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대동강 동쪽 해안을 이 리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라는 동리가 있다. 그 동리는 그리 작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이 결코 비루하지도 않으며 업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범네’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쁘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팔구 세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이 동리로 온 것은 두어 해 전이니 황진사라는 육십여 세 되는 젊지 않은 백발옹과 어디로선지 표연히 이사하여 거한다. 그 후 몇 달을 지나서 범네의 집에는 삼십 세 가량 된 여인이 왔으나 역시 타향인이었다. 하는 일은 없으나 생활은 흡족한 듯이 보이며 내객이라고는 일 년에 한 번도 없고 동리 사람들과 사귀지도 않는다. 그런 고로 이 동리에는 이 범네의 집안 일이 한 의심거리가 되어 하절 장마 때와 동절기인 밤에 담뱃 때들 사이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범네라는 미소녀는 그 이웃 소녀들과 사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혹 때를 타서 나물하는 소녀들을 바라보고 섰으면 그 이웃 소녀들은 범네의 어여쁜 용자(容姿)에 눈이 황홀하여져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에 백발옹은 반드시 언제든지

“야 ─ 범네야 ─ 야 ─ 범네야”하고 부른다. 범네는 가엾은 모양으로 뒤를 돌아보며 도로 들어간다. 또한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삼인이 각각 타향 언어를 쓰는 것이라. 옹(翁)은 순연한 평양 사투리요 범네는 사투리 없는 경언(京言)이며 여인은 영남 말씨라. 또 범네는 옹더러는 ‘할아버지’, 여인더러는 ‘어멈’이라고 칭호한다. 무식한 촌 소년들은 그 여인이 범네의 모친인가 하였다. 촌사람들도 이렇게 외에는 범네의 집 내용을 구태여 알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들이 이사하여온 지 만 이 년이나 지난 하절이라.

어떤 장날 마침 옹은 오후 이 시경에 외출하여 어슬어슬한 저녁때까지 귀 가치 않았더라. 범네는 심심함을 못 이김이던지 싸리 문 안에서 문을 방긋이 열고 내다보고 섰다. 그 때 동리 이장의 딸 특실이가 그 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모양을 보고 살며시 문 밖으로 흰 얼굴만 나타내어 자기를 쳐다보는 특실이를 향하여 미소하여 은근하게

“네가 특실이냐?”

특실이는 반가웁게 그 지방말로

“응 너희 할아버지 어디 가셨니?”

범네는 어여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벌써부터 성내에 가셨는데…….”

말 마치기 전에 은행 껍질 같은 눈꺼풀이 발그레하다. 두 소녀는 잠깐 잠잠하다.

“너는 아버지는 안 계시니?”

“아버지는 서모하고 큰 언니하고 서울 계시구…….”

또다시 눈꺼풀이 붉어진다.

“지금 같이 있는 이는 너의 누군가?”

“외할아버지 하고 밥 짓는 어멈이다…….”

두 소녀의 담화가 점점 정다워 갈 시에 멀리서 옹의 점잖고 화평한 모양이 보였다. 범네는 특실이를 향하여 온정하게 “내일 또 놀러오너라”하고 걸음을 빨리 하여 옹의 옷소매를 붙들며 옹의 귀가를 무한히 기뻐한다. 옹은 범네의 손목을 끌어 싸리문으로 들어가며

“심심하든?”한다.

범네가 이같이 특실이와 이야기 한 것도 이 년이나 한 동리 앞 뒤 집에 살았지만 처음이더라.

혹독한 서중(暑中)에 기다리던 추절이 기별 없이 와서 맑고 시원한 바람에 오동잎이 힘없이 떨어지매 년년이 변치 않고 돌아오는 추석명절이 금년에도 돌아왔다. 도(都)에나 비(鄙)에나 성묘 가는 사람이 조조부터 끊일 새 없이 각기 조선(祖先) 부모 부처 자녀의 고혼(故魂)을 위로키 위하여 술이며 음식을 준비하여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북촌 길로 향한다. 새마을 동리의 범네와 옹도 누구의 묘에 가는지 기중에 끼었더라. 어느덧 해는 모란봉 서편에 기울어지고 능라도 변에 연연(涓涓)한 세파(細波)는 금색을 대(帶)하였다.

이슬아침과 주간에 그리 분요(紛擾)하던 성묘인들도 지금은 끊어져 벌써 청류벽 아래 신작로에는 얼근히 취하여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이 사이사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동강 건너 새마을 동리를 향하고 바삭바삭 모래를 울리는 노유(老幼)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심히 피로하여 귀촌하는 옹과 범네라. 범네의 발뒤꿈치에 내려드리운 검은 머리가 제 윤에 번지르하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듯이 흰 양협에 앞이마 털이 한두 올 늘어져 시시로 불어오는 청풍에 빛날 리어 그의 아름다움을 더하였다. 풋남순인 치마에 담황색 겹저고리 입고 분홍신을 신었다. 실로 새마을 동리 소녀들과는 ‘군계중에학’이라. 옹도 무언, 소녀도 무언. 소녀의 어여쁜 얼굴에는 어린 아해에게는 없을 비애에 지친 빛이 보인다. 강안에는 석향을 준비하는 촌부들이 있다. 처음 보는 바가 아니로 대 이날은 더욱이 호기심을 일으켜가며 주목한다. 기중 한 아이

“어드메 살던 아해인지 곱기도 하다.” 또 한 아이

“늘 보아도 늘 곱다. 한 번 실컷 보았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하하 웃으며

“범네야 어디 갔다 오니?”하고 묻는다. 범네는 촌부들을 향하여 눈만 웃으며 입 다물은 채 옹의 뒤를 따른다. 이때에 대동강 외 우뚝 솟은 난벽(卵壁)의 이층 양옥에서도 이편을 향하여 망원경을 눈에 대이고 바라보는 외국인인지 조선인인지 분별키 어려운 신사가 있다. 신사는 급히 상노를 부른다. 상노는 주인의 명을 받아 문전 녹색 소주(小舟)에 제등을 달고 속히 저어 강안을 향하여 배 대었을 때는 옹과 범네가 새마을에 들어갔을 때이라.

신사는 새마을 가는 길을 두고 다른 동리의 길로 향하였다. 그 신사가 낙심한 안색으로 강안에 돌아왔을 때에는 동천에 둥근 달이 맑은 광선을 늘 이어 암흑한 곳 몇 만민에게 은혜 베푼 때이니 평양 대동강문 외에는 전등빛이 반짝반짝 불야성이오 강 위에는 오늘이 좋은 날이라고 선유하는 소선(小船)이 루비 홍옥 같은 등불을 밝히고 남녀 성을 합하여 수심가를 부르며 오르락내리락한다. 신사는 실심한 듯이 강가에서 바라보고 섰다. 한참 만에 힘없이 배에 올라 도로 저어 저편에서 내리어 조국장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신사는 그 별장 주인인 듯싶다.

강안에서 신사의 모양을 본 촌부인 중에 ‘언년어멈’이라는 남의 일 참견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보고 싶은 범네도 볼 겸 범네의 집을 찾아가 신사의 일을 고하였더라. 옹은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천연스럽게 언년 모에게 감사하였다. 언년 모가 돌아간 후 두 시 가량이나 지나 옹과 범네는 동리 이웃에게 고별하려고 이장의 집을 심방하였다. 옹이 이장의 집을 심방함도 이사 왔을 시와 이번뿐이라.

동리 머슴들이 행담(行擔) 칠팔 개와 기타 기구를 강안으로 나르고 옹과 범네의 뒤에는 그 집 여인과 인심 후한 이웃 사람들이 별로 깊이 사귀었던 정도 아니건만 전별차(餞別次)로 따라 나온다. 강가에는 마침 물아래로 가는 배가 있다.

잔잔한 파도는 명랑한 월야의 색채를 비치었다.

선인(船人)이 준비 다 됨을 고한대 옹은 서서히 전별 나온 이웃 사람들에게 고별하였다. 동리 사람들은 소리를 합하여 여중(旅中)의 안녕을 축 하였다. 그 소리에 산천까지 소리를 합하였다. 범네의 흰 얼굴은 월광을 받아 처참히 보인다. 백설 같은 담요를 두르고 오슬오슬 떠는 모양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범네도 떠는 목소리도 인사를 마치고 옹의 손을 잡고 차박차박 걸어 뱃머리에 오르다가 고개를 돌리며 둥글고 광채 있는 눈으로 동리 사람들을 한 번 더 본다…….

밤은 깊어 사방이 적막한데 옛적부터 기 억만 년의 비밀을 담은 대동강물이 고금을 말하려는 듯이 가는 물결 소리를 낸다. 배 젓는 노 소리는 지긋지긋 철썩철썩 심야의 적막을 파한다. 배가 물아래를 향하여 삼단 쯤이나 갔을 때에 특실이가 “범네야 잘 가거라 ─”하매 저편에서도 범네가 “특실 아 잘 있거라 ─”한다. 그 소리가 양금 소리같이 떨리어 들린다. 촌인들은 배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고 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그곳에서 의논이 분분하여 물이 밀어 그들의 발을 적시는 것도 몰랐더라. 이장은 저녁 때 일을 언년 모에게 듣고 머리를 기울여가며 생각하더니 한참 만에 언년 어멈을 향하여

“그래 그 신사는 어디서 옵디까?”물었다. 언년어멈은 원시(遠視)를 잘하는 양이라

“저기 보이는 우뚝 솟은 이층집에서 시커먼 것을 눈에 대고 보더니 …….”

이장은 또 한 번 머리를 기울였다.…… 한참 만에 이제야 비로소 수년래의 의심을 푼 듯이

“알았소. 범네는 그렇게 봄에 자살한 조국장 부인의 기출인 가희 아기구려.”

일동은 무슨 무서운 말을 들은 듯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장은 한숨을 지으며

“불쌍한 아해?”하고 부르짖는 듯이 말하였다.

이는 연전 가정의 (年前) 파란으로 인하여 자살해버린 조국장 부인의 기념으로 끼친 일녀 가희니 외양과 심지가 과히 아름다움으로 그 반대로 그 외조부가 개명하여 범네라 한다.

가희의 모씨는 평양성 내에 그 당시 유명한 미인이기 때문에 피서차로 왔던 조국장의 간절한 소망에 이끌리어 그 부인이 되었었다. 부인은 재산가 황진사의 무남독녀이니 십사 세에 그 모친이 별세하매 그 부친 황진사가 재취도 아니하고 금지옥엽 같이 기른 바이라. 누가 뜻하였으리오. 그 옥여(玉輿)가 형극으로 얽은 것인 줄이야. 조국장은 세세로 양반이라. 농화(弄花)에 교(巧)하고 사적(射的)에 묘(妙)하다. 저는 세 번 처를 바꾸고 첩을 갈기도 십여 인이라. 화류에 놀고 촌백성의 계집까지 희롱하였고 그의 별업(別業)에서는 주야를 전도하고 놀았다. 부인이 그에게 가(嫁)하여 그 딸 가희를 낳았다. 육(肉)의 미(美)는 싫어지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매 남편의 난행은 부인의 불행과 같이 자랐다. 새로 들어온 첩은 남편의 사랑을 앗았다.

남편은 친척 간에도 끊었다. 전처의 딸은 매사에 틈을 타서 부인을 무함(誣陷)한다. 사랑을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 자유를 원하여도 얻지 못하고 이별을 청하여도 안 들어 의심 받고 학대 받고 갇혀 비관하던 나머지에 병든 몸을 일으켜 평양의 별장에서 자살하였다. 길바닥에 인마의 발에 밟힌 이름 없는 작은 풀까지 꽃피는 사월 모일에 인세(人世)의 꽃일 이십사 세의 젊은 부인은 단도로써 자처(自處)하였다. 가련한 부인의 서러운 죽음이 기시에는 원근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이 느끼었더라. 고어에 ‘사람은 없어진 후 더 그립다’는 것 같이 기후 조국장은 얼만큼 정신을 차려 얼마큼 서러워도 하였다. 그러나 늦었더라. 기후 조국장은 부인 생시보다도 가희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 외조부 황진사는 조국장의 첩이 그 총애를 일신에 감으려고 하는 간책이 두려워 가희와 함께 가엾은 표랑의 객이 되었다. 하시에나 표랑객인 가련한 가희에게는 춘양려일(春陽麗日)이 돌아올는지 ─ 절기는 하추동(夏秋冬) 삼계(三季)가 지나면 다시 양춘(陽春)이 오건만 ─ 불쌍한 어머니의 불쌍한 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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