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숙애사
글로써 지나든 정을 펴 이르되 군은 론돈에 있고 내 상해에 머믈렀을 때 홍순유를 사이에 놓고 군과 나와의 글월이 통하였으나 그때 벌써 군의 재명이 들레었나니 내 감히 사굄을 말하리요마는 그윽히 군을 사랑하는 마음을 졌었고 군도 나를 잊지 아니하였었다가 글월을 의지하였든 교분이 면식으로조차 거듭 두터워지기는 군이 스위쓰로부터 돌아 뒤라 마초아 이웃하야 살고 성온사(星社)의 모음이 또 만남을 자주하게 하야 점점 더 가깝게 되드니 연히에서 군을 맞어온 뒤로는 동료의 의를 겸한지라 아침저녁에 내 군을 부르지 아니하면 군이 와 나를 부르기 무릇 몇 해뇨. 순유와 찬숙과 경시는 하로라도 떠나지 못하얐었고 변수주(卞樹州)가 옆집에 있어 혹 네 사람이 서로 찾다가 길에서 만나 한가지 웃었드니 중간에 혹 동아(東亞)의 붓을 같이 잡기도 하얐고 혹 시대(時代)의 일을 함께 의논도 하얐으되 그중에도 생각나는 것은 군이 러시아특파의 길을 내일쯤 떠나려는데 내가 밤들도록 말리는 것을 보고 도로 고만둘까 하든 그때 군의 얼굴에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는 그 마음이 보이든 것이 어제런 듯하고녀. 군은 자신에는 돌아봄이 적고 나아가는 기개 우리보담 탁월하나 장처 단처가 또한 아움러 여기었드니 군의 살어있을 제 내 군을 나무라든 것이 이제 와 생각하야 보니 어느것 하나가 군의 귀여움즉한 일이 아니리요. 슬프다. 군은 남모르는 외로운 한이 있었든가 밤중 잠결에 자기도 모를 한숨이 무엇을 인함이든가. 슬프다. 지구는 다 군을 아끼고 후진은 다 군을 공경하얐으니 혹 군을 위로함즉할까. 그러나 군이 어찌 이만으로써 그칠 사람이리요. 연전 군이 오랫동안 고초를 겪을 때 내 벗들에게 말하오되 찬숙이가 지금은 고생이리라마는 나오기만 하면 관기찮어, 아모렇지도 않어 분명히 이렇게 말하리라 하얐나니 군은 이렇듯이 기운좋고 활발한 사람이라 이 사람이 일조에 옛사람이 되단말가. 군이 저지음 어진 부인을 궂겨 내 치위가서 군을 보고 그 뒤 조선일보사에서 또 잠깐 만났으나 어데 여행하랴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가 내 금강산을 다녀와 문호암(文湖巖)에게 군의 내 북쪽길한 것과 한동안 소식이 없어 굼굼타는 말을 들었드니 하로만에 군의 악보가 이르니 꿈인가 이 생시인가. 내 같이 갔든들 군을 □□어 장마 뒤 해수욕을 말렸을 것을 내 군을 끌고 관동이나 돌았든들 이런 일이 혹 없었을 것을 생각이 이에 미치매 곧 내 잘못으로 군을 구하지 못한 것 같이 더욱이 마음둘 바를 알지 못하였노라. 상자 속에 옛 글월이 남었는데 고인은 찾을 곳이 없고녀. 나와 순유가 여기 왔고 변수주도 저기 있거늘 한 사람은 어데로 갔는고. 군의 악보를 듣든 날 군의 대인을 향하야 조위할 말이 없음을 느꺼워하는 그 자리에서 다섯 살된 군의 아들을 보니 어찌 가슴이 머이지 아니하리요. 군의 부인은 세상에 드믄 범절있는 부인이라 군이 죽어도 이 부인이 기셨던들 문호를 붙들어 자녀를 키우고 가르침에는 군이 지하에서 눈을 감을 만하였을 것을. 슬프다. 군이 과연 이에 이르단 말가. 과연 물속에서 건져 과연 땅속에다 묻었단 말가. 여기 모인 우리 이제 서로 눈물을 뿌리되 군은 벌써 옛사람이라 언마하야 점점 잊으리요. 생각이 이에 미치매 더한칭 느꺼웁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