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파리/별건곤 5호

제법 봄날이다.

저녁 후의 산보 격으로 천천히 날러 나스니 어두어가는 서울 장안의 길거리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히기 잘해야 잘 살고 그짓말 잘 해야 출세를 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데서 얼마나 마음에 업는 그짓말을 잘 발너 맛첫든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즉이 먹고 나슨 놈들은 『내가 그짓말 선수다.』 하고 점잔을 뽐내면서 거러 가는 곳이 무러볼 것 업시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의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슬한 허리를 부즈런히 꼽으리고 북촌으로 북촌으로 곱이 끼여 올러가는 놈들은 읏저다가 그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 배워서 착하게 나어논 부모만 원망하면서 벤또 끼고 밥 엇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뭇지 안어도 저녁밥 먹으려고 집으로 긔여드는 것이다.

그 중에도 그 오고 가는 복잡한 틈에 간간히 일홈 놉흔 유명한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넉을 닐코 부럽게 바라보고 우러러 보고 하는 것은 그가 치마라 하는 굉장한 옷을 닙고 마음에 업는 우슴을 잘 웃는 재조 덕으로 누구보다도 훌륭한 팔자를 누리게 된 — 사람놈들의 세상치고는 가장 유명한 선수인 까닭이다. 그럿케 유명한 선수가 팔다가 남은 고기를 털 외투에 싸가지고 송곳가튼 구두를 신고 갸웃둥 갸웃둥 지나가시는 그 엽헤서는 잇흠을 팔고도 못다팔고 남은 썩은 비웃(청어)을 엇더케던지 아모에게나 속혀 넘기려고 『비웃이 싸구료, 비웃이 싸요. 갓 잡은 비웃이 싸구료.』 하고 눈이 벌개가지고 외치고 잇다. 냄새는 날 망정 바로 펄펄 뛰는 비웃이라고 악을 쓰고 떠드는 꼴이야 제법 장래 유망한 성공가가 될 자격이 잇다 할 것이다. 대톄 사람놈들의 세상처럼 걱구로 만 된 놈의 세상이 또 어데 잇스랴 바른 말만 해 보겟다는 내가 도리혀 어리석은 짓이지...

앗차차 여긔가 어데냐.

하하 이것이 서울 복판에 새로 뚤렷다는 신작로구나. 신작로는 의레히 이럿케 쓸쓸스런 법인가? 하하- 이것이 말썽만튼 축동○ 그러나 지금은 조선 제일의 문부호문 대감댁이 되엿다지... 원래 문씨의 집이 든 것이 가튼 문씨의 집이 되엿구면... 사람만 밧귀엿슬 뿐이지! 익크! 저 큰 대문에서 인력거가 나온다. 압헤서 한 놈이 꺼는 것은 보통이지만 또 한 놈이 뒤를 밀고 오는 것은 특별이다. 대톄 누구가 탓는가 하고 골목 엽헤 기다리고 잇다가 후루룩 날러서 인력거의 우비 창살에 안저 보닛가 익크 바로 훼당(毁堂) 대감 문대감이시다. 이 거륵하신 성공가 이 위대하신 당대 제일의 선수이신 문대감께서 엇지 하야 자동차를 타지 아니하시고 칠십육이 되신 귀례를 홀홀한 인력거 우에서 흔들니시면서 어데를 행차하시는가 십어서 나는 오늘 저녁 내처 이 거륵한 행차의 뒤를 따르기로 하엿다.

쌧골 꼭닥이 댕현밋 첩의 아들일망정 애지중지 길너 노으신 아드님, 재식이 집에를 가시는가. 그럿치 안으면 교-동 양아드님 경식이 집에를 가시는가... 엇잿든지 그 두 집 중에 한 집이겟지, 하엿더니 왼걸 왼걸 이 하-연 노대감이 인력거를 나리신 곳은 샛골도 아니요, 교-동도 아니요- 축동○과는 바로 아래 웃집 가티 갓가운 ○○동의 그리 크지 안은 개와집이다. 야야, 이거야말로 대감의 비밀 출입인가 보다! 하고 눈치채인 나는 우비창살에서 후두룩 날러 대감의 그 부드러운 인바네스(외투) 우에 옴겨 안젓다. 중문에서부터 행랑사람들이 두 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굽히고 안에서 침모 식모가튼 계집들이 후다닥! 그러나 몹시도 얌전히 나려와 양수거지를 하고 섯고... 조고만 집안에서일망정 대감의 위엄이 엇지 대단한 지 그의 억게 우에 안즌 나까지 억개가 읏슥하야 에헴! 하고 나혼자 큰 기침을 해 보앗다. 대감이 마루끗에 올나 슬 때에 그 때에 안방문이 부스스 열니면서 톡 튀여나와 쌩긋! 웃는 어린 녀자 한 사람! 대감도 히히히 치신 업시 웃는다.

얼른 보아도 그 어린 녀자가 이집의 주인가튼데, 그가 누구일고... 잘 되엿서도 간신히 이십살 밧게 못 되엿슬 어린 녀자가 팔십 갓가운 뼉다귀를 보고 쌩긋 웃는 맵시를 보면 그 역시 장래 유망한 어린 선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눈 뜬 사람의 것을 마음대로 휘모라다가 제것을 삼ㅅ고 그러고 그걸로 왼갓 영화를 누리고 잇는 이 훼당 대감 압헤야 태산의 압헤 한 조쌀알에 지날 것이엿다 . 그러면 대톄 이 어엽븐 어린 녀자가 대감의 무엇일고... 손녀, 증손녀? 그럿타. 근 팔십에 이십이면 넉넉히 증손녀는 될 것이엿다. 그러나 왼일인지 그의 입으로서 하러버지라는 소리는 나오지 안는다. 그 고흔 손으로 대감의 인바네쓰를 곱게 벗겨서는 벽에 걸어노코 대감 안이 증조하러버지일 대감의 무릅 엽헤 엉거주춤하고 안즈면서 『아이고, 저는 오늘은 집에 오서서 저녁 진지를 잡수실 줄 알앗서요.』 하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아이그 망측해라. 자긔 뺨을 증조하러버지의 핏긔 업는 뺨에다가 갓다 대인다. 『히히 꽤 기다리고 잇섯고나.』 하고 말소리를 흘니면서 떨니는 듯한 손을 가저다가 증손일듯한 그 어린 녀자의 턱을 쥐여 자긔의 턱밋에 가저다가 입맛출 듯이 흔들면서 어루만즈십신다. 이 치신업는 망측스러운 꼴! 그까짓 것은 말말기로 하고 대톄 그 녀자의 동그스럼하고 걀쯤해 보이는 귀여운 얼골이 차차 볼스록 어데서인지 전에도 보든 얼골 갓다. 조 새시대고 해죽거리는 얄밉게 귀여운 얼골! 근 팔십의 해골을 얼싸안고 녹여죽일 듯이 대담스럽게 아양을 떠는 맵시 올-치 올치 나는 그것이 누구라고 - 하하! 조 계집에가 어느 틈에 근 팔십 해골의 작난감이 되어 와 잇고나. 그는 성을 김가라 하고 일홈을 『곡자』라 하는 금년 스물한 살 된 녀자이다. 그러나 김곡자라 하면 몰를 이가 만치만 수년전까지 ○○동 목욕탕 주인석에 안저서 벌거숭이 남자을 이 사람보고 우서 주고, 저 사람보고 우서 주든 일본 녀자인지 조선 녀자인지 모를 어염본 녀자라 하면 아는 사람이 만키는커녕 한 때씩 일망정 그의 남편이엿든 사람도 만흘 것이다. 그는 서울 사는 김○○의 딸로 ○○동 목욕탕 주인인 일본 사람의 양딸이 되야 어려서부터 벌거숭이 남자들만 보고 자라 낫는대 열여덜 열아홉 때는 그러지 안어도 곱던 얼골이 한창 피여서 공연히 목욕오는 남학생들의 속을 태워 주엇섯다. 그러나 원래 선수될 만한 자격을 타고난 사람이라, 이 사람과도 사랑을 밧고고 저 사람과도 정을 밧구어 오다가 급기 장희○이라는 청년에게 몸을 맛기여 장과 함께 명치뎡에서 『○께 노야』라 하는 일본 려관을 경영하면서 부부의 단 살림을 하고 잇섯다. 그 후에 드르닛가 작년 십일월에 공교히 장이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한 사이에 그 친아비가 어느 부자의 첩으로 팔려고 딸을 꽤여 가지고 장에게 생트집을 잡아 박차바리고 림시 수단으로 진고개 본뎡 오뎡목 어느 카페-에 슬심브림꾼으로 갓다 둔 체 하여서 완전히 장을 떼여버리고 어느 부자의 첩으로 드러갓고, 아비는 돈 천원 집한채를 엇엇다더니 오늘 지금 보닛가 부자치고도 굉장한 부자, 저 팔십해골 훼당 문대감의 첩이 되여 와서 밋천 안 드는 고기장사를 하고 잇고나. 대감도 대감이지 돈이라면 ○○질도 사양하지 안코 계집이라면 ○피 창피도 가리지 아니하여 온 성공가이기로 나희가 칠십하고도 또 여섯 살이 아닌가 말이다. 아들 재식이의 집 (챗골) 침모의 딸 『선희 (함선희)』가 그 집에서 자라난 어린 것임도 불고하고 팔십 대감이 춤을 삼키고 지내다가 작년 가을(선희는 작년에 열아홉 살이엿다.) 에 일부러 알른다고 핑계하고 누어서 하필 자긔가 길너낸 것이나 다름 업는 선희를 -(아들의 집 침모의 딸을)-불러오라 하야 간호를 식입네 하고 강○을 하지 안엇느냐 말이다. 저 팔십 대가리로 말이야. 그러나 그 때 선희가 분한 것을 참지 못하고 냅다 떠들고 야단을 하고 자긔 집으로 도망을 해 가 버려 노아서 집안에는 해주집 (재식의 생모)의 늙은 강짜에 큰 풍파가 니러나고 대감의 위신은 개밥가티 땅에 떠러젓슬 뿐 아니라 선희의 생부가 고소를 제긔한 것을 돈 이천원을 주고 빌고 빌어서 준자를 식혓더니 지금 와서 또 일만 팔천원을 내라고 고소를 뎨긔하고 잇는 중이 아니냐 말이다. 색마의 집이다. 부자의 집이다. 죄악의 대궐이다. 그 안에서 너의 어느 아들이 어느 손자가 또 선희를 침범하엿섯는지 알 길이 잇느냐. 아비에게나 하라비에게나 계집을 빼앗기고 혼자 주먹을 어루만지고 잇는 놈이 또 업다고 엇더케 보증을 할 재조가 너에게 잇느냐 말이다. 아아 보기에도 왜 한시인들 더 오래 잇스랴. 이놈의 집의 우스운 이약이를 하나만 더 하고 고만두자. 작년 봄에 런당집이라는 첩년이 죽어간 후로 칠십오세 대색마 대감이 긔어코 아들의 집 침모의 딸을 강○까지 하고 나서 다시 젊은 계집을 엇을 일을 이약이하고 재식이에게 주선을 식엿더니 대감의 사랑을 혼자 밧는 재식이가 철이나서 그랫던지 어머니 (해주집) 의 시앗 볼 서름을 생각하고 그랫던지, 『칠순이 넘으신 몸에 톄면상으로라도 그러실 수가 잇슴닛가.』 하고 불효막심하게도 영영 듯지를 안엇다. 아들놈에게 창피한 핀잔을 밧고도 팔십 색마가 타오르는 더러운 욕심을 주체할 길이 업서서 늘 구박만 해 오던 양아들 경식이에게 계집애를 엇어 달라고 애걸을 하엿다. 이 때가지 구박 푸대접만 밧으면서 돈 한푼 마음대로 써 보지 못하고 울고만 잇던 경식 나으리가 이게 왼떡이냐 하고 밧작 긴하게 굴면서 주선주선하야 일본 계집애 스물한 살 먹은 것을 어느 목욕탕 집에서 다려다가 진상을 하엿더니, 대감이 그만 뼈가 녹는 맛에 엇지도 양아들이 별안간에 어엽브던지 한 달 생활비를 이백원 씩 가해주고 볼 적마다 드르니 『네가 남의 채무가 잇다 하니, 그래서야 쓰겟느냐.』 하면서 돈 뭉텅이를 집어준단다. 그것도 오늘 지금 아닛가 이 김곡자의 이약이인 것을 알엇다. 아아, 저 꼴을 보아라, 자리에 누어서 허리 엽헤 계집애를 안치고 침을 흘리는 저 꼴을 보아라. 죄로써 지은 생활이 호화로운들 몃 날이나 더 호화로우랴 하야 마즈막을 기다리는 짓이라 하면 오히려 가긍타 하려니와 이제 자미잇는 문뎨가 남는 것은 어미를 생각한 재식이에게 효자 가락지를 줄 것이랴 아비의 욕심을 생각한 경식에게 가락지를 줄 것이랴 하는 것이다. 이것도 네가 저 꼴을 하면서도 툭하면 렬녀니 효자니 하고 긴치 안케 반지를 잘 맨들어 준다니 말이다.

이놈아?

어떠한 현관(縣官)이 그 고을에 제일가는 부자라는 이를 뽑아 중군첩(中軍帖)도 보내어 보고 그 향장첩(鄕長帖)도 보내어 보앗스나 모도 응락을 아니하고 그저 거절을 하는지라. 그 현관이 크게 분하야 즉 일발령(日發令)으로 그 부자를 빨리 삼문 밧그로 착치(捉致)하라 명하엿다.

현관. 이놈아 네가 네 죄를 모르느냐?

부자. 에-모르겟습니다. 성주님-

현관. 이놈아 네가 너의 부모에게 불효를 한다더라.

부자. 아니올시다. 그는 소민(小民)의 당할 죄가 아니올시다. 소민의 부는 소민 나기 전에 작고하시고 소민의 모는 소민이 삼세 될 때에 고만 돌아 가셧습니다.

현관. 이놈아 네가 너의 인리(隣里)에서 불화를 한다더라.

부자. 에- 그것두요, 소민의 집은 제일 유벽(幽辟)한 곳에 잇습니다. 사방 십리 안에는 다만 소민의 집 하나뿐이올시다.

현관. 이놈아 내가 네 죄를 꼭 아는 터이니 바로 말하여라.

부자. 그러면 죄라는 것이 무엇이야요.

현관. 이놈아 말 들어라. 네가 청백한 본심을 속이고 컴컴한 야심을 두는 것이 곳 죄란 말이야.

부자. 에-그러면 소민의 죄는 하얀 쌀밥에 검은 팟 두어 먹은 죄만이요.

현관. 에 너이 이 놈-그러면 내가 네 돈을 못 먹어야 올탄 말이냐. 턱도 안 닷는 위협을 부리는 관리의 아니꼬운 꼴은 정말 볼 수 업섯다.