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녁을 먹고서 종로 거리로 나온 것은 그럭저 럭 여섯 점 반이 넘었다. 너펄대는 우와기 주머니에 두 손을 꽉 찌르고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올라오자니 까,

「얘 !」 하고 팔을 뒤로 잡아채며,

「너 어디 가니 ?」

이렇게 황급히 묻는 것이다. 나는 삐긋하는 몸을 고 르잡고 돌아보니 교모를 푹 눌러쓴 된철이다. 번이 성 미가 겁겁한 놈인 줄은 아나 그래도 이토록 씨근거리 고 긴 달려듦에는 하고,

「왜 그러 니 ? 」

「너 오늘 콩쿨 음악대횐 거 아니 ?」

「콩쿨 음악대회 ? 」 하고 나는 좀 떠름하다가 그 제서야 그 속이 뭣인 줄을 알았다. 이 황철이는 참으 로 우리 학교의 큰 공로자이다. 왜냐면 학교에서 운동 시합을 하게 되면 늘 맡아놓고 황철이가 응원 대장으 로 나선다. 뿐만 아니라 제 돈을 들여 가면서 선수들 을(학교에서 먹여야 번이 읏을 건데 ) 제가 꾸미꾸미 끌고다니며 먹이고 놀리고 이런다. 그리고 시합 그 이 튿날에는 목에 붕대를 칭칭하게 감고 와서 똑 벙어리 소리로

「어떠냐? 내 어제 응원을 잘해서 이기지 않았 니 ?」 하고 잔뜩 쁨을 내고는,

「그저 시합엔 웅원을 잘해야 해 ! 」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영영 남 웅원하기에 목이 잠 기고 돈을 쓰고 이래야 되는, 말하자면 괄자가 옹원 대장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콩쿨 음악대회에 우리 반 동무가 나갔고 또 요행히 예선에까지 붙기도 해서, 놈이 어제부터 웅원대 모으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에 게는 아무 말도 없더니 왜 붙잡나 싶어서,

「그럼 얼른 가보지, 왜 이러구 있니 ?」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암만해도 사람이 부족하겠 어」 하고 너도 같이 가자고 괄을 막 잡아 끄는 것이 다.

「너나 가거라, 난 음악회 싫다. 」

나는 이렇게 그 손을 털고 옆으로 떨어지다가,

「재 ! 재 ! 내 이따 나오다가 돼지고기 만두 사주 마」 함에는 어쩔 수 없미 고개를 모로돌리어

「대관절 몇 시간이나 하냐 ? 」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대답이 끽 두 시간이면 끝나리라 하므로 나는 안심하고 따라섰다.

둘이 음악회장 입구에 헐레벌떡하고 다다랐을 때는 우리반 동무 열 세 명은 벌써 와서들 기다리고 섰다. 저회끼리 낄낄거리고 수군거리고 하는 것이 아마 한 창들 흥계가 벌어진 모양이다.

황철이는 우선 입장권을 사가지고 와 우리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며 명령을 하는 것이다. 즉 우리들이 네 무더기로 나누어서 회장의 전후 좌우로 한구석에 한 무데기씩 않고 시치미를 딱 떼고 있다가 우리 닥 사만 나오거든 덮어놓고 손바닥을 치며 재청이라고 악을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 암만 심사원이라도 청중 을 무시하는 법은 없으니까 일등은 반드시 우리의 손 에 있다고 하나 다른 악사가 나을 적에는 손바닥커녕 아예 끽소리도 말라 하고 하나씩 욜들고는 그 귀에다,

「알았지, 응 ? 」

그리고 또,

「알았리, 재청 ?」 하고 꼭꼭 다진다.

「그래그래 알았어 ! 」

나도 쾌히 깨닫고 황철이의 뒤를 따라서 회장으로 올라갔다.

새로 건축한 넓은 대강당에는 벌써 사람들 머리로 까맣게 깔리었다. 시간을 기다리다 지루했는지 고개들 을 길게 쁨고 수선스레 들어가는 우리를 돌아본다. 우 리는 황철이의 명령대로 덩어리 덩어리 지어 사방으 로 헤어졌다. 나는 황철이와 또 다른 동무 하나와 셋 이서 왼쪽으로 뒤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일곱 점 정각이 되자 북적거리던 장내가 갑자기 조용하여진다. 모두들 몸을 단정히 갖고 긴장된 시선을 모았다. 제일 처음이 순서대로 성악이었다. 작달막한 젊은 여자가 나와 가냘픈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귀가 간지럽 다. 하기는 노래보다도 조그만 두 손을 가슴께 고부려 붙이고 고개를 개웃이 앵앵거리는 그 태도가 나는 가 엾다 생각하고 하품을 길게 뽐았다. 나는 성악은 원 좋아도 안하려니와 칟반 음악에도 씩씩한 놈이 아니 면 귀가 가려워 못 듣는다.

그 담에도 역시 여자의 성악, 그리고 피아노 독주, 다시 여자의 성악‥‥‥ 그러니까 내가 앞의 사람 의 자 뒤에 고개를 틀어박고 코를 곤 것도 피리 무리는 아닐 듯깊다.

얼마쯤이나 잤는지는 모르나 옆의 황철이가 흔들어 깨우므로 고개를 들어 보니 비로소 우리 악사가 등장 한 걸 알았다. 중학교복으로 점잖이 바이을린을 켜고 섰는 양이 귀엽고도 한편 앙증해 보인다. 나도 쫄음을 참지 못하여 눈을 감은 채 손바닥을 서너 번 때렸으 나 그러나 잘 생각하니까 다른 동무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나만 치는 것이 아닌가. 게다 황철이가 옆을 콱 치면서,

「이따 끝나거든」 하고 주의를 시켜 주므로 나도 정신이 좀 들었다.

나는 그 바이을린보다도 웅원에 흥미를 갖고 얼른 끝나기만 기다렸다.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목이 마른 듯이 손바닥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치 고도 손바닥이 안 헤지나 생각도 하였지만 이쪽에서,

「재청이오 ! 」 하고 악을 쓰면,

「재청 ! 재청 ! 」 하고 고함을 냅다 지른다.

나도 두 귀를 막고 (재청 ! )을 연발했더니 내 앞에 않은 여학생 계집애가 고개를 돌리어 딱한 표정을 하 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우리들은 기가 올라서 웅원을 하련만 황철이는 시무룩허니 좋지 않은 기색이다. 그 까닭은 우리 십여 명이 암만 악장을 쳐도 궝하게 넓 은 그 장내, 흐 청중으로 보면 어서 떠드는지 알 수 없을 만치 우리들의 존재가 너무 회미하였다. 그뿐 아 니라 재청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말쑥이 차린 신사 한 분이 바이을린을 옆에 끼고 나오는 것 이다.

신사는 예를 멋지게 하고 또 역시 멋지게 바이을린 을 턱에 갖다대더니 무슨 곡조인지 아주 장쾌한 음악 이다. 그러자 어느 틈에 그는 제멋에 질리어 팔뿐 아 니라 고개며 어깨까지 바이을린 채를 따라다니며 꺼 떡꺼벼하는 모양이 얘, 이놈 참 진짜로구나, 하고 감 탄 안 할 수 없다. 더구나 압도적 인기로 청중을 매흑 케 한 그것을 보더라도 우리 악사보다 몇 배 뛰어남 을 알 것이다.

흐러나 내가 더 놀란 것은 넓은 강당을 뒤엎는 듯 한 그 환영이다. 일반 팔중의 시끄러운 박수는 말고 위충에서(한 삼사십 명 되리라) 떼를 지어 악을 쓰는 것이 아닌가. 재청소리에 귀청이 터지지 않은 것도 다 행은 하나 손뼉이 모자랄까봐 발까지 굴러가며 거기 에 장단을 맞추어 부르는 재청은 참으로 섹신이 난다. 음악도 이만하면 나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생각하 였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어깨가 실룩실룩하다가 급 기야엔 나도 따라 발을 구르며 재청을 청구하였다. 실 상 바이을린도 잘했거니와 그러나 나는 바이올린보다 씩씩한 그 응원을 재청한 것이다. 그랬더니 황철이가 불관 일어서며 내 어깨를 잡아끈다.

「이리 좀 나오너라,」

이렇게 급히 잡아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변소로 끌고 와 세워 놓더니,

「너 누굴 응원하러 왔니 ?」하고 해쓱한 낯으로 입술을 바르르 떤다. 이놈은 성이 나면 늘 이 꼴이 되 는 것을 잘 알므로,

「너 왜 그렇게 성을 내니 ?」

「아니 너 뭐하러 예 왔냐 말이야?」

「웅원하러 왔지 ! 」 하니까 놈이 대뜸 주먹으로 내 복장을 콱 지르며,

「예이 이자식 ! 우리 건 고만 납작했는데 남을 응 원해 줘 ?」

그리고 또 주먹을 내대려 하니 암만 생자해도 아니 꼽다. 하여튼 잠깐 가만히 있으라고 손으로 주먹을 막 고는,

「너 왜 주먹을 내대니, 말루 옷해 ? 」하다가,

「이놈아 ! 우리 얼굴에 똥칠한 것 생각 못허니 ?」

하고 또 주먹으로 대들려는 데는 더 참을 수 없다.

「돼지고기 만두 안 먹으면 피만이다 ! 」

이렇게 한 마디 내뱉고는 나는 약이 올라서 부리나케 충계로 내려왔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