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을 나와서/7장
송이가 앓는다는구려!
그런 말이리라고는 짐작은 하였으나 듣고 나니 정신이 아 득하여진다.
어느 아이라고 어머니 된 마음에 덜 귀애하였으랴만 그런 중에도 유난스레 어머니를 따랐던 아이가 송이다.
집을 나온 뒤로 제일 보채면서 어머니를 찾는다는 송이다.
그러던 아이가 앓아누웠으니 오죽이나 없는 어머니를 찾으 면서 보챌까.
어떻게 앓는답디까?
노라는 목멘 소리로 겨우 물었다.
홍역이래…… 어제 이 앞에서 현을 만났는데 아이들 잘 노 느냐고 물으니까 송이놈이 홍역으로 앓는다구 그리드구 만……
노라는 방금 자기자신이 홍역하는 아이가 앓듯이 열이 나 고 목안이 타고 하는 것 같았다.
입술이 새까맣게 타고 몸이 불덩이같이 더워 정신을 못 차 리고 꽁꽁 힘들게 앓아누웠을 송이가 눈앞에 삼삼 밟혔다.
약시중은 누가 해주나? 어머니가 아니면 약도 먹지 아니하 는 아인데……
밤에는 누가 병간을 해주나? 유모나 하인들이 무슨 그리 탐탁하게 밤을 새워가며 그 옆에 지켜앉았을 리가 없고, 저 의 아버지란 사람은 한번 잠이 들면 옆에서 불침을 놓아도 모르고 자는 사람……
그것이 그러다가 죽기나 하면 어떻게 하나? 홍역이란 잘못 하면 죽는 법인데……
언제부터 앓는다구?
어저께 말이 그저께라구 했으니까 나흘째 되나?
그러면 마리아를 만나던 바로 그 이튿날이나 그그 이튿날 이다.
지금쯤이 한창 심한 때다. 마리아는 연전에 앓고 났으니까 관계치 아니하겠지만 끝에아이 안나에게는 전염이 될지도 모른다.
노라는 안절부절 어찌할 줄을 몰랐다.
대번 선걸음에 계동으로 뛰어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꿀안 같으나 남편과 얼굴을 대할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나지를 아 니하였다.
어떻게 해?
혜경이가 걱정을 한다.
어떻게 해?
노라도 이 말밖에는 아니하였다.
혜경이가 좀 갔다와 주.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노라가 청을 하였다.
글세 내가 갔다오기야 어렵잖지만 내가 간들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두 증세가 어떤가 알기라도 하면.....
그럼 내가 다녀오지.
혜경이는 나들이 옷을 갈아 입고 나섰다.
혹 현이 내 말을 묻거든 저기 필운동 이야기는 하지 말우.
응…… 그렇지만 아모때 알어두 알걸……
그래두……
노라는 혜경이를 보내놓고 그가 돌아오기까지 한 사십 분 동안이나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기나긴 봄날의 오후가 다 가는 듯이 오랜 듯만 하였다.
겨우겨우 돌아오는 혜경이의 얼굴을 보고 노라는 말도 듣 기 전에 낙심을 하였다.
어떻지?
대단해.
어떻게?
몸이 불뎅이 같구 입술이 새까맣게 타서…… 성할 때는 그 렇게 팔팔하든 아이가 꼼짝 아니하고 눈을 딱 감고 누웠겠 지……
곁에는 누가 있구?
간호부가 있드구먼.
저이 아버지는?
없어.
노라는 현을 무정한 애비라고 원망하고 생각하니 자기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꽃은 돋았구?
응. 지금 한창……곱게 돋드구먼.
안나는?
그애는 참 저의 아버지가 어느 친구 집에다 데려다 두었다 구…… 그런데 글쎄 내가 옆에 가 앉으면서 아가, 송아 하 고 부르니까 꼼짝 아니하고 누웠든 아이가 엄마 부르고 눈 을 번쩍 뜨겠지…… 그러더니 나를 보고는 어린깐에도 낙심 이 되는지 눈을 도루 스르르 감어바리는구려.
노라는 그만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혜경이는 깜짝 놀라 노라의 뒤를 쫓아나와 보았다.
노라는 눈물을 거덤거덤 씻으면서 안동 네거리를 가로질러 계동편으로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발길을 멈추고 혹은 일부러 돌 아서서 이 눈물을 짜며 큰 길거리로 지나가는 신식 여인을 바라다보나 노라는 그런 것은 주의에 들어오지 아니하는 듯 싶었다.
혜경이는 회심(會心)의 웃음을 띠고 남편이 있는 가가 앞으 로 갔다.
구가는 판 물건을 장부에 기입하고 있다가 혜경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 듯이 웃고 섰는 것ㅇ늘 보고 마주 웃는다.
무어야?
일이 묘하게 잘될 듯싶은데…… 이리 나와 저것 좀 봐요.
그가는 구두를 끌고 가가 앞으로 나와 혜경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어야?
저어기 휩쓸고 길 한가운데로 가는 여자가 있잖수?
응…… 거 노라 아니우?
그렇다우.
어데를 가는 거야?
혜경이가 웃는다.
어디 갈 듯 싶소?
글쎄……계동 가나?
응.
왜?
구가는 의아한다. 그렇게도 고집을 부리던 노라가 저렇게 허둥지둥……막말로 하면 미친 사람같이 큰길 가운데로 휩 쓸면서 현의 집으로 뜅간 다는 것은 미덥지 못한 말이었던 것이다.
왜라니! 일이 잘 되었지.
혜경이는 핀잔을 준다. 노라는 그새 사람들 틈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아니한다.
그러면 아주 가나?
아주 가기 쉬울걸……
어째서?
생발광을 해요…… 그래 나더러 가보고 와달라길래 가보았 더니딴은 몹시 알아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지금 저러구 가 는 거라우.
흥.
구가는 코웃음을 하고 돌아섰다.
왜 흥 허우?
아니, 일이 잘 되는게 싫지야 않지만 어린애 하나쯤 앓는 다고 저렇게 날뛸 테면 애초에 왜 나와요?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여자라고 밤낮 그렇게 남편 의 종으로 살란 말인가?
흥, 그러니까…… 자유 해방을 했으니까 저 꼴이로구만! 왜 남편 마다하고 자식들 버리구 한 달에 돈 사십원에 목을 매 여 살면서 그리 허둥지둥해!…… 하필 노라한테만 하는 말 이 아니지만 요즘 여편네들이란 뱃속에 식자나 들어가면 건 방져서 못써……정말 그 사건에 내가 다소간 양심에 부끄런 일이 있으니까 미안한 생각이 없진 아니하지만 좀 마땅치 못해……
괜히 당신은 남의 알을 가지고 열이 나서 그러는구려! 노 라가 그래 불쌍하지도 않수?
불쌍하기야 하지…… 그렇지만 당신도 자식이나 한 서너 개 나놓구는 저 꼴을 할 테요?
구가는 심술궂게 입을 비죽거린다.
그때 가서 봐야지.
혜경이도 웃었다.여편네란 소견이 없어서 그래…… 억만 년 가야 주름잡은 옷을 못 면할걸……
구가는 또 독설을 부리려고 힌다.
남이 걱정 그만 해두구 들어가서 점심이나 잡수.
혜경이는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당신은 먹었수?
아니…… 먼점 잡수.
먼저먹지.
먼점 잡수어요. 난 그새 가가 보께.
부부는 웃으면서 안팎으로 헤어졌다.
혜경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노라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증이 나서 안절부절하였다.
급한 마음 같아서는 계동으로 찾아가서 보고도 싶었으나 그리할 수는 없었다.
겨우겨우 서너 시간쯤 지난 뒤에 더 기다릴 수 없어 소격 동 집으로 올라갔다.
발자취 소리를 숨겨 중문밖에서 엿들으니까 조용하고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우선 안심을 하고 중문을 밀치고 들어섰 다.
이날은 공교로이 기분이 좋이 못하던 차라 그것이 노라에 게 적지 않이 격동을 준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왔는지 모르게 열에 뜬 사람처럼 정신이 없이 계동집에 다다랐다.
문 앞에 인력거 한 채가 놓인 것도 알지 못하였다.
지쳐둔 대문을 밀어젖히고 안마등으로 들어서니 집에 잇지 아니한 줄 알았던 현이 의외에 대뜰에 서서 있다. 방급 들 어왔는지 모자도 벗지 아니하고 서서 아까 혜경이가 보았다 던 간호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라는 무춤하고 발을 멈추었다.
현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뻐하는 빛이 숨길 수 없이 나타 났다. 그러나 엄숙한 태도는 고치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유모가 맨 처음 노라를 보고 버선발로 뛰어내려 온 다.
아씨!
식모와 어멈도 모두 뛰어나와 노라를 둘러싼다.
노라는 반가와하는 그들에게 별로 말도 아니하고 다만 유 모더러 송이아기 어데 있나?
하고 물었다.
안방에요.
노라는 현에게 싸늘한 외면을 하고 마루로 올라가 안방 미 닫이를 사르르 열었다. 덩 s 기운이 후끈 얼굴을 스친다.
송이는 혜경이가 말한 대로 눈을 딱 감고 누워 이싼. 노라 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잠을 자나 하고 숨소리를 들어보았 다. 자지는 아니하였다.
아가, 송아.
부르는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송이는 눈을 번쩍 떴다.
엄마.
한마디 부르고 그는 힘없는 팔을 들려 한다. 안기자는 뜻 이다.
노라는 송이를 안았다. 빠공히 뜬 눈으로 기쁜 듯이 그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몸이 성할 때 같으면 별 새살을 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만 눈 하나로 반가운 인사를 할 뿐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잠시 그는 어머니를 보고 있더니 그것도 괴로운 듯이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안심하고 마음을 놓은 듯 하다.
노라는 비로소 방안에 인기척이 있는 것을 알고 고개를 들 었다.
유모와 간호부가 윗목으로 비껴서서 있는 것이다.
유모는 그동안 어린아이들을 맡은 책임이 있는지라 자기의 잘못으로 아이가 병이 난 줄로 아는지 근심스런 얼굴로 꾸 지람을 기다리고 있다.
먹이기는 무얼 먹이나?
노라는 부드럽게 유모더러 물었다.
미음을 쑤기는 하지만 아기가 통히 먹질 아니해유.
노라는 송이를 굽어다 보았다. 송이는 또 눈을 떠서 어머 니를 바라보다가 역시 안심한 듯이 눈을 감는다.
먹잖는 것을 괜찮다고 선생님이 그리세요.
간호부가 비로소 말을 거든다.
어느 선생님이 보시는데요?
중제병원 오선생님이세요.
중제병원의 오씨라면 소아과의 권위다. 그것만은 노라도 한마음 놓이는 듯 하였다.
과히 걱정 마세요. 선생님도 경과가 아주 좋다구 그러시니 깐…… 이대로만 가면 한 삼사일만 지나면 열도 내리구 별 일 없으리라구 그리세요.
노라는 혜경이에게서 듣던 때와는 마음이 많이 놓였다. 그 는 실살 송이가 앓는다는 말에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보다도 엄마부르며 눈을 떴다가 실망하더란 그 말에 그 만 격동을 받았었던 것이다.
수고 많이 하셨소.노라는 간호부에게 치하를 하였다. 미상 불 눈에 아니 보이는 의사보다도 간호부가 송이의 병을 낫 우어 주는 성만 싶었던 것이다.
아이구 원! 제야 무슨……
송이는 잠을 삭삭 잔다. 잠이 깨지 아니하게 조용히 자리 에 내려 뉘고 다시 한번 얼굴을 굽어다 보았다.
밖에서는 현이 무어라고 연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 성이 나서 떠드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괴로운 병중이라도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만나 맘을 놓고 자는 어린 아들의 얼굴이다. 노라는 안심을 하고 자는 그 얼굴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는 차라리 참고 오지 아니하였더면 하는 후회도 하였으 나 그래도 오기는 잘 왔구나 싶어 마음이 흡족하였다.
그는 일어서서 비로소 방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전에 자기가 있을 때 그대로 되어 있지는 아니 하나 그래도 포근히 안아주는 듯한 그리운 방이다.
그는 그대로 펄썩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버티어 오던 고집도 남편에게 대하여 굽히게 될 자존심도 아무것도 다 내던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도 싶은 것이 다.
남편과의 사이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형식으로만 부부로 한 가정에서 생활을 해가고 내용으로는 부부라는 것을 해소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고 자유도 인격도 다 내던지고 세 어린아이의 착한 어 머니로 모든 것을 꿀꺽 참고 지내가면 그만이다. 내 한몸이 야 아무런들 어떠냐. 어린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잘되면 그만 이지.
마리아는 유치원에서 아니 왔나?
마리아가 아니 보이는 것이 궁금하여 유모에게 물었다.
네. 아직 아니 왔어요…… 오늘은 유난히 늦습니다.
안나는 어디 다른 댁에 데려다 두었다구?
네…… 나리님이……
어떻게 할까? 하고 혼자 생각하면서 노라는 무의식중에 마 루로 나왔다.
보금자리의 새끼들에게 정은 있으면서 노라는 벌써 수풀에 길든 새다.
노라가 아주 돌아온 줄만 알고 내심에 기뻐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던 현은 그가 핸드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자 얼굴 이 대번 퍼렇게 질리고 사납게 노라를 노려본다. 현은 노라 가 집을 나간것도 분하거니와 그렇게 알른알른 눈앞에 나타 나는 것은 자기를 우롱하는 것 같아 더욱 심정이 상한 것이 다. 현의 뇌골스러운 눈을 본 노라는 고요히 망설이던 생각 이 벌컥 뒤집히어 쿵쿵 걸어나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 려섰다.
여보.
현이 터질듯한 소리를 버럭 지른다.
노라는 침착하게 돌아서서 고개를 쳐들고 현을 마주 바라 보았다.
왜 그러세요?
현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앞니를 물었다 놓았다 하며 말 이 없이 한참두고 노라를 노려본다.
하인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모두 구석에 숨어 서서 장차에 일어나려는 폭풍우를 근심스레 기다린다.
왜 왔어?
여전하심니다 그려!…… 어린애가 앓는다고 해서 보러 왔 어요…… 어느 년이 치사스럽게 도루 기어들어온 줄 알었읍 디까?
노라의 이 싸늘한 태도와 말에 현도 자기 혼자 흥분하는 것이 불리한 줄 깨달았던지 태도를 고치었다.
흥. 이집은 뉘 집이고 자식은 뉘 자식인데?
집은 당신 집이지만 자식은 나도 만나볼 권리가 있어요.
어미니깐.
어미!!…… 그래도 어미노릇은 못하면서 권리는 찾는구나!
뻔뻔스럽게시리…… 무슨 낯으로 어미랍시고 자식들을 대 해?
이 말은 노라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지고 싶지 아 니하였다.
암만 그래도 당신 혼자 자식은 아니예요. 나도 데려가 기 를 테예요. 재판을 해서라두……
인제는 뒤바뀌어 노라가 흥분이 되고 현이 도리어 조롱하 는 태도다.
허허허허…… 마님! 법률을 얼마나 그동안 연구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교 나간 마님께 자식 을 찾어 드릴 법률은 아직 생기지 아니했습니다. 네.
노라는 더 말을 아니하려고 홱 돌아서는데 안방에서 송이 가 엄마를 부른다. 그는 떼어놓으려던 발길을 멈칫하였다.
노라가 소격동 집으로 돌아온 것은 혜경이가 옥순이와 한 참 오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판이었었다.
혜경이는 노라가 돌아온 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었다. 옥순 이도 혜경이에게 노라가 어찌하면 도로 들어가서 살게 되리 라는 말을 듣고 있던 끝이라 일변 안되었기도 하면서 그러 나 일변 반갑기도 하였다. 이 넓은 서울바닥에서 다만 한 사람 힘입고 있는 노라가 옛남편을 찾아 들어간다면 자기는 어찌하랴 싶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던 것이다.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무 말이 없이 한동안 앉 았다가 옥순이가 일어섰다.
언니, 점심 잡수셔야지.
먹구 싶잖어.
노라는 넋이 나간 듯이 바람벽만 바라보다가 혜경이에게 하소연을 내놓는다.
세상에 자식이 애비도 애비려니와 어미 없는 자식이 있수?
아모리 어미와 아비는 서로 남이 되었기로서니 자식이 둘이 나 셋이 있으면 그중에 하나는 어미가 데려와야 할 게 아니 요?
데려와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애들로 보면 저의 아버지한테 있는 게 낫겠지…… 또 노라도 모아둔 재산이 없겠다 데려 다가 어떡할려구 그리우?
그렇지만 억울허잖수?
무엇이?
혜경이는 노라가 계동집에 갔다가 현과 충돌된 것을 모르 는 때문에 그의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글세 현이 네게는 권리가 없다구 딱딱 얼러대는 구려! 그 래 하두 분해서 진고개 어떤 변호사를 찾어가서 재판을 할 수가 없느냐구……
노라가 말을 맺기도 전에 혜경이는 실소를 한다.
노라도 흥분이 많이 가라앉은 다음이다. 변호사를 찾아가 고 재판할 궁리를 하고 한 것이 딴은 우스워서 혜경이를 따 라 웃었다.
그렇지만 그래 그런 놈의 법률이 어데 있수?
글세 욕심 같애서는 셋이라도 다 뺏어왔으면 좋겠지만, 하 나라도 데리고 있으면 괴로워요…… 기왕 이렇게 된 바이거 든 다 단념을 허구려!
단념이야 했지만 잊혀지잖는 걸 어떡허우? 아모 소식도 아 니 들리는데 가서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만 애비 없는 자식을 홀어미 혼자서 데리고 기르기 는 못할 노릇이야.
혜경이는 전남편에게서 생겼던 어린아이를 혼자 어렵사리 기르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도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한편 으로는 죽지 아니하였더라면 하는 그리운 생각도 들었다.
이 안집은……
하고 혜경의 말을 받아 옥순이가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맨데 스물다섯에 혼자 되었대요.
주인이 과부가?
혜경이가 묻는다.
예.
지금 며 살인데?
스물여덟이라든지……
가엾어라…… 문패에 한성희라고 붙은 게 그인 게로구먼?
예. 한씨래요.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알었나?
노라가 웃으면서 묻는다.
아까 그 집 식모가 와서요, 와서 앉어서 종알종알 이야기 를 하드만요.
그래도 재산이 좀 있는 게지…… 이런 집이나마 한 채 지 니고 사는것이……
없대요. 아모것도…… 시방 살어가기는 남편이 살었을 때 다니던 데서 불쌍하다고 한 달에 돈 십 원씨구 준다느만요.
그것하고 또 똘아랫방에다 학생 둘을 쳐서 겨우 살어가는데 늘 살림이 물린대요. 그래서 이 채도 띄여서 전세를 놓았다 는데……
노인도 하나 있지?
친정 어머니랍니다. 일가 친척이라구는 그 친정어머니하고 시골 있는 오라버니 하나뿐이래요.
차림새가 신여성이지?
학교공부를 많이 했대요.
네 과부가 한 울안에 잘도 모였다!
노라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소를 하였다. 혜경이도 따라 웃는다.
나도 서방을 아니 얻었으면 와서 한몫 끼일 걸 그랬지!
참 옥순이는 그 집에 한번 찾어가 보지?
그집이라는 것은 옥순이 남편 재환이가 새장가를 들어가지 고 사는 집 말이다. 옥순이는 시골 있을 때에 이혼해 달라 는 편지를 몇 차례 받았기 때문에 그 집의 동명과 번지를 외우고 있었다.
이 집에 들던 날 혜경이도 있는데 우연히 그러한 이야기가 났었던 것이다.
한번 찾아가 보시우 그려……
혜경이는 노라의 농삼아 한 말과는 달리 정말고 권고를 한 다.
내가 미쳤던가! 멋허러 찾어가요?
원 참! 나 같으면 아주 척 버티고 가겠소…… 암만 저이끼 리 좋아 지내고 이편은 소박을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큰마 누라가 아니요? 그 색시는 첩이고…… 그러니깐 척 가서 아 랫목에 버티고 앉어서 내가 정실부인이다. 여보게, 나리 진 지상 올리게. 숭늉 잡사 올리게!하고 한번 뽐내봐요.
세 여자는 모두 웃었다. 농을 하고 웃기는 하나 노라나 혜 경이는 생각에 한번 그래보았으면 그 사내의 쩔쩔매는 꼴이 나 그 색시가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색색하는 꼴이 고소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노라와 혜경이는 제가끔 옥순이를 추켜가지고 한 번 찾아가서 그들이 옥순이를 보고 어찌하는가 구경이라도 하려고 각기 마음을 먹었다.
그 뒤 노라는 매일 필운동서 돌아오는 길이면 혜경이 집을 들렀다. 혜경이는 오전중에 계동을 가서 송이의 병세를 보 고는 노라에게 전하여 주곤 하였다. 그리한 지 한 사오 일 후에는 열도 내리고 거진 병줄을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 라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동안에 ■■■■회사와 한가지로 ■■■을 건너온 신식(新 式) 봄이 제철을 당하여 사구라가 만발하였다.
옛 궁터가 전등 불빛에서 연지칠을 하였다. --- 창경원에 야앵이 시작된 것이다.
사구라가 피어야 비로소 봄이요, 그놈이 지면 봄도 가는 것이 요즘의 조선의 봄이다. 이 짧은 일 주일 동안을 놓치 지 아니하려고 서울 사람들은 자는 아이까지 깨워 업고 밤 의 창경원으로 모여든다.
송이의 병이 아주 안심하게 되었다는 날 밤 혜경이가 찾아 와서 노라와 옥순이를 꾀어 야앵 구경을 나섰다.
소격동서부터 벌써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낙네들이 아이 들을 업고 걸리고 한 패씩 비어져 나온다.
안국동 네거리까지 오니 그 넓은 길이 뻑뻑하다. 종묘의 허리를 잘라 새로 낸 이 넓은 길의 고마움이 비로소 나타나 는 성싶다.
체격이 장히 아름답지 못한 뻐스가 비틀거리고 지나는마다 밤이건만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 먼지가 채 가라앉 기도 전에 좀도적같이 기어 달아나는 택시가 또 한바탕 새 로 먼지를 일궈놓는다.
노라는 자동차의 먼지가 싫기도 하였지만 작년에 남편과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자동차를 몰아 야앵 구경을 오던 일 을 문득 생각하고 고집으로라도 없는 주머니나마 털어 한 대 불러 탔더면 싶었다.
창경원 문앞에 채 가기도 전에 길이 빽빽이 막힌다.
문앞에 수없이 뻗치어 모인 사람들은 무슨 큰 사건이나 겪 는 것같이 긴장이 되어가지고 입입이 아우성을 치고 웅얼거 리고 하며 바빠한다.
표를 사기는 힘이 들었다. 밀치고 닥치고 하는 속에 끼어 표 석 장을 쥐고 나오는 혜경이의 저고리는 땀이 등 위로 배어올랐다.
세 여자는 다시 사람 틈에 밀리어 겨우 문 안으로 들어섰 다.
문 안은 그냥 그저 훤하다. 그리고 사람들도 바깥의 살기 스럽고 바쁜것과는 딴판으로 모두들 언제 내가 그랬냐는 듯 이 유유하고 점잖게 보인다.
매초롬하게 양복으로 차린 사람들이 몇씩 정문 다리 근처 에 모여서서 구경은 젖혀놓고 들어오는 여자들의 얼굴 구경 을 한다.
노라와 혜경이는 해마다 보는 것이지만 처음 보는 옥순이 는 입이 떡 벌어진다.
왼편으로 세 여자가 나란히 서서 몇 걸음 채 가지 못하였 을 때에 옥순이는 질겁하게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뜻 아니한 사람을 만난 때문이다.
옥순이가 그렇게 놀라는 것을 노라와 혜경이는 알지 못하 였다 옥순이도 그들이 모른 것을 다행히 여기어 그대로 시치미 를 떼고 다시 걸어갔다.
꽃이 많이 피었다 불이 있어서 은근하면서도 더 환하여 보인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이것뿐이다. 그밖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노라는 동물을 가두어 둔 옆을 지나면서 옥순이에게 설명 을 하여주었으나 보이지 아니하는 밤이라 싱거웠다.
그는 옥순이를 진즉 낮에 한번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미 안하였다.
그러나 옥순이는 따로이 가슴이 두근거려 그런 것에는 정 신이 잘 가지지 아니하고 그저 건성으로 대답만 하였다 멀쑥멀쑥한 사내들이 지나칠 때마다 세 여자 일행에게 곁 눈질하기를 잊지 아니한다.
우리가 구경을 왔지?
갑자기 혜경이가 이런 말을 내놓는다 그럼……
구경을 하러온 것보담 구경을 시키러 온 것 같애.
내 구경도 시키고 남의 구경도 허구 그렇지 머.
그래…… 밑질 건 없지만.
사실 꽃구경이라는 것보다는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형형색색으로 다 다른 사람의 구경이 은연중에 주인 격이 된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모이지 아니한다면 이 구경도 인기가 반은 줄어들 것이다.
여흥장에는 사람의 머리가 수천 개도 더 되게 들어박혔다.
무대 위에서는 가시같이 야윈 팔다리를 내놓고 계집애들이 레뷰를 하느라고 뻣뻣한 춤을 추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문 사람은 하나도 없다.
마그네슘이 여기저기서 탕탕 터진다.
연못 가운데 해 세운 일루미네이션은 변화와 색채가 여러 가지면서도 보보 있노라니 졸음이 오게 단조하다. 모든 것 이 화려하고 좋다면 끔찍이 좋다겠지만 그러나 아무런 심각 미도 없고 따라서 흥도 나지 아니한다.
그저 꽃…… 불…… 사람…… 이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에도 흥겨워하기는 군데군데 잔디밭에 자 리를 잡고 둘러앉아 먹으며 마시며 꼬랴꼬랴를 외치는 일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세월이 좋기는 둥근 학생모자 패들이다.
대여섯씩 여남은씩 뭉쳐 다니면서 떠들고 지껄인다.
단출한 여자들의 일행을 만나면 길을 가로막는다.
앞을 세워놓고는 걸음을 못 것도록 희롱을 한다.
노라 일행도 얻어걸리었다.
휙하고 등 뒤에서 징그럽게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흥. 요건 걸음걸이가 왜 요 모양이냐!
아마 옥순이의 어울리지 아니하는 굽 높은 구두의 걸음걸 이를 보고 하는 말인가 보다.
나는 한가운데 치다.
나는 바른편 치다.
바른편 치는 내해다.
짱껜이다.
으하하하하.
노라는 심정이 무럭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러자 혜 경이가 홱 돌아섰다.
네 요 후레자식들! 너이는 어미도 없니?
그야말도 아미를 거스르고 서리 같은 호령을 하였다.
너무도 이 매서운 역습에 그들은 어쩔줄을 모르고 멍하니 서서 있을 뿐이다. 모두들 중학생이다.
어느 놈이냐? 나서라!…… 주둥이에 젖내도 아니 가신 아 이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아니하고…… 어느 학교 다니니 응?
혜경이가 연거푸 이렇게 다긍고 나서매 그들은 그만 무어 라고 기성을 지르면 좍 헤어져 달아난다. 그 대신 어느 틈 엔지 구경꾼이 빽 둘러쌌다.
아이구 딱정때!
이렇게 수군거리는 구경꾼도 있다.
예, 그 자식들 잘 혼을 내주었다.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세 여자는 얼핏 그 자리를 물러나 와 박물본관옆으로 올라가는데 앞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젊 은 부부 한 쌍과 딱 마주쳤다.
옥순이는 또다시 자지러지게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저편 에서도 사내가 먼저 우뚝 섰고, 노라와 혜경이는 멈춰서서 양편을 번갈아 보았다.
그 사나이가 옥순이의 남편 재환이인 줄은 노라나 혜경이 나 직각적으로 짐작을 하였다.
해맑고 갸름한 얼굴과 몸에 착 들러붙게 새로 양복을 지어 입은 후리후리한 체격이 호남아로 생기었다. 더구나 파르스 름한 입술과 잘게 째진 눈초리가 여자에게 범연하지 아니하 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이는 옥순이보다도 젊어 스물 다섯쯤 되어보이고.--- 그의 새로 결혼한 부인인 듯 싶은 여자는 그도 그 당장의 눈치로 어떠한 경위인 것을 짐작하였던지 한편으로 돌아서 서 구두 끝으로 땅바닥을 이죽거린다.
옥순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서 가지도 오지도 못한다.
전신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노라는 보았다.(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옥순이가 등 뒤로 보았던 것이다.) 재환이는 정신이 얼떨떨하고 더구나 옥순이의 전에 못 보 던 차림새에 영문을 몰라 역시 바라보고 서서 있기만 한다.
거북스러운 긴장 속에서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왜 왔어?
한참 만에 재환이가 불쑥 한마디를 던진다.
옥순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왜 왔어라니? 무슨 참견이야?
노라는 이렇게 속으로 분개하였으나 말이 나오지는 아니하 였다. 혜경이는 세파에 시달린 만큼 주변성이 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깎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마 옥순씨 바깥양반 되시는 어른이신가분데……
말을 하면서 그는 힐끔 돌아선 여자를 건너다 본다.
이렇게 의외로 만나셔서 퍽 반가우시겠읍니다. 아마 두분 이 하실 이야기도 많으실 텐데 이렇게 서서 말씀하시는 것 보담 어느 날 조용히 한번 만나시지요?
재환이는 점점 낭패한 빛을 보인다.
네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요. 그러면 낼새 한번……
그는 발길을 옮기려고 한다. 그러나 혜경이는 그 꾀에 넘 어가지 아니한다.
그러면 내일쯤 옥순씨가 댁으로 가게 할까요? 허기는 진즉 가서 뵐려구 했지만 댁이 어데신지 몰라 여기저기 알어보든 참인데요.
아니올시다. 제가 가서 만나지요. 날새 곧.
그래도 좋겠지요. 소격동 ■■■번지 이십오호에 있읍니다.
어느 날 쯤 오세요?
모레, 아니 글페 오후에 가겠읍니다.
그러면 꼭 오세요. 그날 아니 오시면 제가 옥순씨하구 댁 으로 찾어가겠읍니다.
네네.
그는 어서 이 자리를 면하고 싶은 듯이 이편이 하자는 대 로 네네 하면서 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들을 멀리 보내어 놓고 나서 노라와 혜경이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나 옥순이는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 다.
오늘 저녁에 돌아가서 싸움을 한바탕 하겠지?
그래두 시골서 들으니까 이혼 못한 줄 알고 그냥 결혼했다 는데요…… 옥순이?
예.
비합법 결혼인가! 그래도 어쨌거나 싸움은 할 거야.
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인물이 우리 옥순이만 못하 다.
인물이고 무엇이고 옥순씨는 무얼 그리 무서워허우? 왜 왔 느냐고 하거든 웬 참견이냐고 닦어세진 못허구?
나도 허느니 그 말이야.
그렇지만 가만 있어…… 글페 나도 올라가께. 같이 만나가 지고 서방님 기름을 좀 짜주자구……
아니 오면?
아니 오면 우리가 쫓아가지…… 그 마나님이 있는데이편에 서 가면 안될까봐서 오기는 꼭 올 거야.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길로 창경원을 나섰다.
옥순이가 침울하기 때문에 더 구경할 신이 나지 아니한 것 이다.
재환이가 온다고 한 날이 되었다.
혜경이는 오정때부터 와서 지켜 앉았고, 노라도 항용 한시 가 되어야 필운동서 돌아오던 것을 더 일찍 돌아왔다. 만일 석양때까지 아니 오면 재환이 집으로 가자는 상의까지 되었 다 옥순이는 재환이가 찾아오면 만나기는 할지언정 그의 집으 로 찾아가기까지 한다는 것은 절절히 반대를 하였다.
자기가 서울 온 것이 그를 바라고 온 것이 아니요,또 찾아 갔댔자 시원한 꼴을 볼 것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남편이 새사람을 얻어가지고 살고 있는 살림살이가 어떠한 지 보고 싶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를 가르친 부독은 여자가 외람히 남편의 하는 일 을 참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참견뿐이 아니다. 남편의 하는 일이 안해에게는 선악의 피안에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든지 고요히 운명 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세 여자가 네시까지 지루하게 기다리던 끝에 재환이가 겨 우 찾아왔다.
혜경이며 노라와는 서로 인사를 하였다. 그는 노라에게는 많은 흥미를 가지고 매우 은근하게 대하였다.
옥순이는 상기된 얼굴을 외면을 하고 한편 구석에 비켜서 서 앉지도 못하고 있다가 몇 번이나 노라와 혜경이가 권하 는 바람에 겨우 도사리고 앉았다.
인사가 끝난 뒤에 혜경이는 노라가 시골 다니러 갔던 길에 옛날 동무인 옥순이가 혼자 적적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바 람도 쐬게 할 겸 구경도 시켜 줄 겸 겸사겸사해서 데리고 왔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재환이는 연해 네네 소리와 한가지로 노라에게 안정되지 아니한 시선을 보내면서 경청하듯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 기가 끝이나자 노라에게 과외의 은근한 태도를 취해 가자고 치하를 한다.
그는 옥순이의 문제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몇일 전 창 경원에서 노라를 보고 호기심이 끌리었고, 오늘 이 자리에 서 다시 환히 핀 꽃같이 탐나는 젊은 여인이 홀몸으로 있는 것을 안 그는 바싹 흥미가 당긴 것이다.
혜경이는 이렇게 재환이를 데려다 놓고 생각하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설마하니 재환이더러 지금 동거하는 여자를 보내고 옥순이 를 데려가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요, 또 말을 했자 듣 지도 아니할 것이다.
또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히 옥순이의 귀에 거슬를 이혼 문 제 같은 것인데, 그것이 이 자리에서 옥순이의 입장을 거북 하게만 할 것이다.
애초에 마음에 정한 대로 재환이더러 옥순이의 생활비를 조금씩이라도 대어주라는 말이나 하였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아까 옥순이가 한사코 말리던 일이라 역시 말을 내지 아니 하였다 네 사람이(그중에 옥순이는 빼놓고) 그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말이 그친 사이다.
어머니 아버지 다 진지나 잘 잡수?
겨우 재환이가 옥순이더러 장인 장모의 소식을 묻는다. 오 늘 이 집에와서 처음으로 옥순이에게 한 말이다.
예.
옥순이는 입때껏 모로 돌아 앉은 채 갈리를 목소리로 대답 을 한다.
오라비(오빠)는 무얼 하우?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