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부인이 찾아와서 긴한 청이라면 예수를 믿으라거나 사 업에 돈을 기부하라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노라는 마땅치가 못하였으나 말도 듣기 전에 무어라고 거 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듣고 보니 청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노라더 러 부인 야학의 선생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이곳 예배당의 주최로 가정부인을 중심하여 야학을 시작하 게 되었다. 다른 설비는 다 되었으나 선생이 없어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남자로 선생을 쓰자면 없을 것도 아니나 아직도 내외를 하 고 있는 가정부인들이니 안될 말이요, 그렇다고 딴 곳에서 여선생을 데려오자니 상당항 보수를 주어야 하겠고, 그래서 야학은 거의 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마침 노라가 피접을 와서 한동안 있게 되었다는 소 식을 듣고 바로 쫓아와서 교섭을 하게 된 것이다.

병으로 와서 계시다는데 신용돈도 못 드리고 공으로 해주 시라기가 염치는 없읍니다만 그저 이것도 사업이니까……

하고 전도부인은 말을 맺는다.

노라는 예상하였던 청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으나 즉석에서 는 대답을 아니하였다., 어머니한테 이런 방면의 속사정도 물어보고 병택이와도 상 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산 일 후에 확실한 대답을 하여주기는 하고 전 도부인을 돌리어 보냈다.

어머니도 그다지 반대는 하지 아니하였다. 어머니의 생각 에는 이곳에서 봉같이 뛰어난 딸의 자랑을 남의 앞에 많이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병택이도 소일 겸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은 하나 자기의 의견이 어떻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노라는 병택이의 이 태도가 보아갈수록 수수께끼 같았다.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상당한 학식이 있고 삼십이 넘은 혈 기 왕성한 청년이니 무슨 일에든지 자기의 식견과 주장을 세워가지고 주위의 사람들을 그리로 말려 할 것인데 으레 무슨 말을 물으면 나는 모르겠읍니다만.

그렇겠지요.

같은 말로 얼버무려 넘기기가 일쑤다.

이 시비와 선악의 판단을 내리지 아니하려는 태도는 절반 삶은 고구마 같아서 사람이 몹시 농판스러운 반면이 보였 다. 전에 어렸을 때나 서울서 볼 때의 병택이는 결코 그렇 지 아니하였다.

노라는 이 사람이 과거 십여 년간 어떠한 생활을 하여왔는 지 어머니한테라도 한번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노라는 야학 선생이 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러나 야학에 갓다가 돌아올 때에 어떻게 할까가 문제가 되었다.

예배당에서 이 재실골까지 그다지 멀지는 아니하나 요즈음 인심이 소란하여진 이때에 젊은 여자가 호젓한 밤길을 밤마 다 다니기는 안심이 아니 되는 일이다.

저녁마다 돌아올 때면 데려다 준다는 조건을 붙이어 승낙 을 하라고 병택이가 권고하였다. 그러나 노라는 너무 거만 한 짓이라서 반대하였다.

여러 가지 상의하던 끝에 야학장소를 이 집 안방으로 정하 도록 하자는데 이야기가 작정이 되었다.

예배당보다는 동리에서 좀 먼 혐의가 있기는 하나 그 대신 나무와 석유가 절약이 되는 이익이 있으니 저편에서는 도리 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도배를 마치고 저녁 후에 병택이가 돌아가자 어머니는 바 느질감을 들고 앉았다.

노라는 오늘 온 신문을 펴들었다. 서울서는 내일 날짜로 박인 것을 오늘 저녁에 미리 보았는데 이것은 어제 신문이 다.

신문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노라는 병택이에 대한 이야기 를 어머니한테 물었다.

어머니도 병택이의 십 년간 지내온 내력을 깊이 알지는 못 하였으나 노라에게는 새 소식이 많았다.

병택이가 일본가서 있는 동안 병택이의 집안은 몰락이 되 었다. 본래 벼로 한 이백 석 추수하던 터이니 그리 큰 재산 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다지 군색치 아니한 살림살이를 하였는데, 병택이의 형은 언제부터 손을 대었는지 토지 전 부를 은행에 저당한 돈은 군삼 미두시장에서 다 없어져 버 렸다.

병택이는 그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돌아온 길에 다시 공부 를 계속치 못하였다.

장자인 병택이 형에게 살림이 맡기어지자 정신이 들었던지 약간 남은 논과 밭을 금융조합에 잡혀 그것을 자본삼아 가 지고 농민들을 상대로 돈놓이를 하며 근근히 살림을 하며 나왔다.

병택이는 우울한 몇 달 동안을 고향에서 보내다가 슬며시 집을 나간 뒤로는 묘연히 소식이 그치었다.

그가 어디가서 무엇을 하였는지를 이곳 사람이 알기는 사 년이 지난 뒤에 그의 소식이 예심결정서를 통하여 신문에 발표되었을 때다.

그는 삼 년 동안 형무소에 들어가 있다가 작년 정월에 놓 여나와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병택이에게는 전에 없던 반편스러운 우물우물하 는 버릇이 생기었다.

그것을 이곳 사람들은 그가 경찰서와 형무소에서 모진 고 생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하는일이 없이 놀고 있다. 가끔 취 직운동을 한다고 타관에를 가기는 하나 어디를 가는지 아무 도 아는 사람이 없다.

또 가끔 그의 친구라고 넥타이를 매지 아니한 청년이 어디 선지 찾아오는데 그럴 때면 병 택이는 그와 한가지로 술을 먹고 유쾌하게 논다.

주재소에서는 늘 그의 행동을 주목하나 요즈음 와서는 매 우 안심한 듯 하였다. 순사부장 한 사람과 순사 한 사람 단 둘이 있는 이곳 주재소의 경찰력으로 그가 타관에 가는 것 가지 미행을 하고 감시를 할 수는 없는 것이었었다.

혹 수상한 서신을 받는다든지 무슨 비밀한 행동을 하는 눈 치가 보인다면 군산의 본서와 협력하여 철저히 감시를 하겠 지만 농판이같이 된 그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을 한 것이다.

그는 책을 읽는 것과 가끔 타관에를 가거나 찾아온 타관 친구와 술을 먹는 것과 또 사랑에 놀러 오는 사람들과 화투 를 치는 외에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청년회 같은 데는 출석도 하지 아니하지만 무슨 책임을 맡 겨도 맡지를 아니한다. 야학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 고 하여도 못한다고 잡아떼었다.

조금 의식이 더 나아갔다는 어느 친구가 농촌소비조합을 설립하자고하니까 먼저 시작을 해놓으면 보아서 참가하겠다 고 회피하였다.

그 친구가 분개해서 우라기리모노라고 욕을 하니가 웃으면 서 네 따위가 무슨 소비조합을 하겠느냐고 놀려 주었다.

그는 이와같이 아무 일도 아니하면서 심심한 때면 아무 집 이라도 찾아가서 노인이고 젊은 사람이고 할 것없이 뼈없는 이야기를 하고 해를 보내었다.

노라의 어머니한테도 종종 찾아왔었다.

그 때문에 노라가 온 뒤에 더 병택이가 찾아가는 것을 물 론 이상하게 보기는 하였지만, 처음 한동안은 비교적 무심 히 보았던 것이다.

형제간에 의가 퍽 좋았다.

병택이의 형님 되는 사람은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도 아우 가 그렇게 번들번들 놀고 먹는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아니 하였다.

도리어 아우가 쓸 곳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변통하여 주곤 하였다.

그것을 동리 사람들은 형이 잘못하여 아우에게 돌아가는 재산까지 없애었기 때문에 그 것이 미안하여 그리하는 것이 라고 해석을 하였다.

병택이도 남의 예에 빠지지 아니하고 조혼을 하였다.

역시 예에 빠지지 아니하고 어렸을 때에는 사이가 나쁘지 아니하다가 중학을 마치고 동경에 가서 있는 동안은 늘 이 혼을 시켜달라고 집안을 졸랐다. 방학때에 돌아와서도 졸랐 다.

공부를 작파하고 집에 돌아와 있을 때에는 조르던 부모는 아니계시니까 부인을 졸랐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을 떠나갔다가 칠팔 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이혼을 하자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자기도 직업 이 없이 형에게 의탁하고 있는데 두 식구가 한데 매어달릴 수가 없으니 친정에 가서 있으라고 하였다. 서로 갈리어 있 다가 이십 년 후에 --- 나이 오십이 넘거든 서로 만나자고 하였다.

이혼한다고 조르는 남편을 둔 여인이 혼자 살기쯤은 단련 이 되었다. 다행히 이혼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으니 각각 얻어먹을 곳에 헤어져 있자고 하는 것은 이혼하자는 것보다 몇곱이나 고마운 말이다.

요행 친정은 소박 아닌 소박을 맞은 딸 하나쯤 먹여 살리 기에는 그다지 군색치 아니한 터라 그의 부인은 이십 년 후 에 다시 만나자는 말에 순종하여 친정으로 돌아갔다.

어느 사람은 그것을 보고 병택이가 중국가서 있었다더니 그 사람들의 배포를 본받아서 여편네를 쫓는 데도 그러한 꾀를 썼다고 하였다.

노라는 이와같이 몇가지 병택이에게 대한 새 사실을 알기 는 하였으나 그의 수수께끼 같은 일면에 대한 의혹은 풀지 를 못하였다.

이튿날 노라는 서울 사진관으로 아이들 사진을 재촉하는 편지를 썼다.

오후에는 병택이가 찾아왔다.

노라는 그가 어떠한 종류의 서적을 보나 알아보려고 책을 한 권 빌려달라고 하였다.

책이 머 있나요. 소설을 좋아하시잖습니까?

하고 병택이 내키잖는 대답을 한다.

하필 소설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병택씨가 요새 보신 것 중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면 아무거나……

병택이는 속으로 실소를 하였으나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글쎄요. 무에 있을는지 하나 찾어보지요.

어머니가 옆에 앉았다가 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한 몫을 든다.

야야, 책을 얻어올라거던 -유충렬전-이나 -심청전-을 얻 어오려무나.

노라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흥 야야, 너는 암만 웃어두 -유충렬전-이 참 좋니라.

그렇게 좋시면 돌아오는 장날 한 권 사다 드리께.

아서라, 야야. 돈 아깝다…… 보구 싶으면 차라리 얻어다 보지……나는-유충렬전-허구 -장화홍려전-을 보면서 퍼 울 었니라만……

한번 본 소설책을 무슨 재미루 또 보시우?

볼수록 좋더라.

그러자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삼 일 후에 오겠다던 전도부인이 벌써 온 것이다.

그는 방에 들어와서 병택이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마음속으 로 좀 못마땅해하는 눈치가 보였다.

밖에서 듣자니 소설책 이야기를 하시는가분데 소설책보담 성경을 좀 보시지.

하고 전도부인이 본령을 발휘한다.

성경책이야말로 만고 진리가 다 있고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지요. 한마디 한마디 죄다 옳은 말씀이니깐……

공자님 말씀보담두 더 옳아요?

하고 어머니가 반박한다.

공자님 말씀도 옳은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 말씀만은 못하지요.

체! 우리 조선 사람이 살어가는 것이 모다 공자님 말씀을 지키고 사는디 그래요?

공자님 말씀은 다 옛말이지요.

두 마나님을 그대로 두어두면 그 토론이 끝이 없을 것 같 았다.

그리하여 노라는 중간을 타고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노라는 야학을 보아줄 것을 승낙한 뜻을 말하였다.

그런데 밤으로 다니다가 괴롭다가 싫다느니보다 호젓하여 안되겠으니 자기 집 안방을 교실로 쓰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전도부인은 두말 없이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을 한번 둘러 보았다.

이칸이라도 넓은 이칸잉게루 넉넉허지라우.

하고 어머니는 방을 설명한다.

웃목에 있는 세간이나 대청(마루)에다 내다놓면 삼십 명은 들어앉지.....

네. 넉넉하겠읍니다…… 그렇지만 마나님이 괴로우시잖을 까?

아니요. 나두 우리 딸한테 글을 배울라우……

네 사람은 모두 웃었다. 전도부인은 돌아가면서 개학할 날 짜를 내일 다시와서 알리어주마고 하였다.

사흘 후에 야학이 시작되었다.

윗목에는 조그마한 칠판을 걸어놓고 주최측에서 석유 한 양철과 같이 가져온 큰 램프를 방 한가운데 걸어놓았다.

책상도 걸상도 없었다. 매우 불편할 줄 알고 무슨 도리가 없을까 하여 여러 가지로 궁리하여 보았으나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다만 선생용으로 조그마한 탁자 한개를 칠판 앞에 놓고 그 위에다 출석부와 분필갑을 올려놓았다.

야학생은 일찍부터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심한 이는 시간 전에 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홉시가 다 되어서 온 이도 있었다.

또 어떤 부인은 서너 살이나 먹은 어린아이를 업고 와서 한바탕 울리기도 하였다.

그들은 대개가 삼십이 넘고 사십이 넘은 가정부인 들이고, 그밖에 젊은 색시 몇 사람과 처녀 색시도 두엇이나 있었다.

그들은 야학 공부보다도 선생인 노라에게 끌리어 온 사람 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노라와 보통학교의 동창아요, 요전 에 찾아왔던 동무 가운데 하나인 옥순이라고 부르는 여인도 왔었다.

이 여인은 이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보통학교의 정도에도 미치지 못할 터인데 무엇을 배우자고 왔는기 하여 노라는 이상히 생각하였다. 시간은 여덟시로부터 열시까지 세 시간.

학과는 언문도 모르고 아주 깜깜한 부인들고 언문을 아는 부인들을 갑반과 을반으로 갈라 갑반은 언문과 간단한 산술 을 가르치고, 으반은 가사(家事)와 조금 급이 높은 계산법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야학생이 거의 모이자 예의 전도부인이 우선 교탁 앞으로 나섰다. 나서서는 교탁에 팔을 괴어 이마를 짚고 다같이 기도드립시다.

하였다. 노라는 서글퍼서 뻔히 서서 보았다.

야학생의 몇 사람은 이마를 짚고 머리를 숙이었으나 나내 수는 그냥 앉아 있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이와같이 한방에 모여 귀한 학문을 배울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하고 감사하옵나이다. 바라건데 이것이 앞으로 길게 계속되어 다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덕을 사모하고 자매가 되게 하여 주시도록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두어 마디 아멘의 합창이 들리었다.

노라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전에 한(韓) 목사가 자기에게 종교란 이런 것이니 저런 것 이니 이야기를 들리어 주면서 결국 한 말의 요령은 안해로 서의 덕이 남편에게 절대로 복종하는데 있다고 한 것을 생 각하였다.

그런데 이 전도부인은 야학을 한다는 이름으로 무지한 여 러 여자를 모아놓고 아는 것이 야학보다는 야소교의 전도에 더 힘을 쓰려고 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이 부 인들에게도 여자의 덕으로 남편에게 절대의 복종을 가르치 려는 것이라고 노라는 생각하였다.

그는 야학을 당장에 해산하여 버릴까 생각하였다. 전도부 인은 기도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하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노라는 그 옆으로 다가섰다.

노라는 차라리 이럴 테면 나는 이 야학을 해산시켜 버리겠 다고 항의를 하려고 나선 것이었으나 문득 한 계책이 머리 에 떠올라 그대로 두어두었다.

전도부인은 지루하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비로소 노라를 소개 하였다.

노라는 코와 코를 마주 대다시피 하고 앉아서 너무 형식을 차리는 것이 얼굴이 간지러웠으나 할 수 없이 교탁 앞으로 나서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였다.

야학생들은 선생인 노라가 흥미있는 존재인 만큼 무슨 재 미있는 이야기나 나올까 하고 기다리다가 평범한 인사에 그 치는 것이 모두들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첫날은 반을 가르고 출석부를 만들고 그밖에 몇가지 야학 생들의 준비할 물건을 말하여 준 뒤에 다음날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야학은 끝났으나 모두들 노라를 구경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고 오래도록 있다가 헤어져 갔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노라는 병택이가 기다려졌다. 적적도 하려니와 어쩐지 그가 자꾸만 기다려졌다.

배달된 신문을 고루 샅샅이 뒤지며 파적을 하고 있는데 저 녁때에 병택이가 찾아왔다.

아이구 어찌이리 늦게 오세요!

이렇게 불쑥 나온 말을 걷잡지 못하여 노라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병택이의 눔치를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 안심을 하였다.

볼일이 좀 있어서요…… 책 가져왔습니다.

하고 병택이는 외투 포켓 속에서 조그마한 책 한 권을 꺼 내준다. 파르스름한 포장(布裝)을 한 사륙판의 조그마한 판 인데 술은 꽤 많았다.

노라가 받아들고 이리저리 뒤집어보니 등에다 -부인론-이 라고 썼다.

재미있어요? 요새 보셨어요?

하고 물어보았다.

보긴 전에 보았는데 글쎄 원 재미가 있을는지……

요세는 무슨책을 보세요?

병택이는 씩 웃으면서 아무거나 보지요.

하고 대어주지 아니한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병택이는 볼일이 있다고 돌 아갔다.

이렇게라도 만나고 나니 이날 일과를 한 것 같아서 노라는 마음이 가뿐하여졌다.

병택이가 돌아간 뒤에 그는 가져다 준 책을 펴보았다.

-부인론-……베벨의 -부인론-…… 많이 듣던 이름 같았 다.

책장을 훌훌 넘기면서 보니 군데군데 붉은 연필로 언더라 인이 치어있다.

목차를 훑어보니 꼭 보고 싶은 것들이다.

그리하여 우선 서문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첫머리를 조금 보는데 글자를 알아도 뜻은 모를 말이 많았다.

한 페이지 가량 보는 데 삼십 분은 걸리는 것 같다. 그러 고도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싫증이 나서 내던졌다가도 잘 보아가지고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였다.

미련이 생겨서 내던졌던 것을 도로 집어 중간을 펴놓고 보 았다.

더 알 수가 없다. 다뿍 식욕은 생기는데 먹을 줄을 몰라 먹지 못하는 것같이 안타까왔다.

저녁 후에는 야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여전히 삼십여 명이나 되는데, 그중에는 어젯밤에 왔다가 아니 온 이도 있고 오늘밤에 새로 온 이도 있었다.

갑반에는 언문의 모음을 칠판에 써놓고 그것을 베기라고 하고, 을반에는 산술을 가르치려고 하는ㄷ 어느 을반 부인 하나가 우리 그 어린애들 입히응 짜게(자켓) 뜨는 법이랑 장갑 뜨 는 법이랑 목도리 뜨는 법이랑 가르쳐 주- 한다.

노라는 그것을 배우자면 실도 사야 하고 바늘도 여러 가지 사야 하는데 그렇게 준비를 할 수 있느냐구 물었다.

모두들 좋다고 한다.

그래서 편물을 시간에 넣기로 하니까 갑반에서 우리도 가 르쳐 주어야 한다고 와글와글 떠든다.

그들의 주장은 절창이다.

우리가 인제 새삼스럽게 글을 배우면 진사 급제를 하겠소?

차라리 당장 집안에서 써먹을 것이나 배우지.

이러니저러니 이야기 끝에 그러면 과정을 고치어 재봉과 편물을 한시간씩 공동으로 하고 언문과만 갑을반을 따로따 로 하기로 하였다.

그렁저렁 한 이 주일 야학을 게속 하였다. 그리하는 동안 에 야학생이 하나 줄고 둘 줄고 하다가 음력섣달 그믐에 닥 쳐서는 두 반을 합하여 열명도 남지 못하였다.

노라가 선생이 되어 야학을 한다니까 모두들 호기심에 이 끌려 너도 나도 모여들었던 것이 결국다니면서 봉야 별 신 통스러운 것이 없어 싫증들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 야학에 결정적 타격을 준 사건이 생기었다.

노라는 야학생들에게 학과를 가르치는 것 외에 가끔 시간 을 내어가지고 신문기사를 참고삼아 세상 형편 이야기도 하 여 들려주고, 일반 가정생활의 비판 같은 것도 하여 주었다.

미신에 관하여서는 사제간에 굉장한 토론도 있었다.

그리하여 끝에 어느 날인가 구 가정부인의 부덕(婦德)을 비 판하는 의미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개학하는 첫날 에 노라가 이미 마음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결혼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들-야학생들도 다같이 세상살이의 첫걸음인 결혼부터 잘 못하였다. 아직 생리적으로 완전 발육이 되지 못하고 정신 적으로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역시 입에서 젓비린내가 나는 신랑한테로 시집을 온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시집 장가가 아니라 양편의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네의 딸과 아들에게 고은 옷을 입히어 가마 태우고 말 태워 초례 청에서 절하고 하는 결혼의 흉내를 내는 재롱을 보는 재미 로써 그렇게 시킨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여왔을 때에 야학생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다.

사람마다 자식 낳고 딸 낳으면 다 이십 전에 혼인을 하여 저희끼리 쌍쌍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또 그 몸에서 생겨나 는 손자의 재롱을 보는 것이 인생의 낙이요 부모 된 사람의 마땅히 할 일이다. 그리고 자녀 된 사람은 부모가 시켜주는 데로 좇아야 효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몇사람 중년부 인의 노라에 대한 질 겸 반박이었었다.

여기에 대하여 노라는 결혼의 의의를 설명하였다.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재미를 뵈려고 하는 것도 아니 요, 자식을 낳아서 부모에게 손자 보는 재미를 뵈려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사랑과 이해와 동정이 있는 완전히 성인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이 되어 가정을 이 루는 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서는 종족을 번 식 시킴으로써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고 자식 없는 부모가 어디 있담.

그럴 티면 부모 자식이 좋달 것이 무어여!

하고 중얼거리는 이도 있고 그건 되놈의 법이다.

하고 혼잣말같이 비웃는 이도 있었다. 노라는 상관치 아니 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당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결혼이기 때문에 신랑은 안해의 남편이 아니라 장인 장모의 귀염둥이요, 며느리는 남편의 안해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종이다. 흔히 시골 부인 들이 말하기를, 어서 며느리를 얻으면 좀 편하게 살 터인 데…… 하는 것은 며늘이를 얻어다놓고 일을 시켜먹자는 생 각이다.

이와같이 하여 서로 만난 부부 사이니 그들이 성장 하여도 서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리하여 안해는 성장하면 시부모의 손으로부터 남편의 손 으로 건너와서 역시 밥을 지어주고 옷을 꿰메어주고 자식을 낳아주는 기계요 종노릇을 할 따름이다.

그런데 남자는 온갖 일을 자기 마음대로만 한다.

술을 먹고 다니고 외입을 하고 다니고 첩을 두셋씩 얻어 데리고 살고……

그리하건만 여자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를 못한다. 남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 이라도 해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여자를 남자의 한 부속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남자 본위로 한 옛날 도덕과 습관과 법률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땐문이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여자도 당당하게 한 사람이다. 그 러니까 여자도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자면 마땅히 그러한 남 편과 가정을 버리고 뛰어나서야 할 것이다.

이거은 야학생들에게는 너무 대담하고 상스러운 말이었었 다.

그중에는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한 중에도 전도부인의 안색은 대단히 평온하지 못하였 다.이날 밤은 아무런 별일이 없이 그대로 헤어졌다.

그러나 그 이튿날부터는 야학생의 줄어드는 수효가 더 현 저하였다.

맨 마지막 할 수 없이 야학을 해산하게 되던 날은 겨우 세 사람밖에는 출석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중에 옥순이-노라의 보통학교 때의 동창생이 끼여 있었다.

노라 자신은 이날 까지 알지 못하였으나 그가 야학생들에 게 한 이야기가 동리에 퍼지자 적지 아니한 시비거리가 되 었다.

남의 집 양가의 부녀를 모아놓고 야학을 합네 하고는 집안 과 남편을 버리고 달아나라고 가르치다니, 그런 해괴한 일 이 어디 있느냐……고.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내의 부인 혹은 안해 혹은 딸을 금족 을 시켜 야학에도 가지 못하게 하였다.

전도부인이 마지막날에 그 소식을 전하는 말을 듣고 노라 는 그들 남자의 횡포함을 분개하고, 그러한 횡포에 유유복 종하는 그 부인들을 무지함을 탄식하였다.

야학은 이와같이 하여 해산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회로 노라에게는 좋은 동무 하나가 생기 었다. 옥순이가 옛날 보통학교에 같이 다니던 소녀시절의 그적과는 다른 의미로 노라와 친해진 것이다.

옥순이는 시체에 많이 있는 소박데기였었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들어앉아 침선을 배우다가 시집을 갔 다.신랑은 근읍 어느 부자집 도령으로 서울 가서 공부하는 학생.시집을 가서 예에 빠짐이 없이 신랑이 중학교를 졸업 하는 해에 소박을 맞고 지금 친정에 와 있었다.그러나 친정 이 그다지 넉넉지 못하다. 그렇다고 불쌍하게 되어 쫓기어 온 딸을 못본 체야 아니하겠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친정도 친정 부모가 살아 있었을 때 말이지, 이 앞으로 얼 마 아니하여 친정부모가 없고 나면 끈 떨어진 말 같은 신세 가 될 것이다.

저편에서는 이혼수속을 하여 달라고 조르나 들어주지 아니 하였다. 한번 한 혼인을 해소시킨다는 것은, 그들은 해소의 문자도 모르려니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남자가-사 위가 아무리 현재 딴 여자와 신식으로 결혼식을 하여가지고 살더라도 이편은 죽는 날까지 그의 안해다.

인제 그가 나이 늙으면 후회를 하고 찾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비단 옥순이뿐 아니라 소박맞 은 여자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이 희망이라는 것은 마지 못하여 붙여두는 한심한 희망이다.

옥순이는 노라를 자주 찾아왔다. 어느 때는 거의 밤마다 오곤 하였다.

와서 놀고 이야기 하고 신문도 보고 그러나 아픈 상처를 다치는 것같이 자기의 일신상의 이야기를 하기는 꺼리어 하 였다.

노라는 밤에는 옥순이를 만나 말동무를 삼고 낮이면 병택 이를 만나는 것이 일과요 재미였었다.

음력 정월.

이곳은 아직도 음력 정월이라야만 설다운 맛이 난다.

오래 날이 좋다가 모처럼 눈이 탐스럽게 내리는 날 오후였 었다.

어머니는 설에 끌리어 놀러가고 노라가 혼자 집을 지키자 니 무료도 하려니와 소복소복 내리덮이는 눈 구경을 하느라 고 추우 줄도 모르고 마루로 나왔다.

이러한 때 병택이가 왔으면, 오전에 아니 왔으니 지금쯤 오려니 싶어 퍽 기다려졌다.

눈이 오건만 바라보이는 동리 길거리로는 무색옷 입은 아 이들과 어른들의 왕래가 활발 하다.

까마귀가 한떼 흰눈 덮인 보리밭에서 날고 지저귀고 한다.

물이 언 동리 앞 텃논에서 학생들이 스케이트를 지친다.

그것 보니 또 서울 생각에 연달아 아이들 생각이 불연 듯이 나서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았는데 병택이가 눈을 털 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새삼스럽게 반가왔다.

병택이는 인사도 하려고 아니하고 대뜰에 선채 별 빌어먹을!

하고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왜 그러세요?

하고 노라는 의심이 나서 물었다. 자기에게 관계가 되지 아니한 일이면 병택이가 이렇게 와서 흥분하거나 하지 아니 할 것을 아는 때문이다.

뭣 별일은 없지만 샌님들이 밥 자시고 할일이 없으니까 괜 히 앉아서 남의 말을……

남의 말을 무어라고?

내가 이렇게 매일 놀러다니는 것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모 양이어요.

노라는 가슴이 성큼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신식이라지 만 그들이 보기에는 보통일로는 병택이가 노라를 매일 찾아 다닐 필요를 발견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무슨 수상한 일이나 있지 아니한가 하는 궁리가 생기고, 그것이 입밖에 나오면 동감자가 생기고, 그러노라니 대마가 발이 달리기 시작하고.

누가 그래요?

하고 노라는 속이 적지 아니하게 불안하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제마닥 다 그런 모양이어요.

무어라고?

무어라고……? 병택이가 무엇하러 매일 재실골을 간다냐 고……

그러나 이 말은 병택이의 귀에 들어온 말이고, 동리에서는 별 소문이 다 돌았다.

병택이가 노라를 찾아다니는 것이 수상하다는 비교적 순한 말로부터 노라는 행실이 나빠서 쫓겨왔다는 둥, 서울서 병 택이와 눈이 맞아가지고 도망을 해왔다는 둥-그 증거로는 그날 밤에 병택이와 노라가 같이 오지 아니하였느냐!-또 어 느 사람은 병택이가 새벽이면 노라의 집에서 눈을 쥐어 뜯 으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둥……

그러나 이러한 말은 병택이에게도 노라에게도 귀에 들어오 지 아니하였다. 데마린 으레 그러한 법이니까.

노라는 잠깐 속으로 생각하여보았다.

그러한 풍설에 대하여 양심에 부끄러움이 있는가? 병택이 에게 조금이라도 연심이 생기었던가?

다만 적적한 때니까 친구로 생각하였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놓이긴 하나 마음이 놓이면서 한편 섭섭한 생각이 갈아 든다.

지금까지에는 없는 적막한 생각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 았다.

치운데 왜 이렇게 마루에 나앉어 게십니까?

하고 병택이는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다.

설경이 좋아서요.

하고 노라도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실상 그러 한 소식을 들은 터라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하기가 어쩐지 혐의쩍었던 것이다.

그럼 인제는 놀러도 아니 오시겠어요?

노라는 병택이의 눈치를 알고 싶었다.

그것보담 내가 오는 것이 폐로 아신다면 오지 말고……

아이구, 저는 괜찮아요, 남들이 무어라거나 양심에 부끄러 운 일만 없으면 그만 아닙니까?

글쎄요……그것도 그렇지. 사람이 세상에 살자면 남의 말 을 전수히 거리끼지 아니할 수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고 저렇고 간에 이렇게 날마다 놀러오는 것도 오래잖 얼 것 같습니다.

왜요?

노라는 놀랐다. 그 놀란 기색을 억지로 얼굴에 보이지 아 니하려고 애를 쓰나 병택이는 그것을 본 것 같다.

병택이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었다.

전같으면 아무렇지도 아니하였겠으나 혹 어머니도 그러한 소문을 들었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단촐하게 병택이와 앉아 있는 것을 붿 것이 무안하였다.

어머니의 안색이 어떠한가 보려고 노라는 방문을 열고 마 루로 나섰다.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눈을 털고 풍뎅이를 벗어주며 딸을 치어다본다.

어머니의 눈치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병택이 왔냐?

네.

노라는 안심을 하였다. 병택이도 마루로 나와서 인사를 하 였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노라는 궁금한 마음에 묻던 말 을 다시 물었다.

어데를 가세요?…… 어머니 병택씨가 어데를 가신다우.

응. 어데를 가넌가?

어데라고 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그냥 정처없이 떠나세요?

그렇지요.

노라는 그렇게 곡 필요도 없으면서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하였다.

언제쯤 떠나세요?

그것도 아직 모르겠읍니다.

그래도 봄까지는 게시지요?

글쎄……

니가 친구를 놓치니까 섭섭하여서 그러넌구나.

하고 어머니가 웃는다. 두 사람도 다라 웃었으나 다 각각 다른 마음으로 웃는 것이다.

이날 병택이는 저녁을 먹고 늦도록 놀다가 돌아갔다.

이튿날은 오지 아니하였다. 또 그 이튿날도 오지 아니하였 다. 그리고 사흘 나흘이 되어도 오지 아니하였다.

노라는 겉으로 기색은 보이지 못하나 속이 초조하였다. 그 소문이 성가시어서 오지 아니하나? 그렇잖으면 어디로 가버 렸나? 그렇다면 간다는 작별은 하러 왔을 터인데.....

어머니더러 복동이더러 지나가는 말같이 물어보아도 시원 한 소식이 없다.

한 열흘 후에 겨우 어머니가 동리에 갔다가 길에서 병택이 의 형수를 만나 소식을 듣고 왔다. 병택이는 십여일 전에 집을 나갔다고.

노라는 노여운 생각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어머니 때문 에 겨우겨우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