썩힌다면 아 어찌하리. 참 마 이산(馬耳山) 높은 봉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나의 슬픈 눈 물 비삼아 띄웠다가 님 계신 옥창 밖에 뿌려나 주려무나.

요렇든 아픈 몸도 님을 보면 나으리라.

죽어 만일 혼이 있어 한양에 날아가 그리는 님을 뵈올수만 있다 하면 차라리 칼머리에 이 머리를 바서 버려 혼만 빠져 나아가 나비같이 새나같이 구름같이 님의 곁으로 날아라도 가련마는 한생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뵈여지라 모진 목숨을 붙잡아간다.

삼생에 못 잊은 것은 어머님 은혜로다. 처음에는,

『이년아 가고 안 오는 그놈을 기다리고 수절하는 네가 어 리석다. 네가 이러다라 죽은들 이 몽룡이 놈이 알기나 하랴 —통부를 보내어 알기로 살았을 제 안 오는 녀석이 너 죽었 다고 오긴들 하며 죽은 뒤에야 그놈이 와서 네 시체를 옥합 에 담아 저의 선산에 시조 할아비 무덤을 파내어 버리고 묻 어 준다 한들 무엇하리, 쓸데 없다 쓸데 없다. 사랑도 짝사 랑은 어리석은 일어어든 서방도 알아 주는 것이지 네가 수 절을 하기로 정절 부인이 나린단 말이냐, 열녀 정문이 나린 단 말이냐, 쓸데 없다. 쓸데 없다—네 수절은 헛수절이다! 아 서라 수절도 다 고만두고 사또 수청들어라. 인생이 몇 날이 리—청춘이 몇 날이리. 살아 생전뿐이다—.』

젊었을 때 흥청거리고 사는 게 내 것이지 수절도 다 개떡 같다 하고 두고두고 말하였으나 그때마다 춘향은,

『마오 마오 그럴 말씀 마오. 내 한 번 이씨 가문에 몸을 허락하였으니 살아도 이씨집 사람이요, 죽어도 이씨집 혼이 라, 철석같이 굳은 정절 변할 리 있사오리까. 또 도련님이 공부하시느라고 지금 비록 못 오시나 대장부일언 해고석란 이라도 불변한다 하였사오니 변할 리 있사오리까. 어머님 그리 마오. 불행히 이 몸이 도련님 못 뵈옵고 옥중에서 죽 거들랑 산지도 구치말고 육진장포로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 한양 성내 올려다가 도련님 다시시는 노변에 묻어 주면 도 련님 왕래시에 지하에서 음성이라도 들으랴오.』

하여 울며 간하므로 월매도 마침내 그 말에 감동하여 다시 는 훼절하기를 권치도 아니하고 거진 날마다 파루치면 혹은 약도 달이고 혹은 미음 원미도 달여다가 권하며,

『아나 먹어라 먹어야 산다. 네 정도 가소롭다. 도련님이야 꿈에나 너를 생각하랴. 소견 없는 생각 말고 미음이나 먹으 려무나. 네 병세를 요량하니 회춘하기 망연하다. 님을 그려 상사병 매를 맞아 장독병, 게다가 음식을 전폐하니 산귀신 이 되었구나.』

할 뿐이었다.

자식 생각은 부모라고, 월매는 이 의원 저 의원 이름난 이 원은 다 찾아 다니며 좋다는 약은 다 지어다 먹인다. 의원 따라 혹은 냉이요, 혹은 담이요, 혹은 습이요 하여 도담탕 반하탕 삼화탕 이진탕은 담 다스린다고 쏘고, 순기산 강활 탕 통성산 방풍산은 풍 다스린다고 쓰고, 여름에 더위 먹었 다고는 향수산 이향산익 원산 육화탕을 쓰고, 몸이 여위고 밥이 안 내리는 것은 회충이라 하여 회충 다스린다고 회충 탕 연번산, 벽금탕을 쓰고, 근심으로 난병이니 아마도 험로 라 하여 게부탕, 보허탕, 심신환을 쓰고.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병은 울화병이라 하여 육울탕, 활혈탕, 청량산, 삼화탕을 쓰고, 또 어떤 의원 말은 그렇게 약을 써서야 쓰 느냐. 모든 병은 허약하여 나는 것이니 보혈기 하는 것이 으뜸임라 하여 팔물탕, 대보탕, 익기탕, 환약으로는 청심환, 보명단, 태화환, 광제환을 화제하고. 또 어떤 의원은 이 병 은 황쇄족쇄에서 온 병이라 하여 서경탕을 쓰고 답답증을 푼다 하여 해울탕을 쓰건마는 님 그리는 상사병에 일분 효 험이 있으랴.

어떤 의원은 중한 병에 약으로 되랴. 동인경(銅人經)에 빠 른 것이 침구 밖에 없다 하여 태양이니, 태음이니, 소양이 니, 소음이니, 양명이니, 권음이니 하여 태흉합곱에 사관도 하며 기혈 허로에 보사도 하고 턱아래 장수혈에 침삼분구칠 장(鍼三分灸七壯)하고 결후상 겸천혈에 침삼분구오장. 포구 혈자오혈과 통천혈기문혈을 아무리 뜨고 주어도 일신 삼백 육십 온혈에 님 생각이라는 혈이 없으니 무엇하랴.

춘향이 마침내 화를 내어,

『아모 것도 나는 싫어, 약도 싫어, 침도 싫고, 뜸도 싫고, 도련님만 보고지고. 이 몸이 죽어서 님을 잊어야 옳단 말가.

살어서 이대도록 애타고 그리워야 옳단 말가. 혈육으로 생 긴 몸이 이리 설고 어이 살리. 죽자 하니 청춘이요 사자 하 니 고생이라. 전생 죄악 아닐진댄 가중동포정영하다. 애고 애고 어이하리.』

하고 한탄하니 월매는 더욱 기가 막혀,

『약으로도 못 나을 병이면 신에게나 빌어 볼까. 옛날에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으니 지성으로 빌진댄 설마 응치 아 니하랴.』

하고 곧 택일하고 목욕 재계하고 소문난 판수 불러 경단을 설하고 온갖 경을 다 읽는다. 볼설천지팔양경, 삼귀삼지 삼 재경, 금강경, 태을경, 공작경, 반야경, 삼심경, 조왕경, 천수 풀이 도액경 축사하는 옥취경을 다 읽으며 안택경도 읽어,

『여시아문 일시붙여 공작보살 관세음보살 마하살.』

하고 사흘 이레 경 읽어도 듣지 아니하니 이번에는 무당을 불러,

『야학산조는 삼천죽절로 풍덩 드리쳐 꽃구경 가자.』

『얼씨고나 조리씨구 거드러거려 놀아 보자.』

『해진걸립 헌걸립에.』

『얼씨구나 조리씨구......』

이 모양으로 굿을 하여도 반점 효험이 없다. 월매도 그만 시전하여 하루는 춘향을 찾아와서 더럭더럭 화를 내며,

『애고애고 설운지고. 어인 년의 팔자가 이대도록 기박한 고. 조상부모하고 중년 고생하고 말년에 너 하나를 두어 인 생락을 보잤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니 뉠 바라고 사자느냐?

한군사 제갈 양을 갈충보국하랴다가 오장원 추월야에 장성 한 떨어지고, 서산에 백이숙제 두 임금을 안 섬기어 수양산 에 굶어 죽고, 주류천하 개가취는 할고사군 하랴다가 명상 산에 불타 죽고, 삼려대부 굴원이도 위국진춘 애쓰다가 멱 라수에 빠졌거니와 이년아 너는 무슨 짝에 옥중 원혼이 된 단 말이냐. 너도 열녀 되랴거든 개천궁게나 빠지려무나. 너 를 배고 조심할 제 활부정 불식하고 석부정 불좌하고 더러 운 것 볼세라, 위태한 곳 갈세라 십삭 몸을 조히 가져 너를 낳아 기를 적에 진자리에 내가 눕고 마른 자리 너를 뉘여 부증생남증생녀로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 금이야 옥이야 귀 히 길러 금볼 같은 내딸 아기 이리 될 줄 어이 알리.』

하고 몸부림을 하고 우는구나.

춘향도 눈물지며,

『어머니 우지마오, 하늘이 설마 무심하겠소? 내가 일생에 지은 죄 없으려든 하늘이 설마 무심하리—아니 죽고 살아나 서 어머님 봉양할 터이니 어머니 우지 마오.』

하고 정성으로 위로한다.

『너도 열녀 되랴거든 개천궁게나 빠지려무나.』

하고 월매가 돌아간 뒤에 춘향은 제 신세를 생각하고 어머 니 신세를 생각하고 혼자 잠 못 이루고 울다가 문득 어슴푸 레 잠이 들었는지 춘향의 몸이 구름같이 훨훨 날아 한 곳에 다다르니 거울같이 맑은 물에 달빛이 비치이고 우거진 푸른 대숲 여름 바람에 버석버석 소리를 낸다.

『이게 어딘가—내가 어디를 왔나?』

하고 의아하며 홀로 배회할 때에 문득 소복 입은 차환 한 쌍이 춘향 앞에 읍하고 서며,

『낭낭께서 낭자를 청하시니 이리로 오옵소서.』

하고 푸른 빛 나는 쌍둥을 들고 앞길을 인도한다. 춘향이 차환의 뒤를 따라가니 대숲 다하는 곳에 한 큰 집이 있고 층계 위 검은 현판에 황금 액자로,

『만고정렬황능묘(萬古貞烈黃陵廟)』

라고 뚜렷이 쓰이어 있다.

『그러면 내가 소상강(瘙湘江)에 왔나.』

하고 계상을 바라보니 촛불이 휘황한 곳에 소복 입은 부인 두 분이 앉았다가 춘향이 이름을 보고 옥패를 넌짓 들어 오 르기를 청한다.

춘향이 공손히 읍하여,

『진세천인이 어찌 감히 존엄한 좌석에 오르리이까.』

하고 사양한즉,

『기특하고 엄전하다. 조선이 자고로 예의지방이라 충효와 열행이 갸륵한 줄을 알거니와 너는 청루 출신으로 저대도록 갸륵하니 소상 만리에 꿈길도 멀거니와 한 번 보고 싶어 어 진 사람으로 수고를 시켰으니 심히 불안하도다.』

하고 일변 칭찬하며 일변 자리에 오르기를 청한다.

춘향이 계하에서 국궁 재배하고,

『첩이 비록 배운 배 없사오나 일찍 고서를 보아 부인의 사적을 오매 사모하옵더니 오늘날 부인을 대하오이 이제 죽 사와도 한이 없나이다.』

하고 시녀의 인도를 받아 제에 오르니 이상한 향기가 진동 하여 정신이 황홀하여진다. 두 부인과 좌우에 벌여 있는 여 러 부인에게 공손히 읍하고 자리에 앉았다.

춘향이 자리에 앉기를 김다령 부인은 춘향을 보며,

『네가 나를 안다 하니 나의 말을 들어 보아라. 우리 성군 대순씨(大舜氏)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蒼悟山)에 봉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강에 피눈물 뿌려 소상강 대수풀 이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마다 원혼이라. 창오산붕상수절 (蒼悟山崩湘水絶)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竹上之淚乃可滅)이 라 천추에 깊은 한을 호소할 곳이 없었더니 너를 보고 말이 로다.』

하는 말이 맺지 못하여 방성 대곡하니 좌우에 앉은 부인들 이 일시에 일어나 읍한다. 부인이 울음을 그치고 옥패를 넌 짓 들어 좌우를 가리키며,

『여기 모인 여러 부인을 네 아마도 모르리라. 니는 태임 (太姙)이요, 이는 태사(太似)요, 이는 태강(太姜)이요, 이는 맹강(孟姜)이라.』

하는 부인의 말이 맺지 못하여 남벽에서 어떤 부인이 추추 히 울고 나와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네가 춘향이냐. 갸륵하고 기특하고. 네가 나를 모르리라.

주루명월옥소성(奏樓明月玉蕭聲)에 농옥하던 화선이라. 소사 의 아내로서 주화산(奏華山) 이별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어 옥통소로 원을 푸니 곡종비거부지처(曲終飛去不知處)에 산하 벽도루춘자개(山下碧桃樓春自開)는 나를 두고 이른 말이 라.』

하는 말이 맺지 못하여 동벽에서 어떤 미인이 단정히 들어 오며 춘향이 손을 잡고,

『여보게 춘향이 자네 나를 어찌 알리. 십괵명주(十明珠)로 사던 석숭(石崇)의 소애 녹주(綠珠)로서 불측한 조 왕륜(趙 王倫)은 나와 무삼 원수런고. 누전각사불운설(樓前却似紛耘 雪)하니 정시화비옥쇄시(正是花飛玉碎時)라 낙화유사타루인 (落花猶似墮褸人)은 나의 원혼 그 아닌가.』

말이 맺지 못하여 음풍이 일어나고 찬 기운이 소삽하며 촛 불이 벌렁벌렁 휘휘처 툭 꺼지면 무엇이 때그르르 아래와 덜커덩 하는데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처량한 울음 소리만 낭자하며,

『여보아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랴. 나는 한 고조(漢 高祖)의 척부인(戚夫人)이로라. 우리 화상룡비후에 여후(呂 后)의 독한 손이 조왕여의(趙王如意) 참살하고 나의 수족 끊 은 후에 두 눈 빼고 암약(癌藥) 먹여 인체 호소할 곳 없었더 니 너를 보고 이 말이라.』

하는 말이 끊이매 다시 음풍이 일고 우는 소리 멀어져가며 촛불이 밝아진다.

이때에 어떤 부인이 황황히 들어오니 만좌 부인들이 일어 나 맞는다. 한헌을 필한 후에 그 부인이 춘향의 손을 잡고,

『내 오기 늦었다. 유명의 길이 달라, 내 너를 여기서 보니 서로 보기가 늦었도다. 네 나를 모르리라. 나는 신라 박 제 상(朴堤上)의 아내로라. 가군이 국명 받아 일본으로 가신 후 에 춘부춘 추부추에 돌아올 줄 모르시니 무정한 동해수를 주야로 바라다가 일생에 맺힌 원한이 수리재 임 가신 길에 일편석이 되여 있어 일천년 풍우 속에 혼이라도 기다리니 뉘를 보고 일말 하리 너를 보고 이 말이로다.』

하고 흑흑 느껴 우니 만좌가 모두 눈물이다.

춘향이 무슨 말을 하렬 적에 동방으로 실솔의 소리 스르르 일어나며 일쌍 호접이 펄펄 난다. 깜짝 놀라 잠을 깨니 먼 촌에 닭이 울고 종각에 파루 소리,

『뎅......뎅......』

들려온다. 전신에 땀이 쭉 흘렀다.

『꿈도 이상도 하다.』

하고 춘향은 꿈에 본 광경을 일일이 되풀이하여 생각하더 니,

『아마도 내가 죽으랴는 꿈이로다.』

하고 옥창으로 비겨드는 지새는 달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 라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스르르 두 뺨에 흘러 내린다.

이날 아침에 문간 사령이 나와 옥사장을 보고,

『사또께서 또 형장 많이 깎아 올리라 하옵시니 내일은 아 까운 춘향이가 또 모진 매를 맞나 보이. 이제 또 맞으면 살 수 있나. 춘향 보고 서울 편지나 한 번 해 보라 하소.』

하고 들어갔다.

옥사장이 이 말을 듣고 춘향을 보고,

『여보 서울댁 편지나 한장 해보소. 서울서 알고 보면 그 저 있을 리야 있소? 오늘도 사또께서 형장 깎아 올리라 하 옵시니 아마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나나 보오.』

하고 근심하는 빛을 보이니. 춘향도 한숨을 지으며,

『공부하시는 도련님이 이 말을 들으시면 얼마나 놀라실 까.』

하고 주저하는 것을 옥사장이,

『놀라시는 것도 놀라시는 것이어니와 사또께서 조금도 마 음이 풀리는 빛은 없고 갈수록 더 독만 오르는 모양이니 이 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날는지 알 수 없으니 잔말 말고 어서 편지 하소.』

하고 권하는 바람에 춘향은,

『그 말도 당연하오. 그러면 사람이나 하나 얻어 주오.』

하고 몽룡에게 편지를 썼다.

옥사장이 몽룡을 모시던 방자 뽈짝쇠를 불러 오니 춘향이 반겨하며,

『돈 열 냥 줄 것이니 서울 가 다녀오면 겨울옷 한 벌 하 여 주리다.』

하고 편지를 내어 준다.

『압다 그런 말이 당한가. 서울댁의 일이 내 일이니 내 안 가고 누가 가리. 주야배도 다녀옴세.』

하고 돈받아 견대에 넣어 허리에 둘러때고 편지 받아 넣고 충충충 뛰어 나간다.

『편지는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고.』

몽룡이 서울로 올라온 후로 춘향을 생각하는 정이 가슴에 못이 되어 아무리 잊으려도 잊을 길이 바이 없고 깨면 생각 이고 장면 꿈이다. 꿈에 다니는 자취 곧 날 양이면 박석퇴 넘는 고개 바위라도 닳으리라.

입맛이 없어지고 잠도 잘 들지 못하니 몸은 더욱 수척하고 정신은 혼몽하여진다. 부모도 다 버리고 세상 공명도 다 버 리고 훌쩍 날아 춘향에게로 갈 맘이 불일 듯하거니와 그렇 게 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리.

『아니다—이리 할 수 없다. 이러다가 내 몸에 병이 들어 만일 죽어지면 부모에게 불효도 되려니와 춘향은 누구를 의 지하며 또 대장부 세상에 났다가 위로 성군을 도와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어 아름다운 이름을 죽백에 전하지 못하면 천 지가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며 지하에 무슨 낯으로 영웅 호 걸을 대하랴—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하고 몽룡은 불철주야로 공부하기를 시작하였다.

『어서어서 공부하여 어서어서 대과급제하는 것이 춘향이 를 속히 만나는 길이다.』

하고 몽룡은 춘향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더욱 공부에 힘썼다.

원래 신동이라 일람촉기라는 칭찬을 받는 몽룡은로서 주마 가편으로 드립다 공부를 하니 마치 탄탄대로상에 철리마 달 리듯이 공부가 일취월장한다. 사서 오견을 통달한지 오래거 니와 고금사기며 제자백가의 시집 문집을 모조리 내려보고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경은 잊을 것도 없고 선가(仙家) 불가(佛家)의 수없는 책을 한 번 내리 열람하고 글 읽다가 쉬일 때에는 글씨를 익힌 뒤에는 시도 짓고 글도 지으니 삼 년이 다 못하여 이 몽룡이라면 소년 문장으로 장안에 이름 이 높게 되었고 더우기 시왕 서로는 대가를 압두한다고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소년 문장 이 몽룡의 명성이 장안에 헌자하니 대가 에서 혼인을 청하는 곳도 비일비재언마는 모두 물리치고 더 욱 공부에만 골몰하였다.

이 백은 다 무엇인고. 한 퇴지도 우습다. 황 산곡 백낙천은 이를 것도 없거니와 두 자미 도 연명도 두려울 내가 아니로 다 하리만큼 몽룡의 포부는 크게 높게 되었다.

이때에 알성과를 뵈옵시니 몽룡이 시지를 품에 품고, 동인 사초 강목, 옥편, 장막, 포장, 동대우산, 포전, 말장목, 가초 묶어 구종 지어 앞세우고, 장중에 들어가니 팔도 선비 구름 같이 모였다. 현제판(懸題板) 아래 등대 꽂고, 장전을 바라 보니 백설 같은 백목차일을 보게 위에 높이 치고 세백목설 포장은 구름같이 들려 있고, 어전(御前)을 바라보니 양산 일 산 청흥흑개 기번(旗幡) 보독(輔讀) 봉미선(鳳薇扇)과 용기 (龍旗) 봉기(鳳旗) 호미창(虎尾槍)자개창(紫介槍)삼지창(三枝 槍) 언월도(偃月刀)를 위의 엄숙하게 둘러 꽂고, 병조 판서 (兵曹判書) 도총관(都總管) 승사각신(丞司閣臣)이 어전에 늘 어서고, 금관조복에 서대옥대(犀帶玉帶) 띠고 사모(紗帽) 품 대(品帶) 쌍학흉배(雙鶴胸背) 호수입식(虎鬚笠飾) 청철익(靑 綴翼)에 착군복(着軍腹) 패통개(佩筒盖)는 선전관(宣傳官)이 분명하고 선상(先廂)에 훈련 대장(訓練大將) 중앙에 금군 별 장(禁軍別將) 후상(後廂)에 어영 대장(御營大將) 총관사(總官 使) 별군직(別軍職)과 좌우포장(左右捕將)이 늘어 서고, 위내 금군(偉內禁軍) 칠백명과 전명사알별감(傳命司謁別監)이며 무예차지통장(武藝次知統長)이며, 가전가후별대마병(駕前駕 後別隊馬兵) 좌우에 정원사령(政院使令) 팔십명 나장(邏將) 이며 근복군사(近伏軍士) 대답하고, 어전뇌자(御前牢子) 벌 어섰다.

시위가 정제한 후에 사알(司謁)이 소리 높여,

『시관전진전진(試官前進前進)』

하고 외치니 사관이 고복(叩伏)한 후에 대독관(代讀官)이 글제를 받아 들고 현제판(懸製版)에 내어 거니 그 글제는,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

이라 하였다.

몽룡이 글제를 보더니 꽃밭다 같은 가슴 속에 비단 같은 생각이 물결치듯 솟아온다. 용미연 좋은 벼루에 한림풍월 먹을 갈아 순 황모필 반증동을 흠썩 풀어 왕희지의 필법으 로 조맹부체를 받아 일필 휘지하니 문불가점이라 일천(一天) 에 선장(先場)하니 사시관이 글을 보고,

『과연 만고 문장이요 일 대 명필이로구나.』

하고 칭찬을 마지 아니하며 자자마다 비점이요, 구구마다 관주를 주어 상지 상등으로 장원을 매겨 내뜨리고, 이전에 탁봉(坼封)한 후 장원급제로 금방(金榜)에 뚜렷이 이 몽룡이 라 이름을 쓰고, 청철익 앞을 헤치고 자 세치 긴 소매를 보 기 좋게 활개지며, 정원사령(政院使令)이 충충충 걸어나와 장원봉(壯元峰) 연못가에 뚜렷이 나서면서,

『이 준사 자제 이 몽룡! 이 몽룡!』

하고 두세 번을 부르니 장중이 뒤집히고 춘당대가 떠가는 듯하다.

몽룡이 세수를 다시하고 도포를 고쳐 입고, 선걸음에 썩 나서니 정원 사령이 부액하여 신래진퇴(新來進退)하고, 어전 에 사배(四拜)하고, 어주삼배(御酒三杯) 마신후에 몸에는 청 삼(靑衫)을 입고, 머리에는 어사화(御賜花)를 꽂고, 우으로 주시는 풍악 속에 홍화문(弘化門)을 나서서, 천금 준마상에 둥두렷이 높이 앉아 장안 대로상으로 돌아올 제 은폐청개 (銀陛靑盖)는 앞을 서고, 금의화동(錦衣花童)이 쌍저를 비겨 부니, 뉘라 칭찬하지 아니하며, 뉘라 부러워 아니하랴. 일문 에 큰 영화로 종족이 모여 치하하니 인간에 좋은 것이 장원 급제 밖에 또 있을까?

사흘 동안 유과하고 선형에 소분한 후에 궐내에 들어가 인 견숙배(引見肅拜)하고 계하에 복지(伏地)하니 성상이,

『너를 불차(不次)로 쓸 터이니 내외직에 무슨 벼슬을 원하 느냐. 네 소원을 일러라.』

하고 하교하시니 몽룡은 고두사은하고,

『소신(小臣)이 연소미재(年少微才)로 천은이 망극하와 소 년 급제를 주시니 아리울 바를 모르오나, 구중궁궐 운심(雲 深)하고 사해팔방에 왕화불급(王化不及)하여, 원방에 탐관오 리 수재곡법(受財曲法) 빙공영사(憑公營私)하여 환과고독(鰥 寡孤獨) 민간 질곡 아울 길이 없사오며, 사직지분(社稷之分) 생민대제(生民大制)는 보국대신과 어사오니, 어사를 제주하 옵시면 민간의 각색 각난이며, 각읍의 탐관오리 역력히 살 펴다가 탑하(榻下)에 아뢰오리이다.』

『인재로다. 기특하다. 높은 벼슬 다 버리고 암행어사 구하 는 뜻이 다시 보국충신이로다.』

하고 칭찬하신 후에 전라 어사를 특차하시니, 평생의 소원 이라 어찌 아니 황감하랴.

어전에 하직하고 수의(繡衣) 유천(鍮天) 삼마패(三馬牌)를 두고리뼈에 단단히 차고 물러나오는 길로 군관(軍官) 비장 (裨將) 서리(書吏) 반당(伴當)을 택출하여 변복시켜 선송(先 送)하고 삼방하인(三房下人) 귀속하여 남 모르게 장을 두고, 몽룡은 철대없는 파랍에 무명실로 끈을 달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갓풀관자 조회당을 걸어 매고 다 떨어진 베 도포를 아무렇게나 걸쳐입고, 칠푼짜리 목통대에다 다 해어진 맛부 치를 웃대님 질근 매고, 변죽 없는 부채를 들고 암행어사란 부모 처자에게도 알리지 못하는 법이라고, 사당 하직하고 청파억졸 분부하고, 남대문 썩 나서서 전라도로 내려간다.

칠패팔패 이문골, 도저골, 쪽다리를 지나, 청파배다리, 들모 루, 밥전거리, 모래톱 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들 건너 남태령(南太嶺) 넘어, 인덕원(仁德院) 지나 과천(果川)에서 중화하고, 갈미사근내 군포내 미륵당이를 지나, 오봉산(五峰 山) 바라보고, 지지대(遲遲臺)를 올나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 교구정(交龜亭) 돌아 들어 팔달문(八達門)을 내달아 상 류천(上流川) 하류천(下流川) 대황교(大皇橋) 진개를 거쳐, 떡점거리에 중화하고, 중밋 오뮈진위(振威) 칠원(漆原) 소사 (素沙) 비트리 천안(天安)삼거리 지나, 금제(金啼) 역마 갈아 타고, 덕정(德亭)원려 광정 활원 모르원 세숫막 지나, 공주 (公州) 금강(錦江) 휙근 지나, 경천(憬天) 노성(魯城) 황화정 (皇華亭)이 은진 닥다리 능기울 삼례(參禮)를 지나, 여산관 (礪山館)에 숙소하고. 삼례(參禮) 역졸 분부하고, 고산(高山) 지나 전주 감영 들어가서, 한벽루(寒壁樓)를 구경하고 남천 교(南川橋) 돌아 들어 반숙말에 역리 역졸 모두 불러 모든 군호를 정하고, 은밀히 삼배도(三陪道)를 분발한다.

『너는 예서 내달아서 여산(礪山), 익산(益山), 금구(金溝), 태인(泰仁), 정읍(井邑), 고부(古阜), 흥덕(興德), 고창(高廠), 무장(茂長), 장성(長城), 광주(光州), 남평(南平), 능주(綾洲), 화순(和順), 동복(同福), 창평(昌平), 옥과(玉果)로 돌아 금월 십오일 오시에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여이.』

『너는 예서 내달아 임피(臨皮), 옥구(沃溝), 금제(金堤), 만 경(萬頃), 함열(咸悅), 부안(扶安), 영광(榮光), 함평(咸平), 나 주(羅州), 영암(靈岩), 해남(海南), 장흥(長興), 보성(寶城), 흥 양(興陽), 낙안(樂安), 순천(順天), 광양(光陽), 좌수영(左水 營), 구례(求醴) 들러 곡성(谷城) 다녀 금월 십오일 오시에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여이.』

『나는 예서 전주(全州), 임실(任實), 무주(茂朱), 용담(龍 潭), 금산(錦山), 진안(鎭安), 장수(長水), 순창(淳昌), 담양(潭 陽)을 둘러, 운봉(雲峰) 다녀 남원 사십 팔면을 소소히 염탐 하고, 분중에 머물 것이니 너희들은 급급히 다녀오디 백문 이 불여인견이라. 남의 밀을 믿지 말고 탐관오리와 불충 불 효하는 놈들, 친척 이이웃 음해하는 놈들 술먹고 주정하고 우악하고 어른 존경 모르는 놈, 살인강도 하는 놈, 국고 투 식하는 놈, 유부녀 간통하는 놈, 남의 분묘 사굴하는 놈, 어 진 아내 모함하고 가장두고 서방하고, 제 것 두고 빌어먹고 주색잡기로 판 난 놈, 남의 집에 불놓기, 있는 소리 없는 소 리 거짖말로 꾸며대는 놈, 낱낱이 적어 쥐고 금월 십 오일 오시에 일각 지체 말고 남원 광한루로 대령하라.』

『여이.』

이렇듯 분부하여 각처로 떠나 보내고 몽룡은 독행으로 전 주를 떠나 내려간다.

각읍 수령들은 어사 떴단 말을 풍편에 얻어 먹고 옛 공사 다 버리고 새 공사 닦을 적에 모다 선정이요, 모두 명관이 어니와 못 견디어 나는 놈은 삼판 관속이요,육방 아전이라 관청비는 가슴치고 이방아전은 속이 탄다.

관전(官錢) 목포(木浦) 환상(還上) 결전(結錢) 복수(卜數) 문 서를 닦으려니 동창(東倉) 서창(西倉)에 수많은 미곡과 목포 는 문턱으로 내입(內入)이라 하여 반 넘어 원님이 먹어 버렸 으니 무엇으로 충수하며 무슨 명목으로 하기(下記)하랴. 이 방은 부르거니 호방은 쓰거니 물끓 듯한다.

몽룡은 각읍 소문 염탐하여 듣는 대로 보는 대로 낱낱이 적어 쥐며, 노고바위를 지나 임실경 내에 다다르니 때는 마 침 모춘이라 농부들이 갈거니 심으거니 하다가 탁주 병에 점심 먹고, 담배를 피어물고 쉬는 참에 몽룡이도 그 곁에 앉아 담배 한대 얻어 붙여 물고 한 농부더러 말을 붙인다.

『여보소, 두 소가 함께 가니 어느 소가 잘 달아나오?』

『소 들으면 노여할 데 그 말하여 무얼하노.』

『그도 그럴 듯하니 안 듣는 이 말이나 할까—자네 고을 원 님 정치는 어떠하다든가?』

『우리 골에 사망이라고 네 가지 망 있는 것 듣지도 못하 였나—내 이를게 들어 보소. 부자는 패망, 아전은 도망, 백성 은 원망, 출패는 양망—이게 사망 아닌가.』

모두 농부 하하 웃고 몽룡도 웃는다.

그러나 농부들은 몽룡의 행색이 수상한 것을 보고 서로 눈 짓하며 픽픽 웃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그중에 한 농부가 두 눈이 우묵 양볼이 쪽쪽 헛김 나는 골 통대로 꼍불에 푹 박고 담배를 붙이더니 몽룡을 보며,

『이분네야 어디 삶나? 요런 맵시 구경하소. 실을 팔러 다 니나? 망건 앞은 덜 떴는가?』

하니 다른 농부 하나가,

『가만 두송 이사람들! 입은 도포를 보아 하니 그리하여도 쇠끗일세.』

하고 빙정거런다.

또 한 농부가,

『기롱마소. 갓상하네. 보아하니 당초에는 선이 노던 왈짜 로세.』

또 한 농부가,

『의복꼴로 보아하니 그래도 옷거리가 제법일세.』

또 한 어린 농부가 몽룡이 담뱃대를 가리키며,

『자시는 담뱃대는 전장을 몇 번이나 만났나요?』

또 한 늙은 농부가 댓진을 빨아들여 누런 침을 퉤 하고 뱉 으며,

『이 사람들 가만 두소. 저런 사람 무서우니. 아닌 밤중에 다니다가 불지르기가 일수니라—이런 사람은 건드리지를 않 는 것이 상수니라.』

또 한 농부 고개를 저리로 돌리며,

『꼴이 저리 되었거근 진작 낙향하려무나. 우리네 같이 농 사나 해 먹으려무나.』

하고 담뱃대를 떤다.

더벅머리 아이놈도 많이 모여와서,

『이애 구경났다—거지났다.』

하고 가까이 와서 몽룡의 옆구리를 꾹 찌르기도 하고 몽룡 의 등에다가 모래를 던지기도 한다.

한 농부가 담뱃대를 허리에 찌르고 채찍을 들고 일어나며,

『에라 에라 가만 두어라. 모양 거룩하옵시다. 영정조(英宗 朝) 시절에 났더면 인물장사 어데 가며 남원 땅에 들어가면 춘향이 서방 갈 데 없다—다들 갈던 밭일나 갈자 신선 놀음 에 도낏 자루 썩어질라.』

한 농부 내달아 이 농부의 뺨을 치며,

『이자식! 백옥 같은 춘향이를 제 아무리 못 듣는다기로 뉘게다 비하느니. 미친놈 몹쓸놈이로구나.』

하고 왁자 지껄 싸우고 떠든다.

몽룡이 한참 동안 욕을 얻어 먹었으나 「백옥 같은 춘향」

이란 마지막 마디가 좋아서 흐뭇하어 그곳을 후리치고 또한 곳으로 다다르니 깊숙한 총림 속에 물소리가 더욱 좋다. 몽 룡이 시냇가 반석 위에 앉아 떠도는 구름도 보고 울어오는 새 소리도 들으니 솟는 흥을 이기지 못하여 풍월한 절귀를 읊으니,

『우게무석게환속이요 유석무게석불기라 차지유게겸유석하니 천위조화아위시를.』

(有憩無石憩還俗 有石無憩石不奇 有石無憩石不奇 天爲造化我爲詩) 제필하고 돌아서니 갈 길이 아득하다. 시내를 따라 깊이 깊이 들어가니 날은 이미 석양인데 어디로서 종소리 은은히 울려 온다. 아마 절인가 보다. 노곤도 하고 시장도 하니 이 곳에서 오늘밤을 지내리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니 골짜기 닿는 곳에 일좌 불당이 석양을 띄고 있다.

판두방에 들어가 저녁밥을 얻어 먹고 밤을 지낼 제 여기 모여 공부하던 소년 선비들이 몽룡을 보고 거지로만 여겨 박장 대소하며 온가지로 보채고 기롱한다. 몽룡이 참담 못 하여 정색하고,

『상없이들 실체하니 선배 도리어 해연하오.』

한즉 소년 공부객들도 좀 겸연쩍어 웃음을 그치고 저희끼 리 의논하기를,

『제가 가장 양반인 체하니 만일 양반이면 글을 알 것이니 운자를 불러 글을 짓거든 경대하고 글을 못 짓거든 타둔방 축(打臀放逐)하자.』

『그러자.』

하여 규장전운(奎章全韻)을 펴 놓고 여러 선배들이 고르고 골나 강운으로만 골라내니 푸를창(蒼) 창포창(菖) 되강(羌) 소똥구리당(糖) 기장이 량(梁).

몽룡이 운자를 보고 응구첩대하니,

『우연위객 도산창하니 약포향생 구절창을 사외옥봉은 련북극이오 불전금엽은 자서강을 신여야학 녕수붕하랴 심사한선 불선당을 종파상방 인진반하니 등반선채 촉취량을.』

(偶然爲客到山蒼 藥圃香生九節菖 寺外玉峰蓮北極 佛前金葉自西羌 身如野鶴寧受鵬 心似寒蟬不羨螳 鍾罷上方因進飯 登盤仙菜促炊粱) 이 글을 보고 여러 선배들이 백배 사례하며 술을 나누어 밤이 늦도록 즐긴다. 몽룡은 눈치를 아니 체오리만큼 가끔 소문을 탐지하려고 여러 말을 물은 끝에,

『내가 남원 읍내 사람에게 취심차로 정변(呈辯)코자 하니 부사가 공사나 분변하는지요?』

하고 물었다. 한 선배 나서며,

『남원 부사 말을 마오. 탐재 호색하기로는 둘도 없지요.

내 말을 들어 보오. 백성이 소를 잃고 도적 잡아 고과(告課) 하니 부사란 자가 양척을 불러 놓고 원척에게 분부하는 말 이 네 소가 몇 필이냐? 원척 대답이 황소 하필, 암소 한 필 다만 두 필 두었드니 황소 한 필을 이놈이 도적하였나이다 한즉 부사가 도적놈더러 하는 말이, 너는 소가 몇 필이니?

소인은 적빈하와 소 한 필도 없나이다. 그런즉 부사란 자 하는 말이 소 임자놈 들어 보아라! 너는 무슨 복으로 두 필 씩 소를 두고 또 저 놈은 무슨 죄로 한 필도 없단 말가? 어 차어피에 한 필씩 나누었으면 사면이 무탈하고 송리가 공평 이라 하고 소임자의 소를 뺏아 소 도둑놈을 주었으니 이런 공사 또 있소? 그도 그러려니와 백옥 같은 춘향에게 욕을 보고 엄형 중치하여 하옥하니 춘향이 병이 든지 해포만에 거월 초생에 그만 죽어 저산 너머 초빙하여 묻었으니 긴들 아니 직악이요?』

몽룡이 춘향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설운 마음이 복받쳐 입시울이 비쭉비쭉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그 선배가 밖에 나가 중을 불러,

『춘향이 죽었단 말을 하였더니 걸인의 형상을 보니 불승 비감 불금 유체하니 그 아니 고이하냐. 패 하나를 깎았다가 아모 초빙한테라도 꽂아 놓고 멀리 서서 구경이나 하자.』

하고 목패에,

『본부기생수절원사춘향지묘(本府妓生守節寃死春香之墓)』

라고 뚜렷이 써서 중놈을 주어 보내었다.

몽룡은 춘향 죽은 말을 듣고 어찌 할 줄을 몰라 날도 새기 전에 절에서 나와 희미한 달빛 밑에 풀밭으로 수풀사이로 허둥지둥 춘향의 무덤을 찾다가 마침내 찾아내어 무덤 앞에 펄썩 앉으니 모골이 송연하고 정신이 황망하다. 남부끄런 줄도 전혀 잊고 통곡하며 하는 말이,

『아이고 춘향아 네 이것이 웬 일이니? 우리 둘의 백년 기 약 이제는 모두 허사로고나. 천리 원정 내 오기는 너만 보 려 함일러니 죽단 말이 웬 말이냐? 공산야월 적막한데 누웠 구나 잠자나냐. 내가 여기 왔건마는 모르는 듯 누웠고나. 산 초와 야화는 해마다 네 무덤에 푸르련마는 네 옥골량량혼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라. 애곡 애곡 설운지고. 춘향아! 춘향 아! 얼골이나 잠깐 보자 음성이나 한 마디 들어 보자 너를 어디가 다시 보리. 보고 싶어 어찌하라느냐! 차마 설어 못 살겠다—지금 날 다려가거라.』

하고 애연히 슬피 우니 추목도 눈물을 머금은 듯 금수도 느끼는 듯 밤 이슬은 몽룡의 옷을 축축이 적신다.

이때에 건넛마을 강 좌수가 막내동이 외딸을 죽여 버리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담배만 피 우더니 새벽 닭이 재오쳐 울 때에 어이한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문을 열고 바라보니 죽은 딸의 초빙한 무덤 앞에 정녕 어떤 사나이가 앉아 운다. 고이히 여겨 곁에서 자는 마누라를 흔들어 깨우며,

『고이한 일이로군. 여보 마누라 우리 아기가 살았을 때에 시집 못간 처녀여든 어떤 놈이 와서 백년 기약이 허사니 보 고 싶어 어이 살리 하고 두다리고 울고 앉았으니 이런 요변 이 또 있는가. 알마치 밤일세 망정 남 들으면 망신이라 어 허 고이한 놈 다 보겠다.』

하고는 마누라의 대답도 다 듣지 아니하고 소리소리질러,

『이놈 여보아라, 고도쇠야 몽치 차고 건너가서 아가씨 무 덤에 앉아 있는 놈을 란장결치 박살하고 오너라?』

고도쇠 영을 듣고 눈꿉을 주먹으로 뚝뚝 떼며 몽치를 차고 달려 건너가,

『이놈! 이놈! 어디서 빌어먹던 놈이건데 남의 아가씨 무덤 에 와 앉아선 애곡 데고 울음을 울어 남이 곤한 잠을 깨우 게 하느냐?』

하고 몽치를 둘러메고 덤비니 모아룡이 착급하여 혼이 떠 서 삼십륙계 줄행랑으로 저사하고 달아나니 그렇지 않아도 밤 이슬에 젖은 옷에 땀이 쪼르르 흘러 전신에서 무럭무럭 김이 오른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바라보니 기암이 충충한 절벽이 둘 린 곳에 폭포 하나가 떨어지고 좌우 반석상에는 제명이 무 수하다.

『어 봉변이로군. 춘향의 무덤 아닌 것만 다행이다. 에이 내가 어리석다. 여기서도 남원 부중인 삼 사십리나 되거든 춘향이 죽었기로 무덤이 여기 있을 리가 있다고—그악 소년 들한테 속았군.』

하고 혼자 빙그레 웃고 차고 맑은 시냇물에 세수를 하고 앉아서 땀을 들이며 오언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보월하니 천화영이요 등교하니 답수성을 산중에 다재상하니 다면이 반조정을.』

(步月穿花影 登橋踏水聲 山中多宰相 石面半朝廷) 시내를 따라 풍경을 완상하며 걸음걸음 올라가니 하늘에 닿은 되봉우리 중턱에 일좌 불당이 있고 거기서 재올리는 종소리가 들려 온다.

이 절은 만복사(萬福寺)라. 일찍 월매가 자식을 비노라고 논 섬지기 시주하고 정성으로 비던 곳이다. 춘삼이 난 후에 도 해마다 두 번씩 춘추에 재를 올리더니 춘향이 애매한 죄 로 중장 맞고 죽게 되었다고 도량을 소세하고 불공축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중은 편발을 쓰고 어떤 중능 낙관을 쓰고 어떤 중은 가사를 메고 또 어떤 중은 바라를 들고 또 어떤 중은 광쇠 를 들고 또 어떤 중은 죽비를 들고 또 어떤 중은 목탁을 들 고 또 어떤 중은 증쇠를 들고 조고마한 상좌 놈은 상모단 북채를 양손에 갈라 쥐고 법고를 울리니,

『두리둥둥둥.』

광쇠를 치니,

『차르르 차르르.』

증쇠를 치니,

『땅......땅......땅땅땅땅.』

바라를 치니,

『처르릉......처르릉.』

그중에 늙은 중이 목탁을 또딱 치며 엎데었다 일어났다 하 며, 나무아미 타불 나무서방정토 극락세계 이십육만억 구천구백 동명동호 대 자대비 나무아미타불 석가여래 문수보살 지장보살 천수천인 관제보살 마하살 미륵불 관세음보살 오백나한 팔부신장 원효(元曉) 의상(義湘) 지공(至恭) 무학(無學) 이 모양으로 부르면 모든 중들은 합장하고 엎드리며

『나미아미 타불.』

하고 처르르 꽹 또도락 두리둥둥 하며 울린다.

노승은 더욱 정성스러운 소리로

『해동 조선국 전라좌도 남원부 임자생 공명 성 춘향은 서 운이 불길하여 옥중에 갇히어 모진 형벌에 명재경각이 오니 한양 삼청동 이 몽룡씨 대과급제하여 전라 감사나 전라 어 사 점지하시기를 소......원......성......취.』

하고 축원한다.

몽룡은 감격하여 혼잣말로

『우리 선형덕인 줄 알았더니 부처님이 덕이로구나.』

하고 한탄하였다.

절에서 재밥으로 요기하고 길을 떠나 앞고개로 넘어갈제 건너 비탈 좁은 길로 어떤 더벅머리 아이놈이 신세타령을 부르곤 올라온다— 어사가리 너히 어이가리 너허, 한양 천리를 네 어이 가리.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대광보국 숭록대부 팔도방백 각읍수령 하여 가고—요내 신세 어떠하여 십세 안에 양친 굼로하고 삼 십이 다 되도록 마누라 하나 못 얻어 보고 길품 팔아 먹단 말가. 단 십릴르 못다 와서 발가락이 다 물었네 잔약한 요 내 다리 몇 날 걸어 서울 가리 조 자룡의 청총마연 이제 잠 깐에 가련마는—어이 설운지고 한양 칠백리 어이 가려나.

몽룡이 그 아이가 다 올라오기를 김다령,

『아나 이 애야.』

하고 부른즉 그 아이 우뚝 서며,

『아나 이 애라니! 새파란 젊은 양반이 나 많은 총각 어른 을 보고 아나 이애?』

『이애 내가 실수하였다—너 어디 가느냐.』

『서울 가오.』

『서울 어디 가느냐.』

『남원 춘향이란 아이 편지 갖고 삼청동 구관 사또 댁으로 가오.』

몽룡이 반겨하며,

『그 편지 이리 다고. 너 공교히 나를 아니 만났더면 허행 할 뻔하였다.』

하고 편지를 달랐고 손을 내이미니 그 아이 어이가 없어,

『그 어인 말씀이요? 댁이 누군데 남의 규중 편지를 달라 고 하오?』

『헌 도포나 얻어 입고 다니면 양반이요? 행세가 양반이라 야 양반이지.』

『내 행세 잘못 간 것 있느냐?』

『불규인사서(不窺人私書)라니 남의 편지를 보자는 게 양반 의 행세요? 후리 아들놈의 행세지.』

『어 그놈 나중에는 무슨 소리가 나올는지 모르겠구나.』

하고 몽룡이 허허 웃고,

『내가 그 편지를 달랠 만하기에 달라는 게다. 염려 말고 이리 다고.』

『그러면 도련님과 일가나 되시오?』

『오냐 내가 도련님과 일가다. 또 네가 그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가더라도 도련님은 절로 공부하러 가시고 안계시니, 그 편지 전할 길 바이 없고 또 만일 대감께서 알으시면 너 만 경칠 터이니 그 편지를 나를 주면 내가 대신 전하마.』

『분명 그러하오?』

『두 말이겠느냐.』

『그러면 편지를 누를 주었다고 하라오?』

『내가 그리 가는 길이다.』

『그러면 반삭 받은 것은 어찌하란 말이요?』

『글랑 그만 두어라—양반이 두 말 하랴.』

『꼭 떼어 보지 않고 전하랴오?』

『아무렴.』

아이놈이 그제야 전대를 끌러 춘향의 편지를 내어,

『옜소.』

하고 몽룡을 주며,

『꼭 신전하고 답장 맡아 보내시오—급한 편지요—그래야 양반이요.』

하고 못 미더운 듯이 몽룡을 본다. 몽룡이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들며,

『오냐 염려마라.』

아이놈이 산굽이라 돌아서기를 기다려 몽룡이 편지를 떼어 보니,

『별후광음이 우금삼제에 천리 한양에 어안(魚雁)이 끊였사 오니, 하희봉창이 갈유기극하오리까. 부모님 뫼시옵고 채의 도무(彩衣蹈舞) 하옵시며 요조숙녀와 좋은 짝을 지으시와 종 고화명(鍾鼓和鳴) 하옵는지, 첨앙불급하와 복모불임하옵나이 다. 소첩은 일야상사로 낭군 오시기만 기다리옵고 화조월석 을 눈물로 보내옵더니, 신관 도임 후에 수청 분부 거절하온 죄로 엄형중치를 당하옵고 황쇄족쇄로 옥에 있는지, 이미 두성상이라, 아직 병든 몸이 일우잔명을 근보하오나, 옥졸의 말이 미구에 장하 원혼이도리라 하옵기 삼가 척소(尺素)를 닦아, 차생영결(此生永訣)이나 하옵나니 바라건댄 낭군은 천 만보중하시와 공성명수(功成名遂) 하신 후에, 황천에서 서로 만나 금생에 미진한 연분이나 이으시게 하시옵소서. 조희를 대하오매 억색하여 사뢰올 바를 알지 못하와 불비잠상.

년월일에 남원 옥 중 소첩 춘향은 상서.』

라 하고 다시,

『소첩은 낭군을 위하와 수절 원사오니 도로혀 이몸이 영 화어니와, 불쌍한 모친을 딸을 잃고 누를 의지하오리까. 낭 군께옵서 어엿비 여기시와, 노모를 댁 곁에 두시옵고 생전 에 구제하시다가, 사후에 해골이나 거두어 주시오면, 돌아갈 길 없는 원혼이 지하에 눈을 감겠사오며 결초보은하리이 다.』

하였다.

몽룡은 편지를 다 보지 못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우고 울음 이 북받침을 깨달았다. 그러나 죽은 줄 여겼더니 살았으니 다행이요, 또 내가 왔으니 염려 없다 하고 그곳을 떠나 남 원 부중을 향하고 내려갈 제, 어떤 총각 두 놈이 호미를 차 고 소시랑을 메고 잠방이를 잔뜩 부르걷어 시커먼 다릴르 볼기짝까지 내오놓고 논두렁으로 걸어 갈면서 소리를 한다.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뻔뻔히 놀고도 호의호식 염려없는데, 어떤 사람 팔자 긴박하여 밤낮 일하고도 배골는고. 아이고 내 이 신세야.

하면 한 놈은,

『이 마을 총각 저 마을 처녀 시집 장가 제법일다. 공번된 하늘 아래 세상 일이 경위지다.』

하고 노래를 부른다.

몽룡이 두 총각의 뒤를 따라가니 어떤 매우 큰 부자의 농 터인 모양이라. 여러 십명 남녀가 일자로 늘여 엎데어 모를 심다가, 점심 먹노라고 둘러앉아 쉬는 판에, 짖궂은 머슴들 이 두레박과 괭이를 울리며 춤추며 먹이고 받고 상사되를 부른다.

『두리둥둥 꽹마꽹 어여루 상사뒤여.』

『선리선곤(仙李乾坤) 태편시절 강구미복(康衢微服)등요듣 는 요 임금이 버금이라.』

『두둥둥 상사뒤여.』

『천생 만민하실 적에 필 수지직 다르것다.』

『어여루 상사뒤여.』

『이음양 순사시는 삼정승 육판서 대관님네 직분이요.』

『어여루 상사뒤여.』

『사서오경 제작백가 공부하여 대과 급제하옵기는 선비님 네 직분이요.』

『어여루 상사뒤여.』

『높은 데 갈면 밭이 되고 낮은데 갈면 논이 된다. 오곡백 과 농사 지어 부모 공양하옵기는 우리네의 직분이요.』

『어여루 상사뒤여.』

『기러기떼 늘어 엎데어 게거름이 제격이란, 투고 씨운 보 리밥에 보리 탁주 맞춤이라.』

『어여루 상사뒤여.』

『초두벌 만다리에 기음을 매어 갈 제 유월 염천 더운 날 에 한덕화하 어찌할꼬.』

『어여루 상사뒤여.』

하고 몽룡이 우두커니 섰는 양을 보고 끽끽거리고 일제히 웃는다.

『승편 세월 좋을씨고 우리 성상 덕이로다. 타작한 첫 곡 식은 상감님께 공을 하세.』

『상사뒤 상사뒤여.』

『남은 곡식 있거들랑 부모 공양하여 봅세.』

『두리둥둥 상사뒤여.』

『또 남은 곡식이 있거들랑 차자권속 먹여 봅세.』

『암 그렇지 상사뒤여.』

『또 남은 곡식 있거들랑 일가친척 구제합세.』

『여여루 상사뒤여.』

『여바라 농부야 들어 보소. 불쌍하고 가련하고나 남원에 춘향이 가련하다.』

『어여루 상사뒤여.』

『백옥 같은 춘향이가 비명횡사하단 말가불측한 이 도령은 한 번 가고 소식 없네.』

『어여루 상사뒤여.』

그중에 한 농부,

『아따 이 도령놈이 오기만 오량이면 논두렁에 엎어놓고 넓적하도록 가랫장부 볼기를 따려 주련마는.』

하니 다른 농부들이 모다 하하하 웃는다.

몽룡이 말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앉았다가 무슨 핑계로 말 을 붙여 볼 양으로,

『저 농군 여봅시. 검은 소로 논을 가니 컴캄하지 아니 하 지?』

그 농부 몽룡을 보며,

『그렇기에 밝으라고 볏다랏지.』

『볏달았으면 응당 더우려니.』

『덥기에 성애장 붙였다오.』

『성애장 붙였으니 응당 차지.』

『차기에쇠게 양지머리 있다오.』

이렇게 수작할 때에 한 농부 나서며,

『우습고 싱거운 자식 다 보겠다. 얻어 먹는 비렁방이 녀 석이 반말지거리가 웬 일이야. 저런 녀석은 근중을 알게 서 를 순대째 빼어 줄가 보다.』

하고 불량한 눈을 사라리니 그중에 늙은 농부 하나가 힐끗 몽룡을 보더니,

『아서라 그말 마라. 그분을 솜솜히 뜯어 보니 주제는 허 술해도 손길을 보아하니 양반일시 적실하고 세폭 자락이 과 히 맥물은 아니로다—저런 것이 어사 같아서 무서우니라.』

한 농부 픽 웃으며,

『영감 너무 아는 체마오. 손길이 희면 다 양반인가요. 나 는 이놈을 뜯어 보니 움속에서 송굿질만 하든 갓바치 아들 이 분명하오.』

하고 하하 웃는다.

늙은 농부가 몽룡을 보고,

『어디 살며 어디로 가시오?』

하고 미안한 듯이 물으니 몽룡은,

『서울 살더니 능광주(綾光州) 땅으로 관관차로 가는 길에 노자는 떨어지고 공교히 점심때기에 요기나 할까하고 앉았 지.』

하는 말을 듣고 늙은 농부가 주선하여 열애 한술밥으로 한 그릇을 두둑이 준다. 몽룡이 잘 먹은 후에 치사하고,

『다시 보자이까.』

하야 작별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곳을 떠나 얼마를 가니 길가에 주막이 있고, 집뒤 정자 나무 밑에 영감이 앉아 총홀치꼬며, 막걸리를 파는데 갓쓰 고 중추막 입고 긴 담뱃대 중등을 쥐고, 삼 사인이 둘러앉 어 권커니 사양커니 다들 반장은 된 모양이다. 몽룡이 보선 목 주머니를 똑똑 떨어 돈 한푼을 내어 쥐고,

『술 한잔 내자이까.』

하니 영감이 몽룡의 행색을 보고,

『돈 먼저 내시오.』

한다.

몽룡이 쥐었던 돈을 내어 주고 한푼어치 막걸리를 줄라 받 아 먹고 입 씻고 나서,

『영감도 한잔 먹으리이까.』

하니 영감이,

『앗으시오 고만두오 지나가는 행인이 무슨 돈이 넉넉하여 나를 한잔 먹이시려오.』

하고 사양한다. 몽룡이 시침이 떼고,

『내가 무슨 돈이 있어 남을 술 먹일까. 영감의 술이니 촐 촐한데 한잔이란 먹으란 말이지.』

한즉 영감이 성을 내며,

『내 술을 내가 먹든지 마든지 인역은 무엇이완대 먹으란 말으라 총집을 하옵소?』

몽룡이 웃으며,

『그야 정 먹기 싫거든 먹지 말라이까 공연히 남과 싸움하 려 드노.』

하고 좌중을 돌아보며,

『그 말은 다 웃노라 말이어니와 나는 본래 서울 사람으로 소간 있어 남원에 오거니와 본관이 명관이라지?』

한즉 좌중이 모두 웃는다. 영감이 얼굴을 찡기며,

『명관이라 하오.』

『그 웬 말인고?』

좌중에 한 사람이 나앉으며,

『명관이지—밝을명자 명관이 아니라 어두울명자 명관이 지.』

『그 어찌 그러하오?』

『본관이란 양반이 쇠를 매우 좋아하는 양반이지요. 송사 야 옳거나 그르건나 돈만 주면 이기어 주고 돈이라면 아이 고름에 채인 것까지 씨없이 긁어 가는데, 남원 사십 팔면에 녹슨 돈 한 푼 안 남았고 이대로 가면 일후에 낳는 아이는 돈 얼굴도 못 보지요.』

몽룡이 놀라는 체하고,

『어허 민세 말 아니요.』

다른 사람이 나앉아 가래침을 드스르며,

『돈도 돈이려니와 인명이 부지할 길이 없지요—살인이 남 면 너희 동네가 본래 지광인희한데 한 사람 죽은 것도 큰일 이어든 또 한 사람이 죽으면 되겠느냐. 몰아내치라 하니 이 런 송사 또 있으며 봄철에 매 호에 계란한개 씩 주고 가을 에 영계 한 마리 씩 바치라 하고 감영에서 환상 한 섬 타오 면 말가웃씩 떼어내고. 세곡 한 섬에 열 냥 하면 관수 값은 열 두석 냥 받고 향교 소임 값 받고 하기 깎고 소임 파니 이러고 백성이 살 수 있소?』

또 한 사람이 나앉아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드리며,

『그나 그 뿐이요? 탐재호색이 아무리 한테 붙은 문자기로 본관처럼 호색하는 이가 어디 있단 말이요—기생이나 희롱하 는 것이야 누라 말라 하겠소마는, 반반한 계집만 눈에 띄면 사족을 못 쓰고 기어코 일을 내이니 남원 관속의 계집 하나 성한 것 없지요. 그나 그뿐인가 수절하는 계집애까지 훼절 을 하라고, 때리고 가두고, 춘향이도 그 약질이 인제 장하 원혼 될 터이니 그런 앙급자손할 일이 또 어디 있소?』

영감이 꼬는 총을치를 홱 내던지고 돌아 앉으며,

『본관도 본관이려니와 구관의 아들 이 몽룡이란 자가 원 채 죽일 놈이지요. 그놈이 백옥 같은 춘향일르 꾀이어 백년 가약을 정하여 놓고는, 한 번 서울 간 뒤로 이내 소식이 없 고 춘향이가 저렇게 죽게 되어도 일향 모른 체하니, 도시 그런 행세가 있단 말이요? 그놈이 남원 땅에 발을 들여 놓 는 날이면 하늘 높은 줄을 알려 주련마는! 어 무정 맹랑한 아이 년석이 다 있겠나.』

몽룡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러면 구관도 원 노릇을 잘못하였나 보오.』

하고 눈을 떠보니 영감이,

『해괴한 말 다 듣네.

하는 듯이 눈을 끔뻑거리며,

『구관이야 명관이지—백성들이 동비를 세우자고 숟가락을 거두지요.』

한다.

몽룡이 주막을 떠나 점점 부중으로 가까이 들어가니 면주 인은 걸태전령(乞太傳令) 하러 가고 풍헌(風憲) 약정(約正) 면임(面任)들은 답인(踏印) 수결(手訣) 받아 들고 가가호호에 민간수렴하노라고 야단이다. 이달 십오일이 본관 원님 생신 이라 하여 대주소호 분등하여 돈과 쌀을 들이라고 하고, 각 면 부민을 성책하여 일등에 송아지 한 마리, 일등에 면주 한 필 받아들이니, 민원이 창천하고 집집이 울음이다. 농시 방장에 남부여대하고 부로후유하고 길에 닿은 것이 이 이땅 에 살 수 없어 정든 고향 이별하고 유리하는 백성이다.

백성이 도탄에 들었으니 백일이 무광하고 산천도 무색하 다. 몽룡이 비감하여 눈물을 머금고,

『이 백성 어이하리 이 백성 어이하리 도탄에 든 이 백성을 내 어이하리?』

하고 한탄하며 석양을 띠고 박석퇴를 올라섰다.

좌우 산천 바라보니 모두 옛 보던 것이요.

길가에 늙은 소나무는 춘향과 이별할 때 가리켜 맹세하던 것이다. 사시장청을 자랑할 솔잎도 춘풍추우에 몇 번을 떨 어지고 새로 피었건마는 춘향의 절개는 한 번도 일운 적이 없었다.

늘어진 수양버들은 내 나귀 매던 곳이요, 멀리 뵈는 선원 사(禪院寺)는 양반 종성 듣던 데다. 교룡산(蛟龍山) 영주 고 개 어느 것이 안 반가우랴. 부중에 늘어선 집 예와 다름 없 건마는 어른은 더 늙고 아이들은 자랐으니 간혹 예보던 모 습이 눈에 익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폐포파립에 걸객으 로 차린 구관 자제 이 몽룡을 알아볼 이는 바이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남문을 나서서 광한루에 오르니 오작교자 바로 앞인데 춘향이 그네 뛰던 나무는 예와 같이 잎이 푸래 꾀꼬리만 울어낸다. 옛일을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건마는 인 사 변천을 헤오보니 감개 또한 무량하다.

남원 부중으로 이리 저리 거닐면서 민정도 살피고 예보던 곳을 구경도 하다가, 해가 지고 황혼이 되기를 기다려, 방자 데리고 옛날 다니던 길로 춘향의 집을 찾아가니, 문전이 냉 락하고 처마는 기울고 담은 무너지어 옛 면목이 간 곳 없 다. 대문짝에 붙인 장수 그림은 투구와 부월머리만 남아 있 고 문 위에,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라고 몽룡이 글씨로 써 붙인 것도 풍만 우세에 다 떨어지고 귀할귀 자만 남아 있 고, 행랑채는 찌그러지고 중문간도 흩어지고 안채도 돌아보 지를 아니하여 나간 집 같고 앞 뒤벽은 자빠지고 면회한 뒷 담도 간간히 무너져서 솔가지로 막아 놓았고 중문 안을 엿 보니 춘향이 있던 부용당은 살만 남은 덧문이 꼭꼭 닫았는 데, 붙였던 상산사호 네 신세는 간 곳도 없고 바둑판만 희 미하고, 연못가에 두루미 한 쌍 놓았던 것도, 한 짝은 간데 없고, 한 짝만 남아 있어 죽지는 상하고 한 다리는 절어 외 나래만 펼쳐 들고 두루쭉두루쭉하고, 섬 밑에 파초도 말라 버리고, 한 떨기 푸른 대만 옛빛을 안 고치고 오는 손을 기 다린다.

향나무 밑에 비루먹은 청삽살이 기운없이 졸다가 구면객도 몰라보고 뽀시시 일어나며 컹컹 짖고 내닫는다.

「마당에 꼴을 비고 아궁이에서 토끼 자고 부뚜막에 다람 쥐 기고 물두멍에 땅벌레 집 밥 솥에는 개아미집」이란 말 은 옛말로 들었거니와, 어찌하면 이대도록 황량하게 되었을 까. 연못도 다 메우고 화초단석 가산도 모두 다 무너지고 화분은 깨어져서 이리 대굴 저리 대굴 굴렀으니 옛 모양은 어디서 찾나. 중문을 엿보아도 인기척이 끊였으니 웬 일인 고 하고 한 걸음, 두 걸음 앞마당으로 들어가니 뒤꼍으로서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소리없이 걸어가서 가만히 엿보니 월매가 황토로 모은 단 위에 새소반에 정하수를 떠놓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전에 비나이다.』

서울 계신 이 몽룡씨 대과 급제하여 전라 감사나 전라 어 사 하여 나려와서 우리 춘향 살려 주게 하옵소서.

하고 같은 소리를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빌고는 절하고 절하고는 또 빌고 상단이를 시켜 정화수를 갈아 놓 고 또 빈다.

빌기를 다한 후에 기운없이 비슬비슬 상단에게 손을 끌려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질탕관에 죽을 쑤노라고 진나무에 불 을 불어 몽당치마로 눈을 씻으며 성화한다.

하도 불은 안 붙고 연기만 대고 나니 월매 부지깽이를 탁 내어 던지며,

『날 잡아 갈 귀신은 어디 갔노. 곧 칼끝을 물고 엎더지기 라도 하련마는 저를 두고 어찌하리—자는 듯이 죽고 지고 천 산지산 할 것 없이 이가 놈이 원수로구나.』

하고 몸부림을 한다.

몽룡이 살그머니 중문 밖에 나섰다가 기침하며,

『춘향 어미 게 있는가.』

하고 부르니 첫 소리는 못 알아듣고 둘째 소리에 겨우,

『게 누구와 계시오?』

하고 중문을 바라본다.

『내로세.』

『내라니 누구란 말인가.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그 누구라 날 찾는고.』

『내로세—내로세.』

『내라니 동편 굴뚝의 아들이란 말인가. 걸객도 눈이 있지 집 모양을 보아하니 무엇을 주리라고 이런 집에 들어 왔노.

옥에 갇힌 딸 먹이랴고 싸라기죽 한줌을 끓이옵네—다른 집 에나 가보소.』

『이 사람 나를 몰라? 자네가 나를 몰라?』

월매 그제야 알아들은 듯이 일어나 나오며,

『오호 김 풍헌님 와 계시오? 돈 두냥 꾸어온 것 수히 가 져 갈 것이니 너무 그리 재촉 마시고 설운 사정이나 들어 주시오—저 점옥이 아시지요? 금산 사는 점옥이요. 그 애는 신관 사또 수청들어 주야통창 행락하고, 남원읍 대소사에 제게 먼저 청을 하면 백발백중 영락없고. 사또가 대혹하여 저의 아범을 행수군관(行首軍官) 제 오라비는 서창고자(西倉 庫子) 주고 읍내 논 열섬지기 군청뒤 밭 보름가리, 모다 치 면 오륙천금어치나 주었으니 요런 것을 마다하고 춘향이년 의 짓을 보시오.』

『이 사람 내로세.』

『오호 내 점어 이 풍헌 자제인가.』

『아니로세—나를 몰라?』

『옳의 이제야 알겠네. 자네가 봉우재 사는 어린 돌인가.

이 사람 향내에 먹고 간 죽 값 칠 푼 주고 가소. 요사이 어 려워서 못 견디겠네.』

하고 월매 몽룡이 앞으로 바싹 다가서니 몽룡이 한끗 측은 하고 한끗 어이없어 사면을 돌아 보아 듣는 사람이나 없나 보고,

『이 사람 나를 몰라? 내가 춘향이 서방 이 도령이로세.』

하고 중문으로 들어서려 하는 것을 월매 두 손으로 몽룡의 가슴을 밀어 내치고,

『애고 이놈의 자식—어디서 난 놈의 아들이냐? 늙은 것이 곧이 듣고 불러들여 재우거든 짭짤한 것 도적질하여 갈 양 으로 그러느냐. 해를 곱다케 지이다가 같지 아닌 자식 다 보겠네. 상단이 나와서 이 녀석 내어 쫓고 대문 닫아 걸어 라.』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몽룡이 중문 밖으로 떼밀려 나가면서,

『이 사람 망녕일세. 내가 정말 이 도령일세. 내 사정 들어 보소. 가운이 불행하여 과거도 못 마치고 벼슬도 끊어져서 가산을 탕패하고, 유리걸식 다니더니 우연히 예와서 소문을 들으니 자네 딸이 날로 하여 엄형 중지 당하고 옥에 들어 죽을 고생을 한다 하니, 더 볼 낯이 없건마는 옛 정리를 생 각하고 한 번 만나 보기나 할까 하고 찾아 왔네. 이미 왔던 길이니 저 나 잠깐 보고 가세.』

하니 월매 이 말을 듣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 서더니 다시 가까이 들어와 안질 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자세히 치어보더니, 아이가 어른되고 없는 수염은 났을 망정 영락 없는 이 몽룡이라 손벽을 치고 강동 강동 뛰놀면서,

『애고 이것이 웬 일인고—이 노릇 매우 잘 되었네. 대한 칠 년 비바라듯 구 년 지수 해 바라듯 하늘같이 바라고 믿 었더니 이를 어찌한단 말고. 정성도 쓸 데 없다—천지신명도 무심하구나. 내 딸 춘향이 인제는 죽었네—애고 애고 애고 애이.』

하고 몽룡이옷자락을 터러잡고 복장을 퍽퍽 치받치며 악을 쓰고 운다.

『이 사람아 말 듣소. 내 딸을 속여 놓고, 서울로 올라가서 편지 한 장 아니하고, 삼년이나 지났다가 내 딸이 죽게 되 어도 살려 주지도 못하고 요꼴을 하고 왔으니, 이 일을 어 찌한단 말인가. 날 처죽이고 가오, 애고 내가 살아 무엇하 리. 인제는 하릴없이 내 딸이 죽었네 그려. 아이 아이.』

하고 월매가 몽룡의 앞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대굴대굴 군다.

『너무 설어 마오, 왕사는 물론하고 사람의 일이란 도무지 모르는 것이니, 과도히 끌탄 마소. 천지신명이 무심할 리 있 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니 앞날을 기다리소.』

『앞날! 앞날! 앞날도 기달렸네. 삼년이나 지성으로 빌고 기다린 앞날이 요모양이니 이제 무슨 앞날 있나—저승에서 기다리란 말인가!』

이때에 상단이 나와,

『마님 그리 마오. 우리 아가씨가 그 서방님을 어떻게 알 으셨소?』

하고 몽룡을 향하여,

『서방님 찬 진지 데워 놓았으니 시장하신데 저녁 진지 잡 수시오.』

하고 다시 월매의 팔을 붙들며

『들어가서 저녁 진지 잡수시오.』

하고 안으로 인도한다.

몽룡이 풋김치와 고추장을 밥그릇에 부어 모두 함께 버무 려서 시장하던 끝에 아귀아귀 퍼 넣으니 상단이 마루 끝에 서 보고 눈물진다.

몽룡이 잘 먹고 나서 냉수로 양추한 뒤에 담뱃대를 내어 들고,

『여보 장모 담배나 한 대 주소.』

하고 손을 내어미니 월매 고개를 픽근 돌리며,

『갖초 갖초 먹으랴네 그려—담배가 어디 있다든가.』

『나도 호박 잎 먹네.』

『아무게면 상관 있나 한 대 주소.』

월매 방구석을 찾아 쌈지를 내어 던지니 몽룡이 쌈지를 떨 어 가루 담배 한 대를 꽉꽉 눌러 피어 물고 태연히 앉았다.

월매는 그것이 눈꼴이 틀려 몇 번이나 입을 비쭉거리더니 몽룡의 앞으로 다시 돌려앉으며,

『여봅소 어둡기 전에 나가서 잠자리나 찾읍소.』

몽룡은 빙그레 웃으며,

『내가 여기 와서 자네 집에서 안 자면 어디서 잔단 말인 가.』

『내 집이 어디 있다던가. 저를 옥중에 넣은 후에 자네가 농창지듯 먹고 쓸다 남기고 간 가장집물 방매하여 삼년간 옥바라지에 이 집인들 내 집이리. 환상관채(還上官債) 태산 이라 하릴없이 집을 팔아 환상관채 수쇄하고 집도 없는 거 지라네.』

『그러면 자네는 왜 와 있나.』

『탕관에 죽 쑤러 왔지요.』

『그러면 어디서 자나.』

『읍내 과부집, 홀어미집 두루 가지.』

상단이 곁에 섰다가 차마 보지 못하여,

『마님 그리마오. 모처럼 오신 서방님을 가시라기 부당하 오. 모깃불 피우시고 이야기나 하시든가, 파루 치거던 옥에 가서 아씨나 만나 보시고, 돌아와서 아씨 계시던 방 치우고 주무시게 하시오.』

하는 말에 월매도 감동이 되었는지 길게 두어 번 한숨을 쉬고 푹 까라진다.

몽룡이 상단더러,

『상단아 기특하다—너도 나로 하여 이 고생이니 후일에 내 가 네 공을 몰라보랴.』

모깃불 피어 놓고 세 사람이 우두커니 마주 앉았으니 무슨 이야기인들 있으랴. 몽룡은 퇴침을 베고 누워 파루치기만 일각이 삼추같이 기다린다.

춘향이 몽룡에게 편지를 부치고 그날 종일 몽룡을 생각하 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여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 새벽녘에 야속한 잠이 들어 한 꿈을 얻으니 생시에 보던 체경의 복판이 깨어지고, 뒷동산에 앵두 꽃이 백설같이 흩 날리고, 자던 방문 얼굴 위에 허수아비가 날려 보이고,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 보인다.

춘향이 꿈을 깨니 전신에 소름이요, 등골에 찬 땀이 흐른다.

『아마도 내 죽을 꿈인가 보다. 허수아비 달린 것은 내가 내일 죽어 섬거적에 싸여 나갈 꿈인가 보다. 거울이 깨어져 보이니 파경이이라 하였으니, 혹 도련님께 해로운 꿈이나 아닌가—한번 가신 후에 소식이 끊였으니 어찌 안 오실 리도 없건마는 만일 돌아가셨으면 혼이라도 오시련마는 아이고 꿈도 수상하다.』

『진정 도련님은 어찌 되신고. 날 사랑하던 도련님이 경성 에 가신 후 나를 그려 병이 들어 그래서 못 오시나. 나보다 나은 님 얻어 두고 사랑겨워 못 오시나. 소년 금방(金榜) 괘 명하여 벼슬에 올랐다가 소인의 참소 입어 천리 원적(遠謫) 하셨는가. 날 찾아 오시다가 도적 만나 죽으셨나. 요조 숙녀 장가들어 유자 생녀하고 금술 좋아 날 잊었나. 청루 주사에 풍류 협객 추축하며 술이 취해 못 오시나. 이런 연고만 없 으면 일정 한 번 오시련만. 오시지는 못하여도 일장 서신이 라도 있으려든 어인 일로 못 오시나.』

『꿈이 하도 수상하다. 아마도 흉몽이요, 길몽일 리 만무하 니, 이팔 청춘 이 매 몸이 그린 님 못 뵈옵고 남원 옥중에 서 수절 원사하라는가. 원통하고 절통하고 원통하다—그러나 차라리 흉한 것은 내 몸에만 돌아오고 우리 낭군은 부귀 공 명하고 백년 향수하옵소서.

이렇게 혼자 한탄하고 빌 적에 날이 이미 세이고 노고지리 우짖는다.

이때에 옥문 밖으로 읍내 김 판수가 지팡이로 길을 찾아,

『무꾸리를 하오! 무수하리.』

하고 외치며 지나가니 춘향이 하도 답답하여 마침 들어 왔 던 옥사장을 보고,

『어젯밤 꿈이 하도 흉하니 장님 불러 해몽이나 하려하 오.』

한즉 옥사장도 가긍히 여겨 뛰어나가,

『여보 김 판수—.』

하고 부른다.

김 판수 멈칫 서서 두리번두리번하며,

『게 누랄께?』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해몽을 하려 하니 옥으로 들어갑 소.』

소경이 더듬더듬 옥문으로 들어올 제 굴송이 같은 눈을 번 득번득 번득이며 불똥 디딘 걸음으로

『어대로 갈까, 어 어디로 갈까.』

하고 소리만 공구어서 건정건정 들어가다가 옥 문턱에 발 을 채어 헛수 인사 한 번 하고 겸연쩍어,

『대도 평안하오?』

하고 춘향이 방으로 들어가 지팡이와 담뱃대를 발뿌리로 꽉 누르고 두 무릎을 쪼구려서 뜸뜬 듯이 앉아 손을 내밀어 더듬더듬 춘향의 몸을 만지며,

『이애 무안하다. 원수에 생애에 골몰하여서—요사이 어른 들 윤감, 아이놈들 역질 배송하고 푸닥거리, 방수보기, 날받 이, 중경에 산경 읽기, 이사에 안택경 읽기 계에도 참여하고 또 의합하는 동관들끼리 투전, 장기 소일 하늘라고 네 말은 들은지 오래건마는 한 번 와서 정다이 묻지도 못하고, 이리 만나니 할 말이 없다. 그래 요새 중장을 연하여 당한다더니 상처나 과치 않느냐?』

춘향이 맹렬한 성품에 소경놈의 뺨을 개뺨 치듯하고 싶건 마는 불을 꾹 참고,

『장님 여보, 소시적에 우리 집과 격장하여 사시며, 어머니 와 결의 남매 맺으시고,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 내 딸 아 내 딸아 하고 귀여워하지 아니하셨소? 그런 것이 엊그제 같소. 그때 나도 장님을 아저씨처럼 아버지처럼 따랐으니, 장님인들 나를 친딸처럼 조카처럼 아니 생각하겠소?』

하니 이 말에 판수가 한편 모으로 슬며시 물러 앉으며 열 없어,

『고년의 자식 정신도 좋다. 과연 그럼한 번하거니.』

하고 춘향의 몸에서 손을 떼고 물러 앉는다.

소경이 열 없는 김에 저만큼 멀찍이 물러 앉으며,

『그는 그러하거니와 어떤 놈이 너를 이렇게 치더냐—김 패 두가 치더냐 이 패두가 치더냐, 똑바로 일러라. 너 매질하던 놈 설치는 내 하여 주마. 형방패 두 놈이 오월 오일에, 날 받으러 내게로 오니 이후에 택일하려 오거든 꼭 절멸일을 받아 주어 생급살을 맞춰 된 탐색이를 먹이리라. 사람 놈이 매질을 한들 공대지 몹시 박아쳤으랴응!』

하고 심히 분해하더니 음성을 낮추고 눈을 껌벅껌벅하며,

『아무캐나 신수점이나 쳐보아라. 어디 식전 정신에 잘쳐 주마—그래 꿈이 어찌하여?』

하고 고개를 쑥 내어민다.

춘향이 꿈 꾼 사연을 다 이야기할 때에 마침 옥담 위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고,

『또 저놈의 까마귀가 까욱까욱하는군, 아마도 날 잡아 가 라냐 보지.』

하고 비감한 빛을 보이니 판수 능청스럽게,

『그는 그렇지 아니하다. 같은 까마귀라도 흉한 집에 울면 흉조요, 길한 지에 울면 길한 징조니라, 네음성이 매우 길할 걸!』

하고 위선 춘향을 위로한 뒤에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이애. 내가 네 점에 돈을 받겠느냐마는 무물불성이라 돈 을 안 놓으면 신령이 동하지 않는 법이다.』

하고 복채 놓기를 권한다.

춘향이 주머니를 떨어 돈 네 푼을 떨어 놓으니 호천(戶天) 호지(戶地) 호일(戶日) 호월(戶月)이다.

『가진 것이 이뿐이니 복채 적다 말고 해몽점을 명명히 잘 쳐주오.』

『오냐 글랑 염려 마라—내 딸의 점을 범연히 하겠느냐.』

하고 판수는 코를 치씻으며 열 손가락을 게 발 모양으로 버스럭거려 주머니를 어루만져 산통을 내어 손에 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산통을 눈 위에 번듯 들어 솰솰 내흔들면서,

『천하언재(天下言哉)시리오마는 고지즉응(叩之卽鷹)하나니 신기명이시니 감이순통(感而順通), 감이순통, 감이순통—복걸 천지신명 일월성신은 조림하토(照臨下土), 민지화복(民之禍 福) 팔팔육십사괘(八八六十四卦) 삼백육십사효(三百六十四 爻)...... 제갈 공명 선생, 원 천강 선갱, 곽 곽 선생, 이 순 풍, 강 절소 선생, 마의도사 제위 선생 배괘동자 척괘 동자 원사강림 상통천문 하달리 금우(今遇) 태세(太歲) 갑자(甲子) 오월 기해삭(己亥朔) 십 사일 갑술(甲戌) 해동 조선국 전라 좌도 남원부 갑진생(甲辰生) 시을사복차로 근복문하오니 연 전분에 신관 사또 도임 신정지초에 수청 거행 아니한다 하 와 횡피 중장하고 인위 수금하니, 지금 삼년, 백병이 충출하 고 사생을 미탄증거야(간밤) 일몽이 여차여차하옵기에 지성 으로 감복문하오니 유하소흉(有何所凶)이온지 이 상사병으로 손기혈(損氣血)이 연여야! 복걸신명을 물비소시(勿秕昭示) 물비소시.』

하고 산통을 왈각왈각 흔들어서 거꾸로 잡아 산대로 빼어 세어 보고 부채를 두드리고 점괘를 푼다.

『내외효(內外爻)로 작괘하니 가인지비(家人之費) 되었고 나. 초효(初爻)는 소양구진(少陽句陳)인데 묘형제천록(卯兄弟 天碌)이요. 이효(二爻)는 소음등사(少蔭騰蛇)로다. 축재천을 지세신(丑才天乙持世身)이요. 삼효(三孝)는 소양백호(少陽白 虎)로다. 해문서안정(亥文書安靜)이요. 사효(四爻)는 소음현 무(少陰玄武)로다. 미형제천을(未兄弟天乙)이 발동이라. 기손 신관응명(己巽申官鷹命)되고, 육효(六爻)는 소양주작(少陽朱 雀)이라. 묘형제천록(卯兄弟天碌)되고 입해구주지괘(入海求 珠之卦)요. 개화결실지상(開花結實之象)이라. 갑술중신에 신 유공(甲戌中旬申酉空)하니, 방공(房空)은 아니었다. 오효에 역마(驛馬)가 발동하니 이 자손이 삼형살(三刑殺).』

하고 말을 뚝 그쳤다가, 판수 고개를 기웃거리며,

『이애 춘향아!』

하고 부른다.

『예.』

『그 점괘 매우 묘리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이 지세(持 世)한데 응(應)이 세(世)를 생(生)하였으니 이 도령이 과거하 여 청포를 입은 격이요. 천복귀인성(天福貴人星)에 역마발동 (驛馬發動)하였으니 분명 외임(外任)하여 나가는 형상이요.

연자괘(鳶子卦)가 비취었으니 둥실둥실 떠다니는 솔개 벼슬 이요. 자손이라 하는 것은 공명에는 화약이다. 삼형살(三刑 殺)이 띠었으니 이 아니 고이하랴. 응효(應爻)로 논지컨대 도모지 남이 없고나—올컷다 아니로다 열읍 수령 관속들을 형추파직(刑推罷職)할 것이니 암행수의(暗行繡衣) 분명하 다......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꽃이 떨어져 보였으니 열매 맺을 꽃이요.

거울이 깨어져 보였으니 소리 내일 기상이라. 문상(問喪)에 현허인(懸虛人)하니 만인개앙시(萬人皆仰視)라—허수아비를 문 위에 달았으니 만 사람이 우러러 볼 괘요. 산붕(山崩)하 니 작평지(作平地)요, 해갈(海渴)하니 성공안(成功岸)이라—허 거, 점 좋다! 이애 춘향아 부대 부대 구에 올 것이니 두고 보라.』

『일이 점과 같을진댄 무슨 한이 있으리까마는 맹랑한 말 씀 듣기 싫소.』

하고 춘향이 귀찮은 듯이 눈을 사르르 내려 감으니 판수가 골을 내어,

『할 말이 그리 없어 햇부리를 놀린단 말이냐. 고름맺고 내기하자—아무커나 대길하니 의심 말고 두고 보라.』

하고 맹세를 하니 춘향도,

『글쎄 말씀과 같은진댄 작히나 좋겠소마는 이런 년의 팔 자에 웬 걸—.』

『영락없다. 두고 보아!』

하고는 말말 끌에 생각하니 복채 달라기는 어렵고 그렇다 고 안 받아 가지고 가기는 더 어려워 의뭉스럽게 슬기를 낸 다—.

『이애 춘향아 이새는 내가 사망이 없고 살기가 극난극난 하여 밥맛 본지 오늘조차 며칠인지 모른다. 어제 아침건너 뛰고 오늘 아참 잔입이요. 오늘 저녁 할 일 없으니 허구한 날 참 난처하다. 저번에는 동문 밖 장에 갔다간 쇠뿔 참외 는 한푼에 일곱씩 수박은 한 푼에 둘씩이언마는 욋돈 한 푼 이 없어 못 사먹고 장바닥을 어루만지니 참외 껍질, 수박 껍질이 늘비하기에 배때기에 씻어 훔치고 오며 생각하니 조 언광좌 중에 그런 꼴이 있느냐. 허언 시장하고 속 쓰리다.』

춘향이 이 말 듣고 비녀를 빼어 주며,

『불쌍하오. 김 판수님 이것이 빌고 약소하나 팔아서 일시 나 보태시오.』

판수 이면을 차려,

『이애 아무리 무물불성이라 하였은들 적이나 하면 보태어 줄어야 할 터에 네 점을 치고 무엇을 받으랴—남 들으면 무 엇으로 알겠느냐. 앗어라 그만 두어라 사람의 인사 용렬하 다.』

하고 오른손으로 사양하면서 왼손으로 받아 집어 넣고 열 없어서,

『이애 이런 말을 하면 싫어는 하더라마는 옛말이니 하거 니와 너의 어머니 소시적엔 놀기도 좋더니라마는 너는 개천 에서 용난 세음이라. 그 속으로 나서 너의 어머니께 적은 없고 저렇듯 깨끗하니 고맙고 갸륵하다—시장하니 다시 보 자.』

하고 지팡이와 담뱃대 들고 일어선다.

『아이고 편안히 가시오.』

하고 춘향은 판수를 보낸 후에 혼잣말로,

『점이 무얼 맞을리.』

하고 혼자 한탄한다.

밤이 아슥하도록 몽룡은 월매와 함께 파루 치기만 기다리 다가 상단에게 초롱을 들리고 옥으로 찾아갔다. 그때까지도 월매는 몽룡이를 쓴 오이 보듯하여 말 한마디도 아니하고 몽룡이 꼴이 보일 때마다 성가신 듯이 고개를 피끈 돌려 버 린다.

그러나 몽룡은 상관하지 아니하고 어붓어미 따라가는 자식 모양으로 두어 걸음 서너 걸음 뒤떨어져서 따라 왔다.

월매 옥문 밖에 다다라서 주먹으로 옥문을 두드리며,

『춘향아. 아가 자느냐.』

하고 부르니 춘향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앉았다가 깜짝 놀 라며,

『아이고 어머니 아닌 밤중에 왜 또 오셨소? 밤에나 평안 히 쉬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밤마다 오시다가 어머니마저 병 환이 나시면 어찌하오?』

『내가 자려한들 잠이 오느냐 너를 안 보고 가면 맘이 놓 이느냐. 그래 오늘은 좀 어떠냐? 먹은 것이나 잘 나렸니?

먹은 것이 있어야 나릴 것이나 있지.

『오늘은 잘 나렸으니 염려마오.』

『다리 쑤시는 것은 좀 어떠냐. 오늘은 까무려뜨리는 증은 없었니?』

『괜찮아요. 나은들 그렇게 속히 낫겠소.』

월매 미음 그릇을 구멍으로 들여보내며,

『옜다. 미음이나 좀 마시어 보아라—그래도 먹어야 사느니 라.』

춘향이 그 미음 그릇을 받아 두어 모금 마시더니 오약질을 하며,

『아이고 싫소.』

하고 미음 그릇을 도로 내어 보내는 것을 월매 도로 들여 보내며,

『아니 먹고 어찌 사느냐. 억지로 한 모금이라도 더 먹어 라. 아따 암치 보풀 여기 있으니 씹어서 물만 입가심하고 뱉아 버려라. 비위가 가라앉느니라.』

하고 암치 기름 발라 부풀은 것과 약포육 놓은 접시를 들 여 보낸다.

『아무 것도 싫소.』

『그러면 흰 죽이나 쑤었다 주랴.』

『그것도 구역이 나서 싫소.』

『그러면 무슨 의이나 쑤어주랴.』

『아이고 생목 꼬아 나는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고 싶으냐—먹고 싶은 것을 말을 하려무 나.』

『아무 것도 먹기 싫소. 입에서 안 받는 것을 어찌하오. 너 무 성화하지 마시고 그만 돌아가시오 서울서 오늘도 편지 아니 왔소?』

『편지는 와서 무엇하느냐—그까짓놈의 편지도 인제는 다 발랐다.』

춘향이 깜짝 놀라며,

『왜? 그게 무슨 말씀이요? 서울서 무슨 기별 왔소? 도련 님 댁에 무슨 일이나 나시었소? 편지도 다 바랐다니 무슨 말씀이요? 꿈이 하도 흉하더니 무슨 일이 났나 보구려. 웬 일이요 말씀하오!』

하고 목소리가 떨린다.

월매 화를 내며,

『일이 나도 큰일이 났다. 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도령 인가 서캐도령인가 한 자가 팔도 거지에도 상상거지가 되어 가지고 그래도 뻔뻔스럽게 너를 본다고 여기 왔다.』

춘향이 옥문 구멍으로 매어 달리려고 애를 쓰다가 땅바닥 에 주저 앉으며,

『도련님이 오셨소? 그것이 정말이요? 어디? 어디? 어디?

어디?』

하고 일어서려고 손으로 옥문만 긁는다.

『여기 왔다. 눈깔은 멀뚱멀뚱하고 살아서 여기 왔다.』

하고 월매가 뒤로 물러서며 몽룡이 그제야 월매 섰던 자리 에 가 서며,

『춘향아 내가 왔다. 내가 왔다.』

하고 눈물겨운 소리로 소리를 쳤다.

『내라니 누구란 말이요?』

『내다. 이 도령이다. 이 몽룡이다.』

『도련님이라니, 도련님이라니? 목소리는 분명 도련님이로 구려. 얼굴을 좀 바싹 대어 주시오! 우러러나 보게.』

하고 춘향이 울며 일어나지 못하여 애를 쓰니 몽룡이 갓을 뒤로 젖히고 얼굴을 옥문 구멍으로 대며,

『어디 있느냐. 좀 뒤로 물러 앉어 얼굴이나 보여라.』

상단이 곁에서 등을 번쩍 드니 불빛이 옥문으로 흘러 초췌 한 춘향의 얼굴을 비추인다.

춘향이 고개를 들어 몽룡을 바라보며,

『오셨구려! 오셨구려! 날 보러 오시기는 오셨구려! 그리도 유신하여 오시기는 오셨구려! 우리 서방님이 오셨네.』

하고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되풀 이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몽룡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보고 앉았다.

몽룡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저 꼴이 웬 일이냐. 선녀같이 아름답던 네가 날로 하여 저꼴이 되었구나. 춘향아 염려마라. 만고 열녀 성 춘향을 하 늘이 몰라 보시며 천지신명인들 몰라보시랴.』

『나는 고대 죽어도 한이 없소. 생전에 서방님 한 번 뵈었 으니 고대 죽기로 어떠하겠소. 오늘밤에 죽더라도 한이 없 거니와 서방님은 웬 일이시오? 어찌하여 얼굴은 저대도록 검으시고 수염은 저대도록 거칠으시고 저 망건 저 갓끈이 웬 일이시오?』

월매 곁에서 듣다가,

『거지에도 우거지 상상거지라니깐. 내 말을 무엇으로 믿 느냐. 수절 수절 하더니 과연 기절을 할 일이로다. 이런 비 렁방이를 보고 수절을 하였으니 무슨 깨보송이가 쏟아졌느 냐. 수절도 쓸데 없고 칠성 기도도 모두 다 허사로다. 이년 아 애초에 내 말만 들었을 양이면 거드럭거리고 잘 살 것을 요년아. 네 팔자를 네 손으로 요따위를 만들고 내 신세까지 꺼벅꺼벅하게 만들어 놓았구나! 이놈아 이 이가놈의 자식아!

내 딸 살려 내어라! 네가 대신 죽고라도 금옥 같은 내 딸을 살려 내어라! 내일이면 사또 생신 잔치 끝에 내 딸 잡아내 어 죽인다 하니 네 놈이 대신 죽고 내 딸 살려 내어라!』

하고 몽룡의 헌 도포자락에 매어달려 악을 쓰니 상단이는 울며,

『마님! 마님! 이리 마시오!』

하고 월매를 붙들고 춘향은 몸부림을 하면서,

『어머니 이리 마시오! 나 죽는 것을 보시랴오? 잘 되어도 내 낭군 못 되어도 내 낭군—유리 걸식하여도 내 낭군이니— 어머니 서방님을 괄시마오!』

하고 몽룡을 향하여,

『서방님 웬 일이요? 어찌하여 그리 되었소? 무슨 가운이 불행하여 그리 되시었나요. 대감께서 높은 벼슬하시다가 참 소 받아 그리 되시었소? 나를 생각하시노라고 공부도 못하 시다가 그리 되시었소? 대관절 웬 연고요.』

하고 애를 쓰니 몽룡이 곧 설파해버려 시원히 알려 주고 싶은 마음 불 일 듯하건마는 암행하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 로 그리할 길도 없고 다만 맥맥히 춘향을 내려다 보고 섰을 뿐이다.

춘향은 더욱 성화하여,

『왜 말이 없소? 말이야 왜 못하오? 시원히 알게 말이나 하시오!』

하고 콩볶듯 보채다가 그만 울어 쓰러지며,

『서방님더러 말하라는 내가 잘못이요. 행색이 저대도록 되시었으니 응당 큰일이 있었으려니—서방님인들 차마 그 말 씀을 어찌하시겠소? 말하라고 조르는 내가 잘못이요.』

하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아이고 이년의 팔자야! 내 팔자야! 전생의 무슨 죄로 털 끝만한 죄도 없이 삼년 동안 준장 엄수 옥중 원혼 되고 하 늘같이 믿고 기다리던 서방님마저 저 모양이 되었으니 아이 고 내 신세야—죽을 년의 팔자로다.』

춘향이 고개를 들어 몽룡을 바라보며,

『서방님 나는 이왕 죄 많아 죽는 년이니 서방님의 일생 액도 내가 맡아 갈 것이니, 서방님을랑 부대 부대 이제부터 라도 공부 시작하셔서 대과급제 얼른하여, 높은 벼슬에 오 르시어 내 원수 갚아 주시고, 명문 거족에 혼인하여 요조숙 녀 배필지어 부대 부대 백세를 누리시오—백세 천세 누리실 때에 서방님만 바라고 옥중에서 썩어지다가 수절 원혼이 된 춘향을 생각이나 하여 주시오! 잊지나 말아 주시오!』

하고 다시 쓰러져 우니 음침한 옥중이 모두 울음소리로 변 한 듯하여 처량하기 짝이 없다.

몽룡도 입술을 꼭 물고 참다 못하여 울음이 터져 소리를 내어 울고, 상단이도 등을 든 채로 한 팔로 눈물을 씻고 월 매는 땅에 엎더져 소리가 없다.

몽룡이 고개를 흔들어 눈물을 떨어 버리고,

『춘향아 설어 마라! 내가 너를 살려낼 것이니 설어 마라.

가뜩이나 병든 몸이 기운 상할라—우지마라. 살려주마!』

하고 흑흑 느낀다.

『서방님 생각을 내가 아니 말씀하여 무엇하오?』

하고 춘향이 설움을 참고 정신을 가다듬어 똘똘한 목소리 로

『내일은 본관 생신이라 이날이면 한 번씩 나를 잡아 내어 다가 열 읍 수령 모인 앞에 일장 국문하고, 매오 치는 날이 요. 어저께 문간 사령 말이 형장 단단한 놈으로 많이 깎아 들이라고 분부하였다 하니 내일은 정녕 내가 죽을 것이요.

죽기 전에 한 번 서방님을 뵈오니 그만 해도 한이 없거니와 이년의 욕심이 한 번만 죽기 전에 더 뵙고 싶으니 오늘 밤 에 집에 가셔서 서방님 나하고 노시던 부용당에서 나 덮던 이불 덮고, 편안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 늦도록 주무시고, 옥 문 밖에 와 계시다가 내 칼머리나 들어 주오! 이생에 마지 막 소원이니 서방님 들어 주오!』

하다가 참던 울음에 목이 메어 입술을 물어 참고,

『그리고 내가 매를 맞을 때에도 저 만치 서 계시어 매맞 는 것이라도 보시면 운명할 때에도 서방님 한 번 마지막으 로 더 보고 죽을 것이니 부대 부대 내 소원 들어 주오. 그 리고 내 목숨이 딱 넘어가거든 서방님이 본관에게 말하셔서 내 시체를 서방님 몸소 안고 나와, 집에 갖다가 서방님 누 우셨던 자리에 누이시고, 매맞아 성한 곳없는 내 몸이나 한 번 손으로 쓸어 주시고 그러시다가 천행으로 다시 살아나면 서방님 한 번 더 뵈오려니와 만일 명치끝이 싸늘하게 식어 지거든 서방님 손수 눈이나 감겨 주시고 춘향아 춘향아 내 춘향아, 잘 가거라 후생에 다시 보자 하고 세 번만 불러 주 시고, 그리고는 남의 손 내 몸에 일절 대지 말고 서방님 손 수 아무렇게나 염습하여 산지도 구할 것 없이 아무런 데나 묻어 주시었다가, 서방님 대과 급제하시고, 높은 벼슬 하신 뒤에 내 해골을 파다가 이씨댁 선형 한편 구석에 묻어 주시 고, 춘추성묘 오실 때에 한 번씩 찾어 오셔서, 춘향아! 춘향 아! 내가 왔다 하고 술 한 잔이라도 부어 주시면, 지하에 있 는 혼이라도 기뻐할 것이니 부대 잊지 말고 내 소원 들어 주오.』

하고 또 소리를 내어 운다.

몽룡은 불쌍하고 안타까움을 참지 못하여 두 발로 땅바닥 을 탕탕 구르며,

『안 죽는다거든 내 말을 믿으려무나! 살려 주마. 우지마 라!』

하여도 춘향은 믿으려 아니하고, 만사를 단념한 듯이 도리 어 눈이 반동반동하여,

『어머니!』

하고 월매를 부른다.

월매는 모기소리 같은 목소리로,

『왜야?』

『어머니!』

『무슨 말이냐? 애고 가엾어라.』

『어머니! 어머니! 애쓰시기도 오늘 뿐이요. 내일 이맘 때 면 내몸은 벌써 식어 버릴 것이니 불효한 이 자식을 안 낳 으신 줄만 아시고 잊어버려 주시오. 늙으신 어머니 말년에 낙을 보여드리고자 주야로 빌었더니, 못하고 돌아가니 애원 하고 절통하오. 내일은 아무리하여도 죽을터이니 어머니는 부대 오시지도 마오. 이 자식 매맞아 죽는 꼴을 어머니가 어이 차마 보시리! 부대 오지 마오. 없는 년으로만 여기시고 부대 부대 잊어주시오.』

『나 하나 죽어지면 어머니 설어 어이 살리—누를 믿고 살 으리. 서방님 부대 우리 어머니를 돌아보아 주오—춘향을 사 랑하시거든 어머니를 살아 생전 구원하여 주시다가, 우리 어머니 살으시면 며칠 살겠소—돌아가시거든 서방님이 주장 하여 물이나 안 날 데다 깊이 깊이 묻어나 주오. 서방님 부 대 부대 내 부탁을 잊지 말고 죽는 년의 소원을 들어 주 오!』

몽룡이 우는 소리로,

『안 죽는다는데 그러네. 살려 주마 하여도 아니 믿네』.

하고 위로하니 춘향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어 믿으려고 아니하고,

『여보 서방님 내가 한 번만 더 맞으면 북두칠성 삼태경이 다투어 명을 주어도 살 가망은 바이 없으니, 죽는 나도 설 거니와 나 죽는 것 보시는 서방님의 맘은 얼마나 하겠소.

서방님도 내일은 나 매 맞는 것 보지 마시고, 삼문밖에 소 리도 안 들리는 곳에 계시다가 내 시체를 삼문 밖으로 끌어 내치거든 서방님 마침 섰다가 시체라도 거두어 주오. 집에 갔다가 곧 염습은 말고 아까 말한 대로 옷을 벗겨 자리에 누여 놓고 서방님 더운 침이라도 흘려 넣고 고요하게 한식 경이나 기다려 보아 주시오.—천행으로 살아나면 서방님 모 시고 하루라도 살아보게—살고지고.살고지고.』

하고 또 울다가,

『그래도 깨어나지 못하거든 춘향아! 잘 가거라, 황천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 나무아미타불이나 불러주오—그리고 아기 상두에나 담아다가 아무렇게나 묻으시되 부대 수절원사성춘 향지묘(守節寃死成春香之墓)라고 서방님 글씨로 패 하나만 박아 주오.』

하고 이윽히 정신이 아득하여지는 모양이더니 다시 정신을 차려,

『서방님 부대 우리 어머니 버리고 가지 마오—아무데도 가 지 마시고 우리 집에 계시어 글 공부나 하시오!』

하고는 다시,

『어머니!』

하고 월매를 불러,

『어머니! 나 죽는 것 설어 마시고 서방님과 같이 여년을 지나시오. 부대 서방님 괄시 말고 내 입던 옷가지 패물까지 모두 다 내어 팔아, 반 값에라도 탕탕 팔아 서방님 갓, 망 건, 도포, 중추막, 긴옷, 속옷, 속속들이 장만하되 고은 나의 바꾸어서 안은 모두 면주로 하고 제일 다듬이를 곱게 하고 수품을 곱게 지어다가, 서방님 입히시고, 서방님 버선 본은 내 실첩 속에 들었으니 몽고삼승 바꿨다가 안팎 버선 지어 드리되, 버선코가 너무 높지 말게 발에 맞게 지어 신켜 드 리고 윤돌이집 갓방에 닷냥 주고 갓을 맞추되 대우량은 맑 게 하고 중밋철대 굵게 말고 은각을랑 부대 놓고 칠광 있게 하여 오고, 신꼽추계 망건을 맞추되 값을 깎지 말고 돈냥이 나 넘겨 주고라도 상지상으로 맞추시고, 진쇠에게 평양 본 으로 울이 너무 높지 말게 조촐하게 맞추어 신키오. 유리 걸식하더라도 관망이 선명하면 남이 천대를 아니하는 것이 니 어머님 부대 그리하여 주오. 그리고 부용당 정결하게 치 우시고 서방님 계시게 하시고, 조석공궤사시되 내가 있어 할 때 처럼 된 진지는 싫어하시니 진지를 축축이 지으시고, 가끔 등골 사다가 탕을 하여 드리고, 즐겨하시는 염통산적, 양볶기에 체육초도하여 놓고 겠지 않은 암치, 기름 발라 보 풀으고 약포육 놓고 어란도 버혀 놓고 편포나 좀 오려 놓고 장김치를 좋아 하시니 육소 넣어 장김치도 담그시고, 평생 에 즐기시는 약주는 안주 겸하여 부대 부대 잊지 말고 많이 드리시고, 진지 막 잡수시고 담배 한 대 멀만하여 차관에 생강 좀 점여 놓고 황다(黃茶) 좀 집어 놓고, 귤병 좀 떼 넣 어 넣어 매음 달큼 빛을 맞춰 곱게 달여다가 드려 주오. 문 방사우 서책도 소원하는 대로 장만하여 드려 글 공부하게 하시되 공부하실 때에는 부대 조용하게 하여 드려 주오—어 머니 어머니! 내 말대로 하여 주오!』

월매 춘향이 부탁하는 말을 듣고 독을 내어,

『나는 밤낮으로 네 시중만 듣건마는 전혀 말 선물뿐이지, 모주 한 잔 사먹을라고 돈 한 푼 주는 일이 이 때까지 없더 구마는, 이 원수 놈은 보는 듯 마는 듯 올 팔어라, 노리개 팔어라, 호사시켜라, 잘 먹여라 하니 어찌한 곡절이냐. 자세 히 알자. 내 맘 같으면 이 년석을 숙마 바로 동여 대도 단 단한 참나무 뭉치로 주리를 한참 틀었으면 속이 시원하겠 다.』

하고 악을 쓰니 춘향이 울며,

『어머니 만일 그리시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불효는 될지언정 당장 죽어 버리야오!』

하고 아드득 이를 가니 월매 놀래어,

『오냐. 네 말대로 하마. 낸들 분수 없겠느냐. 네 말대로 한다.』

『부대 내 말대로 하여 주오.』

하고 춘향이 상단을 불러,

『지금 내가 한 말 네가 들었으니 더할 말도 없다마는 나 죽은 후에라도 지성을 다하여 서방님을 섬겨 다오. 어머니 잘 봉양하고 맘 편안하게 하여 다오. 이생에서 네 부대 내 말 잊지 말고 지금 어머니와 서방님 모시고 집에 돌아가서 방 깨끗이 치이고 불도 좀 때고 서방님 편안히 주무시게 하 여 드려다오. 너만 믿는다—너만 믿는다.』

상단이 울며,

『아씨 염려마시오—말씀 아니하시기로 범연하리이까.』

과도히 설어 말고 몸을 보중하오!

『고맙다. 네 말 들으니 맘이 가득하다. 네 맘을 내 알고 내 맘을 네 아니 무슨 별말 또 있으랴. 너만 믿는다.』

하고,

『서방님 손이나 좀 들여 보내오!』

하며 두 손을 치어든다.

몽룡이 옥문 구멍으로 한 손을 들여 보내니 춘향이 그 손 을 덥석 잡고 매어 달리며,

『영결이란 말이 웬 말이요?』

하고 운다. 몽룡이 싸늘한 춘향의 손을 꼭 쥐어 주며,

『영결될 리 만무하다. 남원 부사 죄악이 관영하였으니 내 일 안으로 무슨 일이 날 것이니 염려 말고 편안히 밤을 지 내어라. 내일 또 보자.』

하고 유심하게 춘향의 손을 두세 번 쥐어 주나 춘향은 종 시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내일 부대 오시오! 옥문 밖에 섰다가 칼머리나 들어 주 오! 삼문 밖에 섰다가 신체나 찾아 주오!』

『오냐 염려마라. 내일 다시 만날 것이니 마음 놓고 잘 자 거라.』

『서방님 부대 편안히 주무시오!』

『오냐 잘 자거라. 내일 보자.』

『어머니 안녕히 주무시오.』

『내 걱정은 말고 네나 잘 있거라. 식전에 미음 쑤어 오 랴?』

『예 미음 쑤어 주오!』

『아씨 안녕히 주무시오!』

『오 상단아. 잘 자거라. 어머니 잘 붙들어 드리라. 아니 상단아. 내 삼층장 속에 담배 둔 것 있으니 내어서 서방님 드려라!』

『예 아씨 부대 안녕히 주무시오.』

『오 조심해 가거라.』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도 멀어지고 얼른얼른하는 등불 조차 멀어지니 춘향이 억지로 참았던 울음이 다시 북받쳐 혼자 쓰러져 울 때에,

『이애 춘향아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하고 옥문 밖에서 몽룡의 소리가 들린다.

춘향이 자기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여망없이 생각하고 여 자의 일편된 맘에 혹시 자수나 아니할까 하여 돌아온 것이다.

『어찌하여 가시다가 돌아왔소?』

하는 춘향의 말은 영령하다.

『이애 네가 아까 날더러 유인처럼 만 번이나 부탁한 것이 있거니와 나도 네게 부탁할 말이 있다.』

『무슨 부탁이요?』

『내일이고 모레고 내 얼굴을 다시 보고 죽어야 네 부탁대 로 하여 주지, 만일 나를 다시 안 만나고 죽으면, 네 소원대 로 새로이 네 송장이를 길가에 넘너져서 개천 구렁으로 굴 러 들어가도 나는 모른 체하고 도리어 악착한 원수로 알 터 이다. 그러니 부대 나를 잠결이라도 다시 만나 보고 죽고 살기를 결단하라.』

『글랑 그리 하오리다. 어서 가서 주무시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노여 마시오!』

『오냐 그리한마. 늙은이가 무슨 허물 있느냐.』

몽룡이 춘향의 말을 듣고 안심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월매 를 따라가니 상단이 등불을 들고 서서 기다린다.

월매 몽룡을 힐끗 보며,

『그래 어디로 가랴오?』

『어대로 가? 자네 집으로 가지.』

『이것이 참 소위 들에질이요구려. 집없는 줄 번히 알고 집이란 웬 말이요.』

『그럼 자네는 어대 가나?』

『나는 읍내 어떤 과부집은로 가지요.』

『이 사람 그렇거든 자네가 잘 곳에라도 같이 가세.』

월매 피끈 돌아서며,

『난장 맞고 발가락 뽑히고 나까지 쫓겨나서 노중에 자게 하려나? 실없은 말 말고 어서 다른 데나 가보지—상단아. 어 서 가자.』

『이제 내가 어대를 간단 말인가.』

하고 몽룡이 월매의 뒤를 따라서니 월매 귀찮은 듯이 멈칫 하며,

『가라 하면 갈게지 어대를 오나?』

『내가 어대로 가나? 자네집에 안 다리고 가겠거든 갈 데 를 말하소.』

『자네게는 굴뚝 없는 집이 제격이지.』

『굴뚝 없는 집이 어대 있담.』

『객사동 대청도 없어?』

『옳의. 자네 말이 옳의. 전라도 오십삼관 객사 동대청이 다 내 집이로세. 그러면 나는 가네. 내일 또 보세.』

하고 몽룡이 돌아서서 걸어가니 월매 시원 섭섭하여 물끄 러미 몽룡의 가는 양을 보다가,

『내일 우리 집에 올 것 없네—아침 지을 것도 없으니 애여 올 생각도 마소.』

하고 상단이를 재촉하여 가버린다.

몽룡이 그 길로 객사 공청을 찾아가니 넓으나 넓은 대청에 땀내 나는 거지떼가 우글우글 가로 눕고 세로 누워 어떤 거 지는 그리도 가려운지 한 팔을 뒤로 돌려 손도 잘 안 닿는 데를 득득 긁고 어떤 늙은 거지는 한편 구석에 일어나 앉아 서 달빛을 반이나 몸에 받고 담배를 피우다가 몽룡이가 오 는 것을 보고,

『신수가 멀끔한 사람이 왜 객사를 찾아 다니노?』

『왜 나는 못 올 사람인가?』

『와도 잘 자리가 없으니 딱하단 말일세. 금년에는 웬 젊 은 거지가 이다지 많아져서 우리같이 늙은 놈은 빌어 먹기 도 난처하니 딱한 일이로세.』

이렇게 두런두런하는 소리에 한 거지 두 거지 눈을 비비고 일어나며,

『남 곤하여 자는데 누가 이리 지저려싸?』

하고 한 거지가 중얼거리니 또 한 거지 손으로 마룻바닥을 탁 치고 일어나며,

『이런 제기 남 한참 장가들어 큰상 앞상 받아 먹고 한바 탕 잘 먹으랴는 판에 객없이 떠들어 싸하서 꿈을 깨어 놓으 니 대체 무슨 심사람.』

하고 역정을 쓰면 이 역정 쓰는 소리에 다른 거지 또 놀라 깨어 일어나며,

『이런 빌어먹다 오라를 질 자식들이 왜 아닌 밤중에 잔 소리야 어디 잠자겠다구.』

하고 뿌시시 일어나고 그 소리에 또 한 거지 깨어나며,

『이 사람들 무어 먹을 것이나 생겼나—혼자 먹지 말고 나 도 좀 주소.』

하고 벌떡 일어나 두리번 두리번 살펴 보아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열 없는 듯이 도로 드러 누우며,

『공연히들 떠드는군—빌어 먹을 놈들.』

하고는 코를 골기 시작한다.

그 중에 한 거지 일어나더니 잠결에 암행인 것도 다 잊어 비리고 몽룡의 앞에

『소인 아뢰오.』

하고 허리를 굽신하고는 그제야 아차 안되었다 깨닫고,

『허 꿈 고약하다.』

하고 도로 주저앉는다.

출또 편집

이날은 본관 사또 생신이라 하여 아침부터 인근 각읍 수령 이 모여드느라고 남원 읍내가 들끓는데 난데 없는 망건 장 사 파립 장사 황화 장사 거지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어 옥문 앞으로, 광한루로, 삼문 앞으로 기웃기웃 돌아 다니기를 시 작하더니 오시가 지나자,

『허 오늘 수상하군.』

『저 거지들이 예사 거지가 아닌걸.』

『쉬—무슨 일이 나고야 말지.』

하고 남원 읍내 사람들이 이 구석에선도 두런두런 저 구석 에선도 두런두런 귀에 대로 수군수군 끔적끔적 한다.

이때에 몽룡이 춘향이가 백 번 당부하던 옥문 밖으로 가지 도 안하고 삼문 밖으로 슬슬 들어가니 잔치가 어울어졌다.

백설 같은 구름 차일 덩그렇게 높이 치고, 동헌 대청에는 수병풍 모란병 각색 병풍 들어차고, 화문지의홍등매(花紋地 衣紅登每)에, 만화 방석 총전보료 뭉고전담 요를 깔고서, 초 롱, 약각등, 유리등, 세옥주(細玉珠)를 홍목 으로 줄을 하여, 석가래 수대로 총총히 걸어 놓았으니, 밤 깊도록 놀자는 뜻 이요. 샛별 같은 요강, 타구며 와룡 촛대 여기저기 벌여 놓 았다.

당상에는 부사, 현감, 당한에는 만호(萬戶), 별장(別莊), 그 중에는 임실 현감(任實縣監), 구례현감(求禮縣監) 운봉영장 (雲峰營將)도 섰여 있다. 이 모양으로 인근 읍 수령들이 청 천에 구름 모이듯, 용문산(龍門山)에 안개 모이듯 사방으로 모여들어, 차례로 벌여 앉으니, 위풍이 늠름하고 호령이 숙 숙하다. 아이 기생은 녹의 홍상, 어른 기생은 쾌자 전립으로 거북 같은 거문고를 무릎 위에 비껴 놓고 섬섬옥수로 이 줄 저 줄을 희롱하며, 옥같이 맑은 소리를 길게 가늘게, 끊이락 이으락 뽑고 구울려 후정화(後庭花)를 부르니, 풍류도 좋을 시고. 거문고 가야금 양금 생황 삼현(三絃) 육각(六角) 소리 가 반공에 이러었다. 남창에는 거문고요, 여창에는 육각이 다. 중한잎 잦은 한잎은 높은 하늘 너른 바다에 물구름 흐 르는 격이요. 후정화(後庭花) 시조(時調)는 부드러운 봄바람 에 꽃피어 무르녹는 격이요. 소용이(蘇聳耳) 편(編) 낙(樂) 은 모진 바람 재 오친 비에 제비 떼 빗껴나는 격이다. 노래 일편 대바침에 잡가 시조 모두 부르고 입춤 검무(劍舞) 연풍 대(宴豊臺)는 퇴상 후에 보기로 하고, 수파련다담상(水波蓮 茶談床)이 나오니 장진주(將進酒) 노래와 어울러 포도 미주 좋은 술이 순배가 바쁘구나.

이때에 몽룡은 때 끼인 얼굴에 길인 행색으로 차리고 삼문 안으로 주적주적 들어오며,

『여보아라! 사령들아 멀리 있는 걸객이 좋은 잔치 만났으 니 술잔이나 얻어 먹자 들어온다고 자상에 아뢰어라.』

하고 진퇴하여 가까이 오니 좌상에 앉은 수령들이 호령하 여 분부한다.

『거 원 무엇이니 바삐 잡아 내떠리라.』

어느영이니 지체하랴. 뭇사령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등 밀 거니 배 밀거니 팔도 잡고 다리도 잡고,

『이분네야 아무 소리맙소. 요란하이 이 분네야.』

하고 몽룡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도 듣지 아니하고, 오줌 젖은 상단지 걸음으로 배추 밭에 개똥처럼 삼문 밖으로 밀 어 내친다.

몽룡이 하릴없이 문밖으로 쫓겨 나오니, 보던 사람들이 모 두 좋아라고 웃는다. 이리로 저리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 어갈 틈을 엿보는 흔금이 엄밀하고 슬슬 보아 아무리하여도 들어갈 길이 없다.

몽룡이 할 수 없이 슬슬 뒷문으로 돌아가 지적지적하더니 문을 보던 하인들이,

『여보!』

하고 몽룡을 부른다.

『왜 그러오!』

『여보 보아하니 일 없는 사람인 듯하니 우리 잠깐 입시하 고 올 것이니 문좀 보아 주오. 아무라도 들어가려 하거든 이 채찍으로 먹여 주오. 문만 착실히 보아 주면 간친 파한 후에 술잔이나 먹이리다.』

몽룡이 다행히 여겨,

『글랑 염려를 아주 놓고 가라이까.』

하고 채찍을 받아 들고 섰다.

몽룡이 사령들에게서 받은 채찍을 들고, 문에 서서 어정어 정할 때에 한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서 낌새를 보느라고 기 웃기웃하며, 몽룡의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저만치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사람만 들어가면 자기네도 들어가 볼 양으로 발들을 내 놓았다 들여 놓았다 한다.

몽룡이 들었던 채찍을 문에 세우고,

『이분! 낌 좋은 판이니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섰는 분 들도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있는 아이들도 내 알 것이니 모두 들어가 구경하여라.

하고 맘대로 문을 터 놓으니 마치 부문(赴門)하는 선배처럼 뭉게뭉게 뒤끌어서 문인 메어 들어간다.』

몽룡도 그 틈에 섞여 들어가며,

『좋다. 잘 들어온다—에라 한 모퉁이 치어라!』

하고 보계판(步階板)으로 부쩍부쩍 올라가니 과중 수령들이 들었던 술잔을 놓고, 거 원 이게 무엇이니? 바삐 몰아 내치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그 중에 운보영장(雲峰營將)이 마 의상서(麻衣相誓)권이나 보고 또 나이도 지긋하여, 지인지감 이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다. 곁눈으로 몽룡을 살펴보니, 행색은 허술할 망정 면방안활(面方雁闊)하고 미장목수(眉長 目受)하고 이곽(耳廓)이 돈후(敦厚)하고 준두(準頭)는 융기 (隆起)하고 성음(聲音)이 청장(淸狀)하되, 언불요순(言不搖 脣)하고 소불로치(笑不露齒)하고, 인중(人中)이 길고, 천정 (天庭)이 윤택하고, 산근후(山謹厚) 창고만(倉庫萬)이요, 삼 정(三停)이 균정(均整)하고, 오악(五岳)이 구전하며, 언간청 원(言艱淸遠)하고, 좌단침정(座端沈檉)하고 법령엄장(法令嚴 壯)하고, 장벽방후(墻壁方厚)한데, 연견(鳶肩)에 화색(火色)하 니 삼십정승(三十政丞)이요, 명주출해(明珠出海)하니 팔십태 사(八十太師)로다.

운봉이 본관을 보고,

『여보시오. 그 분을 보아하니 의복이 비록 남루하나 양반 인가 싶으니 좌석을 같이함이 어떠하오? 시속에 상한(常漢) 들이 양반을 세웁니까 우리네가 양반 대접을 아니 하고 누 가 한단 말이요?』

하고는 본관이 가타 부타 대답도 있기 전에 몽룡을 보고,

『이 양반 이리 앉으시오!』

하고 말석에 자리를 권하니 몽룡이 웃으며,

『기야 양반이로고 동시 양반을 아끼니 운봉이 과시 사람 을 아는고.』

하고 서슴치 않고 호기 있게 운봉이 권하는 자리도 마다하 고, 부적부적 상좌로 올라가서 본관의 곁에 끼어 앉아 진똥 묻은 다리를 그 앞에 펴벌리니 본관이 혀를 차며,

『게도 눈이 있다 다리를 뻗는닥게—. 도로 오그리요—허허 운봉도 야릇하것다. 거 원 무엇이람.』

하고 고개를 돌리니 몽룡이 점잖게,

『여북하여 그러하오? 내 다리는 뻗기는 용이하여도 오그 리기는 과연 극난하오.』

하고 그대로 앉았으나 아무도 권하는 이는 없고, 자기네 들만 먹고 앉았으니 몽룡이 소리를 높여,

『좌상에 말씀 올라가오. 잘나가는 걸객으로 공복(空腹)이 자심하니 요기를 시켜 보내시오.』

이 말에 수령들은 모두 눈쌀을 찌푸리고 유독 운봉장이 하 인을 불러,

『여보아라. 상 하나 이 양반께 받자 오라.』

하니 이윽고 귀신 다 된 아이놈이 상 하나를 들어다 몽룡 의 코 앞에 대고 눈알을 구울리며,

『팔 아프니 어서 받아.』

하고 반말거리를 한다.

몽룡이 상을 받아 들고 살펴보니, 다른 사람 앞에는 모조 리 열명이 들어붙어도 다 못 먹을리 만큼 산해진미를 갖추 갖추 놓았는데, 이 상에는 뜯어 먹던 가리 한 대, 대추 세 개, 밤 두 낱, 소금 한 줌, 장종자에 저리침 채 한 보시기, 이빠진 사발에 탁주 한 사발을 덩그렇게 놓았으니, 남의 상 보고 내 상을 보니 없던 심장도 절로 나서, 실수하여 엎지 르는 체하고 한복판을 뒤집어 놓고,

『아차 이 노릇 보아라! 먹을 복이 못되나보다.』

하며 두 소매와 옷자락으로 엎친 모주를 묻혔다가 좌우벽 에 뿌리는 체하고 만좌 수령에게 함부로 대고 뿌렸다.

수령들이 모주 방울을 피하노라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 키면서,

『어허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고. 미친 손이로고!』

몽룡이 다 뿌리고 나서,

『웬통으로 묻힌 내 옷도 있소. 약간 튀는 것이야 글로 관 계하오?』

하고 앉는다.

운봉이 민망하여 자기 받았던 상을 몽룡 앞에 밀어 놓고,

『자 이 상을 받으시오.』

하고 권한다.

『웬 일이요?』

『염려말고 어서 자시오. 내 상은 또 나오.』

몽룡이 운봉이 권하는 상을 받아 제 상같이 앞에 놓고 또 트집을 잡아,

『통인 여보아라. 상좌에 말씀 한 마디 올라가오 하여라.

내 가만히 보니 어떤 데는 기생하여 권주가로 술을 드리고 어떤 데는 기생 권주가는 말고 떠꺼머리 아이하여 얼렁얼렁 하니 대체 어찌한 일인지......대체 술이라 하는 것은 권주가 가 없으면 무맛이니 기생 중에 똑똑한 것으로 좀 나려 보내 시면 술 한 잔 부어 먹읍시다 하여라.』

하니 본관이 심히 못마땅하여 관자놀이가 불룩불룩 하며,

『그만하면 어량(於量)에 족의(足矣)여든 또 기생 암질러 허—고이한 손이로고.』

몽룡이 본관을 노려보며,

『여보 어찐 말이요. 나는 기생 권주가 하나 못 들을 사람 이란 말이요?』

하고 대드는 것을 보고 운봉이 곁에 있던 기생 하나를 불 러,

『네 이 양반 술 부어 드리라.』

기생이 귀찮아 하는 듯이 이마를 찡기고 몽룡의 곁으로 가 서 술을 부어들고 외면하고 앉으며 몽룡이 웃으며,

『묘하다! 권주가 할 줄 알거든 하나 하여서 나를 호사시 키려무나.』

기생이 외면한 대로 입을 비쭉하여,

『기생 노릇은 못하겠다. 비렁방이도 술 부어라, 권주가까 지 하라니 권주가 없으면 술이 줄닥이에 아니 들어가나.』

하고 쫑알거리고 나서 그래도 마지못하여 권주가라고 한다 는 것이,

『먹우 먹우 먹으시오. 이 술 한 잔 먹으시오......』

몽룡이 다 듣지도 아니하고,

『여보아라! 요년 네 권주가 본이 그러냐.』

『행하 권주가는 응당 그러하냐. 잡수시오 말은 생심도 못 하느냐.』

기생이 몽룡을 흘겨보고 독을 내어,

『애고 망측해라. 갖추갖추 성가시게도 구네, 그럼 잘 하오 리다.』

하고 권주가를 다시 부른다는 것이,

『처박이시오. 처박이시오. 꿀떡꿀떡 처들여 박이시오. 이 술 한잔 처박이시면 만년 거지될 것이니 어서 어서 들이지 르시오.』

하고는 술잔을 몽룡의 코 끝에 내어 대이며,

『자! 어서 받으오—팔 아프지 않소?』

한다. 몽룡이 이윽히 그 기생을 뚫어지게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예라 요년 앗어라.』

하고 술을 받아 마신다.

술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몽룡은 음식상을 다가 놓고 주린 판에 비위가 열려 순식간에 한 알 안 남겨 놓고 다 모두 휘 몰아 들이고, 이 빨 사이를 쪽쪽 빨며,

『사월 팔일에 등 올라가듯 상좌에 말씀 하나 올라가오.

음식은 잘 먹었소마는 또 괘씸한 입이 싱거워 못 견디겠으 니 저 초록 저고리에 다홍 치마 입은 동기(童妓)좀 내려 보 내시면 호사하는 판에 담배까지 한 대 붙여 먹겠소.』

하니 운봉 영장은 또 무슨 트집이 날까 보아 다른 사람이 무슨 말하기 전에 그 동기더러,

『붙여 드리라.』

하고 분부하시니 그 동기 샐쭉하여지며,

『그것도 수컷이라고 제반 악증의 소리가 나오네—운봉 안 전은 분부 한 몫을 모두 맡았나보다.』

하고 짜증을 내고 몰룡의 곁에 와서 불쑥 손을 내밀며,

『담뱃대 내시오!』

한다. 몽룡이 골통대를 내어 주니 기생 담배를 아무렇게나 부스러뜨려 입담배를 가루 담배로 만들어 두어 모금 빨아 붙여 몽룡을 부며,

『엇소 잡수우.』

하고 일어나 가려한다.

몽룡의 곁에 있는 것이 싫어서 일어나 다른 데로 가려는 것을 몽룡이 굳이 손을 붙잡고, 희롱하고 앉았더니 이윽하 여 몽룡의 뱃 속에서 벼란간에 이륙좌기(二六坐起)하는 노래 같이 똥땅 주루룩 탁탁 하는 별별 소리가 나며, 창자굽이가 꿈틀꿈틀하며 방귀가 나오려고 구멍을 내려 뚫는다.

몽룡이 발뒤축으로 잔뜩 고여 기운을 모았다가 슬며시 터 놓으니 부시시 하고 그저 뭇대어 연해 나오는 방귀가 온 동 헌에 다 퍼진다. 그 냄새가 어찌 독하든지 코를 쏘는 듯하 다. 좌중이 모두 코를 가리우고,

『응!』

『퓌!』

하는 소리가 연발하고 몽룡에게 손을 잡힌 동기는,

『애......피......애......피』

하고 손으로 코를 쥐고 대굴대굴 군다.

본관이 저만치 코를 돌리며,

『어 고약하다. 이것이 필시 저 통인놈의 조화로다. 사핵하 여 바삐 몰아 내치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니 애매한 통인은 망집 소조하여 어 안이 벙벙하다.

몽룡이 본관을 보며,

『통인은 애매하오. 내가 과연 방귓자루나 뀌였나 보오. 하 고 무한히 슬슬 통통 뀌어 버리니 온 동헌이 모두 구린내 다. 모든 수령들이 혀를 차며 운봉의 탓만 하고 담배만 퍽 퍽 피우니 좌중이 자못 파흥이 된다.』

본관은 주인이라, 이 좋은 잔치에 파흥되는 것이 아까워서 흥을 돋누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여보 임실(任實)! 그래 임실 온지가 벌써 삼년이나 되었 다 하니 그래 과만 전에 볏백이나 장만하였소.』

임실이 물었던 담뱃대를 빼고,

『볏백은커녕 잔용도 부족하오.』

『그럴 게요, 묘리를 모르면 잔용도 부족하단 말이 응당 그러하지요.』

하고 고개를 돌려,

『여보 함열(咸悅) 날더러 남원 와서 치부(致富)하였다고, 조롱하는듯이 말은 하오마는 나도 처음에는 준민고택(俊民 膏澤)은 아니하려 하였더니, 할 밖에는 없는것이 번에 없는 별봉(別封)이 근래에 무수하고, 궁교(穹交) 빈족(貧族) 걸패 (乞牌)들은 그칠 적이 바이 없고, 원청 주야 경륜 생각하다 못하야 묘리를 터득해 내인 것이, 이방놈과 짜고 묵은 은결 (隱結) 들쳐내어 단 둘이 쪽반하니, 자미가 바이 없지 아니 하고, 또 사십 팔면 부민들을 낱낱이 추려내어, 좌수차첩(座 首差牒) 풍헌자첩(風憲差牒)을 내어 주면, 묘리가 있고, 금년 에 와서는 향고소임으로도, 착실히 재미를 보았고, 또 환자 요리(還子要利)도 해롭지는 아니하오. 이러나 하기에 지탱을 하여가지 그렇지도 아니하면 어림없소.』

하니 만좌 수령들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극구 칭송(極口稱頌) 한다.

운봉 영장이 듣다 못하여,

『여보 본관 객담 마오. 거 원 무슨 말이라고 하오? 여차 성연에 풍월귀나 합시다.』 하니,

『운봉 말씀이 옳소.』

하고 좌우 수령들이 모두 좋다 하여, 일변 먹을 갈라고 시 축을 내어 놓고, 운자를 내고 어떤 수령은 글귀를 생각하노 라고 눈을 내리감고 어떤 수령은 수염을 내리쓸고 어떤 수 령들은 몸을 흔들고 어떤 수령능 콧소리「응흥흥」하고 생 각난 글귀를 중얼거려 보고 모두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조 용하다.

몽룡이 나앉으며,

『상좌에 말씀 올라가오. 나도 비록 걸객이나 오늘 좋은 잔치에 배부르게 얻어 먹고, 그저 가기가 섭섭하니 지필이 나 빌리시면 차운(次韻)하나 하오리다.』

걸인이 글을 짓는다는 말에 만좌가 웃고,

『저꼴에 또 글이라니.』

하고 조롱하는 것을 운봉이 만류하여,

『문무에 귀천 있소?』

하고 지필을 당기어 몽룡의 앞에 놓으니, 본관이 보고 앉 았다가 무릎을 턱 치고,

『옳소. 그 손이 글을 잘못 짓거든 좌석에서 몰아 내치는 것이 어떠하오?』

하고 여러 수령을 돌아보니 모두 좋다 한다.

몽룡이 붓을 들고 웃으며,

『만일 내가 글을 잘 지으면 본관을 몰아 내칠까.』

하니 본관이 심히 못하땅하여「응」하고 고개를 돌린다.

몽룡이 운자를 보니 기름고(膏) 높을고(高)자 절귀운이라.

순식간에 일필휘지로 써 놓고 유심하게 운봉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온다.

운봉이 그 글을 보니,

『금준에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로구나.

옥반에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 떨어지매 민루조차 떨어지니, 가성 높은 곳에 원성이 높았세라.』

글을 다 보고 나더니 눈치 빠른 운봉 영장은 벌써 알아차 리고 본관더러,

『나는 백성의 환자(還子) 주기를 금일로 출령하였기로 먼 저 가오.』

하고 일어나 나간다.

곁에 앉았던 전주판관(全州判官)이 운봉의 하는 양이 수상 한 것을 보고 몽룡을 글을 당기어 보더니,

『나는 미진한 급한 공사 있어 먼저 돌아가오.』

하고 일어서 나가고 연하여 고부현감(古阜懸監)이 또,

『하관은 하루거리를 얻은 때가 되었으니 먼저 가오.』

하고 황망히 일어 나아간다.

본관이 취흥이 도도하여 화다가 화를 내며,

『낙극진환(樂極盡歡)이라니 종일토록 놀지 않고 공연히들 먼저 찍찍 달아나니 남의 잔치에 파흥이라 고이한자들.』

하며 먼저 가는 수령들을 흘겨보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 며,

『여보시오. 가는 이는 가거니와 우리는 세잔갱작(洗盞更 酌)하여 훗토시 놉시다.』

이때에 삼방하인(三房下人)들이 마침 때가 되어 관문 근처 로 이 골목 저 골목 난데 없는 망건 장사 파립 장사 미역 장사 황화 장사들이,

『헌 망건에 헌 갓 팔 것 있소?』

『미역들 안사리아—울산 장곽들 사오.』

『바늘 사리아. 실과 물감들 사리오.』

『헌 담뱃대 파쇠 삽시다.』

하고 야릇한 소리로 외우고 돌아 다니며, 어사의 부채군호 만 살피더니, 몽룡이 부채를 넌짓 들고 상방 하인 손을 치 니, 어디서 나오는지 군관서리 역졸들이 청건대를 둘러 띠 고, 흥전립을 젖혀 쓰고 우르르 삼문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 중에 청파역졸이 달 같은 마패를 해같이 번쩍 들어 삼문을 쾅쾅 두드리며,

『이 고을 아전놈아 암행어사 출또야 큰 문 바삐 열어 라!』

하고 소리가 벽력같고 한편으로는 봉고(封庫)하고 우직근 와직근 두드리며 급히 몰아쳐 들어 오며,

『암행어사 출또하오!』

이 소리 한 마디에 기왓골이 터지는듯 하늘에 다은 해도 발을 잠깐 머무르고 공중에 나는 새도 소리를 못하고 푸득 푸득 떨어진다는 것이다. 만좌 수령이 청천벽력을 당하니 한참은 쥐죽은 듯 소리도 못 내고 몸도 못 움직이고 눈이 휘둥글하여 벌벌벌벌 떨고만 앉았고 본관은 지랄하는 사람 모양으로 입술이 개흙 빛이 되어 게거품을 푹푹하고 풍동한 사람 모양으로 머리와 사지를 덜덜덜 떨고 앉았다.

된벼락을 맞은 수령들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였다는 것이 반 밖에 수습이 되지 못하여,

『갓 내어라 신고 가자.』

『나귀 내어라 업고 가자.』

『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물 마르고나 목을 다오.』

하고 거동 언어 수작이 뒤섞여 나오니 임실현감(任實縣監) 은 갓을 급히 쓰노라고 갓모자를 뒤켜 쓰고,

『여보아라. 어느 놈이 갓구멍을 막았구나.』

『갓을 뒤켜 쓰셨소.』

『압다. 언제 바로 쓸 새 있느냐. 좀 눌러다고.』

하여 그대로 꽉 누르니 갓이 벌컥 뒤집힌다. 겨우 갓을 쓰 고 나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칼집을 쥐고 누니 오줌 맞은 하인들이,

『허 요사이는 하늘이 비를 끓여 내리나보다.』

하고 갈팔질팡하고 구례 현감(求禮縣監)은 말을 거꾸로 타 고 채찍질을 하니 말이 뒤로 달아난다. 황겁하여,

『이 말이 웬 일이냐. 본래 목이 없느냐.』

『거꾸로 타셨소, 내려서 바로 타시오!』

『이애 어느 겨를에 바로 타랴—목을 빼어다가 앞에 박으려 무나.』

하고 성화하니, 여산 부사는 쥐구멍에 상투 박고,

『내 상투 좀 빼어 주려무나.』

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모두 말이 빠져 이가 헛 나가고, 이 모양으로 덤벙이니 차소위 말이 아니다.

이때에야 본관도 적이 정신을 차리어 바지에 똥을 싸가지 고, 겁결에 내당으로 뛰어 들어갈 제 종년이 내다르며,

『큰일 났소. 큰일 났소?』

『왜 또 무슨 큰일 났느냐?』

『대부인 마누라 뒤를 싸고 실내 부인 찌를 싸고 서방님도 소마 싸고 도련님도 밑을 싸고 소인네도 똥을 싸고 왼집안 이 모두 똥 빛이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하니 남원 부사 분부하되,

『여보아라 발 잰 놈 바삐 불러 왕십리 급히 가서 똥 거름 장사 있는 대로 성화같이 착래하라!』

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나 대답하고 나서는 놈은 하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이때에 몽치찬 군관 역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리치 고, 저리 치고 함부로 둘러치니, 장구통도 깨어지고, 무고통 도 깨어지고, 피리젓대는 짓밟혀 부러지고, 해금대는 꺾어지 고, 거문고 가얏고는 바서지고, 양금 줄도 끊어지고, 교자상 도 부러지고 다담상도 깨어지고 준화 꽃은 흩날리고 화기 조각은 산산히 부서지고, 양각등은 으스러지고, 사초롱은 미 어지고, 그만 큰 잔치고 다 깨어져서 동헌이 텅 비었는데 좌수(座首) 이방은 곡격으로 발광하여 덤벙이고 삼방 관속 육방 아전 내외아사(內外衙舍) 위 아래 할 것 없이 쥐구멍으 로, 개구멍으로 굴뚝 구멍으로 황겁하여 달아난다.

어사 또 동헌 대청에 뚜렷이 앉아 삼방 하인 분부하여 대기치(大旗幟) 버려꽂고 숙정패(肅靖牌) 내어 꽂고 좌기(左記) 하니 남원 부사 절인 배추잎이 되어 어사 앞에 읍하고 서서 전전긍긍하고 처분을 기다린다.

어사 위의를 엄숙히 하고 소리를 가다듬어,

『국운은 망극하여 국록지신 되었거든, 성지(聖旨)바자와서 치민선정(治民善政)이 당연하거든, 곡법학민(曲法虐民)하고 준민고혈(晙民膏血)하여 남원 일경 변시 도탄(塗炭)에 오오(傲傲)하니 그래 어심(於心)에 무괴(無愧)하오?』

하니 부사는 고개를 수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죄당만사(罪當萬死)오나 어사또의 관후하신 처분만 기다 리오.』

하고 머리가 허연 것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어사또 변부가가 정경이 가긍하지 아님이 아니나, 봉명 사 신으로 사곡한 정을 둘 수 없어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여 즉 각으로 지경 밖에 내치라고 엄히 분부하였다. 변부사를 파 직하여 지경 밖으로 내치라고 분부한 후에, 삼공형(三公兄) 을 불러 여러 가지 읍폐(邑弊)를 묻고, 도서원(都書阮)을 불 러 전결(田結)을 묻고, 사창빛(社倉色) 불러 곡부를 묻고, 군기빛(軍器色) 불러 군장과 복색을 묻고, 전세빛(田稅色) 불 러 새미난봉(塞米難捧)을 물어, 잘한 놈은 칭찬하고, 못한 놈은 형추일치맹타(刑推一致猛打)하여 단단히 때려 방송하 고, 예방(禮訪) 불러 불효불순 강상죄인을 찾아 일일이 원찬 (遠簒)으로 추론(追論)하고, 형방(刑房)을 불러 살옥(殺獄)을 물어 죄 있는 놈은 곧 처결하고, 애매하게 붙들린 백성이며 무슨 죄 있어 잡아다가 가두고도, 잊어버렸던 것이 이러한 해로 묵은 구수들을 모조리 찾아 내어 즉각으로 방송하라 분부하고 이 모양으로 모든 급한 공사가 얼추 끝난 뒤에 옥 사장을 불러,

『춘향이 대령하되 모든 기생 안동하여 대령하라.』

옥사장이 성화같이 옥으로 달려가서 옥문을 박차고 들어 가,

『춘향아 나오너라!』

하고 소리 소리 외치니 춘향이 혼 없이 옥문으로 나오며,

『아이고 인제는 죽었구나. 몸이 무쇠로 되었기로 또 맞고 야 어이 살리.』

하고 옥문을 나서는 길로 사방을 살펴보나 몽룡은 형적도 없다.

『아이고 어인 일고, 백 번 천 번 부탁하였으니 설마한들 잊었으리. 무정도 하신 님이로다.』

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고 월매가,

『애고 이애 그년석 달아나서 벌써 담양 갔겠다. 저도 염 치가 있는 사람이지 무슨 면목에 네 낯을 대하랴. 집에서 자고 아침 처먹고 슬며시 나간 길로 일향 소식이 없으니, 아조 간 게 분명하다. 반점도 생각마라. 그 년석이 분명 동 냥군이 되었더라. 들겻잠에 이를 갈며 기지게에 잠꼬대로 밥 한 술 먹이시오, 돈 한 푼 좋은 일 하오, 하고 한두 번이 아닐러라. 만일 읍중 사람들이 권자인 줄 알고 양이면 손가 락질 지목하여 춘향이 서방 춘향이 석방할 터이니, 그런 망 신 또있느냐. 그래도 양반의 씨라 체면은 주릴하게 보니 그 래 정녕 달아났다. 앗어라 생각마라. 그년석 뺑소니했다. 접 지를 보아하니 소도적놈이 다 되었더라. 이집 저집 다니다 가 남의 것을 자리내면 그런 우환 또 있으며, 물어 줄 수 밖에 있느냐. 그년석을랑 애이 다시 꿈에도 생각말고, 만일 금일 좌기에 사또 다시 묻거들랑 잔말 말고 허락하면 그 아 니 좋겠느냐. 물라는 쥐나 물지 공연히 수절이나 화절이 니......』

춘향이 울며,

『아이고 그만하오. 듣기 싫소.』

하고 끌려 갈면서 여전히 사방을 돌아보며,

『아이고 이를 어찌하며, 부모 유데도 아끼지 않고, 그 무 서운 형장을 마자 뼉다귀가 부서지면서도, 이를 악물고 그 님 위하여 수절을 하였건만, 전고, 천지, 우주간에 이런 일 도 또 있는가. 서방님 어데로 가고 나 죽는 줄 모르시나. 그 리다가 명천이 감동하여 꿈결같이 간신히 만나 할 말도 다 못하고, 나 죽는 양이나 친히 보고 남의 손 대이지 말고, 감 장이나 하여 달라고 신신 부탁하였더니 끝끝이 내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서방님이 날 속였네. 서방님마저 날 저바리 니 내 일을 어이할꼬—어디를 가 계시오? 서방님, 서방님.』

하고 칼머리를 앞으로 와락 빼치면서 뒤으로 벌떡 주저 앉 아 두 다리를 펴 버리고 대성 통곡한다—

『이제야 참으로 나는 죽네—오늘날에 나는 죽네. 천지일월 성신님네야 오늘날에 나는 죽소. 산천 초목 금수들아, 오늘 날에 나는 죽네—수절하다가 나는 죽네. 내 일생은 오늘 뿐 이요. 오늘이 이 세상에 영결이로구나. 상단아! 마님 모시고 부대 잘 있거라. 살아가다가 서방님 만나거든 내 세세한 말 씀이나 하여다고.』

상단이 춘향의 칼머리를 붙들고,

『아씨 그런 말씀마오—아씨 상사만 남면 쇤네는 살겠소?』

하고 운다.

춘향이 다 붙들려 일어나,

『마누라님들 나 죽은 뒤에 우리 어머니 부대 불쌍히 여겨 주오. 가끔 찾아보고 위로도 하여 주시고 밥 한 술이라도 잡숫도록 권하여 주오. 그리하시면 내가 죽은 혼이라도 마 누라님네 수복강녕하시고 후세에는 서왕 세계 극락 세계 가 시게 발원하오리다.』

하고 몇 걸음 가다가는 또 혼절하여 칼머리를 안고 거헌 뜰에 놓으니 그래도 춘향은 깨어나지 못한다.

몽룡은 곧 뛰어 내려와 춘향을 드립다 안고 울고 싶건마는 체면에 그리도 못하고,

『아까 놀음 노든 기생 다 잡아다가 춘향의 쓴 칼을 저의 이로 물어 뜯어 즉각내로 벗기게하라.

하고 분부하니 뭇기생은 어인 영문을 모르고 분부를 거역 하지 못하여 달려들어 젊은 년은 이로 뜯고, 늙은 년을 혀 로 핥아 침만 바른다.』

어사또 보고,

『조년은 어찌하여 뜯는것이 없나니?』

하고 호령하니 늙은 기생이 황공하여 부복하며,

『예 소인은 이가 없어 침만 발라 주면 불어서 젊은것들이 뜯기가 쉽사이다.』

하고 아뢴다.

뭇기생이 가만히 보니 춘향의 맘을 좀 사두어야 할 모양이 아, 어떤 약은 년은 춘향의 귀에다가 소근소근,

『춘향야 내 거번에 산삼 넣고 속미음하여 보냈더니 먹었 느냐?』

하기도 하고, 어떤 년은,

『이애 일전에 실백잣죽 쑤어 보낸 것 먹었니?』

하기고 하고, 또 한 년은,

『수일전에 편강 한 봉 보냈더니 받었니?』

하기도 하고 다투어 용공을 하니 마치 모이 주어먹는 병아 리떼 소리와 같다.

어사또 어성을 높여,

『요 요괴스러운 년들아. 무슨 잔말을 그리 하느냐? 칼 바 삐 벗기라—.』

하고 호령이 추상같다.

기생들이 겁을 내어 죽기를 기쓰고 아드득 아드득 춘향의 칼을 뜯으니, 마치 뭇개들이 뼈를 뜯는 것 같다. 이빠리도 빠지는 년, 입시울도 터지는 년, 볼따귀도 뚫어지는 년, 턱 아래로 버서진 년—쥐 뜯듯하여 죽을 힘을 다 들여서 간신히 칼을 버겨 놓았으나, 춘향은 아직도 기절하여 피어나지를 못한다.

어사또 의원을 명하여 곧 약을 지으라 하니, 김 주부, 이 주부 서로 의론하여 두루마리 펼쳐들고 붓대춤 추어가며, 생맥산(生脈散), 회생산(回生散), 패독산(敗毒散) 겁결에 함 부로 약명을 내어, 발 잰놈 시켜 지어다가 바삐 다려 먹이 니 춘향이 「휘휴」길게 한숨 쉬고 눈이 번히 뜨여 냉수를 찾는다. 기생들이 저마다 뛰어가서 냉수를 떠다가 춘향을 먹이려다가 못 먹인 년은 열없어 돌아서서 제가 그 물을 먹 어 버린다.

춘향이 회생하는 것을 보고 몽룡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정신이 쇄락하여지고 맘이 상쾌하여지니 즉각에 뛰어내려가 붙들고 싶으나 한 번 더 꾹 참고 음성을 변하여,

『여보아라, 춘향아!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들으니 요 마 창기년이 수절을 한다 하니 사심 해고로다. 네 본관의 분부는 아니 들었거니와 내 분부도 시행 못하겠느냐. 이제 를 방석(放釋)하여 수정을 정하는 것이니 바삐 나가 소세하 고 이제 올라 수청하라.』

이 말에 춘향이 땅에 고꾸라지며,

『아이고 이 말이 웬 말이요? 더러운 소리를 또 들었네.

조악돌은 면하였더니 수만석을 만났고나! 우리 나라 국록지 신은 모두 이러하오? 봉명 사신 어사또는 수절하는 춘향이 의 애매한 죄를 밝혀 주지 못할 망정 이런 분부 또 하시오!

나를 죽이시오! 매로나 칼로나 죽다 남은 이 내 몸을 맘대 로 죽이시오. 죽이시오. 철석 같은 이 내맘은 변할 리 만무 하니 어서어서 죽이시오!』 하고 방성 통곡한다.

춘향이 이렇게 악을 쓰고 우니 몽룡이 서안을 치고 대소하 며,

『열녀로다. 열녀로다. 춘향의 굳은 절개는 천고에 무쌍이 요, 하늘에 닿은 의기는 고금에 너뿐이로다.』

하고, 이별할 때에 춘향에게 받은 옥지환을 내어 행숭기생 을 불러,

『이것 갖다 춘향이 주라.』

행수기생이 지환을 가져다가 춘향의 앞에 놓으니, 춘향이 정신없이 지환인 줄은 알았으나 낭군 이별시에 선물로 준 것인 줄을 채 모르고 우드머니 보고만 앉았다.

몽룡이 그런 줄 알고,

『그 지환을 모르느냐—네 지환을 네가 모르느냐?』

그제야 춘향이 눈물을 씻고 자세히 보니, 과연 삼년 전에 이도령 이별할 때에 선물로 준 지환일시 분명하다.

일변 놀라고 일변 반가와,

『이것이 웬 일인가.』

하고 지환을 집어든다.

몽룡이 갑갑하여 본시 음성으로,

『눈을 들어 나를 보라.』

그 음서이 귀에 익구나, 그 음성이 귀에 익다, 정녕 님의 음성이로다, 하고 눈을 들어 치어다보니 철관풍채(鐵冠風采) 수의어사(繡衣御史) 미망랑군(未忘郞君)이 정녕하다. 천근같 이 무겁던 몸이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할 듯하여 한 번 뛰 어 올라가 몽룡에게 매어달려 몸을 비비 꼬고 한참이나 말 이 없다가,

『꿈이오? 생시오? 내가 죽어 혼이오니까.』

하고는 더 말이 없이 울고 쓸어진다.

몽룡이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기특하다—갸륵하다.』

하고는 못내 반겨하고 칭찬한다.

이때에 월매는 차마 내 딸의 맞아죽는 것을 어찌 보랴 하 여 집에 돌아가 혼자 울고 있다가 춘향이 어사또 수청들게 되었단 말을 듣고,

『애고 내 딸이야. 내 딸 착하다. 기특하다. 어사 사위는 참말 뜻 밖이다.』

하고 뒤어 들어오며,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사위가 좋을시고. 엄동 설한 춥더니만 봄될 날이 또 있고나. 즐거움을 못 이기니 어깨춤 이 절로 난다. 강동에「범」이더니 길나라비가 훨훨, 소주 한 잔 먹었더니 곤대짓이 절로 난다. 탁주 한잔 먹었더니 엉덩춤이 절로난다.』

하고 삼문에 다다라 문에 있는 관속들을 보고,

『발가락을 모조리 뺄 놈들 같으니, 한서부터 주리를 할라 삼방관속 다 나오소. 그네들 생심이나 내돈치고 아니 줄까.

고치려 하여도 손이 쉽고 속이려 하여도 잠깐이다.』

하고 행악을 하니 관속들이 절을 하며,

『아주머니. 요사이 안녕하압시오?』

『이 사람들 요사이 둔보는 사람들이 그리 수들 센가 그리 들 마소—그렇지 아니하니.』

『없소. 망녕입시오. 그럴 리가 있삽니까? 』

한 관노 반가이 마주 나와,

『여보 자치신네 이애 일은 그런 기쁜 일이 없오.』

월매 보니 그 관노는 밉지 아니하던 사람이라, 좋아라고 걸음을 멈추고,

『아 사람 이제야 말이지 어제 이 도령인가 이 서방인가 한 작자가 우리 집에를 찾아왔는데 주제 꼴을 보니, 곧 순 전 거지어든 우리 아기는 그래도 든 정이 나지 못하여 차마 박대를 하지 못하여서 날더러 그것을 집에 다려다 두고, 먹 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키라고 하데마는 그것이 공부를 하 면 어사나 될 터인가 감사나 될 터인가. 꼴이 집에 두어야 남이 우일 듯하기에 곧 그날로 따세었더니, 저도 염치가 없 었든지 그길로 달아나고 말지 않았겠나. 그래 아침에 아기 더러 이 말을 하고, 다시 생각말라고 다시 사또가 묻거든 두말 말고 방수들라 하였더니 저도 그 년석이 꼴보기 어이 없이 샐죽했든 게야. 그리 하였으니 고것이 내 말대로 어사 수청하락하였다하니 참 우리 딸 상냥하지......말이야 바로 만 일 본관수청 안 들었드면 오고랑이가 또 되었을 것을 요런 깨판이 또 있나? 이제야 이 서방 년석이 또 온다 한들 이런 소문 듣게 되면 무슨 낯에 말을 하겠나. 이제는 기탄없 지......애고 그런 흉한 놈을 이제는 아조 배송이다. 좋을 좋 을 좋을시고......』

아전 하나가 나오다가 듣고,

『쉬!』

『쉬라니? 누구더러 쉬래?』

『어사또가 전등 책방 도련님이라오. 철도 모르고.』

월매 깜짝 놀라다가 다시 웃으며,

『에이 누구를 속일 양으로 그놈이 어사가 되어?』

『아니 아니 아니오. 천만 의외에 말씀이요. 서울놈이 음흉 하여 가어사로 다니나 보오.』

이 모양으로 아전의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우쭐우쭐 춤 을 추며 동헌으로 들어가서 어사를 치어다보니 이제 왔던 네로구나. 마른 하늘에 된벼락이 어디로서 내려온고. 월매 기가 막혀 벙벙하고 섰다가 그만 펄쩍 주저 앉아 아무 소리 도 못한다. 몽룡이 월매를 내려다 보고,

『이 사람! 요사이도 집팔기 잘하는가.』

하니 월매 열없이 웃고,

『이제야 그 말씀이지 어사또 일을 벌써 그때 알았지요.

그럼 하기에 도로마 한 필 해남포 한 필 급히 바꾸어다가 사또 옷 지으랴고 빨리 보냈겠오. 지더라 물어보오. 모녀지 간이언마는 그때 그 말을 일언반사나 하였는가. 내 집에 주 무시면 혹시 누가 눈치나 알까 해서 아조 딱지손이 한 것이 지 뉘가 몰랐다구요. 나를 눌만 여기오—순라골 까마중이요.

겉은 퍼래도 속은 다 익었다오.』

하고 빤빤스럽게 대답을 한다.

몽룡이 기가 막혀,

『이 사람 얼굴 들고 말하소.』

월매 얼굴을 숙이며,

『애고 얼굴에 쥐가 나지요......그렇지만 아무리 사또시기로 장모를 어찌할라오?』

하니 춘향이 아까부터 딱하여,

『여보 그만두오.』

『그만둘까, 그러하지.』

하고 탈것 마련하여 춘향과 월매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 자리로 남원부사 봉고파출한 연유로 감영에 즉일로 보장 띄 우고 본관의 미결공사 거울같이 처결하여 버리고, 이방불러,

『내외고사(內外庫舍) 재물들이 모두다 탐장(貪臧)이니 동 헌에 있는 것은 민고(民庫)로 집장(執臧)하고 내아(內衙)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논매하여 금일내로 관랍하라.』

분부하고 모든 공사 끝이 나니 벌써 황혼이 되었다. 몽룡 이 사초롱에 붙들리고 예전 가던 길을 걸어 춘향의 집 찾아 가니, 왼 집안 구석구석이 촛불이 휘황하고, 월매는 손수 어 사또의 저녁 진지상을 차리노라고 분주하다.

그날 밤을 춘향을 위로하며 지내고 이튿날 미명에 춘향의 손을 잡고,

『나는 봉명 사신 몸이 되어 일각을 지체할 수 없어 이제 떠나 감영으로 가거니와 만사는 이방에게 분부하여 두었으 니, 너는 며칠 조리하여 어머니 모시고 서울로 치행하라. 그 러면 서울서 반가이 만나리라.』

하고 떠나니 춘향이 일변 기쁘고 일변 비감하여,

『또 이별이오?』

하고 웃는다.

이로부터 전라도 오십칠관 좌우에도 모든것을 다 돌아서 승일상래(乘馹上來)로 입경하여 답전(踏前)에 복명(復命)하니 성상이 반기며, 귀히 여겨 손을 잡으시고, 원로 행역을 위로 하시며 민정을 물으신다. 몽룡이 경력문서(經歷文書)와 행중 일기(行中日記)를 받들어 드리오니 용안이 대열하사 칭찬을 마지 아니하시고 동벽응교(東壁應敎)를 제수하사,

『나가 쉬라.』

하시는 하교를 듣고 몽룡이 땅에 엎디어 춘향의 정절을 주 달하니, 성상이 들으시고,

『그 정절 지귀하다.』

하시고 곧 이조(吏曹)에 하시하사 정렬부인(貞烈婦人)이 직 첩을 내리시었다. 이런 영광이 또 있는가.

몽룡이 사은퇴조(謝恩退朝) 하여 북당(北堂)에 현알하고 사 당에 허배한 후에 부모전에 면품하여 춘향의 일을 여짜오 니, 부모도 기특히 여겨 곧 대연을 배설하고, 종족이 모이어 남원 집을 부인으로 승좌하여 백년 해로하고, 벼슬은 육경 상공을 다 지나고, 아들이 삼형제요, 내외손이 번성하니, 이 런 기사가 또 있는가. 이때부터 팔도 광대들이 춘향의 정절 을 노래지어 수백년 래로 불러오더니 후세에 춘향의 동포 중에 춘원이라는 사람이 이 노래를 몰아서 만고열녀 춘향의 사적을 적은 것이 이 책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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