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1738) 데이비드 흄저 편집

머리글 편집

철학을 비롯 여러 학문의 세계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은, 이제까지 모든 체계를 비난하고 자신들의 체계를 칭찬하는 것이다. 솔질히 말해 이러한 사람들이, 이성이 다룰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마저 여태껏 벗어나지 못하는 무지를 한탄하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다면, 학문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거의 즉각 찬성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판단력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미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 엄밀하고 심오한 연구라고가지 하면서 최대한으로 과장하는 체계조차도 되어 이르는 미덥지 않은 결론, 부분적으로는 정합의, 전체적으로는 확증의 결여, 이것들은 가장 뛰어난 철학자의 체계에서조차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오늘날 철학의 불명예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학문의 불완전한 현재 상태를 발견하는데 이런 심오한 지식은 필요 없다. 문 밖에 있는 구경꾼들조차도 자신들이 듣는 야단법석과 야우성으로 미루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판달할 줄 안다. 토론의 주제거리가 아닌 것이 없고, 학자들 사이에서 반대설이 없는 것이 없을 지경이다. 아무리 하찮은 문제도 논쟁을 피랗 수 없는 법이고, 제 아무리 중요한 문제도 확실한 해결은 조금도 얻을 수가 없다. 모든 논의는 한결같인 불확실한 것 같은데도 모두가 확실한 것인양 뜨겁게 다루어진다. 이런 소란 속에서 찬사를 얻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웅변이다. 그렇다면 제아무리 상식을 벗어난 가설이라도 그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요령을 아는 자는 그 가설에 찬동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는데 궂이 힘쓸 필요 없다. 승리는 창칼을 쓰는 군인이 아니라, 군대의 나팔수, 북 치는 사람, 군악대에 의해 거둘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바로 이 때문에, 모든 종류의 형이상학적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편견이 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또는 모든 학문의 영역서 올바른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해하는 형이상학적 연구란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어떤 특정한 분과 학문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어딘지 난해하여 다소나마 주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모든 종류의 논의를 가리킨다. 우리는 지금가지 그러한 탐구에서 너무 많은 노력을 낭비했다. 따라서 지금은 망설이지 않고 물리칠 수 있다. 또 만일 우리가 영원히 착오와 헤헤맴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하다 못해 이 착오와 헤맴을 자연스럽고 유쾌한 것으로 받아들이자고 결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형이상학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회의론과 지독한 태만뿐이다. 왜냐한면 진리가 인간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 확실히 있다고 해도, 분명히 깊고 난해한 곳에 있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대한 천재들도 더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실패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고생하지 않고 진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확실히 분수에 넘치는 일일 것이다. 앞으로 내가 펼칠 철학에 이 같은 (진리에 손 쉽게 이르는) 이점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만약 나의 철학이 매우 쉽고 뚜렸하다면 나느 이이 이점을,(오히려 참으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는 증거로 삼고 따라서) 나의 철학에 대해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모든 학문은 많건 적건 인성과 관련되어 있고, 또 인성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학문도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인성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심지어 수학과 자연연학 긜고 자연종교조차 어느정도까지는 '인간'학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학문이 인간 관리 아래 있으며, 또 인간의 능력이나 기능을 통해 그 진위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 지성의 범윙와 역량을 완전히 파악하고, 추론에 사용되는 관념이나 그때 동원되는 작용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으면, 이들 학문이 얼마나 변화하고 진보할지는 이룽루어 표현할 수 없는 정도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진보는 자연종교에서 특히 기대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종교는 신의 본성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찰의 시야를 더욱 넓혀서 우리에 대한 신의 뜻과 신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지 미치게 하고, 따라서 우리 자신은 연구자 일 뿐만 아니라 연구되는 대상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학, 자연학, 자연종교가 인간에 관한 지식에 이토록 깊게 의존하고 있다면, 인간 본성과 더욱더 긴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다른 여러학문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기대를 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