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이와 용이
1
편집"기름도 다 타 가는데 왜 밤중까지 불을 켜놓고 앉아서 대고 담배만 피워 대여, 아랫방에도 벌써 불 끈 지가 오랜데."
"다 걱정되는 일이 많으니까 그렇지… 나도 이녁 같이 잠이나 씩씩 잤으면 좋겠구먼…"
"누구는 걱정이 안 되남. 하지만 걱정만 대고 하면 네미…"
안해는 말끝을 흐리고 획 돌아눕는다. 이것은 이 집 웃방에 며칠 전에 이사온 간난네 양주가 이윽한 밤에 두설두설하는 이야기다.
"음―"하고 남편은 목기침 한번을 길게 하더니
"잠들었어… 간난 어머니… 응"
"응…"
아렴풋한 대답이다.
"잠 좀 그만 자고 내 말이나 좀 들어 봐 응…"
간난 어머니는 몸을 돌려 누우며 잠을 깨인 눈으로 남편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새마을 언덕 박이 해묵은 감나무는 늦은 가을철을 접어들며 붉기도 하다. 지붕 마루턱이마다 동굴얗게 봉박아 놓은 고추 빛같이 맵고도 곱고 붉을 수야 있으랴 마는 그래도 그 크고도 보암즉한 품이 이 가을 이 마을의 영화를 저 홀로 거두워서 선 듯싶었다. 더구나 그 언덕 넘어도 줄줄이 늘어선 뽀푸라 나무들은 이 감나무의 붉은 빛을 반이라도 닮으랴는 듯이 나날이 더 누르러 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붉은 잎 누른 잎이 서릿바람을 마저 하나씩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인제는 제법 우수수 우수수 하고 돌려나려 떨어진다.
가여운 일이다―그 떨어진 잎잎은 다시 논틀로 밭틀로 뜰로 샘으로 이 구렁 저 구렁 이리저리 굴을 뿐이로구나.
응달 샘뚝성이에 앉은 이쁜이는 박아지로 물 우에 뜬 단풍잎을 이리 저리 가르며 물을 한 바가지 떠서는 동이에 담고 또 떠서는 담고 할 제, 어떤 때는 우에서 떨어지는 잎이 일부러 뜬 잎을 가르고 뜬 박아지 물 우에 뚝 떨어질라치면 그는 얄궂다는 듯이 동굴안 눈으로 언덕 우에 선 감나무를 핼끔 쳐다보며
"감나무 잎도 떨어지기도 한다 온…"
이런 때에 빈 동이를 머리 우에 이고 샘뚝 깊 옆에 서서 말없이 빙그레 웃고 있던 중늙은이 양순 어머니는 이 말을 받아
"요새는 낙엽이 어찌 지는지 몰라."
"아이고 난 누구라고 양순 어머니일세, 언제 거기와 서 섰어요, 오시는 기척도 없이…"
"네 뒷모양이 하도 태가 나고 이쁘길래 구경 좀 하느라고 그랫지."
"아이고 온…양순 어머니도 사람을…"
말끝을 더 물지 못하는 이쁜이의 포동포동한 두 볼은 이른 단풍 빛같이 불그레하여지며 고개를 푹 숙이고 물만 푸기 시작하였다.
"네 웃 네가 해 입었니?"
"네"
"치마 저고리 물빛도 곱다 바느질도 서툴지 않고나."
"저고리 물빛이 좀 지튼 것 같아요."
"아니 지틀 것 없어 분홍빛이 그만이나 해야지 더구나 한창 낫세에 말하자면 치마에 남물이 좀 과하게 들었다."
저쪽 대답이 없을 제, 그는 혼자 잇달아
"네 아버지 홀로 너를 저 만큼이나 키워 노았으니…네가 여북 귀엽겠니…얼른 사위를 보아야 할 텐데 좋은 사위를…"
이내 이쪽에서는 아모 말이 없다. 그는 무심코 사방을 돌아보다가 뒤에 오는 억쇠어머니를 보며
"남이 물을 길러 왔는데 왜 또 와."
"당신은 왜 왔어 이런 제기…"
받아치는 말솜씨만 보아도 걱실걱실하고 말이 행락이 아닌 억쇠어머니다. 그는 동이를 샘뚝에 내려놓더니만 한바탕 떠들어댄다.
"아이고 너 이쁜이구나, 옷 빛도 곱고 머리도 곱게 빗고… 얼굴도 이쁜 이름과 같은 우리 이쁜이 언제 와서 물을 깃나, 어허 절시구 우리 이쁜이 서발가옷 삼단머리 발 뒷굼치 치렁치렁 어허 절시구 음전할시구 우리 동내 이쁜이…"
손벽장구를 쳐가며 무당 푸닥거리하듯 주서대는 억쇠어머니 푸념바람에 양순넨 좋아라고
"흥흥 허허…"
하는 웃음 딸아 내며 야단들이었다. 억쇠네 푸닥거리는 딸아 나온다.
"시집가기도 늦었다. 어허 절시고 우리 이쁜이 남 중 일색을 얻으랴나, 헌헌장부를 얻으랴나, 김 부자 집으로 가려나 이 부자 집으로 가려나 앞뜰에도 노적가리 뒤뜰에도 노적가리 분통같이 꾸민 방에 곱게 단장들이 앉어 시부모 공경하기 남편의 시중들기 어허 절시고 옥동자 금동자 낳고…" 끊임없는 입술에 부끄럼의 우박이 온 몸에 퍼부어 나리는 듯이나 견딜 수 없는 이쁜이는 물동이를 '어서 어서'하는 듯이 머리에다 두집어 이고는 그만 뺑손이를 치며
"아이고 억쇠어머니는 참 고약도 해…"
하고는 동이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끝으로 훔쳐 뿌리고는 또 뿌리며 달아난다. 걸음이 재일수록 몸동작이 자저질쑤록 뒤에 따아 늘어진 머리는 동작의 '리즘'을 딸아 너풀거렸다. 참 좋은 처녀다.
2
편집"최 첨지가 딸 하나 잘 두었어"
뒤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이럴 지음에 업친데 덥친다고 난데없는 마을 선 머슴꾼이 산에서 나리는 나무 짐을 지고는 잰걸음으로 이쁜의 옆을 지나치며 들떼어 놓고 부르는 노래다.
"청치마 끝에다 목을 잘끈 매고서 죽여라 살려라 에헹 어헹 어헤요…"
노래 끝은 일부러 더 높이 질렀다. 바로 그 뒤 샘터에서는 해해거리는 웃음들이 바그르―끓어올랐다. 이런 것이 모두 다 이쁜이의 몸을 조롱(嘲弄)의 샘 속에다 집어 처넣는 듯하였다. 동이의 물이야 다 넘어 업질러 없어지든 마든 손살같이만 닫는 그의 걸음을 보아도 알 수가 있었다. 저의 집 싸릿문 앞을 접어들자 말자 바람갑이 같이 몸을 문안으로 감추고 말았다. 그는 그 문턱 넘어 땅 우에다 물동이나 미어 때리지 않았는지?
용이가 최 첨지네 집으로 머슴 오기는 석달 전이었다. 누구나 머슴을 두려면 대개는 세 전 세 후에 두는 것이지 이같이 뒤늦게 두는 것도 아니오 더구나 최 첨지네 형세쯤으로는 둘 처지가 못되는 터이며 또한 최 첨지가 나이 오십이 넘었을망정 장정 부럽지 않게 아직도 기운이 정정한 터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까닭은 올 늦은 여름에 최 첨지가 하루는 밤을 새어가며 보리 방아를 찧다가 무거운 물방아 채가 나려 질리는 바람에 몸을 잘못 놀리다가 허리통을 그만 되게 얻어맞아서 거이 죽을 번하다가 간신히 살아나기는 하였으나 아주 병신이 되었으며 아직도 다친 곳이 쾌히 낫지를 못해서 신음신음 앓으면서도 자기 집 농사일이 갑갑하여 생으로 꾸부러진 허리를 작댁이 힘으로 벋히고 문 밖 출입을 하루 한 번씩은 하는 터이다.
생애에 가장 중한 농사를 중둥이 하는 수도 없고 또한 남의 품을 이로사서 댈 수도 없는 터이다. 이리하여 용이를 달머슴으로 두엇다가 인해 눌러둔 터이다. 하루하루 품팔이로 이 골 저 골로 떠돌아다니던 떡거머리 총각 용이가 이 마을 앞 주막을 지나다가 우연히 말이 되어 이 최 첨지네 집으로 머슴살이를 하려오던 첫날 저녁이다.
어두므레한 봉당에 최 첨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최 첨지의 마누라라고 생각하였던 부엌에서 밥을 짛던 여편네가 밥상을 들이다가 봉당 머리에다 놓고는 돌 처서며 도망걸음으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돌처선 그의 뒷 궁둥이에는 따아서 나린 머리 꼴이 치렁치렁하였다. 용이의 가슴속에는 희미한 무슨 빛이 번뜩이는 듯이 무엇이 느끼어졌었다.
"주인 영감의 딸인가?"
하는 의심이 들며 얼른 알아맞히고자 하는 생각도 핑핑 돌았다. 그는 또한 속으로
"나이도 꼭 들어 보이는데 제기를 할…"
이 '제기를 할' 이란 말의 뜻은 줄인 범이 날고기 덩이를 본 듯 한 총각의 마음 속에 어떤 검은 그림자가 어리댐을 말함 이였다. 그러나 배가 곺았던 터이라 한참 밥만 퍼 넣기에 딴 생각은 없었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판이었다.
물 우에 띠운 박아지 소리가 그릇 전에 부드치느라고 달그랑달그랑하고 난다. 그는 무심코 싸리문 쪽을 바라다볼 때, 마주 비친 달빛에 달빛같이 희게 번쩍 띄이는 얼굴은 아까 보던 그 처녀의 얼굴이었다.
"오냐! 참 괜찮게도 생긴 모양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검은 욕심의 빛이 더 한층 지터지며 그 검은 마음 속에는 처녀의 얼굴이 둥근 달같이 뚜렷하게 박이게 되었다.
이러고 난 뒤, 날이 갈쑤록 하루에 두 번 혹은 세 번 네 번씩 보이는 처녀의 그림자 모로도 보일 때, 뒤로도 보일 때, 또는 바로도 보일 때도 많았다.
"분명히 보았다… 기막히게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데…" "의심 없이 인제는 그의 용모를 잘 알았다. 마음이 몹씨 흔들리는구나. 그러나 마음만 들뜨면 소용이 있나." "그런데…"하는 쌈 싸울 전략을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이다.
3
편집이 뒤부터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최 첨지네 일과 이쁜이의 일을 알려고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만 어느 입에서든지 나오기만 하면 귀가 번쩍 띄고 번쩍 띄었다. 언제는 동네 일꾼들과 같이 일들을 하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쉴 때이다. 그때도 마침 이쁜이네 이야기들을 하다가 나 젊은 쇠똥 아버지가 용이를 놀리는 말이다.
"총각 자네 최 첨지네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네 그려."
"사람을 공연히 놀리지 마소."
하고 그 말을 부정하였으나 속으로는 빈 말이라도 듣는 것이 퍽으나 반가웠다. 이때 옆에 앉았던 중늙은이 먹돌 아버지는 자연스러운 말로
"실상이야 무엇 저 총각 같은 사위만 얻어도 잘 얻는 셈이지."
고맙기 짝이 없는 이 말에는 그만 수집은 생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딴전을 아니 볼 수 없었다. 이런 때에 또 그 옆에 앉았던 깎아머리 면서기 퇴물 통칭 박 서기란 자가 질투스러운 눈빛으로 용이를 흘끔 쳐다보며
"무엇 아직 사위 재목을 정치는 않은 모양이대만 딸이 제법 똑똑히 생겨 그런지 선 머슴꾼은 안줄 모양이던구먼, 더구나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에게야 이를 이 있나"
용이는 이 말이 몹씨도 귀에 거슬리게 들였다. 그 자가 미웁게도 생각되었다. '선 머슴꾼', '농군', 불알만 덜걱덜걱하는 농군' 이런 말이 몹씨도 뼈에 박이는 듯싶었다. 그 반대로 '놀고 지내며 유식하다는 놈', '웃 갓하고 행세한다는 놈', '돈 있다는 놈'들이 미운 생각이 버럭 났었다.
좌우간 최 첨지의 사위 재목을 아직 정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히 알았다. 그는 어찌하였든지 정성만은 드려볼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최 첨지네 일이라면 뼈가 빠지게 일을 하여대며 동네 사람 더구나 최 첨지의 칭찬을 받고 눈에 들도록 힘을 쓰는 터이다. 그것이 그의 먹은 마음을 성공함에는 으뜸가는 효과가 되는 것임으로 사실 용이가 최 첨지 마음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의 사나이다운 품, 농군으로서도 제법 미끈하게 생긴 품, 꺽지고 성실한 품, 이 모든 것이 좋게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위 재목으로 골른다고 하기까지는 아직 꿈에도 생각치 않은 터이다.
이쁜이는 올해 나이 열 일곱 살 열 다섯 살이 먹을 때까지도 털 벗지 못한 중강아지같이 몸에 잔 줄음이 달렸드니 작년 봄을 접어들며부터 색씨태가 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올해쯤은 거의도 처녀가 되어 간다고 할 만큼 키가 홀쭉 커 올라가며 머리가 치렁치렁하여진다. 그는 야살구진 동네 여편네들에게 가끔 가다가 놀림도 받으며 선머슴 군들에게 장난도 당하여 보았지마는 그것은 잠간 잠간 때 일이오. 이때껏 용이 같은 젊은 사나이를 집에다 두고 아침저녁으로 대하기는 처음 일이다.
용이를 대한다는 것이라야 한끝 먼 빛으로 흘금흘금 도적질하여 볼 뿐이요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와 용이와 같이 앉은 봉당 한 구석에다 밥상을 들어다 슬그머니 놓고는 굴 밖에 나왔던 쥐 모양으로 얼른 부엌이라는 굴속으로 몸을 감출 뿐이었다.
처음에 용이를 볼 때에는 그 후리후리한 허우대, 큼직한 눈방울이 모기에 무서운 생각도 났었다. 하나 날이 가고 눈에 익어 갈수록 그 떡 벌어진 어깨바디, 손, 어귀차 보이는 두 팔, 가슴 그럼 것이 모두 어떤 무섭고 강한 것을 물리치고 외롭고 약한 것을 얼싸 않을 듯이 그럴듯하게 느끼게 되었다. 어떤 가냘 핀 물체보다 튼튼한 것이 도리어 든든하고 좋아 보였다.
어떤 때 일이다. 혼자 들밭에 가서 큰 둥구미로 둘이나 되게 다홍 고추를 따서 놓고는 두 둥구미는 고사하고 한 둥구미도 머리에 들어 일 수가 없어서 약한 두 팔로 들었다 놓았다 하며 애를 쓸 판이다. 이때 마츰 들에서 풋베를 비어 한짐 잔뜩 질머지고 주춤주춤하며 밭뚝길로 지나던 용이가 이 꼴을 보고는 달려오더니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내 가져가지"
하고는 두 둥구미를 한참에 번쩍 들고 일어선다. 수집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하여 어쩔 줄 모르는 이쁜이는 햇살에 익은 두 볼이 더욱 붉어지고 눈과 입에는 가는 웃음이 방글방글 돌며 부끄러운 태도로 서있었을 뿐이다. 만일에 용이가 이때, 이 이쁜이의 모양을 눈역여 보았으량이면 이때껏 그를 보던 가운데서도 제일 귀엽게 보았으리라.
용이가 그 고추 둥구미를 들어다가 볏단 실은 짐 우에다 얹으며 다시 지게를 지고는 거침없이 산둥성이 길로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4
편집이쁜이는 용이가 산둥성이을 넘어서 보이지 않을 때에 비로소 밭에서 나와 걷기를 시작하였다. 그이 바로 뒤를 따라갈 용기는 없었던 까닭이다. 그는 조그마한 산말랑이 오솔 그늘에 앉아 쉬며 그 밑골로 내려가는 용이의 뒤를 우둑허니 바라다보고는
"어쩌면…"
하는 의미 있는 감탄을 한숨과 한가지 내기도 하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첨하 그늘이 반이나 점령한 마당 한옆에 앉어 먼저 말린 고추꼭지를 다듬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가을볕에 날으는 잠자리 날개같이 가겨웁게 납신거린다.
"내가 시집을 간다면…"
"박서기(면서기 다니던) 같은 사람…건넌 마을 정부자 아들 같은 사람…용이…"
그는 여기 이름에 더 생각을 하고 싶지도 안했다. 어떤 면이 더 났다고 작정할 수도 없었다. 생각을 중둥이에서 끊어 던지고 말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기의 너무나 외로움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나 살았더라면… 용이 같은 오빠나 하나 있었더라면…"
그는 어떤 때 용이를 '오빠' '오빠'하고 부르며 속의 말이라도 하였으면 여북 좋으리라는 생각이 났었다. 또 어떤 때는 다만 오빠라고 부르기만 하느니 보다도 용이의 그 힘있는 두 팔로 자기를 힘껏 한번 끼어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났었다.
최 첨지의 병이 이 지음에 이르러 날이 추워지는 까닭인지 벗석 더 더치게 되었다. 용이가 앞집 먼 방에서 잠이 곤희 들어서 곯아떨어져 있던 어떤 날 밤중이다. 누가 옆에서 별안간 흔들어 깨우며
"총각네 주인 영감이 지금 대단해서 깨워 보래라는 기별이 왔네."
그는 벌떡 일어나 닷자곳자로 뛰어나가 최첨지네 집으로 달려갔었다. "에헴" 소리와 함께 봉당에다 발을 올려놓을 때 저쪽방 안사람은 벌써 방문을 열어제친다. 그는 이쁜이다. 불빛에 얼비친 그의 얼굴은 해쓱하고 문고리를 잡은 그의 팔은 떨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그 표정은 죽을 고비에 빠진 사람이 자기를 구원하러 오는 사람을 보고 반겨 맞는 듯한 것이었다. 최첨지의 병은 참으로 큰일날 병이다. 중병인 몸에다 급한 관격이 질린 모양이다. 얼굴은 파랗게 질리고 숨은 금방에 넘어갈 듯이 "어, 이, 이" 소리만 연발하며 자기 몸이 이리저리 뒤틀리는 모양이다. 용이는 방문 밖에 선 채
"사지를 꽉꽉 주물러―"
손짓을 하여 가르치고는 동네 집으로 한걸음에 뛰어가 침쟁이를 데리고는 한걸음에 뛰어왔었다. 다만 그 동안에라도 예쁜이가 홀로 얼마나 애를 삭일가 하는 것을 닫는 걸음 가운데에서도 생각하였다. 그들은 최첨지 주위에 둘러앉아 사지를 주무른다. 침 주는 것을 거들어 준다 하였다. 그들은 마치 남매와 같이 또는 그다지 시스럽지 않은 내의와도 같이 서로 말을 여러 번이나 건너게 되고 옷과 옷이 서로 스칠 때도 많았다. 최첨지가 우연만큼 돌리게 되고 잠까지 솔 곳이 들었을 때이다. 그들은 번갈아 번갈아 병인을 주무르던 것도 그만 두고 인제는 다 각기 자리를 정하고 앉아 쉴 판이다. 이쁜이는 병인 옆에 용이는 앞문 턱까지 나와 문을 향하고 앉게 되었다. 이때껏 경황 중에 있었으면서도 순간순간 일일이 용이에게 있어서는 어떤 만족과 만족이 줄로 꿰어진 구슬 같거든 하물며 그 앞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이쁜이의 태도를 말없이 옆눈으로 바라다보고 앉았을 때에 아 이로 말할 수 있으랴. 그는 한참, 또 한참 일없이 한정 없이 앉어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닭이 울기도 여러 횃째다. 그는 멋없다는 듯이 혼자말로.
"인제 가볼가…"
숙었던 이쁜이의 고개는 반짝 들리며 말똥한 눈이 용이에게로 올 때 두 눈은 마주쳐 땅으로 떨어졌었다. 용이는 참아 일어설 수는 없었다. 한참 또 한참 닭이 또 한 홰를 운다. 그는 더 앉았기는 야릇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자 떨치고 서기도 어렵지마는 더 있을 용기도 없었다.
"인제 그만 가지"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슬그머니 이르켜 밖으로 나왔다. 사리문을 저치며 걸어 나오다가 방문 여는 소리에 홱 돌처서자 방문 닫히는 소리는 뒤따라 났다. 봉당에는 이쁜이가 분명히 나와 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 비친 방문에 가로막아 서 있는 처녀를 바라다보고 있는 총각, 지새는 달빛 아래 우뚝 서 있는 사나이를 바라다보고 있는 처녀…
5
편집용이가 이쁜이에게 마음을 두고 나려오는 몇 달 동안에 그의 사랑의 대적을 여러 개 발견하였다. 첫째는 보통학교에 다닌다는 개구진 장난꾼 아이가 하나 이 마을에 있었다. 그 아이는 열 칠팔 세 가량 된 아이로서 이쁜이가 밤저녁으로 물 길러 다니는 틈을 타서 장난을 부린다. 돌팔매로 물동이를 맞추어서 남을 놀래주기, 꽃떨기나 단풍잎을 한 주먹 쥐어다가 이고 오는 동이 물 우에 들뜨르기, 언제인가 이 광경을 본 용이는 참을 수가 없어서 쫓아가 그 아이를 붙들고 혼구녁을 주던 일도 있었고 또 하나는 그 면서기 퇴물이란 자가 낮이 되어 최첨지네 집에 사나이가 없는 꼴을 볼 때에는 뒤 울 넘어로 와서 기웃기웃하며 엿보는 것이었다. 용이가 두 번째나 그 꼴을 보았을 때에 그만 최 점지에게 일러바치서 최 첨지와 그 면서기 퇴물이 서로 말성이 되던 일도 있었다. 또 하나는 건넌 마을에 사는 부자 강 면장이 나이 오십에 이때껏 자식을 보지 못하여서 첩 장가를 들려고 중간에 사람을 노아서 최 첨지에게 말을 들여보낸다는 것은 얼마 전에 들은 일인데 최첨지가 오전 밤에 그 죽다 싶이 하고 살아난 뒤 요새와서는 앓던 신병도 그만하게 되니까 그 문제가 다시 대두를 한다는 데 최 첨지의 의향이 많이 그리로 쏠린다는 말을 용이 제 동무에게 듣고는 낙심 천만에,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되었다. 그리하여 용이는 요새 입맛까지 제첫는지 그다지도 많이 먹던 밥도 잘 먹지를 못하는 터이다.
이날 아침에도 용이가 봉당에 앉아 밥상을 받고는 몇 숫갈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숟갈을 놓아버렸다. 이때, 숭늉 그릇을 들고 와 상 앞에 놓던 이쁜이는 몇 발짝 부엌 쪽으로 물러나가 서드니만 우둑허니 용이를 바라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딱하여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넉넉히 읽을 수 있었다. 물그릇을 집어든 용이는 전일보다 검은 빛이 더 돌고 자위가 더 꺼진 듯한 눈으로 이쁜이의 얼굴을 노략질하여 볼 때, 두 시선은 마주쳤다. 이 찰나에 이쁜이의 날카로운 신경은 은침으로 쪼으는듯 꼭꼭 찔리었다. 용이의 눈은 근심과 원망의 빛으로 가득 찬 듯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용이의 심사를 가장 잘 짐작하는 것 같았다. 거진 무의식적으로 물그릇을 집어다 입에 댄 용이는 물 한 목음을 입에 물자말자 마당에서 홱 품어버리고는 물그릇을 소반 우에 탕 놓으며 벌떡 일어서 이쁜이의 얼굴을 다시 쳐다볼 때, 그 이쁜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성글성함을 보았다. 그는 마당으로 껑충 뛰여내려와 사릿문 밖까지 무의식적으로 걸어나오다가 발길을 탁 멈추고 홱 돌이켜 서며 부엌 쪽을 바라다볼 때, 그때 이쁜이는 부엌 흙실엉(부엌입구에 있는 토대)턱에다가 이마를 대이고 손으로 치맛자락을 쥐어다 눈에다 가려바치고서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어깨도 들석들석 하였다. 비통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그를 바라다보고 있던 용이는 다시 몸을 홱 돌이켜 걸어나오며
"오냐 보자 어느 놈이 죽나…"
그는 갑자기 증오의 감정이 불붙듯 타올랐다. 그것은 자기가 없다는 것을 한탄하는 그런 소극적 생각이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사람의 참된 모든 것을 그릇 털이고 꺾어놓는, 있다는 것, 있다는 놈들이 몹시도 미운 생각이 났었다. 건너 마을 강부자의 얼굴이 눈에 떠오르자 그 사람이 눈앞에 서 있는 듯이 핏대선 눈알을 굴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용이의 분노도 이쁜이의 에처러워함도 아무런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길에 건너 마을에서 꽃가마 한 채가 이 마을로 떠들어오더니만 최첨지네 집에 가서 얼마 동안 지체하다가는 도루 건너 마을로 건너갔었다. 가마채 멘 사람들의 다리가 올 때보다 갈 때가 더욱 무거워 보이는 것을 볼 때에는 그 속에다 이쁜이를 담아 갔음은 분명한 일이다.
6
편집깜박 꺼리는 등잔, 쓸쓸한 방안에 주인과 손은 야위었으나마 긴장한 빛을 띈 얼굴과 마주 대하고 앉아서 숙멀숙멀하는 판이다. 가끔가끔 나는 문밖의 기척에는 주의 깊은 눈빛과 귀로 그쪽을 향하게 된다.
"별수 없어, 우리가 다 공장 안으로 기여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팔린 놈들과 새로 주서다 논 놈들을 모다 내쫓아 버리고 다시 우리가 기계를 타고 앉어서 다시 투쟁을 하세나 그려. 우리가 섯불리 굴다가 쫓겨 나와서 공연히 밖에서만 얼러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니 내일 모임에는 모다 다 같은 행동을 이대로 취하자고 작정을 하세."
"그야 그렇게 하세마는 까딱하면 희생자가 또 나지를 않겠나?"
"그야 물론 희생자가 나겠지. 나부터라도 당할 각오를 하네. 감독을 우리네 아랫목으로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서워서야 우리 일을 어떻게 한단말인가"
주인 사나이의 꽉꽉 찍어 던지 듯하는 말에 저쪽에서도 착착 맞는 듯한 어조로
"나도 그만한 것이야 미리 각오하고 있네마는 감독 살이도 쉬운 일은 아니니 고생도 고생이지마는 우선 자네만 보게 저 어린것들만 보게…"
이 말끝은 좀 이상했다. 주인은 나란히 잠들어 누은 어린 아이들을 찝흐린 눈쌀로 바라다보더니 쓰린 입맛을 한 번 다셨다. 그 입의 표정은 쓰릴 뿐만이 아니라 역증도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번개같이 고개를 돌이키며
"무엇 이 사람 그런 잔말 걱정 그만 두세, 닥친 일 닥친 대로 참고 해 나갈 일이지… 그런데 만일에 내가 일을 당하게 된다면 물론 밖에 있는 동무들이 다 힘써서 도와줄 터이지마는… 우리 여편네란 것 무슨 직업을 하나 붓들어 주어야지. 나 없을 동안에 살아나 나게… 제기를 할 그 놈의 처자란 것이 참 큰 두통이야. 지금 앉아 생각하면 처자 없는 사람이 어떻게 부러운지 몰라… 없는 놈은 처자를 가질 수도 없고 또 이 부로조아 사회의 계집들 같아서는 가지지 않은 것도 좋아…"
"없는 놈이라고 다 처 자식을 못가지겠나마는… 그런데 그것이야 어떻게 되겠는지 나도 여러 사람에게 부탁함세… 자 인제 가겠네"
손은 벌떡 일이나
"오늘은 그 박가가 안 왔던가?"
"박가라니?"
"아 그 공장 지배인의 개 말이야, 감독놈"
"응―아 그 놈 오늘 또 와서 낯짝 뻔뻔하게 하는 말이 이번에 우리를 쫓아내는 데는 자기는 사무소에 가서 극력으로 말렸다고… 그리고 또 언제나 하는 그 소리를 또 하네그려.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오늘 우리 조선 사람 처지에서 오직 하나인 그 공장을 우리의 다 같은 힘으로 붓들어 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기에 내 말이 자본가는 조선 사람이고 어뎃 사람이고가 마찬가지가 아니냐. 그리고 더구나 지금 이 공장 주인은 일본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고 하니까 펄쩍 뛰겠지. 그래 내 또 들이댓지 때때로 이는 그 사람의 집 연희에 그 문 깐에 모여드는 자동차는 누가 탄 자동차이며 우리가 이 파업을 일으킬 때 몰려와 우리를 못 살게 굴며 내쫓던 것은 누구냐고… 그래 가지고도 걸핏하면 조선 조선만 앞에다 내세우니 그것이 도리어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고 들이 댓드니 우물쭈물하지 않겠나. 그리고 또 들어보게―나를 살살 꼬이데그려. 그렇게 공연히 딱쇄를 부리지 말고 자기와 같이 일만 잘하고 참하게 굴어서 주인이나 지배인의 눈에만 들면 살기는 걱정 없으리라고… 아 요따위 소리를 하겠지. 내 그만 딱장을 주어 쫓아버렸지. 그런 괫심한 놈 봐, 우리네가 굶어서 골아 죽을지언정… 고놈 다시 또 오거든 오금을 분질러 보내야지… 에이 깍정잇놈?"
"고놈 못 오게 하게 무슨 탐정을 하러 살살 오느니… 자 그만 가네"
7
편집손은 나갔다. 방문 다치는 소리에 잠들었던 갓난이가 깨여 운다. 그는 토닥토닥 두드려 재우랴 들었으나 아이는 이내 보채기만 한다. 배가 곺아서 그럼인가 방이 차서 그럼인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무릎 우에 들처 안고서는 잠을 재운다.
"해 있어서 나간 계집년이 이때 안 올 때에는 웬 까닭이야 저녁이라고는 찬밥 한 술을 두고 나가서… 경을 칠년… 아모리 없는데 쪼들려 지내기로서니 그럴 수가 있는가 망할 년… 사회제도가 근본으로 잘못되어 그런 것이니 약한 계집만 나물할 것도 아니지마는 어쨋든 망한 것은 계집이고 세상도 망한 세상이야… 그런 꼬락선이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얼른 오도록 하게 해야지… 주리를 할…"
그는 품에 잠든 아이를 연해 무의식적으로 토닥토닥하며 역증난 푸념을 잇대어 한다.
"나도 제게 향하는 정이 처음 같지는 않지마는 저도 내게 대해서 그렇게 쓸쓸하여 갈 수가 있을가?… 더구나 없고 신산한 살림에 쪼들려서 그만… 사랑이고 무엇이고 다…"
그는 안해을 원망하는 생각, 세상을 원망하는 생각이 뒤섞여 나온다. 아니다 그가 좀더 냉정하게 생각할 때에는 안해보다도 사회를 원망하는 생각이 더 났었다.
"내가 벌써 자식을 둘째나 났구나―… 서울 온 지도 그럭저럭 벌써 사 년이로구나―제리를 할…"
동무와 같이 큰일을 의논할 때의 억새떨기같이 뺃처 올랐던 신경은 안해를 원망하는 생각에 한풀이 꺼저가드니 다시 더 회상의 골작으로 나려 갈 때에 바람에 쏠린 풀 잎덕같이 착 가라안고 말았다. 거기에는 옛날에 들리던 새 소리, 물소리도 들리고 가다가는 바위에 부드치는 폭포소리도 들리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묵은 곡조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묵은 그림을 다시 펼쳐놓는 셈이다.
생각하면 벌써 사년 전 일이다. 그가 새말 최첨지네 집에 들었다가 주인딸 이쁜이와 같이 눈이 맞고 정이 들게 되었다가 그 몹쓸 강부자(돈)에게 그만 이쁜이를 빼앗기게 되었을 때에 그는 떠도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서 날과 밤으로 앞 주막에 가서 술타령만 하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최첨지는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일 해 여들에를 두고 가지 않던 최첨지네 집장사 마당에를 그는 가게 되였다. 자기가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책망한 일도 있었지마는 그래도 행여나 마지막으로 이쁜이 얼굴이나마 한번 더 보좌함이었었다. 사실 그때, 그는 최첨지네 집에서 삭영돈을 벌써 찾아 들고서는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던 판이다.
가지를 쪽진 이쁜이가 앞에서 스처지나치는 꼴을 보고 우으로 치뜨던 그의 눈에는 하늘빛이 처음으로 붉은 줄을 깨달았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도 참았었다. 저녁상식 때 섫있게 골아저우는 이쁜이 가슴 슬픔 속에는 자기를 생각하는 슬픔도 꺼들어자기 않았나 하고도 생각하였었다. 과연 초종날 밤차령하던 새벽 모든 사람이 곯아떨어졌을 때, 그 집 굴뚝 모퉁이에서는 새각씨 이쁜이가 용이의 품에 안겨 느껴 울음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용이가 불덩이 같은 더운 손으로 색씨의 등을 어루만지며 나즈막이 떨리는 말소리로
"왜 부자 남편을 얻어갔으니 여북 좋텐데 무엇이 부족해서?…"
할 때에 저쪽에서는 더 밧삭 붓들고 매이달리며
"싫어 나는 부자고 무엇이고 다 싫어, 나는 굶어죽드라도 당신을 따라 갈 테야"
하고 더 울었다.
그 이튿날 장사를 마치고난 밤중에 그들은 사십 리나 되는 정거장 길을 남 몰래 걸어와서 서울차를 타고 왔던 것이었다.
8
편집처음 와서 살던 그때에는 핏줄이 부풀고 사랑이 뜨거운 그들이라 여간한 고생이 닥치나 가난이 닥치나 그런 것이 그들의 사랑을 덜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참으로 지튼 단 꿈에 파묻히고 말았었다. 용이가 날마다 하는 샌 날품팔이의 고된 짓들은 그까짓 것으로는 용이의 생각에 문제 거리도 안 되는 것이었었다.
그러나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가난과 신고가 거듭거듭 몰려올 제, 그들이 그 처음에 맛보던 나긋나긋하고 새롯하던 정의 맛은 다 가시고 묵은 된장 맛같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기특하고 텁텁한 된장 맛이 평생을 가기로 가서질 리야 있으랴마는 그 몹쓸 가난이란 것이 평화의 보금자리를 뒤집어놓고 그 산돼지의 주둥이같이 함부로 파고 함부로 삼키는 이 악독한 사회제도 밑에 '돈'이란 것이 어린 병아리같이 피리피리하는 사람의 마음, 더구나 여자의 마음을 통틀어 집어삼킴에야 어찌하랴.
그들은 근년에 이르러서는 때때로 싸움을 하고 드잡이까지 하기가 예사다. 더구나 지난날 안해의 거듭하는 해산 머리를 당하자 때마추어 이땟껏 다니던 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어 실직을 하게 됨에 켜 묵은 가난이 더 한 켜를 얻게 되어 그들은 참으로 기가 질렸다.
안해는 다행이 순산하고 지금은 벌써 나다니게도 되었다마는 이번 통에 아주 그만 진절머리가 머릿 끝을 빼여 가도록 났었다. 그리하여 안해의 말을 빌어 한다면 "사람이 이러고만 밤낮 살면 무엇을 해, 아주 지긋지긋해 죽겠어."
할 때, 그 '지긋지긋'이란 소리는 매몰스럽고도 악착스럽게 용이에게 들렸다.
"그러면 어떻게 난 참고 살 일이지 새 사회이나 올 때나 바라고… 벌써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 된 바에야 말로만 탓하면 무슨 소용이 잇담, 덤벼들어 뜯어서 엎어 놀 생각을 해야지…"
"앗다 제기 밤낮 그런 소리만… 오기는 언제 오고 동댕이치긴 언제하는 거야?" 죽을 때에… 죽은 뒤에… 말로만 참으라면 되나 참을 수가 있어야 참지 살 수 있어야지?"
안해의 톡톡 내부치고 쏘는 소리에 그만 남편은 역증이 더럭 나서
" 이 시대 계집년이란 천생 하는 수 없어… 남편을 잘 알거나 모르거나도 고사하고 사람다운 데가 있어야지… 망한 계집년들…"
"사람다운 건 뮛이 사람다운 게야… 되지 않은 소리 듣기 싫어… 사람은 사는 게 사람이지 아모 짓이라도 해서 잘 사는 것만 첫째지."
"아따 주리를 할 년 그럴 테면 또 가렴으나 돈 있는 놈에게로…"
"가라면 누가 겁나서 못 가남… 걱정 말어 갈 때도 있을 터니…"
"어서 가거라 어서 가, 이 년… 너같이 뿌르죠아의 마음씨를 그저 가진 년허고 나 같은 사람하고는 살수가 없다."
" 아따 똥대가리같이 뿌르지고 어쩌고… 갈 테야 걱정 말어… 걱정을 말어…"
"저런 쳐죽일 년… 이 따위 계집년 ×××와 한가지 쳐죽여야 하겠다."
하고 치고 싸우고 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는 지난 일을 이리저리 죽 한번 생각해 내려왔다. 그러나 이 꿈도 세 살 먹은 아들 우는 소리에 깨어지고 말았다. 일어나 앉으며 고사리밥 같은 두 손으로 눈을 부비며 우는 아들을 끌어 잡아다니며
"아가 우지 말아, 응 간난이 또 깬다 응"
9
편집그는 부드러운 아버지의 말소리로 달랬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 바람에 가난이도 깨서 운다. 아주 아우성 판이다. 용이는 잔뜩 찌프린 상으로
"이런 육시를 할 년이 왜 그저 안 와… 이 년 오기만 해봐라… 다리를 분질러 놀 터이니…"
하고는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계집년이 필연코 무슨 딴 일이 있는 모양이지 공연히 마음이 들떠 돌아다니는 풀이 ×××러 다난단 말인가… 아마 그 박가놈의 집에 갔기도 쉽지… 그 놈이 있는 놈에게 개 노릇을 하여가며 모아놓은 돈양도 있는 김에 돈 자랑을 하고 슬슬 꾀는 지도 모르지…이 제도 밑에서는 어떤 년 쳐놓고 매음 안 할 년이 있게 되었어야지… '부자도 싫여, 굶어 죽드라도 당신을 따라 갈 터야…' 흥"
이 '흥' 소리만은 입 밖에 내었다.
"제기를 할 내가 이렇게 집 속에서 속을 상하고 고생하느니 참으로 감옥에나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났겠다."
그는 훌적 훌적 울고 있는 아들을 끌어안아 누이며 자기도 따라 누어 아이들의 잠을 재우려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도 또한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를 잤든지 한숨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앉아보니 어느 겨를에 안해가 와서 간난아이를 끼고 잠이 들었다. 그는 안해가 미운 생각이 펄쩍 나서 주먹으로 내어 갈기로 싶었다. 그러나 그는 참고 말았다. 자리를 물러 나와 앉아 담배를 피어대며 방금 감옥 속에서 꿈꾸던 일을 되풀이 생각하였다. 여러 사람과 한가지 공장에서 야단들을 치다가 경찰 놈에게 유치장으로 붓들러 가던 일, 그러다가 또 감옥으로 넘어가던 일, 감옥 독방 안에서 처자를 생각하고 불상한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리던 일, 그러다가 내처 울던 일, 그 자기 울음소리에 그만 놀래서 잠이 깨었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이켜 자기 처자를 돌아다볼 때, 갑자기 걸린 생각이 났었다. 그리고 그는 또 거기다 곁들어
"만일에 저것이 참으로 나를 잘 알아준다 할 것 같으면… 참으로 노동자의 계집이될만한 자격이 있는 계집이라면…"
하고 그렇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볼 때, 그는 뼈가 마디마디 으서지는 듯이 아팠다. 불상하였다. 그는 자기 덥헛던 이불을 걷어서 안해를 덥어주었다. 안해도 무슨 꿈을 꾸는지 '으흥'하고 우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손으로 안해를 흔들어 깨우며 정다운 목소리로
"이봐 이봐"
"으흥―"
하고 안해는 돌처누으며
"아이고…"
이 '아이고' 소리 밑에는 '꿈으로 고약하다' 소리를 의례히 할 터이나 꿈이 야릇한 까닭으로 남편 앞에서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꿈은 무슨 꿈이었던가?… 어떤 분통같이 꾸민 방 속에서 박감독과 같이 재미있게 살판에 용이가 칼을 들고 들어와서 배를 타고 앉아 칼로 겨누며
"너 같은 년은 죽어야 한다. ×는 사람의 원수, 더구나 남편의 원수 놈과 한가지 배가 마저 사는 년은 용서 할 수 없다 죽어 보아라"
하고 칼로 지르랴 할 판에 모서리를 치며 소리친 것이 그 잠꼬대였다.
봄밤은 짧으다. 행길에는 벌써 새벽 구르마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용이는 문을 탁 차고 밖으로 나섰다.
이 날의 큰일을 위하여 나섰다.
그리고 난 뒤, 그들은 과연 꿈과 같이 되고 말았다. 용이는 감옥으로 이쁜이는 박가에게로.
10
편집삼 년의 세월은 또 갔다. 찌는 듯한 어느 여름날 낮결이다. ×××형무소에서 아침 곁에 출옥하였던 용이는 병인 차에 다시 실려 어느 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누르고 희고 부어서 들뜬 그의 얼굴은 눈을 감은 채 죽은 듯이 뉘어있을 따름이다. 앞에서 끄는 이도 그의 동무요 뒤에서 미는 이도 다 옛날 그이 동무였다.
그들은 더운 땀을 펄펄 흘리며 낙원동 길을 나려올 때에 뒤에서 별안간 '뿡―' 소리가 요란히 나며 자동차 한 대가 달려와서는 지나간다. 그래서 그들은 자동차 몬지를 뒤집어쓰며 옆으로 비켜섰었다. 그 자동차 안에서 잠자리 날개 같은 여름옷을 몸에 걸친 여인이 하나 타고 또 옆에는 젊은 양복 신사가 하나 붙어 앉았다. 그 여자는 옛날의 이쁜이였다. 그는 지금 어떤 백만장자 아들의 셋째 첩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